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일자리, 재취업과 창업만이 대안일까? 최근 ‘긱 잡’(Gig Job, 정규직 대신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는 일자리)이 늘어나면서 능력을 거래하고 판매하는 ‘재능마켓’이 구직난 속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중장년이 알아야 할 재능마켓을 소개한다.
자료 탤런트뱅크, 클래스101 제공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희망퇴직자가 늘어나면서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고(高)스펙·고학력을 갖춘 중장년들이 고용 시장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30~40년 경력과 전문성을 보유했음에도 알맞은 직장을 찾지 못해 전혀 다른 직무로 임금을 낮춰 재취업하거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중장년 일자리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지자 재능마켓을 비롯해 ‘긱 잡’을 활용한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한 사람과 해당 능력을 보유한 개인을 징검다리처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2025년까지 긱 잡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 프리랜서 시장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통합 금융 솔루션 기업 페이오니아 코리아가 지난해 발표한 ‘2020 글로벌 프리랜서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프리랜서 노동 인구의 70%가량이 18~34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55~64세는 3%, 65세 이상은 1%에 불과했다. 실제로 ‘크몽’, ‘숨고’ 등 재능 매칭 플랫폼 이용자도 대부분 젊은 세대다. 반면 수입은 55세 이상이 젊은 세대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특히 55~64세 프리랜서의 평균 시급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36달러로, 전 세계 프리랜서 평균 시급보다 15달러 많았다.
경력이나 스펙에 따른 임금 체계가 프리랜서 시장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재능마켓은 수십 년간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의 장이다. 나이가 들면서 1일 8시간 소위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이들에게도 솔깃한 대안이다. 기업에 소속되어 임금을 받는 근로 형태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다면 트렌드에 편승해 기회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 시니어 경력, 중소기업이 산다 ‘탤런트뱅크’
최근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을 겨냥한 인재 매칭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평생교육 전문기업 휴넷의 ‘탤런트뱅크’가 대표적이다. 탤런트뱅크는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시니어 전문가’를 기업의 요구 사항에 맞게 매칭하고 필요한 기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신상품 출시를 위해 해당 분야에 수십 년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일정 기간만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전문가는 전문 분야에 맞는 일자리와 경력에 따른 높은 임금을 얻고, 기업은 특정 기간만 업무를 맡겨 채용 및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3000명의 시니어 전문가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두 중소기업 임원, 대기업 팀장 이상 등 한 분야에서 15년 이상 경력을 쌓은 고스펙 인력이다. 직업은 프리랜서가 가장 많지만, 기업에 재직 중이거나 사업을 운영하며 전문가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일회성 단기 자문부터 월 단위의 중·단기 프로젝트, 아웃소싱 등의 형태로 업무를 수행한다. 가장 많이 의뢰한 분야는 △마케팅 △경영전략·신사업 △영업·구매·유통 △IT △엔지니어링 △재무·투자 △인사·총무 순이다.
시니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원자가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후 기업과 전문가를 중개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가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지원자의 전문성을 검증하고, 1:1 인터뷰를 거쳐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해당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능력과 인품을 겸비했는지도 확인한다.
탤런트뱅크에 따르면 현재까지 8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성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업의 재의뢰율이 60%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회계·재무·관리 부문에서 6개월간 자문을 수행하면서 획기적인 매출을 달성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임원으로 채용된 사례도 있다. 단기 프로젝트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개인과 기업 모두 윈윈(Win-win)하는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공장환 탤런트뱅크 프로젝트 매니저는 “플랫폼 노동자라고 하면 단순노무직만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도 긱 경제를 활용할 수 있다”며 “고용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난 만큼 중장년층도 새로운 고용 형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탤런트뱅크의 시니어 전문가, 이렇게 일했다!
단기 자문 실버 사업을 준비 중인 금융 대기업 A사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전략 등 제반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자문이 필요했다. 이에 신사업 경험이 풍부한 S대 MBA 출신 전문가는 단기 자문을 통해 사업 계획, 비용, 수익 최적화 모델 등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전반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다.
진행 방법 보고서+1시간 설명회 비용 50만 원
프로젝트 전화 응대 과다 및 데이터 부재 등 업무 비효율이 발생한 콜센터 B사는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IT 보안 업체 총괄 및 시스템 개발 등의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를 매칭했다. 전문가는 콜센터 데이터 분석, 운영 방안 제시 등을 통해 기업 내 경영 이슈를 해결했다.
기간 2개월 근무 형태 30회 방문 컨설팅 비용 총 900만 원
아웃소싱 C사 경영관리팀은 팀 내 분야별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등 조직 내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 30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경영관리를 담당한 전문가를 아웃소싱 형태로 고용했다. 전문가는 재무·인사 등 분야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총망라하고, 직장 내 교육을 병행해 전문지식을 전수했다.
진행 방법 5개월 풀타임 비용 월 500만 원
◇ 중장년 크리에이터 도전, ‘클래스101’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 비법 등을 기업이 아닌 불특정 대상에게 전수하는 방법도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서다. 대표적으로 MZ세대에게 각광받고 있는 ‘클래스101’은 기존 온라인 교육 시장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통해 크리에이터와 수강생을 연결하고 있다. 음악·미술·운동 등 취미 관련 강의부터 부업·재테크 노하우, 업무 능력 향상 등 일 잘하는 방법, 인문·사회·예술을 비롯한 교양 강의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2021년 2월 기준 1200개가 넘는 클래스가 개설되었으며, 누적 크리에이터 수는 7만5000명이 넘는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N잡러’(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회의 땅 같은 곳이다. 수강생은 평소 관심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해 부업이나 창업을 도모할 수 있고, 크리에이터는 한 분야에서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부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를 통해 얻는 수익은 꽤 쏠쏠하다. 클래스101에 따르면 강의 개설 첫 달 크리에이터의 평균 수익은 약 650만 원이며, 그중 가장 인기 많은 크리에이터 3인의 월 평균 수익은 무려 1억6000만 원에 달한다.
온라인을 활용한 플랫폼인 만큼 20~30대 크리에이터가 대다수지만, 중장년 크리에이터도 분야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6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한 재테크 카페 운영자 송창희 대표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직접 투자 공부를 하며 자산을 불렸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부동산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년간 방송작가로 일한 이윤영 작가는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갱 와인 디렉터, 오중석 사진가, 이양지 요리연구가 등 각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이들이 크리에이터로 활약 중이다.
강의는 연령과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만들 수 있다. 강의 개설은 두 달 정도 걸린다. 먼저 제작하려는 강의가 얼마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일주일간 수요 조사를 진행해 반응을 살핀다. 이후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일주일 동안 실제 판매 추이를 분석해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 계약 기간에 꾸준히 수익을 정산할 수 있을지 파악하고,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강의를 개설하는 것이다. 해당 과정을 거쳤음에도 수익을 얻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은 클래스101 측에서 지불한다.
은퇴 후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이라면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강의를 수강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며느리가 만든 브이로그 영상을 보며 ‘작은 영화’ 같다고 느낀 60대 이나경 씨는 클래스101을 통해 영상 편집 강의를 수강하고 시니어 유튜버로 새 도전을 시작했다.
재능이 돈이 되는 시대, 수십 년의 관록으로 빚어낸 중장년의 전문성과 지식은 긱 잡 시장에서 탐날 수밖에 없는 상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그 규모와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은퇴 후에도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재능의 값어치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PLUS+] MZ세대 인기 프리랜서 마켓 ‘크몽’
2012년 문을 연 국내 최초 재능 프리랜서 마켓 ‘크몽’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MZ세대의 놀이터다. 전문가로 등록하면 디자인부터 IT·프로그래밍, 영상·사진·음향, 마케팅, 통·번역, 문서·글쓰기 등 무형의 재능을 판매할 수 있다. 또 사주와 궁합까지 사고팔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전자책’ 출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책은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를 글로 작성한 뒤 PDF 파일로 공개하는 것으로, 한 번의 출간으로 소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은 대략 1000원부터 3만 원까지 다양하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안구건조 이겨내는 노하우’, ‘하루 생산성 극대화하는 방법’ 등 자신만의 비법을 담은 이야기도 전자책으로 만들 수 있으니,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도전해봐도 좋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속에서 즐겨볼 수 있는 여행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일상 속 여행. 홀로이 걸어서 다녀오기, 또는 자전거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이 대세인 요즘이다. 마이크로 투어라는 산뜻한 형태로 가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나서는 기분도 가볍다.
이제 3월이다. 3.1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함께 떠올려 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늘 그래 왔다. 언제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거리가 멀다고 핑계 댔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도 있었고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이 있다 해서 밀려나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에 들른 적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그들의 자세가 신뢰를 갖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현재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역사 왜곡에 안간힘을 다하는 일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렇게 역사를 잊지 않고 개방하여 널리 알리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까지 가보았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눈앞의 것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정신을 가끔씩이라도 기려볼 일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의 목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만 달리면 김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서 가까이서 쉽게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많이 다르다. 그뿐 아니다. 독립만세를 불렀던 천안의 아우내 장터와 같은 김포 오라니 장터에 만세운동의 현장이 있다.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 양촌리의 오라니 장터와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시절 탓인지 독립운동기념관은 한적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아주는 멋진 영상의 선명한 태극기가 반갑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와 전시실을 묵묵히 오가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만세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캐릭터들이 첨단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준다.
독립운동기념관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 사료열람실, 영상실, 로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을 재조명해 볼 기회다. 2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북카페 등은 코로나의 현실로 지금은 열리지 않지만 1층의 전시실만으로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포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과 항일의병활동, 그 배경과 특징, 발발 과정을 음성이 포함된 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포는 독립운동가와 항일의병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김포 전 지역에서 주민들의 3.1 만세운동이 전개될 만큼 큰 규모로 투쟁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는데 3.1 독립운동 참여 인원이 2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댔던 순박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 모든 역사의 흔적들이 성실히 모아졌다. 당시 일본군들의 야만적이고도 처참한 만행을 볼 수 있고 독립군들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전해진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멋지게 조성해 놓은 기념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고 지냈다니 이런 무심함이 어디 이뿐일까만.
독립의 함성이 느껴지는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특히 1910년 안중근 의사가 32세 나이로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 앞에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죽음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글이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서신이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런 기념관 관람만으로도 잊고 지냈던 시간을 되짚어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저절로 호국과 애국의 DNA를 되살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기획전시실은 매 주기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1 만세운동의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이다. 독립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준 태극기의 다양함이 펼쳐진다.
‘역사가 담긴 태극기’ 전의 기획전시실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태극문양의 의미, 독립운동의 간절함을 담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태극기 목판 등 저마다의 의미가 담긴 태극기들, 역사와 용도가 다양한 태극기의 면면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흥미롭다. 한 점 한 점 아프고 묵직한 의미를 담은 태극기들과의 조우가 독립을 향한 당시 우리 국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절절히 전한다.
기념관 주변 언덕 위로 조성된 공원이 다시 찾은 평화로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3.1 운동 기념비와 위령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항거했던 이들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기념관은 소박하지만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하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오라니 장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가 열린다.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3.1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그렇게 3.1 운동 100년의 기억을 되살린다. 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을 모두 함께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포의 독립운동기념관과 주변으로는 산성이나 돈대, 다양한 갤러리와 문화시설이 포진해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소풍삼아 찾아볼만 하다. 조용한 하루나들이 코스로, 역사여행으로 의미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가볍게 나서보아도 좋을 듯. 한나절이면 된다.
주변 볼거리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 & 김포 인삼쌀맥주 갤러리
백제 고대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추측하는 김포 모담산 운양동 자락에 위치한 김포 아트빌리지, 그곳에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아트센터가 있다. 쾌적하고 모던한 현대식 예술공간에서 감상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고퀄리티다. 훌쩍 떠나온 하루 외출에서 품격 있는 시간 획득이다.
아트센터 앞의 너른 야외 공간과 전통놀이체험마당, 주변의 전통한옥 숙박시설, 맛집 등 누구나 언제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요금 무료, 주차무료.
품질 좋은 쌀과 인삼의 특산지인 김포, 김포의 6년근 인삼과 김포쌀로 빚은 인삼쌀맥주와 인삼 전시장도 둘러볼만하다.
연초부터 치매에 관심이 생겼다. 치매 관련 서적이 시중에 많이 있지만, 어떤 책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힘들게 골라서 읽었더니 내용이 너무 어렵다. 치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2013년부터 2년 연속 치매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치매 전문병원으로 알려진 용인 효자병원에서 치매 전문의로 활동 중인 곽용태(55) 교수를 만나 치매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어머님으로 인해 관련 서적들을 읽어봤지만, 너무 재미없고 이해가 안 가서 적용이 힘들었습니다. 이 책은 마치 몇 주간 약을 먹어도 차도 없는 감기를 한 방에 해결하는 약 같아요.”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저자의 대표작 소개란 아래에 적힌 댓글이다. 앓던 감기를 낫게 해준 것 같았다는 그 한 방이 궁금했다. 곽 교수가 이번 책에서 준비한 한 방은 바로 ‘논문’이었다. 어려운 치매 논문을 저자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서 치매를 쉽게 소개하고 있다.
“책을 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논문’이었어요. 전문가들은 유용하게 읽지만, 정작 치매 환자 보호자들과 같은 일반인은 이 논문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요. 이 책을 통해 일반인과 논문 사이에 있는 거리를 좁히고 싶었어요. 어려운 논문을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책이나 영화, 그리고 직접 겪은 환자들 얘기를 가미했고요.”
취지는 좋지만, 전문가들이 주로 보는 논문이 일반인에게 어렵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시중에 나온 여러 가지 책과 비교해서 논문이 가진 장점은 뭘까?
“논문은 풍향계예요. 최신 의학의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이나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요. 논문의 새로운 메커니즘은 다른 분야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봐요. 분야의 경계가 자꾸 허물어져가는 시대인 만큼 이런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읽는 방법만 조금 안다면 재미있는 지적 놀이가 될 수 있어요.”
치매 관련 정보 플랫폼이 필요
그렇다면 치매에 막 관심이 생겨서 이제부터 논문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은 걸까? 곽 교수는 차근차근 시작하라고 일러주었다.
“차근차근 관련 이슈를 다룬 뉴스부터 읽으면서 감을 잡는 것이 좋아요. 문제를 풀 때 잘 모르면 해설서를 많이 보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일단은 관련 정보를 잘 다루고 있는 뉴스를 찾아보면서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한 뒤에 논문을 읽는 방법을 추천해요. 해설 없이 직접 논문을 읽는 단계가 오면 기사를 읽는 것보다 훨씬 읽는 맛이 있을 거예요.”
식도락 여행을 간 곳에 맛집이 아무리 즐비해도, 어느 곳이 진짜 맛집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낭패가 될 수 있다. 수많은 논문 중에 어떤 논문을 읽으면 좋은 걸까?
“좋은 논문은 왜곡된 정보가 없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요. 특히 미슐랭 별처럼 높은 점수를 받거나 유명 논문지에 실린 논문은 인정할 수 있어요. 그만큼 공신력이 있죠. 이와 별개로 유명하지 않은 논문지에 실렸지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논문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점을 알기가 어렵죠. 그래서 유용한 논문을 선별해서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치매와 관련해서도 이처럼 알차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하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치매보다 사람에 집중
이 책은 ‘비틀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하얀거탑’ 등 영화와 음악, 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풍부한 예시로 활용하며 치매 논문을 쉽게 설명했다. 여러 분야를 골고루 섭렵하고 있는 그는 환자를 대할 때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열심히 설명해도 환자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때는 제가 쓴 칼럼을 환자에게 건네요. 예전에 환시에 시달리던 분에게, 비슷한 증상을 앓았던 로빈 윌리엄스에 관해 쓴 칼럼을 보여줬는데, 칼럼 덕분에 쉽게 이해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는 논문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적용하는 것도 좋지만,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환자의 삶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환자는 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하며 의사로서의 소신을 밝혔다.
“다들 치매 환자들에게 운동 더 열심히 하고, 힘내라고 말해요. 개인의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 치매라는 병에만 집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런 조언과 권유는 안 하는 것이 그분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열흘을 더 살아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면서 남은 생을 고통스럽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치매’가 아니라 ‘사람’에 집중해요. 치매 환자의 대부분은 삶의 마지막을 앞둔 노인분들이에요. 그분들이 얼마 남지 않는 삶을 행복하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끝으로 신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책 출간 계획을 살짝 물어봤다. 그는 집필할 책에 관한 힌트를 넌지시 주었다. 오랫동안 치매 전문의로서 현장에서 치매 환자를 대하면서 보고 느꼈던 바를 책으로 풀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병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면 치매 환자에게 있는 두 가지 욕망이 보여요. 바로 죽음에 대한 불안과 성적 욕망이에요. 어제는 죽을까봐 두려워하다가 오늘은 여성분들 앞에서 바지를 막 내려요. 인지능력은 떨어지는데, 본능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걸 숨기지 않아서 문제죠. 어떤 방식으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반된 마음에 관한 얘기를 다뤄보고 싶어요.”
오는 14일까지 직계가족을 포함한 5인 이상 사적모임을 금지하는 방역대책이 유지되면서 이번 설 연휴는 삼삼오오 모이지 않고, 전화로 안부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면 설명절, 연로한 부모님을 직접 챙기지 못해 걱정스럽다면 세 가지 간단한 질문으로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보자.
“잘 안 들리세요?” 질문을 반복할 땐 난청 의심해보기
청각이 저하 또는 상실된 상태인 난청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화에 의한 노인성 난청·직업성 난청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귀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환경으로 돌발성·소음성 난청 환자들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여승근 교수는 “전화 통화 간 목소리가 커지거나 반복해 되묻는 등의 증상이 관찰된다면, 노인성 난청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며 “노화로 인해 청각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여기기보다는 삶의 질과도 밀접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병원 방문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노인성 난청의 원인은 다양하다. 노화 이외에도 혈관계의 변화, 유전인자, 스트레스, 소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유전적 인자와 소음이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치료는 보청기다. 난청이라면 보청기를 빨리 착용할수록 난청의 악화를 늦출 수 있고, 일상생활에 활력과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여승근 교수는 “난청을 방치하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대화를 꺼리게 되고, 이는 우울증이나 치매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녀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며 “보청기 구입 시에는 반드시 환자의 청력 정도, 나이, 귀 질환 유무, 외이도 상태, 일상생활에서의 불편감 정도 등을 고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착용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즘 화장실은 몇 번 가세요?” 전립선 질환 증상 확인하기
전립선 질환은 50~60대 이상의 중장년 남성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질환이다. 전립선암, 전립선 비대증이 가장 대표적인데, 평소와 달리 빈뇨, 지연뇨 등 배뇨장애를 겪고 있다면 반드시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전립선암과 비대증은 증상이 비슷해 정확한 검진은 필수다.
경희대병원 비뇨의학과 전승현 교수는 “스트레스, 피로 등 자의적인 판단으로 전립선 질환을 방치하면 방광, 신장기능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전립선암의 경우,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뇨에 불편감이 느껴진다면 참지 말고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60~70대에 나타났다면, 최근에는 젊은 층 발병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50세 이상이라면 1년에 한 번 정도 전립선특이항원검사(PSA) 검사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전립선암은 폐암, 위암 등 다른 암과 비교해 진행속도가 느려 비교적 온순한 암으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조기발견만 한다면 생존율이 높고 완치까지 가능하다. 조기 검진만큼 중요한 것은 생활 속 예방이다. 전립선 질환은 유전 못지않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동물성 지방과 육류의 과다섭취를 피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과 운동 등을 통해 비만과 당뇨 등을 피해야 한다.
”그때 기억하세요?“ 옛날이야기로 치매 진단하기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치매 발병 원인 중 70%는 알츠하이머병이다. 초기에는 사소한 기억력 감퇴로 시작되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력, 이해력, 계산능력 등 인지기능 문제로 이어진다.
경희대병원 신경과 박기정 교수는 ”뇌세포 손상이 비교적 적은 초기에는 건망증과 증상이 유사해 주변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특정 힌트를 제시해 기억해내는지 여부를 확인해 건망증과 치매를 구별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망증은 뇌에 각종 정보가 입력된 상태이기 때문에 단서가 주어지면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 반면, 치매는 정보 입력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론, 인지 저하 상태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기억성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약 10~15%가 매년 알츠하이머병 치매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기정 교수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치매는 완치가 어려운 질환으로 약물·비약물 요법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라며 “알츠하이머병의 명확한 발병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으나 우울증, 혈관 위험인자, 유전적 요인 등이 위험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만큼 평소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조절과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전 예방에 힘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하늘길이 닫혔고, 각자 꿈꾼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은 새로운 여행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방구석에서 세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매일 지나는 동네에서 숨겨진 명소를 찾는 재미를 발견했다. ‘이런 것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것들이 관광이 되고, 산업으로 성장했다. 여행이 달라졌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정보 기업 부킹홀딩스가 최근 전 세계 28개국 2만여 명의 여행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021년부터는 총 9가지의 여행 방식이 대중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온라인 여행 ▲기술을 접목한 여행 ▲근거리 여행 ▲안전한 여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에 발 도장을 찍는 대신 익숙한 장소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즐기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현실감 최강’ 대세는 몰입형 콘텐츠
코로나19 이후 주목받고 있는 여행 방식은 ‘랜선 여행’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IT 기기를 통해 즐기는 여행으로,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새롭게 떠오른 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의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콘텐츠다. 크리에이터가 특정 주제를 설정하고 이에 맞게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기하는 롤플레잉 ASMR 영상은 유튜브에서 꾸준히 관심을 끄는 콘텐츠 중 하나다. 이어폰을 착용한 뒤 눈을 감는 순간, 원하는 곳 어디로든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 ‘공항 ASMR’, ‘비행기 ASMR’은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고 실제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승무원의 말소리부터 탑승 안내 방송, 공항 특유의 시끌벅적한 느낌까지 완벽하게 재현한다.
오랜 ‘집콕’으로 유튜브가 식상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진짜 여행지를 구경하고 싶다면 각국 관광청 홈페이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두바이 관광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의 관광지를 360도 영상이나 고화질 사진으로 홍보하는 몰입형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호주 관광청의 ‘8D로 체험하는 호주’ 영상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에스페란스 해변에서 돌고래가 뛰노는 소리,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페어리펭귄이 이동하는 소리, 킴벌리의 호라이존탈 폭포 소리 등 현장에서나 들을 법한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소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세계의 문화 예술을 실감나게 접하는 방법도 있다. ‘구글 아트 앤 컬처’는 구글과 제휴한 주요 박물관 2000여 곳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한다. 가상현실(VR)과 거리 뷰 기능을 통해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과 도서관을 360도로 산책하듯이 둘러보고, ‘아트 카메라’ 시스템으로 작품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다. 앱을 다운받으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아트 프로젝터’ 기능을 누르면 카메라 화면 속에 3차원 예술 작품이 나타나 서 있는 곳을 박물관으로 만든다.
랜선 여행의 진화는 어디까지? 실시간 현지 투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여행 분위기를 내는 것을 넘어 이제는 집 안에서 ‘진짜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여행사와 숙박업소 등 관련 산업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대면·비접촉 여행 관련 각종 상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집에서도 패키지 관광이 부럽지 않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상품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이리얼트립은 최근 해외에 거주 중인 여행 가이드들이 실시간으로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랜선 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실제 여행사 프로그램처럼 이용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생동감 넘치는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 소도시 세고비아의 골목을 둘러보는 여행부터 홍콩 야경 투어, 로마 시내 워킹 투어 등 콘셉트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투어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 투어에 참가한 이용자들은 “실제로 가이드와 함께 걷는 기분이다”, “집에서 ‘치맥’하며 바르셀로나를 둘러보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등 만족스러운 후기를 남겼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 체험’을 선보였다. 각국의 호스트들이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이용자들에게 각국의 문화·예술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승려와 함께하는 명상, 현직 멕시코 셰프의 타코 수업, 고고학자와 이탈리아 와인 역사 배우기 등 원하는 체험을 선택하면 현지인과 생생하게 교류할 수 있다. 가격은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대개 2~4만 원대다.
한편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항공(JAL)은 최근 대면 형태로 실시하던 비행기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전환하고, 인쇄업체 톳판인쇄사는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일본 유명 문화재를 온라인으로 견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최대 여행사 JTB도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투어 서비스를 도입했다.
나만 아는 여행지, 숨은 명소를 찾아서!
콧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구석 여행에 흥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파가 바글바글한 ‘핫플레이스’를 갈 수도 없는 노릇. 이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숨은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트렌드가 생겨났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국내여행 의향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기존 유명 관광지보다 숨겨진 여행지나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으로 여행할 것’이라는 응답이 1순위로 높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지난해 ‘언택트 관광지 100선’을 내놓았다.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 ▲개별 여행 및 가족 단위 테마 관광지 ▲야외 관광지 ▲자체 입장객수를 제한하는 관광지 등 거리두기 기준을 충족하는 여행지를 모아놓은 목록이다. 여행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곳의 여행지를 천천히 살펴보면, 생소한 관광 명소가 눈에 띄면서 우리나라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차박’도 새롭게 부상한 언택트 여행 문화다. 차에서 관광과 숙박을 모두 해결하는 차박은 거리두기에 최적화된 여행이다. 차로만 방문이 가능한 이색 명소를 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카페 ‘차박캠핑클럽’ 운영자 ‘둥이아빠’의 추천에 따르면, 차박의 대표 명소는 충북 충주 목계솔밭이다. 광활한 대지에 화장실과 개수대 등 편의시설을 모두 갖춰 그야말로 차박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충주 수주팔봉 캠핑장과 삼탄유원지, 양평 광탄유원지, 여주 신륵사 등이 차박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숨은 여행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다. 뉴노멀 시대의 또 다른 트렌드는 동네 걷기 여행. 동네 걷기 여행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콘텐츠는 카카오TV의 웹 예능 ‘밤을 걷는 밤’이다. 밤을 걷는 밤은 가수 유희열이 서울의 밤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익숙한 거리에서도 색다른 매력을 찾아내 보는 묘미가 있다. 때로는 정해진 방향 없이 발길 닿는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우연히 멋진 풍경을 만나면 멈춰서 감상도 한다. 부담 없이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는 듯한 편안한 콘셉트 때문인지 2020년 12월 기준 누적 조회수가 560만 회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언제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을까. 아직은 미지수다. 이렇게 애쓰며(?) 노는 게 마스크 없이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여행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배낭을 챙기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한번 양도소득세로 출렁이고 있다. 올 6월부터 양도세를 중과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양도세 완화 이야기가 나왔다.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을 쉽게 팔 수 있는 방법으로 양도세 완화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당정은 6월부터 양도소득세 중과는 차질 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재차 못을 박았다.
부동산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은 국가의 거대한 경제 정책에 반응하면서 그 모습이 변화한다. 현재 부동산 가격 폭등은 공급 부족과 유동성 과잉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공급이 늘거나 유동성이 줄지 않는다면 부동산 가격 하락은 쉽지 않다. 현재 과잉 유동성이 주식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주식으로 발생한 수익이 곧 다시 부동산을 자극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금 정책은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개입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유동성과 공급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하며, 대증요법처럼 바로 단기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부동산 세금 정책은 크게 감세 정책과 과세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으로 시장에 배타적이고 개입 또는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정책이 3~4년이 걸린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2~3개월이 멀다 하고 끊임없는 부동산 대책을 날짜 넣은 ‘조치’ 형식으로 양산했다. 과연 이러한 문재인 정부에서 양도소득세를 완화할 수 있을까.
양도소득세 완화는 홍남기 부총리가 ‘다주택자 매물 유도’를 언급하면서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보궐선거나 향후 대선의 승리 전략으로 양도소득세 완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양도소득세 완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양도소득세 완화는 그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가진 자를 더 대우하는 정책이다. 이 정부가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고 그 폭등을 현금화할 수 있는 편리한 길을 자기 손으로 열어준다면, 문재인 정부를 믿는 지지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에게 부동산 폭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성 지지자들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열린우리당의 붕괴, 호남지지 철회 등 강성 지지층 이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경선에서도 강성 지지층의 의사가 공천 결과를 좌우했다.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사태 등에 대한 대처도 그 연장선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양도소득세를 완화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6월 양도소득세를 중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난해 아파트 증여가 9만1866건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증여세율은 누진세로 과세표준 1억 원 이하 10%, 1억~5억 원 구간 20%, 5억~10억 원 구간 30%, 10억~30억 원 40%, 30억 원 초과 50%다. 그리고 자녀에게 하는 증여는 5000만 원, 배우자에게 하는 증여는 6억 원까지 공제된다. 현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약 9억 원이므로, 2억 원 정도의 증여세가 발생한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전체 가격이 아닌 차익에 대한 과세이므로, 부동산의 시가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부동산을 매각하고 양도소득세를 차감해 보유한 금원을 추후 증여할 경우, 바로 부동산을 증여한 것보다 세금 관련해서 훨씬 불리할 것이 자명하다. 추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면, 증여가 아닌 매각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 확대를 통해 보유도 힘들고, 양도세 강화를 통해 양도도 힘들게 하는 이중의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부동산시장의 공급 확대와 유동성 감소가 이루어지리라는 전망도 전혀 없다.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이 변하지 않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이제 임기 말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효과’보다 ‘의도’만 남아 있다. 부동산 정책의 자명한 실패 앞에서 ‘착한’ 정책, ‘선한’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개선할 명확한 변화가 없는 한, ‘증여 권하는 나라’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일자리 창출 전망은 긍정적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당사자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 조직, 기업 등이 함께 고민하고 발전을 도모할 때 서로 힘을 얻고 성공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다. ‘50+일자리 특별포럼’의 세 번째 세션 ‘대전환 시대, 50+세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50+와 기업의 상생 대응 전략을 알아봤다.
【50+】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주)의 이철종 대표는 다가올 시대에 중장년 근로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겸손한 마음과 포용적 태도를 꼽았다. 특히 디지털·그린 뉴딜과 함께 늘어날 사회적기업이나 스타트업기업 등 소규모 조직에서의 활동을 원하는 시니어라면 더욱 필요한 요소라고. 아울러 이들에겐 자칫 대기업이나 큰 조직에서 성공했던 1모작의 경험이 괴리감과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소기업에게 필요한 건 중장년이 한때 성공했던 경험이 아니라, 현재의 부족한 생산력에 하나라도 보태어줄 수 있는 실무 능력이다. 또 대기업에서 상용되던 기술이 그들에겐 별로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즉 소기업이 활용하는 업무 매뉴얼을 배우고, 그 안에서 생산인력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타트업 청년 리더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순간 50+세대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으로 젊은 직원들을 존중하고 다시 신입의 자세로 적극적으로 실무를 배우고 실행함으로써 필요한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작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는 50+세대가 스타트업과 소기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래 경력 위한 경제참여형 디지털 업스킬링”
세계경제포럼(2016)에서는 디지털·그린 사회에 요구되는 역량으로 ‘복잡한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창의성’, ‘대인관계(관리)’ 등을 전망했다. 황윤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이러한 역량 가운데 복잡한 문제해결력이나 대인관계 등은 50+세대가 경험을 통해 이미 보유하고 있어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창의성이나 뉴미디어 문해력, IT 활용력 등은 다소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황 센터장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비롯한 평생교육기관과 일자리지원기관 등에서 저마다 50+세대 진로 재설계를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결국 시니어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변화는 노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특히 디지털 활용 능력이 관건이다”라며 “메신저, SNS 활용이나 교통, 지도, 은행, 행정 서비스 이용 및 제품 구매 등 생활 기반의 50+세대 디지털 활용 능력은 우수하다. 반면 정보생산 및 공유, 경제참여 기반의 디지털 활용 능력은 격차가 벌어진다. 특히 긱 플랫폼 시대에 경제 참여 및 활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 역량이 필수인 만큼, 이에 대한 자가진단과 학습이 필요하다. 즉 미래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으로 남을 것인가, 업스킬링으로 무사히 전환할 것인가는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고 말했다.
【기업】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 위해 앞장서야”
50+세대가 갖는 불확실성에 대해 기업은 어떤 입장일까? 손승우 유한킴벌리 대외협력본부장은 “개인이 불안하듯 기업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소비자가 줄거나 변화해 정확한 미래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유한킴벌리는 2010년부터 고령화 속도에 맞춰 시니어 비즈니스를 주요 사업으로 편입, 발전시키겠다는 계획하에 바지런히 혁신을 감행해왔다. ‘시니어가 자원이다’를 내 건 액티브 시니어 캠페인도 그 일환이다.
손 본부장은 “기대여명이 80세를 넘긴 지 오래인데, 언제까지 생산연령인구를 64세로 한정해야 할까? 이를 재정의해 우리가 더 역동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고령자, 어르신, 노인 등의 호칭은 50+세대를 경제활동을 떠나 부양이나 복지의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10년간 회사의 공유가치창출(CSV) 활동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역동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중장년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사회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경험과 지혜를 양질의 비즈니스로 연계한다면 고령사회를 극복하는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기업은 시니어 비즈니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 소기업을 지원·협력하고, 시니어의 창의적 비즈니스와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며 “시니어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인식하에 복지와 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적절한 구분과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겐 복지가 아닌 산업 차원의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는 시니어도 많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직장에서의 다양한 학습과 경험이 요구된다. 기업에서는 구성원이 은퇴 후 지역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자원봉사자로, 일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지역 커뮤니티나 NGO 활동 등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사전에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일자리 외에도 시니어 벤처기업 등이 생겨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앙코르 펠로우십, 기업과 50+, 사회가 윈윈”
황 센터장 역시 손 본부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향후 노동시장은 긱 워커, 프리랜서 등의 노동유랑민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환경 변화를 개인이 주도하기엔 어려우니 결국 회사나 제도적 차원에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독일의 유급학습휴가 및 청년을 위한 일·학습 병행제 등을 50+세대를 위해 변경,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역량 개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미국 앙코르닷오르그의 ‘앙코르 펠로우’ 프로그램은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다. 한 기업에서 퇴직을 앞둔 조직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좋은 일을 하도록 비영리단체 등에 파견하는 형태다. 사회적기업 등은 늘 사람이 부족하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데, 그런 어려움을 기업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퇴직자에게는 점프업 기회와 동시에 공익활동 경험을 선사하는 일종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기능한다. 현재 50여 기업에서 활용 중이고, 지난 평가에서 약 95% 이상의 기관이 만족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사례에 착안해 사회공헌도 하고 퇴직자도 지원하면 좋겠다”고 했다.
귀농생활이 힘들 것을 미리 충분히 알았으나 단단히 각오할 것까진 없었단다. 도시의 아파트를 벗어나는 해방감이 컸거니와, 시골에서 자라며 쌓인 경험과 정서를 밑천으로 삼은 귀농이라 날아오르듯 가뿐한 행보였다. 그리고 즐거운 귀농의 나날이 이어졌다. 살다 보니 구름인 양 물인 양 걸림 없이 한 세상 흐르기에 좋은 게 시골인 걸 알았나보다. 김영남(56, 옥천 풀잎체험농원) 씨는 이렇게 정든 시골에서 활개를 친다. 그저 매양 웃으며 산다. 웃지 않고 산다면 이 무슨 인생 낭비? 그리 여기는 것 같다.
영남 씨의 귀농은 우연한 계기로 촉발되었다. 남들처럼 뜸 들여 면밀한 계획을 세우거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귀농지를 물색하는 식의 사전 작업을 면제해준 선연(善緣)이 그를 방문했던 것이다. 대전의 한 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를 수발하다 옆 병상의 어떤 할머니까지 덩달아 수발한 게 귀농의 연줄이 될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이 있고 가만 있어도 술술 풀리는 일이 있으니 인생이란 기묘한 게임이다. 영남 씨는 할머니와의 인연을 복이라 친다. 그렇다면 이 복은 하늘이 내렸나? 영남 씨의 갸륵한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세사의 인과(因果)는 대략 오차 없이 행진하는 법이다.
“퇴원을 한 할머니께서 당신의 시골집에 놀러오라 청하시더라. 병원에서 정들어 양어머니로 삼아 섬겼던 터라 막역한 관계 형성이 됐던 거였다. 해서, 남편과 함께 놀러갔더니 마을의 느낌이 무척 좋아 거기에 아예 살고 싶어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양어머니가 빈집을 추천해줬다. 뭐를 따지고 잴 게 없었다. 살던 대전의 아파트 등 부동산을 서둘러 팔아 자금을 만들었고, 그 빈집을 사 허물고 황토 집을 나름 멋지게 지었다. 일사천리로 단숨에 귀농했던 거다. 2016년의 일이었다.”
농원 규모가 엄청나다. 이 너른 언덕배기 토지를 어떻게 확보했지?
“시부모님이 남편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전답과 임야로 이루어진 1만8000평짜리 터로 이 가운데
1만 평을 과수원으로 개간해 운영한다. 복숭아도 꽤 많이 심었지만 사과 재배에 주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농원 일대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팔짝팔짝 뛰더라. 정작 나는 풍경을 즐길 시간 여유조차 없는데.(웃음) 귀농, 이거 정말 장난 아니다.”
우연하고도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귀농이었구나.
“그런 셈이다. 계획적이었다면 남편의 직장생활부터 청산했겠지만 그러질 않았다. 시골에 내려와서도 남편은 한동안 대전으로 출퇴근을 했다. 1년 이상 직장 일을 계속하다 그만뒀거든.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옆집 주민과 마찰이 빚어져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동네에서 아예 내놓은 기인이었다. 결국은 여생을 눌러 살고자 공들여 잘 지은 집에서 2년여를 살다 현재의 이곳으로 이사를 했지.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이곳은 풍광부터 평온하다. 산자락에 안긴 집이라 호젓하고. 이런 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이사를 결심했던 때에 나온 매물이었다. 처음에 살던 집과 지척이지만 모든 여건이 더 좋았다. 기도원으로 쓰던 2층집이었다. 부지 2000평에 전답도 딸려 있어 금상첨화였다. ‘야, 여기가 낙원이구나, 이제 본격적인 귀농생활로 고고싱이다!’ 내가 그렇게 외쳤던 거다.(웃음)”
드디어 농사를 시작했나?
“농사를 해본들 보람이 있겠나? 내가 원래 농사라는 직업엔 회의적이었다. 시골 출신으로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남편은 농사에 뛰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복숭아대학을 다니는 등 농업에 관심을 가져봤지만 그건 나의 일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농사는 남편이 짓고,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았다. 뭐든 맘먹고 덤벼들면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지. 문제는 최적의 일을 찾아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식용곤충농장이 적합해 보여 산업곤충 공부를 좀 해봤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이런저런 모색을 하다 그냥 적성과 능력에 맞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
어떤 답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다육식물과 야생화를 즐기는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다육식물 전문 농원을 만들기로 했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맛있게 담그는 사람으로 알려졌으니 장류 사업을 병행해도 무난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기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래 일단은 카페를 차려 생활비를 벌기로 하고 2층 공간을 개조해 찻집을 차렸다. 내겐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었다.”
그의 카페엔 특별한 게 있다
허세와 뻥 없는 겸허함으로 내 실력에 맞춰 사는 일. 그걸 지혜라 일컫지만 지지고 볶는 세파에 흔들리다 보면 과욕과 과속을 일삼다 표류하기 십상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해내는 인생은 꽃길이다. 그러나 정작 가시밭길을 헤매다 종 치기 쉬운 게 인생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영남 씨,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자신부터 기쁘게 하는 쪽으로 일을 구상했던 것 같다. 후미진 산기슭에 웬 카페인가 싶지만 개업 1년 남짓이 지난 현재 어지간히 자리가 잡혔다. 잘 돌아간다.
농원 전체의 담백하고 조촐한 풍색과 마찬가지로 카페 역시 소박하게 꾸몄다. 조화나 그림 액자, 소쿠리, 또는 특별할 것 없는 빈티지 장식품들로 공간을 치장해 동네 사랑방처럼 따사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래서인가, 인근 읍내 주민들이 찾아들어 단골 노릇을 한다. 멀리 대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사뭇 독특하거나 매력적인 공간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순탄하단다. 이 카페엔 뭔가 특별한 게 있나보다. 뭘까.
“손님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도 하지만 우선은 찻값이 착해 좋다고들 한다. 차와 함께 제공되는 군것질거리로도 호감을 산다. 푸짐하게 내놓거든. 요즘 같은 철엔 군고구마와 군밤, 옥수수 튀밥을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렇게 퍼주고 남는 게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이 외진 산골짝을 찾아주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 뿐이지. 난 스스로 선택한 일이면 무조건 즐기는 태도로 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즐거워지더라.”
날이면 날마다 손님들을 맞이해 신경 써야 하는 게 찻집 일이다. 은근히 감정 소모가 많을 것 같다.
“난 센치한 멋과 분위기를 추구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전혀 아니다. 사교적이랄까, 긍정적이랄까, 내겐 그런 기질이 충만해 있다. 때로 아줌마들과 어울려 앉아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 일에 만족스럽다.”
코로나로 불황이 자심하다. 찻집에서 나오는 월수입을 말해줄 수 있을까?
“평균 순소득 250만 원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부부 둘의 생활비로는 부족하지 않다. 그래도 남편에겐 좀 미안하다. 그간 농원 조성을 위해 내가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거든.”
당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남편은 자동차 회사 쉐보레에서 판금 기술자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농장 운영이나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력의 소유자라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모든 걸 주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나? 남편에게 선언한 약속이 있다. ‘걱정 말라, 반드시 수익이 창출되는 농원으로 키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다!’ 하하하!”
아직은 불쏘시개 지피는 단계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도 목소리도 쾌활하다 못해 화통하다. 말방울 쩌렁거리는 것 같다. 그건 오래된 습이다. 잘 이해할 수 없는 게 인간사라지만 낙관과 긍정으로 매사를 접수하면 넘지 못할 벽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밝은 천성도 한몫 거들어 잘 웃게 하는 안면근육을 발육시켰다. 그의 어려서부터의 꿈은 가수였다. 결혼을 하고서도 버리지 않은 꿈이었으나 남편의 반대로 포기했단다.
“남편이 뒷바라지를 해줬다면 지금쯤 유명 가수는 아니라도 밤무대 가수 정도로는 뛰고 있을 게 틀림없다.(웃음) 애석하게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노래강사 자격증을 따 대전에서 갖가지 봉사활동을 했다. 웃음치료사로도 맹활약을 했다. 그거 아시나? 웃음치료사가 얼마나 좋은 건지를. 남들을 행복하게 하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행복해져 너무 좋더라. 인생이 바뀌더라. 매사에 긍정적인 인간으로 변하거든.”
우울의 늪에 빠질 뻔한 시절도 있었다.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사투를 했던 것인데 긍정심을 약 삼아 완치했다. 이후 삶이 한결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삶의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걸 실증해보이기 위해 귀농의 나날들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웃음으로 떠나보낸다.
농장을 둘러볼까. 집 뒤편 경사지에 비닐하우스 석 동이 있다. 하우스 하나에선 다육이 화분들이 도란거린다. 영남 씨는 이 땅딸보 식물들이 향후 농원의 성장 주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을 믿는다. 특용작물을 시험 재배하는 하우스도 있다. 닭과 칠면조와 토끼를 기르는 하우스도 재미있다. 국화를 군락으로 조성한 산책로 맨 위편 평탄지엔 언제 보아도 푸근한 인상으로 무상의 보시를 하는 항아리 200여 개가 놓여 있다. 한판 야무지게 된장 사업에 뛰어들 것을 예고하는 풍경이다. 찜질방과 민박용 객실도 지어놨다. 아직은 불쏘시개를 지피는 단계이지만 영남 씨는 복합농원으로 키워나갈 포부에 부풀어 있다.
“친구들은 나를 두고 이미 성공한 귀농인이라 한다. 나를 보고 귀농을 따라 한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귀농인의 귀감이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목적 지점에 도달하고 싶다. 마을 이장 선거에도 나갈 참이다. 왜냐고? 이장의 선의와 노력만으로도 마을 공동체의 풍토가 개선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김영남 씨가 주는 귀농 Tip
•반드시 부부가 함께 귀농하자. 농촌에선 원주민들과의 소통 등 아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다.
•농업정책자금에 관심을 가져라. 크고 작은 각종 지원 제도가 운영되고 있으니까.
•귀농하기 전에 각 지역에 있는 귀촌귀농단체의 총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자.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길이다.
55세, 뜻을 세운 지 28년 만에 ‘변호사’의 꿈을 이룬 권진성 씨. 그는 행정고등고시, 사법시험, 로스쿨, 변호사 시험 과정을 모두 거치며 고시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시를 준비하던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당당히 변호사 배지를 받았다. 부산 모처에서 현재 수습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를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꿈에 도전하는 삶의 가치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한 말이다. 이상적인 꿈을 갖되, 현실적인 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린 이상이 현실을 갉아먹거나, 현실이 이상을 짓눌러버리는 경우를 때때로 목격한다. 어릴 때의 꿈은 그저 호시절의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라는 썰렁한 유머도 있지만, 우리에게 포기는 너무나 쉽다. 그렇다면 근 30년간 꿈 하나를 위해 달린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하나의 꿈을 향해 정진한 권진성 변호사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올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빴어요. 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 경비원 일을 했어요. 합격하면 6개월짜리 수습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경비원 신분으론 할 수 없었죠. 얼른 인수인계하고 지난 6월부터 수습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사이 인터뷰 제의도 받았고요. 다만 제가 합격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들이 합격하는 걸 꼭 보고 가시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의 생활이 꿈꾸셨던 변호사의 모습과 비슷한가요?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밖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과 안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사회 정의 실현을 꿈꾸며 변호사란 꿈을 품었죠. 물론 현실의 변호사도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지만, 성직자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사수가 알려준 말인데 참 공감해요. 변호사로서 법리적 검토를 잘해서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뢰인의 고민을 이해하고 마음을 보듬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 중 하나예요. 분명 의미 있는 일은 맞지만, 그만큼 정신적인 에너지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라 고단할 때가 있죠.
수험생활을 견디게 해준 원동력으로 어머니를 꼽으셨는데,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끝까지 믿어준 가족들이 다 고맙지만, 그중에서 어머니가 제일 큰 힘이 됐어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궂은일을 다 하셨어요. 저한테 이렇게 책임감이 생긴 건 일정 부분 어머니의 영향도 있어요. 살가운 아들이 아니라 애교 있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저를 믿어주셨어요. 연거푸 낙방해도 일절 그만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말로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저의 또 다른 자아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제 마음을 잘 아시고, 늘 말씀을 아끼셨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항상 감사했죠.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할 만큼.
변호사 합격소식을 전했을 때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께 제일 먼저 소식을 알렸어요. 소식을 들으시고는 딱 한마디만 하셨어요. “그래, 내가 너는 할 줄 알았다!” 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먹먹했어요. 눈물이 앞을 가리기보다는 그동안 불효만 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밖에 없었어요. 그 후 두 달 뒤에 어머니가 소천하셨어요. 합격 소식을 전해 듣고 정신을 놓으시기 전까지 약 20일 동안 어머니와 함께 그간의 여정을 곱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지나고 나니 정말 꿈처럼 느껴져요. 제 인생의 명장면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 20일의 매 순간이 될 것 같아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이후 주위 반응이 어떤가요?
이전보다 인지도는 좀 올라갔어요. 종종 저를 알아보는 분이 있어요.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분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파이팅!” 하시며 가시더라고요. 확실히 방송이 다르구나 싶었죠.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소식도 끊고 살았는데, 방송이 나간 후 연락이 많이 왔어요.
수험생활 중 언제가 가장 힘드셨나요?
법원행정고등고시랑 사법시험 둘 다 1차 시험에 합격한 해가 있었어요. 그간 공부도 많이 했고 자신도 있었어요. 속으로 ‘이번에 2관왕이다!’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나친 자만이었어요. 2차 시험에서 모두 낙방한 후 체력도 고갈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치더라고요. 일종의 번아웃이 왔죠. 그때는 사람도 만나기가 싫어서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애들은 크는데 아빠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주위의 시선은 싸늘하고,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잠도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잤어요. 티를 낼 수는 없어서, 속으로 진짜 많이 울었어요. 낙방 소식보다 떨어진 이후가 더 무서웠어요. 가장 괴로웠던 건 나로 인해서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였어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대학교 다니면서 쿵푸를 배운 덕분에 체력은 자신 있었어요. 하지만 정신이 한 번 무너지니까 체력도 따라주지 않더군요. 육체를 단련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매일같이 2시간씩 학교 뒷산에 올랐죠. 비가 와도 눈이 쏟아져도 늘 뛰어올라갔어요. 이 싸움에서 지면 끝난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확실히 체력이 좋아지니까 정신도 건강해지더라고요. 그 힘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의 경험으로 배운 건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은 하지 말자’였어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매달리면 잡념이 늘고, 잡념이 늘면 저만 괴로울 뿐이에요. 그 후로는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골몰했어요. 나름 도가 튼 거죠.(웃음)
어릴 때부터 법조인을 꿈꾸셨나요?
아뇨. 사실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가정 형편이 안 좋아서 이사를 자주 다녀 초등학교를 6번이나 옮겼죠. 그래서 무리에 잘 속하지 못하고 겉돌았어요. 그때마다 신경을 써주셨던 분들이 선생님들이었어요. 제 마음을 보듬어주셨던 분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를 아껴주셨던 선생님들처럼 교사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원서를 내려고 했던 교대는 성적이 너무 높았고, 갈 만한 교대는 너무 멀어서 포기했어요. 그때 우연히 고시 합격 수기 책을 읽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꿈을 이룬 사람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마침 성적도 맞아서 법대에 진학했는데, 그때까지도 이렇게 오랫동안 고시생활을 할 줄 몰랐어요.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신 건 언제인가요?
제가 84학번인데,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탓에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어요. 저도 공부 안 하고 맨날 시위 현장에 있었죠. 책보다 화염병을 더 많이 들던 시대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고시 3관왕 선배가 학교에 와서 강연하는 걸 들었어요. 고시 하나 붙는 것도 어려운데, 무려 3개나 붙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분이 살아온 과정과 역경을 극복하는 의지에 크게 감응했어요. 강연장을 나와서 집에 가는데, 이상하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드는 거예요. 곧장 어머니께 달려가서 “저 고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일종의 객기였죠.(웃음) 아들로서 어머니께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취직할 생각은 없었나요?
취직할 마음은 없었고 당시에 고민은 많았어요. 현실과 타협을 할까? 아니면 현실의 불의에 계속해서 맞서 싸워야 하나? 이런 고민을 스스로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에는 회의감이 심하게 왔어요.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려고도 했어요. 그때 주지 스님이 절 보고 딱 한 말씀만 하셨어요. “돌아가거라.” 스님의 눈에 제가 설익어 보였던 거죠. 돌아와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고시였어요. 어머니께 철없이 부린 객기는 이미 일종의 맹세가 됐죠. 이후 본격적인 고시생활을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스님과 다르게 반대를 안 하셨어요. 반대하셨으면 제 인생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몰라요.
고시 공부가 분량이 방대하고 어려운 시험이잖아요. 처음 공부할 때 어떠셨나요?
공부를 즐겼어요. 형사 사건이 재미있었어요. 형사 사건은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찾아내야 하잖아요. 이렇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작업이 흥미로웠어요. 어려워도 그 재미 하나로 버텼던 것 같아요. 남들은 어떻게 견뎠느냐며 궁금해했지만, 기질적으로 골방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것이 저랑 잘 맞았어요. 또 검찰 수사관이 정말 되고 싶었어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심을 직업적으로 잘 풀 수 있는 직업으로 보였거든요. 수사관이 되어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나 부정부패를 없애고 싶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공부를 시작할 때는 동아대 고시반에서 생활했던 터라 생계 걱정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어요. 심지어 치약이나 칫솔도 살 필요가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아내와 결혼하면서부터는 달랐어요. 딸린 식구가 있는 가장이었으니 무엇이든 해야 했죠. 공부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요.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아파트나 학교 경비원도 하고, 심지어 치킨집도 운영한 적이 있어요. 치킨집을 2년만 더 했으면 아파트 한 채는 샀을 거예요. 당시 이루지 못한 꿈이 남아 있어 마음이 늘 허전했어요. 그래서 치킨집을 접고 다시 도전했어요.
주위에서 만류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만두라고 한 분들이 많았죠. 하지만 절 믿어주는 가족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늘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말은 신뢰하기가 어려워요.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말보다 정확한 행동이 필요하죠. 행동은 행동으로 끝나면 안 돼요. 결과를 만들어야죠. 생계를 위해 궂은일을 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에요.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싶었어요. 가장으로서 무책임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어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 요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죠. 하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봐요. 최선을 다하는 순간만큼 값진 시간은 없어요.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과정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결과를 떠나서 의미가 없어요.
변호사님께 가족은 어떤 존재일까요?
늘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하죠. 합격하고 나서 딸이 여름방학 때 번 알바비로 구두를 사줬어요. 일종의 합격 선물이죠. 시장에서 산 저렴한 구두를 신다가 처음으로 백화점 가서 구두를 골랐어요. 너무 비싸서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어요. 좀 싼 곳에서 사자 하고 갔는데, 백화점에서 처음 본 그 구두가 계속 아른거려서 결국 덜컥 사서 돌아왔죠. 딸에게는 늘 미안해요. 못 해준 것이 많아서 마음의 빚이 있어요. 살면서 계속 갚아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한편으론 일찍 철이 든 딸이 대견하고 고마워요. 딸의 바람처럼 이제는 이 구두를 신고 꽃길만 걷고 싶어요.
못 이룬 꿈 때문에 좌절하고 있는 분들에게 한말씀해주세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절망은 대체로 구체적인데, 행복은 피상적일 때가 많아요. 행복을 좇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많고요. 중요한 건 결국 하루를 살아내는 자신에게 있어요. 목표를 정하고, 하루를 계획하고, 실제 행동으로 조금씩 옮겨보면서 자신의 행복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해요. 삶은 늘 변수에 흔들리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저도 그랬어요.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에 가까워요. 그렇다고 저처럼 끝까지 해보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다만 삶의 행복을 포기하는 방향이 아니길 바라요. 꿈이 있다는 건 일종의 축복이잖아요.
사람들은 본인보다 일찍 무언가를 성취한 사람을 보고 부러워한다. 난 무궁화호처럼 더디고 느린데, 남들은 KTX처럼 빠르게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바심이 앞서고, 조바심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KTX에서는 무궁화호처럼 오래된 간이역 풍경이 주는 낭만을 즐길 수 없다. 과정이 더디고 느려도 방향이 맞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설령 결과가 좋지 못해도 과정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권진성 변호사는 남들과 비교해서 많이 늦었다. 하지만 비관하지 않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우직하게 달렸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종착역에 내렸다. 그의 여정은 무궁화호처럼 더디고 순탄치 않았지만, 간이역의 낭만을 즐기듯 계속해서 의미를 찾으며 달렸다. 오랜 시련 끝에 결과를 이룬 그는 꽃으로 비유하면 추운 겨울에 화려한 꽃잎을 보여주는 동백이다. 딸이 사준 구두를 신고, 오랫동안 그가 동백꽃 같은 길을 가기를 바라며 그와 어울리는 시 한 구절을 공유하며 마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봄길’ 中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난주 동네 의원에서 폐렴 2차 예방접종을 받았다. 작년에 이어 1년 만인데, 왜 그런지 이번엔 저녁때부터 접종 부위가 붓고 몹시 아팠다.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몸살을 끙끙 앓았다. 다음 날 의원에 다시 찾아가 엉덩이에 주사를 이쪽저쪽 두 방이나 맞았다. 엎드리지도 않고 선 채로 바지만 까 내리고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 놓는 사람만 있으면 될 텐데 웬일인지 간호사 두 명이 자기들끼리 잡담하며 내 빈약한 엉덩이를 다 구경했다.
의사는 미안해서 그런지, 첫날 접종을 잘못해서 그런지 이번엔 돈도 받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백신을 앞장서 맞은 수간호사가 방송 인터뷰 도중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종종 실신하곤 했다는데, 나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행인 거지. 별말 없이 주사를 맞게 한 의사는 약도 처방해주어 하루 세 번 식후에 약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딸꾹질이 시작돼 멎지를 않았다. 좀 나아지나 싶어서 어렵사리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내 말을 들으니 내가 잠을 자면서도 계속 딸꾹거렸다고 한다. 참 재주도 좋지. 딸꾹질을 하면서 어떻게 그리 잘 수가 있어?
하여튼 몸살기는 없어졌는데, 아랫배까지 출렁거리는 이놈의 딸꾹질을 어떻게 하나. 나는 늘 하던 방식대로 숨을 참아보았다. 옛 문헌에는 딸꾹질하는 사람에게 “뭘 훔쳐 먹었느냐?” 하고 소리치면 딸꾹질이 멎는다고 돼 있다. 예전에 어른들이 흔히 써먹던 수법이다. 그러나 내가 나더러 소리를 질러봐야 웃기는 일이 되고 말 테지. 아내에게 갑자기 등을 치게도 해보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혀를 내밀고 뭐라고 글씨를 쓰면 멎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혀를 내놓고 ‘임철순 나쁜 놈’ 이렇게 써보았다.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마침 집에 한방 요법으로 손가락 안쪽을 찌르는 전자침법, 사혈침법 책자가 있어 그것도 그대로 해보았지만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하나마나였다. 딸꾹질을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신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 1757년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딸꾹질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편지를 보고 숙식에 별일이 없고 독서에서 맛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으니, 이것이 바로 너에게 바라던 것이다. 어떤 위안이 이만하겠느냐. 다만 딸꾹질로 고생한다고 했는데 이는 먹은 음식이 다 내려가기 전에 독서를 해서 생기는 것으로 다른 치료법이 없다. 그저 식사 후 천천히 걸으며 속이 편안해진 뒤에 느리게 읽다 보면 한참 지나 저절로 나을 것이다.”
독서를 하다 보니 딸꾹질이 생긴다고? 아들을 너무도 좋게 봐주는 거 아니야? 글씨를 좀 더 정성들여 쓰라는 잔소리도 잊지는 않았더라만, 아버지란 그저 아들이 책 읽는 것만 좋아하기 마련인가보다. 원래 부모에게 보기 좋은 건 아이들의 밥 먹는 입이고, 듣기 좋은 건 병에서 물 쏟아지듯 아이들이 글을 좔좔 읽어대는 소리라지?
그나저나 저녁 약속을 어떻게 하지? 원래 연말은 술꾼들이 즐겁고 바쁜 대목인데, 금년엔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약속도 별로 없고 있다가도 취소되는 판에 번개 모임 하나가 모처럼 생겼는데. 몸도 약해진 판에 괜히 나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면 어쩌지? 몸살이야 나았다 치고, 사람들 만나서 딸꾹질을 해대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불참한다고 카톡 단톡방에 알렸다. 그랬더니 의사인 친구가 내가 먹는 약에 항히스타민제가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게 딸꾹질을 일으키는 성분일 수 있다는 거였다. 약봉지를 살펴보니 과연 그런 약제가 있었다. 그래서 약은 더 이상 먹지 않고 딸꾹질 봉쇄에 전심전력 성심성의를 다 기울였다.
그리하여 밤 11시 넘어 나는 결국 끝내 드디어 마침내 딸꾹질을 잡았다. 어떻게 했느냐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음, 힘을 주면서 크게, 오래 숨을 참았다. 근데 이때의 “음”은 위 동그라미를 너덧 개쯤 그려야 할 정도의 소리다. 생각해보니 내가 딸꾹질에 시달린 시간은 20시간쯤 되는 것 같다. 이런 정도는 기네스도 뭣도 안 되는 기록이지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던가?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내 몸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이걸 깨달아 배운 것이다. 다만, 혀에 글씨를 쓰면 어떤 효과와 작용이 있기에 그런 요법을 고안해 낸 건지 그것은 지금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