친구와 그녀를 만나기로 한 7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녘에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요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고 궂은날 설마 거리 캠페인을 나가겠어?” 약속을 취소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평택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냥 밥이나 먹고 오자”고 했다. 전에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평택 친구와 여고 동창이다.
일산 정발산역에 도착할 즈음 다행히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2번 출구로 빠져나와 일산호수공원으로 가는 길목, 유동인구가 가장 많이 몰리는 문화공원의 한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사단법인 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희(58) 대표.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정열적인 빨간색의 천막에 새겨진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독특한 내용의 글귀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정희 대표는 주인에게 고의로 버려졌거나 부주의로 잃어버려 가족과 이별한 애완동물들을 돌봐주고, 다시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와 봉사를 하고 있다.
“비가 온다고 쉬면 되나요? 이 아이들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이어주기 위해 태풍이 오든 폭설이 내리든 언제나 토요일엔 거리로 나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을 때 박 대표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으며 그녀가 말했다.
“원래부터 고기를 안 먹었던 건 아니에요. 딸애가 사춘기일 때 저랑 갈등이 많았어요. 그때 모녀 사이를 풀어준 계기가 된 게 유기견 입양이었답니다. 그 후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했고 우울증이 몰려왔죠. 본격적으로 유기견 돌봄 봉사에 뛰어든 건 그 무렵이었어요. 6년째 유기견 봉사를 해오면서 식습관도 자연스레 채식으로 바뀌었죠.”
활달하고 적극인 성격의 박 대표는 처음엔 봉사할 방법을 몰라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송국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알선을 받아 동물보호소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란 맨날 똥 치우는 일이었다고. 그 뒤 맘먹고 개털을 깎아주고 예쁘게 다듬어주기 위해 미용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미용 봉사에 푹 빠져 지내던 중, 2011년 8월쯤 80여 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는 일산의 한 보호소로 미용 봉사를 갔다. “갈 데 없어 곧 안락사당할지도 모를 많은 유기견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우선 네 마리를 데리고 와 이태원에서 처음으로 거리입양 캠페인에 나섰죠. 참 신기하게도 그날 모두 입양이 됐어요. 용기를 얻어 용산에서 세 군데 더 확장했다가 지금은 맨 처음 네 마리를 데리고 온 인연을 생각해 아예 일산에다 자리를 잡았답니다.”
유기동물 거리입양은 일반 입양 절차에 비해 살짝 까다로운 편이라고 한다.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병원 검진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정된 동물병원에서 종합접종, 신종플루 예방접종, 외부 기생충, 마이크로칩, 심장사상충 검사,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비용은 20만 원 정도이고 입양자가 결제를 하고 데려가면 된다.
“요즘 팻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어느덧 반려동물 1천만 시대에 접어들어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에선 인터넷이나 불법 경로를 통해 무분별하게 사고파는 등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어 안타까워요. 돈이 된다 해서 강아지 공장(puppy mill,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을 버젓이 운영하는 행위를 보면서 안타까웠죠. 그런 곳의 강아지를 사주지 않아야 그런 농장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 곳에서 ‘사지 말고’ 제대로 절차를 밟아 ‘입양하세요’라고 토요일마다 나와 외치는 겁니다.”
박 대표는 이어 ”유기견은 보통 보호소에 입소하면 약 10일 정도 머무른 후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하죠. 그걸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동안 우리 ‘고유거(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에 관심 갖고 도와준 좋은 분들이 많아 후원금도 상당히 모아졌어요. 그 후원금으로 ‘고유거 유기견 쉼터’도 오픈했답니다. 우리 쉼터에는 안락사 기간이 없어서 마음이 뿌듯해요.”
내후년이면 35년여의 국방부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는 박정희 대표. 어떻게 하면 노후를 더 보람 있고 멋지게 보낼 수 있을까 구상 중이라 했다. 평소 수영과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지고 늘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박정희 대표의 멋진 노후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기대된다.
왼쪽 무릎을 다쳤다. x-ray를 찍어 보니 연골이 찢어졌다.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고통지수를 100으로 가정하면 수술 후 완전히 전과 같지는 않단다. 무엇을 해도 40~50 정도의 고통은 남기 때문에 설명을 자세히 해서 그나마 줄어드는 고통지수에 만족하게 한 다음에야 수술을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의 연골을 조금 뽑아 배양한 뒤 아픈 부위에 다시 집어넣는 자가연골배양술이 있는데 시술하면 좋아져야 하는데 실패율이 높아 권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관절 역시 남자들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모든 수술의 실패율이 높아 책임 회피 차원에서 수술을 잘 안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릎을 전처럼 사용할 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 한다. 아픈 무릎이 나을 때쯤이면 그동안 무리했던 다른 쪽 무릎도 탈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그 무릎을 치료하면서 양 무릎을 오가는 고통의 악순환이 몰려올 거란다. 나빠지면 앉아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을 수도 있으니 그나마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6개월에서 3~4년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기계는 외국에 비해 수명이 매우 짧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서 그런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내려갈 때까지 혹은 올라갈 때까지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기계에 권투의 잽처럼 잔 충격이 누적되어 고장이 잦다는 설명이었다.
필자도 평소 많이 움직인 탓으로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빨리 좋아져야 한다는 욕심에 하루에 정형외과와 한방병원 두 곳을 매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는다. 두 곳 모두 환자가 많으면 대기시간이 길어져 3~5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루 일과 중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이로 인해 스케줄을 정확히 잡기가 어려워 일도 확 줄였다. 누군가 “기적이란 막대기로 바다를 가르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두 발로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실감이 난다.
한 번의 실수가 인생 스케줄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이 뇌에 오랫동안 기억되어 생기는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그저 흘려 듣기만 했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고민은 강력 소염 진통제를 먹다 보니 속이 쓰리고 어지러워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해주면서도 진통제 복용으로 고통이 없어지면 현재 아픈 상태인 무릎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니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는 참으며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걸으라 한다. 도대체 진통제를 먹으라는 건지 먹지 말라는 건지 헷갈려 반으로 잘라 먹으며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려니 약도 마음대로 먹지 못 하는 입장이 또한 스트레스다.
아내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면 바쁘게 강의 다니지 말고 그냥 쉬든지 앉아서 할 일을 찾아보란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취업이 어려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에 아재를 넘어 꼰대 나이가 된 사람을 누가 써준단 말인가. 잠자리에 누우면 스물스물 고통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필자에게 스스로 묻는다.
“지금 바뀔래, 벼랑 끝에서 바뀔래?”
그러면서 약도 바짝바짝 난다.
미칠 노릇이다. 살면서 ‘힘’ 하나는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소변마저 시원하게 해결하기가 어렵다.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민망하다. 아내는 소변 하나 제대로 못 봐 속옷에서 냄새가 난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바로 전립선에 문제가 생긴 사내들 이야기다.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이 노화 과정에서 피하기 어려운 것이 전립선 비대증이다. 이 질환을 정말 피해갈 방법은 없을까? 있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한양대학교병원 비뇨기과 조정기(趙正琪·39) 교수의 도움으로 알아봤다.
전립선은 최근 전립샘으로도 불린다. 영문 의학 용어가 일본식으로 번역된 것을 그대로 도입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실제 전립선 모양이나 기능을 고려할 때 샘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기사에선 아직 독자 편의를 위해 전립선으로 표기한다).
전립선이 샘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실제로 전립샘이 정액의 우윳빛 액체(전립선액)를 생성해 정자의 운동을 돕는 역할을 하고 남성호르몬 생성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전립선은 부피로 따지면 약 20cc 정도의 크기로 밤톨 하나만 한 크기를 상상하면 된다. 방광 바로 밑에서 요도가 시작되는 부위를 감싼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모양이 하트와 비슷하다고 해서 ‘사랑의 장기’로 불리기도 한다.
중년 남성의 삶의 질 무너뜨려
조정기 교수는 전립선 비대증의 원인 중에서구화된 식생활 등도 있지만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피해갈 수는 없을까?
“실제로 발병률을 조사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이 병을 앓는 비율도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대략 60대에는 50%, 70대에는 70%, 80대에는 80% 정도의 조사결과를 보여요. 결국 대부분의 남성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전립선 비대증을 피하기 어려워진다는 얘기죠.”
전립선은 맨 가운데의 중심부와 이를 감싸고 있는 이행대 그리고 이행대를 다시 감싸고 있는 말초부로 구분하는데 비대증의 경우는 이행대가 부풀어 오르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증상이다.
전립선 비대증이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부피가 커지는 과정에서 요도를 압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방광까지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일을 보고 나서도 잔뇨감이 들며, 자주 마려운 증상이 나타난다. 모두 소변과 관계된 증상들뿐이다. 특히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게 되는 ‘야간 빈뇨’는 시니어들의 삶을 떨어뜨리는 전립선 비대증의 대표적 증상이다. 이밖에 소변을 다 보고 난 후 방울방울 떨어지는 증상(배뇨 후 요점적), 소변이 마려우면 참지 못하는 증상(요절박), 소변을 참지 못해 옷에 묻히는 증상(절박성 요실금) 등도 중년 남성의 자존심을 뭉개곤 한다.
조 교수는 “실제로 저를 찾아오시는 환자 중 상당수는 수면장애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니 낮의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기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대수롭지 않은 증상이라고 생각하고 참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급적 초기에 치료를 받길 권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라고 조언한다.
비대한 전립선은 종양과 유사
그렇다면 전립선 비대증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조 교수는 소변과 관련해 불편함이 생겼을 때 비뇨기과 전문의가 직접 만져보는 촉진을 통해 검사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정식 명칭은 ‘직장수지검사’라고 불린다.
“경험 많은 비뇨기과 전문의는 손으로 만져보고도 전립선 비대증인지 아닌지 혹시 전립선암은 아닌지 단번에 알 수 있어요. 또 전립선 비대증이라면 그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이 가능해요. 환자 입장에선 검사 과정이 부끄러울 수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웃음).”
이외에도 소변검사와 혈액검사, 소변의 배출속도를 측정하는 요속검사, 초음파검사 등으로도 진단을 한다. 그런데 조 교수는 전립선 비대증이 일종의 종양과 비슷하다며 재밌는 설명을 한다.
“결국 궁극적인 방법은 수술을 통해 절제해내는 것이 최선이니까요. 전립선 비대로 인해 요로가 눌리는 것을 물리적으로 속 시원히 해결하기 위해선 수술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종양과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요즘엔 좋은 약물이 많지만, 혈압이나 당뇨 등으로 평소 드시는 약이 적지 않다면 부담이 될 수 있어요.”
물론 악성종양인 전립선암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갖는다. 전립선암은 비대증과 달리 말초부에서 발생하고, 대부분의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진단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전립선의 약물치료가 의료 현장에서 선호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장기 복용해야 하고 부작용까지 염려되기 때문이다.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이지 물리적인 개선 방법이 아니다.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다시 같은 증상에 시달려야 한다. 또 약물로 인해 기립성 저혈압이나 성기능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치료를 위한 수술에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요도로 내시경 장비를 넣어 전립선 일부를 절제하는 경요도 전립선 절제술과 레이저를 사용한 수술법이 널리 쓰인다. 레이저 수술은 레이저로 태워 없애는 KTP 레이저 수술과 사과의 속을 파듯 레이저를 이용해 양성종양만 절제해 방광안에 넣고 갈아서 꺼내는 홀뮴 레이저 수술이 있다. 100cc 이상으로 부풀어오른 전립선에서 양성종양만을 적출해버리는 전립선 적출술도 있다. 최근에는 절개를 적게하는 최소침습적 수술방식이 선호되는데, 레이저 수술이나 경요도 전립선 절제술이 여기에 속한다. 최신 치료 방법으로는 좁아진 요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스텐트 삽입술이 있다. 비용이 비싼 것이 단점이지만,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한 전립선 결찰술도 개발되어 대중화를 앞두고 있다.
쏘팔메토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전립선 비대증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쏘팔메토다. 쏘팔메토는 오래전 북미 인디언들이 민간요법으로 썼던 작은 야자나무 열매로 건강식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미국 식약청(FDA)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조 교수는 지나친 맹신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환자 중에도 쏘팔메토를 드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효능은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보다 훨씬 약한 수준이에요. 배뇨 증상을 겪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전립선 비대 관련 시장도 커지고, 제약회사에서는 건강식품을 많이 내놓고 있어요. 하지만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드셔도 큰 효과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정확한 진단 아래 치료를 받으시는 게 회복이 훨씬 빠를 겁니다.”
전립선 비대증과 관련한 조 교수의 당부는 계속됐다. 바로 수술 후유증에 대한 선입견이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를 위해 수술을 받으면 요실금이 생길까봐 많이 걱정하시는데요. 일부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시적인 증상입니다. 수술 후 성기능 장애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은 전립선결찰술도 적극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주는 전립선 비대증을 더 이상 간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궈서야 되겠습니까(웃음).”
“요즘 동료 의사들이 임플란트 환자가 늘었다는 말을 많이 해요. 보험적용이 되어 비용 부담이 줄어들었고 날이 따뜻한 봄에 치료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몇십 년 전에는 틀니가 엄청 비쌌는데 이제는 임플란트를 어버이날 선물로 선택할 정도로 대중화됐다.예전에 비해 시술 비용이 많이 저렴해졌고 재료의 국산화, 수면시술 등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치아는 오복(五福) 중 하나라고 한다.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더페이스치과 이중규 원장에게 치아를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과 임플란트 시술에 대해 들어봤다.
65세 이상 시술, 관리가 더 중요하다
40~50대 이후부터 치과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치아도 피부나 몸처럼 한꺼번에 노화되는 건가요?
많은 사람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병원에 옵니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치료비도 많이 들고 치료도 더 힘들어지죠. 다른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패밀리닥터의 조언으로 정기검진처럼 6개월에 한 번씩 검사하고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치료를 받습니다. 치아 건강에 엄청 신경을 써요.
얼마 전, 치과 임플란트 부작용 분쟁으로 10건 중 4건은 시술이 중단됐다는 기사가 났어요. 이 기사를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임플란트는 기본적으로 잇몸 절개를 하고 턱뼈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외과적인 진료이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전에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환자에게 고지해야 하는데 간혹 설명을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임플란트는 치료가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광범위한 뼈 이식 등 추가 시술을 할 수도 있어서 시술보다 시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이 점에 대해 환자의 이해를 이끌어내야 좋은 진료가 될 수 있어요.
임플란트 부작용 환자가 특히 60대 이상에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골다공증과 당뇨, 심장질환과 같은 전신 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고 임플란트를 지지하는 치조골이 줄어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뇨나 심장질환은 대개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대부분 관리가 잘되고 있습니다. 반면 골다공증은 치료제를 먹으면 뼈가 단단해지면서 내부 혈관이 줄어들고 턱뼈가 녹고 썩는 괴사 증상이 올 수 있어서 임플란트 치료에도 영향을 미쳐요. 치과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이 골다공증 약을 먹는다면 반드시 의사에게 알려야 해요.
간혹 ‘임플란트 전문의’라는 광고를 봅니다. 임플란트 전문의가 따로 있나요?
현행법상 임플란트 전문의는 없어요. 임플란트는 치아가 없는 턱뼈에 인공치근을 심고 그 위에 치아의 머리를 제작해서 끼우는 시술입니다. 굳이 나누자면 인공치근을 심는 것은 구강외과나 치주과에서 할 수 있고 머리를 만드는 것은 보철과에서 할 수 있습니다. 즉 전반적인 치과 개념이 종합되어야 하나의 진료를 할 수 있어요.
임플란트보다 틀니가 나은 환자도 있어
임플란트 비용이 70만원대에서 200만원대로 다양합니다. 왜 이렇게 비용이 다른가요?
과거에는 수입 제품으로만 치료를 했기 때문에 비용이 높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모든 부품이 국산화됐고 국산 업체가 더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또 재료가 다양해지고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비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어요. 하지만 치료의 수가는 환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고 의료진의 지식과 노력, 경력이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비용 편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틀니를 더 많이 했는데, 요즘엔 임플란트 시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유가뭘까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 국산 임플란트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 또 65세 이상 환자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되면서 좀 더 대중적인 치료로 자리 잡았어요.
이전에는 만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적용되던 치과 임플란트 건강보험이 2016년 7월부터 그 범위가 확대되어 만 65세 이상 부분 무치악(이가 다 빠진 이틀) 환자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50%는 본인 부담, 50%는 국가 부담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요. 보험적용을 하면 보통 60만원 정도 들고 총 2개까지 가능합니다. 나이가 들면 피부 탄력이 줄어들듯 뼈의 볼륨도 줄어드는 퇴축 현상이 생기는데, 임플란트를 심으면 치조골 퇴축이 안 됩니다. 그것이 틀니와 다른 임플란트의 큰 장점이죠.
임플란트 시술을 받기 어렵거나 임플란트보다 틀니가 나은 환자도 있나요?
임플란트가 좋은 치료이긴 하나 만능은 아닙니다. 아주 드물지만 임플란트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조골의 상태가 안 좋은 사람도 있어요. 환자 중 70대 어르신이 있었는데, 이분은 40대부터 틀니를 꼈어요. 치아 없이 30년 정도 틀니를 끼면 치조골이 자연스럽게 퇴축해요. 임플란트는 뼈에다 심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모든 치아의 뼈를 다시 만들어야 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틀니를 사용하기도 해요. 임플란트의 개수를 줄이기 위해 임플란트에 의해 지지되는 복합형 틀니도 있습니다. 그런데 틀니를 하면 치조골이 줄어들며 헐렁해져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겨요.
전체 임플란트 식립은 무엇인가요?
임플란트는 힘을 받는 구조가 틀니와는 다르기 때문에 자연치와 아주 가깝죠. 그래서 임플란트가 가능한 환자는 임플란트를 하는 게 나은데, 임플란트 식립은 쓸 수 없는 치아가 전혀 없거나 이미 치아를 모두 상실한 경우 모든 치아의 기능을 임플란트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여러 개의 치아 이식과 광범위한 골 이식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를 통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들의 치아 관리, 이것만큼은 꼭 신경 써야 한다면 뭐가 있을까요?
치아는 오복 중 하나입니다. 건강하게 잘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평균수명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건강한 치아를 원하신다면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해 검사를 받는 게 좋습니다.
또 치과 치료에 대한 공포도 줄여야 합니다. 치과에 가면 돈이 많이 든다고 안 가시는 분도 계신데 보건소로 가면 비용 부담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예방적 차원에서 자주 치과에 가고 위생관리를 잘하는 분은 치과 치료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요.
몸이 아플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건강은 약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운동,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좋은 먹거리란 무엇일까? 사포닌이 많이 함유된 인삼이 좋은 것일까? 비타민 C가 많은 사과가 좋은 것일까? 비타민 C가 많이 들어간 사과가 좋은 거라면 굳이 비싼 사과를 사 먹을 필요가 없다. 합성 비타민 C로 만들어진 가루나 알약을 먹으면 된다.
생명vs인공=담(淡)vs부담(不淡)
2013년 12월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 연구팀은 12년간의 연구 끝에 종합비타민과 미네랄 제품은 심장질환과 암 발생률, 기억력 저하를 막는 데 효과가 없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종합비타민제 구입하는 데 돈 낭비하지 말고 과일, 야채, 견과류, 콩, 유제품 등을 구입하는 데 좀 더 신경을 쓰라고 권장했다.
2016년 2월, 한국 국립암센터 명승권 교수팀이 국제 학회지에 발표한 임상시험 논문 7건(대상자 총 6만2619명)을 메타 분석한 결과, 음식이 아닌 보충제의 형태로 비타민 C를 복용한 실험 대상자와 위약을 복용한 실험 대상자의 암 발생률과 암 사망률은 차이가 없었다.
명 교수는 “천연 비타민 C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과일·채소 등을 자주 섭취하면 암 발생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는 많지만 음식이 아닌 보충제 형태로 비타민 C를 복용하는 경우 일관된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일각에서는 비타민 C 보충제를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암이나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된 바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명 교수는 천연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은 화학구조식이 동일하지만 입체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화학 성분이 같더라도 천연 음식인지 합성 보충제인지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생명체는 자연에 적응,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인다. 즉 생명성과 운동성을 지닌다. 천연 식재료를 먹으면 이러한 생명성, 운동성의 기억이 살아나 몸에 재현되고 오장육부가 건강해진다. 그래서 약선과 한의학은 이러한 자연의 생명성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물론 자연에도 복어독이나 협죽도의 독처럼 사람을 마비시켜 죽게 만드는 것들도 있지만, 이조차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이다.
천연 식재료를 맛으로 표현하면 담담한 맛, 구수한 맛, 그리고 밥을 오래 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단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맛을 느낄 때는 반드시 입안에 침이 촉촉하게 분비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맛을 담미(淡味)라고 한다. 담미는 한자 의미대로 풀면 물[水]에 불[火]이 두 개나 작용한 맛이다. 즉 수증기가 되듯[氣化] 몸속에서 제대로 작용되는 맛이다. 그러므로 담미는 기혈을 순환시키고 소변이 무리 없이 배출되도록 해준다. 또한 몸을 기본적으로 보해주면서도 살은 찌지 않도록 해준다. 몸에 좋은 음식은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이 나면서도 끝 맛은 반드시 은은한 단맛이 나야 한다. 자연 숙성한 된장, 간장, 고추장 등도 모두 끝 맛이 달다. 정제염과 갓 만든 천일염은 매우 짜고 끝 맛이 쓰지만, 오래 묵힌 천일염, 잘 구운 죽염은 약간 짜다가 끝 맛이 달다. 이처럼 담미를 겸하고 있어야 몸에 좋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이 괜찮은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입에 침이 잘 나오고 다음 날 아침에도 개운하게 일어나며, 소변도 시원하게 나온다. 담미가 많기 때문이다.
인공 식재료와 조미료가 주는 부담
에는 “담미(淡味)는 오래 먹어도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큰 공이 있다”고 씌어 있다. 인체의 기본인 정기신혈(精氣神血)을 보충하는 것이 바로 담미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음식을 담백하게 먹어야 장수한다고 했다. 자극적인 맛은 정기신혈(精氣神血)을 손상시킨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자극적이다. 공장에서 만들었거나 화학조미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음식은 오래 씹을수록 담미가 강해진다. 밥도 첫맛은 그다지 달달하지 않지만, 오래 씹어 먹으면 단맛이 점점 스며 나온다. 즉 침이 스며 나온다. 따라서 음식은 오래 씹어 먹어야 몸에 좋다.
인공 식재료는 성분을 추출, 합성한 것으로 생존의 기억이 없다. 생명성이 없어 움직임(운동성)도 없다. 천연 식재료를 원료로 해서 만든 가공 식재료 역시 가공 과정 중에서 생명의 기억이 사라져버리고 화학 성분만 남는다. 인공 식재료를 먹으면 오장육부를 비활성화시키고 운동성이 퇴화한다. 그 결과 기혈 순환에 장애가 오고 물살이 찌며, 동맥이 경화되고 소변도 잘 나오지 않게 된다. 밥을 먹어도 밥이 내려가지 않아 네다섯 시간이 지나도 배가 더부룩하고, 위하수가 생긴다. 대장의 연동운동도 느려져 대변도 잘 빠져나오지 않는다. 인공으로 합성된 약도 마찬가지다. 혈압약을 오래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관장약을 오래 쓰면 스스로 대변보기가 힘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약의 양을 늘리거나 종류를 바꿔야 한다.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합성 식재료의 맛은 담미(淡味)의 반대 의미인 부담(不淡)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부담은 끝 맛이 텁텁하거나 쓰다. 입에 침도 고이지 않아 입안이 마르게 된다. 달달한 식품의 대명사인 초콜릿을 먹으면 처음에는 달다가 끝 맛은 텁텁하거나 쓰고 물이 자꾸 당긴다. 인공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첫맛은 자극적이라 자꾸 당기지만 끝 맛은 텁텁하다. 텁텁하다는 말은 정지, 마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식당에서 식사 후 입안이 텁텁하면 “이 식당은 조미료를 많이 쓰나봐!” 하면서 물을 많이 마신다. 물이 당기는 것은 정지, 마비된 몸을 순환시키려는 인체의 요구다. 물은 정지된 것을 흐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하려면 생명력이 있는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 음식을 화학 성분으로 따지면 안 된다. 물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수한 물만 추구하면 증류수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증류수는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어야 흡수가 된다. 당연히 증류수에 미네랄만 탄 물은 생명력이 없다. 자연에서 미네랄이 스스로 생겨난 물이라야 몸에 좋다. 생명성을 띠기 때문이다. 물 한 잔을 마셔도 생명성이 있는 물을 찾아서 먹어야 한다. 하물며 다른 음식들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야채를 썰다 놓친 부엌칼이 발등 근처에 떨어져 크게 놀라거나, 매일같이 오르던 계단이 어느 날부터 유독 높아 보이거나, 맛있는 깍두기가 제대로 씹히지 않는 날이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개의치 않고 넘길 수 있는 일들이다. 체력이 좀 떨어졌거나, 며칠 쉬지 못해 그러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바로 중증근무력증이다. 안석원(安錫源·42) 중앙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중증근무력증에 대해 알아봤다.
중증근무력증은 많은 사람에게 병명조차 생소한 병이다. 게다가 병명에 중증이란 단어까지 붙어 있어 막연한 공포감까지 든다. 실제로 중증근무력증은 국가에서 지정한 희귀난치성질환 중 하나로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7000명 전후로 알려져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유 없이 힘이 빠지는 병
중증근무력증의 대표적 증상은 몸의 힘이 빠지는 것이다. 근육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원하는 대로 몸을 쓸 수 없게 된다. 범위는 모든 근육에 해당된다. 팔다리에서부터 안구 근육까지, 인간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근육에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부위는 숨 쉬는 것을 조절하는 호흡근이다. 호흡근에서 중증근무력증이 발병했을 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고 만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억만장자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도 중증근무력증으로 인한 폐렴이 사망 원인이었다. 안석원 교수는 초기에는 증상을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모든 근육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대부분 사소한 증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피곤해지면서 걷다가 주저앉게 되거나 음식을 씹기 어렵게 되죠. 대화에 곤란을 겪기도 해요. 말이 어눌해지면서 목소리까지 변하죠. 저작근에 문제가 생기면 딱딱한 음식을 씹기 힘들어지고 삼키는 것도 어려워져요. 그런데 휴식을 취하면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피로로 여기기 십상입니다. 특히 중장년층은 나이가 들어 그런 것 아닌가 하며 쉽게 넘길 수 있죠.”
중증근무력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경우가 가장 흔하다. 안구형 중증근무력증과 전신 중증근무력증이 그것. 안구형 중증근무력증은 눈 근육에 이상이 생겨, 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증과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이 나타난다. 복시는 안구를 움직이는 눈 근육에 이상이 생겨 안구 한쪽이 힘없이 처지면서, 양쪽 안구가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지 못해 일어나는 시차 때문에 나타난다. 복시가 심해지면 운전은 물론 계단 오르는 일도 어려워져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신 중증근무력증은 전신의 모든 근육이 질환의 영향을 받는 상태를 말한다. 처음엔 사소한 증상부터 시작되지만 몸을 쓸 수 없는 증상은 점차 확대돼 대부분의 경우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전신으로 확대된다. 이 밖에 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신생아가 일시적으로 같은 병을 겪게 되는 일과성 신생아 중증근무력증과, 유아기에 많이 나타나는 선천성 근무력증도 있다.
근육 아닌 면역체계 이상이 원인
발병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더 많은 편이라고 한다. 40세 이하 젊은 여성들의 발병이 많은 편이고 노화가 시작되면서부터는 50세 이상의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병한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지나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감소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중증근무력증은 아직 그 원인이 정확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가면역체계의 이상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안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곳에 신경근육접합부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뇌에서 근육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면 이곳을 통해 신호가 전달돼 근육이 실제로 움직이게 되죠. 이 신경근육접합부에서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아세틸콜린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아세틸콜린을 받아들이는 근육의 수용체에 자가항체가 결합해 아세틸콜린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에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면역이상으로 인해 생성된 항체가 근육 움직임을 방해해서 생기는 질환이라고 볼 수 있죠.”
또 일부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경우 흉선에 종양이 생기거나 비대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슴샘이라고도 불리는 흉선의 이상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 다행히 중증이라는 흉악한 이름과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정확히 진단만 되면 치료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이 병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치사율이 매우 높았어요. 90% 정도의 환자는 사망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약제와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환자를 정상적인 몸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일단 이 질환을 앓기 시작하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은 있을 수 있지만 평범한 생활을 하는 데는 문제없어요”라고 말했다.
치료는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증근무력증에는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이 사라져도 병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질환은 증세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치료 후 수년간 증세를 보이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나기도 해요. 그래서 신경과 전문의들은 중증근무력증에 대해서는 완치라는 단어 대신 관해(寬解)라는 표현을 써요. 일시적이건, 영속적이건 증상이 감소한 상태를 말하죠. 때문에 약을 끊을 정도까지 상태가 호전되더라도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아야 해요. 언제 어떻게 증상이 다시 나타날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요.”
의료계에서 이 병의 환자 수가 집계되는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병을 안고 있지만 증상이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져 멀쩡한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운동은 독
중증근무력증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진단 자체가 까다롭다는 데 있다.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이 특정 수치로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교수는 의사의 진찰 소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중증근무력증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수치만으로는 부족해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 다양한 반응을 확인해봐야 해요. 혈액검사를 통해 항체농도를 측정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죠. 폐활량 검사나 근력 테스트도 실시해요. 몸의 각 근육이 모두 다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도 확인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항콜린에스터레이스라는 이름의 약을 투여하는 것이다. 가슴샘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절제를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 혈장분리교환술과 같은 면역요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치료는 의학적으로 어렵지 않은 편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괴롭다. 환자를 괴롭히는 첫 번째 요인은 부작용이다. 약에 따라 속이 쓰리거나 소화가 안 되고, 체중이 늘고, 탈모, 간수치 상승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면역체계와 관련한 약들이다 보니 독할 수밖에 없다. 또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먹어야 하는 것도 환자에겐 부담스럽다.
안 교수는 “하루 정도 실수로 빼먹어도 부담이 적은 혈압약이나 당뇨약과는 성격이 달라요. 투약이 중단되면 빠르게 상태가 악화돼요. 심지어 약을 챙기지 않고 해외출장을 갔다 사망한 사례도 있었으니까요.”
만약 중증근무력증을 일종의 체력저하로 판단해 운동으로 이겨내려고 하면 더 큰 독이 된다. 정상적인 근육들까지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 스윙을 할 때 클럽을 자주 놓치거나, 식사 중 젓가락을 놓치는 증상 등 몸에 이상 증세가 느껴지고 갑작스런 근력저하가 나타날 때는 이 병을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언어구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눈 한쪽이 처지는 등 주변에서 증세를 알아볼 정도가 되면 서둘러 신경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 봐야 한다.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건강 정보의 홍수다. 단순한 언론 매체의 보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사용되거나 홈쇼핑을 주목하게 하는 재료로도 쓰인다. 화자(話者)도 다양해졌다. 의사만이 말할 수 있다는 금기는 깨진 지 오래고, 나이 든 촌부부터 요리사까지 자신의 경험만을 근거로 이야기를 쏟아놓기도 한다. 특히 제품 판매와 같은 상업적 목적으로 과장되는 정보들은 특정 약재나 식재료를 과용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과신이 되레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갱년기를 거치면서 건강이 쉽게 약해질 수 있는 시니어들은 더더욱 조심해야 하므로, 제대로 알지 못하고 먹었을 때 건강을 해치는 약재들에 대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강남동약한의원 이기훈(李起熏) 원장
강황(薑黃)
생강과의 다년생 식물인 강황은 일반적으로는 카레 재료로 잘 알려져 있다. 강황은 온도와 습도 등 생육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인도 등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는 식물이다. 인도 카레를 이야기하면 특유의 노란색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약재이기도 하다.
강황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다.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는 보고도 있고, 진통 작용도 있다고 해서 통증으로 고생하는 시니어들이 복용하는 경우도 많다.
강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강황을 구성하는 성분 중 하나인 커큐민(curcumine) 때문. 그러나 강황에서 커큐민이 차지하는 함량은 전체의 0.3%에 불과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한의학에서는 강황을 과다 복용하면 오히려 체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과다 복용을 금하고 있다. 특히 임산부는 자궁 수축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강황 섭취를 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울금(鬱金)
울금 역시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울금과 강황은 같은 생강과의 식물이지만 강황은 뿌리줄기를, 울금은 고구마처럼 영양을 저장한 덩이뿌리(괴근)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단무지를 노랗게 만드는 착색제로 울금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건강식품 재료로 각광받으면서 울금을 활용한 제품들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울금에도 치매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커큐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강황과 마찬가지로 함유량이 0.3%밖에 안 된다.
한의학에서는 울금을 어혈(瘀血, 몸에 혈액이 제대로 돌지 못해 한 곳에 정체되어 있는 증세)을 제거하는 약으로 쓴다. 하지만 시니어 혹은 체력이 떨어진 사람이 과다 복용할 경우 기운이 더 떨어지게 되고 설사나 가려움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울금도 강황과 마찬가지로 임산부의 복용을 금하고 있다.
백수오(白首烏)
박주가리과에 속하는 은조롱(큰조롱)의 덩이뿌리인 백수오는 과거엔 백하수오라고 불렸다. 백수오는 최근 유행을 타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약재 중 하나로, 갱년기 증상의 예방과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백수오를 가공하지 않고 임의로 달여 먹으면 간독성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고, 과용할 경우 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엽우피소(異葉牛皮消)를 백하수오로 속여 파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 외형상으로 이엽우피소와 백하수오는 매우 닮아 있지만, 이엽우피소는 독성이 강해 한의학에서 약재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과도한 음주 등으로 이미 간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간 기능이 약해지기 쉬운 시니어들은 가급적 백하수오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어성초(魚腥草)
삼백초과에 속하는 약모밀을 어성초라고 부른다. 어성초라는 이름은 줄기와 잎에서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최근 몸값이 높아지기 전까지는 잡초 취급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번식력도 잡초만큼 굉장히 뛰어나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어성초는 성질이 찬 약이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떨어진 시니어가 장기간 복용할 경우 소화 계통의 과민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중 속쓰림이 가장 흔하게 발생할 수 있고 어지러움이나 매스꺼움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어성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과민성 쇼크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탈모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실제로 탈모 방지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검증된 바는 없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속설에 의존해서 무턱대고 많은 양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봉삼(鳳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봉삼은 그 이름 때문에 인삼의 일종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인삼이나 산삼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원래 이름은 백선피(白鮮皮)로 운향과 백선의 뿌리껍질을 말한다.
인삼보다 효과가 뛰어나다고 광고하면서 고가의 약재로 팔거나 술을 담가 파는 경우가 많지만 인삼과 같은 효능을 기대할 수도 없고, 용법도 전혀 다르다.
민간에서는 풍을 제거하고 해독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어 피부과 질환에도 잘 쓰는 약이다. 그러나 독성이 있어 잘못 복용할 경우 간 기능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실제로도 간독성이 흔하게 보고되는 약재다. 시니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백선피를 장기간 복용하면 간독성을 포함한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복용을 원한다면 한의사와 상담을 한 후에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해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많은 것을 바꿨다. 일명 ‘알파고 쇼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 세계 미디어들이 2016년 10대 뉴스로 꼽을 만큼 인류에게 충격을 줬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충격적 현상이 진행 중이다. 암 치료를 돕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왓슨’의 국내 병원 도입이 그것이다. 이세돌을 넘은 알파고처럼 왓슨은 과연 名醫를 넘은 神醫가 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과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왓슨은 인간을 최초로 꺾은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블루’를 개발한 IBM이 선보인 또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 이미 2011년 미국 TV 프로그램 제퍼디 퀴즈쇼에 참가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며 우승한 바 있다.
이후 왓슨은 의료용으로 특화돼 학습을 계속해왔는데, 의료용 인공지능을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왓슨은 2012년 처음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MSKCC)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며 암 환자의 진료를 터득했으며 현재도 교육을 받고 있다. 선진 의료기관의 자체 제작 문헌과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한 왓슨의 암 진단 정확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연말이면 전체 암의 약 85%를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왓슨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각종 암에 대한 왓슨의 진단이 전문의와 90% 이상 일치되는 결과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미국암학회는 왓슨이 평균적인 전문의에 비해 초기 오진 가능성이 적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길병원에서 국내 암 환자 첫 진료
지난해 12월 5일은 국내 의료계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기록된 날이다. 가천대 길병원 진료팀은 대장암 진단을 받은 61세(당시) 남성 조태현씨에게 왓슨을 이용한 진료를 진행했다. 조태현씨는 이날 국내에서 인공지능으로부터 진료받은 첫 번째 한국인이 됐다. 왓슨은 의료진을 통해 입력된 조태현씨에 대한 다양한 사항들을 분석해, 불과 몇 초 만에 치료 방법을 제안했다.
길병원의 왓슨 도입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예상외로 컸다. 길병원에서 왓슨에게 진료받고 싶다는 문의가 기대 이상으로 많았고,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암 환자가 왓슨을 찾아 길병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길병원 의료진은 “왓슨의 기대효과 중 하나는 인천 지역의 암 환자가 불필요하게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타 지역 환자까지 불러들이는 일종의 ‘간판’ 역할까지 하고 있다.
왓슨에 대한 의료계와 환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 지역 암센터인 부산대학교병원도 두 번째로 왓슨을 도입했다. 한국IBM은 부산대학교병원이 ‘왓슨 포 온콜로지’와 ‘왓슨 포 지노믹스(Watson for Genomics)’를 도입한다고 1월 25일 밝혔다. 이어 충남 지역 암센터인 충남대학교병원도 왓슨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공지능 의사의 암 치료 방법
그렇다면 왓슨은 암 치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암 치료는 일반적으로 암인지를 확인하는 진단 과정과 암 확진 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과정,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 수술과 항암치료 등을 진행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왓슨은 여기서 중간 과정인 치료 계획 수립에만 참여한다. 길병원은 암이라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왓슨을 활용한 다학제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길병원에서는 진단을 위해 왓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암 환자가 아니면 왓슨을 만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암 환자의 치료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왓슨의 역할이다. 물론 그에 따른 치료는 의사의 몫이다.
인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도 몰랐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비기를 발휘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전문의들이 모두 알고 있는 범위 내의 치료법에서 최적의 것을 골라낼 뿐이다. 치료 가능한 암종도 대장암, 직장암, 유방암, 폐암, 위암, 자궁경부암으로 아직은 제한적이다. 이후 난소암과 전립선암까지의 확대를 계획 중에 있다.
암 치료 계획을 세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환자의 신체적 특징이나 암종 등을 고려하면서,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암 치료 가이드와 미국 MSKCC 전문지식 데이터 등 천문학적으로 방대한 문헌들을 참고해 환자의 치료법을 선택한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전문의들은 이미 치료가 많이 진행된 환자보다는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는, 즉 최근 암 진단을 받은 환자 혹은 암이 재발된 환자에게 왓슨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의료진 능률을 높여주는 구심점 돼
길병원 의료진들은 왓슨 도입 후 2개월간 1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긍정적 효과 중 하나로 효율적인 의료진 간의 협업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효과를 꼽는다.
길병원에서는 여러 과의 의사가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과정에서 왓슨을 활용한다. 왓슨 암센터에는 8개 전문과 30여 명의 전문의가 있는데, 왓슨 치료시간에는 이들 전문의가 한데 모여 환자의 치료 계획에 대한 왓슨의 의견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치료를 진행할지 결정한다.
이런 방식은 타 병원의 치료 과정과 다르다. 일반 병원은 담당의가 환자의 치료 방법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필요할 때 타 분야의 전문의에게 조언을 얻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를 한다. 다학제 진료 방식을 도입해 시도하는 병원도 있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이견이 발생할 경우 ‘최선’의 치료 방법이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 간 서열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치료 방법이 결정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왓슨 치료에 참여하고 있는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영생 교수는 “왓슨은 원활한 다학제 진료를 위한 훌륭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왓슨이 우선순위에 따라 치료 방법을 제시하면 의료진은 별다른 갈등 없이 그 방법을 검토하면 되죠. 왓슨 진료시간은 환자당 10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왓슨의 의견에 대응하기 위해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사전 검토를 더 충분히 해야 합니다. 일종의 자극제 역할도 해주는 것이죠”라고 설명한다. 왓슨이 수많은 논문을 바탕으로 부작용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순식간에 계산해 검토하기 때문에 자칫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실수를 막아주는 것도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왓슨 진료비는 아직 ‘무료’
왓슨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면 왓슨이 근무 중인 병원으로 찾아가면 된다. 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도 가능하다. ‘명의’를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기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길병원은 왓슨에게 치료받고 싶은 환자가 늘면 왓슨의 진료시간도 늘릴 계획이다. 왓슨을 통해 치료 계획을 점검하고 원래 치료받던 병원으로 돌아가도 된다. 병원의 수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중증 환자가 병원을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은 의사들이 권하지 않지만, 환자가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환자들이 궁금해할 왓슨의 진료 비용은 얼마나 될까? 유명 의사들처럼 특진비라도 받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 진료라서 아직 진료비를 청구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병원은 기존의 암 치료 비용 외에 왓슨의 특별 진료비를 받고 있지는 않다.
이후 진료비 청구의 근거가 마련되어 비용이 발생해도 왓슨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유효하다. 가장 먼저 왓슨을 도입했던 미국의 경우 그 효과를 ‘의료 민주화’라고 표현한다. 일부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고가 의료 서비스를 일반인들도 받게 됐다는 의미다.
길병원 인공지능기반 정밀의료추진단 이언 단장은 “왓슨 암센터를 이용하면 진단을 위한 검사 남용 예방, 진단의 오류 최소화, 최적의 처방, 진료비용 부담 감소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왓슨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암 진료 문턱을 과감히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망 밝지만 보완도 필요
앞으로 왓슨의 진료가 암 치료의 표준이 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왓슨도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길병원 김영생 교수는 “아직 도입 초기이고 외국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인 만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왓슨이 한국인 환자의 특징이나 생활환경, 소득수준, 국내 건강보험제도까지 고려해주진 않으니까요. 고쳐나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사인 IBM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고, 병원 내에서도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왓슨 진료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를 역임한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 최윤섭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왓슨이 의료계 전체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는 더 증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왓슨의 도입을 통한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 중에 아직까지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왓슨을 포함한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분야로까지 확대 적용된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영향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변화는 불가피해보입니다.”
집값이 오를까? 내릴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전문가들이 주택시장을 전망할 때는 어떤 재료와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일까? 주택시장은 주택 공급 물량, 금리, 산업경기, 부동산 정책에 따라 변한다. 이 네 가지는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다. 여기에 수요자의 심리까지 더해져 주택시장의 모습과 흐름이 완성된다.
주택 수요와 공급 물량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주택 수요는 실질소득과 관련된 구매력, 재개발·재건축사업 추진에 따른 이주수요, 전세에서 매매로의 전환수요 등이 해당된다. 주택 공급 물량은 건설인허가 실적, 신규 택지 공급, 지역개발재료 등에 따른 지역별 가격변동 가능성, 미분양 물량, 입주예정 물량 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주택 수요와 공급 물량의 변화와 추이는, 수요의 증가가 있으면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의 증가가 있으면 가격이 하락하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부동산시장을 예측하는 주요한 기준이다.
정부의 주택종합계획상 연간 적정 공급 물량 규모는 1980년대 말에는 약 50만 가구였고, 2000년대 이후는 약 40만 가구다. 20년 사이에 10만 가구가 줄었듯이 연간 적정 공급 물량은 대체로 줄어드는 추세다. 참고로 2017년 입주예정 물량은 65만 가구이고, 2018년에는 약 70만 가구로 보고 있다. 적정 공급 물량 기준보다 물량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 공급 과부족 여부는 지역별 수요자의 선호도 특성과 미분양 물량 누적 추이, 재건축으로 인한 멸실주택의 수 등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다.
금리가 오르면 주택시장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까?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시장은 그만큼 침체된다. 금리가 오르는 만큼 부동산 임대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주택 구매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상승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금리 상승은 곧 국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택시장의 경우, 주택 매입가구 중 60% 이상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있다. 통상 기준금리 0.5∼1%P 올라가면 주택 가격은 0.6% 하락 요인이 발생한다. 시중 은행금리가 3%P 오르면 대출받은 가계 28%가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부담이 생긴다. 또한 임대수익을 위한 투자도 위축된다. 이처럼 금리 변화는 부동산시장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세금과 금융’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세제와 금융이다. 주택담보대출과 가계부채와 관련된 LTV(Loan To Value ratio)와 DTI(Debt To Income ratio) 규제, 전매제한 등 투기수요억제 정책, 대출 규제심사 강화, 공공임대주택공급 정책 등을 포함한다. 세금은 제도 변경과 시행에 시일이 걸리지만 금융 부문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정책적 처방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주택 공급 물량 조절도 일부 정부 정책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택지개발의 한계, 개발기간 등을 고려할 때 주택 공급은 단기처방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부동산 건설경기와 산업경기는 상호 영향을 준다. 정부는 부동산 건설경기를 통해 산업경기 침체를 살리는 역할까지 감안한 안정적인 주택시장 유지, 국민복지를 위한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시장을 읽는 정확한 눈 필요
주택시장은 산업경기의 흐름에 의해 분위기가 잡히고 정부 정책으로 다듬고 조절해가는 양상이다. 정부가 빠르게 조치할 수 있는 것은 금융 부문이고 다음이 세금과 공급 물량 조절이다. 입지가 좋은 택지 공급과 재정 확보 및 배분 문제, 경기침체에 따른 구매력 감소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정부 정책은 많은 고민과 숙제로 남는다. 또한 주택시장은 소득별 지역별로도 온도 차이가 크기에 이에 따른 세밀한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이 다시 정부의 여러 정책으로 나타난다. 산업경기는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상승률, 유가변동 등 해외 경제환경, 실업률 등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산업경기의 흐름과 부동산시장의 흐름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시장은 산업경기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과거에는 부동산시장을 산업경기의 뒤를 따르는 후행 시장으로 보았으나 지금은 거의 같이 움직이는 시장으로 이해한다. 현재의 부동산시장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경제 그 자체다. 경제가 죽으면 앞으로의 부동산시장도 활력을 잃을 확률이 높다.
한편 1인 가족의 증가와 핵가족화, 경기침체는 실속형 주택을 선호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용성이 높은 소형 고급형 주택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경제는 어려워도 주택에 대한 수요자의 눈높이는 더 올라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 생각해볼 요인이 교통 여건이다. 최근 수요자들은 환경보다는 교통이 좋은 주택을 선호한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환경 여건을 중시하고 불황일 때는 생활이 불편하지 않고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는 교통에 대한 중요도가 더 높아진다. 도심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다.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부동산시장이 활황일 때는 환경 여건이 중시될 것이다. 환경 여건에 해당하는 것들은 용적률, 자연환경, 조망, 소음, 프라이버시 등이다. 경제형편이 좋아지고 여유가 생기면 자연적으로 환경이 주요 선택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부동산시장을 읽는 정확한 눈이 필요하며 각자에게 맞는 맞춤식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 과거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부동산도 종합진단해봐야 한다.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 제대로 진단해 과감하게 구조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도 강한 것이 아름다운 시대다.
주택수요와 구매력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해설과 답 내 소득으로 내 집 마련이 쉬운지 어려운지를 알 수 있는 것을 주택구매력지수라고 하는데 국가 간 주택 가격 비교가 가능한 PIR(Price to Income Ratio)과 주택구입능력을 판단하는 HAI(House Affordability Index)가 있다. PIR은 연평균소득을 반영한 특정 지역 또는 국가 평균 수준의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이는 가구소득 수준을 반영해 주택 가격의 적정성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지수다. 예컨대 PIR이 10이라는 것은 10년 동안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의 경우 2016년 PIR은 그동안의 최고치인 9.0을 기록했다. HAI는 소득이 중간 정도인 가구가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아 중간 가격 정도의 주택을 구입한다고 가정할 때, 현재 소득으로 대출원리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수다. HAI가 100보다 크면 중간 정도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간 가격 정도 주택을 무리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HAI가 상승하면 주택구매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의 경우 2016년 HAI는 60.2로 조사됐다. 그만큼 서울에서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얘기다.
LTV와 DTI는 무엇일까?
해설과 답 LTV는 Loan To Value ratio의 머리글자로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의미하며, DTI는 Debt To Income ratio의 머리글자로 ‘총부채상환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LTV가 70%라면 시가 5억원짜리 아파트는 최대 3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반면에 DTI는 연간 총소득에서 주택담보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과 기타 부채의 연간 이자 상환액을 합한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LTV처럼 주택 가격에 비례해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얼마나 잘 갚을 수 있는지를 따져 대출 한도를 정한다는 의미다. DTI 규제가 적용되면 기본적으로 소득이 있어야 대출이 가능하고 소득이 많을수록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
과거 관심을 끌었던 아파트 공급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해설과 답 과거 정부가 88서울올림픽 이후인 1980년대 말 부동산 투기가 극심해지자 ‘아파트 200만 호 공급계획’을 수립해 시행한 적이 있다. 당시 연간 적정 공급 물량은 50만 가구였다. 그 결과 2년여의 공사기간 이후 입주가 시작되면서 주택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련 인력과 자재 부족으로 일부에서는 바닷모래를 사용해 공사를 감행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거친 바다 마을 출신의 사내라 해도 이 우주선 같은 치료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폭풍우 속 배 위가 더 속 편하지 않았을까. 돌아가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의 소음은 조용했지만 시끄러웠다. 임재성(林在聲·56)씨는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가 큰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암(癌)이라는 큰 병을 말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보통 암이라고 하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선고에 당황하게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임재성씨는 그에 반해 억울한 구석이 많은 경우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던 그는 교직에 있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평탄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업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됐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주변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도 1남 1녀다. 마치 동사무소 입구에 꽂혀 있는 홍보물 표지 사진 속 가족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반짝이는 가족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년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래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실제로 간염 환자가 겪는다는 식욕부진이나 피로감 같은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어요. B형 간염도 어머니를 통해 받은 것이니 크게 동요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정기적인 검사만 제때 받으면 되겠지 하고 평소처럼 생활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요. 그때만 하더라도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을 모실 때였죠(웃음).”
그 시절부터 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B형 간염은 까딱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검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균열은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광주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암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정기검사 때마다 만났던 의사의 태도였다.
“간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아직 B형 간염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던 그 의사에게서 느닷없이 암 진단을받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요즘 의술이 좋아져 초기 간암은 치료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위로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암 선고는 그에겐 충격이었다. 여느 암 환자처럼 그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과 분노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죽기 전에 손주는 볼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해야 하나, 고통은 어느 정도나 될까, 더 괴로워지기 전에 차라리 생을 끝내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의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검게 변해 죽어 있는 물고기들이 바닷가로 잔뜩 밀려오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렇게 암 선고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처가 쪽 친척으로부터 일산으로 올라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으니 진단이든 치료든 그곳이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곳 아니겠냐는 조언이었다. ‘약사님’ 친척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고는 국립암센터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김태현(金泰現·46) 교수를 만났다.
비장의 카드 ‘양성자치료기’
김태현 교수는 “임재성씨는 간암 환자 중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환자예요”라고 설명했다 .
“B형 간염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독 한국과 중국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에 반해 일본과 서양인들은 C형 간염 보균자가 많죠. 최근에는 간염 예방 백신의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그래도 B형 간염 보균자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이 간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이 일어났다 나았다를 반복하는데, 이러다 암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씨의 경우 간암 초기였기 때문에 경동맥 화학색전술로 치료를 했는데, 원하는 만큼 예후가 나오지 않아 간암고주파열치료술까지 시도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간 전체에 여러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는 방식이고, 간암고주파열치료술은 특정 암세포에 고주파를 쬐어 높은 마찰열을 발생시켜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임재성씨의 증세가 다발성(多發性)이라는 것이었죠. 암세포가 또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어요. 접근이 무척 어려운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성자치료였어요.”
400억원 넘는 꿈의 치료기
양성자치료기는 CT나 방사선치료기와 같은 ‘의료기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시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도 장비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 그 위로 건물이 지어졌다. 지어진 건물 안으로 장비를 넣는 것이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양성자치료 장비는 가속기 반경이 4km 정도였다. 우주의 기원을 좇는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가속기를 통해 수소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면 튕겨져 나오는 방사선을 받아 암세포에 쏘이는 방식이다.
의사들에게 이 장비가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는 일반적인 방사선치료 장비와 달리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일반 방사선 장비는 방사선을 투과할 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사선 조사각을 이리저리 돌려 쪼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양성자치료기는 정확히 암세포에만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미미하다. 암세포를 죽인 뒤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일반적인 방사선치료가 식욕부진이나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는 2007년부터 본격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에 한 대가 더 도입돼 국내에 2대가 운용 중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약 480억원이었고,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1000억원 선이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치료 시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대가 안 되는 귀한 장비다.
치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암종, 치료기간, 치료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800만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건강한 간 조직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요. 임씨와 같이 만성 간변병증이 있는 경우는 낮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때문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다행이죠.”
암 환자 더욱 위험하게 하는 건 ‘얇은 귀’
임씨가 양성자치료기를 통해 본격적인 치료를 받은 것은 2016년 2월부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들은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B형 간염 보균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B형 간염 보균자가 많은데, 그에 비해 경각심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와 함께 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어요. 바로 언론이에요. 요즘 종편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믿어선 안 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암 환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다급하니까요. 이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엉터리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암 환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모임을 갖는 등 활동을 해왔는데, 불필요하게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효과가 좋다고 암 환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식품들에 대해 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 암에 좋다는 음식 중 상당수는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되레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간암은 간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데 간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예후가 좋을 리 없죠.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음식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
임재성씨는 그래도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암이라는 장벽을 만났지만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일찍 암을 발견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덕분에 초기에 치료를 받았잖아요. 또 간암에 효과적이라는 양성자치료기를 알게 되어 혜택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기 직전에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로 뽑혀 치료비 부담도 줄였고요.”
양성자치료는 아직 모든 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암종을 대상으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워낙에 가무에 능했는데, 이제는 술과 이별을 해서 대신할 만한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드럼연주를 시작했어요. 절로 흥이 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더라고요. 보통 큰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신경 안 써주냐, 왜 이건 안 해주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병은 자신이 챙겨야 해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이 좋아지길 바라면 그게 이뤄지겠어요? 또 이런저런 주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에 따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