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동지이자 친구였으며 연인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아내는 여전히 열심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You should keep going.” 당신은 계속 그렇게 살아 달라는 것이 남편의 바람이었다.
사랑스러운 사회운동가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클래식 음악회 준비로 정신이 없어요. 오후에는 신문사에 음악회 기사를 전달하러 가야 해요. 오늘도 너무 바쁘네요!”
그녀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3년 전, 애너하임의 한 노인병원에서 김익창 박사와 그레이스 김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김익창 박사는 파킨슨병으로 상당히 힘들어하면서도 아내와의 인터뷰를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당시 인터뷰 주제는 ‘부부’였는데 김 박사는 “부부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남편은 나를 커뮤니티 액티비스트(사회운동가)라고 별명처럼 불렀어요. 조용하고 신중했던 그와 달리 나는 말도 많았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곤 했는데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해줬지요. 우리는 6·25전쟁을 눈앞에서 겪은 세대입니다. 모두가 못 배우고 가난한 시절에 그래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우리는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소외받는 곳,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늘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1931년 중국 상해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해방이 되던 해 부친의 고향이었던 평안북도로 돌아왔고, 남북으로 갈리게 되자 다시 38선을 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막내 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은 그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상해에서 사업을 했던 부친은 임시정부에 돈을 보내며 독립운동을 도왔고, 주위에 고학을 하는 한국 유학생이 있으면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다. 어머니 역시 그 시대에 평양신학교를 나온 신여성으로서 이웃과 나누는 것을 평생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고.
“여고 시절 내 꿈은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서 슈바이처 박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화여대 의대로 진학했지요. 그런데 입학한 그해 6·25전쟁이 터졌어요. 산속으로 피난을 갔다가 와 보니 집이며 모든 것이 폭격으로 사라져버렸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군에 입대해 총 들고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어린 아가씨가 얼마나 맹랑했겠어요. 그때 영락교회를 다녔는데 목사님이 하루는 보여줄 곳이 있다면서 저를 데리고 가신 곳이 있어요. 바로 고아원이었죠.”
폭격을 맞고 부서진 학교 건물에 임시로 마련된 고아원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밤낮으로 울부짖었고 아프고 굶주린 아이들을 돌봐줄 손길은 없었다. 그렇게 김씨는 여군 대신 고아원 선생님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김씨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입학한다.
“등록금을 댈 형편이 아니었어요. 서울대 사범대가 등록금도 싸기도 하고 모자라는 교사를 길러내기 위해 장학금도 많이 준다고 하니 좋았지요. 또 고아원 선생을 하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도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으니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요?”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그녀는 남학생들이 데이트 신청이 쇄도할 만큼 인기가 있었지만 모두 퇴짜를 놓아 별명이 ‘NO’였을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고 한다. 그중 유일하게 ‘YES’를 한 것이 남편 김익창 박사의 오페라 데이트 신청이었다고. 생전 김익창 박사는 인터뷰 때마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탁월한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아내를 향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1956년, 김익창 박사가 미국 유학을 떠난 이후 6년 동안,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그 사이 김씨는 숭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용산직업학교를 세워 불우한 형편의 아이들을 지도했다.
“6년 동안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았는지 몰라요. 삶에 대한 가치관, 철학, 문학, 음악, 예술,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지 알게 되었죠. 그 시간 동안 다져진 신뢰는 남녀의 사랑 그 이상이었어요.”
‘Dear, Grace’
1962년, 마침내 두 사람은 미국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김익창 박사가 샌프란시스코 마운트 자이언(Mt. Zion) 병원에서 인턴십을 하는 동안 두 아들 데이비드와 다니엘이 태어났고,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일해야 했다. 잠을 잊고 살아야 했던 고된 시절이었다.
“대단한 정신력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3년 만에 박사과정을 끝내더라고요. 레지던트를 마칠 무렵 남편이 내게 공부를 해보라고 제안했어요. 너무 기뻤죠. 내가 너무나 원하던 거였으니까요.” 김씨는 그 길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에 진학, 1969년 상담학과 아동발달학으로 교육 석사학위를 받는다.
캘리포니아의 진취적인 교육 도시 데이비스에 정착하면서 부부는 본격적으로 소수민족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게 된다. 김익창 박사는 임상정신과 의사로서 평생 소수민족의 정신의학에 관심을 두었다. UC데이비스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문화가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의료진들의 이해’를 강조하며 대학에 강좌를 만들고 끊임없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다문화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 잡았고 그의 노력으로 현재 미국 정신의학협회에는 ‘화병’이 정식 병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김씨는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언어와 문화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소수인종 학부모들과 학교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도록 앞장섰다.
특히 1980년부터 시작했던 미주 한국일보의 질문과 응답 형식의 칼럼 ‘Dear, Grace (그레이스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부모들이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려움이 많다고요.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궁금한 것을 편지로 보내면 답을 주겠다고 했는데… 세상에, 편지가 어마어마하게 와서 너무 놀랐어요. 궁금한 것은 많은데 어디에 물을 곳이 없었던 거예요. 한국말을 하는 선생님이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학교와의 마찰, 인종문제를 비롯해 마약, 섹스, 가출 문제까지. 그레이스 김은 한인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고 칼럼은 1990년까지 계속됐다.
나눔, 그 위대한 유산
이들 부부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기부’에 대한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입양아 단체, 아시안 청소년 장학재단 등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고, 무료 진료와 상담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던 부부가 은퇴하면서 제대로 일을 치른 것이다.
2006년 김익창 박사가 35년간 몸담았던 UC데이비스 대학에서 나왔을 때, 이들은 캘리포니아 실비치의 한 은퇴촌에 작은 집을 마련한 뒤 나머지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20여 개 단체에 전달한 기부금은 적게는 5만 달러, 많게는 25만 달러에 이르렀다. 모두 익명으로 한 기부였다. 이 놀라운 기부는 당시 UC데이비스대학에서 이들이 내놓은 기부금 25만 달러로 ‘다문화정신의학센터’를 만들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사실 그만한 목돈이 생긴 데는 숨은 사연이 있어요(웃음). 젊은 시절 내가 하도 많이 기부를 하고 다니니까 남편이 매달 월급의 반만 받고 나머지는 은퇴연금으로 저축을 하자고 한 거예요. 은퇴할 때 그렇게 돈이 쌓인 줄 몰랐어요. 평소 돕고 싶었던 단체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는데 얼마나 신이 나던지. 남편과 아주 펑펑 잘 썼어요!”
고마운 것은 부모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준 두 아들이었다.
“그때 아이들이 한 말이 잊히지 않아요. 돈이 필요하면 지금 이야기하라고 했죠. 두 아이 모두 자신들을 키워준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며 원하는 곳에 다 쓰라고 하더라고요. 아, 우리가 아이들을 잘 키웠구나. 갑절로 행복해지더라고요. 두 아들 내외 역시 어려운 곳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데이비드 김씨가 지난 오바마 정부의 교통부 차관보에 임명됐을 때, 그가 남긴 말이 있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마음만 있다면 언제나 남을 도울 힘이 있다고요.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다른 방식으로 도울 수 있다는 거죠. 바로 그 나눔의 정신이 우리 가족을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시아인은 돈을 많이 벌어도 미국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의 삶은 제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부모님의 기부가 저를 성공적으로 키운 셈입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가와 유학생을 돕던 부모에게서 김씨에게로, 이것이 다시 김씨의 아들들에게로 이어진, 참으로 위대한 유산이다.
To my forever love…
‘김 여사의 해피 에너지’는 은퇴촌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씨는 입주한 은퇴촌 실비치 레저월드의 한인회 회장이 되어 커뮤니티 간 화합에 앞장섰다. 한인 노인들을 위해 각종 세미나와 교양 프로그램을 속속 만들어내는가 하면 지역구 선거에 한인 후보자가 나오면 발벗고 나서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물론 그 뒤에서 묵묵히 김씨를 돕는 사람은 남편 김익창 박사였다.
이 무렵 김익창 박사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부부에게는 예상치 못한 슬픔이 찾아왔지만 이 또한 차분히 받아들였다.
“한동안 멍했지요. 왜 이런 병에 걸리게 됐을까. 젊었을 때 잠을 너무 못 자고 힘들어서였을까…. 하지만 남편은 곧 받아들이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어요. 파킨슨병은 관리만 잘하면 당장 어떻게 되는 병이 아니라면서요. 그렇게 8년을 투병했지요. 그 사이 자신의 인생을 덤덤히 돌아보며 두 권의 자서전도 집필했고요.”
병세가 악화되어 노인병원에 입원하고 2년 동안, 부부는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아내는 매일 아침 예쁘게 화장을 하고 직접 구운 쿠키를 만들어 남편을 만나러 갔고, 남편도 눈을 뜨면 아내를 기다렸다. 전립선암이 발병했을 때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김 박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아내를 맞아주었다. 병원 스태프에게 ‘She is my forever love’라고 소개해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편지 한 장을 건네더라고요. ‘결혼해줘서 고맙고 행복했다. 아파서 미안했고 먼저 가서 또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슬픈 삶을 살까봐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끝에는 늘 하던 말, ‘my forever love’라고 적어놓았더군요. 마지막 러브레터였어요(웃음).”
김익창 박사가 떠난 후,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문득 자신이 이렇게 될까봐 걱정하며 병실에서 간신히 손을 움직여 편지를 썼을 남편이 떠올랐다.
“아니다.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내 모습으로 끝까지 열심히, 즐겁게 살자. 그렇게 결심했어요. 나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은퇴촌에서 음악회도 열고 노래도 부르고 세미나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러다 남편이 너무 그리울 때는 조용히 말합니다. ‘하나님 나는 준비되었으니 이제 데려가셔도 됩니다. 루크를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요(웃음).”
오랜 대화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열심히 포즈를 취해주는 그녀의 미소가 캘리포니아 햇살만큼이나 화사하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이런 모습을 남편은 사랑했으리라.
“Good to see you!”
쿨하게 인사를 남기며 보무당당히 사라지는 ‘유쾌한 그레이스씨’. 그녀와의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소동파는 황주에서 매달 아주 적은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식솔들의 의식주는 예전에 해두었던 저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지출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는 매달 초 저축했던 돈 가운데 4000~5000개의 동전을 꺼내서 한 꿰미에 150개씩 나눈 뒤, 집 대들보에 걸어놓고는 매일 한 줄씩 풀어서 사용하였다. 가능하면 하루의 지출을 한 줄의 동전으로 제한하려고 했다. 만약 그날 저녁에 몇 개의 동전이 남으면 단지에 넣고, 그다음 날에는 다른 동전 줄을 풀어서 사용했다. 한 달이 지나면 단지의 동전을 정산해서 손님들이 올 때 접대비용으로 사용하였다.” (스야후이, )
요즘 개인형 퇴직연금(Individual Retire ment Pension, 이하 IRP)이 금융계의 핫이슈다. 지난 4월 퇴직연금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 26일부터 소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후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공적연금의 보장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공적연금 보장수준을 높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 부조에 의존하는 공적연금의 특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서 에서 “사회적 미래는 정해져 있을지언정 개인의 미래는 매 순간의 판단과 선택과 노력으로 ‘정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학연금을 받게 될 20년 뒤에는 인구구조상 사학연금 급여가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며 별도의 노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리 사회적 미래가 암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도 개인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44세에 좌천된 소동파가 철저하고 체계적인 절약과 황무지를 개간해 몸소 농사를 지으며 고난을 헤쳐 나갔듯이(전원시를 많이 쓴 중국의 고대 문인들 중 장기간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연명과 소동파 둘뿐이다),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고 욜로(YOLO)만 부르짖다간 언덕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같은 후반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를 최소화하고 우리의 인생을 만개시키는 데 IRP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출산·고령화시대 자조노력연금의 대명사로 우뚝 설 IRP를 남이 아니라 내 잔칫상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철저히 파보고 스마트하게 이용해야 한다.
IRP란 무엇인가?
원래 IRP는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 축적해나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문용어로는 통산장치(portability)라고도 부른다. 애초에 IRP는 퇴직(일시)금을 수령한 퇴직 근로자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한 재직 근로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7월 26일부터는 자영업자,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와 1주 소정근로시간(所定勤勞時間)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 등의 퇴직급여제도 미설정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공무원·군인·사립학교교직원·별정우체국직원 등 직역연금제도 가입자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IRP의 문호가 활짝 열린 것이다. 사실상 모든 취업자가 IRP에 가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2017년 6월 말 현재, IRP 가입 건수는 226만 6000건이고, 적립금액은 13조6928억원에 달한다. 적립금액 기준으로 2016년 성장률은 14.1%로 다소 주춤했지만 2015년과 2014년에는 각각 44.3%와 24.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가입 대상이 크게 확대됨으로써 이전 수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IRP의 높은 성장률과 자조노력연금 대명사의 역할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IRP에 해당하는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가 이미 2010년에 DC(확정기여)형을 추월해 퇴직급여제도 중 가장 큰 적립금 규모를 자랑한다. 2017년 3월 말 미국 IRA의 적립금 규모는 8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IRP를 iDeCo라고 부르는데, 2017년 6월 말 가입자 수는 54만9943명에 불과하지만, 최근 자영업자는 물론 학생·전업주부·공무원·회사원 등 20세 이상 60세 미만 국민이면 누구나 IR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가 대폭 확대되었다. 명실상부 전 국민적 노후준비수단으로 격상된 것이다. 바야흐로 IRP가 글로벌 대세로 부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결국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지금 당장 살림이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도 노후는 중요하다. 일일 생활비를 아껴 단지에 모아놨다 손님 접대비로 사용했다는 소동파처럼 돈이 부족한 사람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IRP에 가입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바로 압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민사집행법에서는 급여채권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연금채권은 전액 압류금지채권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4년 1월 23일) 이후 퇴직연금은 급여압류 대상채권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IRP는 퇴직연금의 한 종류다.
IRP에는 어떤 혜택이 있나?
IRP의 가장 큰 혜택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금융상품에 가입하면 발생한 이자(배당 포함)에 대해 15.4%의 이자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IRP에 가입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3.3~5.5%의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이자소득세만큼 적립액이 늘어나고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IRP에는 연금저축과 합산하여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보통 세액공제 한도액인 700만원까지 납입을 권유받거나 그렇게 납입하는 가입자가 많은데, 세액공제액을 초과하는 1100만원을 잘 활용하면 의외의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1100만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는 못하지만 소득세를 절감할 수 있고, 중도해지나 연금을 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요즘 보기 힘든 비과세 상품인 셈이다.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분들은 IRP 납입 최고한도액을 적극 활용하면 노후가 든든해질 것이다. 참고로 연금소득세율은 연령별로 다른데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인 경우는 5.5%, 70~79세는 4.4%, 80세 이상은 3.3%다. 단, 연금소득자가 70세 미만이더라도 종신연금을 신청하면 4.4%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IRP의 두 번째 혜택은 연금저축과 합산해 연간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IRP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400만원까지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IRP에 가입하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근로자 등 급여소득자의 세액공제율은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6.5%를, 이를 초과하는 사람은 13.2%를 적용받는다. 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세를 적용받는 사람들의 세액공제율은 40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16.5%, 초과하는 사람은 13.2%다. 연간 700만원을 납입할 경우 연말정산 때 16.5%를 적용받는 사람은 115만5000원을, 13.2%를 적용받는 사람은 92만4000원을 돌려받는다([표1] 참조). 쏠쏠하지 않은가?
IRP에 대한 세제혜택은 또 있다. 바로 퇴직금을 IRP 계좌에 넣어두고 운용하다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나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연금수급 자격에 대해선 [표2] 참조). 많은 사람이 퇴직할 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간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금 규모와 근속기간에 따라 0~28.6%의 퇴직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실제로 받는 퇴직금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그러나 퇴직금을 IRP 계좌로 이체한 뒤 연금으로 받게 되면 퇴직소득세율의 70%만 연금소득세로 납부하면 된다. 퇴직소득세 대비 연금소득세가 30% 절감되도록 소득세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하더라도 60일이 경과되지 않았다면 이미 납부한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기관을 방문해 IRP 계좌를 개설한 뒤 수령한 퇴직금을 이체하면 퇴직한 회사에서 원천징수해둔 퇴직소득세를 IRP 계좌에 입금시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퇴직금 중 일부를 사용했다면 남은 금액만 IRP 계좌에 입금해도 입금비율에 맞춰 퇴직소득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IRP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세액공제한도를 초과해 납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세액공제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를 면제받는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다음 해에 세액공제를 신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총급여가 5500만원을 넘는 근로자가 2017년에 1000만원을 납입했다면 당해 연도에 700만원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고, 2018년도에 300만원을 이월신청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보너스를 받을 경우에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다.
IRP에 가입할 때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바로 중도에 해지할 경우 이미 세제혜택을 받은 납입금액은 물론 운용수익까지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망, 해외 이주 등 세법상 부득이한 인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 인출액에 대해 세율이 낮은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된다. 사유 발생일 이후부터 6개월 이내에 증빙서류를 갖춰 금융회사에 신청하면 된다. 한편 IRP에 가입해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할 때 연금수령한도를 초과해 수령하는 경우 한도초과금액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연금수령한도는 연금개시 신청일 당시의 적립금을 ‘11-연금수령연차’로 나눈 뒤 1.2를 곱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연금개시 신청일 현재 IRP 적립금 평가액이 5000만원이면 첫해 연금수령한도는 ‘5000만원/(11-1)×1.2=600만원’이 된다.
IRP 가입과 적립금 운용은 어떻게?
절세상품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절세덩어리인 IRP는 매우 매력적이다. IRP 가입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신분증과 [표3]과 같은 필요서류를 준비해 금융기관을 방문하면 그만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온라인으로도 가입할 수 있으니 업무시간 중 금융기관을 방문하기 힘든 사람들은 이를 활용하면 된다. 계좌를 개설할 때는 0원으로도 가능하다. 계좌를 개설했으면 그다음은 계좌에 들어갈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표4]에서 보는 것처럼 IRP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상품도 있다.
특히 투자형 상품을 선택할 때는 수익률과 리스크를 잘 따져야 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현재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수익률만 보고 펀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의 수익률과 함께 수익률 추이,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 수준, 펀드운용 시스템, 자산배분, 수수료 수준 등을 잘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금융기관별 수수료율과 장기(5년/8년) 연평균 수익률은 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에 공시되어 있다.
만약 이미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최근 나빠졌다면 다른 펀드로 갈아타자. 이를 위해선 최소한 3개월에 한 번씩은 수익률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손성동(孫盛東)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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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 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지 8년째인 최영옥(72세, 여)씨는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3년 전에 명예퇴직을 하고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큰아들(48세) 때문이다. 부족한 경험과 자본 탓에 시작부터 불안해보였던 큰아들의 사업은 결국 1억원의 부채를 남기고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최영옥씨의 큰아들은 어머니에게 부채탕감에 대한 도움을 요청해왔다. 큰아들의 요청을 받은 후부터 최영옥씨는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돈도 돈이지만 큰아들의 도움 요청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유독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큰아들 걱정과 함께 아들을 약하게 키웠다는 자책감이 최영옥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게다가 다른 자녀들의 눈치까지 은근히 신경 쓰이기 시작한 최영옥씨는 노후생활의 가장 큰 위험 요소가 자녀라는 말을 절감하며 재무상담을 의뢰해왔다.
최영옥씨 현재 상황
최영옥씨의 자녀들은 모두 독립해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있다. 큰아들은 큰며느리(43세, 회사원), 손자와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고, 작은아들(46세, 회사원)은 작은며느리(45세, 사회복지사), 두 손녀와 서울에 살고 있다. 막내인 딸(43세, 교사)은 사위(45세, 은행원), 손자 손녀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최영옥씨의 현재 재산 현황은 [표1]과 같으며 월평균 수입은 국민연금의 유족연금 40만원과 임대료 200만원, 그리고 자녀들로부터 60만원을 받아서 합계 300만원이다. 그리고 월평균 지출금액은 생활비와 보험료 및 각종 공과금과 세금으로 250만원을 지출하고 월평균 50만원씩을 저축해두었다가 경조사 등 비정기적 지출에 사용하고 있다.
최영옥씨는 갈수록 돈 문제 같은 민감한 일들을 혼자 현명하게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 큰아들 문제를 겪으면서 남은 생을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음의 고민거리가 해결되기를 원하고 있다.
① 큰아들의 부채 1억원 상환이 자녀에 대한 마지막 경제적 지원이기를 바란다.
② 노화된 건물관리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③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집을 옮겨 나들이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싶다.
④ 노후생활비의 위험 요소인 의료비 지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싶다.
⑤ 안정적인 연금소득을 확보하고 싶다.
⑥ 본인 사후에 자녀들이 재산 문제로 다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최영옥씨 재무진단 제안
건물매각 최영옥씨는 건물관리와 관련된 부담으로 벗어나서 안정적인 연금소득을 확보할 요량을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양도소득세를 차감하고 난 후 5억5000만원의 금액 중에서 각 자녀들에게 1억씩 해서 3억원을 증여하기로 했다. 성인자녀의 경우 1억원 이하면 증여세율이 10%이며 증여일로부터 3개월 내에 신고납부를 하면 세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증여세는 증여를 받는 자녀들이 각자 납부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영옥씨는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고 교통이 편리한 강남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기존의 아파트를 매각하고 건물매각대금 중 잔여금액 2억원을 보태어 시가 6억원의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5000만원은 이사와 관련된 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주택연금가입 최영옥씨는 부족한 연금소득을 확보하기 위하여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최영옥씨가 서울 강남지역으로 집을 옮겨 주택연금을 개시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생활의 편의성 고려와 함께 다른 경제적 이유도 있다. 최영옥씨가 주택연금을 수령하다가 사망하게 되면 사망 당시에 주택의 매도가격이 연금총액과 이자 등 비용을 상계하고도 남았을 때 자녀들이 그 잔액을 가져갈 수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되어 연금총액과 비용이 주택의 매도가격보다 더 높으면 자녀들이 주택상속을 포기하면 된다. 최영옥씨는 본인이 이사하게 될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72세인 최영옥씨가 6억원의 아파트를 주택연금으로 활용하면 매월 200만원가량의 소득을 종신토록 수령할 수 있다. 매월 200만원의 금액은 기존의 건물임대소득과 수치는 같지만 질은 다르다. 최영옥씨는 더 이상 건물의 공실 문제나 건물보수 문제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업소득이 없어졌기 때문에 월 30만원 가까이 되던 국민건강보험료와 소득세 등을 더 이상 납부하지 않게 돼 실직소득은 더 늘었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등록을 해도 된다.
의료비 지출 위험에 대한 대비
노후생활비의 대부분이 의료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 의료비는 노후생활의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 요인 중 하나다. 위험관리 전문가들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4가지의 위험관리 방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데 이를 의료비지출위험관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영옥씨의 위험이전 방법
최근에는 피보험자 연령기준으로 75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보험들이 민영보험사에서 출시되고 있다. 현재 별다른 병력이 없는 최영옥씨는 100세까지 암, 뇌출혈, 심근경색 및 골절 시 진단금이 보장되고 입원 시에는 약간의 입원비가 지급되는 보험을 가입함으로써 평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보완했다. 최영옥씨가 매월 부담하는 보험료는 월 10만원(10년 단위 갱신)이다.
최영옥씨의 위험보유 방법
최영옥씨의 의료비 지출에 대비한 자가보험(위험보유)은 납입이 완료된 종신보험의 적립금이다. 평생토록 보장하는 종신보험의 특성상 종신보험의 적립금은 다른 보장성 보험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00년대 중반에 최영옥씨가 가입한 종신보험은 유니버설 기능이 있어 보험을 해약하지 않고도 적립금을 인출할 수가 있다. 다만 적립금을 인출하면 인출한 금액만큼 사망보험금은 줄어든다. 대신 이자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최영옥씨의 위험축소 방법
최영옥씨는 평소 운동과 식단관리를 꾸준히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최영옥씨의 위험회피 방법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 논의되고 있다. 연명의료란 환자의 주된 병적 상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혹은 치료에 의해서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환자의 상황이나, 치료에도 불구하고 영구적 무의식 상태나 집중적인 의학적 치료에 의존해야만 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비록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다는 전문가의 판단이 있어도 자식이 먼저 나서서 부모의 연명의료를 중단하자고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평소 의식이 있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밝혀둘 수 있다.
우리나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됨에 따라 2018년 2월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최영옥씨는 의료비 지출 위험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무관심 속에 성장하는 퇴직연금
사회보장제도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도입되었고, 연금저축으로 일컬어지는 세제적격 개인연금이 도입된 것은 1994년이다. 퇴직연금은 이보다 11년이나 늦은 2005년 12월에야 도입되었다. 퇴직연금 도입까지 걸린 시간이 길어진 것은 퇴직연금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조정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각자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겼고, 그만큼 법안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제도 도입 초기의 치열한 관심과 달리 퇴직연금이라는 열차가 괘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열의는 식기 시작했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전면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3년이나 걸렸고, 2차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통과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열의가 식지 않았다면 과연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토록 오랜 낮잠을 즐길 수 있을까? 아직도 퇴직연금의 기본개념조차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큰 파고 앞에서 위기에 처해 있는 100세 시대의 노후생활을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노후준비가 국민적 스트레스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준비 핵심 축의 하나인 퇴직연금이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 배임행위라 여겨질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퇴직연금시장은 높은 성장세를 구현해왔다. 2016년 3분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30조원으로 전년 동기(111조원) 대비 17.1% 증가했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012~2015년의 성장률은 20%를 훌쩍 넘어선다([표1] 참조).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성장률이 아닐 수 없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급성장!’ 불황형 흑자를 떠올리게 한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문제는 성장률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심의 불황과 시장의 정체’라는 불황형 적자의 시대가 올까봐 걱정스럽다.
퇴직연금,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
기업·근로자·금융기관 등 퇴직연금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열의가 식는다고 해서 개인 및 사회에 대한 퇴직연금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제반 상황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의 영향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늘어날수록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와 늘어만 가는 후반 인생을 생각하면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땅한 신수종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도성장을 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금융기관에게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다.
무엇보다도 퇴직연금은 가장 쉽고 효율적인 노후준비 방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적잖은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별도의 자금을 염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다르다. 퇴직연금에 적립되는 부담금을 기업이 내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쌓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 손댈 필요가 없는 셈이다. 빠듯한 가계 상황을 걱정하지 않고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쉽고 좋은가! 또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적립금 운용수익에 대한 세금이 인출하는 시점까지 이연되는 등 많은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다. 세금으로 내야 하는 돈이 다음 해 원금에 추가되니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가 극대화된다. “그까짓 이자가 얼마나 된다고?” 하며 얕보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한두 해 일하고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보험료를 내고도 운용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운용 방법을 유연하게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으니 노후자금을 불리는 방법으로 이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찾기 힘들다.
근로자들이 이런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이 입고 있으면 별무소용이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 내 손에 넣어야 비로소 내 옷이 되는 법이다.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 아무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근로자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진열장에 전시된 제품에 불과하다. 아이쇼핑은 심리적 만족감을 주지만, 활용하지 않는 제도적 장점은 공약(空約)의 씁쓸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톡!’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 씨앗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잘 익은 봉숭아처럼 전국 방방곡곡 모든 계층의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아 노후준비를 제고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펴야 한다.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관심과 열의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기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본을 다지는 출발점은 퇴직연금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퇴직연금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전파한다면 식어버린 관심과 열의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퇴직연금의 본질을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과 관련한 학설로는 노후보장·공로보상설·임금후불설 등이 있다. 노후보장설은 퇴직연금을 사용자가 선의로 근로자의 노후보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 보며, 공로보상설은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퇴직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임금후불설은 매달 임금으로 지불해야 할 것의 일부를 나중에 퇴직할 때 지불하는 것이 퇴직연금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정설은 임금후불설이다. 퇴직연금의 법적 성질을 임금후불설로 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글로벌 퇴직연금시장에서 세계적 표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비약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다. 전시통제정책의 하나였던 임금통제정책 때문이다. 원활한 전시물자 보급을 위해 취한 임금통제정책으로 기업들은 근로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상황에서 물건 만들 인력이 부족하니 얼마나 속이 타들어갔겠는가.
기업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가급여(fringe benefits)로서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성인 여성들은 전업주부로서 주로 가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로 나간 젊은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노동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 대거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불러온 예상치 못한 사회 변화였다. 퇴직연금과 같은 부가급여는 전시임금통제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임금을 올려줄 수 없는 상황에서 중장년 남성 인력은 물론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여성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임금을 올려줄 수 없으니 나중에 올려주겠다는 당근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이었다. 즉 임금으로 줘야 할 것 중 일부를 퇴직연금이라는 형태로 해당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연금회계기준서에는 퇴직연금을 임금후불이라고 못을 박아놓았다.
이처럼 퇴직연금은 단순한 인센티브가 아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어떤 배경으로 인해 지급을 뒤로 미룬 임금의 일부인 것이다. 퇴직연금을 제2의 임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모든 근로자들은 임금협상철만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 과연 올해는 임금이 얼마나 오를까? 최소한 물가인상률만큼은 올라야 할 텐데… 임금이 오르면 가계의 재정상태도 좀 나아지겠지. 이런 기대를 하며 임금투쟁에 적극 나선다. 기대에 어긋나면 파업까지 불사한다.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중 하나다.
그런데 제2의 임금이라는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도입 당시 타오르던 관심이 금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장 내 호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 돈이라고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난 퇴직연금은 주인을 잘못 만난 화초처럼 생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내 퇴직연금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내가 가입한 퇴직연금이 어떤 종류인지, 어느 퇴직연금사업자에 내 적립금 운용을 맡겼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내 퇴직연금이 안녕한지 그렇지 못한지 알고 있는 사람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임금에 이처럼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음지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퇴직연금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퇴직연금의 본질은 3층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서 노후준비의 한 수단이 아니라 제2의 임금이다.
노후준비 수단은 임금을 활용하는 한 형태일 따름이다. 최소한 1년에 한 번만이라도 퇴직연금에 관심을 기울이고 점검하자. 그 결과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업자를 바꾸거나 상품을 바꾸거나 자산배분을 바꿔보자. 시들해진 퇴직연금이 되살아날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
퇴직연금의 본질과 관련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한 것이다. 바로 퇴직연금 가입 근로자는 모두 잠재적 액티브 시니어라는 점이다. 누구나 은퇴 후 활기차고 행복한 노후를 꿈꾼다. 이 점에서 퇴직연금 가입자는 특히 더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할 때 동의를 해달라니 마지못해 동의할까, 아니면 노후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동의할까? 비록 지금은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도입 당시 각자 나름의 꿈과 희망을 퇴직연금에 담았을 것이다.
퇴직연금은 액티브 시니어가 되기 위한 중요한 물적 기반이다. 이전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뜻한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정신적 건강함과 함께 재무적 탄탄함을 필요로 한다. ‘가난한 강남 부자’라는 말이 암시하듯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금흐름이 말라버리면 사회적 활동은커녕 움직이기조차 힘들다. 퇴직연금은 재산이 적더라도 현금흐름이 풍부한 시민이 되기 위한 초석이다. 많은 근로자들은 이런 심정으로 퇴직연금 도입에 동의하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하고, 적립금 운용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퇴직연금을 잘 가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노후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한바탕 바람이 일고 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 꿈은 사라지고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지배당하고 만다. 이 권태와 피로를 잊게 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꿈임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 이성을 일깨우는 데에는 게으르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퇴직연금은 제2의 임금임을 회상하며 다시 꿈을 일깨우자. 근로자 입장에서 퇴직연금은 은퇴 이후에 받는 또 다른 임금이다.
임금 인상 여부에 일희일비하던 기억을 퇴직연금에 접목해보자. 그러면 꿈은 되살아나고 삶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보일 것이다. 그 구체적 그림 속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을 부여해보자. 그러면 현재 나의 퇴직연금은 안녕한지 불편한 상태인지 보일 것이다. 안녕한 상태라면 잘 유지하고, 불편한 상태라면 상품·사업자·자산배분 등을 조정해 더 나은 상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 족보나 문헌들을 조사해보면 고려시대(918~1392년) 임금 34명의 평균수명은 42.3세, 조선시대(1392~1910년)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로 나타난다. 왕들의 수명은 40세 전후에 불과했던 셈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장수했던 임금은 21대 영조로,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을 뛰어넘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의 장수 비결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필자는 시골에서 홀로 생활하시던 외조모가 몇 년 전 향년 92세로 굴곡 많은 생을 마감하시는 모습을 보며 100세 시대가 멀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일반적으로 100세 시대란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 즉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략 2020년경이면 최빈사망연령이 90세가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의 의료기술 발달 속도와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할 때 5070세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살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5070세대는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안에도 자산 축적에 관심이 많았다. 즉 은퇴설계를 할 때도 수익률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제는 축적된 재산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열심히 저축하고 모아온 자산 등이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한순간에 없어지거나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험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미 우리 코앞으로 다가온 100세 시대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위험과 우발적으로 생기는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앞으로 5070세대가 부딪칠 수 있는 대표적 위험 3가지를 살펴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자.
의료비 리스크
보장자산을 사망에서 노후 의료비로 재편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인구는 몇 명 정도 될까? 2015년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3159명으로 여성이 2731명, 남성이 428명으로 여성이 6배 정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조사에서는 100세 이상 인구를 17만562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1만4000명 정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 기준으로 말소 여부로 판단하는 반면 통계청은 인구센서스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하는 조사 방법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는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생겼다. 과연 차이가 나는 1만4000여 명의 100세 어르신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은 거동의 불편과 질병 등을 이유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치료 중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생명보험협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수명, 즉 전체 평균수명(82.4세)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이 76.4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수명을 73.2세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 정도 병치레를 하다 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노후에는 질병이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후 질병이 재무적인 측면에서 특히 위험한 이유는 일정 연령이 되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오래 살수록 그 위험의 정도가 급증하며, 질병의 정도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노후에 발생하는 질병은 자연스런 현상이란 점에서 건강관리만 잘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예방이 쉽지 않고 한 번 발병하면 치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노후에 발생되는 치료비는 가족에게 큰 부담이다. 건강보험공단(2015)의 조사에서처럼 연령이 증가할수록 1인당 연간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1인당 생애 총의료비가 65세 이후에 절반 이상 발생하는 것은 노후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5070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의료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 먼저 국민건강보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5070세대가 은퇴 후 의료비가 1000만원 발생했다면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 요양기관별로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63.4%(약 630만원)를 부담하고 나머지 36.6%(약 370만원)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개인부담분을 분해하면 건강보험 급여 대상 의료비의 20.1%와 비급여 의료비 16.5%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구조를 감안할 때 5070세대의 노후의료비 부담은 건강보험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부분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는 가장의 유고에 대비한 사망보장 중심의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었다면, 50대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의 위험관리로 보장 자산을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한다. 2040 시절에 가입해두었던 보험을 노후의료비 보장 중심으로 재검토하고, 행여 중복보장으로 인해 과도한 보험료 지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분석해 웰스(wealth)가 아닌 헬스(health) 시대에 맞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자녀부양 리스크
현명한 노후준비는 ‘자녀의 경제적 독립’
대한민국의 5070세대가 늙은 염낭거미를 닮아가고 있다. 염낭거미는 독거미의 일종으로 새끼가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위해 제 살을 먹이로 주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 5070세대는 은퇴 후에도 성인이 된 자식 뒷바라지를 걱정하고 있다. 혹자는 자식뒷바라지가 100세 시대에 무슨 위험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으면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연금 외 변변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생물학적 성인자녀가 사회학적 성인자녀로 탈바꿈하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따른 심리적 고충은 물론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는 점에서 엄청난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경기침체에다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이라는 사회적 현상까지 더해져 부모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성인자녀가 늘고 있다. 동거를 하지는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성인자녀도 꽤 많다. 이는 선배 세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고민이란 점에서 5070세대에겐 새로운 리스크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대학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곁에 머무는 자녀를 ‘낀 세대’라는 의미의 ‘트윅스터(Twixter)’라 부른다.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에서 ‘부메랑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KIPPERS: 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 이탈리아에서는 모친이 해주는 음식에 집착한다는 의미의 맘모네(Mammone)라고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졸업 후 취업을 못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젊은 층을 캥거루족, 취업을 했어도 경제적 독립을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30~40대를 신캥거루족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5070세대가 은퇴 이후 성인자녀를 부양하는 상황이 연출되면 이들의 노후준비 자산은 급속하게 줄어들게 된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노후준비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부양 리스크에 대한 통일된 대처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생각하면 실천할 수 있는 방안 두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부양기간과 지원 범위를 자녀와 함께 정하는 것이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에서 20~50대 성인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나?”라고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40.9%는 적어도 취업 전까지는 자녀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8년에는 이 비중이 26.1%였던 점을 감안할 때 성인자녀의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자녀의 경제적 미독립이 게으름 등 개인적 소양 탓보다는 사회경제적 구조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황에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경제적 지원 범위와 기간을 자녀와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에서 정하고, 독립을 이루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둘째 소규모 청년창업이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소규모 청년창업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창업의 경우 어느 정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능력이 된다면 한없이 지원하고 싶지만, 5070세대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수년 전 은행에서 퇴직한 박씨(60)의 경우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과 아파트, 그리고 퇴직금이 전 재산이다. 그런데 명문대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을 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던 자녀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창업자금을 요청하더란다. 지원을 해야 하나, 말려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박씨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걸고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자녀에게 사업계획서를 요청하고, 자금을 한꺼번에 지원하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지원하며, 아버지가 아닌 채권자로서 계약서까지 썼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혀를 찰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대하는 게 정답에 가까운 차선책인 것 같다.
금융사기 위험
내 돈 지키는 5가지 행동지침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은퇴자들이 어이없게 금융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드라마의 소재거리로 활용될 정도로 은퇴자들이 쉽게 금융사기 표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은퇴자들은 비록 고정수입은 크게 줄어들었다 해도 퇴직금과 모아둔 유동자산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여기에다 금융시장의 변화에 둔감한 상황에서 줄어든 고정수입을 보충하고픈 조급한 마음에 고수익 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져 금융사기범의 미끼를 덥석 물 가능성이 높다.
미국 투자자교육재단에서는 금융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① 50대 후반의 기혼자, ② 자신의 판단과 금융 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 ③새로운 생각이나 판매 선전에 귀가 솔깃한 사람, ④ 최근에 건강 또는 금융상 어려움을 겪은 사람 등. 이 중에서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는 사람은 금융사기에 당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금융사기를 당하게 되면 힘들게 모아온 자산을 다 잃을 수 있다. 아래에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5가지 행동지침을 소개한다.
첫째, ‘아는 사람인데 잘해주겠지, 전문가이니까 잘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버려라!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고객의 이익보다 금융기관이나 종사자의 이익을 우선할 수 있다.
둘째, 금융업에 종사하는 개인이 제공하는 보고서가 아닌 금융기관의 보고서를 받아라! 가끔 개인이 작성한, 고수익을 보장하는 보고서를 믿고 투자에 나섰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고수익을 보장하는 약속 뒤에는 대부분 고객의 자금을 유용할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고수익을 미끼로 두 자릿수 수익률을 제공하면서 호시탐탐 돈을 노리는 금융사기꾼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셋째, 배우자의 사망, 이혼소송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조심하자! 사람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돈과 연관된 도움의 손길은 주변 사람과 충분히 상의해 결정해도 늦지 않다. 채근하는 사람은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삶의 전환기나 시련기에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
넷째, 장점만 있는 금융투자상품은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때는 그 상품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한 후 투자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금융사기꾼이 노리는 것은 높은 수익률에 쉽게 흔들리는 고객의 마음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수익을 확정 보장하거나 마감임박이라면서 투자 권유를 종용하는 경우 금융사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한낮에도 그저 적요한 읍내 도로변에 찻집이 있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버스정류장’이란 떠나거나 돌아오는 장소. 잠시 머물러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거나, 마침내 귀환하는 정인을 포옹으로 맞이하는 곳. 일테면, 인생이라는 나그네길 막간에 배치된 대합실이다. 우리는 모두 세월의 잔등에 업히어 속절없이 갈피없이 흔들리며 먼 길을 가는 나그네가 아니던가. 저마다 여정을 손에 쥔 순례자이며 여행자! 상호에 서린 서정을 음미하며 찻집으로 들어선다.
‘카페, 버스정류장’ 주인 박계해(57)씨는 5년여 전까진 문경시 가은읍의 산골에서 귀농자로 살았다. 그보다 더 오래전엔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교직생활은 신바람 났었더란다. 그럼에도 교사직을 버리고 귀농을 한 건 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살기를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처럼 싫어하는 성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이 어느 날 귀농을 선창하고 나선 데 있었다. 그녀는 고분고분 따랐으며, 남편보다 더 빠르게 시골생활에 적응했다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그렇게 시작된 시골 살림은 이후 10여 년간 계속됐으나 다시 행선지를 바꾸었다. 인생이라는 여행 혹은 순례에 무슨 고정된 목적지가 있을 것인가. 박계해씨는 우연히 상주시 함창읍의 거리를 걷다가 오래된 일본식 2층 고가에 필이 꽂혀 단박에 임대를 하고 찻집을 차렸다.
교사에서 농촌생활자로, 다시 소읍의 찻집 운영자로. 다채로운 편력을 하며 중년기 15년여의 세월을 흘러온 셈이다. 섭렵이 쏠쏠했으니 드라마도 푸짐하렷다. 행복과 불행이, 만족과 불안이, 빛과 그늘이 순리처럼 그녀의 시간을 곡예하며 통과했을 게다. 그렇다면 마땅히 자리에 모시어 경청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 운치도 정취도 남실거리는 찻집에 마주앉아 한 여자의 삶에 서성거리는 나름의 광량(光量)이라는 걸 느껴볼 수 있는 기회란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귀농 10년의 얘기부터 들어볼까? 순식간에 학교에 사표를 내고 후다닥 귀농한 대목으로부터 얘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제안을 따라 귀농 교육을 받으며 곧바로 제 마음도 시골로 향했어요. 제 고향이 하동 악양의 시골인데요, 허물어져가는 돌담집에 대한 애호 같은, 농촌의 자연과 풍경에 매료되는 성향 덕분이었죠. 드디어 지인의 소개로 가은의 시골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모든 게 맘에 들었어요. 빈집 하나를 사서 적당히 고쳐 시골 살림을 시작했어요. 도시 출신인 남편과 달리 저는 풀이나 피도 잘 뽑고, 매사 빠르게 적응했어요. 시골생활의 많은 점들이 좋았어요.”
“귀농의 초기 정착에 갖가지 애환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선생의 시골생활은 좀 달랐군요. 일테면, 어떤 점들이 만족스러웠죠?”
“무엇보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자연이 주는 감흥들이 참 좋았어요. 하늘, 땅, 나무, 풀, 모든 자연 생태가 주는 힘이라는 것, 그게 좋았어요. 재래식 화장실을 쓰며 도시에서 좌변기를 쓸 때 느꼈던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어요. 이웃분들과의 소통은 늘 즐거웠어요. 제가 말이죠,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어요. 상(喪) 당한 집에서 이웃들과 둘러앉아 전을 지진 기억도 많아요. 학교생활의 경험을 살려 할머니들을 모신 학급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귀농 경험, 책으로 펴내다
“처음 3년간은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어요. 교직 근속 20년을 채우기 직전에 사표를 써 연금 대상자가 되진 못했지만 퇴직 때 받은 돈이 있었기에 미리 걱정하거나 연연해하질 않았어요. 그런데 3년이 지나자 돈이 바닥나고 말았어요(웃음). 저나 남편이나 돈 문제엔 워낙 태평한 사람들이었어요. 저축이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돈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게 귀촌귀농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물질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이 세속에선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저희 집 가훈을 들어보실래요? ‘내비도!’ 바로 그거였어요. 남편이나 저나 그냥 사는 스타일이었어요. 귀농해서 살며 생전 처음으로 돈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어느 정도 돈 문제에 덜미를 잡혔던 거죠.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웃음).”
‘내비도!’ 내버려둬라, 저절로 흘러가련다. 렛 잇 비(let it be)! 근사한 푯대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낭만적 지향이건 급진적 가치이건, 물적 토대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하다는 소식이 난무하지만, 그게 반드시 그러기만 하랴.
귀농이나 귀촌이란 소유를 헐겁게 하는 실천일 수도 있다. 소유하지 않음이 아니라 가급적 소유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지혜를 발휘할 절호의 찬스일 수도 있겠지. 박계해씨의 사고와 삶은 자유로운 지평을 향했던 것으로 보이며, 귀농의 나날들은 한동안 유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면서 당장 활로를 찾아야 했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서 일을 만들어 덤벼들었어요. 가은읍내에 점포를 얻어 옷을 팔았어요. 전에 천연염색과 바느질 공부를 해둔 게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어요. 손수 염색한 옷가지들이 제법 팔려나갔으니까.”
“시골 옷가게 매상이라는 게 소소했을 테고, 남모르게 진땀 흘린 시절들이었겠어요.”
“당시 아들과 딸, 두 녀석이 학생이었는데 교육비 부담이 컸어요.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까, 늘 고심이 많았어요.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위축되진 않았어요. 이왕이면 일을 즐겁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게에 딸린 안방을 동네 사랑방처럼 활용해 아줌마들과 교류를 했어요. 제가 교직에 있을 때 교사 극단을 만들어 활동한 경험이 있는데요, 가은 시골의 초등학교 학부형들과 작당을 해 연극 캠프를 열기도 했습니다.”
고심이 많은 생활이었지만 여흥을 누리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던 셈이다. 취향과 재능을 죽이는 난감한 상황에서도 여하튼 들고 일어서는 게 낙관의 힘이렷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처럼 즐거운 게 다시 있을까. 무슨 일이건 억지로는 하기 싫은 반면, 하고 싶은 일은 기어이 해내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실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벌인 일이기도 했어요. 연극 강사로 나서 수입을 얻었으니까. 주부강좌에 나가 천연염색을 강의하기도 했어요.”
“가은 시골에서의 귀농 경험을 담은 책, 를 출간했더군요.”
“촌에 살며 농사를 좀 했지만 사실 일머리가 서툴렀고 커다란 애착도 없었어요. 자연이 드러내는 사계의 민감한 변화를 만끽하는 일, 야산에 올라 산나물을 뜯는 일, 어른들과 어울리는 일은 참 좋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 같은 게 있었어요. 나, 이렇게 살다가 마는 거야? 아니지,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으로 귀농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데, 그가 말했어요. ‘기록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마찬가지다’라고. 그 말에 자극을 받아 마을 얘기,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좌충우돌한 경험담 등을 글로 썼던 겁니다. 책 출간 뒤엔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비록 물적 애환이 자심했다지만 동분서주, 야무지게 자신을 건사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이죠, 귀농으로 맞닥뜨린 시련 중에 부부간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더군요. 선생의 그 열렬한 날들 중에 부군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흠. 저희 부부는 이혼을 했어요. 제가 먼저 이혼을 원했고, 마침내 남편이 동의해줬어요. 저는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고 사랑했어요. 그러나 더 이상 발전이 없는 한계를 깨달았어요. 소통에 문제가 생겼어요.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죠.”
언젠가는 섬에서 살고 싶어
이혼을 금기시하는 묘한 모럴도 있지만, 결혼이 자연스럽듯이 이혼 역시 당연한 귀결로 찾아드는 수가 있다. 이혼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고, 차라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박계해씨는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녀는 이혼 절차를 완료하고 남편과 함께 법원을 나서던 날의 기억을 다음처럼 글로 썼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독립을 축하해! 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대단한 남자와 결혼했던 것이 뿌듯해서 그에게 몸을 찰싹 붙이고 팔짱을 끼었다.’
박계해씨의 찻집 ‘카페, 버스정류장’은 귀농 이후 그녀의 삶을 새로운 쪽으로 데려다주었다. 인생엔 터닝 포인트라는 게 있는 법. 찻집 운영과 더불어 그녀의 나날은 바닷장어처럼 생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로 시인 강은교 선생이 이 찻집을 다녀간 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어지간히 지역의 명소로 부상해 일부러 찾아드는 이가 드물지 않다. 토속적 미감과 모던한 감각이 잘 버무려져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적막한 소읍의 찻집에선 차만 파는 게 아니다. 예술인들을 위한 전시장으로, 노래 공연장으로, 시낭송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니까.
“귀농 이후 그 어느 시절보다도 편합니다. 일단은 규칙적인 소득이 발생하기에 안도할 수 있고,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과 만나 삶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아이들도 잘 자라 아들놈은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딸은 만화가로 일하고 있어요. 두 번째 책 을 펴낸 일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어요.”
“귀농으로 촉발된 인생의 색다른 여정이 어떤 안착에 이른 거예요?”
“꽤 안심을 느끼지만 이 찻집은 앞으로 5년 정도만 더 할 작정입니다. 경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이곳을 지역 예술인들에게 내놓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저는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환경을 바꿔야겠죠. 음, 요즘엔 시나리오를 쓸 궁리를 하고 있어요.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용 시나리오를요. ‘나의 경제’라는 제목의 책도 한 권 쓸 예정이에요.” “가령, 무인도에 혼자 살아야 할 경우 꼭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이상의 예요. 어, 그런데 제가 최종적으로 가서 살고 싶은 곳이 섬인데요?(웃음)”
“섬에서의 삶을 꿈꾸세요? 고독을 견딜 수 있겠어요?(웃음)”
“가급적 환경을 새롭게 바꿔 자신의 삶이 점점 나아지는 걸 느끼고 싶어요. 경험 세계를 넓혀 내적으로 성숙하는 기쁨을 맛보며 살고 싶다는 거!”
길은 다양하며, 모든 길마다 나그네의 경전이다. 삶의 문제를 여행으로 혹은 순례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귀농이건 섬이건 가슴 설레는 행로이지 않겠는가. 잠정적인 고난이야 해 뜨기 직전의 어둠이나 추위에 불과할 테고.
길은 다양하며, 모든 길마다 나그네의 경전이다. 삶의 문제를 여행으로 혹은 순례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귀농이건 섬이건 가슴 설레는 행로이지 않겠는가. 잠정적인 고난이야 해 뜨기 직전의 어둠이나 추위에 불과할 테고.
박원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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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노후파산’이란 글자 그대로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말한다.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만든 책이다. 장수국가이고 노후 정책이 잘 되어 있다는 일본의 숨겨져 있던 현실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원래부터 빈곤했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살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수입은 줄고 어중간한 상태에서 살다가 한계에서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아주 가난하면 국가에서 보조해준다. 그러나 이런 노인들은 집이 한 채 있다는 이유, 저축 잔액이 50만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국가 보조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밑바닥까지 가면 국가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와 약간의 저축액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다. 물론 집을 팔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추억이 깃든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기서 여생을 보내다가 집에서 죽고 싶은 것이다. 팔아 봐야 큰돈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저축액을 50만 원 이하로 줄이면 보조를 받을 수 있으나 배우자의 장례비 등으로 준비하고 있는 돈이다. 그러므로 못 줄인다. 저축액이 제로가 되면 그야말로 절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므로 돈을 아껴서 쓰고 절벽에 가는 것을 늦춘다.
결국 돈만 있으면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그러나 노인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이 없어서 택시비가 무서워 못 타고 병원에도 못 간다. 돌봄 서비스도 충분히 못 받는다. 노후 파산이 겁나는 것이다. 그러다 죽는다.
또 하나는 노인 건강 문제이다. 노인들은 병을 안고 산다. 혼자 사는 노인이 병에 걸리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 가면 치료비가 엄청나서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병이 낫는다 하더라도 병원비를 내고 나면 돈이 없으니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일찍 퇴직하면서 동반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근근이 먹고는 살지만, 취업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기생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나마 나오던 연금도 안 나온다. 노인도 되기 전에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도 독거 노인 600만 명 중에 그나마 생활보조를 받는 사람은 70만 명 정도 되고 그 나머지는 연금만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들이란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수술을 받거나 삐끗했다 하면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부류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참으로 대단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해서 받는 돈이므로 떳떳하다. 만약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 투자한 원금은 다 까먹고도 죽을 때까지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해서 계속 나온다니 대박이 아닐 수 없다. 그 자금 조달을 보면 이미 자녀들 세대의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인출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좋건 싫건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는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지 등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들이다. 반면 오늘 점심을 누구와 먹을 것인지, 이번 주말에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인생의 양념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현재의 나는 이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5070 세대는 자산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들 세대 중 많은 사람은 현역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즐기거나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삶을 영위하든 원하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하다. 이미 은퇴한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돈에서 소득을 만들어내야 하며,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과 근로 및 사업소득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안정적인 소득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조언은 이미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인출(withdrawal)은 이런 소득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것, 즉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만드는 행위라 할 수 있다. 3040 시절에는 근로 및 사업소득 중 일부를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저축을 했다. 이를 적립(accumulation)이라고 한다. 인출은 3040 시절 목돈 형태로 적립해놓은 자금에서 매달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수단을 선택하는 행위인 셈이다.
매달 생활비가 들쑥날쑥하면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힘든 노후를 보내야 한다. 노후생활 자금을 안정적인 방법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반면 적립 단계에서는 매달 새로운 자금, 즉 저축액이 적립액에 추가되므로 자산을 좀 더 공격적으로 운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얼마간의 손실을 보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자금으로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후에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 즉 갑작스런 사고나 중대 질병, 세금폭탄 등에 직면하면 노후생활 전반이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노후가 길어진 만큼 이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를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계획을 수립하거나 생활비를 안전하게 조달한다는 이유로 모든 자금을 연금에 넣어두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응하기 힘들어진다.
인생을 배우고 일하는 전반기와 은퇴생활을 하는 후반기로 구분했을 때 전반기 인생은 그대로이거나 소폭 줄어든 반면 후반기 인생은 아주 많이 늘어났다. 만일 후반기 인생의 재무 전략이라 할 인출 전략을 잘못 짜면 아직 삶은 구만리인데 돈의 씨가 마르는 은퇴 파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인생 말년에 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아침에 마을 어르신을 만나면 꼭 하는 인사말이 있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 인사말은 ‘밤새 무탈해서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계시네요’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밤새 안녕!’ 하면 0.5일 정도 수명이 늘어나는 요즘은 어떨까. 똑같은 인사말이라도 그 의미는 다를 것이다. 아마도 ‘수명이 또 늘어났는데, 생활에 문제는 없으신지요?’라는 질문이 아닐까.
희소한 자원을 경제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도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제활동기에 돈을 아껴 열심히 모아도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기에는 부족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노후를 보낼 자원은 희소한데 이 자원을 사용할 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공사연금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인출 전략을 짜는 것이다.
공적연금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사적연금 단독의 인출 계획을 수립하면 더 많은 연금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정상적인 수급 연령보다 최대 5년까지 앞당겨 받거나 늦춰 받을 수 있는데, 앞당겨 받으면 연금액이 1년마다 6%씩 줄어들고 늦춰 받으면 1년마다 7.2%씩 늘어난다. 5년을 앞당겨 받으면 연금액이 30%나 줄고, 5년 늦게 받으면 연금액이 36%나 증가하는 셈이다. 여러 상황을 감안해 국민연금을 5년 늦게 받는 게 유리하다면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급할 때까지는 다른 은퇴자금으로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흔히 가교연금(bridge pension) 전략이라고 한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건설하듯이 은퇴 후 국민연금 수령 시점까지의 소득공백기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연금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적 상황도 인출 전략을 잘 짜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자녀 수가 많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살아야 하는 기간이 짧았던 과거에는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자녀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할 만한 여유도 없다. 오죽하면 성인 자녀의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절망의 노후가 아니라 희망의 노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부진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다 쓰고 죽자!’는 말에 그 의미가 잘 녹아 있다. 이제는 부모 자식 간 재산 계정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경계를 확실히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둘 다 사는 방법이다.
이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인출 방식의 하나는 연금 외 저축액을 70세까지 유지하는 전략이다. 남편은 85세, 아내는 90세에 사망한다고 가정했을 때 퇴직 후 70세까지의 생활비는 사적연금(개인연금+퇴직연금)과 근로·사업·자산소득 등으로 충당하고, 이후는 퇴직 전까지 모아놓은 연금 외 저축액과 국민연금(필요시 주택연금 포함)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은퇴자의 평균적인 자산 상황을 감안한 가장 단순한 모델일 뿐이다. 각자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전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산행 중에 마주친 야생 다람쥐!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이방인의 방문이 익숙한지 빤히 쏘아보고는 어디론가 휘리~릭 사라져버린다. 바람만 남기고 떠난 야생 다람쥐에서 5070세대 은퇴재무설계의 향기가 풍긴다. 야생 다람쥐의 겨울나기는 특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비축이다.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철을 대비해 야생 다람쥐는 먹이를 한곳에 많이 저장해두기보다는 여러 곳의 땅에 구멍을 뚫어놓고 각각의 구멍에 한 개씩의 먹이를 보관해둔다. 야생 다람쥐가 겨울을 나기 위해 파는 구멍은 평균 2000개 정도다.
어느 작가는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면서 봄의 새싹 같은 유년과 여름의 신록처럼 푸른 청춘, 낙엽의 무게를 덜어낸 가을을 지나 마침내 추운 겨울,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 같은 노년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의 시간 또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다람쥐가 수천 개의 구멍을 파고 먹이를 저장하는 것은 5070세대가 젊은 시절에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과 닮았다.
야생 다람쥐가 먹이를 저장하고 보관하는 것은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적립’에 가깝고,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꺼내 먹는 것은 ‘인출’에 해당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야생 다람쥐가 묻어둔 열매를 꺼내 먹으며 겨울을 나는 것처럼 5070세대가 효과적으로 노후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는 ‘인출’ 소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 다양한 ‘인출’ 소득: 내재된 위험을 고려하라
야생 다람쥐가 먹이를 보관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수천 개의 구멍을 뚫는 이유는 뭘까? 먹이를 한곳에만 보관하다 다른 야생 동물들에게 도난을 당하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천 개의 구멍을 뚫는 다람쥐의 행위는 마치 5070세대가 다양한 소득원을 준비하는 모습과도 같다! 하지만 다양한 소득원을 준비한다고 해서 길어진 노후와 예상치 못한 모든 위험에 대비할 수는 없다. 소득마다 내재된 위험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소득에 잠재된 위험을 먼저 이해한다면 은퇴 후 소득 인출 전략을 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5070세대가 노후에 꺼내 쓸 수 있는 소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자·배당 같은 ‘금융소득’이다. ‘금융소득’ 하나만으로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소득은 일정금액(연간 2000만원) 이상 되면 금융소득종합과세(6.6~44%)를 부담하게 된다.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은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금융소득은 줄어든다. 참고로 기준금액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의 추가적인 세(稅) 부담은 최대 28.6%p(최고소득세율 44%- 이자소득세 15.4%)다.
두 번째 소득원은 ‘사업소득’이다.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창업의 꿈을 꾼다. 필자도 그렇다. 그러나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 생존율은 창업 후 2년 48%, 5년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자금 부족 탓에 규모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익성마저 낮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퇴 후 안정적인 소득 확보를 위해 시작하는 사업과 창업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자영업자의 월평균 순이익은 187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세 번째 소득원은 ‘임대소득’이다. 임대소득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로망이다. 저금리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수익률이 예전만큼은 안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은퇴 후 소득이다. 물론 세입자 등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임대소득을 누리면서 시세 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수익성 높은 상가를 자녀에게 사전 증여 후 발생되는 소득으로 상속세를 절세(節稅)하는 다양한 플랜을 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김씨(65)는 임대사업을 하는 50억대 자산가다. 가족은 슬하에 자녀 둘과 배우자가 있다. 매달 임대수입은 1500만원 정도다. 생활비, 대출이자, 투자 및 저축 등으로 월 1300만원 정도 지출이 발생하고 있어 다소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김씨의 고민은 자산의 90% 이상이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행여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향후 발생할 상속 등에 따른 세금재원 마련이 문제가 될 수 있어 고민이 많다. 특히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약 14억3000만원 정도로 예상되는 상속세 부담이다. 자산의 일부를 팔아 상속세를 내야 할 판이다. 노후에 임대소득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좋지만 상속세가 노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격이다.
마지막 네 번째 소득은 ‘연금소득’이다. 가장 안정적으로 인출이 가능하다는 점과 자산의 소멸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금소득’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연금소득의 중요성에 비해 연금을 활용해 소득을 창출하는 연금 인출 전략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편이다.
그동안 애써 모아온 연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이는 노후생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다음 내용을 통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 국민연금: 수령시기 조정을 활용한 인출 전략
국민연금 인출 전략의 핵심은 자신의 생애주기를 고려해 연금 수령시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5070세대에게는 익숙한 소득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말처럼 논란도 많지만 국민연금은 수령자가 죽을 때까지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금액이 또박또박 들어오는 매우 귀중한 소득이다. 게다가 매년 연금액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된다는 점은 민영 연금상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점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시기와 가입기간, 연금보험료 수준에 따라 수령 금액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5060세대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을 넘을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20년 이상 가입한 이들의 평균 수령금액은 88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88만원은 부부 기준 최소 노후생활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그림3] 참조). 국민연금으로 이 갭(gap)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에 사는 박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중견기업에서 몇 년 전 은퇴한 박씨(61세)는 올해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할 예정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다른 친구들과 달리 운 좋게 기존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어 근로소득도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에 알아본 결과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기간 동안 다른 소득 공제 후 월 217만 6000원이 있으면 66세까지 연금액이 깎인다는 얘기를 듣고 67세부터 연금을 타기로 결정했다. 결국 박씨는 당초 61세에 100만원 정도의 연금액을 탈 수 있었지만 수령시기를 5년 연기함으로써 67세부터 매월 136만원을 종신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
◇ 사적연금: 절세를 고려한 인출 전략
연금 수령시기를 기준으로 사적연금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만 45세 이후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일반 연금보험과 즉시연금, 55세 이후부터 수령할 수 있는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퇴직연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개인연금에 속한다. 5070세대 중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지인이나 소개를 통해 개인연금에 가입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동안 묻어놓은 개인연금 가입 증서를 꺼내어 내가 가입한 개인연금은 어떤 종류이며, 세제혜택은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볼 때다. 또한 개인연금 중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은 연금소득으로 인출할 때 세금을 내야 하므로 세제상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
‘연금저축’은 최소 5년 이상 납입하고 55세 이후부터 연금으로 수령한다는 조건으로 적립기간 중 세제상 혜택(소득(세액)공제 13.2% 또는 16.5%)을 받았기 때문에,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중도에 해지하면 그동안 받은 세제혜택은 물론 해지에 따른 가산세까지 물어야 해 원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수령할 수 있다.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김 부장(52세)은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노후에 연금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싶어 2012년에 연금저축에 가입했다.
지난해까지 꼬박꼬박 매년 400만원을 납입했고 소득(세액)공제 혜택도 받아왔다. 그러나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첫째 딸의 학자금이 부족해 연금저축을 해지하게 됐다. 지금까지 납입한 금액은 2000만원(400만원×5년)이고 발생된 이자수익은 100만원 남짓으로 총 2100만원 정도인 상황이다.
김 부장이 만약 중도에 연금저축을 깨면 총 적립금 2100만원에 대한 기타소득세 16.5%(346만5000)와 해지가산세 44만원(2000만원×2.2%)을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 김 부장이 연금저축 해지로 받게 되는 금액은 원금(2000만원)의 85% 수준인 1709만5000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김 부장(52)이 55세 이후부터 연금으로 10년간 나누어 인출하게 되면 약 275만원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
‘퇴직연금’의 경우는 어떻게 인출하면 좋을까? 연금저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퇴직연금의 경우는 중도에 주택구입비, 의료비, 자녀교육과 결혼비용 등으로 인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노후에 연금소득으로 활용하기 힘들다.
퇴직연금의 경우도 연금으로 인출하는 것이 대체로 절세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일시금으로 인출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이 연금저축과 다르다. 가령 ‘금융소득종합과세’가 고민인 5070세대가 개인형퇴직연금(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이하 IRP)을 활용해 이 계좌에 퇴직금이나 목돈을 넣고 중도에 인출하면 연금저축처럼 기타소득세(16.5%)를 부담하지만 분리과세(특정한 소득을 종합소득에 합산하지 않고 분리하여 과세하는 것)로 종결되기 때문에 절세 도움이 된다.
“노후라는 놈은 이미 내 앞에 와 있는데 너무 낯설다. 이게 뭘까! 언제 이런 단어가 만들어진 거지?”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한 어느 60대의 한탄이다. 누구 못지않게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건만 내 앞에 닥친 ‘노후’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재산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종종 비어 있는 지갑을 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기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자식들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의 ‘흑자파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가계의 흑자파산은 자산을 제법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영업실적과 재무구조가 탄탄해 보이는 기업이라도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융통하지 못하면 부도처리되는 ‘흑자도산’에서 생겨난 말이다. 기업이나 가계나 ‘돈맥경화’에 걸리면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교수는 “은퇴 시점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 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이는 곧 은퇴재무설계의 키워드가 자산 규모에서 안정적인 소득흐름의 확보로 바뀌어야 함을 뜻한다. 그 이유는 뭘까?
소비생활의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은퇴는 삶의 큰 이벤트 중 하나다. 은퇴를 전후해 사람들의 심리적·육체적 상황이 크게 변하는 것은 그만큼 은퇴가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며 은퇴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은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소득에 있다. 은퇴를 반기는 사람들은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은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소득 기반은 대부분 취약하다.
생애주기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생애에 걸쳐 균일한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이 많은 시기에 저축을 해 소득이 적은 은퇴 이후를 대비한다. 몸에 배인 소비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이런 소비의 하방경직성을 무시하고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직면해 원치 않는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론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소비를 급속히 줄이고 있다. 60세 이상 가구의 소비는 2003년 대비 14%나 줄어들었다. 줄어드는 소득에 맞추다 보니 마른 수건을 짜고 있는 셈이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총소득에서 근로소득을 제외하면 2017년 2인 가구 최저생계비 수준(약 170만원)의 소득만 얻고 있다. 근로를 하지 않으면 생계마저 간당간당해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마른 수건 짜듯 소비를 줄인다. 은퇴생활이 즐거울 리 없다.
자산을 소득흐름으로 바꿔 세금을 줄이자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것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고, 또 하나는 세금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태어나면 주민세, 아끼고 모으면 재산세, 열심히 일하면 소득세, 죽으면 상속세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세금은 사람의 일생을 따라다닌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산에 부과되는 세금과 소득흐름에 부과되는 세금의 차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부자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부자보고서(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에 따르면, 요즘 부자들은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부자들이 금융자산 비중을 늘리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보다 유동화가 쉬운 금융자산을 통해 상속 및 증여세에 대비하고, 나아가 절세 목적으로 보험과 연금의 비중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떨어진 부동산 투자수익률도 대체소득원으로 안정적인 연금소득을 선호하게 만드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자산에 부과되는 세금보다 소득흐름에 부과되는 세금이 유리하다. 자산을 많이 들고 있다가 세금폭탄 맞느니 자산의 일부를 소득흐름으로 바꿔 절세와 안정적 소득흐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부자들의 발 빠른 대응을 주목하자.
요즘 동네 복지관에서 만나는 노년 커플을 일명 BC(복지관 커플)라고 부른다. 복지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녀의 조건이 부동산 부자에서 연금 받는 남녀로 바뀌고 있다. 연금소득 비중을 높이는 것은 비단 부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반 중산층들이 은퇴 이후 한 번쯤 마음 설레는 경험을 하려면 최소한 연금이라는 카드 한 장은 들고 있어야 한다.
죽기 전 자산고갈을 경계해야 한다
잔 칼망! 1997년 122세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세계 최고령자 할머니다. 이 할머니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60년대 중반 90세였던 칼망 할머니는 부양해줄 가족이 없어 전 재산인 집 한 채를 47세의 젊은 변호사에게 팔기로 했다. 계약 조건은 할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그 집에 거주하면서 매달 2500프랑(약 50만원)을 받는 것이었다. 젊은 변호사는 할머니가 100세까지 산다고 해도 시세보다 싼 가격에 집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해 얼른 계약을 맺었다. 그보다 더 일찍 죽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절대 손해 보지 않는 계약이라 여겼다. 그런데 할머니는 100세를 훌쩍 넘어 122세까지 살았다. 변호사는 할머니에게 집값의 두 배가 넘는 90만 프랑(2500프랑×12개월×30년)을 지급해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변호사가 할머니보다 2년 먼저 사망했다는 점이다. 결국 변호사는 살아생전 그 집을 소유해보지도 못하고 가족을 대신해 할머니를 부양한 셈이다.
2030년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수국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마지드 에자티 박사 팀이 OECD 35개 가맹국의 남녀 평균수명을 예측해 세계적인 의학 전문지 에 기고한 논문에 의하면, 2030년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수명은 약 91세로 세계 최초로 90세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의 평균수명은 약 84세로 헝가리에 이어 2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잔 칼망의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다. 만약 잔 칼망 할머니가 변호사와 종신계약을 하지 않고 90세에 집을 팔고 그 목돈으로 생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100세 이후에는 극심한 빈곤에 허덕였을 것이며, 세계 최고령자 타이틀을 얻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고령화시대엔 죽기 전에 자산이 고갈되면 큰일이다. 특히 연금제도와 복지제도가 풍요롭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그 사람이 죽기 전에 고갈되면 생활의 급추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잔 칼망 할머니처럼 죽을 때까지 자산에서 소득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놓으면 걱정 끝이다.
칼망 할머니는 부양가족이 없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며 따지지 말자. 이것저것 따지다간 누가 오래 남느냐는 자산과 수명의 경쟁에서 내가 이기고 마는 불행에 직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