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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환자 좋은 의사 되기] 간암과 사투를 벌인 바닷가 사내와 암 잡는 방사선종양학 전문의의 라뽀
- 거친 바다 마을 출신의 사내라 해도 이 우주선 같은 치료기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폭풍우 속 배 위가 더 속 편하지 않았을까. 돌아가는 기계 위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낮은 목소리의 소음은 조용했지만 시끄러웠다. 임재성(林在聲·56)씨는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기계가 큰 병을 낫게 해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암(癌)이라는 큰 병을 말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보통 암이라고 하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던 어떤 사람이 느닷없는 선고에 당황하게 되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임재성씨는 그에 반해 억울한 구석이 많은 경우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던 그는 교직에 있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가정을 평탄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업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됐고, 그의 활달한 성격에 주변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자녀도 1남 1녀다. 마치 동사무소 입구에 꽂혀 있는 홍보물 표지 사진 속 가족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 반짝이는 가족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년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원래 건강에 자신이 있었어요. 실제로 간염 환자가 겪는다는 식욕부진이나 피로감 같은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어요. B형 간염도 어머니를 통해 받은 것이니 크게 동요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정기적인 검사만 제때 받으면 되겠지 하고 평소처럼 생활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요. 그때만 하더라도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을 모실 때였죠(웃음).” 그 시절부터 그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B형 간염은 까딱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왔기 때문에 건강검진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균열은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 광주에서의 건강검진 결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간암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그를 더 화나게 한 것은 정기검사 때마다 만났던 의사의 태도였다. “간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아직 B형 간염 약을 먹을 단계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랬던 그 의사에게서 느닷없이 암 진단을받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 상황에서 요즘 의술이 좋아져 초기 간암은 치료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위로가 위로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암 선고는 그에겐 충격이었다. 여느 암 환자처럼 그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부정과 분노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쳤다. 죽기 전에 손주는 볼 수 있을까, 죽음을 준비해야 하나, 고통은 어느 정도나 될까, 더 괴로워지기 전에 차라리 생을 끝내는 것이 나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의문들이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검게 변해 죽어 있는 물고기들이 바닷가로 잔뜩 밀려오는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렇게 암 선고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처가 쪽 친척으로부터 일산으로 올라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일산에 국립암센터가 있으니 진단이든 치료든 그곳이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곳 아니겠냐는 조언이었다. ‘약사님’ 친척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바로 서울로 향했다. 그러고는 국립암센터의 방사선종양학 전문의 김태현(金泰現·46) 교수를 만났다. 비장의 카드 ‘양성자치료기’ 김태현 교수는 “임재성씨는 간암 환자 중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형태의 환자예요”라고 설명했다 . “B형 간염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독 한국과 중국 사람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에 반해 일본과 서양인들은 C형 간염 보균자가 많죠. 최근에는 간염 예방 백신의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그 수가 줄고 있지만, 그래도 B형 간염 보균자는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이 간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이 일어났다 나았다를 반복하는데, 이러다 암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요.” 임씨의 경우 간암 초기였기 때문에 경동맥 화학색전술로 치료를 했는데, 원하는 만큼 예후가 나오지 않아 간암고주파열치료술까지 시도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간 전체에 여러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도록 약을 뿌리는 방식이고, 간암고주파열치료술은 특정 암세포에 고주파를 쬐어 높은 마찰열을 발생시켜 괴사시키는 치료법이다. “문제는 임재성씨의 증세가 다발성(多發性)이라는 것이었죠. 암세포가 또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그 위치가 애매했어요. 접근이 무척 어려운 부위라 수술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성자치료였어요.” 400억원 넘는 꿈의 치료기 양성자치료기는 CT나 방사선치료기와 같은 ‘의료기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료시설’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도 장비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 그 위로 건물이 지어졌다. 지어진 건물 안으로 장비를 넣는 것이 불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양성자치료 장비는 가속기 반경이 4km 정도였다. 우주의 기원을 좇는 입자가속기와 유사한 가속기를 통해 수소 원자의 핵을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면 튕겨져 나오는 방사선을 받아 암세포에 쏘이는 방식이다. 의사들에게 이 장비가 꿈의 장비로 불리는 이유는 일반적인 방사선치료 장비와 달리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일반 방사선 장비는 방사선을 투과할 때 암세포 앞뒤의 정상 조직이나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사선 조사각을 이리저리 돌려 쪼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양성자치료기는 정확히 암세포에만 조준사격이 가능하다.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미미하다. 암세포를 죽인 뒤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은 셈이다. 일반적인 방사선치료가 식욕부진이나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는 2007년부터 본격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삼성서울병원에 한 대가 더 도입돼 국내에 2대가 운용 중이다. 국립암센터의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약 480억원이었고, 삼성서울병원이 밝힌 양성자치료기 도입 예산은 1000억원 선이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치료 시설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대가 안 되는 귀한 장비다. 치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예전의 10분의 1 수준이 됐다. 암종, 치료기간, 치료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800만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최대한 건강한 간 조직을 유지시키는 데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요. 임씨와 같이 만성 간변병증이 있는 경우는 낮은 백혈구·혈소판 수치 때문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수술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다행이죠.” 암 환자 더욱 위험하게 하는 건 ‘얇은 귀’ 임씨가 양성자치료기를 통해 본격적인 치료를 받은 것은 2016년 2월부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사들은 가능성과 확률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B형 간염 보균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B형 간염 보균자가 많은데, 그에 비해 경각심은 너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와 함께 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곳이 있어요. 바로 언론이에요. 요즘 종편에서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믿어선 안 될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암 환자는 기본적으로 귀가 얇아질 수밖에 없어요. 마음이 다급하니까요. 이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엉터리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암 환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모임을 갖는 등 활동을 해왔는데, 불필요하게 효과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쏟아 붓는 사람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효과가 좋다고 암 환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식품들에 대해 김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 암에 좋다는 음식 중 상당수는 몸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되레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간암은 간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인데 간을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니 예후가 좋을 리 없죠.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간 수치가 나빠져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원인은 음식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 임재성씨는 그래도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암이라는 장벽을 만났지만 남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교적 일찍 암을 발견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덕분에 초기에 치료를 받았잖아요. 또 간암에 효과적이라는 양성자치료기를 알게 되어 혜택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기 직전에 건강보험 적용이 돼서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치료 과정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로 뽑혀 치료비 부담도 줄였고요.” 양성자치료는 아직 모든 암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일부 암종을 대상으로 2015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 급여화가 됐다. “워낙에 가무에 능했는데, 이제는 술과 이별을 해서 대신할 만한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드럼연주를 시작했어요. 절로 흥이 나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더라고요. 보통 큰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들에게 왜 신경 안 써주냐, 왜 이건 안 해주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병은 자신이 챙겨야 해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이 좋아지길 바라면 그게 이뤄지겠어요? 또 이런저런 주변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의료진의 진료에 따르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 2017-01-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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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에이징] 늘어진 살들과의 전쟁, 치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곧 환갑을 눈앞에 둔 중년 여성 A씨는 매일 한 번씩 홍역을 치른다. 외출 준비에 빠질 수 없는 보정속옷을 입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인데, 가장 괴로운 일은 입다 만 속옷 위로 처진 뱃살이 걸쳐질 때다. 누구는 두 아이를 잘 키운 훈장이라고 위로하지만, 뱃살을 볼 때마다 우울하다. 이런 숨겨진 살들에 대한 비밀을 안고 있는 중년 여성들은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처진 살에 대한 고민은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집중된다. 처지고 접히고 늘어져 처치 곤란인 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고려대학교병원 성형외과 윤을식(尹乙植·52) 교수를 통해 그 방법을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일러스트 윤민철 작가 “나이가 들면 누구나 몸매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근육은 지방으로 바뀌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니까요. 가슴과 뱃살은 흉하게 처지고, 위팔의 살도 마치 알통이 흘러내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죠. 얼굴 곳곳의 살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실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옷 갈아입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엔 대중목욕탕 가기가 두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젊을 때 자랑거리였던 큰 가슴은 이젠 흉물처럼 느껴진다고도 하시죠.” 윤을식 교수는 병원에서 만난, 고민에 빠진 중년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결국 중년의 살은 자연스런 노화 현상이지만, 심하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늘어진 뱃살 없애는 복부성형술 그중 대표적인 부위는 역시 뱃살이다. 남성이나 여성 모두 줄지 않고 늘기만 하는 뱃살에 대한 고민이 많다. 뱃살을 없애기 위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방법은 역시 지방흡입술이다. 하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고, 특히 남성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윤 교수는 조언한다. “남성과 여성의 복부비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때문에 치료를 위한 접근 방법도 완전히 달라요. 무작정 지방흡입술을 해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야기를 듣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을식 교수는 의료 현장에서 비만 치료 방법으로 지방흡입술을 원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나지만, 실제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비만은 일종의 대사 질환이기 때문에 비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죠. 그 원인이 호르몬 이상이거나 선천적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암이 이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만 환자가 온다고 해서 무조건 지방흡입을 해주는 일은 없어요. 내분비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 비만의 원인을 알아내고 근본적인 치료를 하도록 안내를 하죠.” 그렇다면 중년 남자들의 지방흡입술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의 경우는 대부분 내장비만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배뿐만 아니라 다른 부위도 마찬가지예요. 남성은 근육이 지방으로 변하면서 살이 찌는 경우가 많아, 지방이 근육 사이에 존재하게 돼요. 때문에 물리적으로 지방을 빨아들이는 지방흡입술로는 지방을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중년 여성인 경우에는 속 편히 지방흡입술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피부의 탄력 때문이다. 젊은 여성의 경우에는 지방을 흡입해도 처진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탄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년 이후의 여성은 탄력이 부족하다. 배 밑에 몰려 있는 지방을 제거하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처진 피부가 더 흉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뱃살의 노화와 처짐은 출산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출산 과정에서 급격한 팽창을 하고, 이후 노화로 인해 탄력까지 잃으면서 심한 처짐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윤을식 교수는 “그래서 최근에 많이 시도되는 것이 최소절개 복부성형술이에요. 1980년대에 비만 환자가 많은 미국에서 시도되기 시작했죠. 팬티 라인을 약 14cm 정도 절개해서 지방을 제거하고, 피부도 팽팽해지도록 당겨서 남는 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입니다. 배꼽 위치가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수술 과정 자체는 다소 복잡하지만, 실제로 절개하는 부위는 한 뼘도 안 돼서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죠. 무엇보다도 보정속옷으로부터 해방되고 옷맵시가 나기 때문에 중년 여성들에게 가장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 치료이기도 합니다(웃음)”라고 설명했다. 최소절개 복부성형술의 장점 중 하나는 요요 현상, 즉 다시 살찌는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체세포 수는 정해져 있어 물리적으로 지방세포를 제거하고 나면, 세포 수가 원래대로 다시 증가하지는 않는다고 윤 교수는 설명한다. 비만은 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지, 세포 수가 늘어나서 부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절개 복부성형 치료비용은 개인 성형외과의 경우 300만~500만원 정도이며, 대학병원의 경우는 더 높은 편이다. 수술 후에는 6주 정도 특수 속옷을 입고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유방고정술로 자존심도 위로 여성의 경우 또 다른 처짐을 겪는 부위가 있다. 바로 가슴이다. 유방의 노화는 개인차가 있는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일찍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가슴 처짐의 기준은 유두 위치를 보고 판단한다. 유방 아래 접히는 부분보다 유두가 내려가 있으면 처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을 유방하수증이라고 한다. 문제는 가슴 처짐이 발생하면 외관상으로 흉할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불편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브래지어만으로는 처짐을 보정하는 데 한계가 있고, 꽉 죄는 속옷도 부담을 준다. 윤 교수는 나이에 관계없이 가슴은 여성에게 자존심이라서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환자가 많다고 설명한다. “나이가 들면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사우나 모임 등 사회생활도 불편해지니까요. 또 무게 때문에 짐처럼 느끼기도 해요.” 유방하수증 환자를 위해 성형외과에서 권하는 것은 유방고정술이다. 이론적으로는 유방축소술과 비슷한데, 가슴 모양을 아름답게 잡아주는 과정이 복잡해 좀 더 어려운 수술로 알려져 있다. 수술 이후에는 젊었을 때의 가슴 모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가슴이 작은 환자의 경우 보형물을 통해 보정하기도 한다. 유방고정술의 치료비는 개인 성형외과에서는 약 300만원 정도이며, 대학병원의 경우는 좀 더 비쌀 수 있다. 수술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이고, 3주 정도 심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 “아무래도 옷 입을 때 편하고, 체형도 보기 좋아지기 때문에 만족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가슴 처짐은 환자들이 참고 참다가 한 맺힌 마음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그렇다 보니 문제가 해결되면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최근에는 유방암으로 인해 가슴을 절제한 환자들이 가슴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다른 쪽 가슴에 유방고정술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유방 재건수술은 유방암 제거수술과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선택하는 환자도 늘었고, 수술을 동시에 진행해야 가급적 기존의 유두와 유륜 조직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간혹 인공 보형물이 싫어 재건수술을 반대하는 남편들이 있는데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어려운 방법 말고 좀 더 간단하게 체중과 체형을 조절할 수는 없을까? 윤을식 교수는 기계로 지방을 쏙쏙 뽑아내면 간단할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고 조언한다. “고도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지방흡입술을 시행하더라도 뽑아낸 지방의 무게를 재보면 고작 1~2Kg정도예요. 부피만 보면 잔뜩 뽑아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적다는 것이죠. 비만환자의 체중을 생각해보면, 지방흡입으로 인한 1~2Kg 체중조절 효과가 얼마나 미미한지 금방 알 수 있잖아요. 퇴행성관절염 환자처럼 운동을 통한 체중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빠른 방법을 찾기보다는 제대로 된 비만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 2016-12-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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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에이징] 주름을 인생처럼 쫙쫙 폅시다
- 노화는 인간에게는 일종의 숙명이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니어의 입장에서 얼굴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얼굴의 노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특히 팔자주름이나 볼살처짐과 같은 피부의 변화는 첫 번째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요즈음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선 노화로 늘어진 피부를 되살려주는 ‘실 리프팅’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개원가에서 다양한 학술활동에 앞장서온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 김상섭(金詳燮·43) 총무이사(청담미(美)의원 원장)를 통해 실 리프팅에 대해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다른 기업과의 미팅자리를 촬영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회사로서는 좋은 기회여서 기분 좋은 자리였는데, 사진 속 사람들 중에 유독 자신만 인상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거울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내 표정이 그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단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 얼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나이인데, 평소에 그렇게 남들을 노려보며 살았나 싶었죠”라고 말했다. A사장처럼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시니어들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성들은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얼굴의 변화를 갑자기 느끼기 일쑤다. 특히 최근에는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꽃중년’ 또는 ‘동안’이라는 단어들이 쓰이면서 외모를 중시 여기는 풍조가 번지고 있어 시니어들도 ‘관리’를 강요받기 시작했다. 팔자주름이 팔자를 바꾼다? 얼굴의 노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잘 알려진 대로 팔자주름의 등장이다. 여기에 볼이 ‘불독’처럼 처지기 시작하면 인상은 더 험악해진다. 이는 남성이나 여성 모두 마찬가진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첫 번째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피부가 처지는 이유에 대해 김 이사는 “당연히 노화”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중력에 의한 것은 부가적인 부분이고 가장 큰 원인은 노화에 의해 피부 속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 성분이 부족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러한 결체조직 성분들을 보충해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리프팅이 시도되는 것이죠.” 김상섭 이사는 피부가 처진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라고 설명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절개형 거상술이 있죠. 말 그대로 처진 만큼 잘라낸 뒤 들어올리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수술은 환자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처짐이 심한 경우에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죠. 절개해서 조직을 떼어낸다고 해서 효과를 평생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절개형 방식도 2년 후부터는 효과가 반감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실 리프팅이나 리프팅 장비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실 리프팅에서 말하는 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실이 맞다. 가는 실을 피부 아래에 삽입해서 부족한 탄력을 보완하고 처지지 않도록 당겨주는 효과를 얻는 방식이다. 성형외과에서는 탄력 효과, 당김 효과라고 표현한다. 이외에 사용되는 리프팅 장비는 고주파 혹은 초음파를 활용해, 피하조직에 열을 전달한 다음 피부조직과 단백질이 응고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환자 입장에서 시술은 간편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실 리프팅은 시술 방식에 따라, 실의 종류에 따라 방식이 좀 달라집니다. 시술 방식은 부유형과 고정형으로 나뉘는데, 부유형은 실들을 피부 밑에 고정하지 않고 삽입만 시켜 탄력을 보완하는 효과를 얻는 방식이고, 고정형은 미세한 가시 같은 돌기가 있는 실을 써서 피부조직을 위로 당겨 고정하는 방식이죠. 또 녹는 실을 쓰느냐 고정형 실을 쓰느냐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다소 달라집니다.” 처음 실 리프팅이 고안된 것은 15년 전 러시아 의사에 의해서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됐다. 여기에 녹는 실을 쓰는 아이디어는 한국의 피부과 의사들에 의해 고안됐다. 한의사들이 활용하는 금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임상적으로 대중화한 지는 6년 정도 됐고, 한국 의사들에 의해 일본 등 각국에 전파되고 있다. 김 이사도 이 초기 멤버 중 한 사람이다. 실에 따라 효과 지속 달라 실 리프팅 시술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부유형 방식은 금방 끝나지만 고정형 시술은 시간이 다소 더 걸린다. 실의 종류나 시술 부위에 따라 달라지지만 많게는 100개 이상의 실이 피부 밑에 자리 잡게 된다. 안타깝게도 실 리프팅 역시 영구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실 리프팅이 얻는 탄력 효과는 실이라는 물리적 특성과 피하조직에 실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아물면서 발생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아물기 때문이다. 당김 효과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탄력 효과는 녹는 실의 경우는 1년 이상, 안 녹는 실의 경우는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김 효과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과가 떨어진다. 안 녹는 실이 좀 더 오래가지만 두 가지 방식 모두 6개월 이후부터는 효과가 감소된다. “실 리프팅으로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시는 게 좋습니다. 녹는 실은 지속 기간이 다소 떨어져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때문에 시술에 부담을 느끼시는 환자들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없으신 경우에는 녹지 않는 실을 쓰기도 하고요. 남자 환자들의 경우에는 시술 자체에 부담을 느껴 장비를 활용한 리프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작용은 크지 않다. 실 리프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대부분 감염에 의한 염증이다. 간혹 녹지 않는 실의 길이가 잘못 계산돼 실 끝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그나마 대형 사고라고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의학적으로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시술 후 아물면서 붓기가 가라앉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주 정도라고 김 이사는 설명한다. 실 리프팅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는 실의 종류에 따라, 부위의 범위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시중의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받는 비용은 녹는 실의 경우 30~150만원, 안 녹는 실은 80~250만원 수준이다. 간혹 금실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정기적인 재시술 비용은 훨씬 낮아진다. 장비를 활용한 리프팅은 40~2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는 이러한 리프팅과 함께 눈가주름이나 미간주름 등을 보완하기 위해 필러를 동시에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 ‘실 리프팅’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환자가 원하는 것은 ‘동안(童顔)’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상섭 원장은 “몇 가지 간단한 수술만으로 젊어진 외모에 만족하시는 환자를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재혼에 성공하시거나 사업이 잘 풀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인상이 사회생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새삼 놀라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 시술 환자 미니 인터뷰 [청담동 안세정씨(47)] “시술만큼 본인의 관리도 중요해요” 평범한 가정주부인 안세정씨는 실 리프팅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예찬론자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처음 실 리프팅 시술을 받은 건 30대 후반 무렵. 강남에서 실 리프팅은 ‘아는 사람만 아는’ 시술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됐다고 했다. 벌써 8년 전 이야기다.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죠. 피부에 그것도 얼굴 피부 밑에 무언가를 넣는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주변에서 추천하는 바람에 용기를 냈는데 지금은 잘했다 싶어요.” 시술을 하고 나서 자리 잡을 때까지는 통증이 좀 있었다고 했다. 일주일쯤 지나서 통증이 사라졌는데, 붓기가 빠지고 나서 피부 밑에 이게 실인가 싶은 약간의 이물감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노화를 느끼기에는 이른 나이인 30대 후반에 실 리프팅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극적인 변화를 느끼진 못했어요. 주변의 평가도 그랬고요. 하지만 꾸준히 재시술을 받으면서 리프팅된 상태를 유지하니까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긴 부끄럽지만요(웃음).” 이제는 실 리프팅을 받는 사람이 늘면서 주변 지인들도 수술 후 효과를 보기도 하는데, 나이든 사람이 시술하는 경우 ‘극적인’ 변화를 본 적도 많았다고 한다. 안씨의 경우 첫 시술을 받고 2년 후 재시술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총 5회 재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그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긴 해요.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해요. 저도 그렇고 주변 사례를 보면 재시술 주기는 본인의 피부관리가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 운동이나 피부관리, 식사조절 등을 잘하시는 분들은 3년이 지나서 재시술하시는 분도 봤거든요. 반대로 특별한 관리를 안 하시는 분들은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의학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재시술이 진행될수록 효과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안씨는 여자라면 리프팅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들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거울을 보면서 팔자주름이나 눈가주름 등을 신경 쓰거든요. 만약 고민이 되신다면 실 리프팅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어요. 다른 시술에 비해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술이라 조금 불편할 순 있어요. 하지만 젊어 보인다면 약간의 불편함은 참을 수 있잖아요(웃음).”
- 2016-10-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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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람 PART 7] 이 남자의 서재, 책 말고 다른 물건(?)도 많다
- 함께 있다 보면 닮게 된다. 같은 관심사가 생기고 비슷한 부분에서 웃고, 울고, 기억을 저장하고 추억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한성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이자 (사)글로벌발전연구원장(ReDI) 이태주(李泰周·54)의 서재가 그렇다. 함께해 온 흔적과 이야기, 좋아하는 것,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책 사이이 남자의 서재, 책 말고 다른 물건(?)도 많다와 책상 위에 있다. 멀리 한국으로 여행 온 남태평양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호탕한 웃음, 장난 가득한 이태주의 눈 코 입과 사뭇 닮았다. 한성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이태주 교수는 그밖에도 하는 일이 많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의 불씨를 키웠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해외지원 자금이 잘 쓰이는지 감시하는 시민운동단체의 대표로 10년간 일해 왔다. 코이카, 문화관광부, 외교부 등 정부기관 정책자문과 관련한 서류작업은 늘 끊이지 않는다. 이태주 교수의 서재 이야기를 해 보자. 한성대 연구관에 있는 그의 서재는 서재라기보다 놀이터 같은 느낌을 풍긴다. “여름방학 동안 서재 중앙에 있었던 탁상을 치웠어요. 피곤하면 바닥에 눕기도 하고, 물구나무도 서고 혼자 별짓 다 합니다.” 이 교수의 서재는 작은 공간에 미닫이로 된 책꽂이를 원래의 서가 앞에 덧대어 실용성을 높였다. 해외지원, 정책, 공적 자금 감시 관리 관련 서류들이 미닫이 책꽂이 뒤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책이 몇 권 정도가 되느냐 혹은 책을 분리하는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할 일 없냐!”며 웃어 제낀다. “분리할 수준을 넘어섰어요. 빈 공간만 있으면 아무 곳에나 처박아 놔. 오래된 책은 잘 보지는 않지만 버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20년 된 책들은 미닫이 안쪽으로 보내 버렸어요. 최근에는 국제개발 쪽 일을 많이 하니까 그 옆에는 최근 관련 서류들이죠. 감당 못해요. 좋아하는 책을 따로 모아놓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책을 보유한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책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적당하게 가지고 있다가 어느 시점이 됐을 때 기증하든가 나누어 써야 하는 공유재산이란 생각 때문이다. 책, 사서 보는 나이가 따로 있다 요즘은 기증받는 책들이 많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책은 100% 돈을 주고 사서 봤다. “그러고 보니까 책 사는 나이가 있는 거 같아요. 한참 연구할 때요. 교수도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 해마다 논문 몇 편을 써야 해요. 논문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계속 자료도 봐야 합니다. 필요하면 아마존닷컴(외국인터넷서점)에서 외국서적도 사야 하고 꾸준히 도서를 구매했죠. 뭐 요즘은 남들이 책을 냈다 그러면 주는 거만 받아요(웃음). 곧바로 책꽂이로 들어가요.” 이 교수의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난하고 말랑한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가령 소설이라든지 만화책 말이다. 문화인류학에 관련된 책도 많고 국제개발 분야가 서재 한가득하다. “개발, 발전문제 그게 한 분류입니다. 한참 내가 공부할 때는 남태평양에서 연구했어요. 사모아, 피지, 통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이런 곳에서요. 한쪽 서가 서너 개 정도는 전부 남태평양과 관련된 책들입니다. 또 20대 때, 대학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관심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20대부터 50대까지 관심 영역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책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이태주의 서재에는 세계가 있다 이 교수의 서재에서 의미를 찾으라면 우리에게 생소한 국가나 지역에서 직접 사들인 책들이 많다는 점. “아프리카 여행할 때 아프리카 책, 인도 책, 유럽 책, 이집트에 가면 이집트 사람이 쓴 책 등. 나는 인류학자이기 때문에 그 지역 문명과 인류, 문화 다양성 등을 알 수 있는 책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책은 국내 도서관 어디에 가도 없어요.” 이 교수의 첫 직장이 유네스코였기에 유네스코 관련된 책들도 많다. 베트남어로 된 책들도 여러 권 보였다. 1992년 베트남과 수교를 맺은 뒤 이 교수는 한국인 최초 베트남 연구자가 되겠다는 생각에 베트남에서 6개월여 생활했다. “시클로를 타고 구석구석 다니고 베트남어도 좀 그때는 했습니다. 여기 있는 책이 현지에서도 얼마 안 되는 베트남 책을 모은 것입니다. 뒤 칸에 보면 베트남 관련된 서가가 또 있어요. 현지어로 된 건데 제목하고 목차 정도는 읽을 줄 압니다.” 서재에서 주로 놉니다 이태주 교수가 제일 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공적 개발 원조를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다. “어떻게 통합해서 효과적으로 할 것이냐. 국민 세금 낭비하지 않고 개발도상국을 제대로 도울 것이냐. 이런 것을 정리해서 정부에 만들어 줍니다.” 정년이 보장된 편한 교수 생활을 하는 줄 알았더니 서류 작업이 끊이지 않는단다. 그럼에도 그는 이게 바로 진짜 제대로 노는 것이라고 말한다. “놀지 않는 게 아니고 종일 놀아요. 사실 노는 거하고 일하는 게 구분이 안 돼야 성숙한 사람입니다. 젊었을 때는 일하느라고 ‘아! 맘에 안 든다’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글 쓸 때는 밤도 새울 수도 있고, 밤을 새워도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내가 하고 싶은 글 쓰는 건데 뭐. 몰입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서재에서 그는 글 쓰는 것 외에 낮잠도 자고 운동도 한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서재 말고 놀이터란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 남자의 서재는 ‘삶의 이력서’ 사실 이 교수의 서재에서 책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외국을 다니며 전리품처럼 모아 놓은 가면을 비롯한 기념품이다. 아프리카에서 사 온 전통 북을 보고 신기하게 봤더니 직접 북을 멋지게 연주한다. “다른 나라에 갈 때마다 하나씩 가져다 놓은 것들이에요. 처음 이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 누구나 신기해하죠. 서가 위와 창문 주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에 정신을 놓더라고요.” 아프리카나 서태평양에서 가지고 온 가면뿐만 아니라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 조각도 눈에 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있어 서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력서지”라고 운을 뗀다. “삶의 이력서지. 그때그때 나의 흔적을 뒤져볼 수 있잖아요? 물론 내가 쓴 노트나 메모가 흔적일 수 있지만 ‘아, 내가 80년대에는 이런 책을 봤구나. 30대에는 이런 책을 봤구나’ 그런 거죠. 그때는 몰입해서 살았던 거 같아요. 치열했죠. 요즘은 책을 잘 읽지 않는데 그때는 밑줄을 그어 가면서 봤어요. 언젠가는 버리겠죠? 내가 은퇴할 때쯤 되면 좋은 책들은 좀 정리를 하고 보고서 같은 건 다 버릴 생각입니다. 리포트는 평생 간직할 책은 아니잖아요. 서류 모아 놓은 것은 언젠가는 책 쓸 때 써 먹으려고요.” 그의 서재 현관에는 2019년 9월이라고 쓰여 있다. 그때는 연구년으로 어디로 갈지 고민 중이다. 예전에는 네덜란드의 국경도시 마스트리트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동구 분쟁지역, 발칸반도, 사라예보 등지를 다녔다. 이번에는 중국의 상하이 혹은 브라질의 리우를 연구년 베이스 캠프로로 고려하고 있다. 또한 2027년 2월 28일이라고도 쓰여 있다. 그날이 바로 정년이라고. 매일 매일을 즐기며 살지만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날을 향해 가고 있다. 그의 서재에는 세계와 함께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살고 있다. 하루하루 모래시계를 바라보듯. “저기 책꽂이에 걸어놓은 건 콜롬비아에서 사온 것입니다. 콜롬비아에 갔다가 정말 놀랐어요. 일반 레스토랑인데 연인이 딱 들어와서 주문하자마자 바로 테이블에서 춤추더라고요. 밥 먹고 춤추고 그러더라고요.”
- 2016-10-1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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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교수의 유머코드] 천편일률에서 벗어나야 재미있는 스피치가 된다
- 재미없고 지루한 스피치는 듣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내용이 없거나 전달 방식이 나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지루한 스피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이 열정을 지닌 주제를 열정으로 전달해야 한다. 내용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미리 고심하고 연구해야 한다. 말은 재미있게 해야 듣는 사람이 즐겁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구태의연하고 지루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생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겠지만, 감각과 훈련을 통해서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 같은 내용이라도 재미있고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매력적인 말하기 방법이다. 매력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천편일률을 타파해야 한다. 남이 다 하는 이야기,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를 피해가는 것이 방법이다. 구태의연함과 천편일률만 피해도 메시지는 매력적으로 바뀐다. 천편일률을 없애고, 살아 있는 말을 하려고 노력할 때 메시지는 매력을 얻는다. 구태의연한 말을 듣고 감동받을 사람은 없다. 들으나 마나 한 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천편일률과 구태의연에서 벗어나야 한다.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대화 방식의 차이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남자와 여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오해가 생겨서 싸움이 되기도 한다. (얼굴) 남자는 이력서고, 여자는 청구서다. 남자는 살아온 세월, 여자는 투자한 돈이다. (이끌림과 속음)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여자는 남자의 평판에 이끌린다. 남자는 여자의 내숭에, 여자는 남자의 허풍에 속는다. (옛사랑) 남자는 들었을 때 비로소 궁금하지만, 여자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생각한다. (돈이 생기면) 남자는 더 벌 길을 찾고, 여자는 쓸 곳을 찾는다. (동행) 남자는 자기보다 잘 생기고 돈 많은 여자와 하려 하고 여자는 자기보다 못한 여자와 하려 한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여자는 여자를 본다. (친구 방문) 남자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여자는 자랑할 일이 생기면 한다. (전화) 남자는 간단한 용건을 위해, 여자는 못다 한 수다를 위해 한다. 남녀 차이를 재치 있게 보여준 방송 프로그램 이 예전에 인기를 끈 것도 이런 심리 차이를 절묘하게 유머로 포착해 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말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메시지의 ‘외연’과 ‘내포’를 적절하게 조화하는 것이다. 모든 메시지에는 ‘외연’과 ‘내포’가 있다. ‘외연’은 글자 그대로 나타난 의미를 뜻한다. ‘내포’는 그 말 속에 깃든 또 다른 의미를 지칭한다. 말을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이 ‘외연’과 ‘내포’를 적절하게 조화할 때 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의미를 공유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의미라는 것은 단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다. 의미는 단어를 사용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1984년에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가 군중을 향해서 말했다. “우리는 어제 조그만 당나귀 한 마리를 걷어찼습니다.” 경쟁자였던 자유당의 제랄딘 페라로와 텔레비전 토론을 가리킨 것이었다. 페라로를 이겼다는 ‘내포’를 ‘당나귀’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부시의 이런 표현이 부통령으로서는 무례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유약하던 부시의 이미지가 이런 말로 인해서 좀 더 강화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시는 후자의 해석을 택했고, 페라로에게 사과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저 평이하게 “우리는 TV 토론에서 이겼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우리는 어제 조그만 당나귀 한 마리를 걷어찼습니다”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그런 차이를 얼마나 만들 것인가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된다. 유머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대체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유머 역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잘 쓰면 효과가 있고, 잘 못 쓰면 안 쓰는 것만도 못 하게 될 수 있다. 결정의 열쇠는 ‘상황’이 갖고 있다. 유머를 지나치게 남발하면 메시지가 너무 가벼워진다. 밋밋한 메시지를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서 유머를 사용하되, 지나치면 곤란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유머를 구사한다면 전체 메시지가 듣는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유머를 잘못 써서 청중의 일부에게라도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면 곤란하다. 성별과 관련된 유머, 직업, 종교, 정치와 관련된 유머 중에는 이런 위험을 지닌 요소가 많다. 그리고 유머 직후에 웃음을 기다리는 표정을 보이는 것도 곤란하다. 아무도 웃지 않을 경우, 참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유머를 말하고 나서 연사 혼자 큰 웃음을 터뜨리게 되면 참 보기 민망하다.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할 자리에서 분위기를 완전 다운시키는 근엄한 스피치를 하는 분들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오락적인 스피치도 한 가지의 통일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 >> 강미은 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전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 2016-10-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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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황의록 화가협동조합 이사장의 꿈 “따뜻한 세상을 위한 인내심 싸움, 즐기고 있다”
- “투기나 투자가 아니라 누구나 하나씩 그림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저변화되어야 그림이 팔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림이 팔리지 않습니다.” 오랜 경영학자로서의 삶이 뒷받침해 주는 것일까. 황의록(黃義錄·68) 화가협동조합 이사장이 지향하는 목표는 매우 뚜렷하고 분명했다. 그것은 예술가의 기질이라기보다는 경영자의 기질에 가까워 보였다. 희미하고 열악한 한국 미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질이란 그러한 분명함과 뚜렷함이 아닐까. 이미 미술계에서 놀랍다는 반응을 얻고 있는 황 이사장의 과감한 실험, 그리고 꿈을 들어 본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을 전공하고 싶었죠. 그러나 가정 형편 때문에 사진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유학하면서 한국에 생활비를 보내야 할 정도였기에.” 베테랑 경영학 교수로서 오랜 세월을 보낸 황의록 화가협동조합 이사장은 노년이 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을 찾다 다시 사진을 만나게 됐다. 중앙대 사진 아카데미에서 3년을 공부했다. 그러나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사진 동호회에서 어울릴 시간도 없어서 혼자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혼자 출사를 가기도 하고(웃음). 그런데 사진을 얼마 하다 보니 사진이 발전이 없는 게 보이더군요. 그러다보니 고민을 하게 됐는데…. 사실 고민하는 게 싫었습니다. 사진은 즐기려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친한 사진작가에게 사진이 나아지지 않아서 즐겁지 않다고 털어놨어요. 그가 심미안이 달라지는 게 좋겠으니 이제부터 얼마 동안은 사진을 하지 말고 그림을 보러 다니라고 말해 줬습니다. 그때까지 겉멋이 들어서 국내 작가는 보지 않았는데, 그후부터 일주일에 이틀은 그림을 보러 다녔어요.” 중견 화가가 물감 사려고 ‘야간 경비’… 충격이었다 황 이사장은 전시회를 가게 되면서 작가들과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고, 친한 작가가 하나둘 늘어나고, 초대까지 받게 됐다. 그리고 화가들이 힘들게 산다는 것과 개인적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한 중견작가가 작업하다 말고 알바를 나간다는 거예요. 물감이 떨어져서, 건설 현장에 야간 경비를 하러 나간다고. 여자 작가는 전화했더니 이젠 그림을 안 그린다고 말하더군요. 너무 수입이 없어서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고. 연말에 시험에 통과하면 내년부터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 몇 푼이라도 받아서 먹고살면서 짬짬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하더군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는 미술계의 열악한 현실에 맞닥뜨리고 고민하게 됐다. 명색이 경영학 교수인데 이걸 보고 넘어간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해서 미술계 사람들을 만났는데 다 말렸다. 그들은 두 가지를 말했다. 실패한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없다. “전 돈 버는 건 관심 없었어요. 밥은 먹고사니까. 밥 먹고사는 내가 또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한다는 부분만 성공하면 되는 거겠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 전 된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림이 안 팔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파는 쪽에서 잘못해서지 사람들이 그림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매 능력이 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그 사람들조차 그림을 안 삽니다. 왜냐면 미술품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감, 불신 때문이에요. 저 작가가 정말 좋은 작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미술품이 뉴스를 타는 것은 투기나 투자 목적으로 사는 극소수 사람의 얘기들뿐이다. 미술품을 문화적 향유품이 아니라 돈벌이로만 여기니 미술품에 과도한 금액이 매겨지고 투기와 투자로만 쓰이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소수의 작가들만 빼고 대다수의 작가들은 생활 자체가 열악한 현실을 만들었다. “국내 작가로서 작품을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은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많아요. 교수라든지로 일해서, 그 네임밸류 덕분에 비싸게 팔리는 경우도 많고. 아니면 다른 영향력 있는 미술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서 팔리죠. 그걸 비웃을 이유는 전혀 없어요. 그건 그거대로 존재하는 거고, 옥션 등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도 그것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례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술을 나와 관계없는 세상으로 압니다. 그들에게 미술 소비자가 되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화가들에게는 작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거라고 확신했어요.” 시장을 키워야 작가도 갤러리도 소비자도 행복해진다 황 이사장은 그래서 2015년에 화가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조합은 후원자 조합과 작가 조합으로 나뉜다. 그는 먼저 후원자 조합을 모았다. “후원자 조합원이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 번째로 기본적으로 1000만 원 이상 출자해야 한다는 겁니다. 협동조합 중에서 이렇게 많이 내는 데는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정도 출자해도 삶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리라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두 번째는 이 미술운동이 실패할 수 있다는 걸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1000만원이 사라질 수 있는데, 그래도 하이파이브하고 좋은 꿈 꿨다 하고 헤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과 시간으로 이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조건들로 조합원을 선별해서 받았고, 현재 그분들이 도와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황 이사장이 의도하고 있는 조합원 선발은 후원자에게 쉽지 않은 엄격함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작가 조합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소비자들이 그림을 가까이하고 친해지면 사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불안과 불신을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그림을 잘 몰라도 안심할 수 있게 해 주자는 게 첫 번째입니다. 정말 좋은 작가를 엄격하게 선발할 테니 마음놓고 사도 된다는 걸 조합에서 보증해 주는 거죠. 그래서 작가 선발에 엄청나게 공력을 들이고 있습니다.” 엄격한 조합원 선발로 소비자의 신뢰 보장 까다로운 작가 조합원 선정 과정은 총 3차에 걸쳐 이뤄진다. 심사위원은 평론가, 원로 작가, 갤러리 관장 등으로 총 10명이 있다. 이 10명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1차 심사는 블라인드 리뷰다. 흡사 TV 프로그램 처럼 작품만 보여주고 작가는 감춘 채 오로지 미술시장의 대중화, 세계화에 적합한가가 심사 조건이다. 이는 그림이란 소비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데 소수만 좋아하는 그림은 안 된다는 관점에서 이뤄진다. 그러면서도 작품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 부분에서 심사위원 10명 중 7명 이상이 지지해야 작가가 통과된다. 2차는 현장 심사다.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가진 작품 모두를 확인하여 작품 세계의 집중도와 일관성을 확인한다. 앞으로의 계획, 도움이 필요한 작가인지 등도 확인하는 과정이다. 3차는 공개 심사다. 초대 전시회를 열어 작가의 모든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여기에서 70% 이상이 찬성해야 작가 조합의 정회원이 될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엄격한 선발은 상반기와 후반기에 한 번씩 한다. 현재 작가 조합에 속한 작가는 11명. 100명까지 늘리려고 계속 선발 중에 있다. 건강한 미술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싶다 황 이사장의 도전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떨까? “놀라죠 다들. 지금은 지원서가 상당히 많이 들어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부족해요. 그런데 미술계가 너무 어렵다 보니 작가를 위해 해 주는 것도 많고 팔리는 것도 제법 되고 작가를 띄우는 역할을 하니까 놀라는 거겠죠. 아직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도 계실 수 있겠지만, 많이 기적처럼 받아들여주시는 거 같아요.” 황 이사장은 현재 미술시장의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 대해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건강한 미술에 대하여 입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실천하여 괜찮은 성과를 내면 사람들이 ‘저것도 괜찮네’라며 평가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1년 3개월밖에 안 됐는데 느낌이 와요. 저는 페이스북에다 제가 겪는 일을 다 쓰고 있어요. 이렇게 했는데 실패했다, 이렇게 했는데 효과가 있다 등등. 감추는 게 아니라 투명하게 하겠다, 판단은 당신들이 하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림을 통해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그리다 황 이사장은 70세에 가까운 시간을 교육자로서 살다가 이제 사회와 문화와 공유의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과감한 플랫폼 변화를 시도한 것처럼 보인다. “다르지 않아요. 지금은 현실적인 고뇌고 옛날엔 이상적인 고뇌였고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경영학은 현실 학문이기에 계속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실제 효과를 내서 사람의 삶을 개선하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내가 아는 지식을 접목하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일을 찾아왔던 겁니다. 지금은 그러한 방법을 적용하는 영역이 달라졌을 뿐이에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지금까지 해 왔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적인 효과와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두 가지 조건. 그러한 방향성은 그의 심미안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저는 그림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남달라야 한다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도 감동받을 수 있고 신선함에 감동받을 수 있고, 감동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감동이 있어야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소신이에요. 살기 힘든 사람도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림을 누구에게나 필요로 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어야 세상이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았다는 확신, 즐기면서 산다 “앞으로 30년 보고 있어요. 당장 그림이 얼마라도 팔려야 작가도 살고 조합도 살죠. 그래서 30년 정도를 초단기, 단기, 중기, 장기로 계획을 잡아보고 있어요.” 그림을 통해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황 이사장은 작가들은 나은 여건에서 작품에 전념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돈이 있든 없든 그림을 가까이 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자는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인내심 싸움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남들은 칭찬해도 저는 계속 불안하거든요. 짧은 성과부터 긴 투자까지 생각해야 하니 쉽지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런데 여러 가지 반응을 보니 제 예상이 맞았고 전략도 맞았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런데 그게 좀 더 빠르게 나오지 않아서 불안할 때가 있죠(웃음). 하지만 즐기자는 쪽으로 가고자 해요. 지금 상황은, 아주 괜찮은 거 같아요.” >>황의록 이사장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장 및 기획처장, 한국소비자학회장, 한국유통학회장, 한국마케팅학회부회장, 한국의농학회장을 역임했다.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제일제당, 삼성전자,두산그룹, LG그룹의 자문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및 GS그룹 자문교수를 맡고 있다.
- 2016-10-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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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이건만 AnF' 이건만 대표, 인생 2막에 펼친 한글 패션 디자인 ‘제1장’
- 이번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을 맞는 해라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기 때문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한글을 인식하며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매일같이 한글을 떠올리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이가 있다. 세계 최초로 한글 디자인 패션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던 ‘이건만 에이엔에프(LEE GEON MAAN AnF)’의 이건만(李健滿·54) 대표다. 읽고 쓰기 쉬운 우리 한글이지만, 디자인에 접목하는 것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글이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는 그의 다부진 말투에는 남다른 사명감이 스며 있었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한글 디자인 패션브랜드를 세울 수 있었던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유학 생활을 하며 샘솟았던 애국심이 심지 역할을 했다. “해외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갔는데 일본어로 된 책은 많고 한국어로 된 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방학 때면 한국에 나와 우리 책을 사서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죠. 또, 외국 작가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찾으라고 하면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것을 고르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한국의 문화를 디자인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죠.” 다양한 한국 전통 문양들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 역시 중국 문명의 영향 때문에 차별화하기가 어려웠다. 그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닌,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나 사상 등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맺혔다. 그리고 그 생각의 종착점에 ‘한글’이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티스트로서 화려한 삶을 살 수도 있던 그였다. 그러나 교수로 활동하던 시절, 결국 심지에 불이 붙고야 말았다. “친구가 어느 날 ‘너 1야드에 실이 몇 개 들어가고 넥타이가 몇 개 나오는지 알아?’라고 묻더라고요. 모른다고 했죠. 미국에서 공부할 땐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고, 특히 유럽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디자이너가 어떤 창의적인 디자인을 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한국 섬유 시장은 OEM형태로 움직이다 보니 그런 것도 가르쳐야 했던 거예요. 내가 공부하고 온 걸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소용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겐 ‘21세기엔 디자이너가 브랜드가 되는 시대가 온다. 너희들의 몸값이 달라지고 디자이너가 경영자가 돼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그 말을 들은 의대, 공대 다니던 학생들이 전과를 한 거예요. 덜컥 책임감이 생기고 겁이 나더라고요.” 그의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은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들은 그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디자이너는 직급이 올라가도 차장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한마디로 디자인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인데, 멀쩡한 전공을 박차고 나온 학생들을 보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연 그렇게 되느냐, 내 이야기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증명해 내기 위해 그는 교수직을 뒤로하고 현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제자들과 합심해 만든 것이 지금의 ‘이건만’ 브랜드다. 한글과 패션, 트래디션과 트렌드를 접목하다 2000년,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도 그랬고 현재까지 가장 힘든 점은 한글을 패션에 접목하는 일이라고 한다. 알파벳처럼 나열문자가 아닌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지는 입체문자인 한글을 제품에 효과적으로 입히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한글이 언어이기 때문에 디자인 요소가 아닌 글자로 읽힌다는 게 문제였어요. 그래서 자음과 모음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쳤죠. 한글의 형태적 분석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글이 가진 의미에 대해 공부했어요. ‘한글이 대체 우리에게 뭐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런 고민을 디자인에 담으려고 했죠. 디자이너들도 고충이 있죠. 지금까지 디자인한 작업물만 3000개가 넘는데 또 새로운 것을 창작해야 하니까요. 우린 다른 곳처럼 카피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쟁업체도 없으니 오히려 더 힘들죠.” 그렇다고 그들만 한글 디자인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단기적인 작업에 그쳤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만큼 한글을 패션에 접목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설명했다. “한글과 패션, 한마디로 트래디션(tradition)과 트렌드(trend)라 할 수 있죠. 어찌 보면 그 두 가지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차라리 한글 디자인으로 패션이 아닌 자개함 같은 소품을 만드는 게 훨씬 쉬울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저 인사동에서 사는 관광 상품에 지나지 않거든요. 한국 사람이라면 그런 기념품을 더욱 살 이유가 없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스카프, 넥타이, 핸드백 제품을 디자인하게 됐어요.” 차별화된 전략 덕분에 이건만 브랜드의 제품은 국내외 인사와 패션 마니아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건만 한글 넥타이는 청와대·정부부처·공공기관의 귀빈 의전용 명품으로 납품됐고, 한국 브랜드 최초로 일본 대형 백화점에 입점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우여곡절도 많고 힘든 점이 많았지만, 이만하면 성공반열에 올랐다 할 수 있지 않은가? 그에게 ‘성공’이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아마 실패한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무척 많을 거예요. 아무래도 추진하던 일이 실패하면 그만큼 금전적으로 손해가 생기거든요. 저는 그걸 수업료라고 해요. 수업료 굉장히 많이 냈습니다(웃음). 그런데 성공의 기준이 뭐냐. 성공과 출세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출세는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건데, 그렇게 따지면 아직 출세는 못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대학에 관련 커리큘럼이 생기고, 많은 유통라인에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입점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것에 제가 작은 역할을 했다고 봐요. 돈 벌고 유명해지는 출세보다는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성공을 하고 싶어요. 출세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바로 낫씽(nothing)이지만, 성공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도 역사에 남고 하나의 장르를 열고 패러다임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성공입니다.” 디자이너 경영자가 이어갈 ‘이건만 에이엔에프’ 그는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점은 ‘이건만 에이엔에프’만의 경영방침에서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열정을 발휘하는 이 대표는 경력자보다는 신진 디자이너 채용을 우선시하고, 매출의 20%가량을 디자인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목표로 삼은 것 중 가장 첫 번째가 ‘동종 업계 디자이너 월급의 2배를 주는 회사’였다고 한다.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회사와 후배들을 향한 애정으로 에너지가 가득한 그에게도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나이가 드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실감한다고. 열심히 운동하며 자기 관리에 힘쓰면서도 디자이너들의 역량 강화에 더욱 힘을 쏟게 된다는 이 대표다. “요샌 나이 드는 게 무섭더라고요. 아,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냥 이대로 끝나버리는 거 아냐? 그런데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쥐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만 봐도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명품 브랜드가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하고 있죠. 코코 샤넬이 죽었다고 그 브랜드가 힘을 잃은 것은 아니잖아요. 브랜드를 이끌어갈 디자이너를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우리 직원들에게도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마케팅, 유통, 소비자 심리 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제 욕심에 그런 거지만, 아마 다들 엄청 피곤할 거예요. 그래도 우리 브랜드를 물려줄 인재를 만들려면 어쩔 수 없죠.” 그는 한글이 담긴 디자인 브랜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자신이 아닌 누구라도, 또 더 많은 이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힘들고 더디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명감도 있었다. “일이 힘들수록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해요.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 돈을 위해서? 돈을 벌려고 했으면 다른 일이 얼마든지 있겠죠. 명예를 위해서? 그럼 대학교수로 남아 있었겠죠. 브랜드를 하나 육성하려면 굉장히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해요. 애초에 요행을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니까 서두르지 않죠. 남들보다 큰 솥을 만들었기 때문에 밥은 늦게 짓더라도 그만큼 더 많이 지으면 되잖아요. 이미 이만큼 달려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요. 끝도 보이지 않지만 그 시작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와버렸죠.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돌아가나요? 일단 달리고 보는 거죠.” 인생 2막, 얻는 게 없어도 일단 달리고 본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 속에 어쩐지 순탄치만은 않았을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10여 년, 한글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혹시 후회하는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아마 대학에서 교수생활도 하고, 굉장히 유명한 아티스트가 됐을 것 같아요. 하지만 결코 후회는 안 해요. 그 삶은 지금이라도 다 벗어던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한 건 후회해요. 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유학까지. 지금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겠다 싶어요.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고 사업을 잘하고 세상사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러한 후회 역시 이만큼 살아봐서 알게 된 것이라고. 그는 공부하던 30대 중반까지를 인생 1막, 그 이후로부터 현재의 삶을 인생 2막이라고 설명했다. “인생 1막은 어느 정도 계획대로 됐어요. 공부는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고 그것에 만족할 수 있거든요. 근데 인생 2막은 노력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왜냐하면 공부는 정량이 있고 그 조건에 맞추면 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머리 굴리고 있거든요. 변수가 생기죠. 내비게이션이 안 막히는 길을 알려 주면 그대로 가나요? 머리 써서 다른 길로 가는데 또 막히잖아요. 그러니 게임이 안 되죠. 근데 아직은 다 내 것만 같아서 욕심도 내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달릴 수 있는 것 같아요. 2막까지는 노력한 만큼 얻는 게 없더라도 일단 해보려고요.” 그는 노력하는 만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인생 3막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얼마만큼을 노력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혜안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의 수명이 1000년 정도 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거예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 인생의 룰을 깨닫게 되는 거죠. 아마 인생 3막은 그런 룰을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해요.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구분하는 시기인 거죠. 그러면 자연히 무리한 계획을 세우거나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게 욕심을 덜고 농부의 마음으로 늙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끝으로, 그에게 인생 3막은 언제쯤 오리라 예상하는지 물었다. “글쎄요. 철들면 죽는다잖아요. 아마 저도 그냥 이렇게 살다가 눈 감는 순간에 ‘아휴,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한마디 하고 깨닫지 않을까요?”
- 2016-10-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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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에이징] 골치 아픈 중년 다이어트 해결법은?
- 이상한 일이다. 간식도 많이 먹지 않는다. 요샌 과일도 잘 입에 대질 않는다. 음식이라곤 하루 세 끼 챙겨 먹는 식사가 전부다. 모임도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술자리가 많지도 않다. 매일 걸으려 노력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가까운 산에 오른다. 그런데 이놈의 뱃살은 변하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중년들이 하는 이런 흔한 고민에 전문의들은 당연하다 말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이 당연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비만전문의로 잘 알려진 365mc 신촌점의 김정은 원장과 의사·한의사 면허를 모두 보유한 예풍의원 백태선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일러스트 윤민철 작가 중년에 접어들어 살찌는 것은 당연하다. 속상한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두 원장 모두 입을 모은다. 김정은 원장은 평소같이 생활하면 조금씩 체중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중년에 접어들면 가장 먼저 갱년기를 겪으면서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져요. 남성의 경우 남성호르몬이 줄면 복부지방이 증가하게 되죠. 이와 함께 근육량도 줄어드는데 이런 변화는 기초대사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해요. 생활습관이 변하지 않는데, 소비하는 칼로리는 줄어든다면 살이 찌게 되는 것은 당연해요. 덕분에 살이 빠지는 속도도 젊은 사람에 비해 느리고요. 따라서 젊은 사람에 비해 감량 목표도 현실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힘들지만 빼야하는 살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이에 대해 백태선 원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간혹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외신을 통해 나오기도 하잖아요. 정말 비만이 건강에 직접적으로 치명적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흔히 4종 세트라고 표현하는 고협압, 당뇨병, 고지혈, 통풍과 같은 대사증후군은 비만과 관련이 있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심혈관 질환 역시 가장 큰 원인은 비만이에요. 미국에서 사망률이 높은 질환 중 하나가 골다공증과 골절인데, 이 역시 체중을 견디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죠. 무릎 관절질환도 당연히 체중과 연관되어 있고. 그러니 결국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체중 조절은 필수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살을 빼기 위해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달리기? 굶기? 여러 가지 답이 머리 속을 맴도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예방이다. 김정은 원장은 안 찌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중년이 되면 살빼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가장 좋은 것은 운동이나 식습관 개선을 통해서 살이 찌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공부나 교양을 쌓는 자기 관리처럼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꾸준하게 체중이 불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물론 이런저런 노력을 다 했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약물치료같은 적극적인 방법을 써야겠지요.” 이에 대해 백태선 원장은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인다. 다이어트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년에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의외로 힘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다이어트에 성공하더라도 요요를 부르는 방아쇠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에요. 물론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도 되고요. 또 무조건 굶는 등 전문적인 정보 없이 하는 무리한 다이어트는 건강까지 헤쳐요. 다이어트에 실패하면 자책할 가능성도 크고. 어느 정도 노력했는데 큰 성과가 없다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헬스클럽이나 피트니스클럽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면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효과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 원장 역시 트레이너나 영양사 등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다이어트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식습관 문제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생활습관 개선과 관련해서 중년들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은 음식이다. 김정은 원장은 스스로 어떻게 먹고 있는지 제대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년들의 특징 중 하나가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이에요. 보통 채소와 과일이 몸에 좋다고 하니까 즐겨드시죠. 하지만 과당이 많은 과일은 다이어트를 어렵게 만들어요. 또 하나는 바로 밥이에요. 보통 하루 세 끼 밥만 먹는데 왜 살이 안 빠지나 하시잖아요? 밥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특히 노후에 집에 두 식구만 살게되면 간단한 반찬 몇 가지와 밥으로만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문제예요. 그 몇 안되는 반찬이 젓갈같이 짠 반찬이라면 최악이죠. 다른 영양소에 비해 탄수화물 섭취만 늘어나는 불균형이 일어나요. 건강하고 체중관리에 도움되는 식사를 하려면 반찬량을 늘리고 밥의 양을 줄이세요.” 실제로 김 원장은 병원에서 환자의 생활습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식사습관을 점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의 식사 메뉴와 식사량을 점검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식단을 지정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 백 원장은 고기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단백질 섭취에 대해 부정적인 연구결과는 대부분 서구 기준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섭취량을 따져 보면 결국 한국 사람 식생활 기준으로는 고기 섭취가 부족한 셈이에요. 서양인들과 고기 섭취량이 다르니까. 고기는 걱정말고 드세요.(웃음)” 중년에게 다이어트는 숙명적인 ‘장기전’ 병원에서 환자들의 다이어트를 도울 때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약이다. 일반적으로 다이어트약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지만, 그것은 전 세계 다국적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쏟아붓는 돈의 규모를 모르고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이들이 의견이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올해 800억원에서 1000억원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제약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김정은 원장은 “체중 조절을 위한 약물치료는 항우울제 같이 부작용을 이용해 처방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공복감을 줄여 식탐을 감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었어요. 하지만 현재 개발되고 있는 신약들은 기초대사량을 증가하거나 지방세포를 줄이는 등의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어차피 약물치료만으로 체중 조절을 완전히 해결할 순 없겠지만,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병행한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백태선 원장은 중년 다이어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증을 버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에 몸에 딱 붙는 옷들이 흔해진다던가, 마른 연예인들이 인기를 끌면서 정상 체중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와 환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완전 다르죠. 중년에게는 중년에게 맞는 기준이 있어요. 또 그 기준까지 체중을 조절하는 과정도 장기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접근하세요”라고 말했다.
- 2016-09-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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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안심 귀갓길 프로젝트
- 최근 강남역 묻지 마 여성 살인 사건이나 수락산 등산객 피살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끔찍하고 무섭다. 여성이 주로 공격받으니 딸 있는 친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외출한 자녀가 돌아올 때까지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어디 젊은 여성만의 걱정일까? 우리도 시니어지만 약한 여성이므로 그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움츠러든다. 필자는 오늘 경찰청 여성 치안대책 팸투어에서 여성 안전 대책을 잘 세우고 있다는 관악경찰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여성 불안 해소를 위해 서울 지방 경찰청은 여성안전 치안대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범죄예방 진단 팀( crime prevention officer - CPO)이다. 이제까지는 범죄에 대한 사후 대응 위주의 치안이었지만 사전 예방 중심으로 바꾸어 여성의 안전을 확보하고 경찰의 예방기능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필자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범죄 예방 진단 팀은 각 경찰서별로 2명씩 배치되어 있어 여성의 안전귀가를 돕고 있다고 한다. 오늘 방문한 관악경찰서의 서장님과 경찰 여러분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이 동네는 특히 여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좋은 동네인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회의실에서 친절한 설명과 여성 안전에 대한 퀴즈도 풀어보는 등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 후 여성 안심 동네를 돌아보았다. 관악구 행운동은 20~30대 1인 여성인구 밀집 지역으로 서울에서 여성인구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곳이며 대부분 대학생이나 직장여성들로 어두운 밤 귀갓길이 범죄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려운 곳이었다고 한다. 필자 일행이 첫 골목에 들어서자 바닥에 큼직한 노란 네모 안에 흰 글씨로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 쓰여 있었다. 이곳 여성 안심 귀갓길은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도록 경찰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곳으로 낙성대역 8번 출구에서 서울 미술고에 이르는 골목에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는 관악경찰서 문성화 경장님의 안내로 행운동의 여성 안심 귀갓길의 투어를 시작했다. 바닥에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바로 옆 전봇대에는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기 쉽게 번호가 있어 112에 신고하면 곧바로 경찰이 도착하도록 되어 있었다. SOS 벨을 누르니 “네, 말씀하십시오.”라는 대답이 즉시 들렸다. 이 동네는 까치산으로 이어지는 비탈길로 골목을 따라 깔끔한 원룸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이런 치안행정이 없다면 으슥하고 좀 두려운 마음이 들 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 사이의 좁은 틈새나 좁고 어두운 골목 곳곳에 CCTV나 LED 조명은 물론 노란색으로 칠해진 SOS 벨, 건물 입구에 설치된 미러 시트와 반사 띠 등 안전시설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이 동네 사람은 정말 안심될 것 같았다. 길을 가다가 위험을 느끼면 피할 수 있는 여성 안심 지킴이 집도 여러 곳 있고 골목 지킴이 역할을 하는 미루 카페도 있어 범죄예방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민 경장은 도시 공간의 설계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시설과 수단을 적용한 셉티드(범죄 예방 환경 설계- CPTED) 디자인을 적용한 후부터 실질적으로 범죄 발생률이 낮아지고 범죄 예방 면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가지 예방 수단 중 비상벨을 보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 그땐 동네꼬마들이 몰려다니며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재빨리 달아나는 장난을 재미로 했다. “누구세요?”하는 소리에 후다닥 도망치며 놀았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혹시 장난으로 벨을 누르는 사람이 없는지 질문했더니 온통 CCTV가 있어 그런 장난은 할 수가 없을 것이라 해서 다들 한바탕 웃었다. 서울에는 이곳 말고도 수백 개의 여성 안심 귀갓길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실제로 체험해 보니 안심되고 많은 경찰관이 길에서 수고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이런 시설물이 더욱 많아져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 2016-09-2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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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소비자원 견학
- 맹위를 떨치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는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좋게 해 준다. 그래도 아직 한낮은 무더운데 이렇게 햇볕이 쨍쨍해야 곡식도 잘 여물고 수확의 기쁨을 안겨 줄 테니 감사한 더위이다. 오늘은 정책기자단에서 한국 소비자원 견학을 하기로 한 날이다. 오전에 잠시 빗방울이 흩뿌렸지만, 곧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나들이 가는 것처럼 들뜨고 즐거웠다. 한국 소비자원은 원래 용산에 있다가 2년 전 충북 혁신도시인 음성으로 이전하였다. 20여 명의 정책 기자와 담당자가 서울역에서 모여 대형버스에 올라 목적지로 가는데 여러 기자님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소풍 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 필자도 덩달아 흐뭇했다. 2시간여 달려 도착한 혁신도시 음성의 소비자원 청사가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소비자원의 명칭은 원래 소비자보호원이었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를 보호하는 차원이 아닌 큰 목적을 가지고 있어 보호라는 단어를 제외했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국내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입장인 각종 문제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점차 강해졌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주요 정책과제의 하나로 채택해 1980년 1월 소비자보호제도를 마련하고 소비자 보호 활동을 법률로 보장하기 위해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자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전담기관이 없어 소비자는 여전히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는데 이에 정부는 소비자 보호법을 개정하여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설립근거를 마련했다. 한국 소비자원은 소비자 권익향상을 위해 소비자 정책연구, 거래 및 안전조사, 시험검사, 피해 구제 등 소비자 정책 시행기관으로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늘 정책기자단에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는 팁으로 명절을 대비한 식품안전 및 국내, 국외 여행 피해 예방 정보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추석 연휴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이 급증하는데 여행상품에 대한 많은 소비자 불만과 피해가 신고 되고 있다 한다. 필자도 10월 중 일본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어린 손녀, 손자와 함께하기 때문에 패키지로 가긴 어려워 자유 여행을 하기로 했다. 물론 아들 며느리가 알아서 예약도 하고 계획도 짜겠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해외여행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체크해 보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식품안전은 매우 중요한 일상이므로 관심이 컸다. 먼저 불량식품의 위해 정보를 수집한 후 실태조사를 하고 시험검사국에서 안전성 여부를 실험하고 위해정보를 평가한 후 정부에 건의해서 리콜 권고와 사업자 시정, 안전경보까지 여러 단계로 소비자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얼마 전 큰 이슈로 떠올랐던 가짜 백수오 사건이나 혼합 음료를 어린이 키 성장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허위 과대 광고한 업체를 적발하여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의 설립목적은 소비자 권익 증진 시책의 효과적인 추진이고 소비자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미션을 가졌다.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는 소비자 전문기관으로 핵심가치는 소비자 중심 신뢰와 소통, 미래지향을 들고 있다. 이곳엔 생활용품 평가실, 기능성 의류 평가실, 일반 실험실과 특수 실험실 등 여러 곳이 있었는데 보안유지가 필요하다는 특수실험실의 견학이 흥미로웠다. 흔히 볼 수 없는 특수 마네킹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의류를 실험하고 있었다. 실제로 요즘 기능성 의류가 매우 인기가 있다. 그런 만큼 가격도 엄청 비싸다. 특수 실험실에서는 상품의 땀 흡수와 배출 등 특수기능에 대한 검사를 실행하여 품질 비교 후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고가의 대기업 제품보다 중소기업제품의 기능이 더 좋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현명한 소비를 해야 하지만 상품으로 인해 혹시 억울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소비자원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안심된다. 소비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소비에 대한 유용한 정보와 함께 나들이 같은 즐거운 견학을 마쳤다.
- 2016-09-19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