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활동을 통한 고령사회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 2023 실버문화포럼에서 고령자 다양한 문화적 욕구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포럼에 모인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 인구로 편입되면서 욕구가 다양해졌다면서 이들의 특성에 맞춘 문화 프로그램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주최하고,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실버문화포럼 ‘실버 두 잇! 꽃대를 꿈꾸며’가 27일 서울 마리나 행사장에서 진행됐다.
포럼 사회는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가 맡아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개회사에서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은 “인구의 32.6%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는데, 노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이미지가 있어 ‘실버’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영-올드(young-old) 세대로 살아가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해본다. 꽃대가 되어 꽃을 잘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면 도리어 인정받고 존경받는 노년 생활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이번 포럼을 통해 실버 세대의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포럼의 시작을 알렸다.
김종훈 이투데이피엔씨 대표 역시 개회사를 통해 “인류학자들이 평균수명을 120세로 전망한다는 건 상당수가 130세까지도 살 것이라는 의미로 노년기의 신체나이도 젊어지고 있다. 실버 세대를 노인이 아니라 이제는 인생 2막을 꿈꾸고 가꾸는 ‘후기청년’ 세대로 봐야 한다”면서 “이번 포럼에는 세대 간 벽을 허물고 꿈과 문화, 세대를 잇고 엮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제는 후기청년이 된 실버세대가 꼰대가 아니라 청년들이 피울 꽃을 받쳐줄 꽃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응원했다.
문화 경험이 활기찬 노년 만들어
김태웅 회장과 김종훈 대표의 축사에 이어 기조강연과 3명의 연사 강연이 이어졌다. 기조강연을 맡은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는 ‘100세 시대 건강하고 활동적 노년을 위한 문화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말했다.
박영란 교수는 “최근 노화를 이야기할 때 ‘창조적 노화’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노화를 본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어 창의적 활동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질병 예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노년기 문화적 활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국내외의 다양한 고령자 문화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박 교수는 “10년 안에 인구 절반이 50대가 된다는 것이 현실이고 향후 문화 활동에 대한 욕구나 수요가 폭발할 텐데 이를 수용할 인프라가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할 일이 많다. 100세 시대에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문화적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건강한 고령자뿐 아니라 몸이 아픈 고령자도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내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확실한 것은 무엇보다 다양한 베이비부머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양한 문화 활동이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에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대상 세분화 전략을 통한 실버 문화정책의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노인 문화 정책이 어느 시점까지 와 있으며, 해당 정책 수혜자인 고령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 강연이었다.
윤소영 박사는 “우리나라 고령자의 문화·여가 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은 수혜자인 고령자를 문화를 향유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서 기조강연에서 박영란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령자도 문화적 생산자일 수 있다. 따라서 고령화 사회에서 문화 정책은 장기적으로 수혜자가 원하는 방식 또는 그들의 잠재적 욕구를 끌어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60세에 갑작스럽게 이전에 해오지 않던 것을 새롭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내 몸에 문화 나이테를 새겨야 한다. 일 경력뿐 아니라 레저 경력도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생애주기에서 후반기에 들어섰을 때 여가 경력과 축적된 문화 자본이 발현된다. 중요한 건 문화적 경험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고령층을 세분화하고 문화 지원 전략도 세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문화여가 산업을 통해 발견한 베이비부머의 문화적 욕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준엽 대표는 “먼저 액티브 시니어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액티브 시니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만 떠올리지만, 시장에서의 액티브 시니어는 좀 달랐다. 시니어에게 여가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이를 누군가 도와준다면 크든 작든 지불 의사가 있는 사람’이 액티브 시니어라고 본다”면서 “이들의 문화적 욕구는 다른 세대와 다르지 않다. 잊지 못할 즐거운 경험을 선사 받는 것이다. 이들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잠재적 욕구도 정말 크다. 전국에 500개 정도의 문화 인프라가 있는데 한 달에 수용 가능한 시니어는 4만 명이 채 안 된다. 1500만 명이 넘는 시니어 인구 중 오프라인에서 여가를 즐기고 싶은 이들은 10% 남짓으로 약 15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50대 이상 시니어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욕구는 높으나 그것을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문화 공급자들은 정해진 틀 안에서 여가를 제안하고 있다. 트렌드를 잘 읽고 보여주는 OTT처럼 문화 공급자들도 시니어의 경험을 넘어서 접근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소영 과천문화원 팀장은 ‘실버 두 잇! 우리는 꽃대 현장 사례’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유소영 팀장은 운영하고 있는 ‘경험 공유 학교’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했다. 유 팀장은 “딴짓하기 워크숍, 서로의 이슈를 들어보는 이슈 워크숍, 나비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마을 잡화 활동, 낙서 예술 학교 등 프로젝트 5개를 운영하면서 어르신들은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마을 잡화 활동으로 지역 곳곳에서 설문조사를 다니던 한 어르신은 실버기자단에 들어갔다더라”면서 “이렇게 꽃대가 될 어르신들은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좋은 에너지를 내는 것 같다. 지역 활동가, 청년 활동가, 컨설턴트 선생님, 한국문화원연합회, 과천문화원 등이 경험을 공유할 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 같다”며 고령자의 문화 활동은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고령자의 문화적 취향은 굉장히 다양하고 이를 반영할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65세 이상 노인이라고 해서 한 집단으로 묶어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도, 사는 방식도, 사는 사람도 다 다른 다양한 개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여가 프로그램이나 지원, 정책 등이 이들의 다양성을 세분화해서 반영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가사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중년 여성에게는 명절증후군과 갱년기 증상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명절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갱년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여성 갱년기에 대한 궁금증을 김영선 경희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여성 갱년기는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 기능이 감소하면서 폐경과 관련된 신체적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를 말하며, 폐경 전기와 후기를 모두 포괄한다. 대개 1년간 생리가 없을 때 폐경으로 진단한다. 폐경은 주로 50세 전후에 발생한다. 갱년기는 평균 4~7년 정도다.
여성 갱년기 증상에는 안면홍조, 빈맥, 발한 등이 있다. 급성 여성 호르몬 결핍이 원인이다.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감퇴,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있을 때 증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
갱년기는 모두가 겪는 증상이라며 고통을 참는 경우가 많지만, 의료기관을 찾아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 행복한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다.
Q. 잘 알려진 증상 외에 갱년기에 나타나는 특이 증상에는 무엇이 있나요?
A. 갱년기 여성은 여성 호르몬, 즉 에스트로겐 감소로 지방 분해 능력이 떨어져 복부 비만이 2배 이상 증가합니다. 또한 비뇨생식기 위축으로 질 건조증과 가려움증, 성교통과 배뇨통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골 손실로 인한 골감소증 및 골다공증도 유발됩니다. 그 외에 두통, 성욕 감소 등 폐경증후군 증상이 특이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Q. 폐경은 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그리고 늦을수록 좋을까요?
폐경이라는 것은 난소 기능의 소실로 인해 월경이 영구적으로 중지되는 상태일 뿐, 노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폐경이 되는 나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며, 사회경제적 위치나 초경 연령, 이전 배란된 난포 수 등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50대가 되기 전 생리가 멈추는 것을 조기 폐경이라고 하는데, 폐경 이후 발생하는 여성 질환에 더욱 잘 노출될 수 있습니다. 폐경기는 너무 늦게 나타나도 좋지 않습니다. 늦은 폐경은 55세가 지나서까지 생리를 계속 하는 경우인데, 자궁 내 질환이 있어 환경이 좋지 않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리가 지연되거나 지속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로 인해 빈혈 및 피로감, 무기력, 신체 노화 등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늦은 폐경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Q. 갱년기 우울증 원인과 대처 방법, 극복 방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의 사회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했으나, 최근에는 연구 결과를 통해 신경생물학적 원인이 갱년기 우울증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폐경을 전후해 내분비계의 변화는 대뇌의 전두엽과 기저핵에 산재된 신경세포군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합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사람들과 여가 활동 및 친교 활동을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나 마음에 쌓이는 화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햇볕을 쬐면서 산책, 경보, 자전거, 스트레칭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해 여성 호르몬제를 많이 복용하는데, 의학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인가요?
A. 여성 호르몬 요법은 여러 가지 폐경 증상의 완화 및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안면홍조와 야간 식은땀, 비뇨 생식기계 위축과 관련된 증상을 줄이고, 감정적인 증상들(우울증, 불면증, 신경질, 주의산만)의 호전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욕 감소 증상이 호전되고, 골다공증 예방 및 치료에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의사와 상담한 후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치료와 마찬가지로 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여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치료를 하기 전에 일반적인 신체검사와 산부인과 검사를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작하면 됩니다.
Q.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또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A. 갱년기 호르몬 요법 중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 복합 요법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유방암 발생이 증가할 수 있으나, 에스트로겐 단독 요법은 사용 후 7년간 유방암의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다만 호르몬 요법은 허혈성 뇌졸중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60세 이상의 폐경 여성에게 호르몬 요법은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호르몬 요법은 폐경 후 일찍 시작할 것을 권장합니다.
Q. 갱년기 증상 예방에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칼슘과 비타민 D를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메가6 지방산의 일종인 감마리놀렌산 또한 혈액순환과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을 주어 갱년기로 인한 열감과 손발 저림, 발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두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뼈 형성을 촉진하고 골밀도를 증가시킵니다. 비타민 B군은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시켜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도 가능합니다. 마그네슘은 신경 이완 작용을 통해 기분 변화와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인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면서 중년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다. 혼자 살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외롭고 고립되기 쉽다는 단점이 따른다. 고독사 증가 문제까지 이어진다. 이와 같은 중년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공동체(共同體, Community) 활동’이 거론된다.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는 의미다. 모임 회원이 되어 활동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이며, 사람들과 공동체로 모여 살 수도 있다.
경기도 용인시 둔전역 인근에는 ‘지구별작은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이란 일반 공공도서관에 비해 작은 규모의 도서관을 말하는데,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9월 12일 이곳에서 1인 가구 공동체 모임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방문했다. 아파트 1층의 주거 공간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책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고 정감이 느껴진다.
모임 시간인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총 9명이 모였다. 이들의 이름은 ‘지구별 시민’. 전원이 도착하자 금세 음식상이 차려졌다. 어느 누구도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한 적이 없는데, 모두 자발적으로 음식을 마련해온 덕이다. 치킨, 탕수육, 만두부터 땅콩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푸니 웃음꽃이 피어났다. 멤버 박정임 씨는 “우리 아들 결혼한다”면서 청첩장을 돌리기도 했다.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이날 모임의 목적인 가방 만들기에 열중했다. 글자 또는 그림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가방을 만드는 것.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이 탄생하니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 재미를 느낀 듯했다.
지구별 시민의 탄생과 성장기
“혼자 살면 재미없잖아요. 같이 살아야 재밌지!” 김영욱 관장은 지구별작은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이유를 ‘노후 계획’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정서적인 측면을 채우는 노후 계획이다. 남편과 둘이 살고 있는 김 관장은 “노후를 같이 보낼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도서관을 만들었다.
1인 가구 공동체 지구별 시민 모임은 2021년 시작됐다. 당시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는 중장년층(4060) 1인 가구의 혼밥 개선과 건강한 식생활 문화를 위해 ‘1인 가구 공동체 공동부엌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마침 지역에 1인 가구가 많다고 느낀 김영욱 관장이 지원사업을 신청하면서 지구별 시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지원은 끊겼지만 구성원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 용인시 처인구는 원래 논밭이 많은 지역이었는데, 아파트가 많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인구가 증가했어요. 그중에서도 1인 가구가 많았죠. 외지이긴 하지만 서울 강남에서 좌석버스를 타면 1시간이 안 걸린다는 특수성 때문 같아요. 새로운 곳에서 1인 가구가 모이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모임을 주최했죠.”
구성원 중에는 50대가 가장 많고, 미혼인 1인 가구는 없다고 한다. 남편 또는 아내와 사별했거나 떨어져 사는 가운데, 자녀가 독립해 혼자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모임은 보통 일요일 오후에 가진다.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평일에는 일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지만, 주말에는 혼자 있으면 무료해지기 마련. 어딘가 여행을 가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도 혼자 하기에는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구별 시민은 활동을 함께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같이 요리하고 밥 먹는 것 위주로 모임을 진행했어요. 그다음에는 다 같이 여행을 갔죠. 어떤 분이 용인을 잘 모르는 데다 혼자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난다고 해서 용인 곳곳을 다녀보기로 한 거예요. 민속촌, 한택식물원, 용인대장금파크 등을 갔는데, 다들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남성분들이 들어오시면서 문화활동을 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취미와 교육활동을 병행하게 됐고, 지금의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임이 갖춰졌습니다.”
현재 지구별 시민 모임에 남성은 최원혁 모임 대표를 포함해 3명뿐이다. 중년 남성은 실직과 사업 실패 등으로 인해 외로움을 크게 느낀다. 커뮤니티 활동의 필요성을 알지만 부끄러움에 모임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신입 회원인 60대 변용수 씨는 당구장 사장의 추천으로 모임에 들어왔다. 변용수 씨는 “사람들과 모여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참 좋다”면서, 외로운 중년 남성들이 용기 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직접 느낀 공동체 활동의 장점
1인 가구에게 공동체 활동은 정말 필요하고 도움이 될까. 최원혁 모임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1인 가구의 고독사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공동체 활동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망 형성은 문제를 방지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제가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집에 와서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어요. 그때 모임 분들이 119도 불러주시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기억도 있어요. 사실 혼자 살면 배달음식 아니고서야 밥 챙겨 먹기가 힘들잖아요. 그때 저희 집 문 앞에 음식을 놓아주신 분이 계셨죠. 덕분에 일주일을 견딜 수 있었어요.”
모임에 참석한 지 2년 차가 됐다는 주선자 씨는 식구의 의미를 되새긴다고 했다. 그는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지 않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 정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김영욱 관장은 1인 가구 공동체 모임을 ‘가족의 확대’라고 표현했다.
“희로애락도 함께 나누고, 혼자라면 할 수 없는 경험도 같이 해보고. 이게 공동체의 좋은 점이죠. 저는 혈연관계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마을에서 소통하고, 서로 돌봄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새로운 가족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김영욱 관장은 지구별작은도서관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된다면 더욱 좋고요. 누구든지, 언제든지 놀러오세요!”
70대 중반 여성이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불면, 식욕부진을 호소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다고 딸이 대신 말을 했다. 환자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듯 멀거니 진료실 바닥만 내려다보신다. 그에 비해 딸은 약간 격앙돼 있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에 걱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첫 질문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냐는 것이었다. 딸은 올해 초 그러니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질문으로 어떤 병원을 방문했고, 또 어떤 검사들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딸이 대신 답을 한다. 어지럼증 때문에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도 했고, 혹시 암일까 걱정돼 위내시경에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병이 진단됐건, 그렇지 않건 병원을 방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약 처방이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다음 질문은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왜 1년여 전부터 이런 우울감과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병을 겪게 되신 건지 천천히 파헤쳐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는 현재 그럼 누구랑 함께 지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내 높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딸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혼자 지내신다고 했다. 작년 11월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쭉 혼자 지내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환자는 거의 20여 년간 뇌졸중으로 누워지내는 남편을 돌봐왔다. 작년 말 남편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의 역할 역시 사라져버렸다. 마치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제 자신의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 이제 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환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혼자 지내면서 언제부턴가 식사를 차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레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딸은 당황해했다. 형제는 3남매지만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딸이 말했다.
“그냥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
입원해서 MRI든 CT든 다시 모든 검사를 다 받더라도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구태여 불과 몇 달 전에 한 그 검사들을 다시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 개월간 여러 병원을 함께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얘길 한 의사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드시나요? 목 안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데 뭘 차려 먹습니까. (딸을 가리키며) 가끔 이 애가 와서 같이 먹을 때나 밥술이 넘어가지...”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고 단 둘만 남은 노부부 중 먼저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의 삶은 참 고독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와서 다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 딸도 알고 있다. 선택지는 결국 노인요양시설이라는 것을. 그러나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학병원 진료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이다. 누굴 비난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의 20여 년째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 빈곤율 또한 독보적인 1위다.
우리는 젊은 날 자식들의 사교육과 재테크를 위한 주식, 부동산에 온통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가 늙었을 때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과 공부 그리고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다들 막연히 은퇴 후에는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는 뻔한 말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노년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낮은 출산율만큼이나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병원으로 달려오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이 듦을 받아들일 때 얻는 것들 나카무라 쓰네코, 오쿠다 히로미·북폴리오
90세까지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한 나카무라 쓰네코와 현역 정신과 의사인 50대 오쿠다 히로미는 불안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방법을 대화 형식으로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21세기북스
테슬라, 스페이스X, 트위터 등의 CEO 일론 머스크의 공식 전기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머스크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발학교 권택환의 맨발혁명 권택환·EBS BOOKS
대한민국 맨발학교 교장인 저자는 10년의 노하우를 풀어냈다. 맨발 걷기로 건강이 좋아지는 원리를 소개하며, 누구나 쉽게 맨발 걷기를 실천하도록 돕는다.
50, 이제 결혼합니다 백지성·오르골
일과 공부로 인해 50세에 결혼한 저자가 전하는 ‘만혼 에세이’다. 결혼의 본질 및 독신 문제, 중년 이후 행복한 삶과 결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았다.
‘주식계의 개그맨’ 박민수(50) 씨는 순수한 광기를 지닌 유쾌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 땅의 아버지다. 쌍둥이 아들을 위해 은퇴도 미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절실하게 하는 중이다.
여의도 증권 유관기관 24년 차 직장인이자 주식투자 1타 강사. 샌드타이거샤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구독자 225만 명을 자랑하는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인지도까지 쌓아 올린 사나이. 박민수 씨와 마주하기 전에는 능력 있는 직장인의 흔한 성공 스토리로 보였다. 주식투자에 성공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린 뒤 실타래 풀리듯 각종 섭외 대상이 되는, 우리네에겐 무척 어렵지만 그 동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50대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평소에 저는 굉장히 침착해요.”
차분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의외였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이라고 여겼던 영역마다 박민수 씨의 의도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서, 쓸모를 찾아서
직장인은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박민수 씨도 그렇다. ‘쓸모’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그에게 나이 들어 쓸모없어질 수 있다는 건 실체적 불안 그 이상이었다. “쉰 살이 되기 6~7년 전부터 회사에서의 내 쓸모가 줄어들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회사 밖에서의 쓸모가 비자발적으로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요. 쉽게 말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언젠가 생길 일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릴까’ 생각하면 엄청나게 절실해지는 거죠. 굶기면 안 되잖아요?”
박민수 씨는 고3처럼 살아가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식투자 뉴스를 정리해서 네이버 카페에 올리고, 직장으로 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업무를 본다. 운동 삼아 가급적 목동 집까지 1시간 30여 분 걸어서 퇴근하고,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쓰기 등 자기계발을 한다. 라디오나 유튜브 촬영이 있을 때면 꼬박 며칠을 준비에 매달리기도 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루틴에 변함은 없다. “절실함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가족이 있잖아요. 책임감인지 의무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에너지를 올려줘요.”
40대 초반까지 그는 쓸모를 회사 안에서만 찾았다. 밤샘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술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회식 자리는 꼭 참석했다. 그렇게 ‘에이스’라 불리며 승진이 동기보다 2년 이상 빨랐지만, 몸은 정직했다.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2018년에 협심증으로 쓰러졌어요. 그때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큰일 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당시 쌍둥이가 초등학생이었어요. 중환자실에 누워서 본 두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내가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야 할 게 있더라고요.”
박민수 씨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른여섯에 “넌 뭘 잘하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불현듯 ‘주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후 점심도 굶어가며 주식 공부에 매달려 7년 만에 종잣돈 3000만 원을 8억 원으로 불렸다. 그 노하우를 아이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물려받을 텐데, 아직 어리잖아요. 쓸데없는 짓 해서 다 까먹을까 봐 걱정되는 거죠. 아빠만의 투자 방법과 원칙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루에 3시간 자면서 3주 동안 쓰니 책 한 권 분량이 됐어요.”
2018년 9월 출간돼 현재까지 10만 부 이상 팔린 ‘주식 공부 5일 완성’은 이렇게 완성됐다. “인쇄소 가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했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내용이 좋으니까 책을 내보라’고요. 그래서 진짜 투고를 해봤어요.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임프린트(한 출판사에 속한 별도의 하위 브랜드)에 원고가 흘러갔나 봐요. 마침 대표가 증권사 경험이 있는 분이라 가치를 알아봤고 출간이 이뤄졌어요.”
책은 2020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형 재테크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그 계기는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됐다. “제가 먼저 출연 요청을 했습니다. 답변은 2개월 후에 받았어요. 촬영 후 업로드까지 다시 2개월이 걸렸고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 소위 말해 빵 터졌죠. 인생 역전이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 재테크 유튜브 채널 ‘김작가TV’ 출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문의했고, 정중히 고사하자 재차 어필해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 6개월 사이 책 7만여 권이 팔렸다.
최고민수, 침착맨을 만나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의외의 보상을 줬다. ‘침착맨’ 이말년 작가와의 인연이다. 박민수 씨는 2021년 초 MBC 웹예능 전문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기획 시리즈 ‘말년을 행복하게’에 일일 주식투자 강사로 출연하며 ‘침착맨’과 안면을 텄다. ‘최고민수’라는 애칭도 그때 생겼다. ‘주식계 박찬호’라는 설명이 붙을 만큼 지치지 않는 열강에 ‘침착맨’이 “최고네요, 선생님. 닉네임도 바꾸세요, 최고민수”라고 하면서다.
인연은 ‘침착맨’ 채널까지 이어졌다. 7번 정도 출연했고, 그중 한 콘텐츠는 100만 뷰가 넘었다. “본인 채널에 와서 주식 강의를 1~2시간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수를 했어요. 주식 강사로 섭외된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거예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등등 걷잡을 수 없이 말이 새버렸어요. 6시간 방송을 했는데 정작 주식 강의는 20~30분에 불과했죠. 집에 가면서 무지 걱정했어요.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신선하게 봐주셨어요.”
콘텐츠에 대한 열의와 쉬지 않는 입은 이제 박민수 씨의 캐릭터가 됐다. 경제사 특강, 주식 종목 고르는 10단계 특강, 주식 ETF 투자법 7단계 특강 등 평균 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방송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10시간 42분짜리 일본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는 그 정수로 꼽힌다. 박민수 씨는 한시도 말을 쉬지 않았고, 구독자는 그 모습을 오롯이 즐겼다. 영상은 90만 뷰를 기록 중이다.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로 인지도가 굉장히 올라갔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 가는 사람이에요. 말했잖아요, 저는 ‘쓸모’가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출연 전 일주일 정도 준비에 매달려요. 기타큐슈 여행도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실은 항일 투어로 계획한 거라 일본 역사까지 속속들이 공부했죠. 내 밥값을 다하기 위해, 내 쓸모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앞으로 3년, 은퇴 후는 내 마음대로
박민수 씨는 3년 뒤 은퇴를 꿈꾸고 있다. 그때가 되면 가장의 부담을 다소 내려놓아도 괜찮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3년 뒤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생각이에요. 아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면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은 월급이 소중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은퇴하면 2년 정도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다른 일을 할 텐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 준비를 잘 해야죠.”
앞으로 3년, 그는 망가질 준비가 돼 있다. 내성적이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는 개인 성향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예 스스로를 ‘주식계 개그맨’으로 포지셔닝할 정도다. “다들 그래요. 얼굴 내놓고는 못 하겠다고요. 그런데 가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절실하면 부끄러운 거 없습니다. 일단 하는 거예요. 은퇴를 꿈꾼다면 더욱더요.”
은퇴 후 박민수 씨는 ‘침착맨’ 같은 삶을 꿈꾼다. 예능 PD를 꿈꾸며 방송국 최종 면접까지 본 경험이 있는 그다. 제2의 인생은 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나날로 채워지길 바라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최고민수의 중2병’. 박민수 씨는 3년 뒤 유쾌한 방황을 예고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여행 유튜버예요. 지난해 빠니보틀(구독자 190만 명의 여행 유튜버)님도 만났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그때는 진짜 내 맘대로 막 삐뚤어져보고 싶어요.”
‘이게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몸 안에 심각한 병이 들이닥쳐 횡포를 부리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정규원(54, 백민구절초연구소 대표)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갖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조만간 죽음이 방문할 듯 몸의 통증이 자심했는데도 말이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과 궁리를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이라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로 한 거다. 시골의 자연환경이 괴로운 육체는 물론 덩달아 저하된 정신까지 끌어올려 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규원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한 건 2010년, 41세의 한창 나이 때였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시즌이었으니 정리가 쉬웠으랴. 만족스럽던 직업(의류 관련 액세서리 사업)을 일거에 접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게다가 그의 곁엔 살뜰한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자식 둘이 있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었다. 과연 아내가 귀농에 동의할지,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하고 귀농할 경우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다. 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혼자 외진 산속에 들어가 쑥이나 고사리처럼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며 병부터 다스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만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귀농을 선창할 경우 일단 반기를 든다. 매우 영민한 종족인 아내들은 날이면 날마다 풀을 뽑다가 뱀을 만나 까무러칠 가능성이 농후한 귀농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원의 아내는 시골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마도 아내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민만큼이나 어려운 역경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귀농이다. 하물며 남편만의 단독 귀농이라면? 이는 가정의 불안정을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경우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정규원의 아내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해 전향적인 판단을 했을 테다. 아내의 대범한 태도에 힘을 얻은 정규원은 마침내 귀농 거사를 착수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를 대동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귀농한 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이다. 이왕이면 아주 낯선 객지보다 연고가 좀 있는 곳이 정착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점찍은 곳이다. 거처는 농촌 마을이 아닌 면 소재지에 마련했다. 초등생 아이들의 등하교 편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귀농 초기엔 건강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텃밭 농사를 통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었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명상센터에 나가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농사에 대한 구상도 많이 했다. 논을 사 벼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쌀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먹자는 아내의 의견에 공감해서였다.”
귀농 전에 미리 받아둔 귀농교육이나 농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나?
“서울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한 귀농교육에 관심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 의왕에 텃밭을 마련해 작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경험치에 불과했다. 사실 계획 없이 막연한 귀농을 한 셈이었다. 건강 문제가 화급해 사전 준비를 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농업만큼 만만치 않은 직업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섣불리 농사에 뛰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농사로 가족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농업에 매력을 느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줄기 동경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농부로서 긍정적인 풍모를 지녔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귀농교육은 귀농 이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를테면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친환경 농업을 기본 방향으로 정한 바 있어 관련 공부를 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등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를 느껴 E-비즈니스 교육도 받아두었다.”
일련의 농업교육을 이수한 뒤 비로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나? 아니면 몸 치유에 치중한 시간이 더 많았나?
“치유와 농사를 병행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도 서서히 좋아졌고, 좋아지는 건강 상태에 따라 농사에 대한 의욕도 상승했으니까. 2013년엔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멧돼지들이 농장을 초토화하기도
정규원이 선택한 주 작목은 구절초다. 구절초를 재배,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그는 산속에 있는 4000평 규모의 구절초 농장을 운영한다. 바야흐로 유능한 구절초 농부로 부상하고 있다. 출발은 미미하고 미묘했다. 할머니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구절초 꽃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200평 남짓한 작은 땅에 구절초를 심은 게 구절초와 인연을 맺은 계기라는 게 아닌가. 일종의 감성적 충동으로 시험 재배 삼아 구절초를 심어봤을 뿐인데 이게 향후의 길을 환하게 열어줬다.
“남에게 빌린 200평짜리 작은 밭에서 거둔 구절초로 조청을 만들어봤는데 50인분 밥솥 하나 분량의 조청이 나왔다. 판매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조청 품질이 좋다며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홍보도 해주었고.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판매 효과까지 거둔 뒤엔 서서히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자연스럽게 구절초 농사에 본격 입문한 셈이다.”
조청만 생산하는 건 아니겠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구절초꽃차, 모종, 체험 상품인 에코화분, 그리고 구절초블랙이라 이름 붙인 농축액 등을 생산한다. 주력 상품은 구절초블랙이다. 이건 유기농 구절초 함량 97%에 달하는 제품으로 나름 야심을 가지고 개발했다. 현재 상표출원 절차를 밟고 있다. 소비자의 80% 이상은 구절초 제품을 약용 목적으로 구입한다. 구절초블랙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구절초 농사 전체 과정 가운데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구절초 역시 제초 작업부터 뭐 하나 손쉬운 게 없다. 재배 기술 습득은 비교적 용이하다. 문제는 날씨 변동이다. 예상하지 못한 폭우와 긴 장마엔 구절초가 맥을 못 춘다. 과도한 습기에 약한 작물이니까. 배수시설을 완비하고 밭에 경사도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도 필요하다.”
흔히 병충해 방제는 농약에 의존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유기농업은 농약 없는 농사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생태환경 유지에 공을 들인다. 난 구절초 농장 복판에 억새섬이라 부르는 작은 숲을 조성해 자연생태와 평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 작은 숲은 병충해의 기습을 완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마귀 알집도 활용한다. 미리 채집한 사마귀 알집을 봄철에 방사하는 것인데, 부화된 사마귀들이 해충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사마귀들이 농장을 지켜준다. 그런데 난해한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멧돼지가 구절초도 먹나?
“구절초를 먹는 건 아니고 땅속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먹기 위해 밭을 아예 농부처럼 갈아엎는다. 한번은 멧돼지 군단이 몰려와 농장을 투철하게 초토화했다. 징을 쳐대고, 포수를 불렀지만 아무 소용없더라. 포수들이 야간 매복을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공격은 한 달간 이어졌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구절초 향수를 개발하고 싶어
농사로 긍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안락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죽하면 귀농을 고행에 견주랴. 정규원은 비지땀 이상의 피땀을 쏟았다. 덕분에 순항을 거듭했다.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알려진 판로 문제도 길을 잘 찾아 해결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관계를 맺어 상품을 납품, 꾸준히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 세상에서 익힌 처신과 경험을 슬기롭게 제련해 귀농 생활의 재료로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 안정적인 행보의 거름이 됐다. 그의 언사는 나직하고 다소 어눌하다. 반면 내부엔 뭔가 강철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기심은 줄이고 이타적 선의를 키워 나아가는 게 삶의 정수를 맛보는 길이라는 신념을 육화한 인간 유형이랄까. 그는 사실상 신념을 밀어붙이며 당찬 귀농 생활을 해왔다. 2013년에 결성한 문화적 농업 공동체인 유기농협동조합에 이어, 2017년엔 경제 공동체인 마을기업 ‘백민구절초연구소’를 만들어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문제는? 여전히 아픈 몸을 고독하게 끌어안고 농장에서 뛰나?
“실로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몸 하나 살려보자고 귀농을 했겠는가? 몸이 추락하자 온갖 회의가 몰려들기도 했다. 이 지경으로 몸을 망쳐놓다니, 난 패배자야! 그런 넋두리가 잦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2017년에 이르러선 병의 늪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된 걸 알았다. 따라서 마을기업 결성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랐다지? 뒷바라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계 형편은 어떤가?
“서울에 있던 집을 판 자금의 절반쯤은 귀농 초기에 다 까먹었다.(웃음) 농업으로 소득을 거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꾸준히 소득이 늘고 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인은 당신의 농사에 어떤 식으로 조력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일이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내이고.”
만약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귀농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잠깐 생각하다가) 일을 좀 줄여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농 방식을 모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내겐 아직 꿈이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과욕과 과속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농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확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구절초 가공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싶고, 구절초의 아찔한 향을 재료로 한 향수 개발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 매너리즘 없는 정신이 그의 돛을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정규원이 주는 귀농 Tip
•집과 농지를 서둘러 구입할 것 없다. 평생의 삶터로 삼을 경우엔 더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남의 농지를 빌려 활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를 크게 설정하는 건 금물이다. 내 농사는 작게, 그리고 남의 일도 도와주면서 농사 물정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농업 교육기관에서 만난 귀농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결국은 귀농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농사만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을 살린 일거리를 만들어 수입을 보완하자.
•구절초 농사에 뜻이 있을 경우 5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판로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필수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로를 모색하자.
신탁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지만, 개념·원리를 깨우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 정도로 여기곤 한다. 고령화와 함께 구원투수로 떠오른 신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신탁 안내서를 시작한다.
Q 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은 자산관리부터 증여·상속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유연한’ 금융 서비스다. 통상적으로 Trust, 즉 신뢰·신임 관계를 바탕으로 ‘믿고 맡기는’ 상품으로 설명된다. 신관식 세무사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신탁을 하면 소유권이 수탁자(신탁회사)로 바뀝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면 명의가 바뀌고, 주식을 신탁하면 주주명부의 이름이 바뀌는 식입니다. 즉,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굉장히 특이하죠? 이때 위탁자(고객)는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관리, 처분, 운용, 개발 등의 임무를 수탁자에게 부여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요. 맡고 맡긴다기보다 대신 해주라고 임무를 주는 겁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이유는?
신탁은 자익신탁과 타익신탁으로 나뉜다. 위탁자와 수익자가 같으면 자익신탁, 다르면 타익신탁이다. 원래 신탁은 투자 목적인 자익신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고령 인구가 늘면서 생전쪾사후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자익신탁과 함께 타익신탁도 주목받고 있다.
신 세무사가 종전 질문에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라고 한 부분에 집중해보면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맡길 이유가 없죠. 그런데 나이 들면서 몸이나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아 자산관리를 못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치매가 그렇죠. 내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더라도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도록 할 수 있고, 사망했을 때는 누구에게 남은 자산을 줄 것인지까지 설정할 수 있는 상품이 바로 신탁입니다.”
Q 신탁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 아닌가?
대표적인 오해다. 신 세무사는 “거의 대부분의 고객이 일반 서민”이라며 펄쩍 뛰었다. 서울 소재 30평형대 똘똘한 아파트 한 채만 소유해도 신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거의 10억 원이 넘습니다. 즉 상속세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상속세뿐만 아닙니다.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럼 자연히 상속 시점을 고민하게 됩니다. VIP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Q 유언대용신탁, 유언장과 무엇이 다른가?
가장 대표적인 신탁인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이 없더라도 신탁계약 형태로 재산 상속이 가능하도록 한 상품이다.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정하고 사후에는 생전에 정한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상속은 위탁자 사망 사실과 수익자의 신분만 확인되면 바로 이뤄진다.
유언장으로 뜻을 전할 수도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신 세무사의 설명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자와 상속인 모두 아는 행위입니다. 유언장은 상속인이 모르지요. 유언공증을 받아도 상속인은 모릅니다. 또 유언공증은 가장 마지막에 한 것이 효력을 가집니다. 도난, 분실, 훼손 우려도 있고요. 상속인들끼리 분쟁이 잦은 이유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언장으로는 작성한 사람의 의도대로 상속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Q 유언대용신탁을 하면 유류분에서 제외되나?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재산의 가액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상속분을 법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2020년 1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1심 판결에서 유언대용신탁을 유류분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긴 하나, 아직 그 관계를 속단하긴 이르다. 신 세무사는 판단 기준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했다. “그 판결은 센세이션했습니다. 법조계는 물론 신탁업계에서도 신탁재산을 유류분에 포함한다는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는 법리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류분에서 제외될 수 있다, 없다를 아무도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신탁 상품은?
대표적으로 상조신탁, 봉안신탁 등이 있다. 상조신탁은 자산관리를 맡긴 금액 중 일부를 사망했을 때 상조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상품이고, 봉안신탁은 사후를 대비해 스스로 장지를 준비하는 상품이다. 펫신탁도 있다. 반려동물 주인이 사망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할 경우,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주인에게 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Q 신탁, 어떤 사람에게 적합한가?
신 세무사는 먼저 독신을 꼽았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상속을 본인 뜻대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했다. 쉽게 말해 ‘예쁜 자식에게 좀 더 주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뜻이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거나, 자산관리 능력이 부족해 동기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신탁이 제격이라 했다. 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했다. “일종의 리스크 헤지(위험회피) 차원입니다. 각각의 재산을, 누가, 소유권 100%로 가져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위탁자 사망 후에도 각 상속인이 문제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의 자산관리 방법으로 최근 신탁이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신탁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신탁은 고령자가 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곧 트러스트2.0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하나은행에 재직 중이던 배정식 본부장은 2010년 금융권 최초로 ‘리빙트러스트’를 론칭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유언대용신탁, 치매대비신탁, 유산정리신탁, 증여신탁, 기업승계신탁, 상조신탁, 봉안신탁 등을 선보이며 신탁 시장을 만들어왔다. 금융권에서는 그를 신탁 분야의 ‘선구자’라 부를 정도다. 배 본부장은 이제 국내 신탁 시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며 상속뿐 아니라 생애 전반을 신탁으로 관리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 왜 고령화 시대에 자산관리 방법으로 신탁이 주목받는지, 배 본부장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나의 자산관리 법인 ‘신탁’
신탁은 생전쪾사후에 필요한 다양한 영역을 관리한다. 50대가 넘어가면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부모님 의료비, 자녀 교육비, 상속, 황혼이혼 등의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완화하는 계약이 신탁이다. 배정식 본부장은 “가상의 자산관리 법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며 “같은 금액을 상속받더라도 세금 문제가 형제마다 다르기도 하고 공통으로 마련해야 하는 비용도 있는데,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중립적인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도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은 2006년에 신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유언대용신탁이 먼저 도입됐고, 신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사후에 자녀를 위해 자산이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거나 몸이 아픈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가 부재할 경우 사후에 자녀에게 정해진 목적으로 자산이 쓰이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고령화 시대가 오면서 노인성 질환이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치매와 같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질환이 늘면서, 고령자의 자산을 두고 가족끼리 다툼이 벌어지거나 치매 환자의 자산을 가로채는 일 등이 생겼다. 이때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신탁이다.
“신탁의 본질은 계약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산운용을 맡기는 자산관리 시스템인데요. 스스로 자산관리를 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여러 방법을 계약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다가, 사망하면 남은 재산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상속을 명시할 수도 있고, 사망 후 자산이 어디에 쓰일지도 정해둘 수 있습니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생전쪾사후 자산관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신탁이 활성화된 해외 사례를 보면서 신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애주기 따른 맞춤형 서비스
미국에는 생명보험신탁, 연금양도신탁, 기부와 상속을 설정할 수 있는 신탁 CRT, CLT 등의 신탁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 신탁은 아직까지 유언대용신탁과 증여신탁이라는 큰 범위 안에서 서비스가 파생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 체계로는 증여신탁의 경우 실질적인 신탁 기능을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증여신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언대용신탁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온 서비스들이다. 2010년 신탁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면서 사후에 자산의 쓰임을 설정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었다. 배정식 본부장은 신탁법 개정이 시행되기 전 법무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수탁업자(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게 맡겨 관리하고 운영하다가 사후에 ‘누구에게 주라’고 하면 유언대용신탁입니다. 치매대비신탁은 자산관리 과정에서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이라는 조건으로 자산관리 목적을 정합니다. 이때 두 가지 수요가 있었어요. 첫째, 치매에 걸리더라도 자산이 나를 위해 쓰이면 좋겠고 둘째, 사후에 원하는 이에게 상속하고 싶다는 거예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더라도 자녀에게 자산을 뺏기지 않고 병원비나 생활비 등에 사용하는 거죠. 신탁에는 이렇게 자산을 사용할 때, 물려줄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요소들을 계약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치매대비신탁이 신탁 시장에 물꼬를 터줬다. 고객들의 신탁에 대한 요구는 더 다양해졌다. 상조신탁과 봉안신탁도 그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과거에는 상조회사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다가 사후에 장례를 맡겼는데, 갑자기 여러 상조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졌다. 적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신탁으로 금융사에 자산을 맡겨두고 사망 시 상조회사에 자산이 쓰이도록 지정하기 시작한 게 상조신탁이다. 생전 자산관리부터 사후 자산관리까지 모두 맡기고 싶은 수요가 늘어난 셈이다. 사람마다 겪는 생애 이벤트가 다르지만, 개인 맞춤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초기에는 요양원에 있는 분들의 수요가 많았다면, 이제는 경도인지장애가 왔거나 몸이 안 좋은 분들이 미리 계획을 세우고자 신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신탁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관리하는 것이더라고요.”
분야별 협업이 만든 ‘원스톱 서비스’
상조신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배정식 본부장은 생전 자산관리부터 마지막 장지까지 원스톱으로 신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봉안신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55만 평 규모로 신뢰성 높은 용인공원과 협업해 봉안신탁 고객에게 할인된 금액으로 봉안당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4자 협업 신탁 원스톱 서비스도 출시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법무법인 가온, 용인공원, 하나은행과 함께 의료원에 기부하는 고객의 생애주기에 맞춰 의료, 자산관리, 장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 것. 이를 통해 기부자의 건강한 생활, 자산관리, 상속, 증여, 후견, 상조, 장지 등의 절차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배정식 본부장은 이런 분야별 협업이야말로 트러스트2.0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협업을 통해 신탁 시장이 확장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작이 모여 각 영역이 결합하면 하나의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될 겁니다. 신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 높고 안전한 영역별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죠. 앞으로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이 생길 거라고 기대합니다.”
2022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신탁업 혁신 방안 중에는 전문기관과 금융기관이 위·수탁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무법인, 시니어타운, 요양법인 등이 신탁 업무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분이 편하게 신탁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신탁이 더욱 대중화될 수 있도록 길을 닦기 시작했다. 배 본부장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신탁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신탁은 어느 시점에 맡겨야 가장 좋을까? 사실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목적으로 신탁을 활용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탁에 관심 있다면 ‘의사결정이 가능할 때’ 계약을 설정해두는 것이 유리하다.
“현재는 부모에게 상속받은 경험이 있는 40~50대가 신탁에 관심이 높습니다. 상속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신탁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60대 중후반이 넘어서면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건강이 염려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신탁을 고려해보시면 좋을 겁니다. 또 미국처럼 예비부부도 신탁에 관심 가져볼 만합니다. 결혼할 때 모아뒀던 각자의 자산을 자녀에게 쓰겠다, 혹은 부모님에게 쓰겠다는 목적을 설정해 신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추후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갈등을 줄여줄 수 있겠죠.”
꼭 자산이 많아야만 신탁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만 원으로도 신탁을 시작할 수 있고, 1억 원이 모이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식의 신탁을 설정할 수도 있다. 신탁의 핵심은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자산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자산관리 방법이기도 하다.
배 본부장은 마지막으로 “고령화 시대에 신탁은 원스톱 서비스로서 하나의 자산관리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면서 “각자의 생애 이벤트에 따라 누구나 신탁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