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매년 증가하면서, 건강보험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료비는 건강보험이 의료기관에 낸 진료비와 환자가 직접 낸 본인부담금을 합친 것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2년 1분기 건강보험 주요 통계 개요’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6년 25조 187억 원에서 2020년 37조 4747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1년에는 처음으로 40조 원을 돌파, 2016년 대비 1.6배 수준으로 늘었다.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인 진료비 비중은 2016년 38.7%에서 2017년 39.9%, 2018년 40.8%, 2019년 41.4%, 2020년 43.1%, 2021년 43.4%로 계속 늘었다.
올해 1분기에도 65세 이상 건강보험 진료비는 9조 8565억 원으로 전체의 42.6%에 달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9만 667원으로 지난해보다 0.1% 증가했다.
건강보험 적용 인구 중 노인 인구 비율도 증가 추세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6년 644만 5000명에서 2021년 832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 적용인구 중 노인 인구 비율도 2016년 12.7%에서 2021년 16.2%로 증가했다. 3월 기준 65세 이상 건강보험 적용 인구는 845만 명으로 전체의 16.4%를 차지했다.
앞으로 노인 인구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어서, 노인 진료비 비중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0년 16.1%에서 2040년에는 35.3%로 높아진다. 인구 3명 중 1명은 고령 인구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9년 4월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을 내놓고 재정 안정을 높여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대응책을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노인 의료비 증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진료비 감액 혜택 노인 적용대상 나이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리는 등의 조정 정책이어서 국민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신현웅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보건의료 정책 현황과 과제: 지속가능성 확보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기존의 의료 이용 행태를 고려하지 않은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 벗어나 꼭 필요한 분야의 의료보장은 확대하되 불필요한 분야는 개선하는 방향으로 보건의료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선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1년 ‘건강보장 Issue & View’에서 2004~2018년 기간 동안 노인 총진료비 증가의 요인으로 인구(39.4%)와 가격(39.6%)이 가장 높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고령화와 가격요인으로 노인 의료비가 증가했다는 것.
또한, 만약 적절한 비용 통제 정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20년 기준 전체 GDP의 2.5% 수준인 노인 의료비는 2030년 6%, 2060년에는 12~16%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사망이 임박한 노인들의 불필요한 연명 의료를 자제하고, 완화의료 및 호스피스 등의 대안적인 방법 도모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마련에 대한 필요성을 확인했다”며 “노인 의료비 지출이 커지는 이유로 고령화뿐 아니라 진료비의 증가도 있는 만큼, 고가의 의료서비스나 과잉진료 등의 의료 패턴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노인복지관을 신규 지정했다. 신규 지정된 노인복지관은 15일부터 상담사 교육 이수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및 등록업무를 시작한다. 이번 지정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저변이 확대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30개의 노인복지관을 새롭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로서 총 330개 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결정(임종 과정에 있을 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에 관한 의사를 밝힌 문서를 말한다. 등록기관을 방문하거나 상담을 통해 작성할 수 있으며, 의향서의 내용은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연명의료중단 결정 관련 문서 작성 건수는 2018년 12월 10만 1773건에서 지난해 같은 달 115만 8585건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는 102만 건으로, 전체 작성자 131만 건 중 77.9%다. 노인복지관은 어르신 대상 전문 상담를 제공해,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여 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신규 지정된 등록기관인 경북 의성노인복지관의 황희철 팀장은 “어르신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적극 홍보하고 안내해 제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재경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국민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와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도 “노인복지관 등록기관 유입으로, 고령층 접근성 증대 및 인프라 확충을 통해 제도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으며, 원활한 업무 수행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분기별 연 4차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지정된다. 지정된 기관은 필수 교육 이수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지원‧등록 업무가 가능하다. 가까운 등록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3~4월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락사·의사조력자살 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3%가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락사는 회복할 가망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해 사망하도록 하는 의료 행위를 말하며,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인에게도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의 라이프서클 재단의 의사조력자살이 대표적 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고 ▲회복의 기미가 없으며 ▲치료 방법이 없고 ▲본인의 의사가 명확한 상황에 해당하면 침대와 약물은 준비해 주지만, 약물 주입은 환자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한다.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 입법화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남은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30.8%)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 ‘고통의 경감’(20.6%), ‘가족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등이 뒤를 이었다.
반대 이유로는 ‘생명 존중’(44.4%)이 가장 많았으며, ‘자기결정권 침해’(15.6%), ‘악용과 남용의 위험’(13.1%) 순이었다.
윤영호 교수팀은 2016년 조사에서 약 50%의 응답자가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찬성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연구에서는 약 1.5배 높은 찬성률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락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법적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일본에서는 1995년 말기 암 환자에게 극약을 투여한 의사에게 예외적으로 안락사를 인정했는데, 법원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을 앞두고 있고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이 있고 ▲고통을 없앨 방법을 다 써봤고 ▲환자 본인이 안락사를 명확하게 희망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의사의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2018년 환자, 가족, 주치의가 대화를 통해 연명장치를 희망하는지를 문서로 남기는 ‘어드바이스 케어 플래닝’ 지침을 만들었다.
올해부터 환자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료 활동에 정규 수가가 적용된다. 이에 요양병원을 포함한 중소병원의 연명의료결정제도가 확대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개최해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의 올해 시행계획을 심의·확정했다.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은 연명의료결정법 제7조에 근거해 호스피스와 연명의료결정제도 확립을 위해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하게 임종 과정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료인 활동에 대해 임시로 운영해 온 시범사업 수가가 아니라 개선된 정규 수가를 산정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시범 수가가 정규 수가로 편성되면서 전반적인 수가 적용 기준이 완화됐다. 기존에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의료기관이 직접 운영해야만 수가 적용이 가능했으나, 올해부터는 위탁 운영도 허용한다. 외부 전문가 섭외가 어려워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했던 중소병원을 위해 여러 의료기관이 ‘맞춤형 공용윤리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될 예정이다.
또 시범 수가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시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기관에만 적용됐으나, 정규 수가는 이 4가지 시술 중 1개 이상 수행 가능한 기관이면 적용된다. 별도의 연명의료지원팀을 구성하고, 제도 관련 교육을 수료하도록 했던 인력 기준도 해당 업무 담당자만 교육을 이수하면 되도록 완화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는 제도 시행 3년 6개월만인 지난해 8월, 100만 명을 돌파했다. 복지부는 올해 150만 명을 목표로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기관을 지속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인복지관, 보건소를 더불어 비영리법인이나 단체를 통한 ‘찾아가는 상담소’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한 호스피스 서비스의 대상 질환이 확대된다. 기존의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2종 외에 만성 호흡부전 13종의 질병코드(만성기관지염, 천식, 기관지확장증, 진폐증, 호흡곤란증후군, 간질성폐질환, 기타호흡장애 등)를 추가한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수행 중인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그 성과를 평가해 본 사업으로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은퇴가 눈앞에 보이는 A씨는 최근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 친구가 위암으로 수술받은 소식을 듣고, A씨도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그에게 암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직 암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또 A씨는 생각합니다. ‘내가 아파도 되나?’
이 질문은 참 이상합니다. 아픈 것은 선택도 아니므로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아픈 것은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일이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 떠올려보면 이전에 아팠을 때, 또는 최근에 아플 때 저 생각이 머리 한구석을 스쳐갔음이 생각날 겁니다.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아플 수 있다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처럼 병원에 가는 것이 무척 힘들다면, 예컨대 미국처럼 비용 걱정이 눈앞을 가리거나 영국처럼 병원에 가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저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병원에 가는 일 자체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고, 병원 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서 ‘아파도 되나’ 싶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재난적 의료비(소득 수준에 비해 과도한 의료비를 부담하게 됨 또는 그 비용을 말합니다)로 어려운 일을 겪는 분들도 계시지요. 이것은 우리의 의료 제도가 질병에 따라 비용 부담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많은 병을 적은 부담으로도 치료받을 수 있는 한편, 그렇지 못한 병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는 우리나라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산업화, 그 안에서 의료 제도가 맡아야 했던 역할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곤 합니다.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는 노동력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의료는 여기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지요. 당장 아픈 곳을 싸매어 다시 일자리로 돌려보내는 것과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리 의료 제도의 대전제였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몇 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 제도 안에서 아픔은 빨리 지워져야 할 무엇이었을 뿐입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오물이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위한 노력에 병과 병자의 자리는 없었지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된 지금에야 우리는 의학에 다른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되는가, 죽지만 않으면 되는가. 후자의 질문에 대한 제도적 답이 연명의료결정법이지요. 말기 질환 환자가 삶을 연장하기만 하는, 많은 경우 고통스러운 치료를 계속 받을지 중단할지를 본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제도 말입니다. 하지만 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학이 아픈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아직 진지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프면 빨리 회복해서 다시 일해야지 하는 생각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을 뿐이기에, 우리는 아픈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은 훨씬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질병이라는 혼란 속에서 돌봄과 지지가 필요한 환자가 잠깐의 지지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의료인을 만나 풍랑을 함께 넘어가는 경험을 주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감기를 앓는 이에게 감기약을, 근육통을 앓는 이에게 진통제를 주고, 상처 입은 이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만 하는 것이 의학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의학은, 의료는 환자와 의료인이 서로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는 공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여전히 가능한 꿈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의 효율 좋은 의료 제도 속에서 이런 것은 사치스러운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파도 될까요? 당연합니다. 그것은 권리로서 확보되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역사 때문에, 누군가는 심지어 아플 권리를 외쳐야 하는 상황처럼 느껴질 뿐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픔을 통해 다른 질문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의학이, 의료가 아픔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할 때가, 아픔의 가치를 생각하고 아픔을 통해 서로 무엇을 나눌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저는 말하려 합니다. 아픈 사람이 타인에게 끼칠 폐를 걱정하며 자신의 아픔을 숨겨야 했던 시절은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픔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아픔을 그토록 무가치한 것으로, 빨리 떨쳐버려야 할 나쁜 것으로만 여겨왔습니다. 노화는 말할 것도 없지요. 물론 누구도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고, 아픔은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픔은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철학자 니체는 아픔을 통해 숨어 있던 자신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즉 그에게 병은 자신을 일깨우는 사건이었지요. 저 또한 우리 아픔의 역사를 살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픔을 찬양할 필요도, 깨달음을 위해 일부러 아플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픔이 숨겨져 있던 것을 우리에게 밝혀주는 통로가 된다면, 적어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임에도 깨닫지 못했던 이들을 우리에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과 아픔 자체에 대한 평가절하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 아닐까요.
파슨스라는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병자는 특수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며, ‘병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병을 빨리 떨쳐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병자에게 빨리 나아야 할 책임은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는 병자에게 무엇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아픔도, 아픈 사람도 모두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픔의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다시 자리 잡을 때에야, A씨가 떠올렸던 ‘아파도 되나’ 하는 생각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곰곰 생각해봅니다.
병원을 자주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소아과 간판 앞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의문이 있다. ‘왜 노인과는 없는 거지?’ 실제로 병을 달고 사는 것은 노인인데 말이다.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노인과는 존재한다. 몇몇 병원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운영되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곱씹어보니 고령화라면 세계 최고로 꼽히는 우리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일임을 금방 알게 된다. 이에 대해 정희원(39)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인의학’ 도입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사회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년내과가 생겨요. 최근에는 정부가 주도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죠. 나이가 들면 만성질환이 늘고, 노화를 부르는 요소들이 축적되죠. 신체 기능도 떨어지고요. 한꺼번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죠. 이럴 때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치료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어요. 섬망, 욕창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안고 있는 다양한 질환에 대해 전문 치료과에서 각각 치료받으면 약이 많아지고 몸에서 섞이죠. 그러다 부작용이 생기면 또 그에 대한 약을 처방해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면서 비효율적이죠.”
노인의학은 생물학적 노화의 결과인 노쇠와 여러 가지 질병, 신체적·정신적 기능의 변화가 혼재된 상태에서 환자에게 맞춤 의료를 제공하는 전문 분야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몇 살부터 노년내과에서 담당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노쇠의 특성을 가지는 인구 집단을 전문적으로 볼 수 있는 분야다.
정 교수는 설명 과정에서 ‘약을 정리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 현재 복용 중인 약 중 꼭 필요한 약물만 복용할 수 있도록 수를 줄이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말한다. 각기 다른 전문의가 처방한 약은 나름의 목적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이 충돌을 빚어 부작용이 생길 경우 이에 대한 또 다른 약을 처방하기보다는, 복용 중인 약물에 변화를 주어 불필요한 약을 줄이고 부작용도 없앤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지만, 모든 질환에 대한 경험과 약물 부작용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하지만 만나기 힘든 ‘노인의학’
물론 기존의 의료기관이나 진료과가 이런 부분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건강보험제도 구조상 환자가 처방전을 직접 가져다주지 않는 이상 다른 병원에서 내 환자에게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의사는 알 길이 없다. 노년내과에서 현재 복용 중인 모든 약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에게 맞는 맞춤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니까요. 같은 80대라도 사람마다 상태가 너무 달라요. 기대여명이 짧은 상태라면 무리하게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처방하는 약을 유지할 필요는 없어요. 부작용만 생기죠. 노인의학은 일종의 정밀의료로, 생물학적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 고려해서 치료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치료와 함께 돌봄 계획도 수립하고, 연명의료도 논의하죠. 어디에 사는지, 환자분의 의향은 어떤지, 보행 속도나 악력은 어떤지도 고려해요. 물론 이 과정에서 약도 정리합니다. 이렇게 환자의 이런저런 일들을 챙기다 보면 환자 1명당 진찰 시간이 30분을 훌쩍 넘어가죠. 상업적인 병원에서 노인의학을 외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물론 환자 입장에선 ‘속 시원한’ 경험이다. 하루에 먹던 수십 개의 약이 정리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약값 부담도 줄어든다. 또 환자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혹은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찾을 수 있으니 걱정이 줄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앓고 있는 질환이 여러 개여서 다니는 병원이 많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 것 같다면 한 번쯤 노인의학 진료과를 찾아 전체적인 신체 건강 상태나 치료 방향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노쇠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점검하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국내에 노인의학 진료과가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노인병센터’를 설립했다. 이어 2009년에 서울아산병원에 노년내과가 생겼고, 2010년에는 신촌세브란스에 노년내과가 들어섰다. 짧은 기간에 연이어 노인의학 진료과가 신설되면서 대중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의료계 내에서 진료 영역에 대한 갈등으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인의학의 필요성 때문인지 관련 진료과 설립은 계속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과 전남대학교병원, 건양대학교병원, 울산대학교병원, 은평성모병원 등 국내 10여 개 진료과에서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으로 시도됐다가 잘 안 됐죠. 공공의료가 잘 되어 있는 영국에선 내과 의사의 10%가 노인내과 간판을 달고 진료하고 있어요. 영국 정부는 각 과별로 따로 진료하고 처방하는 것보다 노인병을 전담하는 사람이 맡아보는 것이 효율적이고 보험 재정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개인과 사회 모두 중요한 지속가능한 나이 듦
정희원 교수는 최근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지속가능한 나이 듦 : 노년의 질병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이다. 노인의학 의사이자 생명과학 박사까지 취득한 정 교수는 나이 드는 것을 노화 메커니즘이나 나이라는 숫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노화의 생물학적 정의와 메커니즘을 다룬 ‘시간 : 노년을 맞이한다는 것’과 노인의료의 문제점과 사례를 다룬 ‘질병 : 노년의 질병,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사회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 ‘사회 :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가 그것이다.
‘지속가능한’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이 단어는 지난 몇 년간 경제 분야의 화두였다. 의료와는 다소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정 교수는 “나이 듦이라는 것을 극복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 이 표현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티에이징이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마치 나이 듦을 재앙처럼 여기려 하지만, 실제로 노화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이에요. 노화를 받아들이고, 본인이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질병이나 노화의 축적을 예방함으로써 덜 고통받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젊어서 만성질환을 관리하지 않고 운동 부족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면 노쇠는 남보다 빨리 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면서 장애가 생기는 것을 지연시키고, 노화를 맞이하더라도 삶의 질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나이 듦이라고 봤어요.”
정 교수는 이러한 관점이 단순히 개인의 삶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복지사회 정책이나 고령화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언론에선 마치 고령화가 사회의 종말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회에서 고령의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이 파멸적인 것은 아니에요. 우리 사회는 지금 복지정책을 디자인할 때 과거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실수를 하고 있어요. 65세가 도움이 필요한 약자였던 것은 수십 년 전의 이야기고, 지금의 65세는 그 기준이 세워졌던 시절 50대 수준의 신체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의료나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 기준으로 삼는 ‘노인’에 대한 정의를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노인의 기준을 무조건 나이로 가르려는 연령주의적 발상은 문제가 있어요. 65세가 되었다고 그 순간부터 갑자기 다른 종족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나는 적어도 늙지 않았다는 분리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부적절한 기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관료적인 생각은 변화될 필요가 있어요. 이제 나이는 많지만 건강 상태가 좋고 독립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정 교수는 그 이유를 삶의 폭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갖는 시점도 과거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춰졌고, 지금의 86세대나 X세대가 65세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10년 전의 65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적응 역량이 높을 것이라고. 나이라는 숫자는 같지만 생애 주기의 위치와 능력, 역할이 달라지는 변화를 정 교수는 ‘스냅샷의 오류’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 것이 좋을까. 정 교수는 노화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획일화된 노화 예방 상식으로 접근하다가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이 처한 노화 스펙트럼에서의 위치에 따라 그에 맞는 건강 증진 활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0대는 만성질환 관리를 잘하면 뇌졸중 등 질환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혈압이나 혈당 등을 철저하게 관리시키지만, 이미 노쇠한 어르신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낙상이나 섬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단백질 섭취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성인은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면 노화 시계가 빨라져요. 그러나 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근감소를 막기 위해 단백질 섭취를 권해야 하죠. 이렇게 생애 주기에 따라 예방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다른 목표를 설정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보호자 ‘효자’ 되지만, 병원에선 ‘불효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인의학을 다루는 의료기관도 많지 않고, 병원 내에서도 입김이 셀 수 없는 진료 과목이다. ‘돈 잘 버는 효자’ 노릇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런데 왜 정 교수는 ‘노년내과’를 선택했을까.
“본과 4학년 때였어요. 섬망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온 노인 환자가 있었죠. 일반적으로 내과 의사는 환자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선배 의사가 환자가 복용하던 약들을 종이에 끄적이더니 정리해주었어요. 그러고는 며칠 만에 멀쩡해져서 걸어 나가시는 걸 보았죠. 노인의학의 매력을 느꼈어요. 알아야 하는 분야의 폭도 넓고 깊은 데다, 복지정책이나 보험제도 등 사회의 기능적인 내용까지 알아야 하니까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것이 진짜 내과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죠.(웃음)”
정 교수는 내과 전문의이자 생명과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가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 역시 노인의학과 관련한 목마름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공의 과정을 통해 노화와 노쇠, 근감소증에 대해 공부했는데, 아직까지 노쇠와 근감소증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약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나이 듦에 따른 이런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죠. 또 영양 섭취나 운동 등으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모델 동물을 통한 생물학 연구에선 노인의학적 접근이 활발하지 않아 임상 의사로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람의 노쇠는 복합적 요인이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단순화된 실험으로는 쉽게 답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인의학 의사로서 노인의학 클리닉의 장점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혼잡한 종합병원에서 휠체어를 끌고 5~6개 진료과의 외래진료를 다니시던 분들이 통합된 한 곳에서 진료받으면 드시던 약을 정리할 수 있고 병원에서 고생하시던 시간과 진료비도 줄어듭니다. 몇몇 분들은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는 것이 직업처럼 되어버리거든요. 이런 분들은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줄면 무척 기뻐하세요. 많은 분들이 이런 혜택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1인 미디어 시대다. 최근 유명 유튜브 채널에는 대선 후보가 나란히 출연하는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여러 유튜버 사이에는 중장년들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무기로, 젊은 창작자 사이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재천 교수 '최재천의 아마존'
교과서에서 나오는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을 쓴 최재천 교수. 그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다. 최재천 교수는 1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운영 중인데,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채널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며칠 전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는 11만 명을 넘어섰다.
최재천 교수의 채널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지난 달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면서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61만 명을 돌파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에 대해 "진화생물학자인 제가 보기에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며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번식을 하는 동물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다"라며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IQ가 두 자리가 안 되니 애를 낳는 것이냐.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와 같은 최 교수의 의견에 대해 네티즌들은 "세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보다 더 젊은 생각이 멋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최재천 교수는 10만 구독자 돌파 소감에 대해 "1년이 훌쩍 넘도록 이게 언제 구독자 수가 늘어나냐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정말 감사하다"면서 "제가 최근에 팀원들에게 '뭔일이냐'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일환 변호사 '차산선생법률상식'
대법관을 지낸 박일환(70) 변호사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차산선생법률상식'을 운영 중이다. 30년 이상 판사로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법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법률 상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현재 구독자는 13만 명을 넘어섰다. 초반에는 법에 문외한 딸이 영상 편집을 맡았고, 손주도 종종 출연해 친근한 느낌이 강했다. 현재는 법률 방송과 함께해 영상 퀄리티가 좋아졌고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다. 박일환 변호사는 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유튜브 운영에 더욱 힘쓸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김양수 농부 '귀농TIME'
전남 귀농 산어촌 서울 센터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귀농TIME'. 여기에서 '농부의 정석' 시리즈를 맡고 있는 김양수 씨(54) 씨는 가장 인기 스타이다.
그가 지난 4월에 올린 '진딧물의 정복자, 숨겨둔 비법 대공개' 영상은 27일 현재 조회수 43만 명을 돌파했다. '귀농TIME' 콘텐츠 중 누적 조회수 1위다. 매우 간단하면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법은 많은 귀농·귀촌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귀농TIME'에서 '뚝심으로 70대에 토종 다래 명인이 되다'는 누적 조회수 13만회, '직접 만든 강력한 천연 기피제로 해충들을 몰아내는 비법 대공개'는 10만회, '꿀고구마 1년 순수익 1억 달성, 3가지 핵심 키워드'는 7.4만회를 각각 기록하며 그 뒤를 이었다.
고수·도사·달인의 '고도달TV'
'고도달TV'의 운영자는 '고수' 최종찬 씨(71), '도사' 유시탁 씨(72), '달인' 정상곤 씨(72)다. 이들은 경복고, 서울대를 졸업한 동문으로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 도움이 되는 노년'이라는 목표로 의기투합한 세 친구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겠다는 각오다.
'고도달TV'에서는 키오스크 사용법, 건강검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기, 추억의 먹거리, 자녀·손주들과 잘 지내기 등 같은 생활 밀착형 소재들을 다뤘다. 시니어들에게 많은 정보와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첫 영상을 올렸고, 현재 구독자 수는 2천 명이 채 안 된다. 지난달 '2021 제1회 시니어유튜버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센터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지난 9월 100만 건을 넘어섰다. 특히 60세 이상 노년층의 관심이 높다. 60대가 24.3%, 70대가 44.7%, 80대가 18.9%로 60대 이상 작성비율이 87.9%를 차지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란 임종 과정 환자에게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 늘리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무의미하게 임종까지의 기간만 늘리지 않고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자 지난 2018년 마련됐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5.6%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가 늘어나고 있어 제도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연명의료관리센터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센터장은 “연명의료센터는 공공기관이지만 법령에 따라 근무할 인력이 정해져 있지 않고 보건복지부를 통해 인력을 요청하면 기획재정부에서 검토한 후 채용하는 방식”이라며 “전국 단위 사업을 하는 기관이지만 그에 비해 인력은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명의료관리센터 인력은 총 17명이다. 인력 자체도 부족한데 연명의료결정제도 관련 전문인력은 간호사 3명, 사회복지사 2명에 불과하다. 의사는 1명도 없다. 더군다나 연명의료센터에 따르면 내년에는 시범적으로 진행됐던 사업들이 정식사업으로 채택돼 인력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현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는 기관이 지역보건의료기관, 의료기관, 비영리 법인, 공공기관으로 4가지다. 내년부터는 여기에 노인복지관이 추가된다. 관련 법안이 지난 25일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노인복지관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국 350개 노인복지관이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해 이해하고 제반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정 소요가 있을 전망이다.
또한 올해 진행된 연명의료 수가 시범사업이 지난 25일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본 사업으로 지정되면서 연명의료결정제도에 참여하는 기관이 늘어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부터 연명의료 시술 범위 제한이 완화된다. 기존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이 모두 가능한 의료기관만 연명의료결정 제도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내년부터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중 1개 이상 수행 가능한 기관이면 참여할 수 있다.
조정숙 센터장은 “연명의료 수가 시범사업이 본 사업으로 지정되면서 제도에 참여하는 기관이 확대될 것이라 예상된다”며 “아직 연명의료결정제도 참여율이 저조한 요양병원에도 홍보와 간담회를 통해 제도 참여를 독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부족한 인력과 예산이 보충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국민의 권리가 잘 보장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망 없는 삶을 연명하기보다는 존엄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3년 만에 연명의료이행 18만 건을 넘어섰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107만 5944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은 만 건이었다. 의료현장에서 실제로 연명의료가 이행된 건 18만 1978건으로 제도 시행 초기인 2018년 3만 6275건과 비교해 14만 5703건 증가했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의 환자에게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말한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의 의사로 공허한 치료를 중단하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8년부터 시행됐다.
연명의료결정 방법은 두 가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과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유보·중단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내용은 비슷하나 작성 시기, 작성 주체, 절차 등이 다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기관에 직접 방문해 상담사와 대면 상담 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의향서를 작성한다. 작성한 후에라도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반면에 연명의료계획서는 더 다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 의사가 환자가 말기, 임종기에 있다고 판단되면 환자와 상담 후 작성한다. 환자가 말기 또는 임종기에 있는지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같게 판단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마찬가지로 작성 후 철회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만 작성할 수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5~20명으로 구성되며 의료기관에서 상담, 교육, 분석 등 연명의료 업무 전반을 맡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하기 위해선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거쳐야 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있어 중요한 기관이다.
문제는 상급종합병원 외 의료기관에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률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올해 10월 말 기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률은 상급종합병원이 100%, 종합병원이 53.6%, 병원이 1.5%, 요양병원은 5%다. 특히 병원과 요양병원의 등록률이 저조하다.
병원급 의료 기관의 참여 저조는 중증 환자를 상급 기관으로 이송하는 의료전달체계에 기인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연간 7만 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는 요양병원의 연명의료결정 제도 참여는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환자가 한 명이라도 사망하는 병원이라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는 게 맞다”며 “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는 일차로 종합병원까지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다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요양병원까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가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85.6%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앞으로도 제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관련 기관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뿐 아니라 제도 확대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 중이다.
조정숙 연명의료센터장은 “제도 시행 3년 차를 기점으로 하여, 앞으로 의료기관은 아직 상대적으로 참여가 부족한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보건소와 의료기관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좋은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삶의 마지막이 가깝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면 죽음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죽음은 현실이고 준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의 수가 늘고 있다. 여전히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인 죽음을 이곳에서는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역삼노인복지센터, 대화노인종합복지관 등 다양한 복지관에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모습이란?’ 이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어르신들도 각자의 대답을 내놓고, 이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화제를 전환하면 자연스레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
그는 “웰다잉 교육의 목적은 잘 살게 돕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많은 어르신 수강생들이 아플까 무섭고, 가족들 고생시킬까 두려워했지만 ‘죽음’ 교육 수강 후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창동어르신복지관 박미연 관장은 웰다잉 교육을 두고 “삶의 태도와 자세가 바뀌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교육이다”라고 말했다. 십여 년 전부터 웰다잉 교육을 특화 사업으로 진행했던 창동어르신복지관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복지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 속에는 웰다잉 프로그램의 지향점도 들어있었다. 그는 수업을 열기 이전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죽음에 대한 이미지, 죽음에 대해 무엇이 두려운지,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묻고 수업에 반영했다. ‘어르신들이 앞으로 다가올 상실을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웰다잉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해 ‘상실 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고, 코로나 상황이지만 비대면, 대면 방식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외려 삶에 대한 교육이란 걸 알게 된 어르신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코로나 위기에도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어르신들이 생겨났다. 한 어르신은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달라진 건 없지만, 마음이 간절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가족들, 자식들과의 모임 자체가 너무나 소중하고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행복한 마무리를 위한 고백(Go Back)’(이하 고백)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역시 비슷한 소감을 전했다. 고백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어르신은 “예전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사는 것이 보람 있는 느낌이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 빨리 죽고 싶었는데, 이제는 오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고 후기를 남겼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역시 죽음 교육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 ‘연명의료결정법’을 주제로 특강을 열거나,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부스를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죽음준비에 대한 어르신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죽음 준비가 필요한 시기임을 알렸다.
고백의 커리큘럼 역시 처음부터 죽음을 직접 언급하기 보다 이해를 도모하고, 정보를 제공한 뒤 실질적인 죽음계획을 수립하는 식으로 단계를 밟아 기획됐고, 운영되고 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프로그램 담당자는 “고백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죽음 준비를 통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갈 수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게 하는 것과 인생 노년기의 마지막 성장을 이뤄내게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또래의 어르신들과 함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유언장을 작성하며 삶을 배운다. 웰다잉 교육 담당자들 역시 입을 모아 웰다잉은 삶을 잘 살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웰다잉 교육을 마냥 죽음에 대한 논의로만 여기고 부담스레 생각할 필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