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평)당 분양가 최대 6000만원(한국감정원). 100평형 임대료는 보증금 25억원에 월세 429만원.
연예인을 비롯해 사회 지도층, 재벌 자녀 등 부유층들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남산 인근 '한남 더 힐' 아파트에 '전(錢)의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국토교통부)까지 나서 중재에 나섰지만 분양가를 더 받으려는 건설사와 더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소유하려는 세입자 간 싸움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감정평가업계의 밥그릇 싸움까지 겹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한남더힐 민간임대아파트의 분양전환을 위한 감정평가 적정성 여부를 감정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양측 감정평가서 모두 ‘부적정’으로 판정했다.
옛 단국대학교 부지에 지은 한남더힐은 지하 2층, 지상 2~12층, 32개동, 6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및 연립주택이다. 2008년 5월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고 2009년 2월 분양, 2011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분양전환은 지난해 7월부터 추진 중이다. 시행사는 한스자람, 시공사는 금호산업이다.
한남더힐은 평균 임대보증금이 3.3㎡당 2350만원에 달하는 등 고급 주거지로서 서울 신흥 부촌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최고 임대료가 전용 332㎡ 기준 보증금 25억2070만원에 월임대료는 429만원에 달한다.
이러한 한남더힐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분양전환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7월 이후부터다.
시행사측은 미래새한·대한법인을 평가법인으로 선정, 600가구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했고, 입주자측은 이에 맞서 나라·제일법인을 감정평가법인으로 선정해 각각 감정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양측의 감정평가액 격차는 최대 3배 가까이나 났다. 가장 평형이 큰 전용 332㎡의 경우 입주자측에서 의뢰한 업체 평가금액이 3.3㎡당 2904만원 이었다면 시행사측이 의뢰한 업체 평가금액은 3.3㎡당 7944만원이었다.
이를 한채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입주자측은 29억2160만원, 시행사측은 79억9214만원으로 무려 50억원 차이나 난다.
국토부는 이 같은 논란이 확산되고 입주자측에서 진정을 제기하자 감정원에 의뢰해 올해 1월부터 타당성 조사를 벌였고, 감정원은 양측 모두 부적정하다고 결론내렸다.
감정원은 감정평가법인들이 주된 평가 방법으로 채택한 거래사례 비교법에서 사례 선정이나 시점 수정(사례로 택한 부동산의 거래 당시 가격을 현 시점의 가격으로 환산하는 일), 품등 비교(조망·위치 등 아파트의 품질을 결정하는 조건들을 비교하는 일) 등에서 대부분 미흡했다고 판정했다.
다시 말해 세입자 측 평가법인은 너무 싸게, 시행사 측 법인은 너무 비싸게 평가액을 산정했다는 것이다.
총 600가구에 대한 평가총액은 세입자 측의 경우 1조1699억원, 시행사 측은 이보다 2배 넘게 높은 2조5512억원으로 산출했다. 감정원은 양측의 중간가격에 해당하는 1조6800억∼1조9800억원을 적정가격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국토부 중재안에 대해 감정평가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감정평가협회와 입주민측 모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릴리어네어(Trillionaire)’
자산 1조 달러가 넘는 슈퍼 갑부를 표현하는 말이다. 수년 안에 이런 슈퍼 갑부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5일(현지시간) 개인자산이 1조 달러(1천30조원)에 달하는 슈퍼 갑부가 빠르면 25년 안에 출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꿈의 자산 1조 달러는 억만장자가 천 명이나 모여야 하고, 현재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자산 약 720억 달러)가 자산을 14배나 더 불려야 가능한 어마어마한 액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대로 갑부들의 자산이 늘어난다면 2039년에는 1조 달러는 넘어서는 갑부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세무 전문 변호사 밥 로드는 “부의 집중 정도가 마치 미국 남북 전쟁 후 대호황시대를 연상 시킨다”며 “2039년에 1조 달러 자산을 가진 갑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웰스 인사이트'의 컨설턴트 올리버 윌리엄스는 "1조 달러 자산가의 탄생은 50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은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서 60년 안에 11명의 자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먼저 ‘트릴리어네어’가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가장 먼저 자산 1조 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투자의 신’ 워렌 버핏,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등이 뒤를 잇는 후보로 꼽혔다.
윌리엄스는 “개인용 컴퓨터로 새로운 시대를 이끈 게이츠처럼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첫 번째 트릴리어네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 부족과 같이 전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거나, 페이스북처럼 우리가 필요성을 몰랐던 것을 발명할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벌 소유 부동산의 경매 법정 등장은 보통 재벌 파산의 종착역으로 인식된다.
몰락한 재벌들은 보통 법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차입하다 경영 상태가 악화하면 회장 개인 소유 주택이나 토지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다. 이 때문에 회사 부동산이 우선 정리돼 채권자에게 넘어가고, 회장 소유의 부동산은 마지막까지 남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벌가가 소유한 부동산은 회사가 무너진 뒤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만에 경매에 부쳐지는 게 일반적이다.
25일 경매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도 과거 재계를 주름잡던 재벌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이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잇따르며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재벌 회장들의 이름이 세간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1980년대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을 이끌던 고 양정모 회장 일가가 소유한 서울 성북동 고급 주택은 다음 달 2일 경매 법정에 나온다. 양 회장의 장남 양희원 아이씨씨코퍼레이션 대표 명의의 이 단독주택은 양 회장이 거주하다가 1987년 국제상사 명의로 넘어간 뒤 1998년 양희원 대표가 매입했다. 양 대표는 이 집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을 경매로 넘기는 처지가 됐다.
지난 1월에는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의 일가가 거주하는 빌라가 법원 경매에 나왔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고급 빌라 밀집 지역에 자리한 이 주택은 백 회장의 부인 명의로 돼 있으며, 최초 감정가격은 15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주택의 이전 주인은 역시 몰락한 재벌인 삼미그룹의 김현철 회장으로 백 회장이 삼미그룹 부도 이후 경매에 나온 것을 2003년 11월에 낙찰받아 눈길을 끈다.
프라임그룹은 강변 테크노마트 개발 성공 이후 동아건설 등을 인수하며 외형을 키웠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삼안이 2011년 8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수백억원대의 부실·불법 대출 혐의로 최근 징역 4년형이 확정된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 소유의 고가 주택도 경매에 부쳐져 지난 1월 낙찰됐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채 회장 소유의 청구빌라트(전용면적 245㎡) 두 채는 감정가 각각 12억원, 12억2천만원에 경매에 나와 3번 유찰 끝에 두 채 모두 6억5천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국내 최초의 대형 패션전문 쇼핑몰 '동대문 밀리오레'의 성공 신화로 한때 주가를 높이던 유종환 밀리오레 대표의 자택은 지난해 12월 경매 매물로 등장했다. 유 대표 소유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저택으로 감정가 총 60억6천966만200원에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법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경매와는 사례가 조금 다르지만 STX그룹 해체와 함께 '샐러리맨 신화'의 막을 내린 강덕수 전 회장의 서울 서초동 고급 자택도 지난 1월 급매물로 시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금융권에 진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불가능해지자 자신이 거주하던 집의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최근 사례 이외에도 과거 내로라하는 재벌 일가의 집이 경매로 넘어간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12년에는 두산그룹의 일원이던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005980]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이 경매 물건으로 나왔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성북동 자택 역시 같은 해 경매 법정에 등장했다.
2008년에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이, 2007년에는 김중원 전 한일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역삼동 단독주택, 범양식품 박승주 전 회장 일가의 성북동 단독주택이 각각 경매됐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살던 서울 방배동 자택이, 2002년에는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이 각각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과거에는 몰락한 재벌의 집은 소위 '망한 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제 값에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파산한 재벌들이 살던 집이 경매에서 인기를 끄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귀띔이다.
법무법인 열린의 정충진 변호사는 "재벌 소유 주택의 경우 내부 인테리어와 조경 등이 잘 돼 있어 실제 가치가 감정가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며 "최근 이런 점에 주목하고 경매장에 나온 재벌 소유의 주택을 눈여겨 보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글로벌 가구업계의 공룡 ‘이케아(IKEA), 세계 3대 SPA(제조유통일괄화 의류)브랜드 H&M, 세계적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뛰어난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스웨덴의 대표기업이다. 국내총생산(GDP)의 30%, 주식시장 시가총액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최대재벌 발렌베리 그룹을 비롯해 소수의 대기업에 국가의 부(富)가 집중돼 있다. 몇몇 대기업 집단이 GDP의 65%이상을 점유한다. 이를 두고 독점자본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에 경제가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과 구조가 유사하다.
하지만 복지제도와 국민의 행복도는 두 나라가 차원이 다르다. 특히 스웨덴은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이름이 높다. 지난해 유엔인구기금(UNFPA)과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인터내셔널에서이 전 세계 91개국을 대상으로 노인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질을 조사했다. 각국 노인의 소득, 건강, 고용 등이 평가대상이 됐다. 그 결과 스웨덴은 총점 89.9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39.9점을 얻은 한국은 67위에 머물렀다.
복지정책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우리나라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스웨덴식 복지모델이 정답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국이 대기업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의 비슷한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음에도 은퇴이후 노후 생활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를 만나 모범으로 통하는 스웨덴식 복지모델에 대해 알아봤다.
◇선별적 노인 복지로 돌아선 스웨덴
“스웨덴 국민은 대부분 평생 동안 일을 하고 연금을 받는다. 전체 노인 중 약 15%정도만 기본 연금 매월 200만원 정도로 생활하고 나머지는 근로소득에 의한 추가연금을 받는다. 스웨덴에 극도로 가난한 노인은 없다.”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 노인 복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스웨덴 국민은 법정 정년 연령인 65세까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은퇴이후 85%가량의 노인은 연금을 타고 있다는 설명이다.
스웨덴의 노인 복지도 기본은 연금이다. 스웨덴 연금제도의 역사는 깊다. 이미 1913년에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적용되는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에서 시행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기초연금은 1946년부터 시작했다. 1960년에는 낮은 공적연금을 이유로 부가연금제도(ATP)를 만들었다. ATP는 고용주가 근로자의 임금의 14%를 적립하면 은퇴직전 15년 평균 소득을 연금으로 내줬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와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연금 재정이 심화되자 10여년의 논의 끝에 1998년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먼저 모든 노인에게 주던 보편적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저소득층 노인만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소득이 높은 은퇴직전 15년을 연금산정 기간으로 정하는 대신 연금 기여 실적에 비례해 경제성장률만큼의 이자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한 뒤 연금을 지급하는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바꿨다.
현재 스웨덴 국민은 소득의 18.5%를 연금 보험료로 낸다. 이 중 16%는 연금에 투입된다. 나머지 2.5%는 펀드 등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투자수익에 따라 은퇴 후 받는 연금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다니엘손 대사는 연금개혁에 대해 “연금이 사회와 같이 발전해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연금이 경제성장과 맞물릴 수 있도록 재조정하기 위한 개혁이었다”며 “2008년 리먼사태 등을 제외하면 연금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제도는 모두를 위한 것
한국은 노인 복지를 둘러싸고 세대 간 시각차가 큰 상황이다. 세대 간 갈등은 노인을 위한 복지예산 배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스웨덴에서도 세금부담률이 50%에 달하는 등 복지제도를 두고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니엘손 대사는 “젊은 세대는 학교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하고, 노년층은 연금에 더 투자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돈(예산)은 항상 충분치 않다”며 “복지는 균등하게 모든 사람에게 제공돼야 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은 복지제도를 둘러싸고 큰 세대차이가 없다. 25세까지 대학까지 모두 무료로 다니며 혜택을 받는다. 25세부터 65세까지는 다시 사회에 세금을 내고 65세 이후는 다시 혜택을 받는다. 국민이 복지를 내놓고 받을 때를 알고 있어 세대 간 충돌이 덜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을 서로의 경제적 의존에서 찾으면서 각자가 독립된 세대라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신도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경제적으로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부모를 돌보는 것이 사랑이나 공경의 척도로 여겨지는 등의 분위기를 완화시켜야 세대 간의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니엘손 대사는 “20대 시절에는 윗세대가 빨리 은퇴해야 직업을 찾기가 수월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누군가가 은퇴해야만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젊은 층과 노년층은 경쟁관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인 공경해온 한국, 그들의 경험 경시 이해 안 돼
스웨덴의 연금 등 복지제도가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세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세금은 국민의 근로 소득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고용안정성이 그만큼 뒷받침됐기에 국민들이 복지정책에 세금이 쓰이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은 한국처럼 정년도 못 채우고 퇴직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적으로 해고시키는 게 매우 힘들어 일을 하고 싶으면 안정적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며 “공기업이던 사기업이던 일할 의지가 있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잘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 사회는 경험을 중시한다. 노년층이 IT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충분한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이든 사람이 많아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한국기업과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젊은 층의 아이디어나 창의력만큼 노년층의 경험을 중시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인 한국에서 그들의 경험을 중시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며 “한국의 낮은 출생률을 고려할 때 조만간 노년층의 경험을 더 높이 사는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의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점점 커지는 것은 가난한 노년층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며 “어느 정도 수준의 기초연금이 옳다 그르다는 것은 말하기 어렵지만 사회적인 책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네가 가거라. 망얀족에게. 네가 직접 가거라!”
박운서(75·사진) 전 통상산업부 차관이 한국에서의 모든 명예를 내려놓고 필리핀 생활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한 마디다. 박 전 차관은 꿈에서 필리핀 선교 생활을 시작하라는 목소리를 들은 후 2005년부터 벌써 9년째 현지에서 망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 출신이 필리핀 오지에서 쌀농사꾼이 되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그는 ‘네가 가라, 내 양을 먹이라’는 책 발간을 통해 새롭게 풀어냈다.
박 전 차관은 제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뉴욕총영사관 경제협력국 영사, 대통령 경제비서관,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통이다. 관료 시절 대외협상에서 보여 준 기백으로 ‘타이거 박’이란 별칭을 얻었고,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및 데이콤ㆍ파워콤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 전 차관은 이 책에서 2005년을 중요한 인생 전환의 한해로 기억했다. 은퇴 이후 필리핀 선교 활동을 위해 현지에서도 오지인 민도로섬으로 돌연 떠난 첫 해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일환으로 쌀농사를 시작했지만 처음엔 시행 착오도 많았다. 농사와 관련해선 일자무식이었던 데다, 현지에서 고용한 일꾼들도 야속하게 구는 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농사 시작 2년 후인 2007년부터는 효과가 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당제 임금 방식을 도급제로 바꾸고 직파법이 아닌, 이양법을 고집하면서 주변 농부들보다 평균 20~30% 더 생산했다. 연간 평균으로는 약 4000가마의 벼를 수확했다. 박 전 차관은 쌀농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1년 수확량 중 벼 400가마를 개척 교회와 교육 입양생들을 돕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박 전 차관은 인근 아토이 마을에서 망얀족들을 위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망얀족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빈곤에 시달리는 부족이다. 박 전 차관은 아토이 마을에서 망얀족의 처참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선교 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웠다. 망얀족에게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아토이 마을에 처음으로 예배당을 만들었다.
이후 박 전 차관은 리마스, 피난타오, 다쿠탄, 산시드로, 히낭오 등 총 12곳의 마을에 망얀족을 위한 예배당 설립을 확대해 나갔다. 일흔이 넘은 박 전 차관은 이 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지고 사고를 당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더 깊은 오지로 들어갔다. 교통수단도 두발과 물소 등에 불과했고, 건축 자재도 모두 등짐으로 옮겨야 했다. 과거 경제관료 시절 ‘타이거 박’으로 불릴 만큼 저돌적이었던 그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이에 외부인에 배타적이었던 망얀족도 변화했다. 먼저 박 전 차관을 따르는 가하면,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필리핀 생활을 시작하면서 몸무게가 15kg 빠졌다. 하지만 건강은 오히려 40대로 돌아왔을 정도로 좋아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위공직자들과 재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갖은 비리에 연루돼 매스컴을 장식하는 현실 속에서 박 전 차관의 이 같은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부호 7명이 전 세계 10대 부동산 재벌에 포함됐다고 중국 부자연구소 후룬연구소가 2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후룬연구소는 이날 발표한 ‘2014 세계 10대 부동산 재벌 순위’에서 홍콩의 리카싱 청쿵 부동산그룹 회장이 1위를 기록했다. 리카싱 회장의 자산은 330억 달러다.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의 자산은 250억 달러로 2위에 올랐다.
리쇼키 헨더슨 부동산그룹 회장의 자산은 210억 달러로 3위를 차지했고 16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로버트 쿡 샹그리라 호텔그룹 회장이 4위에 올랐다.
후룬연구소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립자가 전 세계적으로 자산이 가장 많은 부호에 올랐다고 밝혔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위라고 후룬연구소는 전했다.
후룬연구소는 전 세계적으로 자산이 10억 달러가 넘는 부호가 1867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들 부호 가운데 946명은 전년보다 자산이 증가했다. 318명은 줄었으며 123명의 자산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부호 그룹에 새로 진입했다.
전 세계 부호중 824명은 아시아계였고 이들 대부분은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계 부호는 전년보다 108명이나 늘어 457명에 달하면서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이들 중 291명은 본토, 64명은 홍콩, 37명은 대만, 2명은 마카오 출신이었다. 외국 거주자는 63명이었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1775년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 황태후(1729~1796)의 후원으로 설립된 곳이다.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예술적 제품으로 지난 238년 동안 덴마크 왕실을 비롯한 전세계 명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뛰어난 공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와 총 1197번의 붓질을 통해 완성되는 ‘블루 플레인(Blue Plain)’은 장인들의 자부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품격을 갖춘 제품으로 평가된다.
덴마크에서 로얄 코펜하겐은 하나의 도자기 브랜드를 넘어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 유산이자 자부심이다. 단순히 도자기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산업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동 시대 예술가들과 협업해 ‘메가(Mega)’, ‘엘레먼츠(Elements)’를 출시하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Everyday Luxury(일상에 럭셔리를 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명품의 예술적 가치를 일상 생활에서 전달하고 있는 로얄 코펜하겐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국에는 지난 1994년에 한국로얄코펜하겐이 설립되어 전국에 16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일상에 럭셔리를 담다… 로얄 코펜하겐의 탄생= 18세기 유럽 귀족들은 금, 은, 주석 등의 금속 재질 식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실크로드를 통해 자기가 아시아에서 수입되었고, 귀족들은 하얗고 매끈한 표면의 도자기를 ‘하얀 금’이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이 시대에는 도자기 생산 여부가 강대국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자기 공장들은 각 국의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였고, 유럽인들은 자국 공장에서 생산된 화려한 화기와 식기류를 선물로 교환하며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사용했다.
당시 유럽은 기술 부족으로 백자처럼 희고 매끄러운 재질의 자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고 질그릇 수준의 도자기 제작에 만족해야 했다. 1710년대 마이센(Meissen) 도자기 공장이 자기 제작 기법을 알아냈으나 제작 기법을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하고 있었다.
1770년대 초반에는 자기의 원료가 널리 알려지고 관련 책들이 발행됐지만 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광물학 전문가였던 약제사 프란츠 하인리히 뮐러는 1770년 초부터 실험을 시작해 석영, 고령토, 장석을 이용해 경질 자기라 불리는 중국 도자기를 만드는 비법을 알아냈다. 훌륭한 품질의 자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이후 1775년 덴마크의 줄리안 마리 황태후와 그녀의 아들이자 왕세자인 프레데릭이 로얄 코펜하겐을 설립했다.
로얄 코펜하겐의 최초 공장인 덴마크 왕립 자기 공장은 약 100년간 왕족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1868년에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덴마크 왕실의 이름과 특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 1884년 알루미나(Alumina) 도기 공장과 합병되면서, 코펜하겐의 교외에 위치한 프레데릭스베르의 새 부지로 이사했다.
1885년에는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아놀드 크로그(1856-1931)가 아트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 제품에 언더글레이즈 기법(유약 아래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발전시킨 새로운 기법을 적용했다. 풍경을 묘사하고 자연주의적 채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기법의 자기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전시됐고, 이후 로얄 코펜하겐은 언더글레이즈 기법을 적용한 자기 생산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빙앤그론달은 1853년에 설립된 자기 공장으로, 로얄 코펜하겐과 경쟁을 펼치다 1987년에 로얄 코펜하겐그룹으로 인수됐다. 로얄 코펜하겐은 약 두 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를 비롯한 전 세계 가정에 예술, 전통 그리고 장인 정신을 전하고 있다.
◇오버글레이즈로 탄생한 플로라 다니카= 플로라 다니카는 오버글레이즈 채색 기법의 가장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한 예로, 로얄 코펜하겐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오버글레이즈(Overglaze)’란 전문용어는 가마에서 재벌구이를 한 후에 채색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채색이 된 자기를 섭씨 850도에서 한 번 더 구워 염료가 녹아 유약과 융합되도록 한다. 금 장식은 구운 직후에는 매트하고 무뎌 보이나 유리 붓이나 사포로 다듬은 후에는 빛나는 광택으로 나타난다.
플로라 다니카 제품은 하나 하나가 상당량의 작업에 따른 결과물로, 수많은 손을 거쳐 완성된다. 톱니 모양의 가장자리는 보통 자기 점토가 아직 부드럽고 유연할 때 수작업으로 잘라내어 모양을 만든다. 과일 바구니와 아이스 돔과 같은 아이템을 조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는 극도의 인내력과 정확성을 요구한다. 자칫 작은 실수가 하나라도 생기게 되면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숙련된 장인은 하루에 약 하나에서 한 개 반의 과일 바구니를 재단할 수 있다. 구멍을 뚫은 후에는 가장자리를 물을 묻힌 작은 붓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다듬어 모든 부분의 울퉁불퉁한 부분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매끄럽게 만든다.
뚜껑, 덮개, 손잡이에 달려 있는 꽃 가지들은 꽃잎 한 장, 수술 하나까지 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가끔 수술이 워낙 작은 탓에 핀 끝을 이용해 꽃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 작업이 끝나게 되면 아직 채색되지 않은 플로라 다니카 아이템들을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바르고 1430도 온도에서 재벌구이를 한다.
이 공정들은 200여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이드라인을 면밀히 따른다. 젖은 상태의 부드러운 자기 점토를 단단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흰색의 자기 제품으로 변모시키는 공정은 위태롭기 때문에 자기를 제대로 지지해주지 않으면 굽는 동안 무너지거나 모양이 변형된다.
회사 관계자는 “플로라 다니카에는 2등급 제품이란 없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제품은 가차 없이 폐기해야만 한다”며 “200여년 전 그랬던 것처럼 오늘 날 플로라 다니카를 완벽하게 생산해내는 것은 팀 내의 협력과 최고의 예술성 간의 상호작용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자, 여기 여섯 가지의 컬러가 있다. 빨강, 노랑, 파랑, 주황, 초록, 보라 이중에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컬러를 한가지든, 두 가지든, 세가지든, 마음껏 골라보라. 오래 생각하지 말고 여섯 가지 색을 한눈에 훑었을 때 눈에 들어오거나 끌리는 색을 고르면 된다. 단, 6가지를 다 고르지는 말도록 하자.
이 여섯 가지 대표적인 컬러에 대한 선호도로 한 사람의 성격과 성향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각각의 컬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표방하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컬러가 지닌 의미와 컬러에 대한 선호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최근 부상하는 컬러 마케팅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요즈음 중요시되고 있는 주거공간의 컬러 마케팅과도 연관이 있다. 본인이 선택한 컬러를 중심으로 이제부터 컬러에 따른 성향을 파악해보자.
◆빨간색을 선택한 사람-좋고 싫음이 분명한 정확한 성격
빨간색은 힘과 열정, 사랑, 질감, 심장, 미움, 등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색상이다. 빨간색을 선택한 사람은 특히 ‘돈’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기업체임원의 70퍼센트 이상이 빨간색을 좋아한다. 아마도 건설업에 종사하시는 임원 분들 중에서도 빨간색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부동산 재벌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조선대 문승렬교수는 ‘한국부자, 세븐 파워의 비밀’에서, “부자의 상징은 붉은색이다”라고 했다. 정확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흑백논리가 강하다. 친해지기는 쉽지 않으나 일단 친해지면 끝까지 간다. 반면 부정적인 인상을 받으면 오래 정을 쌓은 물건이나 사람도 단칼에 잘라버리는 단호한 면이 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돈보다는 명예를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40퍼센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다. 여섯 가지 컬러 중에 가장 선호도가 높다. 파란색은 지식, 엄마, 지구, 권력, 하늘, 물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성공을 지향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남자의 대다수 파란색을 선호한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한다.
빨간색이 돈을 상징한다면 파란색은 명예를 중시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당이 파란색을 상징 색으로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파란색을 로고로 사용하는 삼성의 경우 안심하고 사서 오래 쓸 수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파란색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톡톡 튀고 첨단 유행을 걷는 제품은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 언제나 보편 타당한 것을 선호한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정의로움을 추구하는 개혁성향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며 그 태양 빛을 받는 달의 색이다. 노란색을 선택한 사람은 항상 깨어 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활발하게 움직이기를 즐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노란색은 개혁과 혁신적인 성향을 상징하는 데 주로 쓰인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조금씩 튀는 사람들이다. 윗사람에게 바른 소리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사고방식 자체가 정의롭기 때문이다.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강한 소유욕과 추진력의 소유자
소유욕과 고집, 확고함을 나타낸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남녀를 불문하고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강렬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호기심과 궁금증 또한 남다르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인간관계 좋지만 뚜렷한 주관
변화의 색이다. 스스로가 미숙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배움에 열심이다. 인간성이 좋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 지적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거나 다른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서 인생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주황색을 좋아하는 사람-베푸는 일을 즐기는 따뜻한 성향
공유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녹색과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주황은 따뜻하고 온화하며 즐거운 기운을 가지고 있다. 주황색을 선택한 사람들은 겉으로는 밝고 낙천적으로 보이지만 가슴에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한번 마음에 들면 가리지 않고 다 퍼주는 스타일이다. 조직 생활도 가장 잘 화합하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을 여섯 가지 성향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컬러는 여섯 가지이지만 우선 순위나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수천, 수만 가지 성향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내적인 이미지를 알아야 밖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를 잘 연출할 수 있다. 이미지컨설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적 이미지이다.
좋아하는 컬러에 따라 성격이 보여지는 것도 있지만, 컬러의 이야기를 하는 더 큰 이유는 무채색의 조화보다는 컬러를 사용하면 더 젊어 보이고 액티브 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탁한 컬러만 연출하지 말고 선명한 컬러가 포인트로 들어간다면 좀 더 활동적인 이미지 만들어 질 것이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
“올해로 31년째, 이 시대를 사는 한국 여성으로서 좋은 그림을 하나 남기고 싶었다. 대중과 가장 빠르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의식주 가운데 옷이 아닐까. 우리 문화의 철학을 우리 옷에 표현한다. 나는 옷을 많이 팔기보다 내가 지은 옷이 사람의 생각을 바꿔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만든다. 옷에 주문을 넣는 것이다.”
‘질경이 우리옷’ 이기연 대표는 우리 옷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단순히 외형만 한복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선조의 생활양식과 마음가짐에 녹아 있는 요소를 옷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질경이 옷을 입는 사람만큼은 옛것에 대한 소중함과 우리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학 때 조소를 전공하다 디자인으로 옮겼다. 그림쟁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옷밖에 없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예술의 폭을 넓히고 싶었고,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는 것이 옷이라고 생각했다. 예술을 캔버스에서 가슴으로 옮겨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사람이 바로 움직이는 전시장”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문화의 개념은 생활방식이다. 문예, 자연, 놀이, 의식주, 옛이야기 등을 쭉 찾아다니면서 우리나라 선의 특징을 찾고 전통문화를 배워나갔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철학이 담긴 우리 옷을 만든다’는 이념 아래 우리문화 속 철학을 옷으로 고스란히 재연해냈고, 실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우리 옷인 생활한복을 탄생시켰다. 그는 “우리나라 옷은 보자기 같은 옷”이라고 말했다. 서양 옷은 고정된 형태와 사이즈에 우리의 몸을 끼워 맞춰야 하지만, 우리 옷은 우리 몸의 형태에 맞게 싸는 것이기 때문. 그는 “저는 반만 만드는 사람이다. 완성은 사람 몸에 가서 한다. 우리 옷은 착장자체가 사람에게 여유 공간을 주고 순환시키며 운동하게 한다”며 “현대인들이 입는 옷의 형태는 서구식으로 몸을 꽉 쪼은다. 움직이는 감옥을 입고 다니는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본격적으로 우리 옷에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 옷 입기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 옷을 직접 무료로 수선해주는 ‘낡은 옷 되살리기’ 행사도 진행했다. 약 10여 년간 독일과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어 우리 옷의 한류에 기여했다. 바이어(buyer)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수출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는 “외국인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후원자로 자처하기도 했다. 매장을 내라는 제안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우리 옷에 대한 지독한 열정과 뼈를 깎는 창작노력의 자랑스러운 결과였다.
반면 창작을 바탕으로 하는 디자이너의 세계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창 이 대표가 소신있게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펼쳐나갈 때쯤 디자인 도용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1997년 IMF로 힘들 당시, ‘우리 것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분위기가 일면서 내가 하는 일이 주목받게 됐다”며 “그러면서 모든 곳에서 베끼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영업을 맡기고 디자인만 하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나는 옷을 만드는 이유가 남들과 다르다. 옷을 만들어서 재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목적이 달라서 행복한 동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얼마 뒤 그의 소중한 창작의 결과물들은 타 매장에 보란 듯이 진열됐다. 주간지 광고에도 도배됐다. 결국 해당 기업과 법정싸움까지 갔다. 긴 소송 끝에 법원은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줬고, 해당 기업은 문을 닫고 말았다. 이 사건은 디자인 저작권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지금도 학회에서 거론되기도 한다.
이 대표는 30년 디자인 인생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쉼 없이 달렸다. 조금은 쉬어갈 법도 한데 그의 우리 옷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이제는 차세대 디자이너까지 양성한다. 그는 “내가 했던 작업들이 우리 것을 위해 어떤 곳에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고 소망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남녀 모두 장래 배우자의 이상적인 직업으로 공무원이나 교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사회가 재벌 위주 경제구조로 돌아가니 중산층은 몰락하고, 빈곤층은 늘어 가고. 급기야 월급 200만원 받는 공무원이 최고 직종”, “4년제 대학을 졸업한 32살의 공무원. 연봉 5000만원, 재산 2억5000만원 가진 남자와 결혼? 꿈도 꾸지 마라”, “여자 27~28살에 연봉 4000만원, 자산 1억5000만원 가진 여자도 없다. 결혼은 다음 생애에 해라”, “여성들이 말하는 공무원이란 동사무소, 시청, 우체국 공무원이 아닌 판검사나 외교관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에 자산 2억원 넘는 공직자는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서로 바라는 건 돈 많은 안정적인 직업”, “공무원 선호현상은 나라 경제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미래도 암울하다는 의미”, “기초기반 경제가 두텁고 필드에서 땀흘리는 전문기술직 노동자가 대우받는 날이 와야 한다” 등의 비난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