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건배사를 외친다. 함께 외치며 안면을 익히고, 친목을 다지고, 우의를 키운다. 요즘은 연말연시도 아닌 데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행사와 회식이 줄어 건배사 외칠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끊임없이 새것은 나온다. 만들 건 만들어야 되나보다.
얼마 전까지 “나라도”를 선창하면 “잘하자”로 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라꼴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건배사일 것이다. 내가 가장 최근에 들은 것은 ‘정경심’이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석방된 이후에 나온 거 같은데, 말이 재미있다. “정, 정치 이야기(정경심 이야기?) 하지 말고, 경, 경제문제 따지지 말고, 심, 심각한 이야기 하지 말고” 이런 뜻이다. “정경심!” 하고 외치면 “아멘!”으로 받는다. “아, 멘트 좋다!” 그 말이다. “멘트 좋다!”는 “멘트 좋~고!”일 수도 있고, “멘트 쥑이네”일 수도 있고, “멘트 끝내준다”일 수도 있지.
모임에서건 카톡방에서건 정치나 종교 이야기 꺼내면 골 아파진다. 최근엔 ‘4·15 부정선거’ 주장을 퍼뜨리거나 윤미향 사건을 계기로 친일과 토착왜구를 시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서로 피곤하고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딴 이야기 하지 말자고 나온 게 ‘정경심’이다. 정말 필요한 건배사 아닌가. 애들 울거나 떼쓸 때 “뚝!” 하고 말리는 것 같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건배사는 원래 중·노년의 몫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거 말고도 할 일과 놀 거리가 많은데 굳이 건배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시니어들이 즐기는 건배사는 나이야 가라, 백두산(백 살까지 두 다리로 산에 가자),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자), 이기자(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 이런 것들이다. 늙기 싫고 병들어 아프기 싫은 마음이 담긴 건데,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진도가 늦는 걸 반성하라.
시니어들이 모이면 뒤풀이와 건배사까지 해야 모임이 끝난다. 코로나 이전 상황이겠지만 어떤 사람이 지하철 풍경을 써놓은 인터넷 글이 재미있다. “산악동호회 한 열댓 명 탔는데, 동호회 회장이 산만 타고 뒤풀이 빠짐. 어떤 아줌마가 회장에게 ‘위하여 해야지’라며 스피커폰으로 전화기 켜놓고 ‘위하여 좀 혀~’ 하자 그 사람이 ‘나 지금 지하철이라 힘들어’ 그랬더니 열댓 명이 몽땅 ‘지하철이라 힘들어~!’ 하고 소리침. ㅋㅋㅋ”
시니어들이 애용하는 건배사엔 ‘노발대발’도 있다. “노인이 발기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말인데, “노발!” 하고 외치면 “대발!”로 받는다. 노인은 발광하거나 발작하거나 발발거리며 (남의) 발목이나 걸지 말고 발기나 잘되면 제일 좋겠지. “노인이 발전해야…”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역시 발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에 이 건배사가 등장했다. 봉하마을 추도식이 끝난 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여권 인사들과 오찬을 할 때 “노발대발”을 외쳤다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그 노발대발이 아니라 “노무현 재단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는 뜻이었다. 본인이 주도한 건지 참석자들과 함께 외친 것뿐인데 그렇게 보도된 건지는 모르겠다. 노발대발 건배사는 같은 날 다른 지역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식에서도 나왔다. 여기서는 ‘노’가 ‘노무현 재단’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이었다고 한다.
노발대발은 노동자단체도 많이 쓴다. “노동자가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또는 “노총이 발전해야 대통령도 발전한다.” 이런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24일 노동계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한 만찬행사에서도 이 건배사가 나왔다. ‘노발대발’은 한국노총이 제작하는 노동 전문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이기도 하다. ‘노동자 편파방송’이라는 슬로건 아래, ‘갑에 치이고 삶에 지친 2천만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노발대발로 다른 말은 없을까? 인터넷 뒤져보니 이렇게 변형해서 외친 사람들도 있긴 있더라. “노가리만 풀지 말고/발바닥 불 나게 일해(뛰어)/대한민국/발전시키자”, “노력하고 노력하라/ 발바닥도 건강하게/ 대단한 성과와/ 발전을 위하여.” 그러나 좀 억지스럽고 어색한 건 사실이다.
노발대발은 원래 성이 나서 화를 내고 또 크게 낸다는 반복 표현이다. 다산 정약용의 ‘여름에 술을 대하다’[夏日對酒]라는 시에는 “자식 놈이 그제야 노발대발하면서”[兒乃勃發怒]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발발노(勃發怒)가 곧 노발대발이다. 활발(活潑)보다 활발발(活潑潑)이 더 생동하는 것처럼 노발대발보다 더 생생한 표현 같다. ‘勃’은 노할 발, 발끈할 발, 일어날 발 자다.
노발대발을 바꾸어 대발노발이라고 하면 어찌 될까? 대한민국이 발전해야 노(노무현 재단이든 노동자든 노숙자든 노래방이든 노인이든)가 발전한다는 뜻이 되겠지. 케네디가 취임연설에서 그랬잖아?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그가 처음 창안해낸 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길이 기억되는 역사적 명연설이다. 바로 그런 것.
하지만 즐겁자고 외치는 건배사를 가지고 이것저것 따질 거 있나? 코미디하자는데 왜 다큐를 찍느냐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끝~!
석유화학과 정유업체 간 주가 차별화가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앞으로 공급과잉 해소의 속도는 석유화학이 정유보다 빠를 것이고, 저원가효과도 석유화학에서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효성화학으로 쏠린다. 효성화학은 올 1분기에 전 분기 대비 49% 감소한 124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당시 시장 예상치를 상회하는 실적이었다. 4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PP/DH 부진을 다른 사업이 만회한 덕이다.
무엇보다 올 2분기 실적에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다. 키움증권은 효성화학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141.7% 증가한 3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하나금융투자는 효성화학이 올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242% 성장한 424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했다.
◇효성화학 투자 포인트는?
이처럼 효성화학을 놓고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슈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 감소에도 전 분기에 발생했던 PP/DH 정기보수 및 프로판 재고평가손실에 따른 100억 원 이상의 일회성 비용이 제고된다.
또 주력제품인 PP는 경쟁 RFCC설비 경제성 악화, 마스크향 스판본드 수요 증가 및 주요 시장인 중국의 전염병 상황 개선 등으로 타석유화학/모노머제품 가격 대비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점이다.
PP/DH부문의 주요 원재료인 프로판/부탄의 투입 가격 하락으로 올 2분기 스프레드가 1분기 대비 급격히 개선될 전망인 점도 매력적이다. 기타부문도 전 분기에 발생했던 일회성 변압기(TPA부문) 보수비용 등이 제거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효성화학의 베트남 신규 No.4 PP 플랜트(+30만 톤)는 외부 프로필렌 도입으로 올해까지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PDH(프로필렌 +60만 톤), No.5 PP 플랜트(+30만 톤)가 상업 가동되는 내년부터 원재료 통합, 가동률 상승 및 규모의 경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될 전망이다.
또한 PP/프로필렌 생산능력 증가 외에도 LPG 보관설비(+24만 톤) 운영을 통해 LPG를 적정가격에 대량 구입하고 보관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등 원재료의 원가 관리 제고 및 LPG 판매 수익도 추가될 전망이다.
이동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효성화학은 올해~내년 베트남 화학공장 투자(총 투자비 1억3000만 달러)에 약 7억2000만 달러의 잔여 투자비를 집행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내년부터 PP 매출 본격화 및 현금 창출능력 개선으로 차입금 상환부담은 내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효성화학의 NF3부문은 전방 업황 둔화(국내 LCD업체 라인 셧다운)로 최근 판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20% 이상 증가할 전망”이라며 △일부 고객사 상품 판매 확대로 가동률이 상승해 원 단위 개선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점 △감가상각비 종료로 원가절감이 예상되는 점 △고마진 부산물 F2N2 판매 확대로 증익효과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효성화학의 투자 포인트로 제시했다.
키움증권은 효성화학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8만 원을 제시했다. 또한 하나금융투자는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20만 원을 내놨다. 효성화학의 지난 21일 주가는 종가기준 11만5500원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안이 기부를 통한 ‘자발적 반납’을 유도하는 조건부로 절충안을 찾았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긴급성, 보편성 원칙 아래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자 등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 지급하는 대신 고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한 자발적 기부 방안을 제시하자, 정부는 이를 조건부로 수용했다. 앞서 당정은 4·15총선 후 최근까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왔다.
기부를 통한 환수 방안이 유력해지자 고소득층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자발적 반납분을 기부금으로 인정해 연말에 기부금 세액공제를 적용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4인 가구가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모두 기부할 경우 이 가구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세대주에게 100만원 세액 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정은 참여 확산을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이 최종 확정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1호 기부’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을 시작으로 여권 인사가 줄줄이 자발적 기부 반납 의사를 밝히면 ‘기부 붐’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방식을 통해 1조원 이상의 재정 부담을 경감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책위 관계자는 “전체 지급 대상자 중 10∼20% 정도가 기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문 대통령이 1호 기부에 나선다면 참여가 잇따라 1조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당정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절충안을 마련했다.
당정은 4·15총선 후 최근까지 지급 대상을 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에 지급하는 대신 고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한 자발적 기부 카드를 제시하자 정부가 조건부 수용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정부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수령 여부를 국민 선택에 맡겨 재정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성, 보편성 원칙 아래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자 등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고소득자 등의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기부금에 세액 공제를 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조 정책위의장은 “미수령 재난지원금을 해당 국민이 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 재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재정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며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미수령 지원금을 기부금으로 인정하고 연말 연초에 세액 공제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국회가 관련 제도를 만드는 걸 전제로 민주당이 제시한 방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래통합당이 정부와 민주당의 합의 수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검토해보겠다고 밝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급물살을 탈지는 미지수다.
"산에 가자" 오랜만에 전화한 동갑내기 친구가 대뜸 산에 가자고 한다.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당찬 그녀. 코로나19로 장기간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지만 서로 바쁘기 전에는 자주 산행을 하던 친구라 단칼에 거절이 어렵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조심조심 다녀오자고 마음을 굳힌다.
그녀와 나는 걸을 때 보폭이 비슷하다. 빠르거나 더디지 않으니 산길에서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편이다. 오랜만에 산에서 먹는 밥맛은 또 얼마나 좋을까? 쳐져있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 들뜬 맘으로 집을 나선다.
불광역 2 번 출구에서 장미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북한산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코스다. 시작부터 가파른 만큼 재미도 있다. 맘이 통했는지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진분홍 꽃들이 길 양 쪽에 마주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길에 진달래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 놀랍다. 겨울이 멈칫대는 사이 몰래 온 봄이 족두리봉과 연결된 좁은 오솔길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 누런 흙먼지가 날린다. 중턱쯤 오르다 마스크를 벗었다. 때마침 능선을 타고 넘어오던 바람이 맑은 공기를 훅 몰아준다. 누구랄 것 없이 크게 숨을 들이킨다. "와아! 너무 좋다~" 산 중턱에서 마시는 공기는 집에서 마실 때와 확실히 다르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혹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생각해선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족두리봉 너른 바위를 등지고 앉아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바짝 말라 건조한 하늘 아래 봉긋봉긋 솟은 아파트와 빌딩, 사이사이 납작납작 엎드린 다가구 주택들. 탁한 느낌인데 신기하게 하늘은 푸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후다닥 챙긴 밥과 조금씩 덜어내 온 반찬이 꿀맛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마주하니 마음도 여유롭다. 사는 게 뭐라고 그리 아옹다옹 하냐고 즐겁게 살자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이 텅 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 손질해온 딸기를 입에 넣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그립다고. "그렇구나… 그렇겠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끄덕끄덕 고갯짓이라 슬프다.
족두리봉을 끼고돌아 향로봉으로 향했다. 진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나무 사이사이마다 만개했다. 사진을 찍어 확인해보니 수분이 모자라 꽃잎이 바짝 말랐다. '멀리선 아름답게만 보이더니 너도 애쓰는 중이었구나' 하긴, 사람도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한 걸음 가까이 들어가 보면 걱정과 근심이 있다. 사람이나 꽃이나 서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달콤한 행복을 떠올리다
습기라곤 없는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텁텁한 꽃 향이 입안에 퍼진다. 기분이 좋다. 나란히 걷는 친구의 입에도 넣어준다. 몇 해 전, 혼자 배낭을 메고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난 날은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다. 비를 피하느라 바위 아래 멈췄다 내려오는 길에 따먹었던 젖은 아카시아 꽃잎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 후로 산에서 꽃을 보면 입안에 넣고 씹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처럼 먹어도 되는 진달래, 아카시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녀의 수다가 줄었다. 진분홍 꽃잎을 오물오물 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오늘 같은 날은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씹을수록 달콤한 그 꽃. 아카시아 꽃을 씹으며 행복하던 그 느낌이 그립다. 그녀와 함께 오물오물 달콤한 행복을 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지. 아카시아 꽃 필 무렵 산에 가자고 해야겠다.
그의 집은 바다에 있다.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얘기가 아니다. 꿈과 정신의 집, 그걸 바다에 두고 산다. 다시 말해 바다에 홀린 사람이다. 요트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모험에 심취해 달리 남은 욕망이 없다. 이렇게 몰입이 깊어지자 즐거움이 커졌다. 즐거움이 커 몰입이 깊어졌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으으 즐거운 쪽으로 몰아가는 사람의 정경엔 노련한 인생 항해술이 비친다. 뚝심과 낭만으로 반죽된 고유의 기풍이 서려 있다.
김승진 선장(58). 해양모험가 또는 요트탐험가로 불린다. 요트란 일종의 일엽편주. 버들잎 하나처럼 미미한 동체로 물살을 가르는 미니 선박. 주로 유람이나 경주 목적으로 연안이나 강, 호수에 띄워진다. 그러나 김승진은 요트를 타고 저 창망한 대양을 활개 친다. 이미 지구를 세 바퀴 일주했다. 지난 2014년엔 단독 무기항(無寄港), 무원조(無援助) 요트 항해로 세계 일주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기록이라서 당시 언론이 들썩거렸고, 이후 요트 애호가들이 늘어났다.
그의 쾌거에 가장 열렬히 환호한 건 김승진 자신이었겠지. 가슴 깊이 키워온 꿈을 드디어 성취한 만족감으로 말이다. 흔히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며 살더라도 나의 겉과 속은 달라 자주 분열되기 십상이다. 품은 지향과 실제의 삶을 일치시키기가 어디 쉽던가. 알고 보면 갈지자 행보를 일삼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김승진은 바다로 겨냥된 꿈, 모험이 있는 삶으로 뻗은 꿈 하나를 실천으로 이룬 게 아닌가. 자신에게 장미꽃을 바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아직 고프단다. 이왕지사 내친 김에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거다.
“무기항 단독 요트 항해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전 세계에 100여 명이 있다. 이제 나는 더 격렬한 항해에 나서고자 한다. 올 연말 ‘이모카(IMOCA)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세계 최정상급 요트맨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레이스로, 속도 경쟁이 벌어진다. 누가 더 빨리 지구를 한 바퀴 도느냐, 그게 핵심이다.”
대양의 거친 파랑과 맞붙기에 이골 난 사람이라 아마도 근육이 울룩불룩한 터프가이이겠거니 했으나 전혀 아니다. 날씬한 체구에 눈매는 온순해 정신의 강골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얼른 짐작되지 않는 인상이다. 가지런히 다듬은 콧수염은 다소 코믹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그윽이 상대를 응시하는 버릇으로 자리를 차분하게 만들어 대화에 리듬이 붙는다.
이 세련된 요트 선장의 원래 전공은 미술. 그러나 미대를 다니면서도 그림보다는 스킨스쿠버에 푹 빠져 살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피디로 줄곧 뛰었다. 고베 대지진의 현장을, 북한 꽃제비들의 참상을, 여전히 석기시대 풍색으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오지 부족의 태평한 삶 따위를 다큐로 제작해 세상에 알렸다. 지구촌 곳곳의 참경과 진경을 찾아다녔으니 일찍부터 탐험으로 종횡무진했던 셈이다.
해양모험가로서 높아진 인지도
김승진 선장이 막연하게나마 바다를 꿈꾸기 시작한 건 어릴 적에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가슴에 들어와 앉으면서였다고 한다. 요트에 혼이 쏠린 것도 독서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유명한 요트모험가 시라이시 코지로가 쓴 ‘일곱 개의 바다를 건너서’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쳤던 모양이다. 바다를 누비고 싶다는 묵은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알려준 책이었기에. 요트로 대양을 질주하는 행위에 노른자처럼 박힌 모험적 요소와 풍부한 가치 역시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요트 조종 기량을 숙달했고, 마침내 크로아티아에서 중고 요트 한 척을 사왔다. 가격은 3억 원. 당시 그는 물심양면의 불황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고가의 요트를 사들였다. 이거 발칙한 도발? 인생의 흥미는 도발적일수록 진진해진다.
“다큐 제작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사업에도 꽤 재주가 있어 풍족하게 살았다. 뉴질랜드에서 처자와 함께 수영장이 딸린 집에 살기도 했지.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순간에 다 날아가더라고. 빚을 청산하고 남은 돈을 털어 요트를 샀다. 인생을 새롭게 바꿀 상황이 도래한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 익혀온 꿈을 실현할 절호의 찬스라 보고 바다로 떠났다.”
“2014년, 마침내 단독 요트 항해를 통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게 인생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셈인가?”
“그렇지. 다큐멘터리 피디에서 해양모험가로 변신했으니. 지난날, 내게도 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 사람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일 게다. 지금 당장 나를 흥분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일에 몰입하기. 늘 그걸 생각하며 살았다. 좀 위험한 상황에서 오히려 생동감을 갖기도 한다.”
“요트 항해도 모험이지만 인생 자체도 어쩌면 모험의 연속이다.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지루한 모험. 이건 달아날 길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의 요트 구입에 가족들이 원성을 터뜨리진 않았나?”
“가족은 나를 좀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해 그냥 인정해줬다. 게다가 난 허영에 찬 모험가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자금으로 왜 집을 사지 않고 요트를 샀느냐며 이상해들 하지만 그건 투자이기도 했다. 집 대신 요트 모험에 투자했거든. 난 현재 강연 활동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해양모험가로서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이다. 투자 효과가 발생한 것이지. 국내 해양레저 산업은 아직 불모지이지만 머잖아 블루칩으로 떠오를 거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란 얘기다.”
“실용적 의도가 다 있었구나.”
“맞다. 다 계산이 있었다. 그런 게 없다면 무모한 짓이지. 그러나 이건 본질이 아니다. 난 평생 모험으로 살아왔으며 가급적 모험의 절정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이 점에서 요트를 이용한 항해는 더할 나위 없는 적격이었다. 모험적 항해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자는 것. 이게 내가 추구하는 본질이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시 빨리 찾아 행복을 즐겨라! 이거저거 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데에서만 행복이 나오랴. 아침에 눈을 떠 하루가 더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에서도 행복이 나온다. 급할 때 화장실을 못 찾으면 불행이지만 찾으면 행복이다. 그러나 그런 걸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타성에 안주해 그저 ‘귀차니즘’이 증가하는 걸 바라볼 뿐이다. 어항에 갇혀 주둥이를 뻐금거리는 붕어처럼 굴레에 갇힌 삶. 거기에서 벗어나라고 김승진은 재촉하고 싶은 것이다. 타성을 들어내고 모험심으로 심장을 채우라는 권장이다.
“항해 중엔 그리움이 들솟더라”
김승진의 요트에는 ‘아라파니호’(길이 13m, 폭 4m, 무게 9t)라는 선호(船號)가 붙어 있다.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달팽이의 옛말인 ‘파니’를 조합했다. 바다를 달리는 달팽이! ‘느림의 미학’이 담긴 이름이다. 조급해할 것 없이 유유낙낙 항해를 즐기되 끈질긴 달팽이처럼 좌우간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를 담았을 게다. 바람을 돛에 매달고 해면을 미끄러지는 요트. 힘과 속도와 우아함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동체다. 그는 이 돌고래처럼 아름다운 요트에 꿈과 모험과 낭만을 싣고서 ‘나 홀로’ 세계 일주 항해에 도전해 성공했던 것이다. 출발점은 충남 당진의 왜목항. 태평양을 넘어 남극해를 건너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왜목항으로 귀항하는 코스였다. 총 항해거리는 4만여 km. 209일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209일간 혼자 망망대해를 항해하다니, 황홀한 고행 아니었을까?”
“시련이 많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면 선물처럼 환상적인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규정된 룰을 깨지 않고 기어이 완주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많았지. 성공을 해야만 모험가로서의 위상과 진로가 주어질 거라서.”
“대양이라는 원초적 대자연과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정면으로 마주친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연상된다. 노자가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비롭지 않다고. 심지어 노리개처럼 가지고 논다고.”
“내가 지금 어마어마한 대자연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전율이 잦았다. 물론 태풍이나 파도는 때로 위협적이었지. 남빙양에서는 9m 높이의 파도를 만났다. 야, 그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요트가 미끄러지는데 살벌한 굉음이 귀청을 찢더라고. 내가 간덩이가 큰 사람이지만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선실이 천국이라면 그 한 치 밖은 지옥이었으니까.”
‘지옥’이라는 표현에서 공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성벽처럼 견고하게 일어서 울부짖는 초대형 파도의 습격 앞에서 떨리지 않을 장사가 있겠는가. 자연의 가공할 위력에 인간의 잘난 콧대는 흔히 납작해진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우리는 자주 인간 역시 하나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위대한 자연에서 나온 강인한 종이라는 걸. 김승진은 인간의 질긴 근성을 입증하듯 위기가 오는 족족 능숙히 처리했다. 물론 그럴 만한 항해의 지식과 경륜에도 힘입었겠지만.
“궁금하다.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즐기기 위해선 어떤 능력이 필요하지?”
“우선은 항해술에 능해야 한다. 기기 작동은 물론, 바람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무동력 항해가 가능하다. 잠시 뒤에 닥쳐올 위험을 미리 예감하는 센스도 중요하다. 멘탈도 빼놓을 수 없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거다.”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구나.”
“겁먹을 거 없다. 누구나 탈 수 있다. 열여섯 나이의 호주 여자애가 지구를 한 바퀴 돌기도 했거든. 인간이 만든 모든 탈것들 중 요트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도 있다. 배가 뒤집힐까 걱정하지만 요즘 요트들엔 ‘발라스트 킬’이라는 장치가 있어 자체 복원된다. 넘어졌다가도 오뚝이처럼 저절로 일어선다고.”
“바다에서 본 가장 특별한 광경은 어떤 것이었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었다. 별들은 잔잔한 수면에도 무수히 어려 환상적으로 반짝였다. 숨이 멎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봤다. 내가 아예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었지. 삶이 숭고해지더라. 가슴에 고이 담아 돌아온 밤별 풍경이었다.”
“해적도 만났다지?”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서 해적의 추격을 받았으나 간신히 떼어냈다. 물속에 들어가 돌고래를 구경하며 놀다 상어가 덤벼들어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거대한 유빙(流氷)이 요트 곁으로 떠밀려올 때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말 난처했던 건 무풍(無風)지대를 만났을 때였지. 요트를 움직일 방법이 없으니.”
바람이 잘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무동력 요트는 바람이 잠들면 같이 잔다. 그럼 그도 덩달아 자거나,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라도 추면 좋을 테지만 그러기엔 아깝다. 잠이나 자자고 세상의 변경을 찾아간 게 아니니까. 결국 그는 흘러가는 생각들을 잡아채는 데에다 시간을 쓰곤 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의 사색. 사색의 끝은 주로 사람에 닿았다지.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항해 중에 거듭 사람이 그리웠다. 아는 사람들의 좋았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그리움이 들솟더라. 별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인간이다. 그럴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외로움이 뭐야? 난 그런 거 몰라! 그는 그런 투로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러나 항해 중엔 무인도마냥 고독했던가보다. 그걸 피할 길이 있겠나. 해서 가슴으로 사람이 사랑처럼 피어올랐겠지. 나는 그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개중에 저릿하게 남는 한마디. 사람이 그리웠다.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꼼데가르송
지난 2월 9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날 대중은 투자·배급사인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입은 의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바로 ‘꼼데가르송 빈티지 재킷’이었다.
이 의상에 부착된 밴드 위에는 ‘PARASITE is Cool’(기생충은 쿨하다), ‘I’m Deadly Serious’(나 정말 진지해요), ‘RESPECT’(존경해요) 등 영화 속 명대사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넣은 문구들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꼼데가르송은 1969년 출시된 일본의 아방가르드 고급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에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1981년 파리 컬렉션에서다. 블랙을 기초로 한 비대칭 재단과 미완성인 듯 보이는 바느질, 풀어헤쳐진 원단을 사용한 의상들은 당시 충격을 안겨줬다.
이 부회장이 시상식에서 입은 재킷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만 원대로 추정된다. 꼼데가르송의 재킷과 코트는 100만~30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하트 로고의 플레이 라인 티셔츠는 10만 원대, 카디건은 30만 원대다.
◇에르메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총회장이 명품 넥타이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2일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 국민에게 사죄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에르메스’의 노란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해당 제품은 약 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다.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대가 상당한 프리미엄 라인은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버킨백’과 ‘켈리백’이 초고가 제품이다. 버킨백 가격은 2011년 기준으로 1240만 원 정도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다녀서 유명해진 켈리백은 35㎝급 제품이 930만 원 선이다.
이 제품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예약을 한 뒤 오랜 대기기간을 거쳐야 살 수 있어서다. 버킨백은 현재 2000여 명의 대기자가 있어 3년 후에나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백은 현재 국내 VIP의 예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롤렉스
지난해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찾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가 화제였다. 영국 언론 데일리미러의 보도에 따르면,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롤렉스’의 ‘GMT-마스터 아이스 워치’다.
이 시계의 가격은 38만 파운드(약 5억74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한정판 제품이다. 데일리미러는 이날 호날두가 차고 나온 시계도 희귀하지만, 그의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아니라고 전했다.
롤렉스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과 유명인의 총애를 받는 대표적인 명품 시계 브랜드로 정확성과 내구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엄격한 자체 검증과정을 통해 하루 오차 2초 내외로 정밀 조정된 시계만 출고한다.
롤렉스는 매우 일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를 갖고 있어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모델 분류가 철저하다. 다른 브랜드들도 용도에 따른 분류를 하지만 롤렉스에 미치지 못한다. 롤렉스 시계가 필드 쓰임새를 극대화한 ‘고급 툴워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건 이 때문이다.
1982년,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했다. 그 후 38년, 야구와 함께 살며 모든 행적이 한국 야구의 역사 그 자체가 된 선수가 있다. 바로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얼마 전 경찰 야구단 해체와 함께 감독직을 마지막으로 야구 최전선에서의 50년 인생을 마무리 짓게 된 그는 이제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1956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배트와 공으로 돌파한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듣기 위해 그가 계룡산 자락에 마련한 휴양공간 유쓰카페로 찾아갔다.
프로야구 리그 출범 전 한일은행 야구단에서 포수로서의 생활까지 포함하면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의 가장 최근 직업은 사업가다. 계룡산 자락 입암저수지 앞에 자리한 유쓰카페의 사장이 된 것이다.
“작년 연말에 오픈했어요. 이 땅을 매입한 지는 오래됐죠.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지낼 때였어요. 경기에서 이기면 머리가 맑았지만 지면 아주 피곤했어요. 옆에서 술 마시자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술도 끊고 어디 힐링할 데 없나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알게 됐죠.”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 지인들과 자주 와서 놀다 보니 땅 주인이 살살 꼬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사게 됐다. 그러나 매입한 후 임대만 하고 땅을 놀렸다.
“이곳은 제 희로애락이 다 깃든 곳이에요. 시합에서 지면 찾아와 무상무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러다 땅을 팔 건지 재건축을 할 건지 고민하다 저도 이제 은퇴할 시기가 됐고 직업을 또 가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무리해서 짓게 된 거죠.(웃음)”
이제 아내에게 의지할 나이
유쓰카페는 그 이름처럼 1~2층은 카페, 3~4층은 펜션으로 운영된다. 펜션은 룸이 4개밖에 없는 소규모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 아닌, 가족들이 와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유쓰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 아내 장은진 씨도 함께했다. 우리가 아는 선수이자 감독인 유승안은 카리스마 넘치는 강직한 원칙주의자다. 그렇다면 아내에게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에겐 너무 좋은 아빠예요.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본 적 없고 스트레스를 표시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늘 져주는 아빠죠. 그런데 제 입장에선(웃음), 한 15년 정도는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기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일은 남편이 아닌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나 60세에 가까워지면서 순화가 되더라고요. 요즘은 저와 상의도 많이 하고 말투도 엄청 부드러워졌어요.”
그렇다면 그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앞에서 타박 아닌 타박을 당한 그가 슬쩍 끼어들며 한마디했다.
“우선 2~3년 전부터 여성호르몬이 증가했고(웃음) 이제 살길을 찾는 거죠. 앞으로 제가 의지해야 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마누라니까, 안 까불려고.(웃음)”
프러포즈도 제대로 안 한 남편과 미국에 같이 간 이유
두 사람의 주거니 받거니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와의 만남을 “홈런을 쳤다”라고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두 아들을 안겨준 첫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귀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혼한 후 18년을 함께 살았다. 이제 와 다소 늦은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남편이 이상형이었는지 짓궂게 물어봤다.
“하나도 아녔죠.(웃음) 저는 구단 직원이어서 친분은 없지만 어쩌다 가끔 보는, 알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몹시 남자다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프러포즈도 없었어요. 비슷하게 한 말이, ‘네가 있어야 내가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고, 네가 없으면 일본을 가야 하는데 난 미국에 가고 싶다’였어요.(웃음) 미사여구로 꾸민 말도 아니고 그저 담백했죠. 그런데 그때는 남편도 믿음직스러웠지만 두 아이들도 좋았어요. 애들과 코드가 잘 맞았거든요. 사실 지금도 남편보다는 애들과 친해요.(웃음) 그래서 결혼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죠.”
두 사람은 결혼 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내는 거의 두 아들하고만 지냈다. 남편은 연수를 해야 해서 늘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이 일과를 끝내고 들어오면 밤 열두 시였어요. 그러니 저희는 저희끼리 살아남아야 했죠. 애들은 저를 의지했고 저도 애들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서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야구 집안의 두 아들과 막내딸
그가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되어 귀국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원래 살던 서울을 떠나 대전에서 지내야 했기에 가족끼리 똘똘 뭉쳤다. 여러모로 이러한 환경이 그들 가족을 의기투합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새롭게 연을 맺은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딸이 한 명 태어났다. 너무 감격스러워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을 정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딸은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런 딸에 대해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에는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면 좋겠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이상과 현실이 워낙 뚜렷한 아이라.(웃음) 어렸을 때도 스스로 잘 자랐으니, 진로도 알아서 곧 찾아낼 거라고 믿어요.”
“저희 딸이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할 도리는 다할 테니까.”
두 아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다. 다름 아닌 야구다. 일찌감치 야구선수로 활동해온 첫째 아들 유민상은 KT 위즈, 둘째 아들 유원상은 기아 타이거스 소속 선수로 뛰고 있다. 유승안 집안은 야구 패밀리로 유명하다.
자식농사 끝내 홀가분
지금까지 젊은이들과 함께 부딪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젊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사실 유승안은 다섯 살짜리 손주를 둔 할아버지다. 두 아들이 벌써 결혼해 손주까지 안겨줬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자식농사 끝난 거죠. 홀가분해요.”
아내는 남편과 살면서 의견이 심하게 부딪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싸워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고. 아이들과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조화가 잘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게 아내의 설명이다.
“우리 가족을 겉으로만 보고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정말 잘 맞아요. 애들도 잘 커서 나름의 자부심도 있고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안 그랬으면 일 년 정도 살다 말았겠죠.(웃음)”
그런 아내를 유승안은 고마움 가득한 시선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악조건인 상황에서 여태까지 잘해왔고… 그래서 너무 고맙죠. 앞으로는 이쪽에 예속돼 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내가 동의를 해야지!(웃음)”
평생 야구만 한 유승안의 새로운 도전들
유승안은 타고난 스포츠인이다. 스포츠는 일단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야구를 ‘토털 인생’이라고 칭하는 그는 미션이 주어지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노력 안 하고 무리 안 하면 좋은 걸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제2인생에 야구가 여전히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는 걸 검토 중이에요. 스포츠 아카데미, 재활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긴 지 30년이 넘었는데 아직 육성, 재활 쪽으로는 체계가 안 잡혀 있어요. 현재는 영리 목적으로 야구인이 아닌 사람들이 맡고 있는데 이제 우리 1세대가 해볼 만하다 싶어요. 미국이나 일본은 그런 시스템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교육 리그(시즌이 끝난 뒤 훈련이나 신인선수 발굴을 목적으로 펼치는 단기(短期) 리그)다. 경찰 야구단 2대 감독을 10년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육성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교육 리그 창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야구가 대만, 중국에 다 졌어요. 올림픽 예선도 멕시코를 이겨 겨우 올라갔죠. 동양권에서 꼴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원인은 육성에 있다고 봐요. 미국, 일본, 대만에는 교육 리그가 있어요. 한국만 없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교육 리그를 만들어볼까 해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거죠. 그러려면 앞으로 나서는 사람과 기업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진행이 되니까요.”
둘이서만 함께 살고 싶은 마음
유승안이 일단 저질러놓고 결과를 보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막 나가려 하면 그녀가 제어를 한다. 부부가 그처럼 잘 어울리는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남편은 꿈이 커요. 반면 저는 작지만 계획을 세우면 완벽히 하는 쪽이고. 제 꿈은 뭔가 큰 게 아니라… 우리 둘만 지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요. 그래서 둘이 살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제주도에 가는 것도 좋고, 펜션 사업도 좋아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목적에서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남편과 함께하고 싶은 거예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즐거운 농담 속에서 피어나는 시간 속에서 이들 가족이 행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느껴졌다. 눈이 온 창 밖 겨울 호수에 비치는 빛이 새롭게 시작된 미래를 향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될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톡은 국민의 생필품적 통신수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연말연시엔 수첩과 명함을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카톡을 정리하는 게 큰일입니다. 불필요한 동영상이나 사진, 의미가 없어진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고 중요한 걸 따로 갈무리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이 느꼈을 법한 불편과 불쾌함을 덜기 위해 일정한 지침이 필요하다 싶어 카톡 10계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주로 단톡(단체카톡)방에 관한 것들입니다.
1. 시도 때도 없는 “카톡!”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톡, 카톡!” 소리가 싫어 묵음으로 해놓거나 아예 문자메시지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 때나 카톡을 보내는 건 실례입니다. 특히 시차가 있는 외국에서 제 흥에 겨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면 역효과만 나게 됩니다. 낮에는 전혀 카톡을 읽거나 답하지 않다가 남들 자는 밤 12시, 1시 넘어 답장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2. 정치·종교 이야기 금지
얼마전 모 사회단체의 단톡방에, 어떤 사람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당 헌법 개정 초안이 나왔다는 글을 띄웠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치 이야기하는 곳 아니다, 거짓 뉴스 띄우지 마라, 대체 누구냐, 나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 사람은 나가지는 않은 채 숨만 쉬고 있습니다. 친목과 사교, 공지사항 전달이 주목적인 단톡방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서로 불편해지고 편이 갈려 싸움이 납니다.
3. 삼가야 할 중복·반복
용량이 큰 동영상 또는 사진을 다량 전송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홍보하는 일도 삼가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실황 중계를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대부분 그 사진이 그 사진이어서 받자마자 삭제하기 바쁩니다. 잘 선별해 의미 있는 것만 최소한으로 보내든지 ‘사진 묶어 보내기’ 기능을 이용하면 남들이 편해집니다.
4. 기성품 안부·격려 지양
월초나 주초, 또는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힘내세요”, “웃고 사세요”, “오늘도 으라차차!” 따위의 응원 인사가 폭주합니다. 내용이 빤한데 본인이 쓰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같은 걸 하루에 다섯 번 받은 날도 있습니다. 이런 거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어디 가져오는 데가 있어” 하면서 알려주지 않고 뻐기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5. 좋은 글·미담 공해
1960년대에 코미디언 살살이 서영춘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런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글과 사진을 마구마구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도 자기보다 한참 적은 사람이 인생철학을 거론하며 착하게, 바르게 살라는 글을 보내오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런 글 중 감동적인 미담에는 출처와 근거가 없는 가짜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게 부지기수입니다.
6. 억지 초대 자제
서로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모아 단톡방을 개설하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삼가야 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야기만 하거나 자칫 말이 엉켜 불쾌해지게 됩니다. 100명 넘는 사람을 초대해 운영하다가 “잠시 잠적한다”며 없어지더니 몇 달 후 다시 나타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게 뭐야,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OB 내지 않기
골프에서는 공이 규정된 지역 외로 나가면 OB(Out of Bounds)라고 합니다. 단톡방에도 OB꾼들이 많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카톡을 엉뚱한 모임에 날리거나 임대료 빨리 보내라는 카톡을 대학 동창 단톡방에 올려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간판도 못 다는 사람이 많지만 단톡방 간판을 잘 보세요. 뒤늦게 삭제해도 ‘때는 늦으리’입니다.
8. 댓글 달기 신중하게
수신자가 지켜야 할 것도 많습니다. 행사나 모임에 초대하는 카톡에 눈치 없이 제일 먼저 못 간다고 댓글을 다는 건 한마디로 흥행을 방해해 김이 새게 만드는 짓입니다. 카톡을 빨리 읽는 건 좋지만 불참 통보는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 회원들의 반응이나 논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걸 올리는 건 실례입니다. 이런 중간 낙서는 먼저 글 올린 사람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호응도 얻지 못합니다. 하루 정도 지나 그 일이 정리된 뒤 새 글을 올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9. 딴전·딴청 부리지 말기
여럿이 의견을 주고받는 단톡방에서 그 주제 내의 특정 사항에 대해 둘이서 설왕설래, 지지고 볶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본인들은 신날지 몰라도 꼴불견이 되기 십상입니다. 개인 카톡으로 1대 1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10. 반응·답장 잘 하기
카톡을 받으면 반응을 보이고 답을 하는 게 소통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묵묵부답인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용이 지겨워 오는 족족 카톡을 지우고 일절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보낸 사람이 삐쳐서 전화도 안 받더랍니다. 겨우겨우 기분을 풀어주었는데, 영영 안 볼 사람이 아니면 적절히 알은척을 해주십시오. 데이터가 꽉 찬 경우 카톡방에서 나가버려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휴대폰 우측 상단의 석 삼자를 누르고 그 아래 기능 버튼에서 ‘대화 내용 모두 삭제’를 눌러 몸을 가볍게 하십시오.
‘인플루언서’(Influencer)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영향을 주다’라는 뜻의 ‘인플루언스’ 뒤에 접미사 ‘er’을 붙여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칭한다. 연예인, 운동선수 혹은 잘나가는 유튜버 크리에이터일 수도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플루언서’로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자다. 특히 부자들의 삶에서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경매시장에 나온 예술품은 범상치 않은 이의 손과 손을 거치며 본연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들의 입소문을 타면 예술의 가치가 올라갔고, 문화로 정착했으며, 새로운 예술가가 탄생하기도 했다.
‘부’를 업고 문화를 껴안다
재력을 쌓아올린 부자들은 먹고사는 일에서 해방되자 규칙을 정하고 그들만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최고급, 최상품, 최고 가치는 부자들의 눈썰미에 최적화되어 분류됐다. 도시가 생겨나고 산업이 발달하던 시기, 예술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자는 결국 시간과 정서적 여유가 있는 부자들이었다. 먹고사는 데 불편함이 없었던 이들은, 예술세계를 알면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카타르시스가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인플루언서였던 그들은 시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을 찾아내고 성장시켜왔다. 당장 빵 한 조각이 없어 굶어죽을 수도 있는 사람이 예술을 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지원은 결국 부자들이 했다. 그것은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였다.
예술과 학술 활동을 후원하고, 문화 가치의 보존에 힘쓴 역사 속 수많은 부자 중에는 15세기의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섬유 사업으로 가세를 키워 금융업으로 성장해 유럽 최고 부호가 된 가문이다. 막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피렌체 정치도 좌지우지했다. 그다음으로 한 것이 바로 예술인 후원. 온갖 고서를 찾는 책 사냥꾼을 고용해 전 세계의 서적을 모았고 문화, 조각, 회화는 물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14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예술 작품을 메디치 가문이 보존했다.
한국판 메디치 가문을 꼽자면,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일본에 넘어가거나 훼손, 말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집하고 보호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간송은 증조 때부터 배우개(현 종로4가) 중심의 상권을 장악해온 대부호 집안의 상속권자였다.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중국어 역관이자 서화가, 수집가였던 오세창과 함께 민족문화재 수집 보호에 힘을 쏟았다. 대대로 물려받은 막대한 재력과 오세창의 탁월한 눈썰미, 그리고 두 사람의 민족문화운동에 감명을 받은 지식인들의 후원으로 순조롭게 문화재를 회수했다. 추사 김정희와 겸재 정선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했다. 심사정, 김홍도, 장승업 등 조선시대 전반에 걸친 화적, 서예 작품까지 총망라했다. 고려자기와 조선자기를 비롯해 불상, 불구, 와전 등의 문화재도 수장했다. 우리 미술사 연구를 위해 중국 역대 미술품도 수집했다.
제2의 메디치 가문을 꿈꾸는 ‘메세나’
지난해 가수 헨리가 10년 동안 써왔다는 바이올린이 자선경매에서 1000만원에 낙찰되는 모습이 MBC의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전파됐다. 이 낙찰금은 ‘2017 오사카 국제콩쿠르’ 파이널에 진출하고 ‘2018 티보르바르가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김주선 양에게 전해졌다. 현재도 다양하고 굵직한 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김주선 양이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기업의 지원이 있었다. 2013년 LG(회장 구광모)와 함께하는 사랑의 음악학교 장학생, 2014년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정몽구) 아트드림콩쿠르 장학생으로 재정적 지원을 받아 바이올린 연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메세나’는 기업들이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를 지원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현재 249개 기업이 (사)한국메세나협회에 가입해 문화 지원활동 분야에서 사회 공익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원 규모나 스케일도 꽤 크다. CJ문화재단은 음악 장학생을 선발해 청년 음악가를 후원한다. 특히 2014년부터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후원을 시작해 2018년부터는 공동 주관사로 대회 운영을 함께한다. 실력 있는 가수들을 배출한 전통 있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이끌어가는 것 또한 대중예술과 창작자를 돕는 사회 공익 사업 중 하나. 한류 문화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다 보니 대중문화 지원 활동이 눈에 띈다. 두산그룹(회장 박정원)은 매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청소년아트스쿨이라는 워크숍을 열어왔다. 우리나라 최고 연출가와 극작가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무대예술에 관심 있는 청소년에게 뜻깊은 프로그램이다. 연출가 박근형, 김수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들이 참가해 청소년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줬다.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의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도 반향이 크다. 2014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평소 클래식 악기를 접하지 못한 소외계층 청소년에게 연주를 가르치고, 연주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년에는 천안과 청주 지역 청소년들에게 정통 클래식 악기를 가르쳤으며 연말에는 이틀에 걸쳐 정기 음악회도 열었다. 이러한 각 기업들의 활동은 더 나은 예술 환경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미래 인재를 위한 소중한 씨앗 뿌리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