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체크남방, 모자, 장갑, 그리고 빨간 무늬가 돋보이는 허름한 백팩은 세상 밖으로 나서는 노인의 ‘전투 복장’이다. 매일 아침 86세 노인은 누가 떠밀기라도 하듯 밖으로 나간다. 그가 집에 있는 날은 1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 당일뿐이다.
▲서울장미축제장을 찾은 노인(이정순 동년기자)
노인은 이른 아침 배달되는 신문을 보고 그날의 행선지를 결정한다. 마침 5월이라 이곳저곳 축제와 행사가 많아 갈 곳이 많다. 광화문, 서울역, 기차 타고 춘천, 인천에 있는 섬 등. 물론 일주일 중 일정을 정해둔 요일도 있다. 수요일은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소래 포구를 가고 금요일은 약재를 사러 부인과 경동시장을 간다. 토요일은 쇼핑 하러 마트에 가고 일요일은 산을 찾는다.
▲빨간 무늬의 가방(이정순 동년기자)
걸음도 힘들고 위암 수술 휴유증으로 조금만 배가 고파도 쓰러질 듯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나가는 이유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다. 노인은 “아직도 볼 것이 너무 많고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다”고 한다. “아까운 시간에 집에 왜 있냐?”고 한다.
▲지하철타러가는 노인(이정순 동년기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늙어감에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어느덧 ‘시니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나도 삶을 아주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용기있고 열정적으로 매일 세상 밖으로 나서는 저 노인의 딸이기 때문이다.
▲외출하는 노인(이정순 동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