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선선한 가을밤에는 전국 문화재 야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역별 문화재 야행을 알아보고 문화 체험도 소개한다.
경복궁 별빛야행
10월 8일까지 | 경복궁
외소주방에서 궁중음식체험과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별빛 산책도 할 수 있다.
예산 문화재 야행
9월15~16일 | 예산군청 일원
예산 성당, 예산호서은행본점 등을 방문하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야간 문화 향유 콘텐츠를 체험하자.
보은 회인 문화재 야행
9월15~17일 | 회인 인산객사, 회인로 일원
도깨비 마을로 변한 보은 회인에는 천연염색체험, 무형문화재 줄타기 등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부여 문화재 야행
9월 15~17일 | 부여 정림사지
백제의 문화유산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야간 역사문화체험을 하면서 사비백제의 밤을 누비자.
충주 문화재 야행
9월 22~23일 | 충주 중앙탑 사적공원 일원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하는 문화재 야행. 문화재 스탬프 랠리와 공연 등을 즐기며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동해를 끼고 있는 동해시의 인상은 밝다. 시원한 눈매를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해변 도시다. 바다는 어쩌면 동해시의 모태이거나 모성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로 생존을 이어온 게 아닌가. 수려한 바다 풍경만으로도 동해시는 복 받은 땅이다. 저 웅장한 만경창파를 보라.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보라. 푸르디푸르러 아찔하다. 이 바다에선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그래 동해시를 찾아드는 여행자가 숱하다. 그들은 드넓은 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태초의 일순을 보여주듯이 장엄한 일출을 감상한다. 일출 명소는 촛대바위로 유명한 북평동 추암 일원이다. 해돋이 장소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곳이다.
추암해변에선 기암괴석들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다. 능파대(凌波臺)라 부르는 바위 군락이 해안 경관을 북돋워 절경을 연출하는 게 아닌가. 가히 자연이 펼치는 예술제전이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바람에 닳고 파도에 깎인 바위들의 묘한 형상이라니.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능파대 역시 사람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자연의 재능을 웅변한다. 이처럼 빼어난 능파대는 조선이 낳은 걸출한 화가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도 등장한다. 단원은 금강산과 관동팔경 지역을 여행하며 명승 60폭을 그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을 만들었다. 거기에 능파대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한 점이 포함돼 현존한다.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가인(佳人)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능파대란 그렇다면 미인의 섬려한 거동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 풍경을 보는 안목에 서정과 낭만이 서려 있다. 조선의 정치가 한명회가 그 이름을 지어 붙였다.
능파대 곁엔 정자가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정자다. 자그마하고 덤덤한 모습이라 정자 앞에 서서 바라보면서도 정작 눈에 쏙 들어오지 않을 수 있는 건물이다. 멋스럽기보다 예사롭다. 그 무슨 미학적 작위를 구태여 구사하지 않은 집이다. 하지만 유서 깊은 해변 정자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인 1361년에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건립했다. 이후 화재로 스러진 걸 조선 중기인 1530년에 7대손 심언광이 중건했으며, 1794년에 또다시 지어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해암정은 작은 규모만큼이나 구조도 간명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해 팔작지붕을 얹었다. 들어 올릴 수 있는 창호 문을 단 정면을 제외한 3면엔 모두 판문을 설치했다. 이채로운 건 처마 아래 걸린 현판이 세 개나 된다는 점이다. 가운데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우암 송시열이 능란하게 붓을 휘저어 쓴 해서체 편액이 있다. 우암이 예송논쟁에서 패하고 함경도로 귀양 가는 길에 들러 쓴 글이란다. 오른편엔 심동로의 18대손 심지황이 쓴 전서체 편액이 걸려 있다. 왼편엔 해암정 뒤편 능파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종소리에 빗대어 ‘석종람’(石鍾襤)이라 쓴 해서체 현판이 보인다. 이건 송강 정철이 쓴 것이라 하나 정확하진 않다. 정자 내부 벽면엔 시판과 기문 다수가 걸려 있다. 세상의 꿍꿍이로부터 등 돌리고 해변에서 독락(獨樂)하는 심동로의 지향을 알아채거나 교감하는 글들이 시판에 섞여 있다.
심동로는 해암정과 더불어 노년을 한가하게 지냈다. 창망한 바다가 부여하는 위안과 풍류를 낙으로 삼았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건 권문세족의 쉰밥 냄새나는 아귀다툼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괜히 바닷가에 바짝 붙여 정자를 지었겠나? 능파대에서 들끓는 파도 소리를 울타리 삼아 속세의 소음과 두절하고 싶은 심정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일찍이 신라의 고독한 천재 최치원은 가야산의 물소리를 방패 삼아 세상 잡음을 물리치고 은거했다. 심동로의 심회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정치판의 이전투구는 저질러놓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 난 해변에서 노닐겠어! 그런 심사이지 않았을까. 그는 공민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령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에 공민왕은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렇게 동으로 돌아온 노인은 즐겨 해변을 소요하며 음풍농월로 회포를 풀었다. 이런 그를 일러 사람들은 ‘동해 바닷가의 선옹’(仙翁)이라 일컬었다지. 해암정을 지을 즈음에 쓴 심동로의 문장이 있다. ‘갈매기와 더불어 바닷가에서 늙으니/ 일생의 행적이 바람결 같구나/ 부귀공명이야 다 헛된 것/ 매미 껍질 벗듯이 일찍이 관직을 버렸네’
감성충전소 ‘논골담길 벽화마을’
이제 묵호동으로 간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동해시의 자연경관은 두루 빼어나다. 곳곳에 고유한 승경과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그런데 묵호엔 묵호의 인간사와 사회사, 문화와 풍속, 빛과 그늘을 한눈에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묵호의 유난한 ‘달동네’였던 언덕배기 마을을 2010년부터 시작한 문화재생사업으로 본때 있게 살려낸 곳이다. 이미 ‘전국구 명소’로 부상했다. 동해시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주로 논골담길로 쏠려 기존 명소들이 예전과 다르게 썰렁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초라하고 침침했던 언덕배기 마을에 와락 생기가 감돌다니.
묵호는 1960~1970년대 한때 번영을 누렸다. 묵호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었던 묵호항의 성황 덕분이었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항구로, 국제무역항으로, 명태와 오징어 등속이 흔전만전 유통되는 어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화주(貨主)와 외항 선원, 어부, 잡역부 등 갖가지 인력이 집중됐다. 그러면서 경제 효과가 파급돼 ‘강아지조차 지폐를 입에 물고 돌아다닌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 좁은 바닥에 극장이 네 개나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이 저물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바다에서 잡히는 게 드물어지면서 묵호항의 전성시대가 곤두박질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러잖아도 내동 궁색했던 달동네의 형편은 더욱 나빠져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삶은 이어지는 것.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끌어안고 애면글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떠날 길 없는 사람들은 남아 운명의 횡포에 맞설 수밖에 없는 것. 이렇게 지역의 변천에 따라 달동네 사람들이 껴안고 살았던 애환, 그리고 그 궤적과 사연을 재료로 삼아 예술을 입히고 문화 요소를 돋우어 볼 것 많고 찍을 것 많고 느낄 것 많은 이색 여행지구로 부활한 게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의 골목길은 넥타이처럼 좁고 가랑잎처럼 허름하다. 다닥다닥 밀집한 집들은 하나같이 작고 허술하다. 삶의 파란만장이 한눈에 읽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문화자원을 투입하자 달라졌다. 면밀한 의도로 기획된 다양한 형태의 벽화, 사진, 낙서, 디자인, 공예를 깨알처럼 섬세한 디테일로 흩뿌리자 급변했다. 감성충전소로 변신했다. 언덕 저 아래로 눈길을 던지면 거기에 눈부시게 푸른 동해 바다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노멀 크러시와 뉴트로를 즐기는 이들에겐 한결 적합한 답사지다. 그 무엇보다 문화재생의 힘과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마을이다.
오종식 동해문화원장
올가을 ‘2023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를 펼친다
동해시는 1980년에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북평 권역은 전통적으로 농경이 성행했다. 반면 묵호 권역에서는 어업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번성했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질감이 있었지만 40여 년의 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해시의 특질에 대한 오종식 동해문화원장의 생각은 이렇다.
“두 권역의 상이점이 섞여 융화되면서 풍부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갖추게 되었다. 바다와 항만을 모체로 한 어로 문화와 해양 문화가 여실한 한편, 과거부터 이어진 농경 문화와 유교 문화, 그리고 불교 문화 역시 지역 정신의 축을 이루고 있다.”
동해시의 대표 문화자원을 꼽는다면?
“동해시의 모산인 두타산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그리고 여기에서 행해지는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를 꼽고 싶다. 천지간의 모든 영혼을 달래고 삼라만상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로,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가는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매년 가을 삼화사에서 사흘간 공개 행사로 거행된다.”
동해문화원을 이끌며 그간 펼쳐온 주요 사업을 소개해달라.
“‘동해학기록센터’를 설립, 동해시의 역사와 문화 관련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했다. 청소년을 위한 지역 역사 교재 ‘세상의 아침을 여는 동해시’ 출간과 북카페 ‘소담채’ 조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동해문화원이 ‘논골담길’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더라.
“그렇다. 우리 문화원의 조연섭 사무국장이 2010년에 ‘논골담길’을 기획하면서 사업이 개시됐는데, 동해시는 물론 마을 주민과 문화 인력이 동참해 진척시켰다.”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답사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새롭고 흥미로워서.
“‘논골담길’은 이미 동해시 최고의 명소로 부상했다. 도시 문화재생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주차난이 문제점으로 대두됐을 정도다. 소외된 ‘달동네’였지만 감성마을로 변모시킨 성과가 이렇게 크다. 동해 바다와 동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도 매우 빼어난 곳이다.”
올가을엔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는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가 동해시에서 열린다지? 어떤 구상과 준비를 하고 있나?
“10월 20일부터 3일간, 동해와 ‘논골담길’이 바라보이는 천연의 무대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공원’에서 펼쳐진다. 주제는 ‘K-컬처, 뿌리를 만나다’로 설정했다. 지역 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미래 비전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는 물론 바다불꽃쇼, 대동한마당, 대한민국 팔도 명인전 등 갖가지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이 문화박람회에 전국 231개 문화원도 참여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성대한 문화축제가 예상된다.
금융업에 몸담은 지 50년.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의 원칙을 전하고 노후 설계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76세인 지금도 현장에서 1년에 170번 이상의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산관리 방법을 전하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의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한국거래소에서 시작해 대우증권을 거쳐 현대투신운용사와 굿모닝투신운용사 대표직을 역임했다. 이후 미래에셋증권 그룹 부회장 겸 은퇴연구소장으로 9년을 일했다. 지금은 9년째 사회공헌 조직인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금융업에 첫발을 들일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은퇴 교육이나 노후 설계 교육을 하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노후자산 관리에 대해 물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
노후 대비 자산관리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세 가지 자산을 잘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 가지 자산은 실물자산, 금융자산, 인적 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산관리라고 하면 “몇 억이 있으면 노후가 충분하냐” 묻지만, 강창희 대표는 100세 시대에 이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자산관리라고 하면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는데,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자산관리에 포함됩니다. 절약도 자산관리라는 의미지요. 매달 받는 연금이 있는지,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는지, 인적 자원 관리를 잘해서 내 몸값을 높이고 있는지, 내 수준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노후에 얼마가 필요할지는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시골에서 사는가 도시에서 사는가, 1인 가구인가 4인 가구인가, 어떤 취미를 즐기는가, 여행을 1년에 몇 번 갈 것인가 등 노후에 어떤 삶을 보낼 것인가에 따라 필요한 생활비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강창희 대표는 ‘몇 억이 있어야 노후가 준비됐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얼마를 준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생활수준을 어디에 맞출 건지가 중요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것을 ‘경제적 자립’이라고 합니다. 노후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노후 대비 자산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퇴직연금을 굴리면서 자산관리의 기본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
“1980년대 우리나라 노인의 72%가 자녀의 도움으로 수입을 충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4%가 자녀의 도움을 받습니다. 연금을 준비해서 30년 동안 매달 300만 원씩 받으면 12억 원 정도의 예산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돈이라고 생각 안 해요. 20~30대 직장생활 시작과 동시에 3층 연금이라고 하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3층 연금을 준비했다면 농지연금, 주택연금 등 공적·사적 연금으로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이 노후 대비 자산관리의 시작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소 생활비를 공적·사적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나라가 선진국이에요.”
부동산·금융자산 균형 찾아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은 대부분 실물자산, 그중에서도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65세 이상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80~90%에 이른다. 강창희 대표는 주택연금 등을 꼭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는 노인 대국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는 빈집이 넘쳐난다. 자식들은 부모의 집을 상속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돈을 얹어 집을 팔아야 할 처지까지 왔다. ‘아사히신문’은 지금의 부동산(不動産)은 부(負)동산이 됐다고 진단했다.
“마이너스 동산 시대가 왔다는 거죠. 과거 수명이 짧았을 때는 자식에게 집을 물려줘도 됐지만, 부모가 90세가 되면 자식도 60대입니다. 노인이 노인에게 집을 물려주는 셈이죠. 일본 경제가 한동안 침체된 이유 중 하나가 노노(老老) 상속입니다.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산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0이 넘어 집을 상속하는 것보다 주택연금으로 생활비를 받아 손주 학비에 보태주는 게 더 나을 수 있어요. 10억 원 가치의 집에 살아도 현금이 없으면 빈곤한 노인입니다.”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고, 자식을 부양할 수도 없는 시대다. 강 대표는 오히려 나이 들수록 고층 아파트에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독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비싸고 평수 넓은 아파트보다 걸어서 장을 볼 수 있고, 문화시설이 가깝고, 병원이 가까운 작은 평수의 집으로 다운사이징하고, 차액은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는 게 낫다는 것. 이제는 집을 자산의 관점으로 봐야 할 때가 왔다.
더불어 위험관리도 시작해야 한다. 노후 파산의 원인으로 꼽히는 다섯 가지 리스크는 은퇴 창업 리스크, 금융사기 리스크, 자녀 리스크, 건강 리스크, 황혼이혼 리스크다. 40대라면 건강관리가 우선이다. 중대 질병보험 등으로 의료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자녀 리스크 관리도 이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교육비, 자녀 결혼 비용을 어떻게 준비하고 쓸지 계획하고 자녀의 경제적 자립심도 키워줘야 한다. 강 대표는 자녀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없다면 증여를 서두르는 게 답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평생 일할 각오를 하라
50대가 넘어서면 앞서 말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점차 금융자산으로 이동해야 한다. 부동산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부채가 많다면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될 수 있다.
“부채를 줄이고 어떻게든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반반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계자산의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것이죠. 다음으로 할 일은 퇴직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거예요.”
최소 연금이 준비되었다면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몸값을 올리라는 이야기다. 강창희 대표는 세 가지 자산 중 인적 자산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 현역”이라고 강조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마틴스쿨은 2033년까지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직업이 사라지는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일이 생기는 시대이기도 하다.
“창직의 시대가 오는 겁니다. 기왕이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 세대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요즘은 퇴직하고도 2~3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죠. 지금부터 퇴직 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얼마를 버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핵심입니다.”
미국에는 약 200만 개의 NPO(제3영역의 비영리단체)가 있다. NPO는 정부나 기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노후가 준비된 미국 은퇴자들은 현역 시절 받았을 수입의 3분의 1만 받고 NPO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강 대표는 노후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도 일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76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후에는 3대 불안이 있습니다. 돈, 건강, 외로움이에요. 우리는 은퇴 후의 삶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은퇴 후 살아갈 시간을 ‘퇴직 후 12만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엄청나게 긴 후반 인생을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준비해야 하는 거예요.”
강창희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일할 능력이 있고 의향이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
“지금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게 아니고,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준비해나가면 행복한 노후를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case 01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힘들게 자녀들을 키운 A는 자녀들이 성장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본인을 위한 선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아파트 한 채를 자녀들 모르게 매각하고 연인 B와 여행을 다녔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는 부동산 매각 대금을 현금으로 수령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A가 여행 중 매각 대금을 다 써버렸는지, 누군가에게 몰래 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자녀들이 A로부터 받은 현금은 없었고, 상속일 현재 남아 있는 매각 대금은 확인되지 않는다.
case 02
C는 자신이 죽으면 자녀들에게 상속세 부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일부 재산을 자녀들에게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파트 한a 채를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자녀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그런데 C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두 사례에서 A와 C는 모두 아파트를 매각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리고 상속일 현재 A와 C에게 아파트 매각 대금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아파트 매각 대금이 상속세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A와 C의 사망 시점에 매각 대금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자녀들은 왜 상속세를 내야 할까.
먼저 사례 2를 보자.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은 상속 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가액과 상속 개시일 전 5년 이내에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증여한 재산가액은 상속재산의 금액에 더하도록 정하고 있다. 상속세의 경우 누진세율(과세표준 금액이 증가하면 적용되는 세율도 높아진다)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망을 대비해 피상속인이 재산을 미리 조금씩 증여함으로써 사후의 상속세를 줄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1년 이내에 자녀들에게 지급한 현금은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대신 가산한 증여재산에 대한 증여세액은 상속세 산출세액에서 공제하도록 하고 있다. 어쨌든 C의 자녀들은 C의 사망 전 받은 돈이 있으니 이에 대한 상속세 납부는 우선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사례 1이다. A의 자녀들은 피상속인이 아파트를 매각한 사실도 몰랐고, 매각 대금을 구경하지도 못했다. A가 매각 대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왜 A의 자녀들이 아파트 매각 대금에 대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걸까? 왜냐하면 상증세법에서 상속 개시일 전 처분한 재산 등을 상속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추정상속재산이란
피상속인이 사망 전 일정한 기간 내에 재산을 처분하여 받은 금액이나 계좌 등에서 인출한 금액 또는 부담한 채무의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그 금액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상속인들이 이를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상속세 과세가액에 포함시킨다. 피상속인이 재산 등을 처분하여 과세자료의 노출이 쉽지 않은 현금으로 상속인에게 증여 또는 상속함으로써 상속세를 부당하게 경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속 개시 전 처분한 재산
피상속인이 재산을 처분하여 받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에서 인출한 금액이 재산 종류별로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으로서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 상속인이 이를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더해진다. 따라서 사례 1에서 처분한 부동산 매각 대금이 2억 원 이상이고 A가 이를 현금으로 수령하여 모두 사용했다면, 그 용도를 객관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한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다.
만약 부동산 처분으로 수령한 현금이 5억 원이고, A가 원래 통장에 보유하고 있었던 1억 원도 인출돼 총 6억 원의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6억 원 전부 추정상속재산에 포함될까? 이 경우 통장에서 인출한 1억 원은 추정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2억 원 또는 5억 원이라는 기준은 재산 종류별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재산 종류는 ① 현금·예금 및 유가증권, ② 부동산 및 부동산에 관한 권리, ③ 기타 재산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예금에서 인출한 1억 원은 기준금액 미만이므로 제외된다.
상속 개시 전 부담한 채무
상속 개시 전 부담한 채무는 두 종류로 나뉜다. 먼저 피상속인이 부담한 채무의 합계액이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으로서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는 상속인이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더해진다. 이는 상속 개시 전 처분한 재산과 동일하다. 빌린 돈의 사용처가 객관적으로 불명확한 경우 상속인이 수령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피상속인이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회사 등이 아닌 자에 대하여 부담한 채무로서 상속인이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추정되는 경우에도 사용처가 불분명하면 추정 상속재산으로 포함된다. 이 경우 채무부담 행위 자체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상속인이 변제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란 채무부담계약서, 채권자확인서, 담보설정 및 이자지급에 관한 증빙 등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등에 의하여 상속인이 실제로 변제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아니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도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이라면 그 용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회사 등이 아닌 자에 대한 채무더라도 상속인이 사용처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구비하면 추정상속재산에서 제외된다. 다른 상속추정과 달리 이 규정은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상속추정의 배제 등
과거와 달리 핵가족화되어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는 서로 경제적 생활기반을 달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부부 사이에도 재산을 별도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상속 개시 전 처분 재산 및 부담 채무의 사용처를 상속인들이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현금을 사용하면서 그에 대한 증빙을 꼼꼼히 챙기는 경우는 드물고, 특히 그 사용처가 은밀하거나 불법적이라면 상속인으로서는 더욱 사용처를 알 수 없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여 상증세법은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기준(처분 금액 등의 20%와 2억 원 중 적은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 상속인의 입증 책임을 완화했다. 또한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그 금액 이상이라 하더라도 입증되지 않은 금액 전체를 상속재산가액에 더하는 게 아니라, 처분 금액 등의 20%와 2억 원 중 적은 금액을 차감한 금액만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다고 추정하여 상속재산가액에 더하도록 하고 있다.
상속세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상속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요구받는 자료가 바로 피상속인이 사망 전 일정 기간 내 재산 처분 대금이나 예금 인출액 등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 거액의 현금 인출 또는 재산 처분을 하거나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근거가 되는 계약서, 영수증, 거래 상대방의 입금 확인에 관한 증빙 자료를 꼼꼼히 챙겨둬야 한다. 물론 때마다 증빙을 갖추기란 쉽지 않고, 가끔은 어디에 돈을 썼는지 밝히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남겨질 자녀들을 위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밤에 더 빛나는 빛축제로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보자!
낭만적인 분위기 속 인생 사진을 남길만한 빛축제 5곳을 소개한다.
청도 프로방스 빛축제
11월 30일까지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빛의 숲, 고흐별빛정원 등을 탐방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
태안 빛축제
12월 31일까지 | 네이처월드
365일 연중무휴인 태안 빛축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자!
눈내림 별내림 불빛축제
12월 31일까지 | 산들소리
서울 근교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주목받는 곳! 트리 앞에서 사진 찍으면 인생샷 완성!
서울랜드 불빛축제 루나파크
12월 31일까지 | 서울랜드
6m 크기의 미러볼과 화려한 빛으로 시작되는
빛축제의 하이라이트! 신나는 빛축제가 펼쳐진다!
제주 허브동산 별빛놀이
12월 31일까지 | 제주 허브동산 파크 내
짙은 허브 향기가 머무는 허브동산에서 즐기는 야간데이트! 다양한 테마공원으로 가족 나들이 가자!
숲속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볼 수 있는 곳, 완주 경천면 싱그랭이 요동마을로 떠난다. 자연이 일상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는 싱그랭이 마을, 산속 가득 서늘한 바람이 쉬어가는 고적한 절집 화암사와 자연 생태 환경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 그리고 마을 주변으로 너른 콩밭이 펼쳐진 완주 싱그랭이 요동마을에서 순한 힐링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을 입구에 들자마자 오래된 노거수가 대뜸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듯하다. 500년 넘도록 마을의 수호신으로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다. 나무 그늘 아래엔 마을 어르신들이 한낮 일손을 멈추고 휴식 중이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홍성태 싱그랭이 영농조합 이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싱그랭이 요동(堯洞)마을은 그 옛날 전라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 잠시 쉬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장승길 옆으로 서 있는 커다란 시무나무는 표시목으로 20리마다 심었는데 완주 고산현이라는 지점에서 딱 8km 지점입니다. 여기에 돌 하나 던져놓고 ‘발병 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 떠나는 곳으로,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헤진 짚신 하나 고을 어귀 나무에 걸어놓고 가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거(新巨)렁이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죠. 그런데 신거마을을 지역 방언 등의 이유로 편안하게 부르는 대로 쓸까 어쩔까 투표를 했어요. 15년 전이죠. 그때 마을 주민들이 정감 있고 부드러운 어감의 싱그랭이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싱그랭이 마을은 사방으로 콩밭이다. 홍성태 이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저기 콩밭에서 새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보이네요. 주변의 모든 밭이 콩밭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산골이잖아요. 천수답이나 관개시설이 안 되어 있어요. 옛날부터 콩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수매가 줄고 콩값이 반 토막이 되기도 했고 판로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두부 공장을 해보자 의견을 모아 매일 두부 만들어내기에 이른 겁니다. 완주는 로컬 푸드가 유명한데 우리 영농조합의 두부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콩밭식당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조법으로 재배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천연 간수를 사용해 조금 거친 듯 고소한 두부로 만든 들깨순두부와 두부전골 등의 두부 요리가 일품이다. 노포 맛집 느낌의 깊은 맛이 난다. 소박한 밥상인 듯하지만 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손끝 여문 솜씨로 정갈하고 맛깔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의 자연 생태
마을의 느티나무와 콩밭길을 지나 화암사로 가는 길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잠깐 멈췄다. 완주의 생태 활동은 이곳 요동마을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아늑한 산 아래 야생화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 앞마당엔 제철 맞은 꽃들이 지천이다.
마을의 자연 생태와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해 마련된 곳, 또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지속 발전이 가능한 자연을 가꾸어나가기 위한 공간이다. 150여 종의 야생화와 복수초, 댑싸리 등이 자라고 있다. 요동마을이 있는 경천면은 완주의 북쪽 지역인데 복수초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전문성을 지닌 에코 매니저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에 따라 식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에 관심 있다면 자연 소재를 이용한 석부작(石附作) 만들기 등의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주변 들판과 언덕에서 자라는 야생화가 자연스럽다. 정원 양옆으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온실은 천장까지 온통 유리로 둘러싸였다. 자그마한 다육이와 꽃을 피운 화분들, 그리고 풀인 듯 자연스러운 식물들과 다양한 모양의 석부작들이 가득하다. 다른 쪽 공간은 씨를 파종하여 키워내는 육묘장이다. 도심에서 자라는 식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마을 사랑을 실천하는 주민들과 싱그랭이 요동마을 생태활동가의 땀과 노력이 엿보인다. 산골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 사랑을 이곳에서 느껴본다.
“초반엔 여러 가지 종을 키웠는데 이제는 몇 가지로 압축해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다알리아가 꽃을 피웠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데다 번식력도 좋아 구근을 키워서 심었어요. 또 허브는 수입 희귀종이 많은데, 사실 저쪽 산모퉁이만 돌아가도 많거든요. 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재배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채취 가공하고 방향제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죠. 5년 전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차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늙은 절집, 느린 발걸음으로 화암사
완주의 싱그랭이 마을에 간다면 가장 먼저 화암사 절집을 갈 생각에 설렌다. 싱그랭이 요동마을이 화암사가 있는 불명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을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화암사는 산속에 숨어 있다고 할 만큼 유난스러움 하나 없이 숲속 깊이 파묻혀 있다. 규모도 소박하다. 단청의 화려함 같은 것도 없다. 수수함에 먼저 마음이 당기는 절집이다.
불명산 화암사에는 신라 왕의 꿈속에서 부처님이 던져준 연꽃으로 딸 연화 공주의 병을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 연꽃이 한겨울 완주 깊은 산봉우리에 피어 있었다고 한다. 불심이 깊어진 왕이 연꽃이 있던 자리에 화암사(花岩寺)라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절이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마을길을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가벼운 등산 코스처럼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입구의 연화 공주 정원 숲길은 1km 남짓으로 완만하다. 여기선 느린 발걸음이 어울린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다 보면 불명산 숲길의 운치에 반하고 만다. 좁다란 숲길이 온통 풀섶이거나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해서 밀림인 듯 착각하게 하는 포인트가 간간이 나타난다. 물론 급경사의 험한 코스와 너덜길도 있지만 이럴 땐 수행하듯 조심히 걸으면 된다. 골짜기의 물소리와 절로 생겨난 작은 폭포를 지나 숲 사이로 화암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끼가 덮인 바위 절벽에 절집이 앉혀 있어서 우선 놀랄 수밖에.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니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잘 늙은 절’이란 말이 떠오른다. 불명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보물 제662호 누각 우화루 누마루에 걸린 목어의 나무 질이 한참 나이 먹어 잘 늙은 절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절 마당을 중심으로 자리한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가 기품 있다. 고적하기만 한 누마루 너머 틈으로 푸르른 신록을 내다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바랄 게 무언가 싶은 순간이다. 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아앙식 구조 건물 극락전 뜰에 털썩 걸터앉아 숲에 파묻힌 화암사를 내다보니 “아, 좋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행 정보
싱그랭이 요동마을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377/ 지번 가천리 892
싱그랭이 에코 정원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474
불명산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지번 가천리 1078
보기만 해도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영화 5편을 추천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2012)
티빙, 웨이브, 왓챠 시청 가능
혼자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 ‘길’은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나게 된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여행.
라라랜드(2016)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서 만난다. LA가 배경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2(2018)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파티를 준비하는 소피는 엄마의 비밀과 뜻밖의 손님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리스 섬에서 열리는 한여름 밤의 파티가 시작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왓챠 시청 가능
일본의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사는 세 자매는 이복동생을 만나면서 가족의 인연을 그려나간다.
네 자매의 추억이 담긴 다이어리 같은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
티빙 시청 가능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암 환자, 가슴속에 간직해 둔 LA의 첫사랑 등을 만나게 된다.
비가 내린다. 비는 감정의 농도와 온도를 높여준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시킨다. 그렇다면 비 내리는 날에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에 장맛비가 내린다. 그래 사람이 거의 없어 적적하다. 비는 쉼 없이 내려 풍경을 변주한다. 미인은 주렴 사이로 보라 했던가. 그래야 운치가 돋는다 했다. 미인뿐이랴. 주렴처럼 드리워지는 빗발 사이로 보이는 광한루원의 풍경 역시 맑은 날과 달라 오히려 이색 정취를 자아낸다. 비에 흥건히 젖은 누정과 수목의 표정을 주시할 만하다. 육안보다 심안으로 봐야 할 것만 같은 내향성이 서려 있다.
광한루원은 남원시의 자랑거리이자 관광명소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유명해진 건 광한루원이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등장해서다. 사람들은 흔히 광한루원과 ‘춘향전’을 동격쯤으로 여긴다. 그래 광한루원에 와서 춘향과 이몽룡이 남긴 열애의 행적을 더듬는다. 그러나 광한루원의 본질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의 한 배경 장소로 쓰였을 뿐, 본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원림(園林)의 귀감이라는 데에 광한루원의 정체성이 있다.
사실관계가 그러하지만 흔히 간과한다. 광한루원에 와서 원림에 꾹 방점을 찍고 답사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 춘향의 상열지사를 염두에 두고 풍경을 바라본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흥을 즐길 만한 조선 원림이 엄연히 이곳에 있으나 ‘춘향전’을 표상하는 구조물들이 혼재해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관점의 조절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낸 셈치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그게 광한루원을 담뿍 마음에 담는 방법일 테다.
광한루원은 관아가 주도해 지은 관아 원림이다. 관아 원림이란 고을의 관원이나 시인 묵객들이 연회와 풍류를 즐긴 야외 정원이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원림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름이다. 광한루의 스케일은 매우 웅장하다. 위엄이 넘친다. 상징과 지향을 담은 사물들의 디테일로 아름답기도 하다. 정원과 연못 역시 호방하고 수려하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누각이다. 남쪽에서는 간결한 구조로 보이지만, 북쪽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장식적인 외관에 눈길이 쏠린다. 거기에 세 겹의 작은 지붕 아래로 층계를 설치한 회랑이 있어서다. 월랑(月廊)이라 부르는 묘한 구조물이다. 이걸 조성한 이유가 있다. 광한루는 초창 이후 중수를 거듭했다. 그 와중에 정자의 총량이 너무 과중해 북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이 난처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계단이 있는 회랑을 덧대어 지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여느 정자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한 형태미와 기능성을 확보하게 됐다. 이와 같은 건축적 개성과 위트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한루엔 당대 문호들이 쓴 시문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멋들어진 정자가 있으니 드나든 시인이 한둘이었으랴. 여기에서 붓에 먹을 적신 묵객이 한둘이었으랴. 호남을 지나는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고 한다. 지리산 솔바람이 드나드는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이 자주 오갔으리라. 끽다와 음풍영월이 있는 풍류도 다반사였을 테고. 조선의 문인 임제가 광한루에 올랐을 때엔 매화라도 피었나? 매화 가지에 달이라도 걸렸나?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깬 채 밤이 깊어졌다고, 함께 노닌 사람과 헤어질 땐 꽃이 지더라고, 임제는 그렇게 시로 노래했다.
광한루는 세종의 총예를 받았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 때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에서 유래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다!”라고 찬탄한 데에서 비롯됐다. 정인지가 괜히 달나라 운운한 게 아니다. 광한루가 애초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지어졌으니까. 즉 광한루는 천상의 궁궐인 셈이다. 옛사람들은 상상력을 발동해 결국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에 모래알처럼 무수히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넓고 유려한 연못이 바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 가운데엔 섬 세 개를 만들어 삼신산을 표상했다. 광한루원의 기저엔 이렇게 신선 사상이 깔려 있다. 도교, 유교, 음양론, 풍수지리 등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상징 구조들로 어우러져 있다. 안팎이 두루 광활한 세계관으로 상통하는 원림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앞줄에 설 조선 정원이다.
신선을 마음에 들여놓고
다시 빗속을 운전해 정자를 찾아간다. 지리산 기슭,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 있는 퇴수정(退修亭)이다.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 1825~1907)가 1870년에 지은 누정이다. 그는 토목건축을 관장하는 벼슬살이를 하다 은퇴하고 여기 후미진 산골짝에 은거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결국 자연으로 흘러가는가? 퇴직 뒤엔 정해진 순서처럼 산림에 여생을 의탁했던 선인들의 유전자가 후세까지 이어지나? 박치기의 고향은 함양군 안의면이다. 그러나 퇴직 후엔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박치기가 지은 퇴수정의 모습이 그의 선조 박명부가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지은 농월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닮아 흥미롭다. 경치 좋은 냇가에 지은 정자라는 점에서도 퇴수정과 농월정은 유사하다. 경관을 보는 취향과 정자를 짓는 경향에 집안 내림이라는 게 있지 않았나 싶다.
박치기는 널리 이름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근사한 정자를 지어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전공이 건축이었으니 퇴수정에서 구현된 건축 미학의 완성도를 보지 않고도 가늠할 만하지만, 실제 이 정자는 빼어나 인상적이다. 당대 누정 건축의 첨단 기술력으로 빚어낸 작품일 수도 있다. 명품 정자라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정자의 규모는 작아서 소박미가 물씬하고, 흠결 없는 비례로 조화롭다. 은근한 세련미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퇴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은 정자다. 가령 배흘림기둥을 구사해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다.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막돌 초석 대신 사각 다듬돌을 놓은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건축 공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을 꼽자면 훤칠한 냇물과 동행하는 정자라는 점이다. 지리산에서 굴러 나온 계류가 정자의 코앞을 흘러가는 게 아닌가. 기기묘묘한 물가의 암반들과 물속의 바위들까지 퇴수정의 동아리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숲과 물 사이에 들어앉은 정자다. 자연과 긴밀하게 얽힌 집이다. 박치기의 생리는 초야를 닮아 거친 나물밥만으로도 자족했다. 퇴수정 마루에 올라서는 곧잘 객과 더불어 술과 거문고를 즐겼다지. 그는 신선을 닮고 싶어 산수에 묻혀 산 인물이다. 속세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안에 신선을 들여놓고 자연에서 노닐 경우엔 경지가 달라진다. 신선을 흠모한다는 건 이미 도(道)에 밝다는 뜻일 테니까.
김주완 남원문화원장
“남원 문화의 성장 지리산의 영향력 덕분”
예로부터 남원을 일컬어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의 고을’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땅이며, 비옥한 들판이 펼쳐지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저 옛날의 농경사회 시절,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풍부해 의식주가 넉넉할 경우엔 문화마저 덩달아 융성했다. 남원이 딱 그랬다. 농업이 발달한 덕분에 향토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현대에까지 상속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수두룩한데, 이를 견인차로 삼아 남원은 문화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김주완 남원문화원장의 얘기는 이렇다.
“농업경제의 힘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먹고사는 게 무난해 예술이 발흥한 거다. 삼국시대부터 남원이 교통의 요충이었다는 점도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교통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외부의 다양한 문화 유입이 활발했으니까.”
남원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지리산이 남원 문화에 미친 영향도 클 것 같다.
“남원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어머니 산’이다. 삶의 희망과 안식을 지리산을 통해 얻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원의 문화예술 역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성장했다고 본다. 남성적인 판소리 동편제를 완성한 가왕 송흥록의 성취는 지리산이 주는 정신적 영향력에 의해 가능하기도 했다. 남원은 문학의 요람이다. 고전소설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이자 발상지이며,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남원 사람이다. 이 모든 문학적 성장의 뿌리 역시 지리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6년째 남원문화원을 이끌고 있다. 그간에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큰 성과 하나를 소개하겠다. 과거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베 짜는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은 이 소녀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전말기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사단을 꾸려 일본 현지를 찾아가 여러 기록을 뒤지는 등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마침내 영상 다큐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
매우 뜻깊은 발굴 사업을 성공시킨 셈이다. 소녀는 포로로 끌려갔으나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일어섰던 것 같다. 자신이 지닌 직조(織造) 재능을 일본 지역민들에게 전수해 직조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아닌가. 소녀의 사후, 일본인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추모비를 세웠다 한다.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의 명민한 자질에 감동할 수밖에.
소녀 관련 발굴 자료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다큐 상영은 물론, 그림책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연극이나 창극, 혹은 소설로 가공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할 것이다.”
문화원마다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화원의 사업과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 개발에 고심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엔 어떤 기법이 필요하다 보나?
“외부에서는 문화원이 주민들의 참여나 관심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고 본다. 미진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열린 문화원’을 지향한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문화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을 ‘팬덤’이라고 한다. ‘팬덤’은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팬덤’의 영향으로 산업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을 ‘팬더스트리’라고 부른다. 요즘 ‘팬더스트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K-팝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팬덤 분야의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K-팝 아이돌의 해외 콘서트 투어나 관련 상품 매출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팬더스트리의 예시로 들 수 있다. 팬더스트리에는 팬이 좋아할 만한 상품, 팬덤 플랫폼, 공연이 주로 활성화 되어있다. 가수의 팬더스트리 상품으로는 응원봉, 앨범, 인형 등이 있고, 팬덤 플랫폼에서는 스타에 관해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마련한다. 즉 팬더스트리는 팬과 스타를 이어주는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회사 ‘라인프렌즈’와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직접 만든 캐릭터 ‘BT21’은 팬더스트리의 성공적인 사례다. BT21의 여덟 개 캐릭터는 인형, 문구, 의류 등의 상품에 그려져서 판매된다. 또 단편 애니메이션 연재,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모바일 게임 등에도 활용된다. BT21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은 전망이 기대되는 아티스트와 협업하기를 원한다. 팬더스트리가 단순히 팬을 위한 서비스 같아 보여도, 글로벌 판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인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중년층 팬덤 플랫폼
2019년부터 방영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의 열풍으로 중년 팬덤 문화도 두터워졌다. 팬덤 플랫폼 ‘FFAN’ 같은 사이트나 ‘트롯픽’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은 중년 팬덤을 고려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중년층 이용자의 영향력이 중요하다. 오공훈 대중문화평론가는 “팬덤 플랫폼이 발전함에 따라 중년층도 적극적으로 팬더스트리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중년층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관련 플랫폼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아티스트의 소식이나 이벤트 등을 알 수 있는 ‘FFAN’의 경우, 팬의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출이 발생하는 온라인 실시간 팬미팅 및 티켓•상품 판매 등을 곳곳에 넣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트롯픽’은 투표수 1위 가수에게 서포트 기사 발행과 가수의 영상을 대형 옥외광고 전광판에 송출해준다. 앱에 매일 출석할수록 투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어서 팬은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중년층 소비에 따른 팬더스트리
요즘에는 중년층 팬덤의 지갑을 열 만한 산업이 확장되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중년층의 소비 패턴을 파악한 기업들은 주로 고가의 상품을 내놓는다. 쌍용자동차는 ‘임영웅 효과’로 G4 렉스턴 매출이 53% 증가하며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놀랍게도 임영웅은 이후에 고가의 상품 광고를 찍지 않겠다고 밝혔다. 팬은 스타를 보고 따라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팬들의 경제적 부담을 우려한 것이다. 스타가 고가 상품 광고를 거절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특이 케이스다. 실제로 자동차 광고 이후에는 음식과 헬스·뷰티 제품 등의 모델을 주로 맡았다.
가수 김호중의 6박 7일 크루즈 여행 티켓도 완판된 적이 있는데, 중년층 팬더스트리 시장에서는 고가의 상품과 아티스트의 협업 사례가 점점 이어지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오공훈 문화평론가는 “중년층 팬덤 산업이 커지는 추세에 따라 중년층의 팬더스트리가 K-팝 팬더스트리와 쌍벽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