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티크는 세월과 함께한 흔적을 통해 멋을 발한다. 대대손손 물려받은 가보로서 또한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한 사람들 곁에서 100년, 200년의 시간을 이어간다. 취미로 앤티크 제품을 수집하기란 쉽지 않다고들 한다. 백정림(白瀞林·53) 대표는 앤티크 물건들을 모아 이고 갤러리를 열었다. 그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전에 그는 앤티크의 멋에 푹 빠졌다고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더 빛나는 ‘이고 갤러리’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엔 꽤 큰 별장촌이 숨어 있다.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을 따라 근사한 별장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 맨 위쪽에 위치한 곳이 바로 백정림 대표가 운영하는 이고(以古) 갤러리다. 이곳은 그가 20여 년간 모아온 앤티크 컬렉션을 일부 전시해 여러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개인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이고 갤러리를 차린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많아진 작품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어요. 지금 와서 수집을 그만둘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이왕에 만드는 거 상업적인 공간보다는 앤티크를 좋아하는 사람, 관심 있는 사람이 모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자 해서 하우스 갤러리 개념의 공간으로 꾸미게 됐죠.”
대문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정원에서부터 그의 앤티크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 주위로 물확, 석등, 항아리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골동품으로 정원을 꾸몄다. 통유리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거실과 부엌을 장식한 앤티크 컬렉션을 비추며 갤러리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갤러리를 마련할 장소를 찾기 위해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그러다가 이곳을 알게 된 거죠. 무엇보다 자연 속에 위치해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곳이라 좋았어요.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고 그때마다 어울리는 앤티크 물건으로 갤러리를 꾸며 새로운 분위기의 공간으로 탄생시키기도 하죠.”
알수록 빠져드는 앤티크의 매력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앤티크 컬렉션의 향연이 시작된다. 주방, 거실, 침실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화병 제품은 18세기 세브르 화병이고 아르누보 시대의 화병도 있어요. 그리고 19세기 초의 저그, 빅토리안 시대의 티 캐디… 아! 탁자는 조선시대 교자상입니다. 쿠션은 10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방석을 재해석해서 만들었고요. 2층으로 가면 크리스털과 은으로 된 빅토리안 시대 디캔터도 볼 수 있어요. 거의 다 100년의 세월을 거친 아이들이죠.”
집 안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앤티크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백 대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앤티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엔 7년 동안 서양 앤티크를 공부하며 홈 인테리어나 커트러리 위주의 수집을 시작했다.
“어머님이 상당히 상류층 분이셨어요. 그 당시 유행했던 제주도 연자방아를 활용한 테이블과 조선시대 반닫이를 집에서 볼 수 있었죠. 덕분에 일찍 앤티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어요. 앤티크 물건은 들여놨을 때 집 안 전체를 우아하게 마무리해주는 문화의 힘이 있어요. 정리정돈을 해준다고 해야 하나? 그게 바로 앤티크가 갖고 있는 세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한 점도 안 사는 사람은 있지만 한 점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 그 매력에 빠지면 그야말로 중독되는 거 같아요(웃음).”
재력가들이 앤티크 물건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이태원에 앤티크 가구거리가 조성되면서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 앤티크 열풍이 한차례 불었다. 사실 진짜 골동품이기보다는 그 모양새를 흉내 낸 ‘앤티크풍’의 가구가 유행한 것이다.
“앤티크가 주는 고급스러움과 멋스러움도 한몫했겠지만 상류층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더 많은 모조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다수의 사람이 앤티크는 다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아요. 누구나 취미로 할 수 있는 게 앤티크 수집인걸요. 단 소비를 어느 정도의 선에 둘 것인가의 문제죠. 취미로 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요. 제발 공부를 하고 난 후에 시작하면 좋겠어요!”
앤티크를 잘 아는 사람이 워낙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섣불리 다가가면 예상치 못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백 대표는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사는 것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며 추천했다.
“고려청자로 만든 기와를 뭐하러 사겠어요. 가치는 있겠지만 박물관에 있어야 더 잘 어울리겠죠(웃음). 저 같은 경우 테이블에 세팅해둔 빅토리안 시대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어요. 깨지면 어때요! 깨질 수 있는 DNA인걸요. 무서워서 쓰지 못한다면 앤티크를 최상으로 즐길 수 없어요.”
앤티크 강연 펼치며 제2인생 시작
젊은 시절 영어 강사로 유명했던 백 대표는 남편과 함께한 교육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전국 프랜차이즈 망까지 갖춘 사업을 대기업에 넘긴 백 대표는 그 후에도 강의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했다. 앤티크 물건을 수집하면서 차곡차곡 배운 지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강의를 시작했다.
“이고 갤러리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앤티크 인문학 강의가 열려요. 또 반얀트리에서도 1년에 두 번 정도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죠. 강의하면서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는 강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해요(웃음).”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 살림하는 남자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백 대표는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품격 있는 홈 문화를 퍼뜨리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tvN의 를 보니 남자가 다 일하고 그러는 모습… 에휴. 요즘 여자가 너무 중성화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아내가 아내 역할을 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한데 말이죠. 품격 있는 홈 문화를 가르쳐 가족에게 정성껏 대접하고 그럴 때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여성이 많은 목공교실에서 오롯이 눈에 띄는 중년 신사가 한 명 있다. 가구 제작에 몰두하는 모습을 얼핏 보면 이미 30년쯤 ‘톱밥만 먹고 살아온’ 장인처럼 보인다. 바로 박규완(朴奎浣·61)씨다.
하지만 그의 진짜 직업은 원자력 전문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근무하며 눈앞으로 다가온 퇴직을 준비 중인 엔지니어다. 평생을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일을 하며 살았고, 국내에서 운영 중인 상당수의 원전은 그의 손을 거쳤다.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퇴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고, 박씨의 선택은 목공예였다.
“나무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질감에 향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죠.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과정도 무척 행복해요. 사실 그 전부터 집 안의 간단한 인테리어를 위한 목공예는 직접 해왔어요.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니까 제대로 배워보자 싶었죠.”
교육을 통해 그는 도면을 그리는 법, 공구나 장비를 다루는 법도 새로 배웠다. 원전 건설 현장에서 호령하던 그였지만 안전하게 자신만의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가 중요했다.
“안전이 우선이니까요.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까요. 발전소 지을 때도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다치는 건 엔지니어 당사자라서 허투루 작업할 수 없었어요. 가구를 만드는 과정도 비슷해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죠.”
그가 목공예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간 사회에서 혜택을 받고 살아온 만큼 이제는 재능기부를 통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최근에 도시 재생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목공예입니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어디까지 힘을 보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수료 후에는 방과 후 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나무 다루는 법을 가르치거나, 직접 제작한 물품들의 기부도 생각하고 있다. 또 소외계층 가족의 집수리도 그가 해보고 싶은 봉사활동이다.
이 과정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다양한 관점이나 감각을 통해 사고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업무 환경이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미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관념에서 탈피해보고 싶은 것이 그의 희망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그는 목공예뿐만 아니라 캘리그라피나 도시농업도 배우고 있다.
목공예를 시작한 덕분인지 요즘 집에서 인기가 높아졌다고 즐거워한다. 그가 만든 가구에 시집간 딸과 며느리가 반해 주문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재료값이 만만치 않다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이런 반응이 싫지는 않은 눈치다.
“수납장과 탁자를 만들어줬는데 색상이 맘에 든다면서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요. 제품을 써보더니 믿음이 가는지 또 만들어달라고 성화예요.”
나무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소재 중 하나. 특히 산으로 둘러싸여 살아온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일까. 시니어가 은퇴 후 원하는 새로운 직업이나 취미를 꼽을 때 단골로 선택되는 분야가 바로 목공예다. 뚝딱뚝딱 제품을 만들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완성된 제품을 보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배우자나 가족이 만들어진 가구를 반겨준다면 이보다 즐거울 순 없을 것. 또 솜씨가 좋다면 팔아 생활비에 보태는 것까지 기대할 수 있다.
목수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 긴 역사로 인해 현대에 들어와서 목수가 담당하는 영역은 방대해지고 기능도 세분화됐다. 국내에는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형틀을 담당하는 형틀목수와 목조주택을 짓는 목골조목수, 한국의 전통가옥을 만드는 한옥목수 등으로 구분하고,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내장목수와 선박목수, 가구목수 등도 있다.
목공 혹은 목공예는 정의에 따라 나무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에서 건축까지 그 분야가 방대하다. 하지만 나무로 가구나 소품을 제작하는 분야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육기관, 시간, 비용 천차만별
목공예가 시니어에게 각광받는 이유는 다양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연이나 귀농, 귀촌의 대체제 역할도 한다. 나무를 직접 만들고 다듬으며 자연을 손으로 느끼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귀촌 시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로도 꼽힌다.
당장 생활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 간단한 식기에서 쟁반, 식탁에 이르기까지 만들지 못하는 것을 세는 것이 빠를 정도다.
상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숙련이 되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실제로 목공예 교육기관을 살펴보면 수업에 참여하는 시니어가 의외로 많다.
한 교육기관 관계자는 “시니어의 경우 당장 직업으로 연결짓기보다 노후생활을 위한 준비나 취미활동을 겸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절박함 대신 느긋함을 갖추고 있어, 오히려 젊은 수강생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솜씨도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목공예를 배울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목공예 학원부터, 지자체, 목공방, 기술교육원, 프랜차이즈까지 활동 중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집 근처 목공방을 찾는 것. 상당수 목공방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자체 교육과정을 운영 중에 있다. 또 일부 협회나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목공방의 경우 자격증반을 운영하기도 한다.
별도의 교육과정 없이 운영되는 목공방에서도 배울 수 있다. 상품 제작을 겸한 목공방에선 수업료 겸 시설 이용료를 합한 금액을 지불하면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일정 기간 동안 목공방 장비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교육원 교육과정은 일반 학원 프로그램과 동일하다. 교육시간은 기관에 따라 제각각이다. 간단한 소품이나 책꽂이를 만드는 과정은 하루나 이틀 안에 끝나기도 하지만 자격증 취득과정은 최소 이수 교육시간이 40시간정도다. 기간에 따른 교육비용도 천차만별이다. 하루짜리 체험학습은 1만원 내외이지만 창업반이나 자격증 과정은 수백만원 이상인 경우도 있다.
목공예 관련 자격증은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국가자격증인 목공예기능사가 있고, 민간자격증으로는 목공지도사, 목공DIY교육사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목공소나 판매용 제품을 제작하는 목공방에 취업하려면 자격증 취득이 필수적이지만, 취미나 여가생활이 목적이라면 자격증이 큰 역할을 하진 않는다고 귀띔한다.
창업 쉽지만 제품 판로가 문제
목공예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분야이다 보니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편. 그래서 목공예 시장에서는 구인보다는 구직 인력이 훨씬 많은 편이다. 한때는 목공방을 통해 좋은 디자인의 저렴한 가구를 구매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저가의 중국산 가구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시장이 위축되어버렸다. 여기에 이케아 같은 다국적 기업까지 가구시장에 참여하면서 목공방들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장 취업을 목적으로 목공예를 배우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 특히 체력적으로 힘든 시니어의 경우 목공소나 목공방들이 채용을 기피하는 대상이다. 급여도 적은 편. 그래서 아예 목공방을 차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는 사업의 의미보다는 작업실 개념으로 목공방을 만들기도 하고 몇몇 사람이 뭉쳐 공방을 내는 경우도 있다. 메리우드협동조합이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이곳은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목공예를 배운 동기 6명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목공방으로 경력 단절 여성이나 시니어를 대상으로 목공예를 지도하고 있다. 나무사랑협동조합도 이와 비슷한 사례. 송파구 시니어복합문화공간 실벗뜨락에서 목공예 수업을 함께 들었던 수강생들이 모여 공방을 만들었다.
목공방 창업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장비다. 목공용 장비를 기본적으로 갖추려면 2000만원 내외로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가구를 만들려면 7000만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창업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은 예산이 아닌 영업력이다. 만들어진 제품의 판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창업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장 위축으로 한때 난립했던 목공방 프랜차이즈는 최근 확 줄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목공방 프랜차이즈는 헤펠레목공방이 대표적이다. 전국에 70여 개 목공방을 가맹점으로 두고 있다.
요즘 목공예 분야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업사이클링(up-cycling). 폐품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업그레이드(upgrade)가 합쳐진 용어다. 재활용할 재료에 가치를 더해 더욱 쓸모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의미다.
목공 분야의 경우 상품적재용 깔판인 파렛트나 와인상자와 같은 폐목재를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많다. 폐목재는 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최근 많은 목공방들이 폐목 리사이클링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자연친화적 나무라는 소재에 스토리와 공익성이 더해지면서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목공예를 하는 시니어들 사이에선 방과 후 학습이나 목공예 체험교육 강사활동도 인기가 높다. 제품 제작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보람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글을 많이 쓰는 비결은 비교적 글을 빨리 쓰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지만, 속도도 제법 빠르고 오탈자를 바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격주로 일간신문 독자 모니터 일을 한다. 그 주 며칠간의 신문기사를 보고 관심 기사에 대해 독자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올리는 것이다. 필자 외에도 그런 일을 하는 모니터가 몇 명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니터가 원고를 못 보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해당 기간 중에 해외여행을 하거나 바빠서 혹은 몸이 아파 원고를 못 보내는 경우다. 보내온 원고 내용이 비슷하면 한 편 외에 다른 원고는 활용이 안 된다. 그럴 때면 아침에 필자에게 연락이 온다. 무슨 기사와 관련해 급히 기사를 보내달라고 한다. 마감 시한이 당일 오후 4시까지다. 필자가 원고를 빨리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별일 없으면 점심시간 이전에 보내주곤 한다. A4 3분의 1 정도 분량이면 10분, 절반 정도의 글이면 20분 정도면 한 꼭지를 쓴다. 그래서 긴급 요원으로 활용이 되곤 한다.
글을 빨리 쓰려면 무엇을 쓸 것인지가 머릿속에 먼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자판을 통해 글로 쓰면 되기 때문에 자판 두드리는 시간만 필요할 뿐이다. 당연히 머릿속에 정리된 글의 내용이 중요하다. 기사의 핵심 내용을 보고 필자의 생각과 만나게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시사 상식과 경험이다. 평소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모니터가 쓸 글은 사회면에 난 기사로 한정되어 있다. 모니터가 정치, 경제를 논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문화와 스포츠도 모니터가 글을 쓰기에는 한정적이다. 오피니언 란의 글들도 해당되지 않는다. 사회면 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거나 개인적인 생각이나 시각이 기사와 다를 때 좋은 모니터 글이 나온다.
그다음은 뼈대를 잡고 살을 붙이면 된다. 집을 지을 때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면 절반은 완성된 셈이다. 이후 벽을 막고 바닥과 천장 공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마감 공사와 인테리어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바로 뼈대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다. 마지막 과정은 다듬는 일이다. 문장을 매끄럽게 고치거나 문맥이 맞게 조정하는 작업이다. 데스킹에서 손볼 것이 없다는 평가는 칭찬이다.
모니터 글 외에 다른 글도 같은 요령으로 쓴다. 그러나 A4 분량이 안 되면 붙잡고 있어봐야 글이 완성되지 않는다. 일단 저장해두고 어떤 글을 덧붙일 것인가 계속 고민한다. 떠오르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살아난다. 관심을 갖고 있으면 덧붙일 내용이 보이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도 그냥 지나칠 내용이 저장해둔 글과 접목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일상에서도 생각이 닿으면 그 방면으로 글감이 이어진다.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다. 그래서 글은 사람을 늘 생각하게 만든다. 미완성 글로 저장해둔 것이 많으면 다하지 못한 숙제처럼 머릿속에 남아 완성을 기다린다.
아차산역 근처에는 이탈리언 레스토랑 ‘휘게’가 있다. 처음 보는 단어라서 일단 들어가 봤다. 깨끗한 인테리어에 분위기가 아늑했다. 가격과 음식도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이곳에서 ‘휘게(Hygge)’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덴마크어로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덴마크식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친 김에 인터넷에서 ‘휘게’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마이크 비킹이라는 사람이 쓴 라는 책이 있었다. 덴마크라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소문난 나라다. 그 행복의 요령을 설명해놓은 책이다.
이 책에 ‘휘게 10계명’이 나온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일상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라는 조언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방안 분위기를 약간 어둡게 하라, 현재에 충실하라, 달콤한 음식을 즐겨라, 혼자보다 함께하라, 감사해하고 오늘에 만끽하라, 혼자 뽐내지 말고 남들과 조화하라,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라, 감정 소모를 하지 마라, 추억을 얘기하며 관계를 다져라, 보금자리의 편안함을 즐겨라 등이다.
덴마크식 행복 요령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만 해도 방안 분위기가 밝은 것이 좋다. 달콤한 음식보다는 한국적인 맛이 더 좋다. 현재에 충실하기는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함께하고 싶지만 혼자도 좋다. 오늘을 즐기지만 내일도 준비한다. 뽐내는 일은 점차 줄이는 방향으로 정리 중이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건 매일 하는 일이다. 감정 소모는 피하거나 줄이려고 노력한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보금자리가 편안하기는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일단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주거 형태에 대해 고민 중이다.
기후 조건이 좋지 않은 덴마크의 환경으로 볼 때 행복을 집 안 생활에서부터 찾는 것 같다. 밖에서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가족 구성원이 좋아야 한다. 배우자와 좋은 관계이거나 애견이라도 기르며 밖에 나가지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밖에 나가 큰 관계를 만들고 활발하게 활동하라는 얘기는 없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조용히 소박하게 즐기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중 하나로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복지까지 더해지니 불만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북한의 핵 위협에 일본의 이기적 정치, 중국의 힘 자랑 등 바람 잘 날이 없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는 하지만 수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이고 이를 발전시키거나 유지하는데도 내적으로 문제가 많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이지만 사회적 불안도 있다. 복지도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피부로 와 닿는 건 별로 없다. 결국 믿을 것은 자신이 가진 돈이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긴장하고 산다.
행복의 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휘게 라이프의 기준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면 행복한 것이다. 바쁜 생활이나 화려한 사회생활은 점차 정리하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라고 조언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사람도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하면 된다. 단, 건강이 제일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가을은 유독 ‘고독’의 정취가 느껴지는 계절이다. 왕왕거리던 여름을 지나, 낙엽 같은 트렌치코트를 휘감고 조용히 무드를 즐기고만 싶다. 이때 한껏 분위기를 내려면 와인 한 잔 정도는 즐겨야 하지 않겠나. 여기에 고급스러운 재료로 풍미를 살린 생면 파스타는 또 어떤가? 분위기, 와인, 맛, 이 세 가지를 만족스럽게 채워줄 맛집 ‘와인 북 카페’를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와인 그리고 책이 어우러진 풍경
‘와인 북 카페(wine book cafe)’는 와인과 북(책)이 들어간 레스토랑의 이름처럼, 740여 종의 와인과 300여 권의 와인 서적을 갖추고 있다. 2007년 문을 연 이래로 그동안 수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올해
7월에는 보유 중인 우수한 와인 리스트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와인 전문 매거진 가 주최한 레스토랑 어워즈에서 ‘Two Glass’를 획득하며 ‘BEST OF AWARD OF EXCELLENCE’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국내에서는 7곳뿐이라고). ‘와인 좀 안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꼭 한번 들러 이곳의 내공을 체감해보길 바란다.
와인과 함께 익어가는 빈티지 인테리어
가게를 둘러보면 오래된 레코드판, 축음기, 진공관TV, 턴테이블 등 빈티지한 소품들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중앙에 매달린 양면시계는 실제 파리 전철역에 걸려 있던 시계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와인처럼, 구석구석 빛바랜 물건들이 이곳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또 책장에 무심하게 꽂혀 있는 책들은 여느 레스토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한 편안함을 준다. 침침한 조명, 어두운 나무 테이블과 바닥 그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투명한 와인 잔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과 음식,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더없이 좋은 분위기다. 음식만 즐기러 갔더라도 어쩐지 와인 한잔 따르고 싶어지는 묵직한 정취가 느껴진다. 혹시 와인에 대해 잘 모르거나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곳 소믈리에의 조언을 받아보자. 평소 취향이나 입맛, 곁들이는 메뉴 등을 고려해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줄 것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생면 파스타 요리
이곳의 이름을 다시 정한다면 ‘와인 북 그리고 파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급 생면 파스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재료나 소스 등도 특별하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건면이 아닌 생면을 사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파스타 면은 매장에서 직접 반죽해 만들고 있다. 전진하 셰프는 “생면 파스타 반죽은 밀가루와 달걀노른자로 만든다. 그 외에 물, 달걀흰자 심지어 소금도 넣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파스타는 일반 건면 파스타와 식감이 다르고, 또 다른 생면 파스타에 비해 단단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잘 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 셰프는 레드와인과 어울리는 메뉴로 이탈리아산 제철 생송로버섯이 가득한 피에몬테식 타야린 생파스타를, 화이트와인과 어울리는 메뉴로 마스카르포네 감자퓌레로 속을 채워 바질페스토에 버무린 라비올리를 추천했다. 사실 단골들은 메뉴북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계절마다 제철 재료에 따라 메뉴가 리뉴얼되기도 하고, 또 그날그날에 따라 와인과 메뉴를 제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특별히 꽂히는 게 없는 날엔 이곳 셰프와 소믈리에의 안목을 믿고 과감히 테이블을 맡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주소 강남구 논현로 149길 5 배전빌딩 1층(학동역 7번 출구와 압구정역 4번 출구 사이, 을지병원 사거리 SK주유소 옆) 운영 시간 오후 5시 30분~새벽 1시 30분(일요일 휴무) 예약 문의 02-549-0490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언제 여름이었나 싶게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덥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 했던 마음을 다잡고 편안한 곳에서 책을 읽고 싶은데, 집은 답답하고 서울의 유명 도서관들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마음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때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책읽기에 좋은 도서관, 파란 통창의 유리벽이 아름다운 네이버 라이브러리가 떠오른다.
성남시 정자동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1층에 네이버 라이브러리가 자리하고 있다. 정문을 밀고 들어가면 1층 로비에서 세련되고 멋진 도서관과 각종 잡지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북카페를 만날 수 있다. 네이버가 종이책 도서관을 세운 것도 이채롭지만 1층 로비 전체를 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북카페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도서관도 네이버 라이브러리 홈페이지에서 회원 등록을 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1층은 디자인 관련 책들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디자인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구석구석 미로처럼 만들어 놨다고 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서가를 따라 책 고르는 재미가 좋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관련 책이 많고 쉽게 접하기 힘든 희귀본도 많이 있다. 사람들은 커다란 통 창 밑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서가나 계단 밑 구석진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앞에 두고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한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1층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린 팩토리라는 컨셉에 맞게 책장 위에 수생식물을 배치하여, 2층에서 내려다 보면 싱그런 녹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기가 나의 아지트다. 정자동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갈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 2층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네이버 도서관을 찾으면 ‘1001권 시리즈’를 즐겨본다. 책장에서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1001권’이란 책을 꺼냈다. 소설가, 평론가, 시인 등으로 구성된 국제적 집필자 100명이 엄선하여 추천한 작품 1001권을 소개한 책이다. 작품을 300자로 축약해 소개하면서 이 내용만으로도 한권의 독서가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세상엔 읽은 책도 많지만 내가 모르던 흥미진진한 책들도 무척 많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백과사전 류와 총서들로 가득한 2층에 앉으니 백과사전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즐거웠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가을 햇살 한 가득 쏟아지는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책을 골라놓고 읽지 않아도 좋다. 향기로운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멍 때리고 가만 앉아만 있으면 어때. 가끔씩 졸면 또 어때.
장마가 지나고 폭염이 시작되는 8월. 초록빛 나뭇잎은 촉촉이 영글지만, 우리네 모습은 축축 늘어지기만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입은 마르고, 후끈한 날씨에 속이 답답하다. 이럴 땐 신선한 채소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로 산뜻함을 충전하는 것 어떨까? 자연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옥상 텃밭이 있는 맛집 ‘에이블(ABLE)’을 소개한다.
브런치로 시작하는 여유로운 하루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면 조금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모처럼 늦잠도 자고 여유를 부리다 보면 아침을 챙기는 게 번거롭다. 그렇다면 한가로운 오전의 작은 활력, 브런치(brunch, 아침을 겸하는 점심)를 즐겨보는 거다. 특별히 브런치 메뉴가 무엇이라고 한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가벼운 한 끼 식사 정도로 즐기는 이가 많다. 또, 하루의 첫 식사인 만큼 채소와 달걀 등으로 만든 영양소를 고려한 메뉴를 선호하는 편이다. 브런치 카페 ‘에이블(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계절 과일 등이 곁들여진 샐러드와 재료의 영양을 그대로 살린 다양한 착즙 주스를 맛볼 수 있다.
옥상 텃밭 구경하고 가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따뜻함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천장에 매달린 작은 화분들, 조명을 감싼 나무 껍데기, 테이블 위의 꽃병, 쇼케이스를 채운 각종 과일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와 마주 보는 진열대에는 말린 과일, 선인장, 잼, 쿠키, 캔들 등 다양한 소재들이 어우러져 있다. 이곳의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루프톱(rooftop, 옥상)에 꾸며진 작은 텃밭이다. 토마토, 가지, 블루베리, 각종 허브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작물들을 가게에서 직접 키운다. 모두 요리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메뉴의 귀한 식재료로 쓰인다.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옥상이라 여름에 즐기긴 덥지만, 어느 계절보다 푸른 잎사귀들이 반긴다. 실내에서 식사를 마치면, 후식으로 시원한 음료 한 잔 손에 들고 옥상 텃밭을 구경해보는 것도 좋겠다. 도심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이색적인 풍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신선함을 먹다, 그리고 마시다
이곳에서는 리코타치즈, 비프, 연어, 퀴노아 등을 주재료로 한 샐러드를 즐길 수 있다. 촉촉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지닌 리코타치즈에 루콜라, 비타민, 방울토마토 등 계절 과일이 들어간 리코타치즈샐러드(1만3000원)가 인기다. 건강을 생각하는 중장년이라면 슈퍼푸드로 잘 알려진 고단백 곡물 퀴노아와 루콜라, 페타치즈, 구운 치킨 등이 어우러진 퀴노아샐러드(1만6000원)도 추천한다. 샐러드를 주문하면 피타 브레드(이스트로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든 넓적한 빵)가 함께 나온다. 채소만으로는 채우기 힘든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샐러드만큼 단골로 찾는 메뉴는 신선한 주스다. 사과·당근·케일이 들어간 에이블비타민(9000원), 오렌지·자몽으로 만든 레드디톡스(9000원) 등 믹서로 갈지 않고 착즙기로 짜낸 주스 메뉴가 다양하다. 채소, 과일 외에는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주스 잔에는 샐러리를 꽂아내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에그베네딕트(1만4000원), 오믈렛프리타타(1만5000원), 가지롤(1만6000원) 등 브런치 메뉴나 파니니, 피자, 파스타 등을 곁들이면 더 든든하고 풍성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커피와 케이크를 비롯한 카페 메뉴도 인기다. 당근케이크, 바나나파운드케이크, 말차빙수, 얼그레이빙수 등 독특한 디저트가 다양하다. 선선한 날 저녁에 방문한다면 루프톱에서 와인이나 맥주 등을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언제 LA에 오면 스타벅스 리저브에 꼭 한번 들러봐!”
은퇴 후 목말랐던 문화생활을 원없이 즐기고 있는 한 선배가 커피 맛 좋다며 야단스럽게 추천하던 곳이었다. 안 그래도 비싼 커피를 ‘리저브’라는 이름을 붙여 더 비싸게 팔아먹는다며 삐딱선을 탔었지만, 사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손에 쥐고 하루를 시작하는 처지라 내심 궁금하던 차였다.
날이 갈수록 무시무시해지는 5번 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을 뚫고 2시간 여 만에 LA에 입성한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선배의 권유대로 스타벅스 리저브에 들러보기로 했다. 또 언제 올지 모를 일이었고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는 에스프레소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타벅스 리저브(Starbucks Reserve)는 2014년 시애틀 1호점을 시작으로 선을 보인 스타벅스 프리미엄 브랜드다. 이곳에서는 단일 원산지에서 극소량만 재배되는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는데 한정된 양이다 보니 일반 스타벅스 매장에는 공급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리저브 매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다.
현재 미 전역에 21개의 매장이 있고 그중 캘리포니아에는 LA를 비롯해 세 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에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60여 개나 된다고 하니, 오히려 본토에서 리저브 커피 마시기가 어려운 셈이다.
코리아 타운을 벗어나 라 브레아 길에 들어서자 위풍당당 LA 스타벅스 리저브가 한눈에 들어온다. 별 모양과 함께 그려진 이니셜 ‘R’은 초록색 인어 아가씨보다는 확실히 고급스럽다.
스타벅스 리저브는 클래식하면서도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유명한데 LA점 역시 소문대로였다. 문을 열자마자 직사각형의 매장이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높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웅장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뿜어내고 진한 오크나무와 구리가 조화를 이룬 벽면은 멋스럽기가 그지 없다.
LA 메트로 지역에는 이미 900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있지만 리저브 매장은 남가주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그야말로 귀하신 몸이다. 한국의 ‘스벅덕후’(스타벅스 마니아)들은 미국을 여행할 때 시애틀과 LA 리저브에는 꼭 들려 인증샷을 남긴다고 한다. 한국에 더 많은 리저브 매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성지순례와 같다고나 할까.
사실 스타벅스 리저브를 이야기하는 데 시애틀이 빠질 수는 없다. 1971년 수산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탄생한 스타벅스 1호점과 함께, 2014년 탄생한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테이스팅 룸(Starbucks Reserve Roastery and Tasting Room)’은 시애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약 1400㎡ 규모의 시애틀 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다. 이 매장은 CEO 하워드 슐츠가 구상하는 데만 10년, 공사비용으로 약 220만 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리저브가 스타벅스의 미래”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시애틀처럼 으리으리한 규모는 아니지만 LA에서도 리저브의 맛과 멋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타벅스 리저브의 매력은 희귀한 스페셜티 원두와 리저브만의 독특한 추출 방법이다. 원두는 그때그때 확보하는 양과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날 LA 매장에서는 ‘르완다 아바쿤다카와’, ‘페루 산이그나치오’, ‘말라위 사블 팜’, ‘파푸아뉴기니 루트 넘버원’ 등의 원두를 선보였다.
원두뿐 아니라 추출 방식도 선택할 수 있는데, 스타벅스 리저브에서만 사용하는 클로버 압착기(진공압착)를 비롯해 사이폰(진공여과), 케멕스(여과지추출) 등이 있다. 비주얼 면에서는 단연 사이폰이 돋보인다. 실험실 비커 모양의 진공관에 커피를 담아 끓여내는 모습은 마치 바리스타의 쇼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맛은 클로버와 케멕스가 좋다는 평이다.
고민 끝에 원두는 블랙티의 향을 느낄 수 있다는 아프리카 르완다의 아바쿤다카와로 결정하고 클로버 머신으로 뽑아낸 더블샷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원두를 선택하면 담당 바리스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바리스타는 고객이 주문한 커피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고 고객은 원두를 갈아 추출하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물론 뒤로 물러나 커피를 기다려도 무방하지만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은 이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하다.
매장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동안 주문한 커피가 완성됐다. 일회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근사한 컵 또한 만족스럽다. 진한 더블샷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보다 무려 3배의 값을 치렀기 때문일까. 과연 목을 타고 넘어가는 깊은 에스프레소 향은 특별했다. 35℃를 육박하는 날씨와 교통 체증에 지친 심신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온전히 커피만을 즐기기 위해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영화배우처럼 생긴 백인 노신사가 다가와 테이블을 나눠 써도 되겠냐고 정중하게 묻는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할리우드가 지척이고 LA에서 가장 물 좋다는 베벌리힐스가 가까이 있는 곳, 운 좋으면 유명인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위를 살폈다. 휴대용 컴퓨터를 펴놓고 열공 중인 젊은이들 틈에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중년 여성도 있었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니어들도 제법 많았다.
미국에 살면서 참으로 익숙해진 것 중 하나가 인종 불문, 남녀노소 모두가 한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곳 리저브에서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밖은 폭염의 날씨에 차가 막혀 짜증이 나든 말든, 이곳은 뮤지컬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커피를 주문하는 과정, 추출하는 과정, 마시는 과정 모두를 즐기고 있다. 앞에 앉은 노신사도 휴대용 컴퓨터에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를 강추하던 선배도 아마 저런 모습으로 이곳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면서 말이다.
마시고 있는 커피 사진과 함께 선배에게 좋은 곳을 추천해줘서 고맙다고 카톡을 보냈다. 곧 답이 날아왔다.
“10달러로 즐기는 최고의 사치… 마음껏 즐기시오. 곧 다시 퇴근길의 고속도로를 타야 할 테니….”
푸른 바다가 떠오르는 계절 여름! 그러나 막상 바닷가로 피서를 떠나면 시원함이 아닌 태양 아래 모래사장의 뜨거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변에서 에어컨을 켤 수도 없는 노릇. ‘시원하게 바다 구경을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스친다면, 코엑스 아쿠아리움(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513)으로 나들이를 떠나보자. 대형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바라보면 바닷속으로 들어온 듯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매표소에 도착하면 바닥에서 천장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게이트 수조 속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이곳부터 시작해 총 16개의 코스로 꾸며진 테마 존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순서에 따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육지 동물 등 4만여 마리의 생물을 만나게 된다.
코스 초반에는 피라미, 송사리, 어름치 등 정겨운 우리 물고기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네 번째 코스인 ‘한국의 정원’에서는 경복궁 내 향정원을 축소해 옮겨놓은 비단연못이 눈에 띈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코스들을 지나면 현대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상상 물고기 나라’가 나온다. 전화박스, 냉장고, 정수기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곳곳에 물고기들이 담겨 친근하면서도 흥미롭다. 닥터피쉬(가라루파)가 사는 욕조 모양 수족관에 손을 넣어 물고기와 접촉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다음 코스 ‘아마조니아 월드’ 입구로 들어서면 다소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마존 강 일대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살고 있어 열대우림과 비슷한 생태 환경을 유지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고기(3~5m)인 피라루쿠를 비롯해 식인 물고기 피라냐, 이집트 과일박쥐, 수달, 비버, 악어, 거북 등을 볼 수 있는 다채로운 구간이다.
보고 만지며 교감하는 오감만족 나들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마린터치 연구소’에 꼭 들러보자. 조개, 불가사리, 멍게, 해삼 등 직접 수중생물을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는 쌍방향 체험이 가능하다. 아울러 아쿠아리움의 전반적인 생물 배양 및 양육 기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포토타임을 즐기기 좋은 코스로는 ‘산호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액자 형태의 수족관에 화려한 색상의 산호와 열대어들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 그다음 코스인 ‘바다왕국’ 역시 많은 관람객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이다.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대형 어류들이 유유히 위엄을 과시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해저터널’, ‘펭귄들의 꿈동산’ 등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테마 코스가 이어진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프로그램 일정이다. 정어리 공연, 펭귄 먹이주기, 상어극장 영화상영 등 다양한 전시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세한 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코스를 둘러보고 나면 선물상점이 나온다. 손주가 나들이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귀여운 물고기 인형 하나 선물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