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장욱진(1917~199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미술관이다. 장욱진은 이렇게 썼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하는 단골말이다.” 심플! 그게 말 그대로 심플하게 거저 얻어지는 경지이겠는가? 인간사란 머리에 쥐나도록 복잡한 카오스이거늘. 명쾌한 삶의 실천과 창작의 순수한 열망을 지속하지 않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자신이 지향한 가치를 정점까지 밀어붙였다. 그 무엇에 앞서 ‘심플한’ 작품으로 지지와 갈채를 받았다. 그런 장욱진의 유화, 벽화, 판화, 수묵 등 23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존재하다니.
장욱진은 번잡한 도시를 피해 살았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 자체가 싫다”고 했다. 자연, 고요, 고독. 그에겐 이 셋이면 충분했다. 그러하니 장욱진미술관을 도심에 두랴. 산 아래, 냇물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으니 적격이다. 미술관 건물은 나무들의 초록이 술렁거리는 산들과 눈을 맞추며 들썩이나? 큼지막한 규모에 흰색 외벽을 두른 건물이 생동해 밝다. 애써 멋부린 치레 없이 산뜻하고 단순한 외관이다.
어떻게 보면 세련된 대형 창고 형태? 산을 은유적으로 축약한 미니어처? 수직 일색의 벽면과 삼각 지붕의 연쇄로 이루어진 다면체라 멀리서 언뜻 볼 적엔 정체가 집히지 않아 아리송하다. 외부 마감 자재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 가볍고 소박한 재료로 도배한 셈이라 묵직한 맛은 없지만 위압이 없어 편안하다. 화려하거나 기발하거나 심각할 게 없는 외관이다. 실용성과 단순미를 성실하게 구현해 어엿하다. 장욱진의 담박한 캐릭터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내비친다.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돼
이 미술관은 개관한 해인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의해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민한 건축가가 지은 기념물로서의 미술관은 재미있다. 화가라는 주체의 성향,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에서 모티브를 끌어내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가는 화가를 닮은 집을 짓는 걸로 실력을 입증한다. 장욱진미술관은 이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장욱진을 잘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장욱진을 표상하기 위해 설계자가 미술관의 내·외부에 매립해둔 유비(類比)와 알레고리를 찾아 즐길 만하다.
이 미술관의 외양은 사실 상당히 흥미롭다. 정원에 서서 바라보면 그저 좀 도드라지는 다각형 건물일 뿐이지만, 드론을 띄워 살펴보거나 뒷산 중턱에 올라 내려다볼 경우엔 다르다. 실을 꼬아 만든 노리개 매듭 형태라서 이색적인 건물의 전모가 비로소 부감되는 게 아닌가. 텅 빈 중정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각으로 뻗은 지붕마루의 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설계자는 ‘최-페레이라 건축’의 공동대표이자 부부 사이인 최성희와 벨기에 출신 로랑 페레이라. 이들은 설계에 나서기 전 장욱진의 작품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콘셉트의 맥락을 잡아나갔다. 숙고 뒤 얻은 결론은 화가의 작품에 숱하게 등장하는 집과 방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하자는 것.
“가장 단순한 형태로 화가의 세계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작고 단순한 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겹겹의 공간이 아니라, 장욱진의 그림에 나오는 한옥 홑겹 방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공간을….”(최성희)
장욱진은 명리(名利)에 무심해 붓 한 자루 손에 움켜쥐면 그만이었다. 목으로 털어넣을 술 한 잔이면 만족했다. 언젠가 그의 작품이 최고가(最高價)로 거래된다는 소리를 듣고서 하는 말이 이랬다. “그림에 가격을 매기다니. 난 슬퍼!” 그의 그림만 자연을 닮은 게 아니었다. 장욱진의 생태계 역시 자연에 가까워 탈속(脫俗)으로 순박했다. 설계자는 이러한 화가의 성정 역시 고스란히 건축에 반영했다.
“거창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장욱진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급스런 자재 대신 가벼운 플라스틱 재료로 외벽을 마감한 이유가 이와 같다.”(로랑 페레이라)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
미술관 내부 1층 전시실에선 기획전 ‘장욱진을 찾아라’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과 장욱진 그림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전람회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소품도 두 점씩 걸려 한결 실속 있는 전시회다. 지하층에서부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경관이다. 단순미의 추구를 기조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계단 부위만큼은 특별하다. 층계의 딱딱한 획일적 흐름을 배제, 폭과 커브의 각을 유연하게 구성해 리듬감을 부여했다. ‘주로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자의 이와 같은 의도가 기교적으로 여실히 발현된 공간이다.
층계 공간은 벽면과 천장까지 온통 새하얀 색이다. 고로 2층 공간 전체가 지루한 화이트 큐브일 것 같은 예감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장욱진 상설전이 열리는 네 개의 전시장 모두 유별하니까. 모양새와 벽면의 색상, 조도(照度)까지 제각각이니까. 공통점이라면 모두 자그마한 방의 형태와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막살이 단칸 골방을 자주 그린 장욱진에게 바치는 오마주처럼. 덕분에 그림과 공간이 합을 이루었다. 작품 감상을 한결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정밀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욱진의 작품은 커봐야 30호 미만이다. 손바닥 사이즈의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림 안엔 장욱진의 우주가 들어 있다. 까치가 날고, 붉은 해가 뜨고, 나무 우듬지에 묻힌 아이가 낮잠을 때리고, 콧수염 달려 웃기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옹기종기 모인 도토리들처럼 앙증맞은 일가족이 등장하고…. 장욱진이 관조한 자연과 인생의 다채로운 모습이 간결한 화풍으로 시각화됐다. 토속적인가 하면 모던하고, 관념과 직정(直情)이 교차하고, 문인화풍인가 하면 해학적 민화풍이다.
누가 뭐래도 장욱진의 그림은 정겹고 평화롭다. 우리가 놓치고 살지만, 실은 그리워 마음속에 도사린 삶의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한다. 작의를 짐작하기 어려워 득득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는 미술품들이 난무하지만, 그의 그림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으니 대승적이자 이타적이다. 그러나 쉽기만 하랴. 어린 것이 끼적인 낙서처럼 쉽게 다가오지만,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도(道)와 선(禪)까지 읽어내려면 숨이 차다. 어린애 시늉을 해 그린 그림과, 어린애로 돌아간 심상으로 그린 그림은 천양지차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면 어렵고 복잡하던 것들이 쉬워진다 했다. 장욱진은 수행으로 그림을 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도 찔끔 요실금처럼 새나오다 마는 게 예술이다. 장욱진도 괴로웠을 게다. 오죽하면 “나에겐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했겠는가. 그림이 죄? 그림 그리는 사람이랍시고 부린 객기가 없지 않았겠으나, 그에게 많았던 건 고독의 죄가 아니었을까. 예술의 핏줄인 고독이라는 놈. 장욱진은 고독해서 술 마시고, 고독해서 서울대 교수직을 헌신짝처럼 벗어버렸다. 그러고선 해탈? 그림으로 볼 적엔 그렇다. 강퍅한 세상을 가뿐하고 따뜻하게 읽는, 장욱진의 저 헐거운 그림들의 정신을 보라.
전시실엔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이 걸려 있다. 일화가 많은 ‘진진묘’(眞眞妙)도 볼 수 있어 반갑다. 간략한 선묘로 된 이 작품은 부인 이순경(현재 101세) 여사를 불상의 모습으로 그린 초상화다. 생활에는 대책 없는 헐렁이였던 장욱진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부인의 조력 덕분이었다. 그런 아내가 불경을 외는 모습을 보고 별안간 그려낸 게 이 작품이다.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채 1주일에 걸쳐서. 그림을 완성한 뒤엔 여러 달을 앓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했던 아내는 작품을 팔아 없앴고, ‘진진묘’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던 화가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무엇에 그리 아쉬웠을까? 대표작이 사라져서? 아내에게 그림으로 모처럼 바친 애련(哀憐)의 마음을 몰라줘서?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 선생
“아버지는 차라리 스님이자 자유인이었다”
“아버지는 숫돌에 몸을 갈 듯이 그림 작업으로 몸을 혹사했다. 밥벌이에는 무관심했다. 그게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늘 저자세였다. 얼굴엔 항상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엔 얼마나 가엽던지….”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75, 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 선생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긍심과 함께 아직껏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에게서 겪은 화가로서의 고통과 고독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또렷이 봤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부녀간의 정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가 말하길, ‘간이 맞는 딸’이라 했다. ‘경수가 화실에 다녀가면 냉수 한 사발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도 했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독히도 말이 없었지. 표현도 어눌했다. 술을 드시고 하는 얘기도 외마디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가령 어떤 식으로?
“‘너는 누구냐? 나는 또 누구냐?’ 뭐 그런.(웃음) 나도 그림에 생각이 있어 아버지에게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응?’ 하는 한마디였다. 나는 그게 ‘안 돼!’라는 응답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뜻을 접었다. 화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딸에게까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어서였다.”
장욱진 화백은 40대 때 6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별안간 그만두고 나왔다. 왜 그랬다고 보나? 딸로서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나?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셨다. 사표를 낸 걸 알고 가장으로서 무책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대뜸 하긴 했다. 그러나 금방 후회되더라. ‘누군들 아버지처럼 감히 직장을 팽개칠 수 있을까? 아버지 같은 자유인이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차라리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장경수 선생은 최근 ‘내 아버지 장욱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비범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과 창작의 일상을, 가족과의 조용한 유대와 쓸쓸한 사랑을, 과도한 음주와 유랑하는 영혼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욱진 화백이 한창 무르익은 작품을 하던 시기에 돌연 타계해 아쉬웠다.
“그림은 아버지의 내면이 표출된 한 부분일 뿐이다. 좋은 화가였으나, 더 정확하게는 스님이고 자유인이었다.”
가슴에 남은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면?
“세상과 사물을 데면데면하지 않고 친절하게 보라 하셨다. 친절하게 보면 거기에 모든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걸 알 수 있다며. 이 금언을 나는 좌우명으로 품고 산다.”
아버지 사후, 장경수 선생은 “한 1년쯤 울었던 것 같다”고 했다. 너무도 허탈해서. 그는 장욱진미술관이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다”고 한다. 영별(永別)은 슬프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속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말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고, 침묵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다. 때문에 침묵을 안다 함은 말할 줄 아는 것과 같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남의 말 듣기를 거부하고, 제 말만 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조용할 틈이 없다. 남 탓하며 분노를 키우는 사이, 정작 내 안의 소중한 무언가는 빛바래 간다. 정민(鄭珉·59) 한양대학교 교수는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 잊어버린 세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에 고요히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습정’을 펴냈다.
습정(習靜), 고요함[靜]을 익힌다[習]는 뜻이다. 갈수록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데, 내면은 충족되지 않은 채 껍데기만 남은 듯하다. 정 교수는 이러한 공허함을 습정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요함을 익히는 과정에서 비움과 채움의 길항작용이 일어나죠. 멈춤의 시간 없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늙어가는지 모르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허망해집니다. 그러다가 화가 나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불공정한가, 왜 나만 이런가 하고요. 그건 세상에 반항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바깥 소음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남만 잔뜩 들어 있게 되죠. 스스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그런 시비에 휩쓸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 무엇을 견제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가치판단을 위해서는 주체성 회복이 시급해요.”
그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 속에서 강제로라도 멈춰 가라앉히는 시간을 보내야만 헛헛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의 고요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침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인디언이 사냥하려고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기에,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내가 너무 빨리 와서 아직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 기다린다’고요. 그 말처럼 마음은 저 멀리 두고 계속 달리기만 하면 허깨비 인생이 되는 거죠. 열심히 살았고 부지런히 노력했더라도 결국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거예요. 그러니 짧게라도 계속 습정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어디 산으로 들어가라는 건 아녜요. 절간에 있어도 마음이 복잡하면 저잣거리에 있는 것과 같죠. 가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사람 많고 시끄러워도 깊이 몰두하면 나와 책만 놓인 듯한 경험을 하잖아요. 그런 내적인 고요함을 익히라는 뜻입니다.”
내 안에 고이는 습정의 독서
습정을 통해 나와 대면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고민이 생겨날 수 있다. 정 교수는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하다), 즉 과거의 경험에서 현재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번 책에서도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귀감이 될 만한 옛글들을 모아 엮었다. 그는 번역가,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사설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글에 대한 가치판단 역시 독자의 몫이라 여긴 까닭에서다.
“저는 학자로서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옛글을 찾아 해석하고 옮기죠. 이때 중립적으로 보여주려고만 하지, 어떤 의미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때론 제 의도와 다르게 글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죠. 그러나 그 역시도 읽는 사람의 판단에 맡길 뿐이에요. 요즘 자기계발서를 보면 스스로 통찰하도록 원리를 짚어주는 게 아니라 단편적인 요령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 글들은 계속 소비될 뿐, 내 안에 고이지는 않죠. 독자가 글을 곱씹어보고 자기 언어로 소화해야 비로소 책을 통한 성찰이 이뤄진다고 봐요. 또 그런 자기 언어를 갖게 됐을 때 자연히 바깥으로 향하는 말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을 아낀 것 역시 독자의 습정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그가 무어라 말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다 보면 침묵과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자신의 가치를 점검하고 높여주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었다.
“책에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가 나를 업신여기니,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이죠. 이는 ‘인필자모연후인모지’(人必自侮然後人侮之, ‘맹자’)와도 같은 맥락인데, 스스로 모욕하여 수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모멸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날 우습게 보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결국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꾸 남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그 화를 내 안으로 돌려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가치판단을 위한 생각의 중심추
물론 모든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기엔 너무 버거울 수 있다. 중요한 건 내 탓을 할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안목. 이 역시 습정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덕목이다.
“가령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불이익까지 모두 내 탓으로 여겨 감내하라는 건 무책임한 이야기죠. 반면에, 지하철을 탔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인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때라도 내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점점 목적지와 멀어져 엉뚱한 곳에 내리고 말죠. 그래놓고 나는 열심히 왔는데 왜 나를 이런 곳에 내려놓았느냐고 남 탓할 수는 없잖아요. 두 가지 경우는 다소 결이 다른 상황입니다. 무엇을 내 탓으로 돌려야 할지, 생각의 중심추를 바로잡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해요. 아무리 스마트 시대이고, AI가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지만,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통찰력이 발휘돼야 해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인문학의 역할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예순에 이른 정 교수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무엇부터 할지가 문제이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어쩌면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지도 모르겠다. 그는 ‘할 것이 없다’고 토로하는 중장년이 혹 있다면 ‘자모인모’를 되새기길 권했다.
“무엇부터 할 것이냐, 즉 우선순위를 따질 때 몇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하면 더 잘되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와서 남이 해도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의 가치를 올려주고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야 의미 있죠. 자모인모, 내가 내 가치를 올려주지 않는데 누가 올려줄까요? 자기 고민 없이 남을 통해 내 일을 만들려고 하니, 소위 갑질을 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남의 노력을 뺏고 훔치는 짓인데, 그건 부끄러운 일이에요.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서 힘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남도 나를 가벼이 대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이 계속 되고 있어서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나들이 보단 독서를 하며 봄을 맞이 해 보세요.
브라보에서 3월 신간을 소개합니다!
# 화전가 (배삼식 · 민음사)
배삼식의 신작 희곡이다. ‘화전가’는 봄놀이에 꽃잎 전을 부쳐 먹으며 부르던 노래다. 제목과 의미와 대비되는 암울한 전쟁의 시기를 배경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모진 세월을 꿋꿋하게 살아낸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미하우 스키빈스키 저 · 사계절)
아흔 살이 된 저자가 소년 시절 숙제로 썼던 일기에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지며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림 하나하나에 그날의 풍경과 상황, 소년의 천진난만한 추억이 깃들어 그림일기를 보는 듯 마음이 아련해진다.
#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저 · 바다출판사)
식물애호가인 저자가 식물을 가꾸면서 삶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된 경험을 들려준다. 식물을 키우면서 시작된 고민이 다짐이 된 순간들도 담았다.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고, 지키는 과정에서 결심한 삶의 방향을 고백한다.
#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권남희 저 · 상상출판)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유명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해온 저자가 이번엔 자신의 인생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아이를 키우며 가사를 병행했던 ‘번역하는 아줌마’의 삶을 재치 있게 드러내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 죽을 때까지 치매 없이 사는 법 (딘 세르자이 외 공저 · 부키)
신경학 전문가인 두 저자는 “치매는 유전과 노화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삶의 방식 개선으로 두뇌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치매 탈출 솔루션 ‘뉴로 플랜’을 통해 중장년기 젊은 뇌를 유지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 우리가 몰랐던 바이러스 이야기 (대한바이러스학회 저 · 범문에듀케이션)
국내 바이러스학회 전문가 18인이 바이러스에 대한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엮었다.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치료하는 바이러스, 영화 속 바이러스, 국내 최초 바이러스 등 다양한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오탁번의 시는 쉽고 통쾌하고 재미있다. 술술 읽혀 가슴을 탕 치니 시 안에 삶의 타성을 뒤흔드는 우레가 있다. 능청스러우나 깐깐하게 세사의 치부를 찍어 올리는 갈고리도 들어 있다. 은근슬쩍 염염한 성적 이미지들은 골계미를 뿜어 독자를 빨아들인다. 시와 시인의 삶은 정작 딴판으로 다를 수 있다. 오탁번은 여기에서 예외다. 그의 시와 삶은 별 편차 없이 닮았다.
올해로 77세. 어느덧 으슥한 노경에 접어들었지만 오탁번의 시작(詩作) 활동엔 휴업이 없다. 작년에는 시집 ‘알요강’으로 ‘목월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알요강’을 펼쳐드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앞 페이지에 나오는 ‘서문’부터가 ‘오탁번표’ 해학의 폭죽이지 않은가. 그지없이 짤막한 서문의 내용을 보시라.
“오탁번 새 시집 ‘알요강’이 나온대/아직 안 죽었나?/죽긴, 요즘도 매일 소주 한 병 깐대/정말?”
오탁번과 마주앉은 곳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산촌에 있는 원서문학관 작업실. 그는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했다. 폐교를 손질해 꾸민 원서문학관은 퇴직 이후의 삶이 실린 창작공간이다. 용인시에 있는 시니어타운의 자택과 이곳을 오가며 지낸다. 날마다 소주 한 병을 눕힌다고 서문에 드러냈지만,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아마도 주로 창작일 게다. 여차하면 흥겨워 한잔 마시듯이, 여차하면 설레어 작품에 손을 대는 사람. 그게 오탁번이니까. 이즈음엔 손에 쥔 물처럼 새나가는 세월에 눈이 가고 마음이 닿아서일까? 그가 나이 얘기부터 꺼낸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살아 있을 줄 몰랐다. 다행히 남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고 살았다. 밥값은 하고 살았거든.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장수시대다. 오래 살고 싶지 않으신가?”
“얼마 전,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김유정이나 이상이나 다들 30세가 못 돼 죽었다고. 선생 자신도 30세를 넘겨 살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뭔가 공감되는 기분이더라. 오래 산다는 거, 그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게 많거든. 요즘 이빨이 흔들린다.”
“동양의 정신 중에는 노경을 삶의 절정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육체적 노쇠를 빼고 따지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꽃으로 말하면 가장 활짝 핀 상태가 노경이지 않겠는가. 핀 꽃이 마침내 지는 게 죽음이고. 내가 바라는 건, 통째 톡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순간의 미학 속에 지고 싶다는 것이다.”
“나이 들며 찾아오는 태도의 변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
“난 담낭절제수술을 받아 쓸개 빠진 인간이 됐다. 이제 줏대 없이 그냥저냥 살면 된다. 그동안 줏대 있는 척 사느라고 무지무지 애먹었다고. 어휴! 속 시원한 거라. 늘그막에 내 인생의 표리부동을 청산했거든.”
특유의 화통한 언설이 흘러나온다. 언설만이 아니라 오탁번의 시는 흔히 자신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 허울과 가면을 잡아내는 자가심문의 시어들로 직조된다. 그는 일찍이 시라는 차가운 수사관 하나를 고용, 자신을 미행하게 하고 불쑥불쑥 불심검문을 하도록 하명해둔 것 같다. 시로써 자신을 치고 때리니 말이다. 공자가 설한 뉴스 제목을 가져오자면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더라도 엄히 자신의 행세를 점검하라는 뜻)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종교
문학은 재능과 열정의 폭발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오탁번의 문예적 발화(發火)는 이르고 화려했다. 20대 때 중앙지 신춘문예에 동화를 필두로 시와 소설까지 연달아 당선, 문단에 화제를 뿌렸다. 이후 소설에 주력하다 중년 즈음부터 시 쓰기에 몰두해왔다. ‘제명대로 못살 것 같은 소설 창작의 어려움 때문’이었다지. 시란 그에게 무엇일까.
“에헴! 하고 목에 힘주어서는 가능할 수 없는 장르가 시다. 자기 부끄러움에 관한 고백! 내겐 시의 의미가 그렇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악마적인 걸 다 까발리는 행위가 시이고 문학이다.”
“선생은 지난날 글 쓰는 사람의 처절함과 맹렬함을 자살폭탄조에 빗대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 하시나? 쉽게 읽히는 시로 보자면 한칼에 내려치듯 단번에 가볍게 써내려갈 것만 같은데.”
“한칼에? 어림없는 얘기다. 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벼려 시를 쓰는 사람이지 않은가. 늘 사전을 찾아가며 시를 짓다 보면 하염없이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진통을 자심하게 겪으면서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창작이란 어려워 코피를 쏟으며 쓴다. 문학뿐이겠는가? 삶 자체도 마찬가지. 난 실로 코피를 흘려가며 살아왔다. 아이고, 이런 나를 두고 남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았다고 오해를 하네.”
“조지 오웰은 작가의 창작 동기 네 가지를 꼽았는데 순전한 이기심, 즉 명예욕을 첫째로 꼽았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명예는 멍에의 다른 이름 아닌가? 난 명예를 얻기 위해 문단의 패거리 놀음에 끼거나 눈웃음을 판 적이 없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은 가지고 산다.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쓰며,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러나 오탁번의 시에 숨겨진 보석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뭐 어쩌겠나? 보석을 몰라보는 사람만 손해볼 뿐이다.”
“좋아하는 시인은?”
“시라는 건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것이다. 거기에 돌을 얹어 거미줄을 끊어버리는 식의 시를 쓰는 시인이 흔하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은 단연 빼어난 시인이지. 그의 시 ‘백록담’을 보라. 기막힌 수작이지 않은가. 고어와 토속어를 빈번히 사용해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한 백석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작업실 밖 뜰엔 겨울나무들. 거머쥔 것 하나 없는 나목들이 수도승처럼 허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탁번은 이곳에서 지내며 많은 나무를 심었고,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이젠 심고 가꾼 게 너무 많아 관리가 버거울 지경이다. 저만치 사방에서 성벽처럼 에워싸고 범람하는 산경(山景)마저 일쑤 허허로운 건,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사람과 달리 자연은 순환과 회춘을 일삼아서일 테지. 그러나 자연이 주는 도저한 감흥은 노시인의 정신적 체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별에 닿을 시, 산야에 맞먹을 시를 쓰고 싶게 하는 열망의 원천일지도.
그런데 오탁번의 삶과 문학의 진정한 원천은 작고한 어머니다. 우리는 흔히 신성한 신전에서 읍소하거나 백두산이 드높아 자세를 낮추지만, 오탁번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고개를 숙인다. 뜰 한쪽, 햇살이 들이치는 자리엔 어머니의 흉상을 모신 기념비가 고이 세워져 있다.
“어머니는 나의 종교다. 단순히 나를 낳아 길러주신 모성을 향한 고마움 때문이 아니다. 나의 상상력과 몽상의 원천이기도 했거든.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해 소나무 속껍질로 허기를 달랬다. 그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밤이면 필사본 심청전 같은 걸 읽으시더라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란 과정 자체가 나의 문학공부였던 셈이지.”
“고향에 문학관을 꾸린 건 결국 어머니가 못내 그리워서?”
“그렇지. 나에겐 스승 이상의 길이자 현재진행형의 신앙이니까. 문학청년 시절의 어느 날, 술 마시고 미쳐 한강에 빠져 죽으려 했다. 그런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죽을 수가 없던걸. 요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이거 어떡해요?’ 그러면 어머니가 응답하시더라. 텔레파시로.”
“어떤 응답을?”
“‘너는 큰 인물인데 무얼 망설이느냐, 네 뜻대로 밀어붙여라!’ 매번 그런 답이 돌아온다. 일찍이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너는 큰 인물이 될 거야!’라고.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누구나 범죄 없이 잘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글로 자기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그리는 작가를 증오한다.”
“물적 간난(艱難)의 체험 역시 창작의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은 괴롭다. 가혹한 가난에 시달린 성장기에 느낀 감정의 기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분노의 감정이 컸다. 그래서 대학생 때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너 번 징병 거부를 했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 하지만, 내겐 지킬 게 하나도 없었다. 집도 땅도 없다,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무엇이냐, 그런 원망으로 죽을 셈 치고 입대를 거부했지. 나중에 뒤늦게 병역을 마치긴 했지만 울분이 들끓더군.”
히말라야 설산에서 글 쓰고 싶다
오탁번이 냉장고에서 꺼내온 술병을 탁자에 올리더니 잔을 채운다. 이슬처럼 투명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소주다. 큰 공 들이지 않고도 판타지의 회랑을 산책할 수 있게 하는 게 소주 한 병이다. 오탁번은 주량보다는 음주가 주는 감각의 광량(光量)에 심취하는 술꾼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일독 이호색 삼음주(一讀 二好色 三飮酒)라! 이건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시절에 추사가 쓴 현판 글이다. 이것의 원전은 청나라 ‘소대총서’(昭代叢書)이지만, 독서와 색과 술을 즐길 만한 것들 중에서 으뜸으로 쳤으니 인생의 정곡을 찌른 게 아니겠는가. 음주를 세 번째에 둔 건 술로 자칫 망가질 수도 있어서일 거라 본다.”
“반면에 독서를 첫손에 꼽은 건, 놀 때 놀더라도 독서를 먼저 해 정신부터 채우라는 뜻일 것 같다.”
“호색의 색을 반드시 섹스로 읽을 일도 아니겠지. 색즉시공의 그 ‘색’과도 무관하다곤 할 수 없을 테니까.”
“술이 아니더라도 삼라만상에 취하기 쉬운 게 시인이다. 선생 역시 자연에 취해 지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늙다 보니 내가 이젠 어린애 다 됐다. 순진성, 천진성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는 것이지. 내가 사물을 찾아 바라보는 게 아니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사물이 보여주는 그대로 보게 되더라고. 일부러 찾을 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는 얘기다. 이거 아는가. 갓난아이는 촛불을 보면 예쁘니까 만지고 싶어 하고 먹고 싶어 한다. 촛불의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갓난아이의 마음. 이게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노구에 서린 세월의 흔적이 좀은 쓸쓸하지만 카랑카랑한 결기와 시퍼런 촉은 여전하다. 안경 너머 핼쑥한 두 눈은 간간이 빛을 뿜는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시인의 시선은 나무를 밑에서 보는 게 아니라 독수리처럼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감히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낀다고 하면 건방진 소리이겠지만 이젠 일체의 것들에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 무슨 힘으로 나리꽃 새싹은 굳은 땅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라오는가? 경이로워 새싹의 마음이 되곤 한다. 이젠 마음대로 별짓을 다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하나, 건강 문제엔 불편을 느낀다. 자다가 꼴깍 숨넘어가야 제일 좋을 텐데,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떠나게 되면 이는 치욕이지 않겠는가.”
훗날의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당장 문밖에 나가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그러나 그 진상을 알 길이 없는 인생의 폐막에 그는 불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글쓰기라는 숙업. 그러고 보면 그의 불안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종막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겠다.
“요즘 내가 구상하는 게 있다. 히말라야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살아남는 날까지 설산을 바라보며, 일기 형식의 글을 쓰고 싶은 거다. 당신 생각엔 어떤가? 괜찮아 보이는가? 내가 떠난 뒤엔 책이 나오겠지.”
요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국내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공포에 흽쓸리기 보다는 사전예방으로 안전하게 건강을 지켜보세요. 이번달은 특별히 건강을 생각하며 읽을만한 도서들을 소개합니다!!
#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강신용 저 · 내몸사랑연구소)
한의사인 저자는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그 핵심 원인이 ‘장누수’라는 걸 깨닫는다. 장누수의 원인과 과정, 그로인한 질병과 치료 방법 등을 여러 연구 결과와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 선엽 스님의 힐링 약차 (선엽 · 마음서재)
출가 후 협심증과 신경계 질환 등을 앓으며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선엽 스님이 그동안 개발한 약차에 관한 노하우를 총망라했다. 약차가 우리 몸에 좋은 이유와 더불어 82가지 약차의 특징과 효능, 레시피 등을 공개한다.
# 내 몸과의 전쟁 (피지컬갤러리 저 · 책들의정원)
늘 새해 목표로 건강과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작심삼일에 그치는 사람들에게 유튜브 건강 채널의 압도적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피지컬갤러리가 ‘내 몸과의 전쟁’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드는 단계별 방법을 전해준다.
# 스탠퍼드식 수면 클리닉 달력 (이지현 저 · 이덴슬리벨)
수면전문가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지현 원장이 스탠퍼드대 수면 질환 센터와 UCSF대학병원 수면 클리닉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수면 장애를 예방하는 31가지 트레이닝 방법을 소개한다.
# 브레인 푸드 (리사 모스코니 저 · 홍익출판사)
우리가 섭취하거나 피해야 할 음식의 상세 목록과 그 음식의 영양소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설명한다. 식습관을 통해 뇌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테스트와 더불어 뇌를 위한 24가지 레시피를 소개한다.
# 약국에서 만난 건강기능식품 (노윤정 저 · 생각비행)
약사인 저자가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눈, 장, 여성, 수면 건강을 주제로 건강기능식품을 바르게 이용하여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그에 관한 정보와 사용법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들려준다.
2020년 한 해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 - by 유성호
단순한 진심 (조해진 저)
프랑스로 입양된 주인공이 임신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으며 벌어지는 일화를 그린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몰두하며 차츰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든다.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이은규 저)
2012년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했던 이은규 시인이 7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 담긴 49편의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섬세한 시선과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저)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30여 년 학문의 길을 걷는 동안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수한 시절이 빚어낸 삶의 단면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필자 특유의 필치가 녹아든 산문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윤동주 평전 (송우혜 저)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를 되새길 수 있다.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 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예리한 분석이 숭고한 시인의 삶을 재조명한다.
‘논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빈둥빈둥하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바쁘게 노는 건 방향이 있고 의미가 있는 놀이일 것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처럼 인간은 먹고살기 위한 일 외에는 놀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놀이에서 예술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이 생겼다는 사실을 보면 논다는 게 단순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혼자서 놀아도 그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경우 직장이 없어 노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거야 누구나 할 테고 그런 일을 빼고 나면 취미생활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노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집에서 혼자 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힘들지만 즐거운 여름나기’라는 제목으로 전원생활의 빛과 어둠을 비교해 글을 썼다. 즐거운 것 중 하나로 매실주 담그는 얘기를 했는데 늦가을인 요즘, 애주가로서 그때 담근 매실주를 조금씩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심히 골프를 치러 다녔다면 이런 맛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친구가 은퇴 후 10년이 된 나이인데도 테니스를 열심히 치러 다닌다 해서 좀 부러웠다. 나는 젊은 시절 치다 이마를 다친 후 손에서 놨다. 하지만 코트 위의 검투사처럼 사각 틀 속에서 온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테니스의 매력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친구는 체력은 문제없는데 같이 칠 파트너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서글픈 현상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골프나 테니스에 대한 나의 희미한 갈망은 텔레비전 중계로 풀곤 한다.
재미 들린 작은 농사
스포츠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이지만 꽃과 나무들을 돌보는 데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 꽃나무들은 사올 때처럼 예쁘게 가만 있지 않는다. 보기 흉하게 자라지 않도록 가꿔줘야 한다. 그냥 놔두면 야생의 숲처럼 돼버린다. 하루 작정하고 나가 일하면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일을 끝내고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그 즐거움이 스포츠 활동과 진배없다. 무언가를 생산했다는 보람까지 느끼면 쾌감이 더 오래간다.
꽃나무뿐만 아니라 40~50그루 규모의 블루베리 농사도 짓고 있다. 열매를 1년 내내 생으로 또는 가공해서 먹을 수 있어 좋다. 블루베리는 면역력 향상은 물론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눈을 좋게 해주는 효능도 크다. 실제로 연전에 돋보기를 맞춰 뭘 읽을 때마다 써보니 영 거추장스러워서 아예 빼닫이에 넣어놓고 있었는데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부터는 지금까지 돋보기 찾을 일이 없다. 한번은 쓰고 다니는 근시 안경이 맞지 않아 안경점엘 갔는데 시력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현상 아닌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7년 전 블루베리 2년생, 그 어린것을 심어놓고 밤낮으로 물 주며 돌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키가 2m를 넘는다. 커갈수록 일은 더 많다. 잡초 뽑고 오래된 가지 베어내고 더 이상 크지 않도록 긴 가지는 잘라주고, 누운 가지는 지지목을 대주기도 한다. 품종별로 익는 시기가 달라 열매 따기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또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집어서 따야 한다. 수확 시기가 되면 우리 부부의 블루베리 열매 따기 걱정이 시작된다. 내가 “좀 덜 따고 놔두면 어때? 떨어져서 개미가 먹으면 안 될 일이 있나?”하며 늑장을 부리면, 아내는 “1년 내내 먹을 블루베리잼은 어떻게 만들죠? 그렇게 좋아하는 작은애한테는 뭘 보내주죠?” 한다. 블루베리 농사는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과 나누고 지인들에게도 한 번씩 맛보게 하려면 고생스러워도 해야 한다. 사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작은 농사를 지어도 이렇게 배우는 게 많다.
스포츠와 농사를 비교한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럿이 하는 스포츠에 비해 농사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집중을 하다 보면 나름대로 지혜도 는다.
명품 매실주 담그기
매실주 담그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애주가로서 담금 매실주를 조금씩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매실로 주로 우메보시를 만들어 먹는데, 우리처럼 청매를 쓰는 게 아니라 다 익은 황매를 이용한다. 익은 열매는 나무 밑에 보자기를 낮게 매달아놓고 가지를 털면 잘 떨어진다. 우리 부부는 그런 준비까지 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긴 대나무 장대로 털어낸 뒤 주워서 모으는 방식으로 수확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몰입해 작업을 하고 나면 만족감이 든다. 큰 플라스틱 용기에 쌓이는 굵고 누런 매실이 얼마나 듬직해보이던지. 수확 후에는 세척하고 말리는 데 하루를 다 써야 한다. 다음 날에는 큰 유리 용기에 담금용 소주를 붓고 매실주를 담근다. 매실을 저울에 재서 일정량을 쏟아 넣고 거기에 맞춰 소주를 부으면 된다. 자그마치 큰 용기 두개, 작은 용기 한 개. 세 용기에 채워놓고 나면 뿌듯하다. 이런 상태로 5년은 숙성해야 마실 만한 명품 매실주가 된다. 좋다. 5년을 기다려보자 하면서 작업을 마쳤다. 흐뭇한 마음으로.
독서와 음악 감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항간의 말은 맞다. 알면서도 못하는 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 또한 맞다. 학교 다닐 때 취미를 기록해 써낼 때가 있었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피아노, 바이올린, 축구, 노래하기 등을 써넣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독서, 음악 감상 같은 걸 취미라고 기록했다. 커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그때마다 독서 아니면 음악 감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독서를 취미로 할 만큼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걸 큰 다행으로 여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 생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실로 엄청나다. 전국노래자랑, 복면가왕, 히든싱어,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케이팝스타, 위대한 탄생, 미스트롯, 미트터트롯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요즘 프로그램만 꼽아봐서 그 정도이지 노래와 함께하는 것들을 다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민족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클래식 듣기를 좋아해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일단 오디오나 텔레비전 음악 채널을 틀어놓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음악을 듣고 있다. 고교 시절, 서울에 올라와 지내는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을 듣게 됐고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대단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클래식 음악만 들려오면 귀를 기울이곤 했다. 좋은 오디오와 LP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 종종 그 집에 가서 감상을 하거나 빌려와 들어보기도 하면서 음악 감상 취미를 길러왔다.
매혹적인 나만의 ‘소리’에 취하다
20여 년 전 비엔나에서 근무할 때 덴마크 산 뱅앤올룹슨(Bang&Olufsen, B&O)을 제법 비싸게 사서 듣고 다녔다. 그 후 여기저기 옮겨 다닐 때도 늘 잊지 않고 챙겼다. 지금도 제주 집에 놓고 수시로 음악을 듣는다. 나는 한 번씩 서울에 가면 교보문고에 들러 음악 시디를 아낌없이 사온다. 아내는 이 기기에 ‘남편 장난감 1호’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생일 때 선물로 받은 노트북, 소니 카메라는 2호쯤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음향기기는 딱 한 번 고장이 나서 회로를 교체하는 등 수리를 한 적 있지만 아직까지 처음의 성능을 잃지 않고 있다. 무얼 더 바랄까.
내가 듣는 음악, 우리가 듣는 음악은 정말 다양하다. 나는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의 대중음악을 다 좋아한다. 샹송, 팝송, 칸초네, 칸시온, 컨트리, 탱고, 파두 등등. 라디오 방송 중 클래식 다음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클래식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삶이 녹아들어 있다. 감상하다 보면 그 사람들과 교류하는 느낌이다. 적어도 그런 감성으로 모든 음악을 듣고 즐기고 이해한다. 스페인 음악을 듣다 보면 ‘코라존(Coraz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하면 Heart, 즉 마음, 사랑, 애인이다. 노래를 듣다가 이 가사가 나오면 시공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상된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이렇다 저렇다 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전음악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의 기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대중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감정을 고양된 형태로 표현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천재 작곡가들이 온 정열을 바쳐 만든 음악을, 최고의 기예를 뽐내는 천재 연주가들이 빚어내니, 그 소리는 바꿔 말하면 천상의 소리에 지상의 양식이요 품격인 것이다. 그러니 음악에 빠졌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자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하우스 콘서트를 열다
아마추어일 뿐인 음악 애호가로서 크게 한 번 객기(客氣)를 부린 일이 있다.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재영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 황이 한국에 요양차 한두 달 머무르는 기회에 남산 언저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연 것이다. 런던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그는 7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을 배웠고 9세 때 신동으로 등장한 젊은 음악가다. 고교 시절에는 공부를 너무 잘해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왕립음악원에서 입학 허가를 받고 전자를 선택했다. 1688년에 제작된 과르네리우스의 악기로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형용할 수 없이 좋았다. 그는 나흐트무지크(Nachtmusik)란 이름으로 그날 여섯 곡을 선사했다. 좁은 집이었지만 여남은 명이 참가해 나름 성황을 이뤘다. 처음 해본 하우스 콘서트치고 성공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제주와 서울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보고 싶다. 음악 애호가가 많을수록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주 가는 이태원에 루체(LUCE)라는 시니어 아마추어 성악가 모임이 있어 이따금 그들의 연주를 듣는다. 모두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음악의 힘이다.
글 쓰면서 혼자 놀기
집에서 혼자 놀기 중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건 글쓰기다. 이젠 취미가 됐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글을 써서 어디 기고를 하면 원고료도 나오니 돈 써가며 하는 취미가 아니라 시간도 잘 보내면서 돈도 생기는 취미다. 글 써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은 일이라서 어떨 때는 지겹다고 한다. 나는 다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정기 필진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글을 쓴다. 주제와 형식이 자유롭다. 단, 원고료는 없어 일종의 재능 봉사라 할 수 있겠다.
글이라는 건 아무 때나 써지지 않는다. 글 한 편 쓰기 위해 평소에 늘 글감을 생각하면서 지낸다. 이게 또한 재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 공연은 어떤 글감이 될까, 저 활동을 하면 어떤 글로 이어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니 심심치 않다. 글을 발표하면 주변 친구들과 지인, 동창, 각종 단체에도 보내는데 갖가지 독후감을 보고 듣는 재미도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는다.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나름의 원칙을 갖고 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 첫째,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한다. 둘째,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나는 일로서든 취미로서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지만 이 두 가지 기준에 충실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 한순간이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한 생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제2의 직업 (신상진 저ㆍ한스미디어)
커리어컨설턴트인 저자가 적성과 비전에 최적화된 생애 두 번째 직업 찾기 노하우를 소개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수명 연장으로 평생직장과 정년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60대 이후에도 안정적이고 유익한 노후를 보내려면 제2직업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장기적 둔화와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한 실정이다.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을 고려하기보단 빠른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이가 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우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일쑤라고 지적한다. 책의 초반부에는 자신의 특성을 분석하고 제2직업을 탐색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이어 대표 유형별 직업 특징을 정리하고, 자기주도형 직업인 창업, 창직, 프리랜서에 대해 소개한다. 후반부에서는 주목할 만한 새로운 직업과 성공적인 경력 관리를 위해 염두에 둘 점들을 일러주며, 제2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을 조언한다.
◇ 심방골 주부의 엄마손 집밥 (심방골 주부 저ㆍ청림Life)
유튜브 구독자 32만, 누적 조회수 6000만 뷰에 빛나는 심방골 주부의 집밥 요리책. 40년 차 주부의 내공을 살려 건강한 식재료로 맛을 낸 엄마표 밥상 비결을 공개한다. 기본 반찬부터 일품요리, 김치까지 간편한 레시피로 풀어냈다.
◇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 웨인 W. 다이어 저ㆍ토네이도)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심리학자, 영성가로 알려진 웨인 다이어 박사의 유고작이다. 삶의 현자로 불리는 작가, 철학자 등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발밑에 있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며 현재의 순간을 사는 데 집중하도록 한다.
◇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원제 저ㆍ불광출판사)
2011년부터 블로그와 SNS에 수행기를 올리며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원제 스님의 글 모음집이다. 수행은 곧 수많은 물음을 열어젖히는 과정이라 강조하며 저자는 끊임없는 갈등과 성찰을 통해 ‘알 수 없는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고양이와 할머니 (전형준 저ㆍ북폴리오)
길고양이와 할머니들의 교감을 그린 포토 에세이다. 저자가 5년 넘게 부산 곳곳에서 촬영한 수많은 길고양이의 사진들이 수록돼 있다. 또 투박하지만 정겨운 부산 할머니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가슴 따뜻한 위로를 선사한다.
‘조선의 미식가’와 더불어 읽을 만한 추천도서 - By 주영하
◇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 (장선용 저)
시어머니가 외국에 사는 며느리들에게 틈이 요리법을 적어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누가 만들더라도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재료와 양념의 분량을 정확히 계량해 음식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 서울의 전통음식 (이귀주 저)
우리 전통음식을 끼니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측면에서 재조명한다. 수백 년 역사 동안 조상들의 지혜로 체질에 맞게 만들어지고 발전되어온 전통음식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합리적인 음식임을 알게 한다.
◇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저)
식객에서 고객으로 변모한 근대 외식업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국밥집, 대폿집 등의 주요 메뉴인 설렁탕, 갈비, 빈대떡 등을 아우르는 한국 음식 100년 역사를 통해 일상 속 음식에 투영된 문화와 역사를 읽어낸다.
◇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주영하 저)
신발을 벗고 앉아 식사를 하고, 찌개를 나눠 먹는 등 한국인 특유의 식사 방식에 대해 다양한 사료를 통해 들려준다. 책을 읽고 나면 왜 우리가 이렇게 먹고 마실 수밖에 없었는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따끈한 차 한 잔 생각나는 가을의 끝자락 독서의 계절에 읽을 만한 신간을 소개한다.
◇ 죽음 가이드북 (최준식 저ㆍ서울셀렉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죽음학 강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등을 펴내며 국내 죽음학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최준식 교수의 신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겸 한국죽음학회 회장인 그는 인간의 죽음과 무의식, 전생, 사후세계 등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왔다. 김 교수는 이번 책에서 다양한 죽음의 모습을 통해 현재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삶과 죽음에 대해 탐구해볼 만한 여섯 가지 주제 속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장자를 비롯해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 작가, 철학가 등의 이야기를 담아 죽음에 대한 다양한 철학을 소개한다. 첫 장을 ‘죽음의 성찰’로 시작해 마지막 장을 ‘삶의 성찰’로 매듭짓는 구성 또한 돋보인다. 저자는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지금의 삶을 영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며 “죽음을 내 삶 안으로 들여와 항상 생각하며 산다면 삶은 분명 자유롭고 심오해질 것”이라 조언한다.
◇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저ㆍ열린책들)
10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후속편. 전작에서 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쳤던 노인이 이번에는 101세 생일에 열기구를 탔다가 조난하며 또 다른 모험을 떠난다.
◇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저ㆍ난다)
故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이다. 2011년부터 지난해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7년간 기록한 시작 메모를 비롯해 대표작과 시론 등을 담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시인의 삶을 문장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 할머니의 요리책 (최윤건, 박린 저ㆍ위즈덤하우스)
할머니가 지어주신 밥을 먹으며 자란 손녀가 할머니와의 소중한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 만든 요리책이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의 삐뚤빼뚤 손글씨와 손녀의 사랑스러운 손그림이 어우러져 레시피에 온기를 더한다.
◇ 200세 시대가 온다 (토마스 슐츠 저ㆍ리더스북)
알츠하이머와 암은 물론, 노화와 죽음에 도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비밀 연구소의 흥미로운 의학 연구들을 소개한다. 기자 출신인 저자가 10년간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실리콘밸리 연구소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