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직장동료다. 토목기술자로 해외공사 현장에서 크게 활약한 베테랑 엔지니어다. 당시 해외근로자의 급여는 국내근무자의 거의 두 배를 받았으니 겉으로만 봐서는 제법 돈도 모았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실토하는 말에 의하면 벌어온 돈을 아내가 거의 다 날렸다고 한다, 아내도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고 열사의 사막에서 고생하며 벌어오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늘려 보겠다는 심정으로 돈놀이를 시작했다. 결국 친정집 친척 누구에게 후한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k는 귀국하면서 어느 정도 목돈이 되어있을 통장을 상상하면서 즐거운 앞날을 꿈꿨다. 하지만 깡통 통장을 바라보는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아내와 심하게 다툰 후 아내로부터 통장관리 등 경제권을 뺏어버렸다. 그 뒤 다시 해외에 나가면서 돈 관리를 이제 친형에게 맡겼는데 형이 또 이상한 사람이어서 동생이 맡긴 돈을 다른 동생의 결혼자금이나 생활비로 다 써버렸다고 한다. 그로인해 형과의 관계도 남남처럼 서먹서먹하게 변해버리고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극도의 불신주의자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가친척에게 돈을 빌려주고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필자도 믿었던 친척들과의 돈거래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날린 아픈 과거가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집을 살 때 돈이 부족하다고 하여 빌려준 돈은 틀림없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이들 유학자금이나 결혼자금이 부족하다고 빌려준 돈은 십중팔구 돌아오지 않았다. 집을 살 때는 그래도 직장에 다녀서 경제력이 있는 젊은 사람이 빌려가지만 자식들을 위해 빌려갈 때의 부모는 퇴직 등 경제력이 허약한 사람들이대부분이었다. 그 돈을 사용한 자식들은 직접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입을 씻어버리고 나 몰라라 하고 능력 없는 부모는 자신이 어떻게 갚아보려고 하지 자식들한테 전가를 시키지 않으려한다.
형제나 친척들과의 돈거래에서 돌려받기가 어려운 점이 친척 간에 너무 야박한 것 같아서 서면으로 된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도 문제다. 나중에 법적인 절차를 밟으려 해도 법적인 근거자료가 불확실하다. 또 형제나 일가친척 간에는 법적 소송을 하기에는 부모님 보기가 뭣하고 핏줄이라는 점도 작용하여 구두로 독촉만 하고 처분만 기다린다.
형제나 친척 간에는 돈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가 겁이 나서 우선 갚으려고 하지만 은행보다는 느슨하게 독촉하는 일가친척의 돈은 천천히 갚으려는 심사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빚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잘사는 형제가 못사는 형제를 도와준 것이라는 아전인수격으로 마음도 변해 버린다.
일본에서는 친척이나 친구가 내가 돈이 있는 줄 알고 빌려달라고 하면 은행에 함께 가서 내 돈을 이 사람에게 빌려주라고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은행에서 우선적으로 예금주가 지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물론 은행에서는 일반 대출과 같은 법적인 절차를 완전히 밟기 때문에 나중에 은행이 못 받으면 못 받았지 예금주는 피해가 없다고 한다.
친한 사이일수록 돌려받지 못할 것을 각오하고 그냥 돈을 주면 몰라도 다시 돌려받을 생각을 한다면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도 본인 돈을 특정인 누구에게 빌려주라는 지명권을 인정하고 그 보증은 은행에서 담보하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첫정이 담뿍 든 손녀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손녀가 세 살 때의 일이니 벌써 3년 전 이야기다. 그날은 며느리와 함께 아기를 위한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며느리는 아기 짐이 많아 손녀는 필자가 안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같이 탄 부부가 수군거리더니 여자가 필자에게 물었다.
“아기 엄마지요?”
내심 기분이 좋았지만 아닌 척하고 며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기 엄마는 여기 있네요, 저는 할머니랍니다.”
부부는 놀랍다는 듯 어쩌면 그렇게 젊어 보이느냐고 했다.
“뭘요~” 했지만 필자의 입꼬리는 점점 올라갔을 것이다. 아기 엄마로 착각할 만큼 젊어 보였다니 할머니라도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인가. 이날의 이야기는 며느리도 옆에서 같이 들었기 때문에 증명이 되는 에피소드다. 그날 저녁 아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해줬더니 피식 웃으며 농담처럼 그 사람들 선글라스 쓴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우체국엘 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데 앞자리의 아주머니와 우체국 직원의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당시에는 금리가 자꾸 떨어져 친정엄마처럼 이자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걱정이 점점 커져만 갔다. 친정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 비하면 금리가 4분의 1로 줄어든 터라 친정엄마의 예금 관리를 해주던 필자도 근심이 많았다. 그런데 우체국 직원과 앞자리의 아주머니 대화가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실례를 무릅쓰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상품이죠?”
필자를 흘깃 쳐다보더니 직원이 말했다.
“손님은 해당 안 돼요.”
순간 불쾌했다. ‘앞자리의 아주머니는 고액의 예금을 묻어둔 사람이라서? 필자는 저금할 여유가 없어 보여서?’ 하며 의심했다. 그래도 높은 금리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서 다시 꿋꿋하게 물었다.
“왜요? 무슨 상품인데요?”
그러자 직원이 말했다.
“40세 이상만 들 수 있는 상품이에요.”
그 순간 필자는 번호표를 버리고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의 필자를 제대로 알아보고 “에구, 할머니였네” 할까봐 서둘러 우체국을 빠져나온 필자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 후 당분간은 그 우체국에 가지 않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일인데도 공연히 뭔가를 들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있었다. 푼수처럼 그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무슨 그런 소릴 하냐며 비웃었다. 필자는 졸지에 잘난 척하는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 억울했고 부끄러웠다. 괜히 말했다는 후회까지 밀려왔다.
평소에 겸손한 편이고 자기 자랑을 해대는 사람도 아닌데 그날의 일은 왜 굳이 친구들에게 말했을까… 어디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 후로는 비슷한 일이 생겨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푼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절대 거짓이 아니라 진짜 들었던 이야기라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도 드니 정말로 주책바가지 할머니 아닌가.
순간 필자는 번호표를 버리고 뒤돌아서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던 친구가 돌아왔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몇몇을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편하도록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각각 나타나는 친구들의 환한 모습들이 어쩐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동안 종종 만나곤 하던 친구들도 있지만 일부는 수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어서 우린 서로 설렘으로 다가가고 반가움에 와락 안으며 손을 잡았다.
너울너울 세월의 강 흐름을 함께 타고 흐른 그녀들의 모습,
혈육과도 같은 느낌이 뜨겁게 올라온다. 이전에 몰랐던 감정이다.
찬란했던 청춘의 시간을 함께 보냈고, 치열한 사색과, 웃고 울고 성내며 보냈던 시간도 이젠 모두 '우리의 것'이라 말한다. 모두 이쁘고 마냥 좋기만 하고 주고 싶고 뭔지 모를 그 모든 게 다행이고 고맙다. 이만치 세월을 살다 보니 모든 게 감싸 안아 다독여진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거기 내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녀들의 희로애락과 사는 보람, 치열했던 삶의 시간 너머로 이젠 여유로운 품을 서로에게 열어주는 모습들이 아름답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무수한 세월을 흘려보내고 뒤늦게 알아가는 것이 어찌 이것뿐일까만.
내가 누군지를 알아주는 사람들.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화살이 아직도 날아가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은 건 우리들만의 계산되지 않은 진실됨이란 걸 뜨겁게 느낀다. 살아갈수록 감사함이 늘어간다.
헤어지는 친구에게 고속버스 안에서 읽을 책을 한 권 건네주고 돌아서는 마음에 행복감이 충만한다. 또 언제 다시 만날까 날짜를 헤아리게 되는 귀갓길의 노을이 뜨겁다.
오랫동안 보관해 두었던 보석을 찾은 날처럼 기분 좋은 날. 세월이 흐르면서 느끼는 건 우리에게 오랜 친구란 남는 장사라는 것. 잊고 있었던 휴면예금이라는 것.
그리고
횡재.
만 65세 생일이 다가 오자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편지로 기초연금 신청을 하라며 서류를 보내왔다. 신청구비서류로는 필수제출 서류인 사회보장급여 신청서, 소득 재산신고서, 금융정보 등 제공동의서, 신분증, 통장 사본 등이었다. 다음에 스마트 폰 문자로 부부합산 재산 소득에 따라 최대 20만원부터 최소 2만원까지 기초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으니 상담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주거지 동 주민센터나 국민연금공단에 반드시 사전 전화 상담을 하고 방문하라는 것이었다. 연락 온 국민연금공단 전화번호로 바로 연락했다. 먼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묻더니 그 자료를 바탕으로 소득을 체크하는 모양이었다. 한 회사에서 매달 필자에게 자문료로 지급하는 월급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일단 확실히 드러난 소득이므로 인정했다. 그리고 현재 연금 수령 액수, 은행 예금액, 거주하는 집이 자가인지 월세인지 물었다. 솔직하게 답을 했더니 필자는 하위 소득자로 볼 수 없으므로 기초연금 대상에서 탈락이라고 했다. 필자도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상담 과정에서 보니까 연금공단에서는 적어도 필자의 재산 정보는 기초적으로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집, 자동차 등을 재산으로 보아 자동적으로 파악하고 과세하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같은 국가 공기업인데 왜 정보가 공유되어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양심적으로 재산 상태를 밝혔으나 고의적으로 감출 경우 그대로 믿고 기초연금을 주게 되는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나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내면 조사에 들어가서 다 나온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출마자들이 노인 공약으로 기초연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다. 소득 하위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이 심각하다니 빈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필자는 당연히 양보해야 한다.
‘노후 파산’이라는 일본 책을 보면 일본에서도 소득 하위자들이 사회 문제화 되는 모양이었다. 독거노인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법을 잘 모르거나 국가에 신세를 진다는 미안한 생각 때문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법의 문제는 하위소득자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가령 아무리 소득이 없어도 집을 하나 소유하고 있으면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집을 팔면 대상자가 되지만, 집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안 팔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죽기를 원한다. 현행법과 현실과의 괴리인 것이다.
노후파산은 처음부터 파산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노인들이 부부연금으로 연명한다. 그러다가 배우자가 죽으면 연금이 반 토막 나면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된다. 그렇게라도 아슬아슬하게 먹고 살만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가 늙어서 병이 생기거나 하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소득하위자로 추락한다. 그런 일이 없도록 기도하는 것이 상책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선물과 뇌물사이에 갈등을 많이 겪었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말도 유행 했었고 그래도 근절이 되지 않자 속칭 ‘김영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달리 잘 살기위해 인간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맺으면서 선물과 뇌물은 명맥을 이어왔다. 선물은 인간관계의 윤활유로서 정을 나타내므로 지나치지 않다면 부모자식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만주 벌판으로 찾아갔다. 독립 운동가는 이렇게 멀리 찾아온 처음 보는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반갑고 고마왔지만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살벌한 전쟁터에서 며느리에게 대접할 것도 변변치 않고 결혼 예물도 마땅히 줄 것도 없었다. 그는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서 시아버지의 결혼예물 이라며 줬다고 한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감지덕지 고마워했다. 어떤 독립 운동가는 천리길을 찾아온 친척에게 자기의 혁대를 풀어서 정표로 주기도 했다. 이런 유사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은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정이 넘치는 민족이었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에게는 선물이라는 이름의 정을 표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일 것이다.
명문대가는 독특한 그 집안의 전통이 있어야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이 있고 독특한 예의범절이 있어야 한다. 명문집안이 아니더라도 조상 때부터 사용하던 물건을 대를 이어 사용하면서 조상의 은덕을 생각한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상님의 유품 한 가지라도 품고 다니거나 집에 보관하는 자손이 있다면 복 받을 집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몇 달이 지나면 예쁘고 귀여운 셋째 손녀의 첫돌이 돌아온다. 오래도록 손녀가 기억하고 기념할 할아버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까 끙끙 대다가 주위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압도적으로 현찰을 주라고 한다. 젊은이들의 물건 보는 안목이 나이든 사람하고 다른데 자칫 옷이나 물건을 사주다가는 앞에서는 웃으며 받지만 돌아서서 자칫 외면당하기 쉽다는 이유다.
하지만 현찰로 주면 당장은 아이 부모가 알아서 옷을 사 입힌다거나 이런저런 곳에 요긴하게 잘 쓰겠지만 곧 흐지부지 모두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배달사고가 난 것처럼 아이가 이담에 커서 할아버지가 나의 돌을 기념해서 무엇을 주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설날 세배 돈을 아이에게 주면 처음 부모는 아이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이담에 아이가 크면 아이에게 주거나 아이를 위해 확실하게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이고 대부분 가정살림에 써버린다. 10여년 뒤 아이가 자라 철이 들었을 때 이 통장은 네가 이러저러한 사람에게서 받은 세배 돈을 이렇게 모은 통장이라고 전해주는 부모 보기가 어렵다. 보면 쓰기 쉬운 것이 현금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기예금통장도 불확실 하다 과거에 있던 몇 백 년을 간다고 큰소리 뻥뻥치던 장기신용은행이 문을 닫았고 아이가 성장해서 스스로 돈이 필요한 나이가 되는 20 년짜리 정기예금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주식은 잘 사면 대박이지만 과거 잘나가던 기업이 30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은 기업도 많아서 이 또한 고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실물자산인 금으로 행운의 열쇄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은 손녀에게도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준 행운의 열쇠를 부적삼아 힘을 얻으면 좋으리라는 기대감이다. 손녀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금을 돈으로 바꿔서 급히 써야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선진국, 스웨덴! 그들의 삶에 뭔가 특별한 것은 없을까? 바로 ‘독립’이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독립적 삶을 추구한다. 스웨덴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50%가 채 안 된다. 많은 청소년이 드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난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노인들도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 고독이 삶을 힘들게 해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 살아간다.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하거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나 몰라라 하는 비정한 사회일까? 그런 사회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는 매년 세계 140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2016년 스웨덴의 행복지수는 7.6으로 4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6.0으로 40위다. 그 비결은 뭘까? 역시 스웨덴인의 독립적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립은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간섭을 하지 않으니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대한민국 액티브 시니어들이 간절히 원하는 삶도 바로 스웨덴식 독립 인생 아닐까! 자녀 부양하느라 나이 들어서까지 허리 휘지 않아도 되고, 자녀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는 노후! 스웨덴 사람들이 이런 노후를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연금을 필두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야 함을 뜻한다.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조노력 연금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연금생활플랜(Pension Life Plan, PLP)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는 연장자를 의미하니 결국 관건은 액티브에 달렸다. 단어의 구체적 의미가 애매모호하거나 헷갈릴 때는 어원을 살펴보면 된다. 온라인 어원사전(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 따르면 액티브의 어원은 라틴어 액티부스(activus)다. 액티부스는 액투스(actus)의 형용사형이니 액투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액티브의 용례를 알 수 있다. 액투스는 행위(a doing), 운전(a driving), 자극(impulse), 활기참(a setting in motion), 역할(a part in a play)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고대에 요즘 같은 자동차는 없었을 테니 운전이 의미하는 바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모는 행위를 뜻할 것이다. 자극은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도록 어떤 작용을 가하는 것을, 역할은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원으로부터 알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의 뜻은 우선 행위, 즉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파에 기대거나 누워 TV를 친구삼아 시간을 축내는 정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인 야외활동은 물론 타인과의 교류를 즐기는 동적 삶이어야 한다. 나이 들어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몰려면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육체적 건강은 액티브 시니어의 필수조건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동적 삶을 추구할 수 있고, 나아가 병원비 등 의료비를 대폭 아낄 수 있다. 자극은 정신적 건강함이 필요함을 뜻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쇠약하면 마력이 뛰어난 고급 승용차를 주차장에 파킹해놓고 자랑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할 때 활기찬 삶이 따라올 뿐 아니라, 자연스레 사회적 역할도 주어지기 마련이다. 무대 위의 주연배우는 아닐지라도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역할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동안 고생한 인생에 보답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나 혼자 즐기는 삶은 그것이 아무리 동적이고 활기찬 삶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필자는 이를 소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자 한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자산을 사장시키지 않고 살려가며 어떤 형태로든 사회와 교감을 나누며 의미를 찾는 삶이야말로 전형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삶이다. 필자는 이를 적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 싶다. 그냥 즐기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액티브 시니어다.
세 명의 벽돌공이 일을 하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가까이 있던 벽돌공이 말한다. “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벽돌공은 이렇게 말한다. “네, 저는 벽돌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멀찍이서 일을 하던 벽돌공이 땀을 훔치며 말한다. “저는 지금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의 답이 이렇게 다르다. 나그네가 세 사람의 말을 음미하며 속으로 읊조린다. ‘음,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은 지금 생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집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천직에 종사하고 있음이로구나!’ 그렇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가치를 낳는다. 같은 시니어라도 여전히 생업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생업에서 물러나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니어라면 천직에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경제적 기반부터 챙기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중국 춘추시대에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든 관중의 말이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예절을 차리고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안다는 뜻이다. “내 코가 석자”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의미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요원하지 않을까. 테레사 수녀 같은 삶을 일반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일반 서민에게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은 액티브 시니어의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액티브 시니어가 은퇴 후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호구지책에 연연하지 않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스웨덴의 시니어들이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든든한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스웨덴처럼 든든하지 못하다. 게다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이자로 생활하는 금리생활자(rentier)가 될 수 없다. 사회보장과 사적 보장을 상황에 맞게 조합한 연금생활자(pensioner)로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리생활자의 해는 저물고, 연금생활자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수입 상실, 예상치 못한 지출, 질병 리스크 등이다([그림1] 참조). 은퇴 후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수입은 필수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지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생활은 일그러지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질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질병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질병에 따른 지출도 경계해야 한다. 질병은 우리 몸만 갉아먹는 게 아니라 생활비도 갉아먹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협 요인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단단하게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은퇴 후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적 문제를 연금 중심으로 대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꾸준히 이어가게 해주는 체계적 계획을 연금생활플랜, 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잘 짜는 것을 ‘PLP(Pension Life Plan) 디자인’이라 부르고자 한다.
‘연금생활플랜’ 어떻게 디자인할까?
‘연금생활플랜’ 디자인의 핵심은 [표1]과 같은 현금흐름표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본인과 배우자, 자녀의 나이를 입력하고, 각 연도의 지출항목을 입력한다. 지출은 기본생활비·주거비·교육비·보험료·기타 지출·일시적 지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생활비는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 생활비를, 교육비는 자녀 및 본인과 배우자의 교육비를, 보험료는 건강보험료 및 민영보험료 등을, 일시적 지출은 자녀 결혼비용 등을, 기타 지출은 경조사 비용 등을 입력하면 된다. 자녀가 독립했는데 무슨 교육비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액티브 시니어 정의에서 강조한 바 있는 정신적 성장과 삶의 자극을 위해서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을 받다 사귀는 새로운 친구는 삶의 소중한 보너스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자산을 리뉴얼해야 한다. 은퇴 후 평생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비용이라기보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출항목을 입력했으면 이제 수입을 계산해 입력할 차례다. 이 부분은 좀 복잡하다. 우선 각자가 가입해 있는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으로부터 얼마의 수입이 발생할지 계산해야 한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연금포털’을 이용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여기에다 기초연금을 더하면 기본적인 연금소득은 파악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많은 사람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공사 연금소득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추가적인 근로소득을 만들어내는 것과 주택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 정도만 하면 생활비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타 수입에는 만기된 적금액이나 곗돈, 경조사 수입 등을 기록하면 된다.
연금 외의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라면 이 금융자산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일시납즉시연금이나 월지급식펀드, 월지급식예금 등 연금성 상품을 활용하면 일시금에서 매월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상품은 구조가 복잡하므로 전문가에게 자문해서 도움을 받는게 좋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제상 불이익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원하지 않는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세목별 내용은 [표2]의 수입상황표에 기록하면 된다.
현금흐름을 만들 때는 두 가지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망할 때까지 일정한 현금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각자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행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은퇴생활 초기에 보다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균일한 삶을 원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은퇴 후 삶의 비전을 생각하면서 생애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본인 사망 후 배우자의 여생까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스갯소리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복수로 본인의 사망과 동시에 현금흐름을 단절시키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는 배우자의 여생에도 현금흐름이 쭉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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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3년 전에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서울에 거주 중인 손병수(58세)씨가 재무상담을 의뢰해왔다. 손병수씨가 재무상담을 통해 도움 받고자 하는 내용은 매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현금흐름 확보 방안이다.
1. 현재 상황
손병수씨의 가족으로는 전업주부인 배우자(56세)와 출가한 딸(33세)과 작년에 취업을 하고 회사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29세)이 있다. 퇴직 후 2년 동안 손병수씨는 재직 당시 거래처였던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며 매월 2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 하지만 1년 전 두 번째 퇴직을 한 이후 지금까지는 별다른 수입이 없다. 첫 번째 퇴직으로 인해 발생했던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수령해 딸 결혼자금과 아들 대학등록금으로 대부분 썼기 때문에 퇴직연금은 없는 상태다. 매월 200만원 전후로 소요되는 생활비는 1년 전부터는 실업급여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충당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아들 결혼자금으로 1억원 정도의 지원을 예상하고 있다.
2. 재무진단
3. 제안
손병수씨가 의뢰한 매월 200만원 전후의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5층 연금체계를 활용해야 한다. 5층 연금체계는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 1958년생인 손병수씨의 완전노령연금 수급가능연령은 4년 뒤인 62세부터다. 연금액은 현재 가치로 매월 110만원 정도 예상된다. 손병수씨는 조기노령연금수급이 가능한 상태이지만 여유자금이 있기 때문에 완전노령연금에 비해 12%까지 연금수령액이 삭감되는 조기노령연금을 미리 받은 받을 필요는 없다.
퇴직연금 손병수씨는 퇴직연금이 없다.
개인연금 현재 가입 중인 개인연금도 없다. 정기예금 중 1억원을 배우자 명의로 하여 일시납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손병수씨의 부인은 본인 명의의 국민연금이 없다. 남편인 손병수씨가 사망한 후에는 유족연금 명목으로 손병수씨 명의로 받던 노령연금액의 60%를 수령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의료비가 생활비가 될 정도로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약 12년 정도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손범수씨가 부인을 피보험자로 한 연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일시납연금보험을 가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입 즉시 연금을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금지급 시기를 충분히 여유 있게 설정해두고 그 이전에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갈 수 있다. 현재 56세 여성이 1억원의 연금보험에 가입해 10년 뒤인 66세부터 연금을 개시한다면 매월 60만원 정도의 연금수령을 기대할 수 있다. 단 연금이 개시된 후 피보험자가 사망하게 되면 최초 가입금액에서 사망할 때까지 지급한 연금총액을 차감한 금액만 상속인에게 지급하는 조건이다.
주택연금 주택연금은 주택 소유자나 그 배우자가 만 60세 이상일 때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손병수씨는 만 58세이기 때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2017년 기준으로 7억원의 주택을 종신연금 수령조건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60세 기준으로 매월 146만원 정도의 금액이 지급된다.
손병수씨 부부는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한 2년 후까지 현재 거주 주택을 보증금 1억원에 매월 120만원의 월세를 받는 조건으로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세 보증금 1억원과 현금 1억원을 합해 집의 규모를 줄여 서울 외곽 지역에 2년간 전세를 임차해서 살기로 했다.
직업 중장년층이 퇴직 후에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다. 눈높이를 낮춰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명함이 나를 설명하던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손병수씨는 우선 자신의 경력을 살려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는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서 매월 30만원 정도의 소득을 기대한다. 동시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요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남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4. 실행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손병수씨는 최근에 와서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손병수씨는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는 정부지원사업 중심의 일자리와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매월 100만원의 근로소득을 목표로 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나오는 시기에서 부인 명의의 개인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까지는 근로시간을 줄여 매월 50만원 정도의 수입을 목표로 일을 하기로 계획을 짰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소득흐름이란?
“돈이 없는 사람은 이빨 빠진 늑대다.” 프랑스 속담이다. 이빨 빠진 늑대 앞에 놓인 현실은 굶주림과 죽음뿐이다. 일부일처제와 무리생활을 하는 늑대는 이동할 때 늙거나 병든 늑대를 앞세우고, 제일 뒤에는 가장 강한 늑대가 선다. 낙오와 적의 후면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런 늑대도 이빨이 빠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은 이빨이 빠지면 틀니나 임플란트를 심는다. 대체 이빨이 없더라도 미음과 영양제 등을 통해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다. 늑대와 사람의 차이다.
이빨은 멀쩡한데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 이빨 빠진 늑대처럼 며칠 만에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굶주림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돈이 없으면 “늙음은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짐”이라는 에라스무스의 불길한 예언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라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맘에 들진 않더라도 오복의 하나라는 이빨보다 돈이 더 낫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어떻게 돈을 마련하느냐다. 짐이 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쌓아놓은 돈, 즉 자산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소득(income)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현금(cash)이다. 소득흐름과 현금흐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흐름(stream)’이란 로또 당첨금 같은 거액의 일시적 소득이나 현금이 아니라 꾸준한 소득이나 현금을 뜻한다. 즉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현금흐름이 쭉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종류의 소득
그동안 쌓아온 돈, 즉 자산에서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만들어내려면 먼저 소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노후생활을 뒷받침하는 소득에는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저작권료·목돈에서 일정액을 찾아 소득화하는 방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매달 일정한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반면에 배당소득과 저작권료는 분기 또는 연단위로 소득이 발생한다. 노후에도 매달 생활이 이어짐을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좋지만 분기 또는 연단위로 발생하는 소득도 아주 소중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료는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에게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액티브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들을 책으로 묶어내면 소중한 경험자산이 사회적으로 사장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 대박을 치면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또 하나 되짚어봐야 할 것은 소득흐름의 기간이다. 인간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싫든 좋든 삶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가 나오는 종신연금과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저작권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특출한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자 저작권료 시효가 극히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금소득의 가치는 특별함을 더한다. 나머지 근로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원천이 사라지면 당사자가 사망하기 전이라도 소멸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들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노후의 삶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있고, 그중에는 돈의 지출을 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교적 풍부하고 비중이 절대적인 근로소득을 가지고 있는 현역 시절과 달리 그런 소득이 없는 노후에 다양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금소득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노후에 연금소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른바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자칫하다간 흑자도산하는 기업처럼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각 소득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표1] 참조).
안정적 소득흐름 창출하는 방법
노후에 안정적 소득흐름을 창출하고자 할 때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은 자산 규모와 연금소득의 수준이다. 이상적인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자산이 없는 사람은 일정액 이상의 연금소득 확보에 초점을 둬야 한다. 최저생계비 정도는 연금소득으로 확보해야 한다. 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구도자가 아닌 한 생계비 걱정에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의 60%로 산출되는데 2017년의 경우 1인 가구는 99만1759원, 2인 가구는 168만8669원이다.
올해 62세인 A씨는 5년 전 은퇴해 2세 연하의 부인과 함께 나름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출가한 두 자녀가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기반을 잡고 있어 자식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도 걱정이 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연금소득은 올해부터 받는 9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동안의 생활비는 57세 은퇴할 때 받은 3억원 정도의 퇴직급여를 은행에 넣어두고 빼내 쓰는 ‘목돈의 소득화’ 방법으로 조달했다. 매달 200만원을 사용한 결과 3억원이던 퇴직급여는 5년 만에 1억8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부터는 국민연금 90만원을 제외한 110만원을 퇴직급여에서 빼 쓰고 있다. 이런 추세로 계속 갈 경우 A씨의 퇴직급여는 정확히 13.6년 만에 고갈되고 만다. A씨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A씨에게 탈출구는 없을까? A씨의 국민연금은 2인 가구 최저생계비보다 약 80만원이 부족하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는 110만원이 모자란다. 서울에서 시가 7억원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상담 끝에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부인의 나이(60세) 기준으로 7억원 아파트로 주택연금(종신지급, 정액형)에 가입하면 매월 약 147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최저생계비는 물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 많은 연금소득이 만들어진다. A씨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친 연금 총액 중 본인의 생활비를 초과하는 금액(37만원)을 저축하기로 했다. 10만원은 3년 뒤 해외여행을 목표로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새마을금고 적금에 들고, 나머지 27만원은 비상자금 용도로 증권사 CMA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자금 담당)을 활용하기 위해 책 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한편 강사와 학원사업 등으로 50억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B씨(65세)는 5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은 성인 자녀(30세) 한 명과 20억 정도의 빌라에서 생활비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의 수입원은 국민연금 55만원, 이자수입 120만원, 20억대 상가 임대료 약 1000만원이다. 10억은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이런 그에게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B씨는 요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경기 탓인지 임대료 수금이 잘 안 되고, 얼마 전부터 여자 친구가 생긴 아들이 결혼을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B씨는 아들 결혼자금으로 5억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B씨의 월 생활비는 약 1000만원이다. 임대료가 제때 걷히지 않는 달에는 적자를 보기도 한다. 앞으로 월 생활비를 20% 정도 줄일 생각인 B씨는 최소한 생활비 정도는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대료 수금이 원활하지 못한 상가는 이번 기회에 처분할 계획이고, 거주하는 빌라는 나중에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향후 월 생활비 800만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어 한다. 국민연금과 이자수입은 120만원 정도로 줄어들 것이므로 약 680만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B씨는 둘째 아들 결혼자금 5억원을 제한 나머지 5억원은 비상자금으로 유지하되 수익성과 유동성을 고려해 예금과 펀드 등에 분산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가가 처분되면 그 돈의 반을 투자해 소형 아파트 몇 채를 구매해 임대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 반인 10억원은 즉시연금과 월지급식펀드를 활용해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기로 계획을 짰다. 이렇게 하면 B씨의 소득원은 아파트 월세, 국민연금, 즉시연금, 월지급식펀드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안정성·수익성·유동성을 함께 노릴 수 있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5070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재무설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속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새로운 길이므로 낯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관점을 바꿔야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산관리, 소비관리, 가치관리라는 3가지 측면에서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의 은퇴재무설계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 자산관리
아무리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눈높이가 평균적인 시선보다 높은 만큼 돈의 역할 역시 크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 돈을 잘 관리하여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돈을 더 잘 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인데, 은퇴재무설계에 대한 이해는 그 선결 과제다.
먼저 관점을 ‘자산에서 소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2040 시절 재무설계의 핵심은 내집마련. 노후자금, 자녀교육비 등 목적자금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목돈을 모으는 것이다. 즉 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다. 그러나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5070세대의 재무설계는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현금흐름, 즉 소득창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연금을 활용하면 쉽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일시적으로 자금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즉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생활비와 유동성을 함께 고려하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둘째로는 ‘자산에서 소득으로’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축적에서 인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산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일시금 방식, 연금 방식, 프로그램 방식 등 다양한데 이들을 흔히 인출 방법이라 부른다. 각 방식은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 장단점이 다르므로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감안해 특정 방식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방식을 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인출 방법의 구체적 형태는 월 지급식 상품 선택으로 나타나는데, 예금형·즉시연금형·수익배분형 등이 있다.
셋째로는 ‘수익률에서 위험관리로’ 전환되는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한다. 2040세대는 임금 또는 사업소득 형태로 계속 현금이 유입되고 투자기간이 길어 수익률 중심의 자산관리를 할 수 있다.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현금으로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매입할 수 있어, 가격상승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5070세대는 수명 연장으로 과거보다 투자기간이 길어졌다 해도 유입되는 현금의 양이 크게 줄어들어 수익률보다는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5070세대에게 유입되는 현금은 대부분 생활자금 용도여서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해 유입되는 현금이 크게 줄거나 들쭉날쭉하게 되면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 소비관리
5070세대는 축적해놓은 자산은 많은데 일을 통한 수입이 없거나 적다. 저축해놓은 돈에서 곶감 빼먹듯 생활비를 조달해야 한다. 합리적인 소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무조건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5070세대의 특성을 감안한 소비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로, 가족 중심의 소비에서 나 중심의 소비로 소비의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가치 중심의 소비다. 5070세대는 중년으로서 2040세대와는 삶의 중심축이 다르다. 2040세대의 삶의 중심축이 성장에 있다면 5070세대의 삶의 중심축은 의미에 있다. 가족의 성장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소비에서 기부·자선·봉사 등 가치 있는 소비로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사회적 관계망은 육체적·심리적 건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 가치관리
‘가치관리’는 일반적인 재무설계에서는 쉽게 간과되기도 하지만,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화목, 건강, 행복을 바란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판단과 구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가족의 파탄을 불러오는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속 및 증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직 젊은데 서두를 필요가 뭐가 있냐며 뒤로 미루면 안 된다. 판단력이 좋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관리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꾸준한 실천과 그 가치다. 노후에는 의료비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재무적 측면에서 건강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일본의 노후파산 사례에서 보듯이 노후에 건강이 악화되면 재정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에 직면해 급기야 노후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노후의 의료빈민(medi-poor)은 정말 비참하다. 건강관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면서 돈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또한 급격한 건강 악화에 따른 인생의 하드랜딩을 방지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