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인간에게는 일종의 숙명이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데, 시니어의 입장에서 얼굴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얼굴의 노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특히 팔자주름이나 볼살처짐과 같은 피부의 변화는 첫 번째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요즈음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선 노화로 늘어진 피부를 되살려주는 ‘실 리프팅’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개원가에서 다양한 학술활동에 앞장서온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 김상섭(金詳燮·43) 총무이사(청담미(美)의원 원장)를 통해 실 리프팅에 대해 알아봤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다른 기업과의 미팅자리를 촬영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회사로서는 좋은 기회여서 기분 좋은 자리였는데, 사진 속 사람들 중에 유독 자신만 인상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거울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내 표정이 그렇게 무서운지 몰랐어요. 단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 얼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나이인데, 평소에 그렇게 남들을 노려보며 살았나 싶었죠”라고 말했다.
A사장처럼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시니어들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남성들은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얼굴의 변화를 갑자기 느끼기 일쑤다. 특히 최근에는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꽃중년’ 또는 ‘동안’이라는 단어들이 쓰이면서 외모를 중시 여기는 풍조가 번지고 있어 시니어들도 ‘관리’를 강요받기 시작했다.
팔자주름이 팔자를 바꾼다?
얼굴의 노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잘 알려진 대로 팔자주름의 등장이다. 여기에 볼이 ‘불독’처럼 처지기 시작하면 인상은 더 험악해진다. 이는 남성이나 여성 모두 마찬가진데, 나이가 들어 보이는 첫 번째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피부가 처지는 이유에 대해 김 이사는 “당연히 노화”라고 이야기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중력에 의한 것은 부가적인 부분이고 가장 큰 원인은 노화에 의해 피부 속 콜라겐이나 히알루론산 성분이 부족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러한 결체조직 성분들을 보충해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리프팅이 시도되는 것이죠.”
김상섭 이사는 피부가 처진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라고 설명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절개형 거상술이 있죠. 말 그대로 처진 만큼 잘라낸 뒤 들어올리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수술은 환자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처짐이 심한 경우에 선택하는 최후의 방법이죠. 절개해서 조직을 떼어낸다고 해서 효과를 평생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절개형 방식도 2년 후부터는 효과가 반감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실 리프팅이나 리프팅 장비를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실 리프팅에서 말하는 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실이 맞다. 가는 실을 피부 아래에 삽입해서 부족한 탄력을 보완하고 처지지 않도록 당겨주는 효과를 얻는 방식이다. 성형외과에서는 탄력 효과, 당김 효과라고 표현한다.
이외에 사용되는 리프팅 장비는 고주파 혹은 초음파를 활용해, 피하조직에 열을 전달한 다음 피부조직과 단백질이 응고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환자 입장에서 시술은 간편하지만 드라마틱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실 리프팅은 시술 방식에 따라, 실의 종류에 따라 방식이 좀 달라집니다. 시술 방식은 부유형과 고정형으로 나뉘는데, 부유형은 실들을 피부 밑에 고정하지 않고 삽입만 시켜 탄력을 보완하는 효과를 얻는 방식이고, 고정형은 미세한 가시 같은 돌기가 있는 실을 써서 피부조직을 위로 당겨 고정하는 방식이죠. 또 녹는 실을 쓰느냐 고정형 실을 쓰느냐에 따라 적용 방식이 다소 달라집니다.”
처음 실 리프팅이 고안된 것은 15년 전 러시아 의사에 의해서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됐다. 여기에 녹는 실을 쓰는 아이디어는 한국의 피부과 의사들에 의해 고안됐다. 한의사들이 활용하는 금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임상적으로 대중화한 지는 6년 정도 됐고, 한국 의사들에 의해 일본 등 각국에 전파되고 있다. 김 이사도 이 초기 멤버 중 한 사람이다.
실에 따라 효과 지속 달라
실 리프팅 시술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부유형 방식은 금방 끝나지만 고정형 시술은 시간이 다소 더 걸린다. 실의 종류나 시술 부위에 따라 달라지지만 많게는 100개 이상의 실이 피부 밑에 자리 잡게 된다.
안타깝게도 실 리프팅 역시 영구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실 리프팅이 얻는 탄력 효과는 실이라는 물리적 특성과 피하조직에 실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아물면서 발생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아물기 때문이다. 당김 효과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탄력 효과는 녹는 실의 경우는 1년 이상, 안 녹는 실의 경우는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당김 효과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과가 떨어진다. 안 녹는 실이 좀 더 오래가지만 두 가지 방식 모두 6개월 이후부터는 효과가 감소된다.
“실 리프팅으로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시는 게 좋습니다. 녹는 실은 지속 기간이 다소 떨어져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때문에 시술에 부담을 느끼시는 환자들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없으신 경우에는 녹지 않는 실을 쓰기도 하고요. 남자 환자들의 경우에는 시술 자체에 부담을 느껴 장비를 활용한 리프팅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작용은 크지 않다. 실 리프팅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대부분 감염에 의한 염증이다. 간혹 녹지 않는 실의 길이가 잘못 계산돼 실 끝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그나마 대형 사고라고 볼 수 있는 케이스다. 의학적으로는 ‘간단한’ 시술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시술 후 아물면서 붓기가 가라앉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주 정도라고 김 이사는 설명한다.
실 리프팅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는 실의 종류에 따라, 부위의 범위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시중의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받는 비용은 녹는 실의 경우 30~150만원, 안 녹는 실은 80~250만원 수준이다. 간혹 금실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정기적인 재시술 비용은 훨씬 낮아진다. 장비를 활용한 리프팅은 40~2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는 이러한 리프팅과 함께 눈가주름이나 미간주름 등을 보완하기 위해 필러를 동시에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 ‘실 리프팅’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환자가 원하는 것은 ‘동안(童顔)’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상섭 원장은 “몇 가지 간단한 수술만으로 젊어진 외모에 만족하시는 환자를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재혼에 성공하시거나 사업이 잘 풀린다는 얘기를 들으면 인상이 사회생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새삼 놀라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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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 환자 미니 인터뷰 [청담동 안세정씨(47)]
“시술만큼 본인의 관리도 중요해요”
평범한 가정주부인 안세정씨는 실 리프팅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예찬론자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처음 실 리프팅 시술을 받은 건 30대 후반 무렵. 강남에서 실 리프팅은 ‘아는 사람만 아는’ 시술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됐다고 했다. 벌써 8년 전 이야기다.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죠. 피부에 그것도 얼굴 피부 밑에 무언가를 넣는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주변에서 추천하는 바람에 용기를 냈는데 지금은 잘했다 싶어요.”
시술을 하고 나서 자리 잡을 때까지는 통증이 좀 있었다고 했다. 일주일쯤 지나서 통증이 사라졌는데, 붓기가 빠지고 나서 피부 밑에 이게 실인가 싶은 약간의 이물감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노화를 느끼기에는 이른 나이인 30대 후반에 실 리프팅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극적인 변화를 느끼진 못했어요. 주변의 평가도 그랬고요. 하지만 꾸준히 재시술을 받으면서 리프팅된 상태를 유지하니까 동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긴 부끄럽지만요(웃음).”
이제는 실 리프팅을 받는 사람이 늘면서 주변 지인들도 수술 후 효과를 보기도 하는데, 나이든 사람이 시술하는 경우 ‘극적인’ 변화를 본 적도 많았다고 한다. 안씨의 경우 첫 시술을 받고 2년 후 재시술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총 5회 재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그 주기가 짧아지는 것 같긴 해요.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해요. 저도 그렇고 주변 사례를 보면 재시술 주기는 본인의 피부관리가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평소에 운동이나 피부관리, 식사조절 등을 잘하시는 분들은 3년이 지나서 재시술하시는 분도 봤거든요. 반대로 특별한 관리를 안 하시는 분들은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의학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재시술이 진행될수록 효과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안씨는 여자라면 리프팅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들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여자들은 거울을 보면서 팔자주름이나 눈가주름 등을 신경 쓰거든요. 만약 고민이 되신다면 실 리프팅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어요. 다른 시술에 비해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술이라 조금 불편할 순 있어요. 하지만 젊어 보인다면 약간의 불편함은 참을 수 있잖아요(웃음).”
1. 가락지를 낀 용의 꿈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의 할아버지는 용꿈을 꾸셨단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의 다리에 가락지가 끼어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걱정스러웠다고 하셨다. 그 덕택에 필자가 양자로 가서 잘 살 수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를 남겨 두는 결심을 하고 나의 사촌 형을 양자로 보내셨다고 한다. 필자는 서울에서 식품사업을 하시던 아버님 슬하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겨우 걸음마를 하던 다음 해에 바로 6.25 사변으로 인해 어머니는 필자를 들쳐 메고 아버지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는데 기차를 타고 남으로 가던 중 인민군 비행기들의 기총사격에 전 승객이 정신없이 숲 속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올라타고 매달려서 가는 행렬이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왼쪽 다리를 약간 삐어 낮에는 잘 놀고 밤마다 아프다고 했으나 시골에서는 당시 마땅한 병원도 없었으니 아이의 꾀병이라고 그냥 넘긴 것이 화근이 되어 2~3세 때부터 심한 골수염을 앓게 됐다.
그러나 신이 나를 살리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침 당시 부산에 전후 서독에서 파견된 서독병원이라는 것이 부산 대신동에 있어 그곳에서 진료를 받고 바로 완쾌 상태로 퇴원하게 되었다. 당시 나이 8살이었는데 병원에서는 통원치료를 하던지 약 1년간 입원을 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갈 나이라 입학을 시키고 통원치료를 결정한 것이 화근이 되어 아직 후유증을 앓고 있어 보행이 불편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활발하게 놀다 보니 환부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고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이었다.
2. 학문의 길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에게 통지표의 국어 과목에 ‘수’가 없으니 ‘수’를 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해 국어에 ‘수’를 받을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필자는 대체로 우수한 학생 측에 들었다. 그러나 당시 진해에서 일류중학이라는 진해중학교에 응시하여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혼자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과연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거의 꼴찌 수준으로 겨우 합격하였다.
합격 이후엔 학문에 뜻을 둔 공자와 비슷한 나이 15세에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치기 시작하였는데 꼴찌 수준의 합격이 필자를 자극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1학년 첫 학기부터 상위권의 수준으로 시작했던 필자는 중학 시절 내내 상위권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잘해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가정 사정이 여의치 못해 대학 진학을 잠시 미루고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장남인 필자는 4명 동생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필자는 일하는 와중에 지방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마침 동생들이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지난 7년간 접었던 대학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70년 당시 5급을류 지방 공무원 월급은 약 1만 원 정도로 집 월세 충당하는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사직하고 학원 강의를 하던 시기에 배움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상대에 진학하여 공부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축적하는 길이 꿈을 실현하는 첩경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 대학 생활을 통해서 이를 확인하고 싶다는 강한 집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이 지나서 진학한 대학 4년은 꿈같은 세월이었다.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생활 중에 터득한 사업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계기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물 안의 개구리가 세상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한국경제의 흐름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방향설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학 4년은 학문의 즐거움을 알게 된 시기기도 했다. 이런 즐거움으로 수석 졸업할 수 있었지만 한편에선 미래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도 동생들 학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학계로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맘은 접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다시 산업전사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먼 훗날 이론과 실제를 최대한 일치시키는 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안고 현실 속의 길을 찾기로 하여 당시 최고의 보수를 주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3. 중동 건설 현장을 누비면서 아라비아 상인의 숨결을 느끼다.
필자가 취업한 시기에 건설회사는 한참 중동 붐이 일어 대졸 신입사원에게 최고의 월급을 주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한국유리(주) 기획실에 동시 합격하였지만 모든 사람이 추천한 건설 회사로 취업하였다. 희망하던 기획실이 아닌 자재부로 인사명령이 났다. 기왕이면 큰 뜻을 펴기 위해 나는 중동근무를 지원하였더니 사우디아라비아 TEP 본부 자재구매 담당으로 명령을 내주었다. 여기서 사우디아라비아 상인들의 상술의 대단함을 깨우쳤고 향후 중동국가와 업무상 협상하는 기술을 배우는 전기가 되었다. 영어가 능통하여 구매업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말도 좀 익혔다. 운전 기술도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
1980년대 초 리야드 시내는 상가도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건설용 자재를 구매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서 해외에서 구매하여 조달하였으나 급한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 팀으로부터 자재 조달 독촉을 받았던 독특한 자재 A가 생각난다. 당시 필요한 자재는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수소문하여 어느 주택가에서 상호를 달고 있는 공급업자를 찾았다. 급한 김에 대충 가격 협상을 하고 공급을 하고 나서 보니 약 3배나 비싸게 구매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동국가의 무표정한 협상력 앞에서는 국내 업자는 한순간 실수하면 엄청난 바가지를 쓴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었다.
모든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 수입해서 판매하는 까닭에 부르는 것이 값이 되고 모르면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는 곳이 중동이었다. 이후 상대와 협상 시에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여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런대로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은 재미는 있었지만 33세에 결혼하여 바로 해외근무를 하게 되어 아직 아이가 없는 관계로 회사에서는 연장근무를 요청하였지만 귀국을 결심하였다.
4. 세계 제1의 중공업 회사를 만들어내다
대학 재학 중에 아산학자금을 받아 공부했던 연고로 인하여 귀국 후에 현대중공업(주) 플랜트 사업본부 계약관리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구매부서의 업무도 재미있고 할 만했지만 주위에서 바라보는 의혹의 눈초리는 아주 거북스러웠다. 따라서 수출과 관련된 업무를 하려고 하던 차 현대중공업(주) 계약관리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현대에서 정주영 회장과 함께 일을 하던 한유동 전무가 담당 중역이었다. 필자가 계약관리부로 가게 된 것도 한 전무의 뜻이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계약서의 핵심 사항을 짚어가면서 일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였지만 리더십도 출중하여 회사의 임직원들이 많이 존경하는 그런 분이었던 것 같다.
1981년 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쉴 수 있었고 그 외는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필자는 혼자 회사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업무에 전념하였다. 우리는 현대가 이미 국가적인 회사였으므로 현대가 잘되는 길이 우리나라가 잘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근무하였다.
계약관리부서는 요즘 PM 부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회사의 대표이사로부터 프로젝트에 대한 전반적인 위임을 받아 사장을 대신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영국 등 구미 국가를 위시하여 호주, 인도, 중국 등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총괄관리하다 보니 각 국가 및 회사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해양플랜트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선진국의 기업들과 계약과 협상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업무도 세계화의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회의하면서 영문으로 회의록 (MOM)을 만들고 노트북이 생기면서 회의 시 바로 회의록을 작성하여 상호 서명하는 수준까지 이르니 어떤 계약과 협상 업무도 가능하게 되었다. 단지 기술적으로 좀 미진한 부분은 세계적인 설계회사와 하도급 계약을 하던지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경영하는 식으로 보완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어느 사이 우리도 모르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선박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고 조선업 세계 1위 회사로 성장해 나아갔다.
초기 단계에 인도 ONGC사로부터 수주한 Win, Wips 공사는 실행률이 85% 정도가 되는 수익이 많이 나는 프로젝트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도 클레임 보험사고 처리 등의 업무에서 600만 달러 이상의 순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해양사업본부는 인도 ONGC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약 25년간 매년 지속해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한때 ONGC사업본부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었다. 이와 관련 인도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 발주하지 않고 한국의 현대에게 지속적인 발주를 함에 따라 위 기간 약 2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절감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5. 함께하여 행복하다
먼 길을 갈 때는 함께 가라고 했다. 필자는 사랑하는 5남매들과 함께하여 행복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필자가 존재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오남매는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집도 절도 없는 상황임에도 함께 노력하여 다 대학을 졸업한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필자 집안에 행복을 몰고 온 사람은 어쩌면 나의 아내인 것도 같다. 아내와 결혼하자마자 5남매의 장남인 필자를 도와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 동생들 학업을 지원하고 집안을 평화롭게 이끌어왔다. 회사 야유회 때 부부동반이라 같이 가자고 하였더니 옷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순간 너무나 미안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난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들 둘은 이제 장성하여 결혼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손자를 보고 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이 즐거움 또한 어디에 비길 수가 있을까? 며느리가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가 하면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6.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서 도전
대기업 30년 중소기업 10년의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양자의 주요한 차이는 도덕성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가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은 도덕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여 필자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가 스스로 도덕성을 허물지 않는 한 누구도 필자에게 도덕에 반하는 일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서 외자 유치 3500만 달러를 성사시킨 필자는 이를 회사가 갚지 못할 시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도덕성이 모자란 그런 결정을 했는데 당시 이런 생활을 접기로 했다.
필자는 전문성이 있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국제계약 컨설팅을 하는 일이다.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한양대 및 중앙대나 전문 교육기관, 한국플랜트협회, 건설전문공제조합 등에서 국제계약 관련 강의를 한다. 신문사에서 집필 요청이 있으면 글을 쓰기도 한다.
강의는 대학 졸업 당시 학계로 나가고 싶었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루에 7시간 강의를 하는 필자를 보고 아내는 철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강의 자체를 즐기다 보니 강의를 시작하면 나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필자가 또 하나 사명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창출하는 일이다. 원래 국가가 앞서서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할 일이나 현재 국가가 해주기를 기다릴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SBA의 창업 닥터 과정을 이수하면서 청장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닥터로서 자격을 취득하고 KDB 시니어브리지 센터 1기 과정 도심권 인생설계 1기과정 등을 수료하면서 많은 뜻을 함께하는 좋은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개인적인 꿈도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장학회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가칭 ‘태성(太晟)장학회’ 다. 가난으로 인하여 젊어서 배우지 못하는 후손이 없도록 해두고 싶은 생각으로 오래 동안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시니어들이 건강한 삶을 살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또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또 다른 이상 사회를 꿈꿔가는 것은 필자의 또 다른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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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간병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포괄간호서비스의 건보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포괄간호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은 20% 수준에서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내년에 지방 중소 병원을 대상으로 건보 적용을 시작해 2017년까지 서울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제외한 대다수 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은 28곳에 불과하다.
간병비는 입원비에 포함돼 책정되는데, 종합병원 6인실 입원비용이 1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포괄간호병동 입원비는 본인부담률 20%가 적용돼 1만2000원∼1만6000원 선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 2000∼6000원 정도만 더 내면 하루 평균 6만∼8만원 수준인 간병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포괄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등과 협의를 거쳐 연내에 입원비를 확정할 예정이다.
포괄간호병동은 누구나 입원할 수 있지만 정신과 환자, 담당 주치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입원이 제한된다.
"지인 자식들이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내는 것으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금을 내야해서)물려받은 빌딩 3개 가운데 1개를 울며겨자먹기로 '급매처분'하더라구요. 집안 전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날리는 셈이지요. '아. 이건 아니다' 싶어 급히 (증여ㆍ상속)준비하고 있어요."
금융자산만 30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 김충재(가명ㆍ60)씨. 그는 최근 서울 강남에 80억원짜리 상가를 사들였다. 강남에서 돈냄새 잘 맡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김씨가 이번에 정작 노리는 것은 뜻밖에도 시세차익이나 월세 임대수익이 아니다. 상속세를 줄여 자식 등 가족들의 부담을 미리 덜어주려는 속셈이다.
◇"투자도 귀찮아!원금 까먹지않게 세금이라도 줄였으면!"
사연은 이랬다. 김씨에 따르면 시세가 100억원에 이르는 빌딩을 매입하더라도 상속이나 증여세를 내는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은 80억원 이하다. 정기예금 등 현금(100억원)으로 승계할 때와 달리 기준금액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그만큼 절세를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최근 공시가격 증가율도 낮아지고 있어 과거보다 승계 세금 부담액의 증가액이 적어지고 있다. 서둘러 부동산을 매입해 증여나 상속할수록 유리하다는 의미다. 그는 "부동산 불황기에 싸게 급매로 사서 물려 줘야 나중에 값이 오르더라도 (절세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들었다"라면서 "강남쪽 빌딩을 더 찾아보고 있다. 주식(개인회사)도 조만간 쪼개서 증여할 계획"이라고 귀뜸했다.
김씨는 최근 슈퍼리치의 전형적인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복수의 강남권 PB(프라이빗 뱅커)에 따르면 대개 500억원대 이상 강남 슈퍼리치들은 사실상 더 이상 투자가 필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투자하기를 귀찮게 생각한다. 이미 자산 포트폴리오상 노후 대비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 놨기 때문이다. 투자하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원금손실이라도 나면 골치만 썪을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40~50대 젊은 부자들보다 60대 이상 시니어 세대로 갈수록 강해진다. 단, 그들도 상가나 빌딩 등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지금껏 부를 축척한 수단이 대개 부동산이기도 하고 잘 알고 있는 분야 또한 부동산인 까닭이다. 최근 아파트만 제외하고.
이 때문일까. 강남권 고액 자산가들은 요즘도 강남 빌딩이나 상가에 눈독을 들인다. 특히 공실이 없고 입지가 좋은 강남 알짜 빌딩의 경우 수익률이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 예금의 3배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는 셈이다. 아예 강북권으로까지 눈을 돌리기도 한다. 이 역시 수익률 때문. 실제 명동이나 홍대 등 대규모 상권의 일부 상가는 수익률이 10%대를 훌쩍 넘기도 한다. 다만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없다보니 당장 현찰을 들고 있어도 알짜 물건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포트폴리오 리모델링 성행…수십억원 그림 사기도
강남 슈퍼리치들의 최대 고민은 역시 '세금'. 특히 올해부터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아지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실제 소득세율 구간에 따라 초과분(2000만원)의 최고 41.8%(누진과세)의 세금을 낼 수 있다. 예컨데, 2억5000만원 금융소득이라면 1억원에 육박하는 돈(약 8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한다. 뿐만 아니다. 국세청이 이자소득을 통해 자산원금을 역추적하기 때문에 원금(세원)노출 우려도 커져 의료보험, 건강보험 등 준조세 폭탄도 무섭다. 더욱이 최근 강남 자산가들 사이에선 "과세기준액이 1000만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면서 강남지역 뿐 아니라 대한민국 자산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자수성가해 남부럽지 않은 경제력을 가진 강남부자 강팔문(가명ㆍ65)씨도 그런 케이스다. 그는 최근 30억원짜리 저축성 보험에 가입했다. 5000만원씩 60개월간 보험금을 내야하는 셈이다. 비과세 상품이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정기예금 주가연계증권(ELS) 등 과세가 되는 자산을 처분해 물가연동국채, 장기채권, 산박펀드 등 비과세ㆍ분리과세가 가능한 상품으로 갈아타고 있다. 강씨는 "앞으로 정부 과세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절세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림에 따라 수십억원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상속세 등 세금을 피하기 위해선 이보다 좋은 방법도 드물다. 강남 일부 지역에선 미술품 관련 강좌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한 PB는 "취미생활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부자들이) 세금을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점도 반영되고 있다. 미술품 경매사 등을 연결해드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이건희, 남일 아니다"…병원 옆 집짓기 유행
돈은 있을 만큼 있다. 이제 건강이 우선이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일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대학병원 등 큰 병원 인근 아파트나 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권 PB에 따르면 강남 자산가들을 대부분 따로 선호하는 병원이 있다. 그 선호하는 병원 옆에 살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50년 이상 중소기업체를 경영하고 80세를 넘긴 시니어 남편과 사는 황명숙(가명ㆍ68)씨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30억원을 들여 서울 시내 모 병원 인근에 부지를 사서 넓직한 주택을 짓고 있다. 남편 몸에 급작스런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분초를 아껴 병원 특실이나 응급실로 옮기기 위함이다. 그녀는 특히 집안 공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도 샤워가 가능하도록 욕실을 짓는가 하면 마당에 정원을 꾸며 답답함을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감도 높여준다. 그녀는 "회장님(남편) 나이가 있다보니 편안한 노후를 위해 거처를 옮겨드리려 한 것이다. 이사하고 나면 병원과 가까워 조금은 안심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도 외국환자 유치, 숙박업, 건물 임대업 등의 부대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다음 달 22일까지 입법예고하고 이들 부대사업을 목적으로 자법인을 설립·운영할 때 지켜야할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고 10일 밝혔다.
현재는 의료법인에 의료인 양성, 의료·의학 조사 연구, 장례식장, 주차장 등 제한적으로 부대사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 시행규칙에서는 외국인 환자 유치업·여행업·국제회의업·수영장 등 체육시설업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시도지사가 공고한 경우에만 가능했던 숙박업과 서점업도 시도지사의 공고없이 허용된다. 이에 의료기관이 직접 메디텔(의료기관+숙박시설) 등을 만들어 해외환자들을 유치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건물임대업도 허용방안도 검토됐으나 의료법인이 직접 건물을 빌려주는 형태가 아니라 제3자가 의료법인의 건물을 빌려 생활용품·식품 판매업 등 환자·종사자의 생활 편의를 위한 부대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도 의료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관광호텔에 진료과목별로 전문성을 갖춘 다른 의원급 의료기관이 세 들어 영업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모(母) 의료법인과의 내부거래, 환자에게 강매 피해 등이 우려되는 점을 감안해 건강기능식품 판매업과 의료기기 구매지원 등은 부대사업 범위에서 빼기로 했다.
아울러 상급종합병원에 외국인 환자 제한 비율(총 병상의 5%이내)을 적용할 때, 국내 환자 이용률이 낮은 1인실은 아예 제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복지부는 현재 병상 수 기준 5%로 묶여있는 외국인 환자 비중이 사실상 약 11%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규제가 대폭 완화되는 만큼 의료기관이 자회사를 세울 수 있는 기준 요건을 까다롭게 마련했다. 개정된 '의료법인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상속·증여법상 '성실공익법인'으로 인정받은 의료법인만 자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자법인에 대한 지분율이 10%이상이라면 주무부처인 복지부장관의 허가까지 받아야 비과세로 지분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또 자법인 설립 남용과 모 의료법인 자산 유출을 예방하고자 의료법인은 순자산의 30% 이내에서만 자법인에 출자(투자)할 수 있게 제한을 뒀다. 동시에 자법인이 모 의료법인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의료법인은 반드시 자법인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30%이상을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어야 한다. 의료법인과 자법인간 부당내부거래는 금지되며 의료법인은 자법인 채무에 대한 보증을 설 수도 없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작년 12월 의료법인 투자활성화 대책으로서 부대사업 확대방안을 발표한 이후 보건의료단체·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해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개정 시행규칙(부대사업 확대)은 입법예고를 거쳐 8월께 시행될 예정이고,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의 경우 현재 해외환자 유치에 적극적인 2~3곳이 준비 중으로 연내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지만 보건의료노조 등 의료 및 시민단체들은 병원 영리화를 가속화 시킨다며 반대하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정부가 추진하는 병원 부대사업 범위 확대와 이를 위한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은 의료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전문병원의 분야가 진료과목보다 질환 중심으로 조정되고 지정 기준에 임상 질 평가 등이 추가된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전문병원의 지정 및 평가 등에 관한 규칙개정안’과 ‘전문병원의 지정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1일 밝혔다.
전문병원은 특정 진료과목이나 질환에 대해 난도 높은 의료행위를 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역량있는 중소병원을 육성해 대형병원 환자쏠림을 완화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현재 11개 질환, 9개 진료과목에서 99개 병원이 1기 전문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개정안은 진료과목 가운데 신경과, 신경외과, 정형외과를 지정분야에서 제외해관절, 척추, 뇌혈관 질환으로 통합하고 고령산모의 증가 추세를 감안해 주산기질환 분야를 추가했다.
또 전문병원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재원일수, 합병증 발생률 등 임상 질을측정하는 지표를 추가했으며, 타 분야에 비해 신청이 적은 뇌혈관, 심장, 유방, 화상질환 분야는 지정기준을 일부 완화해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안은 내달 30일까지 입법예고 후 규제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확정되며, 이를 반영해 오는 7월 2기 전문병원 지정계획이 공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