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닥 겨운 아쉬움으로 낙서를 했다.
그때 했었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추억이 되어 시간에 남겨졌다.
낙서#1
2013년 9월 7일
강촌에는 가을 내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성환과 땅꼬맹이 그리고 꽁이는 밤이 깊어가는 강촌에서
호롱불만큼 보이는 길을 따라
이제는 철길이 사라진 강촌역까지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비둘기호 열차가 이 역에 정차하지 않는 것에 아쉬워하며
그리고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PM 11:43’ 하얀 도화지에 시간을 그렸다.
낙서#2
신촌의 허름한 주점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술잔에 담긴 말들은 주점의 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야기가 됐다.
‘우리 자주자주 모이자고, 애들아 사랑해.’
얼마 후 짧은 도심 속 여행이 끝난 빈자리와 아쉬움의 시간은 짧은 글귀로 아로새겨졌다.
그들에게 어느 날 오후의 공간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낙서#3
2013년 7월 19일
또경이랑 또민이는 청량리역 플랫폼에서 정동진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그 여름 둘만의 1박 2일 여행.
여행을 마칠 무렵 손끝에서 ‘빙빙’ 바닷바람이 맴돌았다.
연인은 아쉬움을 바람에 던져 ‘정동진’을 ‘우리 공간’으로 기록했다.
정동진 시비의 한 뼘 남짓한 공간에서 그들의 여정이 다시 살아났다.
연인이 한잔 술에 속삭였을 사랑이 동해의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Where the sidewalk ends.
이야기가 끝나는 공간에서 그렇게 낙서가 시작됐다.
기억의 부재…더 이상 희로애락을 추억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과거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비밀의 메시지를 담은 낙서는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던 그들을 기억하게 했다.
낙서는 젊음의, 추억의, 인생의 흔적이다.
르네상스 운동이 한창이던 1533년 프랑스 남부지방 보르도 인근에 사는 피에르 에켐은 상업으로 부유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커다란 성을 사들여 귀족이 되었다. 아들 미셸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장차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다 여러 학자와 권위자들에게 아동교육에 대해 문의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아이에게 최소한의 강제를 과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지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직접 실행에 나섰다.
먼저 피에르는 젖먹이 아들 미셸을 자신의 성 안에서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젖먹이 아이를 농가로 보내 그 농민의 집에서 농민의 자녀와 똑같은 대우와 똑같은 음식으로 키우게 했다. 또한 최하층민이 세례를 받을 때는 아이에게 세례 반을 받들도록 시켰다. 아이가 농민 등 최하층민과 애정으로 결속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현대의 진보된 교육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 피에르는 당시 유럽 교양층의 언어인 라틴어를 아들에게 고생 없이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라틴어를 훌륭하게 구사하는 독일인 가정교사를 고용했다. 미셸이 있는 데서는 누구라도 라틴어만 말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명령했다. 그는 여섯 살 때까지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지 이 방법으로 라틴어를 배운 결과 미셸의 라틴어 실력은 최고 수준에 올랐다. 아이는 라틴어로 고전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라틴어 교사들은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라틴어 실력을 미셸이 알아챌까 두려워했다.
또한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날 때 아이의 ‘말랑말랑한 두뇌’는 충격을 받을 것으로 믿고 악기 소리로 아이의 잠을 깨웠고 유모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일렀다. 그야말로 세심한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종교의 자유도 줬다.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자녀들은 신교(기독교)를 믿게 했다. 16세기 프랑스는 신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극심한 시기였다.
이렇게 자란 어린아이는 훗날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오늘날 에세이, 즉 산문 문학 형식의 전형이 된 ‘수상록’의 저자인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다. 그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젖 먹는 동안 내내,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농가에 살도록 하여 가장 소박하고 가장 평범한 생활방식을 훈련시켰다. 아버지의 뜻은 내가 민중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계급의 사람들과 동족이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손을 뻗치는 사람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바로 아버지에게서 잉태했던 것이다. 다시 새학기를 맞으면서 ‘학부모’들의 불안이 시작되고 있다. 무엇이 자녀에게 참된 가르침인지 몽테뉴 아버지의 혁신적 교육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이 찾아왔다. 차가운 공기에 그녀의 뺨은 분홍빛으로 물들고 코끝은 루돌프 사슴처럼 변했다. 살며시 잡은 그녀의 작고 가느다란 손에 어느새 온기가 퍼진다.
경기도 가평군 아침고요수목원. 아이들 웃음소리, 행복한 가족들의 표정, 부드럽게 속삭이는 연인들의 사랑에 이곳은 한겨울이지만 따뜻함이 넘쳐흐른다.
찰칵! 찰칵!
해가 산허리를 넘어가며 어둠이 드리워지면 갑자기 형형색색의 조명에 알록달록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순간이다. 핸드폰으로, 카메라로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오색별빛정원전. 10만여 평 규모 아침고요수목원을 채운 나무들마다 LED전등이 불을 밝히면 꿈속에서도 만나기 힘든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마치 밤하늘의 별빛이 정원에 내려앉은 듯하다. 사랑의 하트, 루돌프 사슴, 호박 마차, 대형 트리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도 어느새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나무 하나 하나에 정성스럽게 색을 입히고 조화를 이뤄 꼼꼼하게 조명을 설치한 정성에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을 쌓는다. 올해 아침고요수목원 오색별빛정원전의 주제는 ‘사랑’이다.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요즘 이곳에서 만들어간 특별한 ‘사랑’을 주위에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날리기’는 우리 민족이 즐기던 민속놀이다. 섣달부터 정월 무렵까지 동네 꼬마들은 어르신들께서 만들어 주신 연에 소원을 담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친구들끼리 연싸움을 하는 모습도 흔한 광경이었다. 설날이 아니어도 동네마다 연 날리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핵가족 등의 영향으로 전통의 향기가 사라지면서 연 날리는 모습도 낯설어졌다.
연은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서기 647년) 김유신 장군이 연을 날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말 최영 장군과 묵호의 난에 관한 야설에도 등장한다. 조선 후기에는 영조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통 연은 거친 닥나무 한지와 대나무로 만든 댓살 5개를 갖고 하늘 높이 띄운다. 연 표면에 붙이는 색지나 입히는 색깔 혹은 모양에 따라 구별돼 서양의 연과 비교해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연 하면 일반적으로 ‘방패연’을 떠올린다. 가운데 구멍이 있다 해서 모든 연이 방패연은 아니다. 문양별로는 꼭지연류, 반달연류, 치마연류, 박이연류, 동이연류, 초연류, 발연류, 기타연류 그리고 변형된 유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단순한 문양을 가진 연은 연 제작자와 수집가의 시대적 감각에 맞게 좀더 아름다운 문양으로 변형된다. 그 예로 하나의 연에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문양이 여러 차례 반복되기도 하고 문양에 글이나, 동물 그림을 곁들이기도 한다. 전통 연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양의 변형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두 가지 공통점을 유지한 채 전승됐다.
첫째, 연은 ‘날리는 놀이’인 만큼 과학적 구조를 이룬 방패연의 형태가 유지됐다. 둘째, 우리 고유의 색채가 오색이라 인식됐기 때문에 연에 사용된 색도 주로 5가지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지와 대나무, 실이 어우러져 하나의 전통 연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세대를 초월해 흥미진진하다. 바람에 맞서지 않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내줘 더 높이 오래 날게 하는 지혜. 이번 설에는 스마트기기 대신 전통의 멋과 문화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새해 소원을 담은 희망의 전보가 될 것이다.
리기태 명장= 50년간 전통의 향기를 지키는 이가 있다. 리기태 전통연 명장이 바로 그 주인공. 리 명장은 국내 유일의 전통 연 원형기법 보유자다. 영국 왕립식물원에 소장된 124년 된 국외 문화재인 조선시대 ‘서울연’을 최초로 발굴해 언론에 공개 자문하고 원형 복원에 성공한 것은 물론 국내로의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고려·조선시대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지난달 6일 현대자동차 채용 시험에 나온 문제다.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인재를 찾고자 새로 도입한 것이 에세이 평가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최근 대기업 채용에는 인성과 가치관을 중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문학(역사·철학·고전·문학)이 재조명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로 인해 관련 지식을 얻고자 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문학 소양 습득에 인문학 서적들이 길잡이가 된다고 조언했다. 홍정선 문학평론가는 “인문학이란 인간 또는 자신의 가치를 탐구하고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고전이나 역사·철학 등 인문 교양서들을 읽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인문교양 책은 어떤 게 있을까. 그동안 고전 문학류가 일반적 인기를 끌었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주현성), ‘여덟 단어’(박웅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 편’, 최진기의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등이 시선을 끌었다. 이들 도서가 독자의 호응을 받는 이유가 있다. 인문 교양서가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식을 벗었기 때문이다. 예스24 인문사회분야 김성광 MD는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등이 인기를 끈 것은 쉬운 인문서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인문학 기초 분야의 정돈된 지식을 알려준다.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 등 인문 교양의 핵심 주제를 체계적으로 쉽게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는 서양철학, 동양철학, 현대사상, 서양미술사, 역사 등 폭넓은 인문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제공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를 통해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그럼에도 탄탄한 고증을 거친 역사서임은 분명하다.
관계자들은 당분간 이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김현정씨는 “대중적 인문학 개론서들의 출간이 이어져 일반 독자들에게 관심을 모은다”며 “친숙하고 쉬운 인문서들이 꾸준히 눈길을 끌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