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발전재단이 ‘트래블헬퍼’를 통해 제주도 신중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장애인과 고령자의 관광을 돕게 된다.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가치 확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이다.
노사발전재단은 19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관광공사, 사회적기업 두리함께와 ‘제주 무장애관광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무장애관광’은 장애인, 고령자 등 관광약자가 관광에 있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환경을 의미한다.
이번 협약은 제주지역 신중년 적합직무로 개발된 ‘트래블헬퍼’ 양성을 통해 신중년 일자리창출과 사회적 가치확산을 위해 상호 협력 방안을 마련하게 됐다. 트래블헬퍼는 관광약자의 여행시 불편함을 해소하고, 관광 활동에 따른 여행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번 협약을 통해 운영되는 ‘관광업 특화 전직지원서비스’는 생애경력설계 및 업종 특화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제공되며 트래블헬퍼 과정 이수 후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로 취업할 수 있다.
재단은 ‘관광업 특화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탐색, 진로 설정 및 취업 역량을 높이고, 장애유형별 트래블헬퍼 역할, 보조기기 이해 등 전문 과정을 제공한다.
제주관광공사는 무장애관광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제작 및 관광약자 참여형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관광약자의 문화향유권 증진을 지원한다.
정형우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관광업 분야 전직지원서비스가 코로나로 인해 퇴직·전직을 하는 관광업 종사자들의 재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관광약자들을 위한 무장애관광 육성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코로나로 인해 축소됐던 국제선 운항 규모를 50%까지 회복하는 ‘국제선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을 추진한다.
국제선 정기편은 코로나 발생 이후 약 9% 수준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코로나 전에는 일주일에 4714회 운영하던 국제선이 현재는 주 420회로 대폭 줄었다.
국토부는 현지 방역상황, 입국 시 격리면제 여부 및 상대국 항공 정책의 개방성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빠른 여객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노선들을 중심으로 항공 네트워크를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국제선 회복방안은 1~3단계로 추진된다. 먼저 오는 5월부터 매 월 주 100회씩 늘려 연말에는 50% 수준으로 회복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인천공항의 시간당 도착 항공편 수를 2년 만에 10대에서 20대로 늘린다. 부정기편 운항허가 기간도 당초 1주일 단위에서 2주일 단위로 개선한다.
지방공항도 세관·출입국·검역 인력 재배치 등 준비기간을 거쳐 국내 예방접종완료자에 한해 국제선 운영을 재개할 예정이다. 5월 무안·청주·제주공항, 6월 김포·양양공항 순이다.
2단계는 오는 7월부터 진행된다. 국제선 정기편은 매월 주300회씩 증편하고, 인천공항 시단당 도착 항공편 수는 30대로 확대한다. 지방공항 운영시간을 정상화 할 계획이며 방역 위험도가 높은 국가의 항공편 탑승률 제한도 폐지한다.
3단계는 코로나가 끝남을 알리는 ‘엔데믹’ 이후의 정책으로 모든 항공 정책을 정상화 한다. 월 단위로 인가했던 국제선 정기편 스케줄은 이전과 같이 국제 표준에 맞춰 여름,겨울 매년 두 차례 인가하고, 인천공항 시간당 도착 편수도 기존 40대로 정상화 한다.
국토부 김용석 항공정책실장은 “지난 2년 동안 대량휴직·구조조정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국가 검역정책 최전선에서 적극 협조해 준 항공업계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며 “방역정책을 포함한 모든 코로나 관련 정책의 최종 목표는 ‘우리 국민들이 일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 인만큼, 항공분야도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시 중단되거나 폐쇄됐던 벚꽃길이 개방된다. 서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 여의도와 석촌호수 벚꽃길이 3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다만 두 곳 모두 기존에 진행했던 벚꽃 축제는 따로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영등포구는 여의서로 벚꽃길을 제한적으로 개장한다고 밝혔다. 앞서 영등포구는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여의도 봄꽃축제'를 개장 16년 만에 전면 취소한 바 있다. 시민들은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서강대교 남단∼의원회관 사거리 1.7㎞ 구간인 여의서로 벚꽃길을 걸을 수 있다. 개방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10시, 주말 오전 8시∼오후 10시다.
벚꽃길 진·출입로는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와 의원회관 사거리 두 곳이다. 한강공원에서 벚꽃길로 올라오는 통행로는 모두 차단되고, 벚꽃길 내 전동킥보드와 자전거 주행은 금지된다. 차량 운행은 30일 낮 12시부터 다음 달 9일 낮 12시까지 여의서로에서 전면 통제될 예정이다.
송파구도 3년 만에 석촌호수 벚꽃길을 열기로 했다. 석촌호수 벚꽃 축제는 따로 열리지 않지만 운영 시간 제한 없이 호수를 찾아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비대면 축제’가 열리는 곳도 있다. 경북 경주시는 지역 대표 봄 축제인 '벚꽃축제'를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비대면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관광객을 분산시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숨은 벚꽃 명당 찾기, 벚꽃과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 등 친환경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서귀포시는 3월 말부터 4월 중순 사이에 많은 상춘객이 유채꽃 축제 행사장인 유채꽃 광장과 녹산로 일대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해 2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방역에 힘쓸 계획이다. 조랑말체험공원 내에 약 10만㎡ 규모로 조성된 유채꽃 광장의 출입구를 지정해 방문객을 상대로 호흡기 증상 유무 등을 확인한 뒤 입장을 허용한다. 또한 축제 기간에는 동시 수용 인원을 최대 299명으로 제한한다. 이 밖에 지자체들도 지역 내 봄축제 개최와 관련해 온라인 진행이나 취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2일 중앙방역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화장능력과 안치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추가 조치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감염 전파 등을 우려해 고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된 경우 반드시 화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주일간 사망자가 2253명에 달하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급증으로 화장장 정체와 시신의 안치 공간 부족 등 장례절차 진행에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부터 전국 화장로 운영을 확대하고 운영시간을 연장한 바 있다. 하루 처리 화장 능력은 1000건에서 1400건 정도로 확대됐다. 그러나 수도권 및 광역시 등 대도시 중심으로 사망자 발생 및 화장수요가 몰리는 등 여전히 지역별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기존 수도권 및 광역시 대도시 중심으로 적용하던 ‘화장로 1기당 7회 운영 기준’을 전국 60개 모든 화장시설에 적용한다. 또한 복지부는 조례 등에 따라 관외 사망자 화장을 금지한 지자체도 한시적으로 관외 사망자 화장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줄 것을 17개 시·도에 권고했다.
화장 지연으로 인해 시신을 안치할 장소도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전국 장례식장 1136개소에서 시신 8706구를 보관할 수 있는 안치냉장고가 운영 중이다.
지역별 화장 가능 인원은 서울 191구, 경기 200구, 인천 95구 등 수도권 486(33.9%)구다. 비수도권은 부산 98구, 대구 60구, 광주 46구, 대전 35구, 울산 36구, 세종 36구, 강원 104구, 충북 61구, 충남 64구, 전북 73구, 전남 73구, 경북 106구, 경남 139구, 제주 16구다.
정부는 향후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는 상황까지 대비하기 위해 추가 안치 공간을 구축할 예정이다. 장례식장 및 화장장 등의 여유공간을 확보해 안치냉장고를 추가 설치하고, 실내외 저온 안치실을 구축한다. 화장장에 추가 구축한 안치공간은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끝냈으나 화장예약을 하지 못해 대기해야 하는 고인을 임시로 안치할 수 있도록 활용할 계획이다.
더불어 전국 지자체에 모든 장례식장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장례를 수용하도록 행정지도할 것을 요청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이번 조치가 유족의 장례 절차 과정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고인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특정 지역으로 화장 수요가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근 지자체 등 권역 내에서 화장수요를 분담하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우리나라 전국 주요 산림에 자생하는 식물의 올해 봄꽃 개화(만개) 예측 지도를 발표했다. 예측지도에 표기된 지역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주요 산림 17개 지역과 권역별 국‧공립수목원 10곳이다.
이번 예측은 산림청 주관으로 전국 국·공립수목원 10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해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기록된 현장 관측자료(개화>50%)를 기반으로 조사했다. 분석에는 우리나라 산림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생강나무와 진달래, 벚나무류를 기준으로 통계 모델 기계학습(랜덤 포레스트·random forest) 방식을 적용했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산림 봄꽃의 절정은 대체로 3월 중순 시작될 예정이며, 특히 남부에서 중부지역으로 점차 확대됐던 과거와 달리 제주도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절정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됐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보면 벚나무류가 남부권 오산시의 물향기수목원이 4월 12일, 포천시의 국립수목원이 전국에서 가장 늦은 같은 달 18일께 만개한다. 제주도의 한라수목원과 전라남도의 완도수목원이 4월 3일로 가장 빨랐다. 다만 기준일은 ±5일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최영태 국립수목원장은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봄꽃 개화 예측지도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매해 산림 현장에서 직접 관측되고 있는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측 자료를 확보해 예측의 정도를 점점 높이겠다”고 말했다.
선흘리 동백동산은 습지를 품었다. 비가 내려도 고이지 않고 그대로 땅속에 스며든 지하수 함량으로 사계절 보온·보습 효과가 높다. 제주에선 이런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곶자왈이라고 한다. 수풀을 의미하는 ‘곶’,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는 ‘덤불’에 해당하는 ‘자왈’, 곶자왈이다.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 동백동산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 1리에 있다.
겨울 동백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름부터 동백동산인 선흘마을에서는 동백꽃 보기가 쉽지 않다. 이곳이 보호림으로 지정되면서 모든 수목이 고스란히 쑥쑥 성장한다. 그에 비해 성장이 더딘 동백나무는 큰 나무들 틈에 가려서 햇빛을 보기 어려워 꽃 피울 여력이 없기 때문. 제주의 여느 동백꽃 군락지처럼 흐드러진 꽃동산은 아니지만 이곳 동백동산만의 태곳적 매력과 그윽한 은은함을 듬뿍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제주 남쪽보다 꽃피는 시기가 늦어서 3~4월에도 드문드문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선흘리 마을길을 앞에 두고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널찍한 방문자 센터가 친절하다. 안내 내용을 훑어보면서 동백동산의 숲과 습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챙기고 시작할 수 있다. 약 1만 년 전 형성된 용암대지 위에 뿌리내린 숲, 곶자왈.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길에 낙엽이 수북수북하다. 덩굴식물이 뒤엉키고 촘촘한 나무들로 겨울 숲은 여전히 푸르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독특한 식생의 숲이다. 숲길 군데군데 다양한 형태의 숯막터가 남아 마을 주민들의 살아온 생활상이 엿보인다.
밀림과도 같은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적막함에 슬그머니 두렵기까지 하다. 푸른 이끼로 뒤덮인 암석 사이로 아름드리나무가 굵직한 뿌리를 드러냈다. 얽히고설키어 서로 손을 잡고 팔짱을 낀 듯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자연의 숲은 이렇게 방법을 찾아간다. 맑은 새소리까지 들린다. 숲의 운치가 절정이다. 태곳적 제주의 풍경일까. 알 수 없는 신령스러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원시림 속을 헤매는 듯하다. 제대로 된 제주의 곶자왈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곳은 제주 역사의 아픈 과거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제주 근대사의 뼈아픈 4.3사건 광풍이 몰아쳤던 도틀굴이 숲길에 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의 은신처였던 곳인데 발각되어 억울하게 현장에서 몰살되거나 모진 고문을 당한 피맺힌 역사의 현장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제주 동백은 4월이 더 붉다더라’라고도 말했다.
겨울이지만 사계절 피워내는 상록수림으로 숲은 울창하고 아늑하다. 걷다 보면 중간쯤에서 만나는 먼물깍.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의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뜻의 ‘깍’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011년 람사르 습지에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는 먼물깍 습지다. 생활용수나 가축들이 먹었던 물로, 용암대지의 오목하게 함몰된 부분에 빗물이 채워져 만들어졌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먼물깍은 희귀 생물들의 서식지로도 생태적 가치가 크다. 동백동산 습지는 먼물깍을 중심으로 0.59㎢ 지역이 2010년에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원시의 숨결 속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은 듯 먼물깍 주변은 온통 고요하다.
동백동산 숲길은 총 5.1km. 걷기에 따라 1시간 30분~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숲길이다. 동백동산의 나무는 그동안 이 터를 지켜온 선흘리 주민들의 집을 짓거나 생활 도구가 되어왔다. 습지에서 먹을 물을 긷고 일상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던 생명의 못(池)이다. 이제는 이 모든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고민한다. 이곳에 가면 마을 공동체의 따뜻한 자연 지킴 모습을 보며 삼촌 해설사의 진솔한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흔히들 제주 하면 섬을 둘러싼 바다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제주 본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제주 땅에 자리 잡은 다양한 생태의 숲들이다. 제주의 숲은 이 터를 지켜온 현지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자부심이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겐 치유라는 위로의 선물이 되어주는 곶자왈 숲이다. 사계절 울창한 숲 동백동산이 뿜어내는 청량한 생명력 또한 그렇다.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겨울 동백숲으로
제주의 겨울 여행이라면 호사스러운 동백꽃 구경을 하고 볼 일이다. 제주 서귀포 위미리에 가면 동백꽃 명소가 몇 군데 있다. 위미리는 제주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다. 동백꽃 성지라고도 할 수 있는 위미리 마을의 돌담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동백꽃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바닥을 온통 붉게 물들인 듯 레드카펫을 이룬 동백꽃길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네다. 제주에선 초겨울부터 초봄까지 붉은 동백을 푸지게 볼 수 있다.
SNS에서 제주 동백이라는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여러 군데의 동백 군락지가 나온다. 그중 동백수목원은 붉은 애기동백이 솜사탕처럼 타원형으로 붉은 꽃을 피운 모습이 아름다워 겨울이면 포토 스폿으로도 인기 있다.
남원읍의 위미리 동백군락지는 백여 년 전만 해도 황무지 돌밭이었다. 열일곱 나이에 이 마을로 시집 온 고 현맹춘 할머니가 제주의 모진 해풍을 막아내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으면서 현재의 위미리 동백군락지를 만들어냈다. 제주 고유의 토종 동백나무 숲과는 달리 부근의 동백수목원은 할머니의 증손자가 만들어낸 숲이다. 4대째 이어온 동백 사랑이다. 500여 그루의 애기동백을 심어 조성한 것으로 또 다른 제주 동백의 명소가 되고 있다.
애기동백과 토종 동백의 차이를 본다면, 토종 동백은 1월 엄동설한에 피어나 3월까지 피고 지고를 거듭하는 붉은 동백이다. 반면 애기동백은 11월부터 피우기 시작하는데 꽃 색감이 짙은 분홍빛이다. 뿐만 아니라 꽃 한 송이가 비장하게 통째로 툭 떨어지는 토종 동백에 비해 애기동백은 꽃잎을 분분히 흩날리며 떨어진다.
애기동백의 색감은 유난히 핑크빛이다. 러블리한 핑크빛 동백숲에서 웨딩 촬영을 하거나 연인들의 인생샷을 담기 위한 포즈를 곳곳에서 본다. 봄날처럼 온화한 기후 속에 행복 넘치는 공간이다. 판타지 동화 속에 나올 듯한 미로의 숲처럼 빽빽한 애기동백 숲을 누비다가 수목원 2층 전망대에 오르면 건너편에 펼쳐진 제주의 시원한 바다가 이국적이다.
붉은 애기동백이 올망졸망 피어 있는 동백숲. 꽃망울을 터뜨리는 1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지역에 따라 피고 지고를 달리하는 모습을 초봄까지 볼 수 있다. 겨우내 피어 있어 지긋하게 만날 수 있으니 제주의 겨울 여행 중 새하얀 눈 속에서 선홍의 동백꽃을 찾아가 봄 직하다. 이름부터 ‘겨울 동’(冬)에 ‘나무 이름 백’(柏)이다. 허나 꽃이 이미 속절없이 떨어졌으면 어떠랴. 동백꽃은 역시 낙화한 모습 아니던가. 풍성하게 만개했을 때의 멋과는 달리 선혈 낭자하게 뚝뚝 떨어져 있는 모습도 겨울 동백의 풍경이다.
제주 동백동산 & 제주 동백수목원
제주 동백동산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
•문의처 : 064-784-9445
•이용 시간 : 09:00~18:00
제주 동백수목원
•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929(주차장 931-1)
•문의처 : 064-764-4473
위미동백나무군락(기념물 제39호) : 위미리 904-1
11월 이후 겨울 시즌 동안만 영업. 유선 확인 필요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과 해남을 ‘남도 답사 1번지’로 꼽았다. 그 여파는 컸다.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으니까. 그런데 진도를 젖혀두고 남도 문화의 끌텅과 태깔을 논하는 건 좀 어폐가 있다. 진도야말로 노른자다. 시(詩)·서(書)·화(畵)·창(唱)·무속의 곡간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정부에 의해 전국 최초의 ‘민속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알고 보면 돌올하고 뜯어보면 찬연한 문화지구 진도에서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은 빼어나다.
운림산방은 전통회화의 한 본산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장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의 창작 산실이며, 5대에 걸친 그의 직계 화맥(畵脈)이 박힌 곳이다. 진도의 진산 점찰산 아래 둥지를 튼 품새는 또 어떻고? 널찍한 터는 호방한 맛을 준다.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안온하다. 산의 푸른 치맛자락을 거머쥐어 수려하고 청신하다. 겨울이 좋다고 혹한에도 얼싸절싸 피어나는 동백꽃 무리는 꾹 눌러 점점이 칠한 붉은 물감처럼 흥건해 기발하다.
원래 이곳엔 소치의 화실과 침식을 위한 초가 하나, 그리고 소치가 만든 연못이 있을 뿐이었다. 단출해서 오히려 그윽했으리라. 꾸밈없이 적막해 한갓졌으리라. 이후 현대에 이르러 보탠 구조물이 많아졌다. 그래도 본색이 어디 가겠나. 진도의 어떤 이들은 운림산방 일원을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이곳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맞먹을 실경산수를 연상하는 거다.
소치가 뉘신가? 이름을 좀 날린 화가에 그치지 않는다. ‘소치는 묵신(墨神)이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걸 보면, 그림으로 달통한 게 많은 기재(奇才)였다. 오원 장승업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을 주름잡았던 걸사(傑士)다. 헌종의 호감을 사 어연(御筵)에 먹을 풀어놓는 영예를 누리고, 함께 서화를 논하기도 했다. 임금을 패트론으로 삼았던 셈이다. 소치의 집안은 변변치 않았다. 허균의 후손으로 한때는 양반 가문이었지만 여러 대에 걸쳐 거듭된 영락으로 어디다 명함을 내밀 건더기가 없었다. 그러나 소치에겐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자청해 그리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낮잠과 끽다(喫茶)로 충분해
그렇다고 일취월장이 절로 가능했으랴. 화가의 창의적 상상력은 기초가 부실한 채로는 터져 나올 리 없다. 그리고 기초라는 건 확장과 성숙에 대한 본능이 추동한 탐구심으로 다져진다. 소치에겐 이 탐구 정신이 내장돼 있었다. 과연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가? 궁구가 깊었던 청년기에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에 갔다가 본 공재 윤두서의 ‘공재화첩’을 통해 소치의 눈이 번쩍 열렸다. 그는 기록했다. ‘비로소 나는 그림 그리기에 법(法)이 있음을 알았다.’
복 가운데 최고는 인연 복이라 한다. 난데없이 떠올랐다 간데없이 사라진 그림쟁이들이 숱했지만, 소치는 인연 복이 많아 비상을 거듭했다. 해남 두륜산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맺은 선연은 돛을 밀어주는 순풍이었다. 초의는 구도(求道)라는 이름의 양탄자를 타고 세사의 모든 영역을 비행한 인물이다. 일지암은 그 비범한 이착륙의 베이스캠프였다. 28세 때 초의의 문하에 들어간 소치는 이 작은 암자에 머물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웠다. 소치는 자서(自敍)에 이렇게 썼다. ‘초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 어찌 고고하고 담백하게 살 수 있었겠는가?’ 소치의 생애에 녹아든 개결한 풍정은 초의에게서 얻은 지성과 화엄정신의 발현이었던 셈이다.
초의가 소치의 정신적 아비였다면, 추사 김정희는 예술적 푯대였다. 소치에게 추사를 소개한 건 초의였으니 인연이 인연을 낳았다. 천재는 준재를 척 알아보는 법. 소치의 작품을 본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 소치만 한 그림을 그리는 이가 없다”고 탄복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찬사만 능사로 삼을 추사가 아니다. 소치여! 그대가 서격(書格)을 터득했는가? 신운(神韻)을 익혀 구사하는가? 그쯤의 깐깐한 일갈로 갈 길 먼 예술 항로를 통찰하게 했다. 이른바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으로 예술혼을 돋우길 주문했다. 추사의 지향은 대상의 형상화보다 정신세계를 끄집어낼 수 있는 관조의 깊이를 중시하는 데 있었다. 소치는 추사의 이 고고한 예술철학에 감명을 받아 길을 교정하거나 노정했을 테다. 그러니 스승을 선망하는 마음이 오죽했겠나. 그는 제주도로 유배 간 추사를 번번이 찾아갔다. 버들잎처럼 작은 배를 타고 사나운 바닷길을 건너가 배움을 청했다. 소치가 제주에서 그린 ‘완당선생 해천일립상’은 추사의 지엄한 풍모를 오마주한 초상화다.
이제 소치의 그림을 볼까. 운림산방에는 소치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소치기념관이 있다. 그저 풍경을 즐기려 운림산방을 찾는 관광객이 즐비하지만 알짜배기는 소치의 그림들에 있다. 소치기념관은 한옥 건물 하나로 꾸린 미술관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기념관치고는 자그마하고 치레 없이 조촐하다 못해 밋밋하다. 소치의 담박한 성정을 고려한 구조라 봐야 할까? 전시실엔 산수화, 병풍 그림, 묵죽도, 모란, 괴석 등 다양한 유형의 그림들이 걸렸다. 물기를 배제하기 위해 붓에 먹을 살짝 찍어 바르는 붓질로, 마치 긁힌 자국 같은 필선을 연출하는 갈필(渴筆)에 능했던 소치의 개성을 직감할 수 있는 작품도 많다. 소치 허련은 ‘허모란’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모란 그림을 즐겨 그려서다. 전시실에서도 모란이 흔하게 눈에 띈다.
걸작이란 평판을 얻은 작품은 운림산방의 전경을 부채에 그린 ‘운림각도’(영인본. 원본은 서울대 소장)다. 소치 만년의 작품이다. 근골이 거칠게 드러난 점찰산과 억실억실한 노송들, 푸른 연못과 소박한 산방 두 채가 어울려 써늘한 정취를 자아낸다. 눈길을 붙잡는 건 지팡이를 짚고 연못가를 거니는 노인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산야의 은자로 사는 이의 고독한 심회를 풀어냈을까? 늙어서는 산천이 스승이다. 말 없는 산야에서 음양의 조화를 읽는다. 여백에 쓴 화제엔 다음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깊은 산골에 있는 나의 집에 여름이 오면 뜰에 푸른 이끼가 깔린다. 소로엔 떨어진 꽃잎들이 가득하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솔 그늘에 누워 새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즐긴다. 단잠에서 깨어나면 솔가지 모아 차를 달여 마신다.’
산림에 사는 이의 영일(迎日)이 완연하다. 인간사에 대한 관심일랑 안으로 거둬들였나? 낙화와 낮잠과 끽다(喫茶)면 그만이었다. 숫제 선풍(仙風)이 비친다. 그래도 긴가민가 늘 궁금한 건 그림이었을 테다. 말년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았으니. 후손에게 남긴 유지에도 그림 소식이 난무해 두고두고 새길 만하다. ‘붓 재주 하나로 성가(成家)할 생각을 마라! 먹을 항상 입에 물고 다녀라! 나를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서린 뜻이 여러 겹이다. 그림을 밥 먹듯이 그리되 통 크게 밀어붙이라는 독촉이다. 웅장한 메시지다.
소치 허련이 남긴 저작과 화맥의 아우라
소치실록
자서전 성격의 문집으로 소치의 생애와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정밀한 자료다. 소치 연구의 핵심 텍스트이기도. 1867년에 쓴 ‘몽연록’(夢緣錄)과 1879년에 집필한 ‘속연록’(續緣錄)을 합본해 ‘소치실록’(小痴實錄)이라 이름 붙였다. ‘몽연록’은 운림산방에서 완성했다. 소치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황량한 곳에서 홀로 슬퍼하며 서책은 물론 모든 것을 버렸다. 뜻밖에 손님이 찾아와 며칠을 쉬는 동안 문답한 것이 있는데 이걸 엮어 책을 만들었다.’
문답식의 다소 특이한 유형의 자서전을 쓴 정황을 밝히고 있다. 대화체 문집이라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조선의 화가 중 소치 외에 자신의 화필 생애를 세세한 기록으로 남긴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도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소치실록’이 현대의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74년 한 매체를 통해 한글 번역 연재물이 게재되면서였다. 당연하게도 소치 연구자와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소치는 스스로 밝혔듯 ‘조실부모해 의지할 곳이 없었고 견문도 넓히지 못한 채로’ 성장기를 통과했다. 이 불우한 과거를 보상받고 싶었을까? 남종화의 거두로 부상하면서 그는 당대 명망가들과 적극적인 교유를 했는데, 사교 일화와 의미심장한 예술적 교감의 내용을 낱낱이 책에 담았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군주 헌종, 고명한 선사 초의, 광활한 예술 세계를 구현한 추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술회한 대목들이 특히 재미있다. 소치의 생애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진면목과 삶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5대로 이어진 소치 화맥
진도에는 이런 얘기가 돌아다닌다. “양천 허씨들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걸작이 나온다.” 소치 가문에서 화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생긴 우스갯소리다. 소치의 화맥(畵脈)은 직계 후손 5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전무후무한 화업의 행진이다.
소치의 화업 2대를 전수한 이는 넷째 아들 미산 허형이다. 소치는 원래 큰아들 허은의 재능을 높이 쳤다. 그러나 허은이 요절하는 바람에 허형이 맥을 이었다. 허형이 그린 묵모란과 묵매는 부친을 능가한다는 평판이 있다. 3대를 이은 건 허형의 두 아들 남농 허건과 임인 허림이다. 허건은 갈필로 그린 필선의 생동감으로 호평을 받았다. 동상 걸린 다리를 절단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장애를 오히려 창작의 화톳불로 삼는 강골의 근성을 과시했다. 소치의 운림산방을 복원하기도 했다. 허림은 사물을 점으로 표현하는 ‘토점화’로 명성을 얻었으나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4대 맥은 임전 허문에게 이어졌다. 그는 수묵의 농담(濃淡)을 활용한 독창적 화법인 ‘운무산수화’에 능하다. 임전 이후 현재의 5대째 화맥은 허건의 손자 허재와 허전, 허건의 조카 허청규와 허은에게 이어지고 있다. 물보다 진한 피가 5대째 그림으로 이어져 가문을 통째 수묵의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 바다의 아우라가 휘황하다.
‘대한민국 1인자’로 꼽히는 정미순 조향사(57).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향수를 만드는 그녀에게서는 어떤 향이 날지 궁금했다. 인터뷰 당일 뿌린 향수를 묻자 “저는 사실 향수를 잘 안 뿌린다”는 반전의 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향을 테스트하고 향수를 개발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 그래서일까. 그녀에게서는 인간 본연에서 나오는 향이 더 짙게 느껴졌다.
데이트 장소를 향해 두근거리며 걸어가는 여대생이 떠오르는 향, 숲속을 걷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향, 중세 유럽의 쓸쓸한 느낌이 드는 향…. 정미순 조향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향수에서는 다양한 향이 났다. 그리고 그 향수들의 어머니답게 그녀는 모든 향을 품었다.
향수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처음 느껴지는 향을 톱 노트, 그 다음에 느껴지는 향을 미들 노트, 마지막으로 보통 잔향이라고 부르는 것을 라스트 노트(베이스 노트)라고 한다.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자신의 향을 내뿜었다. 그녀의 톱 노트는 수수했고,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해지자 밝고 열정적인 미들 노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라스트 노트는 향기를 만드는 예술가답게 통통 튀며 사랑스러웠다.
“향기란 저의 삶, 일생의 동반자 같아요.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도 향기 덕분이고, 향기를 지금까지 놓지 않고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친구, 연인, 가족… 저에게 향기란 그런 존재 아닐까요?”
척박한 불모지 개척
향수뿐만 아니라 화장품, 디퓨저, 향초 등, ‘향’은 우리의 삶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 향을 업으로 삼는 조향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전문적인 조향사가 아니더라도 공방을 차릴 수 있고, 취미로 향수 만들기도 가능하다.
조향사는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일까. 조향사는 여러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제품에 향을 덧입히는 등의 일을 하는 향료 전문가 또는 향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직종을 일컫는다. 화장품 향료나 향수를 다루는 향장품연구자 퍼퓨머(Perfumer), 식품 향료를 다루는 플레이버리스트(Flavorist)로 세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해도 향 산업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다. 2002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정미순 조향사가 1세대라니 말 다하지 않았나. 그전에는 더욱 척박했다. 그녀 또한 조향사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포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녀는 중학생 때 에스티 로더 여사의 전기를 읽고 조향사의 꿈을 갖게 됐다. 에스티 로더가 조향사로 화장품 업계에 입문했던 것.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전공도 에스티 로더를 따랐고,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공부 잘하는 딸이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를 마주하는 것은 당연했다.
“에스티 로더 여사가 화학 공부를 했다는 것이 책에 한 줄 써 있었나 그랬어요. 화학을 전공해야 조향사가 될 것 같았어요. 당시 부모님은 약대를 가라고 하셨죠. 부모님과 의견 충돌이 좀 컸어요. 부모님은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신 거죠. 조향사는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었기에 ‘밥 먹고 살 수 있냐’고 걱정하셨어요. 저는 밥 먹고 살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대를 가고 약사를 했어도 결국에는 향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일을 했어도 저는 결국 향으로 넘어왔을 것 같아요. 시기만 늦어졌겠죠.”
정미순 조향사는 대학교 졸업 후 일반 기업체에 입사했다. 회사 생활을 3년 정도 한 그녀는 잊고 있던 조향사라는 꿈을 떠올리고는, 회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향수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 가는 대신 가까운 일본으로 떠났고, 도쿄 미아조향학원을 다녔다. 3년 동안 공부에 매진해 교육을 수료했다.
그러나 조향사가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정미순 조향사는 다시 수입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2년 출장으로 프랑스의 향수 도시 그라스에 가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그라스는 인구 60% 이상이 향수 관련 산업에 종사하며, 프랑스에서도 향수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정미순 조향사는 향수 회사 갈리마드(Galimard)의 대표를 만났다. 갈리마드는 약 27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프랑스 왕실 향수로 유명하다. 갈리마드에는 조향 체험을 할 수 있는 퍼퓸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그녀는 직접 예약하고 그곳을 찾아갔다. 갈리마드 대표는 향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알아봤는지 한국에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열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귀국 후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외국에나 있던 퍼퓸 스튜디오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녀는 조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으로 발전시켰다. 국내에 마땅한 교육 기관이 없었고, 자신과 같은 꿈을 가진 후배들이 많이 양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1세대 조향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사실 저는 1세대 조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처음 하셨던 분도 있고, 저의 스승님도 계세요. 섬유 회사를 운영하시던 박재덕 선생님인데 제가 학원을 차린 후 먼저 연락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저희 학원에서 플레이버 수업을 하셨고, 제가 첫 제자가 됐죠. 그래서 대한민국 1호 조향사라고 하면 부담스러워요. 제가 조향사로서 처음 한 것은 조향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한 거죠. 또 프리랜서로서 독립 조향사는 처음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던 홀로서기
갈리마드는 조향사로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해줬지만, 현재는 ‘애증’의 존재다. 고마운 은인이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미순 조향사는 갈리마드와 퍼퓸 스튜디오 계약을 맺고 활동해왔다. 향수 수입 판매는 안 했다. 그런데 갈리마드가 국내의 다른 회사와 향수 수입과 관련해 이중 계약을 맺었고, 정미순 조향사와는 결별을 원했다.
이에 2013년 갈리마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지엔(GN) 퍼퓸&플레이버 스쿨’(이하 ‘지엔 퍼퓸’)로 이름을 변경했다. 홀로서기에 나선 그녀에게 갈리마드는 소송을 걸었고,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으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정미순 조향사는 “좋은 관계로 끝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소송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저도 그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는데, 그 업체(다른 파트너사)가 저를 매도한 거예요. 계약 종료 후 저는 바꾼다고 다 바꿨는데, 기존의 기사를 내릴 수는 없잖아요. 정리가 안 된 부분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걸 영업 방해 명목으로 세 개 정도 소송을 건 거예요. 그때 만약 합의를 했으면 영업을 방해하고 갈리마드 이름을 고의적으로 도용했다는 불명예스런 결과가 남는 거였죠. 제 명예도 있고 제자들의 명예도 있어서 소송을 했어요. 1년 넘게 소송을 했는데, 저는 정당하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세 개 다 승소했죠.”
힘들었던 시간은 다행히 전화위복이 됐다. 오히려 단단해졌다. 당시를 회상하며 정미순 조향사는 “소송을 당한 자체로 제가 잘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지인들이나 제자들이 진정성을 알아주고 힘을 실어줘서 잘 극복했다”면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갈리마드라는 이름을 보고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정미순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지엔 퍼퓸은 현재 아카데미, 공방, 향수 회사, 향료 회사까지, 크게 네 가지 사업을 한다. 조향사 자격증 취득도 가능하다. 정미순 조향사는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해내면서 점점 발전하는 향수 산업에 큰 기여를 했다.
“조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안정적인 직업으로 보기는 어려웠어요. 조향사라는 일을 관심 있어 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공방이나 아카데미를 찾아와 배웠으니까요. 이제는 향에 대한 수요가 많이 생겼죠. 브랜드에서도 향수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셀럽 향수 제의도 들어오죠. 셀럽 향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향수를 출시하는 거예요. 그룹 신화와 비가 생각나는데, 비는 공연이 무산돼서 출시는 못 했어요. 언젠가는 가수 박효신 씨의 향수를 만들고 싶어요!”
조향사로 저명해진 그녀는 2021년 2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다. 인기 프로답게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방송을 보면 정미순 조향사는 유재석, 조세호에게 즉석에서 향수를 만들어준다. 이에 대해 그녀는 “유재석 씨는 시원하고 깔끔한 향을 좋아하고, 조세호 씨는 파워가 있는 향을 좋아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고를 것 같은 향을 예측해서 갔는데 그대로 고르더라”고 설명했다. 또한 배려심 넘치는 유재석을 보면서 ‘괜히 톱 MC가 아니구나’를 느꼈다고 후기를 전했다.
자연과 예술에서 조향의 영감 받아
정미순 조향사는 현재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한 달에 2주는 서울에, 2주는 제주도에 있는 격이다. 서울 방배동에 있던 국내 유일의 향수 박물관 ‘뮤제 드 파팡’이 제주도로 이전했고,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곳에서는 원데이 클래스로 자신만의 향수도 만들 수 있다.
“프랑스 그라스에 향수 국제 박물관이 있는데, 뮤제 드 파팡은 그것의 작은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향료를 추출하는 원재료가 심겨 있고, 향도 맡아볼 수 있고, 향을 추출하는 과정, 조향 과정도 볼 수 있어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데, ‘자연 속에 향수 박물관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향수의 히스토리도 듣고 소재가 되는 식물들도 보고 하니 재밌고 신기하죠. 정원도 더 가꾸고, 점점 더 확장시킬 계획이에요.”
정미순 조향사는 어릴 때부터 자연의 향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앞집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꽃 향이 좋아서 매일 저녁마다 향을 맡았다고. 자연의 향기들로 이어진 조향사의 삶. 그녀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새로운 한국적인 향을 만들 계획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싶어서 제주도에 내려간 것도 있어요. 자연이 저한테 영감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제주도의 산이나 바다, 바람 부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 이런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향을 만들지 정한 것은 없어요. 지금은 동백꽃이 많이 피어 있으니 동백꽃을 향으로 표현해볼 생각이에요. 그 계절, 일상이 반영되는 거죠.”
조향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역시 자신이 만든 향수가 대중한테 사랑받을 때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것을 제외하고 지엔 퍼퓸에서 만든 향수는 15개, 제자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향수는 10개라고 한다. 그중 정미순 조향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향수는 무엇일까.
“제가 처음 만든 향수가 맥앤로건 화이트예요. 지금은 라이선스가 끝나서 ‘지엔 화이트’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베스트 셀링된 향수예요. 그리고 최근에 마지막으로 만든 향수는 ‘디야’라고 하는데, 류시화 시인님이 지어주셨어요. 인도 관련 시집의 북 퍼퓸이었고, 샌들우드 향수로 만들었죠. 또 하나는 ‘웜홀’이라는 향수가 있어요.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 ‘먹 향’을 썼어요. 개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던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생소했죠. 그런데 그 향을 꾸준히 찾는 마니아층이 생겨서 뿌듯하더라고요.”
이처럼 정미순 조향사는 자연이든 어떠한 이야기든 영감을 받아 향으로 표현하고 있다. 향을 표현의 예술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만든 향수가 있다. 수녀의 이야기인데 오래된 성당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줬다. 향을 맡은 분들이 공감해줘서 보람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스토리가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향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덧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감 중 후각으로 일하는 조향사에게 코 관리는 생명이다. 그녀는 조향사가 된 이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코와 건강관리를 하는 것. 조향사로서 향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20년 동안 향을 맡았고 약 2000개의 향을 구별할 경지에 올랐지만, 그녀는 여전히 향이 지겹지 않고 좋다. 척박한 불모지에 향을 퍼뜨린 정미순 조향사는 앞으로도 향과 함께하는 삶을 걸을 예정이다.
“저는 향을 계속 만들어나갈 거예요. 대중한테 좋은 향을 만들어서 선보여야죠. 또 개인적으로는 제주에서 뮤제 드 파팡을 좀 더 생각하는 그림으로 키우고, 제자들이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후각은 사실 신체의 노화와 관련 있어서 60대 중반이 최대인 거 같아요. 앞으로 한 5년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경험치로 향을 만들 거예요. 내 머릿속의 냄새를 맡아야죠. 조향사로서의 삶이 언젠가 끝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