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욘사마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시청 앞 광장과 남대문시장 그리고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걷다 보면 배낭을 메고 지하철 지도를 손에 든 채 어설픈 한국어로 길을 묻는 중년의 일본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10대도 아니고 40대를 훌쩍 넘은 중년 여성들이 왜 욘사마를 찾아 한국까지 왔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인 교수 덕분에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야말로 한때는 입시지옥 아래 자식교육에 올인하기도 했고, 이젠 거품으로 끝나버린 부동산 버블의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다. 그런데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저속 성장과 끝 모를 불황의 늪에 빠지자 ‘자식도 아니고 돈(부동산으로 대변되는)도 아니더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들 중년 여성이 ‘욘사마 열풍’을 주도하면서 의 자취를 찾아 한국 땅을 밟는 것이라는데, 정작 이들이 찾아 나선 건 욘사마가 아니라 를 보며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에 가슴 설레어하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 하랴, 빠듯한 남편 월급으로 살림하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던 자신을 뒤늦게나마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일본 중년 여성들의 절실함이 왠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언젠가 고령화를 다룬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부부 나이를 합해 100세가 되면 라이프스타일 이주(移住)를 준비하라. 결코 빠르지 않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호기심도 떨어지고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도 감퇴되게 마련이다. 그러니 50대가 시작되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책 쓴 이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던 차에 정말 우연치 않게 주말이면 초보 농사꾼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오래전 세종시 인근에 땅을 사두셨던 이모님께서 은퇴 후 이모부와 사별하고 귀농을 결심하시면서 ‘가족농장’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쉰둘이었는데, 어느 새 햇수론 7년이 지났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사라곤 대학교 1, 2학년 때 소양강 근처의 부귀리란 마을로 농촌 봉사활동 가서 콩밭의 풀 뽑았던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겁도 없이 농사에 살짝 한 발을 걸쳐보았는데, 의외로 농사일이 적성(?)에 맞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을 다루는 데서 오는 기쁨이 남다른 것 같다. 농사 첫해엔 소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나무는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크는 것”이라고 했던 마을 이장님 말씀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말 못하는 나무도 사람의 손길을 이토록 탄다는데, 하물며 사람 하나를 키우는 데는 얼마나 깊은 사랑과 남다른 정성이 필요한 것인지….
소나무 키우기의 묘미는 가지치기라는 주변 이야기가 아니어도, 해마다 쳐내야 하는 잔가지와 굵은 가지들이 초보자의 눈에도 선명하게 들어온다. 전문가들이라면 수년 후의 나무 모양까지 정확히 머릿속에 그리며 과감히 가지치기를 하겠지만, 초보자 눈엔 어느 가지를 쳐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아 망설일 때가 잦다. 우리네 삶도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크고 굵은 가지들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갈 수 있으련만, 과한 욕심에 필요 없는 가지를 늘어뜨리고 이것도 저것도 포기 못 한 채 초라한 삶을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쓰잘데없는 상념도 잠시, 소나무 밭에 앉아 가지치기를 하고 있노라면, 잡념도 없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농사 두 번째 해엔 2년생 블루베리를 심었다. 어릴 때는 생김새가 비슷해 품종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조생종 패트리어트는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엉덩이 부분이 익었는지 판별이 어렵고 열매의 신맛이 강한 대신, 가을 단풍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빨강 빛으로 물이 든다. 중만생종인 토로는 넓적한 이파리에 가지 또한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는데 열매의 끝 맛에 달달함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 일품이다. 만생종 넬슨은 유선형의 날렵한 잎에 큰 키를 자랑하는데 시큰한 맛과 달콤한 맛의 조화가 매력적이고 탱탱한 식감도 훌륭하다.
예전에 대학 은사님께서는 “인생은 혼자 뛰는 마라톤이다. 비교급으로 살지 말고 절대급으로 살아라’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노라면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들 때문에 주눅 들고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몰아가기도 한다. 꽃이든 열매이든 자연 속에선 아무도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데 말이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어쩌다 농사가 잘되면 3년을 고생하고 한 해 농사를 망치면 3년이 편안하다’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가신다. 왜 농사를 망쳤을까. 두루두루 이유를 찾다 보면 배수도 챙기고 거름도 제때 주고 풀 관리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연한 행운보다는 노력이 더욱 값진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주옥같은 말씀이다.
얼마 전 카톡방에 유튜브 동영상이 전달되었다. 열어보니 미국의 대학 강의실인 듯했는데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유리병을 채우는 실험이었는데 먼저 조약돌로 유리병을 가득 채우도록 했다. 다음은 작은 자갈을 가득 넣도록 했다. 그다음엔 모래를 살살 뿌려 유리병을 채우도록 했다. 마지막엔 물을 가득 붓도록 했다. 실험을 끝내며 교수님 왈, “여러분, 만일 순서를 바꾸어 물부터 부으면 유리병 속에 모래와 자갈과 조약돌을 넣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네 인생길에서 조약돌과 자갈 그리고 모래와 물이 무엇일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조약돌이야말로 평소엔 잊고 사는 삶의 의미, 삶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가치 등이 아닐까.
마음이 여린 사람은 'NO'라는 말을 하면 상대가 받을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 NO라는 말을 못하기도 하고 또 ‘그것도 못해’라고 자신을 우습게 알까봐 N0라는 말을 못합니다. 내가 하지 못할지를 속으로 뻔히 알면서도 거절을 못해 우물쭈물 반승낙을 해버립니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재다보면 더더욱 거절을 못합니다. 하지만 NO라는 말을 해야 할 때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모임의 A씨는 서울근교에 주말농장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벌써 5년이 넘어 이제는 배태랑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고추나 상추 오이 이런 것들을 심었는데 아주 잘되었다고 우리를 만날 때 마다 싱글벙글하며 자랑을 했습니다. 한번 놀러 오라고 여러 번 말을 하면서 원두막도 있고 공기도 맑으니 하루쯤 힐링 하기는 좋다고 합니다. 회장단에서 이번 모임은 그분의 주말농장에서 갖기로 잠정 결정을 하고 주말농장 방문 날이 어느 날이 좋으냐고 날짜를 물었습니다. 아내랑 상의해서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흔쾌히 대답을 했습니다.
회원들이 먹을 고기나 술은 사 갖고 간다고 해도 농사지은 고추나 상추는 씻어야하고 불판준비 등 자질구래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안주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A씨에게서 날짜를 잡았다는 답이 오지 않습니다. 10 여명이 넘는 회원에게 미리 날짜를 고지해야 하는데 독촉을 해도 알았다고만 할 뿐 진전이 없습니다. 아마 아내의 반대가 있어 아내를 설득 중인데 아내가 말을 듣지 않는 모양입니다. A씨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을 끙끙 앓는 것 같습니다. 결국 주말농장 방문 계획은 취소되고 회장단과 A씨만 우습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 아는 B씨에게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선 듯 하겠다고 합니다. 강의 할 내용과 참석자의 현황을 메일로 알려주면서 확실히 할 수 있는지 확답을 달라고 했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전화를 해도 한동안 받지를 않습니다. 본인이 한다고 해놓고 막상 준비 하려니 자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처음부터 못한다고 하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 일단 한다고 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 하려고 자료 준비를 해보니 자신이 없고 겁이 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강의를 부탁한 내 입장에서는 본인의 확실한 의사를 들어야 다른 강사를 섭외 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어렵게 전화 연락이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합니다. 나보다 강의를 더 잘 할 수 있는 강사를 찾으면 있지 않겠느냐? 내가 꼭 해야 하느냐? 하는 투의 말 입니다. 직접 못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애써 스스로 내가 포기하기를 바라는 말투입니다. 진작 못한다고 했으면 다른 강사를 찾는데 시간이라도 벌 텐데 강의 날짜 임박해서 그것도 내 입에서 ‘그럼 다른 강사를 찾아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는데 아주 짜증이 났습니다.
나도 어느 모임의 파트 책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면전에서 NO 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상대는 내가 OK를 겸손하게 말 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며칠 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맡기에는 벅찬 일이였습니다. 완곡하게 거절하느라고 아주 땀을 흘렸습니다. 처음부터 NO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으면 좋았겠다고 많이 후회했습니다.
이런저런 부탁을 받으면 면전에서 바로 NO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상대가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간곡히 부탁 해 올 때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한다고 해놓고 시행일 임박해서 못 하겠다고 통보하면 계획하고 주선하는 주최 측은 참으로 낭패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완곡한 표현으로라도 NO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나고 보면 잘한 일이고 사람관계를 원만하게 길게 가져가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끄는 댄스스쿨 동아리가 있다. 시니어들 중심으로 모인 댄스 동아리이다. 커플 댄스의 특성 상 남녀 성비가 반반은 되어야 하는데 남자 회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기저기 광고하면 사람들이야 많이 오겠지만,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회원 추천에 다른 회원 전원 추천의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회원이 안 늘어 고민 중이었다.
기존 회원들도 워낙 바쁘게 활동하는 시니어들이라 강습에도 자주 빠졌다. 댄스스포츠 여러 종목을 돌아가며 가르치다 보니 취향에 안 맞는 춤 종목에는 안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3명 이상이 안 되면 무조건 휴강이라는 강경책을 썼다. 그렇게 휴강과 강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불금인 금요일 오후에 강습이 끝나는데 대부분 여자들이라 뒤풀이도 없이 각각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나까지 시들해져서 그만 둘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날은 회원들이 뒤풀이를 자청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니 사양하지 않았다. 그때 필자가 일박이일 엠티를 제안했다. 여러 동호회를 경험해 본 결과 엠티를 한번 하고 나면 회원들의 결속력이 강화된다는 것을 알고 추진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우선 회원 수가 너무 적었다. 고작 서너 명 이었다. 그 정도로는 별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엠티 날짜를 잡아 놓고 회원 배가 운동을 하기로 했다. 관심을 가지면 확실히 결과가 달라진다. 회원들과 필자도 여기저기에서 노력한 덕분에 엠티 참가 신청자가 9명이나 되었다.
다음은 장소였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주말이면 주말농장에 가야 한다는 한 회원에게 엠티 장소를 알아보라고 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쳐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 농장을 엠티장소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직 초창기라 너무 초라하다며 고사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설득을 하다 보니 결국 승낙을 얻었다.
그래서 7월 4일부터 5일까지 일정을 잡고 실행에 옮겼다. 평소 강습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인 9명이 엠티에 참가했다. 배우자가 있는 여자들이 외박을 한다는 것도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남자들이 아내를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털어 놓았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인 것이다.
회원들이 요리에 한 가닥 한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요리 강의를 하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여성들은 식사 준비라면 선수 급들이다. 그러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식사 준비를 하는데 마치 큰 레스토랑의 주방 같아 보였다. 보통의 시니어 여성들은 집에서 평생 식사 준비한 것에 지쳐 밖에 나가면 그런 일을 기피한다. 그러나 아직 서먹한 사이이고 나이 차이도 조금씩 있다 보니 솔선수범이 되는 모양이었다.
엠티의 백미는 먹고 마시고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알코올 덕분에 평소 말수가 적은 필자도 입을 여니 청산유수 말이 잘 나왔다. 서로 평소 흉을 보던 부분도 터놓고 얘기하니 오히려 매력이나 개성으로 이해하게 되고 오해도 풀렸다.
유머 이야기 중에 누군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비뇨기에 문제가 생긴 한 남자가 비뇨기과를 찾았다. 담당 의사가 여자였는데 바지를 내려 보라고 했다. 남자가 놀라서 “지금이요?” 하고 물었다. 의사가 “네!”하고 대답하니 남자가 “여기서요?” 하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의사는 “네!”하고 강경하게 말했다. 누군가 이 얘기를 듣고 “정말요?” 하며 물었다. 별로 우스운 얘기는 아닌데 술도 좀 걸쳤겠다, 이런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가 시니어이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다음부터는 “지금이요?”, “여기서요?”, “정말요?”가 유행어가 되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하시라도 써 먹을 수 있는 유머였다. 그래서 건배사로 확정했다. 건배 제의하는 사람이 “지금이요?”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여기서요?” 하며 까르르 웃었다. 다 같이 “정말요?” 하며 마무리 하는 것이다.
일박이일에 4끼의 식사를 같이 했다. 회원 농장에서 숙박을 했으므로 숙박비도 안 들었다. 농장의 유기농 채소도 무상으로 제공 받았으므로 예산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회원들의 표정은 아쉬움에 가득했다. 서울은 낮 기온 섭씨 34도로 폭염의 절정을 이루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다시 서울도 돌아왔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여행 방법이다. 친구, 가족이 아닌 현지 주민과 하루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외국을 가보고 싶었으나, 강원도 영월의 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 숙박했다. 혼자 떠난 여행. 역시 그곳에는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 웃음 가득했던 시간이 벌써 그리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달려 영월 시외버스터미널에 오후 2시쯤 도착했다. 때마침 빨간색 ‘붕붕이’를 타고 마중 나온 이번 달 에어비앤비 호스트 장미자(張美子·51)씨.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다짜고짜 “약속이 있으니 같이 좀 가자”하기에 무작정 따라갔다.
친절한 미자씨와 술 빚기
장미자씨를 따라간 곳은 영월청정소재산업진흥원(이하 청정원). 작년부터 이곳에서 술 빚는 동호회 ‘자주동샘’을 조직해 영월을 대표하는 술을 빚고 있다고. 현재는 시음 행사를 열어 선을 보이거나 영월의 벼룩시장에서 소소하게 판매하는 정도지만 정식 법인을 세워 술을 판매할 계획이다. 청정원에 도착해서 할 일은 아침에 빚어놓은 맵쌀죽과 누룩을 버무려 밑술을 만드는 것. 다른 회원들이 시간보다 조금 늦은 탓에 일손을 도울 겸 두 팔을 걷어붙였다. 처음에는 죽 반죽이 뻑뻑하지만 계속 손바닥으로 누르고 치대다 보면 걸쭉한 막걸리처럼 변한다. 치댈수록 달고 맛있는 술이 나온다고 해 열심히 거들었다.
영월 귀농 라이프, 1박2일로는 부족해요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숙소인 2층에 휙 던져놓고 장미자씨 일을 도왔다. 물론 쉬어도 상관은 없다. 에어비앤비의 정신대로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허락만 된다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침 호주와 제주에서 농장생활 했던 경험을 살려 장미자씨와 함께 마당에 난 잡초들을 뽑기로 했다. 힘들면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먹기도 했다. 사실 올해 오디 농사는 접었다는 정미자씨. 지난 3월 뜻밖의 한파로 전라도에서 가지고 온 뽕나무가 냉해를 참지 못하고 얼어 버렸다. 그래도 따 먹을 정도는 되기에 이웃 친한 분들이 와서 따가기도 한다.
머루랑 다래랑 따 먹고 살아요
장미자·안종호(安鍾浩·53) 부부는 인천에 살다 강원 영월읍 흥월리로 8년 전 귀농 했다. 작년 4월부터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됐다. 손님 숙소로 이용하는 곳은 2층 공간 전체. 집을 지을 때 2층에 작은 부엌이 있으면 편할 거 같아 장만해 넣었고, 훗날 장성한 아이들이 살게 되면 편할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구름다리를 놓았다. 이 모든 것을 손재주 좋은 남편 안종호씨가 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아들, 대학에 입학한 딸이 외지에 나가는 바람에 공간이 텅 비어 버렸다.
“에어비앤비를 열어 놓고 난 뒤 설마 이렇게 먼 곳까지 사람이 들어오겠어? 했는데 문을 연 지 한 달 됐을 때 첫손님을 맞았어요.”
주말이면 매번 꽉 차는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온다.
“바로 어제 왔던 손님은 어디 온천을 예약해 놓고도 저희 집이 좋다고 퇴실 시간이 훨씬 지나 오후 1시가 돼서야 떠나셨어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꿀맛 나는 식사시간
저녁에는 낮에 열심히 일한 농사꾼을 위해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넣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다음 날 아침에는 직접 잡은 다슬기로 된장국을 끓여 주신 장미자씨. 안 먹어 봤으면 후회했을 맛에 눈이 트일 정도였다. 아침을 먹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각종 과일과 채소,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손님들도 적당히 먹을 정도만 담아가고 과일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아들 한다고. 삼시세끼 먹을 것이 끊이지 않는다더니 절대 굶을 일 없는 곳이 바로 장미자·안종호 부부의 집이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친절한 미자씨!
인생 후반전의 삶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심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살 공간,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거 문제이다.
하지만 저마다 사는 취향이 각기 다르고, 형편이나 사정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건강상태, 재정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거공간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늘어난 노후를 멋지게 그릴 수 있을것이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 발표에 따르면, 고령자의 생활 안전사고의 61.5%가 주로 가정에서 발생하며, 문턱이나 장판 등에 걸려 넘어져 머리를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문턱 하나 넘기도 버겁고,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는 데에도 숨이 차오르게 되는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는 60대에 노년에 생활하기 적합한 집 안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집 안 곳곳에 손잡이를 달고, 문턱이나 계단의 높낮이 차이를 줄이고, 화장실 센서기능, 바닥재는 코르크와 같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소재로 바꾸는 것이 좋다.
현재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거나 이웃과 나누는 타운 하우스에서 살거나 보다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시니어타운에 입소하거나 개인별 주거의 공간을 조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보통 ‘은퇴=전원생활’이란 공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접고 여유롭고 공기 좋은 곳에서의 전원생활을 택하는 은퇴자들이 많아서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면 전원생활은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은퇴자 가운데 상당수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도시로 유턴한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전원생활에 익숙하지 않으면서 현지 적응력이 낮은 고령자, 신체조건이 뒷받침되더라도 도심 기반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경우라면 전원생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도시 외곽에 전원형 주택을 지어 거주하거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해 빌려주거나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임차하는 이른바 ‘도심형 전원주택’생활을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상위 5% 은퇴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주거공간
우리나라에서도 시니어타운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미 오래 전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본이나 호주, 독일, 중국,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실버타운이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며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거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은퇴자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은퇴자들 15%이상이 제2의 인생을 찾아 날씨 좋은 곳, 여가 활동이 자유로운 곳 등 상당히 활발한 이동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독립적이고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층이 증가하면서 실버타운 및 유료주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편의,여가, 문화시설 등이 많고 그들만의 ‘주거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상위 5% 시니어들은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소에 따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이동하고 싶어한다.이들의 이동 변수는 건강하냐, 안하냐에 따라 다양한 주거시설의 삶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공간을 찾는다. 앞으로 10~30년이상 살아야 할 주거시설을 안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다.
실버산업 관련 모 대학 교수는 “앞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한 독립심을 가진 자산가들이 늘어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살려는 은퇴자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고, 문화예술욕구가 강한 베이비부머들이 그러한 1세대가 될 것”이라 말했다.
모든 병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은 심각한 사고나 사소한 해프닝일 수도 있고, 최근의 일이거나 또는 꽤 오래전 벌어진 사건이 단초가 되기도 한다. 부산에서 만난 옥기찬(玉基燦·55)씨와 그를 치료한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의 허중보(許仲普·40) 교수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했다. 이제 중년의 삶을 시작하는 환자를 위해 다른 치료법을 선택한 의사의 이야기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치아가 아플 때에는 모든 생활이 문제였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이 있었고, 여러 어려움 때문에 아내까지 힘들어했었습니다. 그중 가장 문제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니까요.”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의 교정에서 만난 옥기찬씨는 치아로 인한 문제가 한창일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부산의 한 제지공장에서 근무하는 옥기찬씨는 평소에 등산과 낚시를 즐기는 활동가 타입의 중년으로, 잔병치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건강했던 그가 치아에 문제를 겪게 된 것은 과거의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불의의 사고 때문. 1988년 당시 28세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그는, 친구와 함께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오토바이로 귀가를 하던 중이었다. 국도 위를 달리던 그는 이면도로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승용차를 발견하게 되고, 차량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급작스럽게 틀어야 했다.
“어쩔 수 없었죠. 오토바이를 탄 상태로 자동차에 덤빌 순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겨우 피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친구도, 오토바이도 논바닥 위에 있었습니다. 입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고요. 그래도 다른 곳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했습니다.”
아직은 얼지 않았던 부드러운 논의 흙이 그를 받쳐주는 안전망 역할을 해 심각한 사고는 간신히 면했다. 그래도 옥씨는 그 사고로 윗니의 대부분을 잃어야 했고, 겨우 남아 있는 3개 치아로 윗니 8개를 모두 지지하는 적지 않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삶은 정상으로 돌아온 듯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 부위의 고통은 조금씩 넓고, 깊어져 갔다. 여느 부산 사나이들처럼 그 역시 사소한 고통에는 의연하려 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옆에 남아 있던 치아들도 세월의 흐름 때문에 썩고 뽑히면서, 어금니가 해야 할 일들을 앞니가 대신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붓고 피가 나는 것은 기본이었죠. 먹고사는 문제가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습니다. 김치 같은 건 제대로 씹지 못해서 아내가 일일이 잘게 잘라주거나, 찌개로 푹 끓여야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밥도 많이 먹어야 반 공기가 못 되었죠. 체중도 빠져서 63~64㎏ 정도밖에 안 되었고, 제대로 먹질 못하니 늘 기운이 없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기운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사라져갔습니다.”
다른 많은 환자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도 참다 참다 치과를 찾았다. 동네 치과에서 어느 정도 치료를 받으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들이 내놓은 해답은 의외였다.
“치과에서 치료가 어렵겠다고 하더라고요. 뼈가 별로 없다고. 그래서 좀 더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야겠다 싶어, 두 군데를 더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같았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부산대학교치과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때서야 심각한 상황을 깨닫게 된 옥기찬씨는 고민 끝에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 분명하고, 많은 시간도 필요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임플란트를 하게 된다면 치료 후까지 계속 아플 것이라는 직장 동료들의 경험담도 그를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어렵게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을 찾은 것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의 일이다. 남들은 연말이다 크리스마스다 들떠 있는 모습들뿐이었지만, 그의 눈에 그런 것들이 보일 리 만무했다.
처음 찾아온 옥씨의 모습을 허중보 교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단단하고 건강해 보이는 신체와 달리 입 주위만 나이가 몇 년은 더 먹은 듯한 모습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에 환자 상태를 봤을 때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앞니의 브리지로 연결된 의치는 흔들려 수명을 다한 상태였습니다. 기둥 역할을 했던 3개 치아 모두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때 가장 큰 고민은 보통의 치료를 하면 윗니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틀니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환자의 심정이었습니다. 틀니를 사용한다는 것은 노년이 됐다거나 혹은 젊음을 잃었다고 여겨 자포자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그를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이 남는 치아 하나 없이 틀니를 해야 한다고 하면, 마치 암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슬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 여성들은 남편에게까지 숨기고픈 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허 교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부분틀니를 제거하고, 이를 받치고 있는 치아를 모두 뽑은 그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임플란트로 고정하는 임시 치아를 장착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심으려면 대체로 2개월 정도를 이가 없이 지내야 하는데, 치아가 없이 지낼 순 없기 때문에 임시로 만든 틀니를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임시 틀니라는 것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빠지기 일쑤이고, 상대와 대화하는 도중 달가닥거리기라도 하면 환자를 무척 난감하게 만드는 물건이기 때문에, 허 교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허 교수는 어렵고 복잡하지만 씹는 기능까지 할 수 있는 고정된 임시 치아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컴퓨터로 임플란트 8개가 심어질 자리와 각도, 깊이까지 모두 결정한 다음 그에 따라 장착될 임시 치아까지 모두 만들어 놓고 수술했습니다.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골이식도 해야 했고요. 수술 후 바로 임시 치아가 떨어지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해서 부드러운 음식 정도는 바로 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3번에 나누어, 6개월 정도 걸려야 치료할 수 있는 것을 한 번의 수술로 해결하는 것이라 꽤 까다로웠습니다.”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치아가 입안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화되는 기간과 잘 씹힐 수 있도록 조정되는 정도까지 모두 계산에 넣어야 했기 때문에 허 교수에게도 신중을 기하게 되는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 25일, 수술을 끝낸 날 이후 옥기찬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수술이 끝나고 4시간이 지난 후부터 식사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큼직한 김치를 마음껏 먹고 고기도, 야채도 실컷 씹을 수 있으니까 세상이 정말 달라져 보이더라고요.”
치료 이후 옥씨의 달라진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바로 주말 농장이다. 그는 올 여름부터 주말농장을 찾아 이런저런 농작물들을 심기 시작했다. 상추며 고추, 당근, 고구마, 케일 등 죄다 아삭아삭 씹을 거리뿐이다.
“이제 아내도 두 아들 것과 다르지 않게 식사를 준비하게 되고, 식사량도 늘었습니다. 실제로 체중도 5㎏ 정도 불었고요. 얼마 전에 갔던 친구의 딸 결혼식에선 얼굴이 밝아졌다며 놀라는 친구들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삶이 변하니 자연스레 치과치료 홍보대사가 됐다.
임플란트는 무조건 아픈 것이라며 겁줬던 직장 동료들에게 제대로 치과치료를 받아보라며 되레 큰소리친 적도 있고, 주변에 아픈 치아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이 있으면, 겁먹지 말고 병원부터 찾으라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줄 정도가 됐다고.
과거의 옥씨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또 다른 환자를 향해 허중보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다른 질병도 마찬가지겠지만, 치과치료 역시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치아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악몽에도 비유할 만큼 두려워하면서, 남아 있는 치아가 견디지 못할 때까지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대수명도 훨씬 길어지는 만큼 관리나 조기치료가 무척이나 중요하니 너무 겁내지 말고 치과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인생에 가장 의미 있는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꼭 어느 한 권이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의미가 깊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읽어온 어느 것 하나 나에게 의미가 없던 책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읽어온 수많은 책은 그의 삶 곳곳에서 한껏 발효되어 인생의 참맛을 더해주고 있었다.
박병원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며 인생의 풍요로움을 나누고 있다. 재경부 국장 시절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 책만 1만 여권.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은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의 이다.
우리를 가슴 뛰게 하는 책
재경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을 임해온 그에게 경제 흐름이나 피케티 등에 대한 책 이야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중년을 가슴 뛰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심오한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볍게 읽고 즐거운 여가를 꿈꾸게 하는 책이 더 유익하다는 것이다.
“우리 중장년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경쟁하며 살아온 세대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런 잣대에만 연연하면 삶이 불행하고, 인생을 즐기기 어려워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돈이나 일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음악, 미술, 여행, 자연 등 실제 여가 생활을 즐기는 데 실용적인 책들이 필요하죠. 그런 책 중 하나가 바로 입니다. 주말이면 등산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나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는 드물죠. 등산로 주변에 있는 꽃, 나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남은 인생을 지냈을 때 엄청난 차이를 불러옵니다. 꽃과 나무를 모른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반만 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자연의 민낯이 선사하는 값진 선물
그는 거대한 캘리포니아 분지를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 바다로 향하던 중 대자연이 선물한 기적과도 같은 풍경을 잊지 못한다.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과 온 천지에 가득한 오렌지 꽃향기.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그 거대한 울림을 온몸으로 만끽하기 위해 차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말로 행복했고, 감사한 일이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간다 한들 그런 광경을 볼 수는 없을 거예요. 큰 행운이죠. 어쩌면 세상은 이러한 행운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몰라요. 형편이 좋으면 알프스 고원지대 트레킹을 하면서 대자연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국내에도 근사한 풍경은 얼마든지 있어요. 눈 내리는 겨울 바다가 돈을 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우린 그저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줄 알면 되는 거예요.”
어느 분야의 책도 한 권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그는 테이블 위에 ‘전 세계 500대 드라이브 코스’,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500대 음식’,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성스러운 장소 500곳’ 등 백과사전처럼 묵직한 책들을 소개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마음이 바빠져요. 다양한 책들을 읽고 얻은 지식을 잘 정리하면 ‘어디를 가면 어느 드라이브 코스를 타고 어떤 명소를 들러 무엇을 먹어야지’하면서 곳곳에 펼쳐진 즐거움을 일망타진할 수 있죠. 이 세상은 말이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랍니다. 가요만 아는 사람은 가요가 주는 즐거움만 알아요. 하지만 클래식과 국악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삶의 즐거움이 배가 되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인생의 즐거움도 많아지고, 그만큼 행복의 범위도 점점 넓어져요.”
중년의 ‘로망’ 즐거운 인생의 시작
15년 전,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본 그는 ‘죽기 전에 아몬드 나무는 꼭 보겠노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에서 그런 낭만은 점점 잊혀가고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고흐 전에서 그는 아몬드 나무를 다시 만났다.
“그때 다시 아몬드 나무를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하루는 캘리포니아에서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가 아몬드농장을 샀다고 연락이 왔어요. 정말 뛸 듯이 기뻤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부탁을 했어요. ‘아몬드 나무 꽃이 절정으로 피고 딱 하루가 지났다 싶을 때 나에게 전화를 달라’고요. 싱싱하게 막 피어오른 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꽃이 질 무렵의 낙화를 참 좋아해요. 연락을 받고 아몬드농장으로 가는데, 때마침 비가 오고 바람이 불더라고요. ‘이때다’싶었죠. 그렇게 15년 만에 아몬드 나무를, 그것도 비바람의 손길로 바닥에 아름답게 촘촘히 떨어진 아몬드 꽃을 보게 된 거예요. 그때의 벅찬 감동은 잊을 수 없어요.”
그는 무언가를 이뤄냈노라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을 고흐의 그림을 보고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 함박웃음, 함박눈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함박나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요. 함박나무꽃은 말이죠. 내가 볼 때 이 세상 꽃 중에 가장 예쁜 꽃이에요. 아주 소담스럽고 하얀 꽃이 피는데, 그 꽃송이 안을 보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워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함박꽃을 한 번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즐거운 인생의 시작이죠.”
개발제한구역 내 유휴 국유지가 도시민들을 위한 주말농장 등으로 활용된다.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을 관리하기 위해 국가가 사들인 토지 가운데 논, 밭, 과수원 등 63필지 34만3375㎡를 도시농업 등 여가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농림축산식품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할 계획이다.
국토부가 도시농업에 필요한 토지를 관리위탁 형태로 지자체에 공급하고, 농식품부가 농작물 경작기술 및 예산 등을 지원하면, 지자체는 도시농업 공간을 조성하여 경작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하게 된다.
국토부는 지난 달 14개 시·도로부터 개발제한구역 내 매수토지 활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시민들이 주말농장 등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이에 필요한 토지를 무상 공급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중으로 토지가 지자체에 공급되면 해당 지자체별로 도시농업 등 도시민의 여가활동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고양시의 경우 주민센터가 직접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 줄 계획이다.
주말농장이나 실내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제품 매출도 크게 오르고 있다.
20일 이마트에 따르면 아파트 베란다 등에서 직접 텃밭을 가꾸는 ‘베란다 텃밭족’이 늘면서 이달 들어 17일까지 원예 용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4% 상승했다.
특히 화분 주위를 꾸미는 화분수납·외장용품 판매가 28.9% 뛰었고, 원예공구와물뿌리개 등 살수용품도 각각 11.4%, 12.6% 신장했다.
흙(8.9%), 종자·살충·영양제(6.0%) 등도 판매가 늘었고, 씨앗과 화분, 배양토등을 세트로 만든 홈가드닝 세트 매출도 4.7% 증가했다.
롯데마트에서도 관련 제품 매출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롯데마트에서는 이달 들어 17일까지 모종삽, 물뿌리개 등을 포함한 원예공구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6% 뛰었고, 기타 원예용품도 49.6% 매출이 늘었다.
생화는 지난해보다 71.8% 판매가 늘었다. 관엽식물(16.0%), 식물 영양제(12.5%)등도 신장세였다.
롯데마트 측은 “올해는 봄이 빨리 온데다 주말농장, 가족농장 등이 확대되면서 재배 식물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가족과 원예를 함께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자하는 심리도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이 같은 추세는 비슷했다.
옥션에서도 이달 들어 새싹 재배기와 텃밭 세트 판매가 지난해보다 50% 증가했고, 식물 영양제와 비료 등 판매도 15% 늘었다. 이상 고온 탓에 원예용 해충박멸제 매출도 10% 상승했다.
과실수와 조경수 등 매출도 지난해보다 25% 올랐고, 미세먼지 등 영향으로 공기정화식물 판매 증가율은 55%에 달했다.
초여름같은 날씨에 봄의 상큼함이 아쉬운 당신이라면, 이번 주말 포천으로 맛 여행을 떠나보자.
포천 신북면 갈월리에 소재한 ‘청산별미’가 그곳으로 건강식품으로 유명한 버섯의 별미를 느낄 수 있다.
허브향을 만끽할 수 있는 허브아일랜드와 이웃한 이곳은 버섯을 연구해 온 남편의 내공과 부인의 손맛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버섯의 달인들이 선물하는 향긋한 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버섯농장을 경영하는 강선규 대표(51)와 버섯전문음식점인 청산별미를 운영하는 장미남 대표(50) 부부의 음식내공이 기대되는 이유다.
충청도 출신인 강 대표는 25년 전 농촌진흥청에서 버섯을 교육하는 전문가로 활동하다 포천에 정착해 버섯농장을 직접 꾸렸다.
신북 온천과 허브아일랜드 방향으로 이어지는 368번 지방도를 따라 15분쯤 가다 보면 허브아일랜드에 못 미쳐 길옆에 버섯 직판장이 나온다. 그 옆에는 지역 특산품인 버섯요리 전문점 ‘청산별미’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청산별미’는 농촌진흥청에서 선정한 ‘농가 맛집 1호’로 그 이름값을 더하며 명실상부한 맛집으로 자리 잡아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포천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이 아는 명소 중의 명소.
4년 전 개업한 청산별미의 대표 메뉴는 버섯샤부샤부 정식과 버섯들깨전골 정식이다. 여기에 버섯만으로 만든 것 같지 않은 신비로운 맛의 버섯탕수도 인기다. 버섯샤부샤부 정식은 노루궁뎅이·참송이·표고·느타리 버섯 등 10여 가지 버섯이 나오는데 다양한 재료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와 함께 어우러지며 맛을 돋운다.
육수는 버섯을 말려 각종 영양 성분을 높이고 여기에 각종 해물과 채소를 함께 넣어 특유의 비법으로 우려냈다. 함께 상에 오르는 반찬들도 깔끔한 맛과 비주얼이 일품이다. 오돌오돌 쫄깃한 맛의 버섯 장조림과 새콤달콤한 버섯 초절임, 부드러우면서도 새콤달콤한 버섯 숙회도 입맛을 돋운다. 비트로 분홍빛을 낸 오이피클에다 키위소스로 드레싱한 양상추샐러드에 세발나물 샐러드까지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주재료인 버섯 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노루궁뎅이버섯과 참송이 버섯인데 노루궁뎅이버섯은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노루궁뎅이버섯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헤테로글루칸이라는 성분이 암세포의 증식이나 전이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며 수험생들의 두뇌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설이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치매예방에도 탁월한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노루궁뎅이버섯은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피부미용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장 대표는 “우리 집만의 특별 품목인 참송이 버섯은 귀족 버섯이라 칭할 만큼 유명하다”며 “다양한 버섯 맛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랑과 정성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일보 안재권기자 ajk8504@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