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고서적업계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큰 거래가 성사될 고서적이 갈수록 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640년 청교도들이 만든 미국 최초의 인쇄 도서 이 인쇄물로는 역대 최고가인 1416만5000달러(당시 환율로 약 150억3190만원)에 거래된 이후 그 기록을 깰 만한 희귀본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고서적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다른 골동품이나 예술품에 비해 소장이 용이하며 경기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가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고서적 전문가들이 흔히 ‘3D : Debt(채무), Divorce(이혼), Death(사망)’ 상황이 아니면 수집가들은 절대 희귀본을 내놓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여기에 덩치 큰 도서관과 박물관까지 희귀본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거래는 한산해도 호가만 높아지고 있다. 역대 최고가로 거래된 만 해도 현존하는 11점 가운데 1947년 소더비 경매에서 1점이 거래된 이후 66년 만에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예일대학을 대리한 경매 참가자가 1947년 당시 낙찰 받은 금액은 15만1000달러. 그 사이에 낙찰 가격이 94배나 뛴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이 1994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 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 노트인 필사본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는 서적 역사상 최고가인 3080만달러에 거래됐다. 지금은 4920만달러를 호가하지만 빌 게이츠 회장이 매각할 리 없으니 호가는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는 존 제임스 오듀본의 는 200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80만달러에 거래된 데 이어 2010년에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그 당시 인쇄물로는 역대 최고가인 1150만달러에 거래됐고 2012년에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792만2500 달러에 낙찰됐다. 이 고서적은 1827년부터 1838년까지 11년에 걸쳐 총 200세트가 발간돼 현재 120세트만 남아 이 가운데 107세트를 단체와 기관이, 13세트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가끔 이나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다. 뉴욕의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이처럼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고가의 고서적을 발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나 수집가들은 희귀본을 점점 깊숙이 숨기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초고가의 고서적에 비해 중상급과 일반 고서적 거래는 그나마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의 400여 주요 고서점을 대표하는 미국고서점협회(ABAA : Antiquarian Boolseller’s Association of America)의 수잔 베니(Susan Benne) 사무국장은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거래가 한때 주춤했으나 이제는 완전 정상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저금리의 영향으로 거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고서적 거래의 특성상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는 않고 있으나 뉴욕, 보스턴, LA,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매년 개최하는 고서적 전시회를 통해 거래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베니 사무국장은 언질을 줬다.
미국의 고서적업계는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하고 전문성 높은 감정평가와 품질보증과 함께 거래 윤리강령을 크게 강화해 미국인들의 고서적에 대한 관심과 수집 열기를 높이고 있다. 미국고서점협회(ABAA)가 전문성이 검증되고 신뢰가 높은 고서적 거래상들만을 선별해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ABAA에 가입하기가 무척 어렵고 회원이라면 신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서적 거래 기반이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ABAA의 홈페이지(www.abaa.org)에서는 회원사들이 확보한 고서적을 아마존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만큼 편리하게 살 수 있다. 고화질의 사진과 함께 전문성 있는 설명이 소상히 첨부되고 반품까지 보증이 되니 수십만달러(수억원)의 정가가 붙어 있는 고서적을 온라인으로 거래하면서도 불안하지 않다. 해외에 있는 수집가는 여기에 45달러 정도의 해외 배송료만 추가로 부담하면 되니 고서적의 해외 직접구매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미국의 고서적을 본격적으로 접해 볼 작정이라면 전시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올 가을에는 개최 40주년을 기념하는 보스턴전시회(10월 28~30일, 하인스 컨벤션센터), 겨울에는 50주년을 맞은 샌프란시스코전시회(12월 10~12일, 오클랜드 메리어트 시티센터), 그리고 봄에는 뉴욕전시회(3월 9~12일, 파크 애비뉴 아머리)를 둘러보고 고서적 전문가들과 유대를 맺어 놓으면 큰 도움이 된다.
세계 최대 중고서점 ‘스트랜드(Strand Book Store)’에서 고서적 거래를 책임지고 있는 대런 서덜랜드(Darren Sutherland) 매니저는 “정말 좋아하는 서적을 구매해서 소장하다 보면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의 고서적업계에서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그는 “온라인이더라도 항상 접촉할 수 있고 신뢰도가 높은 딜러를 통해 거래를 해야 하고 본인이 전문가가 아니라면 단기투자 목적의 거래를 피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스트랜드서점 3층에 위치한 희귀본 및 수집용 서적 코너에서는 한인 2세 김현영(미국명 Jane Jaiswal)씨가 전문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영어강사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김현영씨는 우리말이 능숙하고 친절해 미국 고서적에 관심이 큰 한국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내자다.
“오늘만 해도 태안군 안면도, 양평·가평을 갔다가 내일은 대구로 갑니다.”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질문을 건네자 덤인 정경자(鄭京子·50) 대표의 카랑카랑 애교 섞였던 목소리가 풀이 죽으며 답한다.
바빠서 달리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집안일로만 여겼던 ‘정리하고 수납하는 일’을 전문 분야로 끌어올린 주인공 정경자 대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스며들 듯 부드러운 방법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쇄도하는 강의 요청과 방송 출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 취재가 있던 날에는 한 아파트의 광고 모델로 발탁돼 촬영을 마쳤다. 그렇다 쳐도 여전히 생소한 정리수납 컨설팅.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왜 필요한지 들어봤다.
“저를 납득시켜 주세요, 정리수납에 왜 돈을 쓰죠?”
정경자 대표가 정리수납 컨설턴트를 알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캐나다 주재 한국 물류회사의 법인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저는 캐나다에서 정리수납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미 캐나다나 유럽에는 20~30년 전부터 있던 직업이더라고요. 자기 물건을 자기가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리해주기도 하는구나. 막연하게 나중에 한국에 가면 이걸 꼭 직업으로 만들어야지 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보겠다는 것도 잠시. 회사에서 캐나다 법인의 철수 결정이 갑작스럽게 났고 2002년 한 달 만에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경자 대표는 회사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물어보는 사람마다 직업으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요. 어찌됐건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인식이 안 돼 있어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바로 정리수납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를 교육하고 양성해서 파견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 아이를 자기가 키우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던 때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정리수납에 관한 준비를 꾸준히 했다.
“5년 정도 준비 끝에 정리수납 교재와 매뉴얼을 만들고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을 할 때 가르쳤어요. 1대 1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서 정리수납교육을 한 거죠. 그런데 베이비시터가 아이 옷을 잘 정리하니까 고객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정관리사도 옷을 세탁하고 개는 것을 달리해주니까 고객 만족도도 좋고 일 하는 사람들 또한 좋아했습니다.”
2010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다 보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저런 거 배웠으면’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드디어 2011년 11월, 한국정리수납협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정리수납 컨설팅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를 만들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여성유망직종으로 정리수납 관리사를 선정했더라고요. 아이템 자체를 보고 한 것 같아요. 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에서부터, 2015년에는 신직업지원 육성정책에도 정리수납이 들어갔습니다. 여성가족부, 노동부 등 정부기관이 육성한다고 하니 이와 관련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어요. 사람들 관심도 높아졌고요. 저희만 봐도 정리수납 컨설팅을 교육받고 있는 회원이 전국에 3만9000명 정도입니다.”
정리수납, 한국 사람에게 절실하다
정리수납에 있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심어지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에 정리수납을 접목해 이용자들에게 미래 사업을 노출시켰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외국에서 이것을 매우 당연하다고 봤고, 우리나라에서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어렵게 살아온 시절이 있기 때문에 돈만 생기면 집이랑 차 넓히고 물건 사고 그래요. 자신이 어렸을 때 옷을 잘 사 입지 못해서 아이한테만큼은 옷을 잘 입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과 장난감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제 한계가 왔고, 물건을 버릴 때도 돈을 지불하는 사회가 된 거죠.”
시니어, 정리습관을 기르자
정경자 대표의 말에 의하면 시니어들의 정리 습관은 참으로 심각하다.
“지금 제가 잘 버리는지 엄마가 잘 버리는지를 비교하면 우리 엄마가 더 잘 못 버려요. 나이가 들수록 더 못 버리게 돼요.”
시니어 세대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정경자 대표는 ‘애정결핍’의 문제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관심 가질 것도, 행동할 것도 많아서 물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거는 어디서 산 거고, 누가 준 선물이며, 의미를 사람이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물건에서 찾으려 한다고.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분가하거나 배우자가 죽을 수도 있죠. 결국 자기 혼자 남기도 해요. 자식들과 자주 만나 생활한다면 선물해준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혹시 온다 해도 아주 잠깐만 있다 가죠. 그러니 이거는 큰아이가 사준 거였고, 이건 누가 사준 거고 말입니다.”
버리는 습관과 정리하는 습관은 젊었을 때부터 길러야 한다.
“80세에 갑자기 잘 버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85세신데 제가 뭘 버리라고 말하지 않아요. 어머니 집에 가서 저는 정리 안 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에 제가 하루아침에 바꿔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상처가 될 수 있어서 삶을 이해하려 하지 바꾸려고 들지는 않아요.”
시니어 고객에게 하는 조언은?
“제가 시니어를 만났을 때 하는 얘기가 딱 그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죽었을 때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죽는 순간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다 버려지게 된다. 돈 혹은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면 다 버려진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자식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왜 엄마는 아직까지 이걸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냐고 합니다. 좋은 얘기 안 하죠. 물건을 보며 엄마를 추억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 있을 때 쓰레기들을 남에게 버리게 하는 수고로움은 덜어주고 가야죠. 그게 시니어가 돼가는 것이고 내 삶을 정리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정경자 대표는 시니어에게 정리수납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주방 싱크대 상부장 맨 위에 의자를 받치고 올라갔다가 떨어져 허리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면 기력이 쇠하고 점점 더 빨리 늙는 것을 봐왔다는 것.
“왜 거길 올라가는 거죠? 10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면서요. 본인이 그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여성 CEO, 일하는 여성을 말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5년째. 여성 CEO로서의 고충을 물어보자 고충보다는 이 분야 선구자로서 할 일이 태산이라고 했다. 벤치마킹할 곳도 없고, 슬로건 교재도 만들어야 해서 바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라고.
“그리고 좋은 건 정리수납은 여자들의 섬세함이 필요하잖아요. 남자들이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경력단절 여성들과 작업에 대해서도 흥미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전업주부들이 사회적응을 잘 못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정리수납을 가르치고 기본 원칙을 알려줬더니 이만큼의 전문가가 없는 거예요. 생소한 분야가 아닌 거죠. 자기 삶의 가치가 바뀌었죠. 정리를 못하는 사람에서 정리 전문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내고요.”
바쁘게 사는 그녀, 복지관 예쁜이 할머니 꿈꾸다
올해 딱 50세가 된 정경자 대표. 그런데 누가 봐도 50대로 볼 수 없는 그녀는 지금 일이 아니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일이 우선 많아요. 결혼도 연애도 시간이 없어서 못 했거든요. 20대 때부터 세계여행도 하고 뭐든 다해봐서 혹시 시간이 좀 생긴다면 운동을 해야겠어요. 얼마 전에 면역력 저하로 세균이 번식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반성을 많이 했죠. 그런데 퇴원하는 날 방송사 가서 10시간 촬영했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나요.”
그리고 그녀에게는 원대한 꿈이 하나 있다. 복지관에서 인기 있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서 기회가 되면 지금 우리 직원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직원 전용 실버타운을 짓고 싶어요. 이분들이 나이 들어서 정리수납 강의도 하셔서 강사료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100만원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시니어가 되어서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여기서 나이 먹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90세가 됐을 때 목표는 제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가장 예쁜 할머니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내가 가장 인기 있는 할머니가 된다면 무척 바쁠 것 같아요. 밥 사준다는 할아버지들도 많을 거 같고요. 내가 아파 복지관 못 나가면 우리 가족이 나한테 전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에 있는 분들이 어디 아프냐고 죽이라도 사가겠다고 하겠죠? 늘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거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 꿈꾸는 정경자 대표의 멋진 미래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복지관 퀸카 할머니가 꼭 되길 바란다.
‘취업절벽, 창업절벽’으로 표현되는 오늘의 경제상황은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창업지원을 확충하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책자금’으로 통칭하는 정부자금 지원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SBA 서울산업진흥원은 교육과 홍보를 하면서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연초부터 서울창업카페 숭실대역지점에서 손문규(59) 정책자금 전문가가 ‘정책자금과 창업’을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현장에서 경청한 강의내용을 요약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서 보충하였다.
손문규 강사는 “정책자금이란 뛰어난 아이디어와 사업이 준비되어 있어서, 자본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아직 자금이나 신용이 부족해서 비용 마련이 어려운 사업자나 초기기업을 위한 자금”이라고 설명하였다.
강의시작 전부터 청장년 창업희망자들이 강의실을 꽉 채웠다. “창업에는 아이템 선정을 잘 하여야 하고, 시장성, 안전성 점검에 유의하라.”고 강조하였다. 한마디로 돈 버는 장사를 해야 한다. 계산으로는 남는 것 같지만 손에 남는 것이 없는 불황형 흑자, 흑자도산으로 지칭되는 껍데기 창업은 말짱 헛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책자금에는 시설, 운영자금을 비롯하여 상환이 필요 없는 지원자금과 상환해야 하는 대출자금으로 나뉜다. 집행기관도 국가, 지자체, 금융회사 등 여러 곳이다. 중소기업청, 미래창조과학부, 고용노동부 등 구가기관과 지방자치잔체가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등 공공기관도 많다.
손문규 강사는 “정책자금은 공모 경연대회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류심사와 심층면접을 한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료를 배부하였다.
수강자의 절반을 넘는 청년 창업자들은 정책자금 신청부터 선정되는 방법까지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냈다. 강사는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하였다.
사회은퇴 후 창업을 구상 중이라는 한 수강자에게 소감을 물었다. “창업에 따른 정책자금이 이렇게 다양하고 활용할 여지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현장에서의 풍부한 성공사례 강의 대목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손문규 강사는 왜 정책자금 전문가가 되었을까? “사회은퇴 후 사회공헌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아서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강의에서 지적한 것처럼 창업자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자금이라는 점을 알았다. 창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서 창업자금을 집중해서 연구하였다.”
그는 대기업에서 기획과 영업에서 뛰어난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회사은퇴 후,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창업닥터 겸 담임교수로 사회공헌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창업정책자금 전문가로 청장년 창업을 이끌면서 지도하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창업닥터이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것”이란 클로징 멘트로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젊은 창업가들의 질문이 계속 되었다. 창업 준비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취재에 협조해 주신 손문규 강사께 감사드리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랐다.
1, 지리산 청학동서 세상을 만나다
필자는 촌놈이다. 지리산 삼신봉 아래 청학동 계곡에서 세상을 만나서다. 청학동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일원을 이른다. 삼신봉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기암괴석으로 둘러쳐진 계곡을 돌고 돌아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하동읍까지 40리(약 15.7㎞), 진주시까지 100리(약 39.3㎞)다. 지금은 관광지로 많은 사람이 찾지만, 앞산 토끼와 뒷산 토끼가 서로 발맞출 수 있는 두메산골이었다. ‘정감록’을 비롯한 몇몇 옛 문헌에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으로 등장한다. 청학이 노닐고 흉년, 질병, 난리가 없는 지상 낙원으로 신라 말기부터 전해오는 마을이다. 할아버지도 거창군 가조면 율리에서 그 이상향을 찾아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유불선합일경정유도교"의 신자들도 196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한복을 입고 결혼 전에는 댕기 머리를 땋고 결혼 후에는 남자는 상투를 틀고 여성은 쪽 지은 머리에 비녀를 꽂는 풍습의 도인촌이다.
이곳으로 이주한 조부모와 부모는 화전을 일구어 밭농사를 지었다. 계곡 주위의 다소 반반한 터를 잡아 다랑논을 만들었다. 어느 가을날 그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빨치산에게 붙잡혔다. 부역을 시키거나 총살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소나무 둥치에 포박하여 둔 채로 그들은 떠나갔다. 어둠이 깔리자 두 분은 묶인 손의 밧줄을 간신히 풀고 일궈놓았던 논밭과 익어가던 곡식을 팽개친 채 빈 몸으로 10리(약 3.9㎞) 떨어진 대밭 몰이라는 아랫마을로 소개하여 삶의 터전을 새로 마련했다.
필자는 청학동서 배태하여 이곳에서 삼 형제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음력으로 1950년 2월 초나흘 새벽닭이 울 무렵이었다. 배냇저고리에 쌓여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곳에서 유소년시절을 보냈다. 끼니를 챙기는 어머니 곁에서 딸처럼 아궁이에 불을 지피어 드리기도 하고 들녘에서 나물을 캐기도 하였다. 닳고 닳은 놋쇠 숟갈로 감자 껍질을 벗겨드리기도 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동읍에 있는 하동중앙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밤에 공부하고 나면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렸다. 등잔불에 넣을 기름도 40~ 50분 걸어가야 하는 면사무소 근처의 가게에서 기름때 진득하게 낀 됫병에 짚으로 꼰 새끼줄을 묶어 조심스레 들고 와야 했다.
어머니 나이 33세에 필자를 낳았다. 큰 형님과는 10세, 둘째 형님과도 6세 터울이다. 할아버지의 만류로 9세에 초등학교에 입학(1958)했다.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을 건너 신작로 고갯길을 돌고 도는 1시간 거리에 있는 청암초등학교였다. 공부 잘하고 달리기, 웅변, 그림 그리기 등 모든 부분에서 두각을 보였고 전교 학생회장도 했다. 중학교 역시 수석으로 입학하였고 3년 동안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로 지역주민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중학교 때는 같은 학년의 친구 집에 입주하여 공부를 도와주고 숙식을 해결한 적도 있다. 중학생이 가정교사로 일한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모교 졸업식에서 축사한 특별한 경험이 있다. 동네 결혼식의 축사도 도맡아 했다.
2. “당신은 중책을 맡게 될 거야!”
거창대성고등학교를 졸업(71)한 후 72년 곧바로 국민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자원입대하여 관제병으로 3년 만기 전역했다. 이후 77년 10월, 대학 졸업 직전에 쌍용그룹 고려화재해상보험㈜에 공채로 입사했다. 특종보험 언더라이팅 업무를 하다 기획조사부로 발령되어 신상품 개발 업무를 하여 국내 최초 골프보험, 낚시보험 등의 레저보험을 개발하였다. 79년 4월 15일, 다섯 살 아래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다.
보험감독원 등 외부기관 연수에서 늘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재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83에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보험연수소(SITC)를 수료(사진)했다. 중견 사원이 되었을 때는 운영상 문제가 있었던 제주지점, 대전지점, 동대문지점장으로 부임하여 업적을 크게 올렸다. 그런 덕으로 96년 초 직장의 별인 임원으로 승진해 부산, 경남, 제주를 관장하는 본부장(부산 주재)을 지냈다.
3, 47세에 용도폐기
호사다마라 했던가? 임원으로 승진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던 1997년 12월 말 갑작스럽게 해임되었다. 충격이었다. 나이 47세 때다.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으며 회사 일에 매달려온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창 일할 나이였고 두 아들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필자에게 거는 기대를 생각하면 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넥타이를 매고 정상 출근하듯 집을 나서 공원에서 배회하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필자가 바로 그 처지가 되었다.
4. “당신 제 명에 살게 하려고”
해임된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떻게 아내에게 알려야 하나를 고민했다. 믿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망설여지기도 하였으나 그날로 아내에게 사실을 알렸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가? 서로를 알고 서로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알렸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일이어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시간을 보낸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잘 됐어요. 당신 제 명에 가게 하려고 하늘이 도왔나 봐요!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어디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우리 세대들이 다 그러했듯 나 역시 목표달성을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다. 거래처 접대와 직원 격려를 위한 회식 자리로 자정 무렵에야 겨우 혼자 살던 사택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필자가 제 명에 갈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을 수차례 하였을 것이다.
5. “설상가상”,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직한 다음 해 IMF 위기가 닥쳤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재취업하려 발버둥 쳐봤지만,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단계 모집 광고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런 현실은 분노를 부추겼고 속이 더 상했다. 분노를 일간신문 독자 투고란에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마음을 비워가기 시작했다. 체면이나 자존심을 조금씩 버렸다. 그런 과정에서 마음을 가장 잘 가라앉혔던 생각은 “나의 직장 운이 거기까진 데 어이하겠어”라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주어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기 시작했다.
6, 마당쇠가 되다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찾아야 했다. 퇴직 6개월이 지나서야 고용노동부 고양시고용센터에 들러 실업급여를 청구했다. 처음엔 쑥스럽고 창피하여 신청을 미루고 있었다. 국민연금을 해지하여 생활비로 사용했다. 다른 보험도 모두 해지하였다. 그 후 별별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만화방을 창업했다.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좋은 호응을 얻어 사업이 잘됐다. 수입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하여 라면을 직접 끓여 팔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대조류였던 PC방이 성업하면서 이 업종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이 사업을 접고 경기 부천시 상동에서 부대찌개 음식점을 창업해 운영했다. 90% 이상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계를 누누이 들으면서도 많은 퇴직자가 덤벼드는 것이 요식업이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고전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회사 다닐 때 몸에 익힌 고객서비스 정신이 도움되어 친절한 음식점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수익이 괜찮아졌다. ‘이런 맛에 음식점을 하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계속 아팠다. 특히 나이도 환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를 맞았다. 때마침 가게를 욕심내는 사람이 나타나 적정한 가격 협상 끝에 가게를 넘겼다. 그 후에도 먹고 살기 위해서 다양한 일을 이어갔다. 월 40만 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의 조경관리사로 취업하여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일도 하였다. 마당쇠가 된 셈이다. 대형 고깃집 일산한우마을 점장도 하였고 일당을 받기 위하여 MBC 드라마 ‘주몽’ 엑스트라 출연도 해보았다.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 되었다. 강의 콘텐츠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7, 친구의 비명횡사, 인생의 전환점 되다
57세 때 가까운 친구를 비명횡사로 잃었다. 두 살 아래의 직장 친구였다. 평소 술은 하지 않았고 담배도 수년 전에 끊어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추석 전날 다른 친구들과 남한산성에 올랐다. 산행 중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구급 차량을 불렀으나 고향 가는 차량 행렬에 막혀 늦게 도착한 119차량에 실려 가까운 성남시의 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정말 황당했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퇴직 후 보낸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내로라할만한 일은 이루지 못하였다. 이렇게 살다가는 필자도 친구와 같이 무의미한 생을 마감하겠구나 싶었다.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보람 있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제부터는 필자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8, 60살에 사진 배우다
직장생활과 생업으로 잊고 있었지만, 은퇴하면 햇살 좋은 언덕에 캔버스를 세우고 수채화를 그리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필자가 사는 고양시에서 무료로 하는 사진강좌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필자는 블로그 ‘촌놈의 세상보기’를 운영하면서 사진을 곁들인 글을 쓰고 있었다. 좀 더 좋은 사진을 생각하고 있던 때여서 강좌에 참여했다. 화필 대신에 카메라를 잡은 셈이다. 2010년 7월부터 한 달에 3회 6개월 강좌를 들었다. 필자 나이 60대 중반이었다. 사진에 특별한 재능이나 솜씨를 갖고 있지 않은 초보자였다. 카메라도 소형 디지털카메라 한 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리산 청학동 계곡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감성과 초등학교 때 수채화를 그렸던 경험, 전 직장에서 맡았던 홍보 관련 일과 사보편찬 업무가 도움돼 일취월장했다.
사진 취미활동은 여가를 무료하지 않게 보내면서 건강도 챙기고 여러 사람이나 자연과 함께함으로써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게 했다. 때로는 작품으로 부가적 소득과 재능기부도 하면서 평생을 현역처럼 살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개월 뒤인 2010년 10월부터 공인 사진작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이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전국사진공모전에서 입선 이상을 하여 획득한 점수가 50점을 넘겨야 했다. 입선하면 2점을 받는다. 일 년 동안에 28회 출품해 절반 이상 낙선하였으나 어쨌든 15회의 수상으로 사진작가 명함을 달았다. 첫 번째로 출품했던 제1회 너브내전국감성사진공모전에 ‘형상II’이 동상의 영예를 안겨주어 출발이 순조로웠으나 다른 공모전에선 잘 뽑히지 않아 포기할 생각도 수차례 하였다. 그러나 사진 자체가 재미있었다. 꾸준하게 찍으며 관련 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기회가 되면 망설이지 않고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년 만인 2013년 7월 국전인 대한민국사진대전에 ‘무한 질주’라는 작품이 입선했다. 2013년 10월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서 주관한 ‘8만 시간 디자인공모전’의 사진 부문에 ‘몰입’이라는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11월에는 부산일보 주최 제21회 ‘부일 전국사진대전’에 출품한 ‘닭장’이 1,166점 중에서 좋은 심사평으로 2위인 우수상 영예를 안았다. 부산일보는 2013년 12월 26일 자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변용도 씨의 우수상 '닭장'은 울타리 안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닭의 붉은 머리 부분을 어두운 배경에서 강렬하게 보여 주어, 닭의 모습에서 감옥에 갇힌 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하는 듯한 표현이 출중했다는 평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9. 사진취미, 인생이막의 텃밭이 되다
필자는 사진을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로 정의하고 ‘포토스토리텔러’라 자칭한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가 37만 장이다. 카메라는 가장 아끼는 친구다. 늘 함께한다. 사진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됐다.
사진 활동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분야로 활동영역이 확대되어 다용도(多用途)로 후반생을 바쁘고도 보람 있게 산다. 사진이 인생이막의 텃밭이 되었다. 필자는 그 텃밭에 글솜씨, 강의 솜씨를 추가로 뿌렸다. 그런 씨앗에서 싹이 돋고,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미역국’ 외 다수의 작품으로 ‘순수문학지’ 신인상에 당선되어 수필가 명함을 달았다. 2012년에는 필자의 블로그 ‘촌놈의 세상보기’가 대한민국 100대 우수블로그로 선정됐다. 사진작가, 사진 칼럼니스트, 수필가, 저자, 강사(은퇴준비, 생애 재설계, 변화관리, 사진), 방송인(KBS 1TV ‘아침마당’, SBS라디오 ‘유영미 마음은 언제나 청춘’ 시니어리포터, 머니투데이 행복특강, 토마토TV 강연, 아리랑TV, CBS라디오, 한국직업방송), 기자(시니어조선 사진명예기자, 사회연대은행 KDB시니어브리지센터 두드림기자), 유어스테이지 시니어리더 겸 시니어리포터, ‘디카와 놀자’와 세화포토클럽 운영자다. 최근엔 경제신문 이투데이 자매지 브라보 마이라이프의 동년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11월 ‘아름답게 보니 아름다워’, 2016년 1월 ‘카메라로 쓴 아름다운 이야기’를 출간하여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고려대 평생교육원 액티브시니어전문가과정 전임강사다.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우면청춘대학의 사진강좌를 2년째 맡아오고 있다. 사진이 근간이 되어 활동 영역이 확대되었다.
10. 도랑 치고 가재 잡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경기 고양시 외곽의 한적한 전원 마을에서 자그마한 주택을 지어서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아니하여도 현실을 인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일상을 즐긴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라고 한 어느 노부부 여행가의 생활 철학을 닮아가려 한다. 젊은 시절에 느끼지 못하였던 보람을 느끼며 산다. 전반생보다 후반생을 더 바쁘고 활기차게 보낸다. 그 바탕에 사진이 있다.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번다.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형국의 삶을 산다. 2차 성장을 한 셈이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 윌리엄 새들러 교수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재창조하는 것이 인생의 2차 성장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제2의 절정기를 만들기 위해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변함없는 도전이다. 필자의 이름을 ‘변함없는 용기로 도전하는 남자’로 풀이해본다. 그런 덕분에 누구나 한 번쯤 출연해보고 싶은 KBS 1TV의 ‘아침마당’(2014, 11, 24)에 섭외를 받아 출연했다. ‘다시 시작하는 인생- 나의 두 번째 직업을 소개합니다’란 주제였다. 사진작가로, 은퇴준비강사로 안사람과 함께 출연해 삶의 정점을 새로 찍었다.
11,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
세계적 사진작가 프랑스의 마크 리부가 있다. ‘에펠탑의 페인트공’, ‘꽃을 든 여인’ 등 유명한 작품을 만든 현존하는 사진작가다.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 리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찍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이지만, 더 나은 작품을 얻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겠다는 꿈을 꾼다. 희망으로 산다. 진정한 대 작가의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과 자세가 새로운 경지로의 작품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려는 삶의 철학이, 남이 넘볼 수 없고 흉낼 수 없는 작품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 여겨진다. 미래를 향해 또 다른 꿈을 꾼다. 필자 또한 늘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아직 오지 않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찾아 도전의 발길을 멈추지 않으련다. 또한 하늘이 인생의 구석구석에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경험과 지혜를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아낌없이 다 쓰고 가리라.
생물학적 수명은 늘어나고 사회적 수명인 정년은 점점 짧아지면서, 제2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 즉 은퇴자금 준비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제2 직업은 더 중요하다. 시니어들의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여러 민·관 기관에서 제2 직업에 관한 다양한 안내와 새로운 직업 소개를 하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기보다 교육과 준비과정을 통해 새 인생에 어울리는 새로운 직업을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제2 직업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구인 활동을 펼치는 업체나 기업을 살펴보면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장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사발전재단이나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은퇴자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중장년 일자리 희망센터를 전국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이 일자리 희망센터를 이용하면 구인구직 정보에서부터, 교육 프로그램, 관련 컨설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시니어 구인구직 단순직종에 집중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직업이나 일자리가 시니어들이 원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경비직이나 청소, 택배와 같은 단순 노무직이고 그나마 이런 일자리의 대부분은 40대를 우선적으로 선호한다. 연령이 높은 시니어들에겐 순서조차 돌아오기 힘들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정현주 대리는 센터가 최근 사회공헌형 일자리로 사업 방향을 옮긴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으로 자유롭거나 노후 자금이 해결된 시니어들은 단순직 일자리를 원치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 그간의 경력을 살릴 수 있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소득보다는 보람을 찾으려는 분들이 많아요. 수고를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죠. 저희 센터에서는 이런 시니어들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센터에서 준비하는 직업들은 경제적 소득보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이나 참여 시니어들의 자부심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 중에는 건강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이 있다. 지역 치매센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도 인지장애(초기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인지학습 역할을 할 사회공헌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밖에 바른먹거리전문가 양성과정은 유치원 등 각 교육기관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먹거리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다문화가족 서포터스 양성과정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요청을 받아 한국생활 정착의 멘토 역할을 할 지원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수익보다 보람과 자부심 얻을 수 있어야
지난해 도심권 50플러스센터를 통해 SNS전문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종로지역자활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 중인 김희순씨(64)는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니어들에 대한 직업 교육은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생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습니다. 예전엔 손주들이 와이파이 터진다고 하면 뭐가 터졌냐며 놀랄 정도였지만, 이제는 대화도 통하고 생활이 달라졌어요.”
물론 일자리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현장에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겹치게 되면 사업 자체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현장에서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 무대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성공적인 직업에 정리수납전문가가 있다. 정리수납전문가는 여성발전센터, 여성인력 개발센터 등을 통해 민간에 알려졌다가 현재는 협회까지 설립됐다. 한국정리수납협회의 정경자 협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정리수납은 보통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기 어려운 시니어, 특히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업입니다. 평생 살림을 해온 분들은 원칙과 이론을 알려주면 금방 익숙해지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직업을 만들거나 창업하려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의 전문성, 문제를 해결할 창의성, 구성원과 소비자를 대할 인성을 갖추고 있는지 늘 끊임없이 점검해야 합니다.”
찾을 수 없다면 창직(創職)도 방법
새로운 직업에 대한 단서가 필요하다면 한국고용정보원(www.keis.or.kr)을 노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선 제2 직업을 필요로 하는 중년들을 위한 자료를 연구하고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자료집 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도전하기에 적합한 직업 30개를 선정해 하는 일을 소개하고 해당 직업을 가지려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 지난 5월부터는 중장년층의 창직 활동을 돕기 위한 라는 지침서를 배포 중이기도 하다.
#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50대 후반의 기혼자, 자신의 판단과 금융 지식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 새로운 생각이나 판매 선전에 귀가 솔깃한 사람, 최근에 건강 또는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금융사기를 당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미국투자자보호교육재단(FINRA)에서 내린 ‘금융사기 피해를 가장 입기 쉬운 사람’의 정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때 만약 ‘50대 후반의 기혼자’를 ‘50대 후반 이상의 은퇴자’로 바꾸면 대부분의 은퇴자가 금융사기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자들이 사기꾼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퇴자들은 직장에서 은퇴한 뒤 고정적 수입은 크게 줄어들지만 퇴직금이나 모아둔 사업준비자금 등 자금 동원력은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회사 생활을 20~30년 이상 해오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판단과 금융지식이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고 믿고 있거나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일만 하느라 경제 및 금융시장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반면 은퇴와 함께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은 조급하고 귀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상황이다. 이런 틈새를 사기꾼들이 파고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기꾼 자녀가 퇴직금이나 목돈이 생긴 순간 ‘내 돈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설마 내가 사기를 당하랴 하겠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로 사기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금융사기를 당한 사람의 비율이 40~50대의 3.5%에서 60대로 가면 5.7%로 높아지고 있다. 5.7%면 조사대상자 20명 중 1명 이상이 사기를 당한 것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금융사기를 당할 뻔한 사람의 비율도 40~50대는 20% 안팎이지만 60대는 27.3%로 높아진다. 60대는 10명 중 3명이 금융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는 것이니까 누구나 사기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융사기로 입은 피해 금액도 만만치 않다. 30대는 1900만원, 40대는 2328만원으로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피 같은 내 돈이라고 생각해보라. 특히 50대로 가면 9038만원으로 피해 금액이 급증하고, 60대도 5464만원으로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50대의 피해규모가 가장 큰 것은 미국투자자보호교육재단이 정의한 금융사기 피해를 가장 입기 쉬운 사람 중 첫 번째로 언급한 ‘50대 후반의 기혼자’와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는 나이가 53~54세이므로 50대들이 퇴직금을 포함한 목돈을 들고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다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50대에게 9038만원이 얼마나 큰돈인가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50대인 가구의 순자산(총자산-부채)은 3억4363만원이다. 이 중 9038만원을 사기 당했다면 순자산의 26.3%에 해당하는 돈이다. 내 노후에 1억원이 더 있을 때와 없을 때를 생각해 보면 1억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잘 가늠할 수 있다.
한두 번 사기를 당하고 나면 세상이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액수가 노후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정도라면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돈과 사람에게 속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 기회가 나한테 온다는 것은 로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예금금리가 1%대인데 누가 6~7%대의 투자 수익률, 그것도 확정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하면 그건 십중팔구 사기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6%의 확정 수익률이 가능하다면 은행에서 3%로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3%의 수익이 그냥 떨어지는 장사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쉽고 안전하면서도 많은 수익이 남는 장사가 어떻게 나한테까지 순서가 오겠는가?
그렇다고 금리 1%대의 은행예금에만 돈을 넣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투자를 하더라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어가면서 가능한 한 결정을 늦춰야 한다. 사기꾼들은 통상 희소가치를 들먹이는 동시에 특별히 당신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서 재촉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기꾼들은 엇비슷한 수법을 모방해서 우려먹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기저기 소문을 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슷한 수법에 사기당한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듣기 좋은 말로 당신의 과거와 이력을 부추길 때 발을 빼야 한다. 전문 사기꾼일수록 왜 하필 나일까에 대한 대답을 미리 다 준비해 오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도 이미 투자하고 있다고 할 때 의심의 눈초리를 더 세워야 한다. 유명 인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팔리고 있기가 십상이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투자액은 미미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기 당하지 않는 다른 대비는 경제와 금융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주식이나 펀드에 수백만 원, 많게는 수천만 원 정도 투자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너무 많은 돈을 주식이나 펀드에 넣어두면 그에 따른 스트레스 또한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여유분 중 일부를 넣어두고 말 그대로 여유만만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한 회사는 물론 그 회사가 속한 업종에 더해 경제동향과 전망, 뉴욕증시 등도 살펴봐야 할 과녁 속에 들어올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 신문이나 인터넷의 경제면을 꼼꼼히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촉만 세워도 절반 이상은 성공하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써먹은 명언(?)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자.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알고, 보통 사람은 보면 알고, 우둔한 사람은 당해야 안다.” 금융사기는 일단 당하고 나면 돈도 친구도 잃고 남는 것은 실망과 후회, 노후빈곤뿐이다. 금융사기든 창업사기든 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자 최상의 방책이다.
△ 최성환(崔聖煥)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은행 과장, 조선일보 경제 전문기자, 고려대 국제전문대학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상무, 은퇴연구소장 등 역임.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IT 분야를 공부하고 익히는 데도 특별한 비법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비법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여 실제로 익혀가는 것이다.
IT란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어로 오늘날 정보의 생산과 응용, 관리에 관련된 모든 기술을 말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광통신, 홈 네트워크 등 통신 기술과 컴퓨터 등 정보기술의 융합에 따른 정보 통신 기술의 핵심을 뜻한다.
직장 생활할 때 PC로 결재받고 결재하는 첨단의 업무를 큰 어려움 없이 해왔지만 이는 조직 속에서 틀에 박힌 업무만을 조직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수행 해왔던 것에 불과하였다.
막상 정년퇴직을 하고 동료직원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니 직접 익혀서 알아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PC를 통해 문장을 작성하려면 한글이나 MS 워드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대충이 아닌 철저히 익혀야 가능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표 작성이나 통계를 내려고 하면 일이 중단되곤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니어로서 혼자 사는 삶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IT 도움 없이는 적응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돼 IT 익히기에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당위성의 문제였다.
직장생활하면서 이럴 때 난관을 극복하는 비법은 익혀 알고 있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바로 구청에서 시니어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 한글 기초, 중급, 고급과정과 엑셀 초급, 중급과정에 등록해 차례로 익히기 시작했다.
한글은 어느 정도 타이핑이 가능했지만 다섯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속도감 있게 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기초부터 새로 다지기 시작하였다. 즉, ㅁ,ㄴ,ㅇ,ㄹ 부터 하나씩 자판을 익히기 시작해 보지 않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니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숙달이 되기 시작했다. 약 4개월 정도 국문과 영문을 함께 익히니 메일 수발신이나 문서작성에는 문제가 없게 되었다. 자판을 보지 않고 다섯 손가락을 움직여 PC상에서 문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PC의 자판을 익히는 것은 머리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기능의 문제라서 노력을 경주하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기본이 됐으니 다음에는 PC의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들을 배우기 사작하였다. 카페, 블로그 만들기 및 활용 방법을 통해 원하는 카페나 블로그 활동을 할 수 있어 글을 한 편씩 쓰고 올리는 것이 가능해 졌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사에서 시니어를 상대로 명예기자 선발이 있어 응시하여 합격하여 많은 좋은 기자 동료들을 만나고 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친구의 추천으로 SBS,유어스테이지 등에서 리포터 활동도 하게 되니 퇴직 후 나의 교우관계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확대되어 갔다.
뿐만 아니라 카페, 블로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진 저장법을 위시하여 포토스케이프 등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좀 더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식을 배워서 익히게 되었다.
이제 PC관련 된 업무는 어느 정도 자력으로 할 수 있게 되자 스마트폰 활용법에 대한 강의를 구청 및 시니어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웬만한 앱 작동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누가 스마트 폰 관련 물어보면 주눅이 들어 피하곤 하였지만 본 과정을 통해서 하나씩 익혀 나가니 누가 좀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자신감까지 생기게 되었다.
함께 배운 동료들 중 몇 몇 분은 아예 스마트 폰 활용을 위한 강의 팀을 구성하여 봉사활동을 시작하여 지금은 서울시내 아니 전국에서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는 스마트 폰 전문 강사들이 되었다. 여기서 내가 터득한 주요한 사실은 한 번 배우고 익힌 것을 계속 가르치고 익히면 전문가가 될 수 있으나 배운 후에 이를 활용하지 않으면 배운 것을 새까맣게 다시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배운 것을 다시 배워보지만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 외는 금방 다시 잊어버리게 되곤 하였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가까운 아내나 지인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배운 것을 정리해 두고 필요할 때 마다 꺼내서 익히는 것이다.
지금도 나의 PC나 USB에는 이러한 비법을 적어 놓은 나만의 재미있는 기술서가 들어 있다. 이름 하여 ‘하늘의 대화법’ 이다. 전혀 알 수 없는 사실을 공중에 떠 있는 이 비법을 통해 다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나의 꿈이었던 강의를 위해서는 파워포인트 PPT를 배워야 했다. 대학 졸업 당시 생활이 어려워 학계로 진출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국제계약의 이론과 실무, 대한민국 1%의 성공비법, 생활경제 이야기 등 내가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젊은 사람들이나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수하고 떠나는 것이 내 노년 삶의 계획이고 목표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니어들이 인생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다시 한 번 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 또한 갖는 것이다.
PPT를 배우다 보면 동영상 활용법을 함께 배우게 되어 시니어들이 노후의 삶을 정리하는 데도 아주 좋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PPT 자체의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Google 계정에서 드라이브를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되면 PPT를 클릭하여 강의를 할 수 있는 편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것 뿐인가? 별의 별 프로그램이 속속 개발되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도와주고 있다.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하면 전국에서 함께 들어가 마치 옆에서 함께 일하는 것처럼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일도 같이 할 수 있다.
알 마인드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자신의 인생계획이나 복잡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하는데 긴히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독서를 하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알 마인드를 활용하면 체계적으로 내용을 기록하여 기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요컨대 시니어들이 IT를 익히는 비법은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기본과정부터 하나씩 익혀 나가는 것이다. 만일 IT를 배우지 않았다면 도전하지 않았다면 시니어로 나의 삶은 결코 지금과 같이 Active한 삶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배우되 그것을 요약하여 언제든지 다시 익힐 수 있도록 저장하여 두고 필요할 때 다시 익히는 것이 어찌 보면 비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능한 기회를 만들어 배운 기술을 자주 실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 IT를 배워 나의 삶의 차원을 넓혀가는 첩경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IT는 세월과 같이 변화무상하게 발전하고 변화한다. 오늘 날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함께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IT의 장벽을 넘으니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SBA에서 창업닥터 교육을 받아 창업닥터로서 청장년 사업자들의 컨설팅을 하는 일 또한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런 일들은 IT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Senior5060 신 용 재
시니어 전직지원 전문 ‘앙코르 브라보노 협동조합(이사장 신창용)을 찾았다. 충정로 소재 이동교육장을 살피고 궁금한 점은 정운관 이사에게 질문하였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재동(73) 교육생에게 궁금점 몇개를 물어왔다.
△참가동기와 희망은 무엇인가.
“100세 장수시대라지만 50대 초반이면 은퇴가 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7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인생 재설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경험을 후세대와 공유하며 보람차게 살고 싶다. 청장년 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창업을 하고자 한다.”
앙코르 브라보노협동조합은 2015년 10월 13일 설립하였다. 조합원 11명은 20~30년 금융, IT,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40~60대 중장년으로 구성되었다. 사회적 경제, 전직지원, 상담 및 코칭 등 협업도 전문화 되었다.
△조합의 사업목적은 무엇인가?
“장년 퇴직(예정)자 및 경력단절 여성에게 인생후반 수입 뿐 아니라 개인적 의미, 사회적 가치를 만족하는 앙코르 커리어를 제공하고, 사회적 경제 기업에 진정성과 지식을 갖춘 앙코르 인재를 육성, 연결하는 것이다.”
△사업모델 및 상품, 서비스는 어떻게 특화되었는가?
“앙코르 커리어로의 전직지원, 전직지원 코치, 상담, 전문가 양성 및 커리어 전환을 위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현장중심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조합은 2015년 사회연대은행 KDB 시니어브리지를 시작으로 신나는조합, 사회적기업진흥원, 동부여성발전센터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회적기업가 육성, 취업과 전직지원전문가 과정을 운영한다.
전직지원 성공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조합원은 열정과 시간을 가진 퇴직자가 중심이다.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등 사회적 기업 중간관리기관과의 협약을 통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 전직을 연계하는 사업이 주효하다.”
△교육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영리 기업에서의 오랜 경륜은 살리되 새로운 일터, 사회적 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을 지시하던 과거와 달리 많은 것을 직접 해야 하므로 자기 역량 강화에 노력하여야 한다.”
정운관 이사는 장래 계획을 “한국의 선도적 사회적 기업으로서 특히 베이비부머의 안정적인 앙코르 일거리 찾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80년 만의 초여름 더위가 대지를 달구고 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시니어의 전직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바라며, 정운관 이사의 보충설명에 감사한다. 홈페이지: www.encorebravono.com
신대륙 미국도 더 이상 신세계가 아니다. 3억2000만 명의 인구 중 50세 이상이 1억900만 명으로 3분의 1을 넘어섰다. 인생 후반기를 맞은 미국의 신중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소망이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회원용 월간지 3월호에 신중년들이 지켜야 할 자산관리의 7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1. 돌발 상황에 대비하라
예기치 않은 일이 항상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가용 재원의 10% 정도는 언제라도 활용이 가능한 현금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좋다. 한 종목의 주식에 가용 재원의 5% 이상을 투자하거나 한 종류의 자산에 가용 재원의 20% 이상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배당금, 이자, 임대료 등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자산에 50% 이상을 투자하라. 주식(S&P) 투자 수익의 71%는 배당에서 나온다.
2. 꿈이 아니라 현실을 추구하라
큰 꿈과 야심으로 가득 찬 창업자들 중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자금도 현실에 잘 맞춰 관리해야 한다. 투자 수익을 지나치게 높게 예상하는 것은 금물이다. 원금이 사라지는 역모기지(주택연금)는 권장할 만한 자산관리기법이 아니다.
3. 건전한 피해망상증을 가져라
자산을 관리할 때는 항상 주위에 돈과 명성과 꿈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라. 자산관리 상담사, 변호사, 부동산 중개인 등과 같은 전문가라 하더라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의심스럽거나 자신 없는 거래는 아예 피하라
투자나 금전 거래를 할 때는 확실한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다. 투자나 거래를 하는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등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체면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하는 투자나 거래는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
5. 계산된 위험만 감수하라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어떤 위험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 경험했거나 잘 알고 있는 분야에 투자하라. 투자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이미 예상됐거나 과거 자료와 경험을 통해 파악된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
6. 어떤 것이라도 문의하고 협상하라
유선방송요금, 무선통신료, 병원비 등의 청구서가 왔을 때 자세히 문의하고 협의를 하다보면 요금을 낮추거나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경우가 많다. 흥정과 협상은 상대방을 현혹시키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손해를 피하거나 득을 볼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7. 경청하고 계속 배워라
거래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를 생각하라. 구입한 주택의 감정 가격이 당초 예상보다 낮게 나왔을 때, 가족이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겨 하는 수 없이 정기저축을 해지했을 때, 무언가 느끼고 배워야 한다. 성공한 사람은 이런 경험을 확실한 교훈으로 삼으며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알고 더 현명해져야 한다.
“문자와 동영상의 시대를 거쳐 가상현실(假想現實 · Virtual Reality, 이하 VR)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VR은 강력한 차세대 플랫폼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최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한 말이다. 삼성, LG, 소니, 애플, 구글, 페이스북, HTC 등 국내외 수많은 기업들은 2016 MWC에서 VR 전쟁에 출사표를 던지며 개발한 VR 기기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VR은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정도의 성장성을 지녔다. 기기뿐만 아니라 콘텐츠 개발에도 집중해 시장을 선점하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열린 임원회의에서 경영진에게 던진 메시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 ‘2016 콘텐츠산업 전망-10대 트렌드’에서 올해 콘텐츠 산업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현실처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의 본격화를 꼽았다.
‘VR 시장은 이제 황금알’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VR(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 선점을 위해 삼성전자, LG 등 국내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뿐만 아니라 애플, HTC, 소니,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전자 및 IT 업체들도 속속 VR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외 기업들의 VR 제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부터 교육, 스포츠, 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다양한 시·공간 자유롭게 체험
미국의 전산학자 재론 래니어가 1989년 처음 쓰기 시작한 VR은 이용자에게 원격현전(遠隔現前, telepresence)을 경험하게 해 주는 시뮬레이션 환경 즉 사용자가 컴퓨터 등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공간에서 실제 현실인 것처럼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집 안 거실에서 VR 기기를 쓰고 강원 평창 스키장에서 스키 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박대수 KT 경제경영연구 소장은 ‘ 2016 한국을 바꾸는 10가지 ICT 트렌드’에서 “VR 기술을 통해 다양한 시·공간을 자유롭게 체험할 수도 있다. 고생대로 이동하여 공룡을 마주하거나 심해에서 기이한 생물들과의 대면도 가능하다. VR은 체험 가능한 세계의 폭을 확장하는 미디어 화수분과 같다”고 분석했다.
1940년대 미국의 항공 산업에서 개발한 조종사 훈련을 위한 비행 시뮬레이터가 VR의 효시다. 이후 1950년대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 등이 VR 기술 개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VR은 몰입감과 현전감(presence) 등을 높이는 기기들의 개발 부진과 고가 장비, 그리고 콘텐츠 부족으로 대중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VR은 삼성전자, 애플 등 국내외 기업들이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디스플레이 기기인 HMD(Head Mounted Display)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제품을 본격 출시하고 360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등 주변 기기와 VR 영상 플랫폼이 양산되면서 VR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영화, 게임 등 일부 분야에 관련된 VR 콘텐츠만 제작됐으나 이제는 의료, 학습, 건축설계,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VR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VR 시장은 급성장하고, VR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영화·방송 등 대세가 된 VR
영국 투자은행 디지털 캐피털은 VR 기기 시장 규모가 2016년 40억 달러(4조8680억원)에서 2020년 1500억 달러(182조5500억원)로 4년 사이에 37배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대만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VR 시장(하드웨어+소프트웨어) 규모는 2016년 67억 달러(8조원)를 기록한 뒤 2020년에는 10배 이상 성장한 700억 달러(86조원)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V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전자는 VR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제휴를 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은 지난 2014년 VR 업체인 오큘러스를 20억 달러에 인수했고 삼성전자 역시 오큘러스와 제휴했다. 구글은 수만 원대 저가 HMD 기능을 구현한 ‘카드보드’를 발매하며 VR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대만 HTC, 중국 LeTV 등 중화권 기업들도 저가의 HMD제품인 ‘폭풍마경’ 등을 내놓고 VR 시장에 가세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강선도 부장은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소비자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양질의 VR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PC, 카메라 업체뿐만 아니라 IT 기업까지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VR 시장에 뛰어들면서 VR기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VR 콘텐츠도 속속 제작돼 이용자들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가상현실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실용적인 VR 기기와 콘텐츠가 속속 양산됨에 따라 의료, 쇼핑, 교육, 건설, 스포츠, 항공, 공연, 미디어,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와 방송, 미디어에서의 VR의 영향과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지난해 1월 열린 미국 선댄스영화제의 뉴프론티어 부문 상영작 14편 중 10개 작품이 VR에 기반을 둔 영화였고 VR 기술을 활용한 영화만 31개가 출품됐다. 또한, 모바일 앱으로 구현하는 VR 콘텐츠도 수십 개가 선보였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VR 영화 제작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VR 콘텐츠 업체인 버추얼 리얼리티 컴퍼니, VR 영화사 스토리 스튜디오 등이 VR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제 영화계에서는 VR 작품이 특별하고 신기한 볼거리가 아닌 하나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VR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 등도 VR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015년 11월 정기 구독자에게 VR로 뉴스를 볼 수 있는 구글 카드보드를 배송했다. 또한, 신문기사가 묘사하고 있는 현장을 독자가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VR 앱인 ‘NYT VR’을 개발했다. 뉴욕타임스가 처음 올린 VR 뉴스 콘텐츠는 내전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다룬 ‘난민(The Displaced)’이다.
뉴욕타임스뿐만 아니라 미국 통신사 AP와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 등도 VR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VR 콘텐츠 업체인 엠블러매틱 그룹은 지난 2014년 ‘프로젝트 시리아’라는 VR 뉴스 콘텐츠를 공개해 이용자들에게 시리아 내전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성공 여부는 질 좋은 콘텐츠에 달려
언론사의 VR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독자들은 뉴스를 단순히 보는 것에서 벗어나 뉴스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경험하는 방식으로 뉴스 소비패턴이 전환하고 있다.
방송사에서는 VR 방송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VR의 가장 큰 특성인 몰입감과 현장감을 방송에서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일부 방송사에서 VR 방송을 실험하고 있다. 미국의 VR 업체인 Next VR은 미식축구 경기와 대선후보 토론회 등을 VR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스포츠 경기 등 일부 프로그램을 VR 방송으로 제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VR 본격화로 가장 큰 변화가 일고 있는 분야가 바로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분야다. 미국의 VR 업체 보이드는 올 상반기까지 VR을 활용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VR 테마파크 ‘보이드 센터’를 건립한다. 이곳에서는 HMD 등 VR 장비 세트를 착용하면 시선의 변화, 동작, 터치가 VR 콘텐츠에 반영돼 몰입감과 생동감을 느끼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 호주에서도 지난해 ‘제로 레이턴시’라는 VR 테마파크가 개장됐다. 이곳에서는 이용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전개하는 게임 방식인 프리롬(Freeroam)장비를 활용해 생동감 있는 VR 게임을 즐긴다.
물론 VR을 일반인 누구나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일부 사람들이 VR 기기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착용하기 힘든 장비의 크기와 용량, 몰입감과 현장감의 부족, 기기의 비싼 가격 등도 개선해야 한다. VR 성공 여부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질 좋은 콘텐츠 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VR 시대가 성공적으로 만개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동안 영화, 게임 등 일부 분야에 관련된 VR 콘텐츠만 제작됐으나 이제는 의료, 학습, 건축설계, 관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VR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VR 시장은 급성장하고, VR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