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를 떠나고픈 8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영화 '봉오동 전투'
개봉 8월 7일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봉오동 전투 실화를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하나의 뜻으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독립군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영화 '김복동'
일정 8월 8일 내레이션 한지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의 여정을 그렸다. 그녀가 자신의 지난 고통을 드러내면서 되찾으려 했던 삶과 희망의 씨앗, 소녀상의 의미 등에 대해 들려준다.
◇ 영월 동강 뗏목축제
일정 8월 8~11일 장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동강둔치 일원
남한강 상류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으로 숱한 애환을 간직한 뗏목을 테마로 23회째 개최되는 행사다. 천혜의 자연 동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문화 탐방,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뮤지컬 '시라노'
일정 8월 10일~10월 13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독설의 대가이자 난폭한 검객, 그러나 사랑하는 이 앞에서만큼은 순수한 낭만을 지닌 한 남자 ‘시라노’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매력 넘치는 주인공의 유려한 화술에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지며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클래식 '정명훈&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일정 8월 18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그가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협주곡 23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한다. ‘하나 되는 코리아’라는 비전을 관객과 공유하며 ‘비창’으로 분단의 아픔을 위로할 예정이다.
◇연극 '오만과 편견'
일정 8월 27일~10월 20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전 특유의 매력에 유쾌함을 더했다. 성별과 연령, 직업 등 각기 다른 21명의 캐릭터를 단 두 명의 배우가 소화한다. 역할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의상, 소품의 변화가 극의 관전 포인트다.
“초등학교 때 발레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버지 사업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꿈을 접었어요. 부산의 한 클럽에서 파티플래너로 잠시 일할 때 외국인이 훌라춤 추는 것을 봤어요. 훌라춤 하면 이미지가 코코넛 브라에 뭔가 촌스러웠지만 그 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가르쳐주는 곳 어디 없나 찾다가 서울에 있는 훌라댄스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고. 그런데 궁금했다. 하와이도 한 번 다녀오지 않은 강사가 어떻게 하와이 전통춤을 가르치고 있는지 말이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하와이 사람이 추는 훌라댄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예술이지! 궁금해서 2009년도에 하와이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먼저 2주 정도 일정을 잡고 갔어요. 알아보려고요.”
그때 지금까지 한국에서 배웠던 훌라춤이 왜곡이 심하다는 알았고 결국 제대로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배울 채비를 하고 하와이로 떠났다.
“3개월 과정으로 훌라댄스 명장에게 배우려고 갔습니다. 일반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어떤 분이 ‘한국인은 유명한 사람들이랑 사진만 찍고 가더라? 우리는 그런 거 딱 싫어해’라고 하시더군요. 우리 문화를 어떻게 지켜왔는지 아냐고 하면서요.”
김주영 협회장이 하와이로 가기 전 궁금했던 것처럼 하와이 현지에서 훌라 명장에게 직접 사사한 정식 이수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 협회장은 10년 동안 하와이와 한국을 오가며 노력했고 2011년 훌라 명장 이수자 자격을 취득했다. 2015년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호놀룰루시립밴드의 초청을 받아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 앞에서 공연을 했다. 올해 메리 모나크 축제 무대에서는 하와이에서 제대로 배워 익힌 훌라춤은 물론이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전파했다.
“한국에서 훌라댄스를 가르치는 몇몇 분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하와이에서 유명한 선생에게 배웠다며 이름을 여러 명 써놓았더라고요. 그런데 하와이에서는 선생을 한 분 이상 두지 못하거든요. 선생들끼리 다 공개해요. 남의 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그걸 모르시는 거죠.”
절실한 마음을 담아 소중하게 배운 춤인데 어떤 이들은 가벼이 바라보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경계만 안 하신다면 우리나라에서 훌라댄스 가르치는 분들 많이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와이로 함께 가서 배우고도 싶어요. 실제로 워크숍도 한번 했어요. 무대 경험을만들어드리기도 했고요. 제가 하와이에서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것을 한국에서 훌라댄스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여름방학과 휴가가 시작되는 7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오페라 ‘텃밭킬러’
일정 7월 3~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남의 집 텃밭에서 훔친 작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그 가족의 우스꽝스럽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애달픈 사연을 담았다. 가족 구성원 캐릭터를 통해 부조리한 자본주의 사회 속 시민들의 현실적인 삶을 투영한다.
◇ 전시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일정 7월 9일~10월 27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이탈리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과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에서 대여한 287점의 에트루리아 보물들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종교, 제사,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그리스·로마 문명에 영향을 끼친 에트루리아인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
일정 7월 10일~8월 25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 손주와 함께 즐길 만한 공연이 시리즈로 마련됐다. 캐나다, 일본 등 국내외 우수 공연단체가 참여해 음악극 ‘아빠닭’, 무용극 ‘댄싱뮤지엄’, 그림자극 ‘루루섬의 비밀’ 등 3개 작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 축제 '2019 안양申필름예술영화제'
일정 7월 12~14일 장소 평촌 중앙공원, 평촌CGV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독립·예술영화 대표 영화제로, 축제 기간 42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개막식에서는 ‘별들의 고향’(1974)의 이장호 감독이 공로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더불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안양시가 선택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특별 상영된다.
◇ 뮤지컬 '맘마미아'
일정 7월 14일~9월 14일 장소 LG아트센터
2004년 국내 초연 이래 15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맘마미아’가 2019년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왔다. 원년 멤버인 최정원, 신영숙, 김영주, 남경주 등을 필두로 박준면, 서만석 등 새로운 얼굴들이 함께 화려한 무대를 장식한다.
◇ 영화 '나랏말싸미'
개봉 7월 24일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등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세종과 신하들의 갈등과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배우 송강호가 세종 역을 맡아 애민정신이 투철한 임금의 면모와 더불어 그동안 업적에 가려져 있던 ‘인간 세종’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수년째 폭염이 이어지고 있으니 일단 더위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말이다. 집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는 것도 좋지만 전국 각 지역의 더위를 잊게 해주는 축제에서 가는 세월을 즐겨보면 어떨까? 더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핫(?)한 여름을 책임질 전국 방방곡곡의 축제를 찾아봤다.
연재순서 ① 축제? 먹고 즐기자! ② 개운하게 한잔 촤악! 마시자 ③ 시원하게 솨악! 물놀이
사진 제공 각 지자체
시원하게 솨악! 물놀이
언제부턴가 여름이 되면 대한민국 전역은 온통 물의 도시로 변하는 것만 같다. 태국 물 축제인 송크란을 옮겨놓은 듯한 광경이 서울은 물론 다양한 지역에서 펼쳐져 더위를 잠시라도 잊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준다. 세부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한강몽땅축제’는 영등포구 한강공원과 수상 일대에서 7월 19일부터 8월 18일까지 한 달간 펼쳐진다. 물에 첨벙 뛰어들고 시원한 파도를 만끽하는 축제가 다양한 이벤트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보령 머드축제
머드(진흙)팩으로 유명한 보령시. 1996년 머드 화장품을 개발한 보령시는 2년 뒤 보령머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상품화에 성공한 보령머드 화장품과 대천해수욕장 및 주변 지역 관광명소를 홍보하기 위해 축제를 기획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나는 축제 마당이 됐다.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貝殼粉) 백사장을 자랑하는 대천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해수욕은 물론 머드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청정 갯벌에서 진흙을 채취해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는 가공 과정을 거친 뒤 생산된 머드분말을 이용해 머드 마사지(해변 셀프 마사지, 첨단 머드 마사지)를 할 수 있다. 머드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맨발로 체험을 해야 하니 잃어버려도 되는 신발을 신고 갈 것. 모자와 선크림도 꼭 준비한다.
기간 7월 19~28일 장소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머드광장 및 시민탑 광장
정남진 장흥 물축제
물로 시작해 물로 마친다는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올해 12회째. ‘젊음이 물씬, 장흥에 흠뻑’이라는 주제로 시원하게 한바탕 물놀이가 펼쳐질 예정이다. 시내에서 벌이는 거리 퍼레이드 ‘살수대첩’과 ‘지상 최대의 물싸움’, ‘황금 물고기를 잡아라’, ‘장흥 워터락 풀파티’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새로 도입한 ‘장흥 워터 그라운드’와 다양한 육상, 수상 이벤트도 열린다. 편백톱밥, 파라솔, 선베드 등은 해변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올해는 장흥 물축제를 대표하는 새로운 콘텐츠로 아쿠아 미니게임존, 휴게공간, 포토존 등을 마련했다. 장흥만의 민속문화인 고쌈줄당기기도 수중에서 펼쳐진다.
기간 7월 26일~8월 1일 장소 전남 장흥군 탐진강 및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
평창 더위사냥축제
2018동계올림픽 개최 도시인 평창. 올림픽만큼이나 이 고장을 알리는 축제가 있다. 바로 ‘더위사냥축제’. 작년 제1회 대한민국 빅 데이터 축제 대상에서 ‘지역경제 활성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할 만큼 관광객 유치는 물론 축제 참여자들의 선호도 조사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관광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땀띠귀신사냥 워터워’와 ‘광천선굴탐험’, ‘에어바운스 물놀이’ 등이 있다. 특히 광천선굴은 평창 더위사냥축제가 열리는 10일 동안만 개방된다. 동굴 입구까지 트랙터 마차를 타고 가 문화해설사에게 동굴 형성 과정과 전설 등을 들을 수 있다. 6600 여 m²의 해바라기 밭과 포토존, 우산의 거리, 코스모스 물안개 터널 등 조경 요소도 갖춰져 있어 걷는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하는 시니어에게 추천할 만하다.
기간 7월 26일~8월 4일 장소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땀띠공원 일원
이런 기분이었다. 시원하게 속이 뻥 뚫리고 세상이 진짜 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노곤한 몸을 일으켜 잠에서 깰 때까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왜 이 새벽에 뛰겠다고 모이는가 생각했다. 그 생각은 너른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푸르른 나무 사이를 지나다 햇살이 몽환적으로 몸을 감싸는 순간 사라진다. 아침에 달리는 느낌이 이런 것! 하루를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15년 한결같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게 됐다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바로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 제1주차장에서 호수공원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다가 금세 40명에서 50명으로 무리를 이룬다. 시간이 되면 빙 둘러서서 함께 몸을 풀고 뛸 준비를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벤치에 놓인 과일과 물을 나눠 마시고 난 뒤 대열을 맞춰 호수공원 트랙을 뛰기 시작한다. 매번 이렇게 모여 호수공원을 두 바퀴 뛰면 일정이 마무리된다. 말이 쉽지 일산호수공원 두 바퀴는 10km 코스를 의미한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에 만나서 어김없이 뛴다고 했다. 사실 런조이마라톤클럽은 일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동작구의 보라매와 여의도, 잠실 등지에서 먼저 생겨났고 일산은 마지막에 조직됐다. 게다가 꽤 유명한 마라토너가 창단한 클럽이라고 이희준 훈련감독이 말했다.
“이 클럽은 이홍렬 감독님이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담아 ‘뛰는(RUN) 기쁨(JOY)’이란 이름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년 동안 넘어서지 못하던 2시간 15분대의 벽을 1984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1초 앞당겨서 깨신 분입니다. 국가대표도 오래하셨고 마라토너 출신 첫 체육학 박사이십니다. 저도 감독님께 배웠죠.”
특히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 받은 혜택이 있다면 이홍렬 감독이 초창기부터 꽤 오랜 시간 일산에 거주했다는 것. 다른 지역 클럽은 애써 찾아갔다면 일산은 매번 와서 함께 훈련하고 뛰었다. 바탕이 튼튼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회원들이 찾아온다고. 매주 이렇게 모여서 뛰면서도 줄곧 하는 얘기는 또 마라톤 이야기다. 회원들은 자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 뛰고 나면 다 같이 몸을 푼다. 15년 된 초창기 회원도 매주 나와 뛰고 있고 적게는 3년,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이곳에서 마라톤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 많다.
사뿐히 뛰는 아름다운 꽃중년 미녀들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혜경 씨는 이곳에서 10년째 뛰고 있는 베테랑 중 한 명. 취재를 할 때도 뛰면서 이야기하자고 할 정도로 자신감과 활기가 넘쳤다. 팔다리가 길고 여린 체구의 그녀에게 “요즘은 여자들을 위한 실내운동이 많은데 왜 마라톤을 선택했냐”고 묻자 참 단조로운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거든요. 나중에 지인들이 뼈가 부러질 거라면서 말리더라고요. 물론 여자로서 꺼려지는 게 있죠. 햇빛에 노출되어 주근깨도 생기고 피부 걱정이 돼요. 그런데 야외에서 뛰다 보니까 실내운동은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매일매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과 호흡하면서 뛰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7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뒤 1년 쉰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호수공원 트랙을 돌고 있다. 덕분에 남들이 걱정하는 골밀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완전 정상이에요. 갑상선암 수술하면 골밀도가 문제라던데 저는 전혀 그런 거 없고 지금은 갑상선 약도 끊었어요. 마라톤 덕을 확실히 봤죠.”
긴 머리 휘날리며 호수공원을 뛰는 또 한 명의 미녀가 있다. 올해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정경화 씨다.
“작년에 개띠 선배님들이 보스턴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으셨다며 자꾸 바람을 넣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자 2기가 꾸려졌습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는 42.195km 풀코스밖에 없어요. 그런데 진짜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감동이 있어요. 동네가 온통 축제 분위기이더라고요. 다들 손 흔들어주고요. 첫발부터 결승점까지 계속 감동이에요. 눈물 날 것 같았어요.”
마라톤 경력 3년, 과감한 도전을 하고 감동까지 만끽하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눈빛이 촉촉하게 빛났다.
팔순잔치 삼아 참가한 보스턴마라톤대회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이명희 씨다. 이 모임의 최고 연장자이지만 열정만큼은 20대를 방불케 하는 인물. 젊은 회원들하고 뛸 때도 뒤처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8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리 근육도 단단해 보였다. 그의 마라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작년에 참가했던 제122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정경화 씨가 언급한 58년 개띠들과 함께 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80세였거든요. 그걸 기념하고 싶었어요. 마침 회원 들 중 작년에 환갑을 맞이한 58년 개띠들이 보스턴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가겠다고 했죠. 생일은 6월인데 팔순 기념으로 4월 말 보스턴에 다녀왔죠. 제가 참가했던 첫 마라톤이 2005년에 열린 ‘보스턴제패기념마라톤대회’였거든요. 그때부터 보스턴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뤘죠.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완주는 했습니다.”
현역 시절 공인노무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 뒤 일산 신도시로 들어오면서 그의 마라톤 인생이 시작됐다.
“2004년부터 였으니까 우리 클럽이 생기기 전부터 뛰었습니다. 일산에는 65세에 이사 왔어요. 그때 제 눈에 운동할 만한 곳이 호수공원밖에 없어서 매일 나왔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런조이마라톤클럽이 회원을 모집하더라고요.”
이제 정말 마라톤 은퇴를 생각한다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팔십 먹어 마라톤 하면 사람들이 욕해요. 죽으려면 집에서 죽지 미쳤다고 길거리에 죽냐고요.(웃음) 금년까지는 뛰고 싶습니다. 하프 코스에서 10km로 조금씩 줄여나가야죠. 이제는 좀 힘들어요.”
15년을 함께 뛰다 보니 기념일도 챙긴다. 매년 6월에 있는 클럽 창립 기념일에는 환갑을 맞이하는 회원들을 위해 ‘환갑 마라톤’을 연다. 올해는 정년퇴임을 하는 회원과 함께 양평으로 가서 뛸 예정이다. 혹시 마음속에 질주 본능이 있다면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으로 나가보시라.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빨간색 체크남방, 모자, 장갑, 그리고 빨간 무늬가 돋보이는 허름한 백팩은 세상 밖으로 나서는 노인의 ‘전투 복장’이다. 매일 아침 86세 노인은 누가 떠밀기라도 하듯 밖으로 나간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1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 당일뿐이다.
노인은 이른 아침 배달되는 신문을 보고 그날의 행선지를 결정한다. 마침 5월이라 이곳저곳 축제와 행사가 많아 갈 곳이 많다. 광화문, 서울역, 기차 타고 춘천, 인천에 있는 섬 등. 물론 일주일 중 일정을 정해둔 요일도 있다. 수요일은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소래 포구를 가고 금요일은 약재를 사러 부인과 경동시장을 간다. 토요일은 쇼핑 하러 마트에 가고 일요일은 산을 찾는다.
걸음도 힘들고 위암 수술 휴유증으로 조금만 배가 고파도 쓰러질 듯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나가는 이유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다. 노인은 “아직도 볼 것이 너무 많고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다”고 한다. “아까운 시간에 집에 왜 있냐?”고 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늙어감에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어느덧 ‘시니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나도 삶을 아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용기있고 열정적으로 매일 세상 밖으로 나서는 저 노인의 딸이기 때문이다.
초록이 드리우는 6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축제) 고성 하늬라벤더팜 라벤더 축제
일정 6월 1~23일 장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꽃대마을길 175 하늬라벤더팜
매년 6월이면 고성 하늬라벤더팜에는 라벤더가 만개해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 이번 축제는 라벤더 수확 체험, 피자 만들기 등 허브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 행사로 운영된다. 라벤더 향수 추출 시연, 향기 음악회, 포토 콘테스트 등 오감 만족 이벤트도 열린다.
(공연) 운당여관 음악회
일정 6월 4~20일 장소 서울돈화문국악당
운당여관은 조선시대 후기 전통 한옥으로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 시절의 운당여관을 추억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이 펼치는 음악회다. 행사기간 매일 다른 국악 예술인이 여관 주인이 되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
(전시) 그리스 보물전
일정 6월 5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그리스 유명 박물관들이 소장한 보물 총 350여 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황금의 시대 미케네,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고 금의환향한 아가멤논, 동방 원정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서구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축제) 2019 고창 갯벌 축제
일정 6월 7~9일 장소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애향갯벌로 320 만돌갯벌체험장 일원
2010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고창 갯벌.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하는 이곳에서 축제 동안 자연생태체험과 전통어로방식을 경험해볼 수 있다.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버스로 갯벌 위를 달리며 색다른 추억도 쌓을 수 있다.
(전시) 베르나르 뷔페展
일정 6월 8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구상회화와 거친 느낌의 인물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베르나르 뷔페. 생전에 프랑스의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올’이 초상화를 부탁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한국에서 처음 여는 단독 대규모 회고전으로 4m가 넘는 대형 작품을 포함해 유화 작품 92점을 선보인다.
(클래식) 야성적인 로맨티시즘의 거장, 라흐마니노프
일정 6월 12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크고 두꺼운 손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힘찬 고난도 작품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선 국제 콩쿠르대회 다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타라소프와 지휘자 성기완이 이끄는 ‘밀레니엄 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주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싱그러운 5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공연) 나빌레라
일정 5월 1~12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강상준, 이찬동, 진선규, 최정수 등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다음(Daum)’ 웹툰 연재 순위·독자 평점 1위에 오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발레를 소재로 청년과 노인의 교감과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세대 간 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축제) 제45회 보성다향대축제
일정 5월 2~6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보성차밭 일원)
보성다향대축제는 영화 및 CF 촬영지로 유명한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사진촬영대회, 녹차요정 퍼포먼스, 녹차 스탬프 투어, 화관 상상 무도회 등의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외 녹차비누·녹차향초 만들기,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잔디공원에는 관광객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린티 쉼터’도 마련돼 있다.
(콘서트) 2019 조수미 콘서트 ‘Mother Dear’
일정 5월 8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늘 재미있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인다. ‘맘마미아’, 이탈리아의 어머니 노래, 한국의 창작가곡 등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겸 기타리스트인 ‘페데리코 파치오티’도 함께한다.
(오페라) 오페라가 들리는 48시간 이탈리아 여행
일정 5월 12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소프라노 홍혜란, 테너 최원휘, 해설 김문경
휴양의 도시이자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 위주로 구성되며 해설자 김문경이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 5개 지역 명소를 소개하며 숨은 이야기도 들려줄 예정이다. 따스한 봄, 낭만적인 음악 여행을 떠나보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일정 5월 17일~7월 14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홀) 출연 김소현, 김우형 등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주인공 ‘안나’를 통해 보편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실제 스케이트장 같은 무대 연출, 원작 공연에 출연한 러시아 스케이터도 참여해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페라) 가족과 함께하는 금난새의 오페라 이야기
일정 5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금난새, 김순영, 김성현, 유동직 등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를 ‘콘서트오페라’로 특별 구성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콘서트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금난새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에 빠져보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클래식) 2019 교향악축제
일정 4월 2~21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17개 국내 교향악단,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
이번 공연의 부제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릴 젊은 협연자들이 교향악단과 동행한다. 또한 국내에서 초연되는 블로흐의 교향곡 ‘C#단조’도 감상할 수 있다.
(연극) 패왕별희
일정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출연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과 대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싱궈(吳興國)가 중국의 대표 경극 희곡 ‘패왕별희’를 창극화했다. 동명의 영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패왕별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공연) 이사오 사사키 벚꽃 낭만
일정 4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이사오 사사키, 마사츠구 시노자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브리 영화 OST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와 함께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 그림책NOW
일정 4월 12일~7월 7일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5관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미디어아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다양한 표현과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 1844개 작품이 응모한 2019 나미콩쿠르의 수상작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축제) 태안 세계튤립축제
일정 4월 13일~5월 12일 장소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플라워파크
태안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튤립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아신스, 겹벚꽃 등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3만5000평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LED 빛이 반짝이는
야간 축제장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2019
일정 4월 26일~5월 12일 장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축제이자 국내 유일의 화훼 전문 박람회다. 실내정원과 야외 테마정원, 문화 공연 프로그램, 화훼 직판장 등이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원당화훼단지’와 이원 개최된다. 박람회장에서 화훼 단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 견학,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배우는 여배우다. 자신감 가득한 눈빛과 표정은 기본,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대사 연습은 또 얼마나 많이 했을까. 대본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메모를 보니 지금까지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간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70대인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만났다. 설렘과 벅찬 감동. 무대는 그들에게 언제나 꿈이다.
구로구를 대표하는 시니어 극단
구로문화재단 아트벨리 지하 소강당, 매주 화요일은 정기적으로 구로 시니어 연극 동아리 ‘느티나무 은빛극단’이 모이는 날이다. 지금까지 함께 작품을 해온 세월도 11년째. 2007년 구로문화재단이 설립되고 1년 뒤 시니어 연극 동아리가 생겨난 것이 느티나무 은빛극단의 시초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다는 재단의 뜻이 컸다. 마침 설립 당시 구로구민회관에서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그곳에서 교육받던 시니어를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해 창단 당시 20여 명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작년 입단한 신입 배우 우성연(66) 씨를 포함해 현재 13명이 정식 단원으로 활동한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70대라지만 시민극단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2018년 제1회 영동생활시민연극제 초청 공연과 함께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서울시민연극제에서 2016년과 2017년 각각 무대에 올린 ‘어미’와 ‘우당탕탕, 이사 왔어요!’로 2회 연속 시상대에 오른 바 있다. 느티나무 은빛극단이 아마추어 연극계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는 데에는 구로문화재단의 뒷받침이 있다. 단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연극에 필요한 전문 강사를 초빙해주고, 연극 연습이 있는 날이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소강당도 빌려준다.
육십 넘어 찾은 재능
느티나무 은빛극단 단원들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출석률. 정기적인 만남은 당연하고 연극 공연을 앞두고 거의 매일 일정이 잡혀도 밤이고 낮이고 제시간에 맞춰 연습 장소에 전원이 모인다. 이유는 단 하나,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연극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신정례(73) 씨는 느티나무 은빛극단에서 연극을 하면서 우울증이 싹 나았다며 밝게 웃었다. 구로구 토박이이자 극단 최고 연장자인 안영분(81) 씨는 어릴 적 못다 이룬 꿈을 이뤘다고 했다.
“구로구청 뒤가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세 자매 중 막낸데 언니들이 마차 4개를 붙여놓고 학예회를 하는 것처럼 공터에서 뭔가를 하는 거예요. 언니들이 노래를 부르면 저는 그 옆에서 엉덩이를 막 흔들고 춤을 췄습니다. 공부는 잘 못해도 남들 앞에 서서 하는 건 잘했어요. 동네 아이들한테 무용도 가르치고 나름 공연도 했고요. 중학교 때는 청춘극단 단원이었던 동네 오빠를 따라다녔어요. 당시 유명했던 영화 ‘별들의 고향’을 연극으로 만들어 지금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자리에 있었던 제5보충대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15세였는데 아버지가 그만두라고 해서 배우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얌전하게 지내다가 스무 살에 결혼해서 살던 그녀가 바깥 활동을 시작한 건 환갑이 넘어서였다.
“처음에는 구로구민회관에서 노래를 배웠고요. 그 인연으로 연극까지 하게 됐어요. 1년에 한 작품씩은 꼭 하니까 너무 좋아요. 그래서 늙지 않나봐요.(웃음)”
창단 멤버인 이필연 씨는 구내 복지관에서 연극을 하다가 창단 소식을 듣고 입단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새롭게 발견한 이도 있다. 2012년에 입단한 강정자(75) 씨는 지금까지 연극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생각도 못했는데 우연히 알게 되었고 용기를 냈습니다. 와서 보니까 이렇게 좋은 인연들도 만나고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참 내성적인데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어요. 대사 외우는 게 치매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가족들도 좋아합니다.”
양양례(72) 씨도 이렇게 뒤늦은 나이에 연극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다고 말한다.
“안영분 씨가 어느 날 같이 가자고 했어요. 한 번도 연극을 해본 경험이 없다 했더니 공부하면 다 할 수 있다 하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이 된 지가 벌써 10년입니다. 살면서 슬프고 힘든 시간도 있었는데 연극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 오면 마냥 즐거워요.”
서막동(78) 씨는 식당 운영을 잠시 쉬고 있을 때 느티나무 은빛극단 공연을 보러 왔다가 배우가 됐다. 벌써 11년 차 베테랑이다.
“경남 하동 화개장터 쪽이 제 고향인데 연극을 한 번이라도 봤겠어요? 처음에는 떨렸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다른 복지관에서도 연극을 합니다. 가끔 연기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요.”
다양한 사연이 연극으로 모여들다
이곳에서 배운 실력을 봉사활동에 연계하는 단원도 있다. 성모병원 과 마포요양원 등에서 봉사를 해온 임절자(77) 씨다.
“봉사활동한 지는 21년 됐어요. 처음 배울 때는 인형극을 했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날은 연극하듯 어르신들과 얘기해요. 우리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엄마는 정말 열정적으로 산다고요. 연극은 인생 같아요. 굴곡지고 희로애락도 있잖아요.”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다는 안옥희(73) 씨는 직장에 다니는 막내딸의 육아를 책임져줄 생각에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한 것이 계기가 돼 연극을 하게 됐다.
“손주 육아와 함께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다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그동안 극단 작품 ‘산불’과 ‘어미’에도 출연했습니다. 제가 원래 남자 전문 배우인데 요즘은 연출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느티나무 은빛극단에는 남자 배우가 없다. 주로 안옥희, 안영분 씨가 남자 역을 맡는다. 한봉애(66) 씨와 임절자 씨도 남자 역으로 무대에 선 적이 있다고. 처음에는 남자 배우도 있었지만 남자 단원의 출석률이 점점 떨어져 여배우 극단이 됐다.
극훈도 있다. “우아하고, 멋있고, 겸손하자”이다. 죽을 때까지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설 것이라는 느티나무 은빛극단. 2월까지는 휴식시간을 갖고 3~4월 중으로 올해 무대에 올릴 작품을 고를 예정이다.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기억하시라. 한 명, 한 명 연륜에서 우러나온 귀한 열정을 조명 불빛 아래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mini interview◆
‘여성 리더십’으로 우아하게 극단을 이끌다, 느티나무 은빛극단 대표 이정란
목소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 느티나무 은빛극단의 이정란(78) 대표는 소녀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려서부터 무용을 했죠. 굉장히 잘했어요. 배우도 해볼까 생각해본 적 있는데 집안 반대로 못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 결혼을 했다. 남편은 살림하면서 아이 잘 키우는 아내를 원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맞이한 여유로운 시니어의 삶. 부부가 함께 노후를 잘 보내는가 싶었는데 남편이 10여 년 전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우리 집 양반 돌아가시고 나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지역 신문을 들춰보다가 인형극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첫 번째 등록자였어요. 그때부터 연극하고 인연이 됐습니다.”
구로문화재단이 시니어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보자며 이정란 대표에게 제안을 했다.
“재단에서 시니어 극단을 만들자고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어 했던 거였거든요.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 생길 극단을 홍보했어요.”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알릴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고 관심 있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열정을 불태웠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이 들면 다들 한 고집하잖아요. 지금까지 모르던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만났으니 무조건 감싸고 서로를 보듬자고 생각했어요. 공연 연습을 할 때 혹시 따라오지 못하는 분에게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함께 공부도 하고요.”
극단을 이끌던 지난 11년 동안 지각, 결석, 조퇴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이정란 대표. 독하고 무섭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우리 극단 단원은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와요. 나간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고 싶다고 해도 냉정하게 잘랐어요. 너무한가요?(웃음)”
대본 외울 때가 제일 즐겁다는 이정란 대표. 대사를 다 외우고 난 다음에는 단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다들 너무 잘하셔서 보람을 느껴요. 강사들도 다 딸 같은 사람들이지만 깍듯하게 대우합니다. 단원들 출석률은 칭찬받을 만큼 좋고요. 참 2011년도에 극단 이름을 공모했는데 제가 응모한 아이디어가 채택됐어요. 느티나무는 구로를 상징하고 은빛은 시니어를 의미합니다.”
이 대표는 최근 또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복화술이다.
“연극과 구연동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우는 겁니다. 나는 나이 먹어서 못한다는 소리를 안 해요. 자존심 상해서요. 우리 며느리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롤 모델이라고. 나처럼 늙고 싶대요. 항상 도전하는 정신으로요. 연기는 ‘80세까지만 하자!’ 했는데 벌써 팔십이 다 되어가네요. 대본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무대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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