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는 평소에 자주 먹지 못하는 맛있는 ‘명절 음식’에 대한 기대다. 전과 갈비, 잡채 같은 명절 음식은 하나같이 기름지고 맛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들과 고칼로리 명절 음식에 술 한 잔까지 곁들이면 완벽한 명절 풍경이 완성된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급찐살’(급하게 찐 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급하게 찐 살은 급하게 빠져야 한다는 의미의 용어 ‘급찐급빠’가 명절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급찐급빠’는 근거 없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과학적으로 유효한 용어다. 갑자기 찐 살은 지방이 아닌 ‘글리코겐’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리코겐은 근육을 움직일 때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짧은 기간 동안 평소보다 더 많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쓰고 남은 에너지가 글리코겐 형태로 흡수된다. 이 글리코겐은 분해 속도가 빨라 빼기가 쉽다. 하지만 쌓인 채로 2주 정도가 지나면 체지방으로 넘어간다. 즉 2주 간의 골드타임에 집중적으로 글리코겐을 소비해야 쉽게 체중 감량에 성공할 수 있다.
유안정형외과 비만항노화클리닉 안지현 원장은 “단기간에 갑자기 2~3kg이 늘었다면 글리코겐이 수분을 많이 끌어당겨 몸무게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며 “같은 운동을 해도 글리코겐은 지방보다 7배 빠르게 뺄 수 있어, 글리코겐이 지방으로 바뀌기까지 걸리는 2주 동안 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급찐살을 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식단조절과 운동으로 나뉜다. 우선 식단으로는 명절 연휴 동안 쌓인 인슐린을 리셋(초기화)할 수 있는 ‘리셋식단’을 권한다. 안 원장은 “고칼로리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몸 안의 인슐린이 크게 증가하는데, 이 인슐린은 지방분해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를 리셋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다음과 같은 식단을 추천한다.
일주일 식단에서 첫 이틀은 단백질만 섭취한다. 단백질 쉐이크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어도 좋고, 단백질 쉐이크가 싫다면 달걀, 두부, 샐러드 등 단백질 위주로 짠 식단으로 이틀을 보낸다. 나머지 5일은 밥, 빵, 면과 같은 탄수화물, 포도당을 50g 이하로 최소화해 섭취하고 단백질과 좋은 지방 위주로 구성된 음식을 섭취한다. 이 일주일 식단을 2주 반복하면,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체내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분해되고 갑자기 찐 몸무게를 줄일 수 있다.
이어 안 원장은 “며칠 많이 먹었다고 하루나 이틀 동안 단식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요요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리셋식단으로 건강하게 몸을 되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리코겐은 무리한 고강도 운동이 아닌, 30분 안팎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만으로도 분해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거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등 일상 속에서 신체활동을 늘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집에서 간편하게 유산소 운동을 하고자 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준비물이나 도구가 필요 없는 ‘홈트레이닝’ 운동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운동법은 구독자 296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땅끄부부’의 ‘칼로리 소모 폭탄’ 시리즈다. 고강도 운동으로 칼로리 소모가 높으면서도 무릎을 비롯한 관절 부담을 줄이는 동작들을 엄선했다. 신나는 배경음악과 땅끄부부의 동작 설명으로 지루하지 않게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다음은 구독자가 26만 명인 유튜버 ‘빵느’의 ‘기초체력 기르는 20분 전신 유산소 운동’이다. 스쿼트나 런지, 플랭크 같은 어려운 근력운동을 제외한 간단한 유산소 동작으로 구성해 무리없이 운동을 하면서도, 기초체력을 기르고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 운동법이다.
마지막으로 구독자가 7만 명인 시니어 유튜버 ‘먹고빼고 EATFIT’의 ‘관절에 무리 안 가는 유산소운동’이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동작들로 무릎이 좋지 않은 시니어들이 따라하기에 좋다. 특히 중장년이 관심이 많은 뱃살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뱃살도 효과적으로 뺄 수 있는 운동법이다.
영화표를 받아든 김 씨는 빠른 말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표를 사려는 오십대 여자 셋이 보였다. 카드를 꺼내고 지갑을 뒤적이며 네가 사네, 내가 내네 하면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웬 젊은이들이’ 김 씨는 여자들을 보자 이 공간의 냄새가 달라지고 자신의 연령대가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이었다면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고 혹여 영감들 가슴에 바람이 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을 했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요건 몰랐지 하는 기분으로 중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사람당 삼천 원이고, 쿠폰에 도장을 다 받으면 나중에 공짜로 한 편 더 볼 수 있다우.”
김 씨는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쿠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참 고우시네요.”
“호호, 이제 뭐…… 오 년 전이면 모를까.”
김 씨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모르며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어르신’이란 호칭 대신에 ‘할머니’라고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왜 호칭에 민감한지. ‘할머니, 할아버지’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인데 사람의 심리가 요상하여 ‘나이가 들어’ 라는 앞의 말에 신경 쓰기보다는 ‘늙은 사람’이란 뒤의 말에 민감해진다. 앞에 붙여진 ‘나이가 들어’라는 다섯 글자에는 사람들 제각각의 얼마나 많은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던가? 김 씨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탐욕스럽거나 심술궂지 않게 나이 들기를 원하면서도 할머니란 호칭이 꺼려지는 자신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뜨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요의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간 김에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하나뿐인 꽃분홍 립스틱으로 입술도 덧칠하고 나왔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좀 전에 만난 여자들이 상영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공책만 한 인쇄물은 멀리서 보기엔 힘들었다. 노년층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영화관이다 보니 상영작 포스터도 없고 상영관은 하나뿐이고 테이블이 세 개 놓인 대기실 한쪽엔 천 원짜리 믹스 커피를 파는 간이매점이 고작이었다. 그 중 한 여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용지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내밀었고 김 씨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노안 수술을 한 김 씨 눈엔 웬만한 글씨는 잘 보이고 고가의 보청기 덕분에 청력도 좋지만, 좋아서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것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라고 시력과 청력이 나빠지는 것이라지만,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젊은이들로부터 괄시받고 싶진 않았다. 오메가 쓰리와 은행잎 제제를 매일 챙겨 먹고 영어 공부도 30분씩 했다. 휴대폰을 켜면 바로 영어 단어 앱이 떴고, 건강 보조 식품 챙겨 먹는 시간도 휴대폰의 알람이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치매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휴대폰을 소유하게 되었을 땐 신인류의 일원이 된 것처럼 기뻤다. 설레는 김 씨를 위해 처음에는 휴대폰 사용법을 부드러운 말씨로 설명해 주던 아들이 반복적으로 물었더니 나중엔 짜증을 냈다. 아들의 구박을 감수한 덕분에 이젠 인터넷을 통한 물건 구입과 영화 예매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 한때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이며 좋은 글귀를 친구들한테 퍼 나르기도 했으나 글대로 실천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듯 보내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그만두었다. 망측한 사진을 받고 놀라서 휴대폰을 던져버린 적은 있지만, 적어도 김 씨가 자식한테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노인들 사이에 떠다니는 가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고 흥분하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에 참석한 경험도 있는데 정치적 신념이 확실해서라기보다는 군중 심리와 함께 이 나이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깨인 노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영할 건 이거예요.”
김 씨가 손가락으로 용지를 짚으며 말하기가 무섭게 일행 중 한 명이 톡 튀어들었다.
“아닌데…… 요거네요.”
김 씨 얼굴이 붉어졌다.
“나 좀 봐, 참.”
계면쩍은 김 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사람들이 들고나느라 문 주변이 번잡했다. 상영관 입구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김 씨는 오지랖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간 김 씨는 실내 전체를 훑어보다가 특정 위치에 잠시 시선을 던지곤 미소를 지었다. 등받이를 손으로 잡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G7 자리를 향해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뉴스에서 G7이란 단어를 가끔 들어서 익숙한 탓도 있고 근사해 보이기도 해서 그 자리를 고집하는 김 씨를 위해 카운터에서는 표를 따로 빼서 보관해두곤 했다.
전에 발을 헛디뎌서 계단을 구른 영감이 있었다. 김 씨는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돌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들도 내가 넘어지면 자신을 보는 것처럼 민망해하겠지.’
G7 바로 앞자리엔 박 씨가 앉아 있었다. 김 씨는 박 씨를 실버 영화 카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소위 M.C커플이다. 산행을 같이 다니는 연인들도 M.C커플이라고 부르고 콜라텍에서 만난 인연들은 C.C커플로, 복지관에서 만난 연인들은 B.C커플로 불린다. 박 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영화 얘기만 나오면 술술 말을 잘 이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웬만한 영화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을 기억하는 편이었다. 김 씨는 영화 얘기를 들을수록 박 씨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젊어서부터 영화는 혼자 본다는 말 때문에 그가 더욱 근사해 보이는지도 몰랐다.
김 씨는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부러 큰 소리로 음, 음 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박 씨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만 까딱했다. 김 씨는 답례를 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박 씨가 야속했다. ‘어서 오시게, 라고 한마디 하면 입술이 부르트나.’ 김 씨는 입을 샐쭉거렸다.
아직 영화 상영 전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김 씨가 고개를 돌렸다. 통로 건너편에서 자리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 있는 여자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노인은 굳이 빈자리도 많은데 여기에 앉아야겠냐며 버텼다. ‘저러니까 젊은이들이 질색하지.’ 김 씨는 중얼댔고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여자는 투덜거리며 뒷자리로 갔고, 카운터에 말해서 쫓아내세요, 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소란을 잠재우듯 실내가 어두워지자마자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제목과 함께 1936년 작품이란 숫자가 떴다.
“어머, 이상하다. 2008년에 만든 줄 알았는데.”
“게다가 흑백이야. 웬 구닥다리?”
“86년 전 영화네. 우리 아버지가 저 때 태어나셨거든.”
“말도 안 돼. 같은 제목의 영화가 또 있었나? 그냥 갈까? 냄새도 퀴퀴하고……”
김 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여자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좀 전에 보았던 일행들이 막 들어와 앉은 참이다. 오래전 같았으면 따끔하게 한마디 했을 김 씨였다. ‘니들도 실수할 때가 있지.’ 김 씨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이 바뀌었고, 여자들은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래. 그냥 보자.”
“그래,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네.”
“쉬, 쉬.”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의 어느 대저택의 거실이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젊어 보이는 여자가 등장했다. 김 씨 눈에는 여주인공의 나이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얼굴 구분도 힘들지만, 나이 추측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나이는 김 씨가 추측한 숫자에 10 정도를 더해야 했다. 여주인공은 파티장도 아닌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김 씨 평생에 입어본 적은 고사하고 사진에서만 보았던 옷이다. 부러우면서도 이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뒤이어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남자는 거실로 들어와서 여자를 꼭 안아주었다. 종일 남편을 기다리느라 수고했다고.
김 씨는 정해진 팔자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 씨 남편은 며칠씩 집을 비우다 돌아와도 첫마디가 개밥 줬어? 였다. 김 씨는 아내가 아니라 밥솥이었고 세탁기였고 청소기였다.
외국 영화를 볼 때 김 씨는 긴장이 되었다. 자막이 서 너 줄일 땐 마지막 문장의 꼬리를 놓치기도 하고 사람의 이름을 읽는 중에 화면이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왜 그리 이름이 길고 호칭 방법도 가지가지인지.
여주인공은 남자의 뺨에 입술을 비벼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김 씨의 눈에 남자는 아버지뻘로 보였지만 여자의 행동이나 자막으로 미루어보아서는 남편 같았다.
‘아니, 저런 도둑놈이 있나, 곱빼기 띠동갑도 넘겠네.’ 예나 지금이나 지팡이 토막을 가운데 달고 다니는 인간들이 젊은이를 밝히는 건 변함없지만, 김 씨가 보기에도 못생기고 잘생긴 걸 떠나서 싱싱하다는 점만으로도 모두 예뻐 보였다. 심지어 다섯 살 아래인 여자도 김 씨 눈엔 젊어 보였다. 흥분했던 김 씨는 이내 인정 모드로 태도를 바꾸었다.
변덕을 부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김 씨는 혀를 찼다. ‘젊고 얼굴 반반하면 저렇다니까.’ 김 씨는 며느리를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데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콕 박힌 미운털이 빠지지 않는 애였다. 좀 산다는 집에서 자란 며느리는 액세서리 수집이 취미였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시댁에 올 때마다 몸에 치장하고 있는 액세서리가 바뀌었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색상이며 디자인이 확확 달라졌다. 며느리를 떠보느라 나도 네가 한 것 좀 차 보자, 고 했더니 어머, 사람들이 웃어요, 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가 미워 보이는 이유가 말을 얄밉게 하는 탓도 있지만 자신의 삐딱한 시선도 섞여 있다는 걸 김 씨는 안다.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자기 돈으로 갖고 싶은 걸 사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주인공과 비교해 보니 며느리가 그다지 변덕 부리는 애도 아니고, 딱히 지 남편이건 시댁에 못 하는 편도 아니었다. 김 씨는 며느리의 미운털이 다름 아닌 질투라는 생각에 새삼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며느리는 여자의 촉으로 벌써 눈치 챘을 게다. ‘앞으로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크린의 영상이 유럽을 항해하는 크루즈 내부로 바뀌었다. 은퇴한 남편이 아내와 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 여자들은 보리죽 한 숟갈도 자식 입에 넣어주느라 배곯고 쪼그라져 있을 때 서양 여자들은 양장을 빼입고 삐딱 구두 신고 파티에 가거나 세계 일주를 했다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날에도 김 씨는 고작 빌려 입은 단색의 한복에 면사포만 쓰고 혼례를 치렀다. 김 씨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서양 여자들에 비해 고루하게 살았다.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장기 여행을 하는 사이에 여주인공은 서 너 명의 남자들과 사랑 행각에 빠졌다. 여자는 쉽게 남자를 만나서 사랑했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지 멋대로군, 착한 남편이 딱하네, 결혼 전에 많은 여자를 만나보지.’ 흥분지수가 높아진 김 씨는 자세를 바꾸다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하긴, 선봐서 한 달 만에 식을 올린 나는 어떻고.’ 그러고 보니 그런 도박이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어이없는 일들이 다반사였는데 죄다 그러려니로 통했다. 어쩜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몇 십 년 후엔 또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김 씨가 젊어서 여주인공처럼 했다면 돌팔매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김 씨가 영화에 집중할 만하면 뒤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뒷좌석의 한 여자가 또 말을 꺼냈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가자.”
“나갈까?”
“그래, 질 떨어진다.”
“아냐, 노벨상 받은 작품이라잖아, 뭔가 있을 거야.”
한 여자가 일행을 달랬다. 김 씨 뒤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 가래 끓는 소리, 카톡 소리, 사부작사부작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 따위가 영화 중반이 넘어가도록 줄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벨 소리도 울렸다. 늴리리아 늴리리…… 맨 앞줄에 있던, 환갑이 넘어 보이는 남자가 손에 쥔 휴대폰을 끊거나 벨소리를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느그적 느그적 걸어 나갔다. 남자를 따라서 사람들 고개도 돌아갔다. “걷지 말고 좀 뛰요.” 영화 시작 전에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던 동일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속이 후련해진 김 씨는 중얼거렸다. ‘어여 가야 해, 어여.’
김 씨는 다시 영화에 몰두하면서 좀 전과는 다른 생각도 했다. ‘하기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뭘 따져, 몸뚱이 아꼈다 뭐 하게, 못 노는 것들이 바보지.’ 여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어느새 주인공 편이 되어있었다. 뭐랄까, 김 씨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양가적 감정이 늘어났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편 가르는 행위가 불편해지면서 교집합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기억력은 물론 얼굴도, 몸도 전보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서운한 감정과 소외감도 자주 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고 할까.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하겠지만, 신체 중에서 가장 불결하게 여기는 부위가 신성한 부분이자 최고의 성감대인 인간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여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외도한 상대는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상대를 이혼녀이고 연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둘을 강제로 갈라놓는 장면이었다. ‘딱, 나구먼.’ 김 씨는 아들이 자신보다 연상인 여자를 데려왔던 적을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것도 없었는데.’
허리가 꼬부라져도 연애 상대는 어릴수록 좋다는 영감들이 김 씨 눈에는 철없어 보였다. 박 씨 속을 떠보기 위해 왜 두 살 연상인 자신을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거기서 거기라고, 나이만 적다고 젊은 거고, 나이가 많다고 늙은 거냐고 반문하던 박 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이들이 상대를 고를 때 이혼, 사별, 동거, 비혼 따위를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어보였고, 잘 생긴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이는 박 씨가 끌린 이유이기도 한데 김 씨 눈엔 박 씨의 딱딱한 말투마저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역사물을 주로 보던 김 씨에게 로맨스 영화는 피로를 씻어주는 꿀물 같았다. 일부러 로맨스물을 외면해오던 김 씨의 마음을 열게 한 계기는 박 씨다.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 내용을 들려줄 때 소도둑처럼 생긴 박 씨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아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새로 만난 애인에게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남자가 탄 보트가 애인이 사는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 씨는 다가올 장면을 앞질러 상상하면서 잘했다, 잘했어, 란 말을 연발했다. 한 사람과 애정도 없이 의무적으로 평생을 산다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명령하고 김 씨는 복종하고 따르는 식이었다. 김 씨는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재떨이를 남편의 턱밑에 갖다 대고, 남편이 밥을 먹는 내내 생선 가시만 발라야 했다. 남편은 다리에 깁스를 한 김 씨에게 2충에 올라가서 부채를 가져오라고 호통 친 적도 있었다.
혼자면 외롭기나 하지, 둘이면 외로우면서도 괴롭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채워가고 싶었다.
스크린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안겼다. 남편과 사는 동안 포옹은 언감생심이었다. 지 기분 내키면 아무 때나 김 씨를 자빠뜨렸다.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끝조차 스치지 않고도 20년을 더 살아냈다. 김 씨는 남편이 매일 만지는 문고리나 수저만도 못했다.
김 씨는 남자의 품이 얼마나 따뜻할지에 대해 상상했다. 어릴 적 포근한 엄마의 품이나 듬직한 아들의 품과는 다른 느낌일 게다. 박 씨의 품에 안겨 지난날을 위로받고 싶었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같이 사그라들기 위해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반찬이 김치 하나일망정 마주 앉아 식사하고, 약 먹을 때 물이라도 떠다 주고, 피곤한 발을 얹고 잠들 수 있는 사이를 원했다. 노년의 로맨스를 망측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은 죽어야만 성애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박 씨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저…… 순자 씨, 김 씨는 맘 가는 대로 달려가는 자신의 생각이 주책이라고 느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는 박 씨의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고개를 홱 돌릴 것만 같았다. 머리숱이 인제의 자작나무숲처럼 듬성하지만 박 씨의 뒤태는 늘 정갈했다. ‘저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나.’ 김 씨는 그뿐 아니라 영화관 내의 모든 노인들 감상평이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도 전에 뒷좌석의 여자들이 서둘러 일어났다.
“내용이 끝까지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김 씨는 영화를 보면서 주변 사람을 떠올리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연애 감정의 불씨를 키우는 계기도 되었건만 중년 여자들은 빤하다고 했다. 김 씨의 귀에는 이 영화를 끝까지 앉아서 보는 사람들 수준이 빤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게, 사람들 일어나기 전에 얼른 가자.”
“예의 지키다가는 어느 세월에 나갈지 몰라.”
중년 여성 셋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김 씨가 영화의 여운을 즐길 겨를도 없이 불이 켜졌고 사람들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면은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가려졌다. ‘모두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서둘러 가는 게지.’ 김 씨는 중얼거리며 박 씨가 일어날 때까지 애꿎은 가방만 뒤적거렸다. 박 씨가 일어나더니 김 씨를 보며 말했다.
“안 가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러죠.”
김 씨는 순순히 박 씨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둘은 데면데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야 김 씨는 박 씨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서 나란히 걷는 게 어색해요?”
박 씨가 타박하듯 답했다.
“뭘, 어색하긴.”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지만 김 씨는 길이 들지 않은 구두 때문에 멀게 느껴졌다. 박 씨를 만날 때만 신는 검정 단화를 신고 있었다. 김 씨가 가지고 있는 두 켤레의 구두 중 동절기용이었다. 평소엔 운동화를 주로 신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김 씨를 재촉하지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다. 김 씨가 영화 본 소감을 물었더니 박 씨는 그 당시엔 획기적인 일이었겠다고, 시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고 답했다. 주인공에 관한 얘기 끝에 ‘나이 듦’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김 씨가 박 씨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두려워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지 않겠소. 늙는 걸 두려워할 게 아니라 추하게 늙는 걸 경계해야지.”
김 씨는 늘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박 씨가 야속하면서도 궁금해서 또 물었다.
“그럼 아름답게 늙는 게 뭔데요?”
“내가 정답도 아니고 뭘 묻소?”
“그래도 생각을 듣고 싶어요.”
“뭐 별거 있소? 그냥 다 덜어내는 거지. 감정도 덜어내고 그런 거 아니겠소?”
“덜어낸다는 말은 줄인다는 말과 어감이 다르네요. 뭔가 내가 덜 쓴 만큼 남이 쓸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드네요. 여하튼 자신이 가진 것이나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거지요,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는 얘기죠, 태봉씨?”
김 씨가 슬쩍 박 씨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도 덜어내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지.”
김 씨가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거요?”
박 씨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와 아들이 죽기 전에 사랑한단 표현을 많이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담담해보이지만, 평온한 얼굴 아래 숨겨져 있을 부단한 노고에 대해 김 씨는 생각했다. 젊어서 한 성질 했다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버스는 금방 왔다. 박 씨가 손을 내밀어 김 씨 먼저 타라는 신호를 했다. 차에 오르는 김 씨는 뒤따라오는 박 씨에게 힘들어하는 동작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계단을 다 올라왔으나 자신도 모르게 나온 에구, 소리로 허사가 되어버렸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나 질투의 감정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여전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내부의 앞쪽 노약자 좌석은 젊은이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지만 김 씨는 못 들은 척하고 뒤로 갔다. 둘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고 속력이 나면서 덜컹대기 시작했다. 운전까지 과격한 탓에 엉덩이가 공중으로 떴다가 내려앉았다. 김 씨는 워메, 하면서 박 씨의 손을 잡았다. 꼬리뼈에 충격이 느껴졌다. 박 씨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거 운전 좀 살살 하소.”
덕분에 둘은 착 달라붙게 되었고 김 씨가 손을 놓으려 하자 박 씨가 더 세게 쥐었다. 박 씨의 손이 야들야들하고 따뜻했다. 빼려던 손을 박 씨의 손에 맡긴 채 김 씨는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박 씨가 물었다.
“뭐 볼 거 있소?”
“나뭇잎들이 제법 물들었네요.”
김 씨는 생각했다.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를.
“같이 좀 봅시다.”
박 씨가 고개를 돌리면서 김 씨의 머리카락에 뺨이 닿도록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김 씨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박 씨의 행동에 의도가 있기를 바랐다.
네댓 정류장을 지나서 내릴 때가 된 두 사람은 출입문으로 걸어 나갔다. 박 씨가 왼쪽 기계에, 김 씨는 오른쪽 기계에 카드를 태그 한 후 출입구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여학생이 박 씨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 사이로 손목을 내밀어 태그를 시도했다. 연이어서 실패한 학생을 보고 김 씨는 카드를 가운데로 대요, 라고 말했지만 학생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또 손목을 갖다 댔다. 기계음이 들렸고 그제야 김 씨는 학생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 물건이 요즘 광고에 나오는 뭐시기란 걸 알았다. ‘또 오지랖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김 씨는 자신이 하루살이만도 못한 3초의 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영화관으로 오던 버스 안의 상황이 떠올랐다. 김 씨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청년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시선이 갔다. 큼직한 흰색 라벨이 옷의 바깥쪽에 붙어있었다. 김 씨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옷을 뒤집어 입었네요, 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청년은 아, 이거요, 요즘 유행이에요, 라며 목 뒤의 라벨을 만지작거렸다.
박 씨 앞을 지나쳐서 쏜살같이 내리는 여학생의 귀에 무선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두 사람도 손잡이를 잡고 발 앞을 살피면서 내렸다. 여학생이 내리는 속도의 다섯 배는 족히 걸렸다. 내리기가 무섭게 문이 닫히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왠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니들도 답답하지. 당사자는 오죽하겠냐.’ 김 씨는 버스 기사가 야속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센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이 몇 점 떨어졌다. 김 씨가 옷깃을 여미자 박 씨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목에 걸어주려고 박 씨가 손을 뻗자 김 씨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맛에 데이트하는 거 아니요?”
“그게 아니라……”
김 씨는 머플러를 목에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떴다.
“갑시다, 순자씨.”
박 씨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김 씨는 뒤따라가며 웃음이 나왔고, 목덜미가 자꾸 간지러웠다. 박 씨가 몇 미터도 안 가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골목으로 들어갔다. 코너의 편의점을 끼고 꺾어 들어서자마자 생선구이집이 보였다. 김 씨는 갈치구이가 먹고 싶다고 박 씨에게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입구부터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폴폴 풍겼다. 홀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김 씨는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행복감에 폭 빠졌다. 빈자리는 입구 근처밖에 없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안쪽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물도 따라주었다. 수저도 놓아주려고 하자 김 씨가 손을 저으며 막았다.
“아, 제가 하지요.”
“선심을 쓰면 좀 받으세요.”
박 씨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황송해서 그렇죠.”
대접받는 게 어색한 김 씨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자는 주고 싶고 여자는 받고 싶은 게 연애의 재미 아닙니까?”
“그래도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래요.”
직원이 주문을 받아 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메뉴라고 해봐야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두 가지였다. 정갈한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김 씨는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다 박 씨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봉씨, 여긴 자주 오셨던 곳인가요?”
“오긴 누가 와요.”
박 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깐 미안했어요. 받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박 씨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막상 잘 안 되네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기름이 차르르 흐르는 갈치구이가 나왔다. 박 씨는 왼손으로 갈치 토막을 잡고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잔가시가 있는 양쪽 끝을 바깥으로 당겼다. 가운데 뼈 위에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살을 들어 올렸다. 살덩어리가 부서지지 않고 네모로 분리되었다. 김 씨는 능숙한 손놀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박 씨가 발라 준 생선살을 수없이 먹었을 과거의 여인에 대해 생각했다.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손만 쳐다보고 있자 박 씨가 한마디 했다.
“가시 바르는 거 처음 봅니까? 밥 좀 떠보세요, 순자 씨.”
김 씨는 얼떨결에 수저로 밥을 떴다. 박 씨가 뽀얀 쌀밥 위에 생선살을 얹었다. 김 씨가 당황하여 수저를 빼려다가 주춤했다.
“또 그러시네.”
“남의 밥에 반찬을 얹어주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말하는 도중에 삼십여 년 전 한정식 식당에서 며느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불쑥 떠오를 게 뭐람, 시어머니 가까이에 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댈 엄두도 못 내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이 갈비 한 점을 옮겨 주던 모습이 박 씨의 행동을 보자 떠올랐다. 그때의 섭섭함이 지금에서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박 씨가 김 씨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감동 먹은 거요?”
“네. 제대로 먹었지요.”
“밥도 많이 먹어요, 순자 씨.”
김 씨는 사람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박 씨의 자상함과 배려는 몸에 밴 습관 같았다. 또한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으로부터 흔들림이 적어 보였다. 팔십 가까이 살아온 눈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남편은 김 씨를 백 번도 더 울렸다.
김 씨는 밥을 먹는 중간에 국이나 물을 자주 마셨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당황했다. 그리 맵지도 않은 도라지 초무침을 먹으면서 기침도 더러 했다. 박 씨가 김 씨에게 티슈를 내밀기도 하고 직원에게 따뜻한 물도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입가심을 했다. 여태껏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달았다. 박 씨는 김 씨를 보며 흐뭇해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가 네 번째인 김 씨의 눈에 박 씨의 모든 점이 좋아 보였다. 김 씨는 나중에 콩깍지가 벗어지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이 들어서 이성을 만날 때는 다른 건 다 맘에 안 들어도 한 가지 맘에 드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박 씨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김 씨는 박 씨가 자신의 어깨에 오도카니 앉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웃음이 났다. 옷도 벗지 않고 며느리에게 전화부터 했다.
“너 좋아하는 약식하고 식혜 해 놓을 테니 내일 와서 가져가거라.”
“꺄악.”
김 씨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괴성 때문에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김 씨는 자신이 얼마나 박한 시어머니인가를 생각하다가 바빠서 글피에 갈게요, 라고 이어진 며느리의 말 때문에 좋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전화를 끊고 개운치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어머니 행세, 연장자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자기 입으로 박 씨에게 되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 며느리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는 건데.
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상념에 잠기게 된다. 김 씨는 아무리 잘 살았어도 마무리가 부실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고 잘 못살아왔어도 끝이 좋으면 지나온 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리라. 인생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 간절함의 가운데 박 씨가 있었다. 왜냐하면 김 씨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박 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긴 있었다. 내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간호사들이 불러 주는 이름은 달갑지 않았다.
* 영화 제목은 ‘공작부인’이며, 원제는 남자 주인공 이름인 ‘Dorthworth’다.
•수상소감 - 우수상 단편소설 박상희
“저의 허당끼가 소설을 쓰는 모티프가 되기도”
나이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시절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자세를 고민하면서 써 놓았던 몇 편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이번 공모전의 주제와 어울리는 한 편을 골라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저의 허당끼로 인해 소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꼼꼼하지 못해서 영화감독이나 제작년도를 확인하지 않고 영화관에 간 실수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공작부인」을 보고 싶었는데 그만 1936년에 제작된, 같은 타이틀의 다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을 썼고, 수상까지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허당끼는 소설을 쓰는데 모티프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저명한 작가들은 글 쓰는 작업을 습관처럼 매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던 터에 선배가 제안을 해왔습니다. 하루에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든가, 필사를 하든가, 소설 한 장 분량을 쓰든가, 써 놓은 소설을 수정하든가, 매일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해내기로. 지키지 못할 경우는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선배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왔는데 저는 밥 사러 몇 번을 선배 동네로 가야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사의 밑그림이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쓰는데 만 급급했습니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면서도 노트북을 들고 갔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설의 중간 토막부터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구성을 해놓고 소설을 써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소설의 줄거리, 캐릭터, 작가의도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소설은 시작도 못 한 상태에서 두세 달이 그냥 가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첫 문장을 쓰다가, 중간 중간에 몇 줄씩 쓰기도 하고 결론의 한 문장부터 쓰기도 하는 등 규칙 없이 쓰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듯해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소설을 놓아버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할 때도 선배는 꾸준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제는 하루라도 소설과 관계된 읽기나 쓰기나 수정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와의 다짐이 이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으면 얼마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하니 꾸역꾸역 앞을 향해 나가기는 합니다. 다이어트 할 때 일주일에 1킬로그램 또는 한 달에 4킬로그램 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고, 매일 200그램씩 빼겠다는 덜 부담스러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은 저만의 방식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글이 안 써지면 딴 짓을 합니다. 제 취향이 아닌 영화도 보고, 딸을 앞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라이브 카페에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모아 놓고 마음 알아채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막힌 골목이나 민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재미있는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펜션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절할 각오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도 해봤습니다.
TV를 보거나 버스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단어 나열식으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기록 당시에는 이해되었던 내용들을 한참 후에 찾아보면 어떤 의도로 저장해 두었는지 암호 해독 수준이 되기도 하고, 메모해 둔 제 글씨체를 읽을 수 없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의심하고 낯설게 보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태껏 보편타당하다고 여겼던 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으로 인해 격려가 되었습니다.
50대가 넘으면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하나씩 ‘삐그덕’ 거리는 몸의 신호를 확인할 때면 몸도 마음도 더 아파진다.
50대 중장년 남성 A 씨는 최근 골프를 치다가 왼쪽 어깨에 살짝 통증을 느꼈다. 오랜만에 쳐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일상 속에서 어깨 통증은 계속됐다. 팔을 들어 올리거나 물건을 제대로 드는 일이 힘겨워질 정도였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나에게도 왔구나.’ A 씨는 자신의 나이를 새삼 실감했다.
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가 바로 ‘오십견’이다. 주로 50대 전후에 많이 발생한다고 이름 붙여진 ‘오십견’은 ‘유착성 관절낭염(adhesive capsulitis)’이 정확한 명칭이다. 오십견은 어깨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에 염증이 생기면서 별다른 외상을 입지 않았음에도 통증이 발생하고 움직임이 제한되는 질병이다.
오십견 원인은?
중장년층의 대표적인 어깨 질환으로 여겨지듯이 오십견(유착성 관절낭염)의 주된 원인은 ‘노화’다. 나이가 들면 갑작스러운 운동이나 무리한 어깨 사용으로 어깨 조직에 염증이 생기고 관절에 퇴행성 변화가 생긴다. 좋지 않은 자세도 오십견의 발병 원인이다. 오랜 시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오십견이 종종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유전적 문제나 당뇨 같은 다른 질병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중장년층 어깨 통증은 모두 오십견?
A 씨는 오십견을 당연한 노화의 과정으로 보고 병원 치료를 미뤘다. 그런데 다수의 시니어가 오십견인줄 아는 어깨 통증의 상당수는 ‘회전근개파열(Rotator Cuff Tear)’이다. 두 질병은 증상이 거의 비슷해 일반인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증상은 비슷하지만 치료법이 전혀 달라 전문가 도움 없이, 스스로 진단해 잘못 대처하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특히 A 씨처럼 오십견을 어깨의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여겨 찜질이나 파스만으로 가볍게 대처하는 시니어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파열된 정도가 약해 통증이 심하지 않은 회전근개파열일지라도 치료를 미루면, 파열된 힘줄이 더 찢어져서 어깨 관절에 심한 장애를 부를 수 있다.
회전근개파열은 뭐지?
회전근개는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4개의 힘줄(근육)이다. 회전근개파열이란 이름 그대로 이 회전근개가 찢어져 발생하는 질병이다. 회전근개파열 역시 나이가 들면서 근육에 변성이 발생하는 퇴행성 변화와 무리한 어깨 사용으로 어깨 회전근개가 얇아져서 생긴다. 어깨를 많이 사용하는 골프나 테니스 같은 스포츠로 인해 찢어지는 경우도 많다.
오십견은 어깨 관절을 감싸고 있는 ‘관절막’이 염증으로 인해 굳어지면서 만성적으로 어깨 관절에 통증과 운동 제한을 일으킨다. 회전근개파열은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힘줄인 회전근개가 찢어져 발생한다.
발생 부위가 다른 만큼 치료방법도 대조적이다. 오십견은 관절이 굳지 않게 어깨를 자주 움직여야 한다. 이에 비해 회전근개파열은 어깨를 계속 사용하면 힘줄 파열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운동 강도를 조절해가며 스트레칭 위주로 어깨를 써야 한다.
오십견은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회전근개파열은 자연 치유가 불가능하다. 파열 정도가 약하면 약을 먹거나 근력강화운동으로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파열이 됐으면 대부분 수술을 해야 한다.
가천대 길병원 정형외과 정규학 교수는 “오십견은 염증으로 근육이 굳는 것이고, 회전근개 파열은 노화로 근육이 얇아져서 파열되는 것”이라며 “이 둘의 원인이 상당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증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혼동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어 “두 가지 질병을 증상만으로 자가 진단해서 관리하다가 증상이 점차 악화되면 치료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며 “반드시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 질병에 맞게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깨는 목의 뿌리 부분과 가슴, 등의 바깥 부분부터 위팔까지 몸통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아주 큰 부위로, 일상에서 쓰임도 많은 중요한 관절이다. 이렇기 때문에 어깨에 문제가 생기면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가능성도 크다. 평소 어깨 스트레칭과 가벼운 근력운동을 생활화하면 대부분의 어깨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어깨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스트레칭을 틈틈이 시행하고, 무리한 어깨 사용과 과격한 운동은 자제해야 한다.
최근 날씨가 급격하게 더워지며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니어는 어지럼증으로 균형을 잃어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85만5608명이다. 이 중 7월이 11만3447명으로 가장 많았다.
어지럼증은 자신이나 주위 사물이 정지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 모든 증상을 말한다.
여름철에 어지럼증이 심해지는 이유는 급격히 더워진 환경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게다가 여름철은 무더위와 수분 부족이 뇌 혈액량을 줄여 일시적으로 어질어질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뜨거운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온열 질환과 탈수로 어지럼증을 느끼기 쉽다.
또 섭씨 30도 이상을 웃도는 날씨에 실내 온도를 크게 낮추면 기온 차이가 심해진다. 이때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면서 어지럼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이뇨제나 고혈압약처럼 심혈관계에 작용하는 약이나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히스타민제를 오래 먹어도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김선숙 인천힘찬종합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먹는 소염 진통제나 감기약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다”며 “어지럼증을 계속 경험하는 고령 노인이라면 평소 복용하는 약과 관련 있는지 살펴보고, 증상이 반복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령층, 낙상·골절 조심해야
어지럼증은 특히 시니어에게 위험하다. 고령층은 온도에 대한 신체 적응능력이 낮고, 심뇌혈관 질환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서다. 무더위와 뙤약볕이 유발하는 어지럼증은 젊은이들이라면 충분히 쉬면 사라진다. 하지만 노인들은 잠깐의 어지럼증으로도 균형을 잃어 넘어지며 다칠 수 있다. 이때 골절을 입으면 회복이 어려워 특히 조심해야 한다.
뼈가 약하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70세 이상 노인이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엉덩이관절 부위 골절을 주의해야 한다. 엉덩이관절 골절을 입으면 격심한 통증과 함께 움직이지도 못하고, 허벅지 안쪽에 출혈이 생겨 사타구니와 넓적다리가 붓는다.
김태현 목동힘찬병원 정형외과 원장은 “대퇴골의 목 부분이 부러지면 계속 누워있어야 하기에 고령자에게 엉덩이관절 골절은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지내다 보면 합병증이나 기존 지병 악화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커진다.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척추 압박 골절도 발생할 수 있다. 간격을 유지하면서 맞물려 있어야 할 척추뼈가 골절되면 주저앉아 납작하게 바뀐다. 심호흡을 하거나 기침하는 것도 힘들고, 특히 고령이라면 움직이기 힘들어 만성질환이 악화할 수 있다.
구부러진 척추가 내부 장기를 압박해 또 다른 합병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척추 압박과 더불어 허리가 점점 굽어 척추가 변헝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폐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증세를 동반한 어지럼증 ‘뇌졸중’도 의심해봐야
여름철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은 데 드물게는 뇌졸중이 원인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은 귓속 전정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드물게 척추기저동맥 협착이나 후방 순환계 뇌졸중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방치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 땀을 흘리거나 체하면 설사로 탈수가 심해지면서 뇌혈류량이 떨어져 기존에 혈관 협착이 있을 경우 뇌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다.
이시백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어지럼증으로 내원하는 환우분들을 진료하면 어지럼증 증세가 다양하다”며 “여러 증상 중에서 심각한 어지럼증 증세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귀에서 기인한 보통 어지럼증은 대체로 주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상으로 느낀다. 전정신경염은 왼쪽 귀나 오른쪽 귀 중 병이 생긴 쪽으로 몸이 쏠리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지러움 증상 중에도 다음과 같은 증세가 동반될 때는 뇌졸중 징조일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뇌졸중 징조
1. 갑자기 사물이 둘로 보인다. (복시)
2. 발음이 꼬인다. (구음장애)
3. 한 쪽 편 힘이 빠진다. (편마비)
4. 한 쪽 편의 감각 저하.
이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후방 순환계 이상에 의한 뇌졸중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바로 전문의를 찾아 체계적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뜨거운 공기가 상공을 뒤덮는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20일 이후 한반도에 강력한 폭염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폭염 가운데 어지럼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또 햇살이 강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외출할 때는 양산이나 모자로 햇빛을 차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옷은 헐렁하게 입고 어두운 색보다는 밝은 색을 입는 것이 좋다. 음식은 잘 익혀 먹고, 틈틈이 충분하게 쉬어야 한다.
나이 들면 어깨 관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도 온다. 외상보다는 퇴행성 변화로 어깨가 불편해지는 시니어들이 많다. 3대 어깨 질환으로 알려진 회전근개파열, 오십견, 석회성 건염의 증상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 몸에서 운동 범위가 가장 큰 관절 부위는 바로 견관절, 즉 어깨 관절이다. 어깨 관절은 운동 범위가 넓고 움직임이 가장 자유로운 만큼 노화도 빠르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해 부상의 위험이 더욱 높다.
요즘처럼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게 벌어질 때는 인체의 적응력이 날씨를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관절 부분의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근육과 인대가 수축되고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 뼈가 시리고 아픈 느낌의 통증이 어깨 등 관절에 나타나기 쉽다.
이상욱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나이 들어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 자연스레 오십견으로 단정하지만 같은 어깨 통증이라도 회전근개파열, 석회성 건염 등 다른 질환일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고 방치하기보다는 위치나 정도, 양상에 따른 정확한 진단 후 초기부터 효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인공관절 수술 등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누워 있을 때 통증이 악화되고 밤에 더 심하다, ‘회전근개파열’
어깨뼈 사이에는 4개의 근육이 통과하는데 이들 근육의 주요 기능은 팔을 안으로 밖으로 돌리는 회전이다. 이들 근육을 ‘회전근’으로 부르는 이유다. 4개의 근육은 서로 균형을 이루며 탈구되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끊어지면 이를 ‘회전근개파열’이라고 한다.
통증 위치는 어깨 관절의 앞쪽이나 옆쪽에서 아래쪽까지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팔을 들어 올린 채 10초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면 회전근개파열을 의심해야 한다. 누워 있을 때 통증이 악화되고 밤에 더 심해진다.
처음엔 통증이 심하지 않고 관절 움직임의 제한이 적어 방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4개 중 1개 근육이 망가지면 남은 3개의 근육이 더 열심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방치 시기가 길어질수록 파열 범위가 점차 넓어진다. 심한 경우 인공관절을 삽입하기도 한다. 이상욱 교수는 “통증이 경미하더라도 파열 부위가 작은 초기에 비수술적 약물 또는 주사를 이용한 통증 치료, 스트레칭을 이용한 관절 운동, 어깨 주위 근력 강화 운동 등으로 적극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어깨 올라가지 않고 통증만 있다, ‘오십견’
오십견은 어깨 관절 사이에 안정성을 담당하는 ‘관절낭’이라는 조직에 염증이 생긴 질환이다. 회전근개파열과 증상이 비슷해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두 질환을 구별하는 자가진단법은 ‘팔의 운동 범위 비교’다. 오십견은 타인이 팔을 들어 올리려 해도 어깨가 굳어 올라가지 않고 통증만 심해지는 반면, 회전근개파열은 아프고 오래 버티지 못하긴 하지만 어깨가 올라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십견의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유착성 관절낭염이다. 흔히 50세 전후에 많이 발생한다고 해서 오십견으로 불린다. 하지만 30~40대 환자도 많고 70대까지 전 연령에 걸쳐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팔의 운동 범위가 제한돼 굳어버릴 수 있다.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스트레칭이나 약물요법, 주사요법을 3개월 이상 충분히 지속하면 호전될 수 있고, 보존적 치료에도 효과가 없는 경우 ‘관절경적 관절막 유리술’을 시행한다.
갑작스런 극심한 통증이나 어깨가 묵직하다, ‘석회성 건염’
석회성 건염은 어깨 힘줄에 석회가 침착한 것으로, 석회가 녹아 힘줄 세포에 스며들면서 통증이 발생한다. 석회가 너무 크면 그 자체로도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석회는 직경 1~2㎜부터 크게는 3㎝ 이상으로 수개월, 수년에 걸쳐 조금씩 커진다. 보통은 콩알 정도 크기가 가장 많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힘줄이 퇴행하며 세포가 괴사된 부위에 석회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성인 경우 골절처럼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만성인 경우 석회가 주위 조직을 압박해 결리거나 묵직한 통증이 나타난다. 급성이거나 석회가 작은 경우에는 석회를 제거하는 수술 없이 염증 치료만으로 통증이 사라질 수 있다.
운동 전후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어깨 관절 풀어줘야
어깨 통증의 근본적 원인은 올바르지 못한 자세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굽어진 어깨는 주변 근육과 인대의 과긴장을 유발해 유연성을 잃게 된다. 이는 작은 외상에도 인대나 힘줄이 쉽게 파열되는 이유다. 따라서 평소 매일 3~4회 정도 어깨 스트레칭으로 굽어진 어깨를 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상욱 교수는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팔꿈치가 어깨 높이 이상 올라가는 자세는 어깨 천장뼈와 팔뼈 사이에서 힘줄이 마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때문에 반복적인 운동, 특히 중량을 들고 하는 어깨 운동은 힘줄 손상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운동할 때는 적당한 중량을 이용하고, 운동 전후에는 어깨 관절의 충분한 스트레칭을 통해 손상 위험성을 줄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오십견(유착성 관절낭염) 자가진단법
1. 잠을 자다 어깨가 아파 깬 적이 있다.
2. 팔을 들어 올리고 젖힐 때 삐끗하는 느낌이 들고 통증이 있다.
3. 혼자서 옷 뒤의 지퍼나 단추를 채우기 어렵다.
4. 통증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며 점점 심해진다.
5. 어깨 관절이 뻣뻣하며 통증이 나타나 어깨를 움직이지 않아도 지속된다.
6. 몸을 씻을 때 어깨를 씻기가 힘들다.
7. 멀리 있는 물건을 잡는 것이 힘들다.
출처: 인천성모병원
손으로 물건이나 주먹을 쥐는 힘인 ‘악력(握力)’이 강할수록 ‘손목뼈의 골밀도’ 역시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관절센터) 공현식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형외과 홍석우 교수팀은 손목 요골이 골절된 환자 108명(평균 75.2세)의 CT 영상에서 요골 부위의 피질골 밀도를 측정해 악력과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피질골은 뼈의 바깥쪽을 차지하는 단단한 층으로 여기서 요골 부위의 피질골은 주먹을 쥘 때 쓰이는 근육들이 부착되는 뼈의 겉 부분을 의미한다.
아울러 연구팀은 악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신장(키), 체중, 대퇴골의 골밀도를 설정한 뒤 악력과 이들 변수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분석하기로 했다.
연구 결과, 악력과 요골 피질골의 밀도 사이에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또 악력과 신장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즉, 손목뼈의 골밀도가 높거나 키가 큰 환자에서 악력이 높게 측정된 셈이다.
하지만 체중이나 대퇴골의 골밀도는 악력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악력이 대퇴골 보다 요골의 골밀도와 관련성이 높게 나타난 점을 주목할 만한데, 이는 주먹을 쥘 때 쓰는 근육과 뼈가 서로 물리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근육과 뼈는 서로 밀접하게 붙어 있는 조직으로 서로간의 물리적 ‧ 화학적 신호를 통해 성장과 대사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전까지 발표된 연구에서는 악력이 손가락 뼈, 손목 뼈 전체의 골밀도와 관계가 있다고 밝힌바 있었지만, 근육이 붙는 피질골만을 분리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인체의 뼈는 근육이 붙는 겉면의 피질골과 혈액 세포를 만들고 대사를 조절하는 내부의 해면골로 이뤄져 있는데, 피질골은 해면골에 비해 두께는 얇지만 단단하고 치밀해 뼈의 강도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문에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질골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튼튼한 피질골을 위해서는 근력 향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공현식 교수는 “근력 운동은 활동적인 삶, 에너지 대사, 낙상 방지 등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근력과 피질골 밀도와의 밀접한 연관성이 규명된 만큼, 근력을 키워 뼈의 강도를 향상시키면 결과적으로 골절 예방과 방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공현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첨단 영상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피질골의 두께와 밀도를 3차원으로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근육과의 물리적인 연관성을 밝힌데 의의가 있다”며 “일반적인 CT 영상만을 이용해 뼈의 미세한 구조를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는 점도 큰 성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2020년 12월호에 게재됐다.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뉜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가는 사람,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 어느 것이 더 맞고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걸 ‘용기’라 읽고 ‘모험’이라 쓴다. 이번 호에서는 전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타투이스트 조명신(56)을 만났다.
의사와 타투이스트. 이 두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수술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한쪽은 엘리트에 가깝고, 다른 쪽은 고독한 예술가 같다. 바둑으로 치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백돌이고,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는 흑돌처럼 보인다. 물론 의미의 경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지의 대조는 확실하다.
이 거리감을 증명하듯 수술복을 입은 채 타투 시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는 궁금했다. 메스를 들던 의사가 왜 수술복을 입고 몸에 타투를 새기는 걸까? 의사로서 남극에도 다녀오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공부한 이유는 뭘까? 특이한 이력에 관한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 그를 만나 지나온 시간 속 사연을 들어봤다.
성형외과 의사 시절 타투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당시 의사로서 타투 제거 시술을 많이 했다. 진짜 다양한 타투를 많이 지웠다. ‘착하게 살자’, ‘영숙아! 사랑해’와 같이 다소 유치한 문장부터 화려한 꽃이나 화살표가 꽂힌 하트 등을 지웠다. 일종의 낙서라고 보면 된다. 10대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닐 수 있지만,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했던 타투를 지우는 분이 많았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병원에 장미가 그려진 타투를 지우러 온 분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려진 문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장미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 시술한 분을 찾아갔다. 그분은 송탄 미군 부대 앞에서 ‘키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셔서,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분 덕분에 타투이스트로서 첫걸음을 잘 뗐다. 당시 타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였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성격상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의사 교육 과정에 타투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타투 시술을 시작했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미국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메스를 들지 않는 의사, 아쉬움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위에 있는 형과 누나들이 다 재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에 부담이 컸다. 알다시피 등록금부터 생활비, 월세 등등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나? 우리 집 형편으론 그게 빠듯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의사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성적도 잘 나와서 의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다만 경제적 부담 없이 다니고 싶어서 여러 의대를 알아봤는데, 마침 한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매달 용돈을 지원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였지만,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길과 달라서 방황했다.
원래의 꿈은 고고학자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별을 관찰하거나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잠시 보류했다. 의사가 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그 꿈들을 내려놓았다.
매머드 연구가 그 연장선일까요?
연구까지는 아니고 매머드와 관련된 공부를 잠깐 했다. 끝내 못 이룬 고고학자의 꿈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지도 교수님이 사하 공화국으로 매머드 연구를 하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다녀왔다. 사하 공화국에는 냉동 상태로 발견되는 매머드가 많아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의사로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인류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다녀왔다. 예전에는 남극에도 잠깐 있었다.
남극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월동의사로 다녀왔다. 알다시피 남극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없다. 의사라고 해서 남극 기지의 월동의사로 무조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특수성이 있어,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기회였다. 한 명을 뽑았는데 여덟 명이 지원했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 전략적 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관장 부서가 복지부였는데, 복지부 장관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 7가지를 적어서 편지를 보냈다. 장관 대신 실무자가 편지를 읽고, 나의 적극성을 높이 샀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결국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보건의 시절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의사로서 본분을 잊은 적 없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다. 밑에 있는 직원도 와서 만류하고, 동료 의사도 반대하고, 타투이스트도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 의사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걸 하냐”는 식이었다. 홈페이지에는 “이게 그림이냐? 학원이라도 다녀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아무 맥락 없이 “밤길 조심하세요” 하며 험악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타투이스트는 직접 찾아와서 자중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이제는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주로 어떤 타투를 하시나요?
정해진 틀은 없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다만 의사이다 보니 메디컬 타투에 신경 쓰고 있다. 의료 문신 혹은 재건 문신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타투가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타투는 복원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백반증 환자의 경우 하얗게 된 부위를 타투를 이용해 보통의 살처럼 만들어준다. 의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타투를 하면서 내 신분을 한 번도 망각한 적은 없다.
타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성형외과를 하면서 3만 건 정도의 쌍꺼풀 시술을 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투는 시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기억난다. 특히 한 부자(父子)의 사연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대가 없던 부자였는데, 타투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 아버지는 타투를 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말리셨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나중에는 등판에 타투를 새기고 가셨다. 마지막 시술을 받고 가시면서 고맙다고 했다. 타투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들과 말문을 열게 됐다고 하시면서. 그 기억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다.
타투는 구속할 수 없는 자유
20년 동안 타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투는 늘 새롭다. 코와 쌍커풀은 정형화된 방법으로 시술한다. 하지만 타투 세계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법이나, 귀걸이를 고르는 취향도 다 다르지 않나? 타투도 마찬가지다. 같은 독수리 도안이라도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새로움이 없었다면 지루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알려준 건 키미이지만, 실제로 나를 키운 건 고객이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그렇지 않나? 나도 똑같다. 타투도 같은 형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내용을 담는 일이다. 끊임없는 새로움이 내 원동력이다.
삶의 롤모델이 있나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반 고흐를 존경한다. 둘 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해바라기이지만 고흐는 전부 다 다르게 표현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것도 모자라 패션에 자신만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목표는 없다. 그냥 타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2년째 소방관에게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찰관과 응급실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료 시술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테러가 발생할 당시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분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영어가 빼곡하게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들의 이름이었다. 미안과 존경의 표시로 말이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도 나중에 소방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결심을 이제야 실행하게 됐다.
타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구속할 수 없는 자유다.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독수리를 새기고 싶으면 새기면 된다. 20대에 할지, 나이 들어서 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것이다.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란 말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 미생은 가능성을 품은 순간을 뜻한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헷갈린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선택의 결과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조명신 원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가 선망하던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공중보건의 시절 남극 월동 의사에 도전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수술실에서 메스를 드는 대신 몸에 타투를 새겼다. 유년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탐구했다. 현재도 타투이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메디컬 타투를 시술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바둑판 안에 갇힌 돌로 남기를 거부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도전하고 있다.
그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락한 안정이 아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를 좇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이지만 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 ‘안정’ 대신 ‘모험’으로 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년에 소박하게 타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조명신 원장의 또 다른 모험을 응원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팔 또는 다리를 잃고 의수 또는 의족을 차고 생활하는 이웃들을 가끔 만난다. 이들을 만날 때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렇다. 사지 중 일부를 잃게 되면 삶의 질이 저하되고 이로 인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환상지통(Phantom limb pain, 幻想肢痛)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 증상은 신체 절단을 경험한 이웃 대부분이 경험한다.
환상지통은 사지 중 일부의 절단 이후 발생한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지에서 느끼는 통증이나 이상 감각이다. 예를 들어 무릎 아래 절단으로 발을 잃었지만 없어진 발에 통증을 느낀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라며 손사래를 치는 독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절단 수술 이후 많은 분이 힘듦을 호소하는 증상이다.
16세기 프랑스 의사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é)가 최초로 환상지통의 증상에 관해 기술했고,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시기 의사인 사일러스 미첼(Silas Weir Mitchell)에 의해 환상지통(Phantom limb pain)이라고 명명됐다. 환상지통은 코, 눈, 가슴 등 우리 신체 어느 부위에서도 소실 이후에 발생할 수 있고, 상지와 하지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 신체 소실 환자 중 많게는 80%까지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만큼 절단 후 많은 분이 피해갈 수 없는 증상이다.
증상은 타는 듯한 통증(작열감),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 칼로 베는 듯한 통증, 꽉 쥐어짜는 듯한 통증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절단 환자의 50% 정도는 절단 후 24시간 이내에 발생하고 길게는 수년이 지난 후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증상 발생 후 시간이 흐르면서 호전되는 경우가 많지만 수년간 지속하기도 한다.
신체 중 일부를 잃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흔한 원인으로는 당뇨, 외상, 암, 혈관 장애 등이 있다. 2005년 미국의 사지 절단 환자는 160만 명으로 조사됐고, 2050년에는 36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사지 절단 환자는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환상지통을 겪는 사람들 역시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는 환상지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숨기며 살았다. 없어진 사지에 통증이 있다고 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 점이 우리가 환상지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환상지통은 증상 발생 초기에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환상지통이 발생하는 의학적 기전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정신적인 문제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절단 후 발생하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의 이상 변화를 기전으로 하는 복잡한 증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환상지통은 절단 전 통증이 있었던 사지에서 잘 발생한다. 성별 및 나이에 따른 증상 발현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감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와 흡연, 지나친 음주, 외부의 차가운 환경에 노출 시 악화하는 특징을 보인다.
환상지통의 치료는 약물적 치료와 비약물적 치료가 있다. 약물적 치료는 환상지통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생각되는 중추신경계 또는 말초신경계를 대상으로 하는 약물이 있다. 항우울제, 항경련제, 마약성 진통제 등이 도움이 된다. 비약물적 치료에는 거울을 이용한 재활 치료(시각 훈련), 전기자극치료, 반복적으로 자기장을 이용해 뇌를 자극하는 경두개자기자극술, 침 치료 등이 있다. 약물치료와 병행하면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환상지통은 스트레스, 우울감, 불안감 등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증상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의 도움을 통한 적극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사지 절단 후 의족 혹은 의수 등의 보조기를 착용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적절하지 않은 보조기를 착용할 경우 환상지통의 악화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자신이 상태에 맞는 보조기를 적절하게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절단지의 근력 강화도 통증 호전에 도움이 된다. 꾸준하고 적절한 근력 강화 운동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증상 발생을 의료진에게 조기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통해 적절한 치료를 즉시 적용함으로써 증상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환상지통은 우리 몸의 신경계가 연관된 복잡한 기전을 통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다양한 증상 악화 요인들이 존재하는 만큼 이러한 요인을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환상지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통해 사지 손실에 따른 삶의 질 저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골반이나 엉덩이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야외활동과 운동량이 줄고 그만큼 관절이 경직되면서 고관절에 무리가 오기 쉽기 때문이다.
◇걸을 때 샅 부위 통증 있다면 ‘고관절염’ 의심
고관절(엉덩이관절)은 넓적다리뼈와 골반이 만나는 곳으로 척추와 더불어 체중을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관절이다. 공처럼 둥글게 생긴 넓적다리뼈의 머리 부분(대퇴골두)과 이 부분을 감싸는 절구 모양의 골반골인 비구로 구성돼 있다.
고관절은 항상 체중의 1.5~3배에 해당하는 강한 힘을 견뎌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체중의 최대 10배 하중이 가해질 때도 있다.
관절염은 무릎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고관절에도 생길 수 있다. ‘고관절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일차성 고관절염은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노화가 진행함에 따라 발생하며, 이차성 고관절염은 선천성 이상 또는 외상, 감염 등의 이유로 인해 생긴다. 국내 환자의 경우 일차성에 비해 이차성 고관절염 환자가 많은 편이다.
고관절염이 생기면 넓적다리뼈와 비구가 모두 망가지게 된다. 고관절염은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진행을 막을 순 없다. 평생 쉴 수 없는 관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좋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샅이 시큰거리고, 증상이 심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오게 된다. 치료에는 생활습관 개선, 운동, 재활, 약물치료와 같은 비수술적 치료와 관절내시경, 인공관절과 같은 수술적 치료가 있다.
전상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고관절 질환이라고 하면 대부분 인공 관절수술을 떠올리기 쉽지만 초기에 치료하면 약물이나, 물리치료, 운동만으로도 절반 정도는 증상 호전이 가능하다”며 “샅(사타구니, 두 다리의 사이) 부위나 엉덩이, 허벅지 쪽으로 뻗치는 통증이 1~2주 이상 지속한다면 반드시 고관절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 과도한 음주가 고관절 건강 악화 원인
고관절 질환 중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도 조심해야 한다. 넓적다리뼈 머리의 일부나 전체가 썩는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는 대퇴골두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괴사한 부위는 재생이 불가능하고 뼈가 허물어지면서 샅과 대퇴부 안쪽에 심한 통증이 생긴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는 단계별로 진행한다. 첫 증상은 사타구니와 엉덩이의 묵직한 통증이다. 이후 질병이 진행함에 따라 병변 측 엉덩이로 서 있거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게 되고, 앉았다 일어설 때 또는 다리를 벌리거나 꼴 때 통증이 발생한다. 특히 걸을 때 통증이 심해지면 병변을 의심할 수 있다.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병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전상현 교수는 “환자들은 흔히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를 ‘뼈가 썩는 병’으로 잘못 이해하고 그대로 두면 주위 뼈까지 썩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는 뼈가 국소적으로 죽어 있을 뿐 뼈가 부패하는 것도 아니고 주위로 퍼져 나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대퇴비구충돌증후군’도 대표적인 고관절 질환 중 하나로 꼽힌다. 넓적다리뼈나 비구의 모양에 변화가 생겨 비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비구순이 파열되거나 관절 연골이 파손되는 병이다. 걷거나 뛸 때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앉았다 일어날 때나 차에 타고 내릴 때, 자세를 바꿀 때처럼 특정 동작을 할 때 샅 부위에 강한 통증이 짧게 발생한다.
대퇴비구충돌증후군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축구, 야구, 스케이트, 발레 등 고관절을 많이 구부리는 운동을 한 경우에 발생한다. 관절내시경으로 원인을 찾아내 치료할 수 있다.
고관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한 음주를 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의자에 앉을 때 흔히 하는 다리를 꼬고 앉는 동작도 피하는 것이 좋다. 이 자세는 고관절이 과도하게 굴곡 되고, 안으로 모이면서 회전하는 자세로 비구순이나 연골 파열을 부를 수 있다. 또 양 무릎을 붙인 채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혼자서 드는 것도 피하는 것이 좋다.
◇올바른 자세와 근력 운동은 필수
고관절이 가장 편안한 자세는 힘을 빼고 의자에 약간 비스듬히 걸터앉는 자세다. 오래 앉아 있거나, 걷고 난 후 샅이 뻑뻑하고 시큰한 느낌이 있다면 이 자세를 취해 관절을 쉬게 해줘야 한다. 고관절은 항상 큰 하중이 가해지는 곳인 만큼 평소 자신의 체중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잠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잠수 후 충분한 감압을 시행하도록 한다.
고관절에는 하중을 최소화하면서 많이 움직이는 운동이 좋다. 대표적인 것이 수중운동이다. 물속에서는 체중에 의한 하중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아쿠아로빅 같은 격렬한 운동도 관절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고관절 치료의 재활에 이용될 정도다.
자전거 타기도 좋다. 이때 자전거의 안장을 조금 높여 고관절이 많이 구부러지지 않게 한 후 큰 가속 없이 부드럽게 페달을 밟도록 한다. 자전거를 탈 때 가속을 급격하게 하면 뛸 때처럼 체중의 5배 이상 하중이 가해진다. 수중운동을 하거나 자전거 타기가 힘들다면 걷기도 좋다. 가속 없이 부드럽게 30분~1시간 동안 보행한다.
반대로 고관절을 과도하게 구부리는 동작이 필요한 스케이트, 태권도, 야구 등을 하다가 통증이 생긴다면 곧바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전상현 교수는 “꾸준한 운동은 체내 칼슘의 흡수 능력을 높이고 골밀도 유지를 돕는다”라며 “무리한 운동은 지양하고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해 뼈 건강과 근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척추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33개의 척추뼈로 구성되고 경추와 흉추, 요추, 천추로 나뉜다. 위로는 머리를 받치고 아래로 골반과 연결된다. 각 척추뼈 사이에는 추간판(디스크)이라는 연골이 존재하는데 척추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작용을 한다.
흔히 ‘디스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추간판 탈출증은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에 존재하는 추간판이 여러 원인에 의해 손상을 받거나 퇴행성 변화를 겪으면서 나타나는 척추질환이다. 추간판 내부의 젤리 같은 수핵이 탈출하거나 후관절 주위 골극과 섬유륜이 비후돼 주변을 지나는 척추신경을 압박하며 통증과 근력 저하 등 다양한 신경학적 이상 증상을 일으킨다. 흔히 사용되는 “디스크가 터졌다”는 표현은 의학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탈출한 디스크의 크기가 크거나 위 또는 아래로 전이되는 경우 사용된다.
추간판 탈출증의 치료하면 먼저 수술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 이재원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인 추간판 탈출증은 대부분 주사 치료 같은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는 경우가 많지만 적극적 보존 치료에도 통증이 호전되지 않거나 근력이 감소한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표증상은 허리통증과 다리 저림
추간판 탈출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허리 통증과 다리저림이다. 허리 통증만 심하거나 다리 저림만 심한 경우도 있고, 두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다리를 펴서 들어 올리려고 하면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통증이 심한 경우 보행이 어렵고 추간판 탈출증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간혹 하지 근력이 저하돼 발목이나 발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근력 저하가 발생한 경우에는 보행 시 발과 발목의 움직임이 제한돼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넘어지는 일도 있고 방치할 경우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추간판 탈출증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대개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변화에 생활습관이나 자세(근무조건)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력 역시 추간판 퇴행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추간판 탈출증의 진단은 증상, 진찰, 단순 X-레이로도 추정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진단은 MRI(자기공명영상)로 이뤄진다.
환자 70%는 비수술적 치료로 2개월 내 호전
추간판 탈출증의 치료는 안정과 휴식, 약물치료, 물리치료 등으로 대표되는 비수술적 치료가 주로 시행된다. 환자의 70% 이상이 비수술적 요법으로 보통 2개월 이내에 증상이 호전된다. 통증이 심하거나 치료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 주사 치료, 시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는 적극적인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지 않거나 근력 저하가 발생한 경우로 전체의 3~5%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술을 무조건 피하는 것 역시 답은 아니다. 이재원 교수는 “허리 수술은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꼭 필요한 경우에도 수술적 치료를 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수술이 크고 부작용이 많다는 오해 때문이다”라며 “최근에는 수술 기술의 발전으로 척추 내시경 수술 등 다양한 기법이 개발되고 발전하면서 좋은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 ‘눈길’
특히 최근 눈길을 끄는 수술은 척추 내시경 수술이다. 척추 내시경 수술은 작은 구멍 1개 또는 2개를 이용해 수술이 이뤄지는데, 근육의 손상이 거의 없고 주변 조직을 잘 보존해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도 거의 없는 것이 장점이다. 예전에는 절개해서 수술하던 것을 구멍만 뚫어 수술하는 방식이다. 환자의 질환에 따라 양방향이나 단방향으로 수술한다. 수술을 위해 구멍을 두 개 뚫는 것이 양방향이고, 구멍을 한 개만 뚫는 게 단방향이다. 척추 내시경 수술은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어린이 측만증이나 성인 척추변형 등 특별한 질환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
이재원 교수는 “척추 수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예전에 일부 병원에서 수술이 꼭 필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경우에도 수술을 하거나 척추 수술 후 생기는 통증(근육 손상)과 합병증(감염)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은 절개 하지 않고 두 개의 작은 구멍을 뚫어 수술하기 때문에 근육 손상이나 감염의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추간판 탈출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허리 운동을 지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20~30분가량 평지나 낮은 언덕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자유형이나 배영 중 편한 것) 등 유산소운동 역시 권장된다. 또 올바른 허리 사용법을 익히고 습관화하는 것도 추간판 탈출증 예방에 중요하다. 이재원 교수는 “척추 건강을 위해서는 특히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라며 “허리와 등 근육이 튼튼하면 일어날 때 척추에 지지하는 하중을 분담할 뿐 아니라 허리를 움직일 때 척추의 후관절 등 주변 조직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따라서 허리와 등 근육을 튼튼하게 관리하면 허리에 발생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