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인구 2000만 명 시대를 앞둔 지금, 해외여행은 곧 생활이 되었다. 이제 여행지에서의 에티켓은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런데 해외의 명소를 찾다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여행자들의 행동을 아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들의 꼴불견,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수호 여행 작가 (52개국 200도시 방문. 현직 여행기자&작가) lsh5755@naver.com
◇ 새치기
최근 해외여행 가격비교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치기가 해외여행 꼴불견 1위에 꼽혔다. 유명한 관광 명소 입장은 물론 레스토랑, 대중교통 탑승때 몇몇 여행자들의 새치기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 명이 자리를 선점한 뒤, 십여 명의 일행이 우르르 합석하는 등 수법도 각양각색. 뒷줄에 서 있던 이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무더운 땡볕 아래 10명씩 입장할 수 있는 대형 관람차 탑승을 앞두고 있는데, 단체 새치기족 때문에 한 타임 더 기다리게 될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보다 ‘나 하나 때문에’라는 생각이 더 먼저가 아닐까.
◇ 낙서로 도배된 유적지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옥상, 페루 마추픽추의 석벽,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 등은 여행자들이 꿈꾸는 명소이자 감동과 매혹의 역사를 지닌 유적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여행자가 다녀가는 곳답게 그들의 흔적 또한 상당하다. 여행자들이 유적 곳곳에 남겨놓은 낙서는 전 세계적인 골칫덩이다. 이것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유수의 명승지에서 한글 낙서도 심심찮게 발견되기 때문. 파리의 얼굴 에펠탑 전망대에서도 한글 낙서는 쉽게 발견된다. ‘언제 누구누구 여기 왔다 감’, ‘철수♥영희’와 같은 낙서가 대부분. 벽에 낙서하는 시간에 잘 찍은 기념사진 한 장을 더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해 보인다.
◇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행위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도서관은 나라를 막론하고 절대 정숙해야 하는 공간이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성당,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같은 곳은 유명한 장소이기 전에 그 나라의 공공기관이다. 유럽의 유명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다 보면 심하게 떠드는 여행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몇 단체 여행자들의 경우 떠드는 수준이 고성방가에 가까울 때도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 21세기에 성숙한 관람 문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 다른 종교를 인정할 줄 아는 자세
해외여행자 가운데, 선교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자도 있다. 취지는 좋지만, 일부 독실한 종교인들의 선을 넘는 행동은 다소 위험한 상황을 촉발할 우려가 있다. 기독교 여행자들이 중동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불교 여행자들이 유럽의 유명 가톨릭 성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행위 등. 이러한 행동은 현지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특히 과격한 이슬람교도가 많은 이집트, 이란, 요르단, 터키 등으로 선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다른 종교를 인정할 줄 아는 자세 또한 가져야 한다.
◇ 세계 어디서나 자연보호
인류의 무분별한 환경파괴는 서서히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중부 아프리카의 사막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아름다운 남국의 낙원 몰디브는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파괴 문제가 큰 이슈인데, 세계적인 자연 명소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터키의 파묵칼레,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 지형 곳곳은 여행자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칠레의 파타고니아 지역은 여행자가 버린 담배꽁초로 인해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고, 복원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여행자들이 달라져야 한다. 여행지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오고 꽃이나 나무를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멋진 대자연을 다음 세대에도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 봄에 교보생명이 운영하는 광화문글판에 새로 게시된 시는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입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이런 시입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 석 달 동안 봄과 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시의 전문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함민복의 시도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전문은 이렇습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꽃 지는 봄 산처럼/꽃 진 봄 산처럼/나도 누군가의 가슴/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광화문글판은 원문에서 두 행을 줄이고 ‘나도’와 ‘한번’도 뺀 것입니다. 봄철에 맞는 글을 올리다 보니 부득이 꽃이 지는 대목을 뺀 것이지만, 시의 전체 의미는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함민복의 시가 말하는 것은 꽃은 피기 전과 피었을 때는 물론, 질 때와 완전히 졌을 때 등 사계절 내내 사람을 울렁이게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이미 마흔의 나이입니다! 울렁이는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기다림과 설렘, 꽃이 피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울렁이지만 꽃이 지기 시작하면 애달픔과 안타까움, 꽃이 지고 나면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까 꽃은 피어 있든 이미 져버려 내 마음속에 있든 언제나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설레게 하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봄이 오는 즈음에 나태주 시인은 ‘3월’이라는 시에서 ‘어차피 어차피/3월은 오는구나/오고야 마는구나//2월을 이기고/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돌아와 우리 앞에/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하략)라고 했습니다. 이성부 시인의 표현처럼 봄은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봄은 꽃의 계절입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꽃’이라는 글자는 그야말로 꽃 같습니다. 우리말에서 중요한 것은 산 달 별 물 해 글 술 말 길 밥 돈 책 눈 귀 손 낮 밤, 이렇게 다 한 글자로 돼 있는데 꽃은 그 모양까지도 꽃을 닮았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저마다 하나의 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글판의 문구로 함민복의 시를 고른 교보생명 관계자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성찰해 보고,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선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에 나오는 대로 사람을 분류하면 피기 전의 꽃인지, 핀 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꽃인지, 이미 져버린 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나는 누구에게 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꽃 이야기를 하면서 김춘수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춘수의 꽃을 넘어서는 노래가 없을 만큼 이 시는 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배하고 흡수하고 거의 통일했습니다.
꽃이라면 김춘수입니다. 진달래꽃이라면 김소월, 국화라면 도연명과 서정주, 매화라면 이퇴계, 모란이라면 김영랑, 접시꽃이라면 도종환, 새라면 박남수, 해라면 박두진, 달이라면 이태백, 별이라면 윤동주, 청포도라면 이육사, 바위라면 유치환, 사슴이라면 노천명, 연탄재라면 안도현, 이렇게 빼어난 시인들은 저마다 하나의 사물과 자연을 시를 통해 오로지함으로써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인이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시인일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소논문 ‘작가와 몽상’(1908년)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시인이 숨어 있고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 마지막 시인도 사라집니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하는 시를 썼습니다. 꽃이 피는 봄에는 이런 생각을 더 할 법합니다.
그러니 꽃이든 새든 별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나의 감성과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시구를 암송하고 적절한 시·공간에 이를 활용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순이 넘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백세의 나이로 시집을 내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로 죽은 시인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함민복의 시에 나온 것처럼 어떤 일과 사물의 이면과 양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생과 사가 있듯이 꽃이 피면 지는 때가 있고, 해가 뜨면 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같은 비인 것 같아도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철의 다스하고 부드러운 비가 있는가 하면 다 된 농작물을 망치는 차갑고 심술궂은 비도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의 사이와 그 경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몰연도가 불분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송한필(宋翰弼)의 ‘우음(偶吟)’이라는 시를 읽어 봅니다.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가련하구나, 봄날의 일이여/비바람 속에 왔다가 가는구나.’
비와 바람 사이에서 꽃의 한 생명이 끝났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를 표현한 앞의 두 행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명구로 꼽힙니다.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송한필은 아버지의 신사무옥(辛巳誣獄) 고변이 무고로 드러남에 따라 가족들이 모두 노비가 되었고 그의 행적도 묘연해진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쓴 건지, 일종의 조짐으로 저도 모르게 이런 노래를 지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개화도 낙화도 알고 보면 모두 한순간의 일입니다.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말한 ‘찬란한 슬픔의 봄’인 것일까요.
이 꽃피는 계절에 조지훈의 낙화를 함께 읽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볼 것, 모든 사물과 일의 양면을 볼 것. 피어난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지게 됩니다. 낙화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개화를 볼 수 있어야만 꽃의 아름다움과 중요함이 더 커지고, 모든 것들이 나에게로 와서 새로 꽃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봄에 교보생명이 운영하는 광화문글판에 새로 게시된 시는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입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이런 시입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 석 달 동안 봄과 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시의 전문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함민복의 시도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전문은 이렇습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꽃 지는 봄 산처럼/꽃 진 봄 산처럼/나도 누군가의 가슴/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광화문글판은 원문에서 두 행을 줄이고 ‘나도’와 ‘한번’도 뺀 것입니다. 봄철에 맞는 글을 올리다 보니 부득이 꽃이 지는 대목을 뺀 것이지만, 시의 전체 의미는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함민복의 시가 말하는 것은 꽃은 피기 전과 피었을 때는 물론, 질 때와 완전히 졌을 때 등 사계절 내내 사람을 울렁이게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이미 마흔의 나이입니다! 울렁이는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기다림과 설렘, 꽃이 피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울렁이지만 꽃이 지기 시작하면 애달픔과 안타까움, 꽃이 지고 나면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까 꽃은 피어 있든 이미 져버려 내 마음속에 있든 언제나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설레게 하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봄이 오는 즈음에 나태주 시인은 ‘3월’이라는 시에서 ‘어차피 어차피/3월은 오는구나/오고야 마는구나//2월을 이기고/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돌아와 우리 앞에/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하략)라고 했습니다. 이성부 시인의 표현처럼 봄은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봄은 꽃의 계절입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꽃’이라는 글자는 그야말로 꽃 같습니다. 우리말에서 중요한 것은 산 달 별 물 해 글 술 말 길 밥 돈 책 눈 귀 손 낮 밤, 이렇게 다 한 글자로 돼 있는데 꽃은 그 모양까지도 꽃을 닮았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저마다 하나의 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글판의 문구로 함민복의 시를 고른 교보생명 관계자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성찰해 보고,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선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에 나오는 대로 사람을 분류하면 피기 전의 꽃인지, 핀 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꽃인지, 이미 져버린 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나는 누구에게 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꽃 이야기를 하면서 김춘수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춘수의 꽃을 넘어서는 노래가 없을 만큼 이 시는 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배하고 흡수하고 거의 통일했습니다.
꽃이라면 김춘수입니다. 진달래꽃이라면 김소월, 국화라면 도연명과 서정주, 매화라면 이퇴계, 모란이라면 김영랑, 접시꽃이라면 도종환, 새라면 박남수, 해라면 박두진, 달이라면 이태백, 별이라면 윤동주, 청포도라면 이육사, 바위라면 유치환, 사슴이라면 노천명, 연탄재라면 안도현, 이렇게 빼어난 시인들은 저마다 하나의 사물과 자연을 시를 통해 오로지함으로써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인이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시인일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소논문 ‘작가와 몽상’(1908년)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시인이 숨어 있고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 마지막 시인도 사라집니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하는 시를 썼습니다. 꽃이 피는 봄에는 이런 생각을 더 할 법합니다.
그러니 꽃이든 새든 별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나의 감성과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시구를 암송하고 적절한 시·공간에 이를 활용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순이 넘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백세의 나이로 시집을 내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로 죽은 시인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함민복의 시에 나온 것처럼 어떤 일과 사물의 이면과 양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생과 사가 있듯이 꽃이 피면 지는 때가 있고, 해가 뜨면 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같은 비인 것 같아도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철의 다스하고 부드러운 비가 있는가 하면 다 된 농작물을 망치는 차갑고 심술궂은 비도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의 사이와 그 경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몰연도가 불분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송한필(宋翰弼)의 ‘우음(偶吟)’이라는 시를 읽어 봅니다.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가련하구나, 봄날의 일이여/비바람 속에 왔다가 가는구나.’
비와 바람 사이에서 꽃의 한 생명이 끝났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를 표현한 앞의 두 행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명구로 꼽힙니다.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송한필은 아버지의 신사무옥(辛巳誣獄) 고변이 무고로 드러남에 따라 가족들이 모두 노비가 되었고 그의 행적도 묘연해진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쓴 건지, 일종의 조짐으로 저도 모르게 이런 노래를 지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개화도 낙화도 알고 보면 모두 한순간의 일입니다.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말한 ‘찬란한 슬픔의 봄’인 것일까요.
이 꽃피는 계절에 조지훈의 낙화를 함께 읽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볼 것, 모든 사물과 일의 양면을 볼 것. 피어난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지게 됩니다. 낙화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개화를 볼 수 있어야만 꽃의 아름다움과 중요함이 더 커지고, 모든 것들이 나에게로 와서 새로 꽃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임철순(任喆淳)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솔직담백하고 독창적인 문체로 사랑받는 시인 문정희(文貞姬·68). 그런 그녀가 인간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다. 네루다의 자서전 를 펼쳐 든 순간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낭만적인 그의 삶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탈을 위한 동기부여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네루다의 자서전을 만난 그녀는 적대적이고 경쟁에 빠진 언어를 사용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명쾌하고 자유분방한 시인의 사고가 점점 커지고 거대한 정신을 이루는 과정을 읽어 내리며 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너무 진부하고 권태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잖아요.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 매몰되고, 삶의 상투성에 휘몰리기 마련이죠. 그럴 때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중년은 도전이 두렵고 일상을 탈피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런 중년들에게 ‘현재에 만족해라, 감사해라’라고 위로를 하죠. 하지만 이런 메시지에 안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야 해요. 자꾸 생각을 전환하려 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나 역시 ‘이건 아니지. 인간이라면 좀 더 다른 삶이 있겠지. 새로운 게 없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를 읽으면 우리네와는 다른 사고를 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네루다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극이 되죠. 나도 일상을 탈피해 새로운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생기고요.”
자유로운 사랑을 노래하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중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Love is so short, forgetting is so long)’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 전 그에 대한 화답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라는 시구를 썼다. 사랑의 기쁨뿐만 아니라 그 아픔까지 달콤하게 노래하는 그녀에겐 거침없이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정말 밤을 꼴딱 새워가며 읽었어요. 무엇보다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인 그의 연애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죠. 네루다가 전하는 사랑에 대한 감정과 일화들을 읽다보니, 나의 옛 추억과 사랑도 떠오르고 여러모로 재밌는 상상을 하며 읽었어요. 그는 칠레시인인데 확실히 남미의 감수성이라는 게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롭고 솔직하더라고요. 그는 ‘여인’이라는 존재를 아름다움의 마지막 개념으로 생각하고 사랑 노래를 써냈는데 그것 또한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한국의 시인이고, 머릿속으로는 자유롭지만 한국의 문화와 교육에 길들었기 때문에 그처럼 자유분방한 연애감정을 풀지 못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무척 아쉽고 때론 한스럽기도 해요.”
가보고 싶은 나라, 칠레
그녀는 ‘여행이란 이 세상에서 발견한 가장 뜨겁고 황홀한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한다. 네루다 자서전의 배경인 ‘칠레’는 그런 그녀의 가슴을 한껏 들뜨게 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길고 긴 바닷가에 접한 칠레라는 나라가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죠. 네루다의 자서전에 펼쳐진 칠레는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에요.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나와요. 한 사람이 기차에 몰래 무임승차했는데 갑자기 검표원이 오지 뭐예요. 그러자 그이는 어깨와 다리를 구부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등 위에 담요를 얹어 능청스럽게 카드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검표원은 그 숨은 사람이 탁자라고 착각하고 지나갔죠. 자칫 어둡게 그려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너무나 유쾌하고 인간미 넘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만 보아도 칠레라는 나라가 너무 재밌고, 가난을 피투성이 나게 생각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살아 있다는 것은
그녀는 최근 내놓은 시에세이집 에서 ‘나는 여든 살까지만 젊고, 아흔 살까지만 아름다울까 보다’라는 말을 했다. 그녀가 말하는 젊음과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 의미가 궁금했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은 젊고 아름답겠다는 거죠. 사람들은 ‘젊다’, ‘아름답다’는 것을 너무 나이에만 기준을 두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여든 살을 먹은 소년도 보았고, 서른 살을 먹은 영감도 보았죠. 실제 나이나 외모로 판단하기보단 그 사람의 정신세계나 감각이 얼마나 젊은지를 볼 줄 알아야 해요. 얼마 전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다가 들어보니까 옆에 앉은 아가씨들이 결혼 혼수 이야기만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아이고, 저런 늙은이들이 다 있나’하고 생각했어요. 로맨틱한 감성이 아닌 소유에만 사로잡혀 있는 그들의 모습은 ‘늙은이’나 다름없죠. 그런 계산적인 사고보다는 현재를 더 풍부하게 느끼고 깊이 고민하려는 자세가 필요한데 말이죠. 저는 현재를 가장 젊게 소유하려 해요. 얼마 전에 책에서도 썼지만 그 말은 즉 ‘살아 있다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에요. 그래서 매 순간 호기심을 잃지 않고 많은 것을 느끼려 해요. 순간을 놓치며 사는 건 영원을 놓치며 사는 것과 같죠. 오직 이 순간만이 나의 전부니까요.”
한국의 노령화에 대한 부담이 심각하다.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생산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036년에는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생산인구가 2명이 안될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노인 1명당 부양 생산인구는 5.26명에서 2036년에는 1.96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통계는 그만큼 생산인구의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치는 생산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것에서 생산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노인 1명당 부양 생산인구는 1950년부터 꾸준히 감소해 왔다. 1950년 15.70명에서 1997년에는 10명 아래인 9.83명까지 떨어졌다. 2016년에는 4.94명으로 5명 선 밑으로 하락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한국의 수치는 OECD 34개 회원국 평균(3.74명)보다 높다. 그러나 2036년의 한국의 1.96명은 OECD 평균(2.38명)보다는 적어진다.
올해 노인 1명당 부양 생산인구가 한국보다 많은 곳은 멕시코(8.49명)와 칠레(5.79명) 뿐이다.
일본은 2.1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적고 독일 2.85명, 스웨덴 2.93명, 핀란드 2.94명 등이다.
그러나 2036년에는 한국이 1.96명까지 떨어지며 일본(1.56명), 독일(1.64명), 이탈리아(1.74명), 네덜란드(1.93명) 등 4개국만이 한국보다 낮다.
한국은 노인 1명당 부양인구가 올해 3위에서 2036년 30위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순위가 이처럼 크게 떨어지는 것은 한국의 고령화가 그만큼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인 1명당 부양 생산인구는 올해 5.26명에서 2036년 1.96명으로 22년간 3.30명이 줄어 멕시코(4.22명), 터키(3.73명) 다음으로 감소폭이 가장 크다. 같은 기간에 OECD 평균은 3.74명에서 2.38명으로 1.36명 줄었다.
스웨덴이 2.93명에서 2.33명으로 0.61명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작았고 일본도 2.19명에서 1.56명으로 0.63명 줄어 그다음으로 작았다.
글ㆍ레시피 제공 요리연구가 양향자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의 향연이 브라질에서 열린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브라질! 남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은 정열적인 축제의 나라로, 축구 강대국으로, 남미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니발과 삼바 춤은 브라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이렇듯 놀고 즐기는 것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이기에 그들의 요리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놀고 즐기는 일에 음식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기후에서 자란 풍부한 먹거리가 브라질 음식의 맛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준다.
브라질은 처음 인디오들의 터전이었으나 1500년경부터 몰려온 유럽 여러 나라의 침략으로 백인들이 이곳을 차지하게 됐다. 그들은 이 넓고 비옥한 대지에 사탕수수를 심게 되고 이곳에서 일할 노예인 흑인들을 데려오게 된다. 이때부터 브라질은 백인과 흑인 그리고 인디오 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새로운 인종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문화까지도 혼합되어 새로운 브라질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갔다. 경제면에선 백인들이, 축제나 음식 같은 문화면에선 흑인들이 중심이 되어 지금의 브라질을 이끌고 있다.
# 흑인중심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특징
지금 소개할 브라질 요리들도 거의 예전에 노예였던 흑인들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그들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빈곤했던 생활들이 의외로 독특하고 맛있는 요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아마조나스와 아마파 지역이 있는 북부는 인디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말린 새우와 양파, 토마토, 실란트로, 오크라를 한 냄비에 넣고 끓인 요리가 주를 이룬다.
리오그란데가 있는 북동부는 건조지역으로 소를 많이 키우며,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중서부 지역은 건조 사바나 기후로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넓은 목축지에서 키우는 소와 돼지, 작물로는 마니옥과 쌀, 옥수수 등이 많이 난다.
리오데자네이로와 상파울루 등의 대도시가 있는 남부에서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음식 페이조아다가 유래되었으며, 유럽의 이민들이 이주해와서 정착한 이후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다. 마지막으로 남부지방에서는 풍부한 육류로 인하여 축제의 인기메뉴 슈하스코가 생겨났다. 위에서 언급한 페이조아다라는 이 음식은 서글픈 유래가 있는데 먹을 것이 부족하던 흑인 노예들이 주인들이 먹지 않는 부분, 예를 들면 돼지의 귀나 꼬리 등을 냄비에 넣고 푹 끓여서 먹던 것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페이조아다만을 하루 종일 내는 음식점도 있으며, 보통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으로 먹는 것이 전통으로 남아있는데, 워낙 칼로리가 높고 소화되는데 오래 걸려서 저녁에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 브라질 그들만의 음식 즐기기
누가 뭐래도 브라질 제1의 요리로 손꼽는 것이 '페이조아다'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와 비슷하다. 맛이나 요리법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페이조아다가 생기게 된 계기를 말하는 것이다.
페이조아다는 옛날 노예였던 흑인들이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그들의 주인인 백인들이 요리하고 버린 재료(돼지꼬리, 귀, 족발 등)를 가지고 콩과 함께 삶아 먹었는데 그것이 지금이 '페이조아다'다. 물론 지금은 여기에다 고기, 햄, 소시지 등 각종 재료를 첨가하여 조리하지만 우리의 부대찌개처럼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이 쓰리다.
어쨌든 이 맛이 얼마나 좋은지 백인들이 우연히 그 맛을 보고 반해 지금의 페이조아다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렇게 삶아 낸 각종 재료에다 쌀밥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감자의 일종인 '마니옥 가루'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 요리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가장 유명하며 지금도 브라질 가정에서는 주말이면 이 음식을 특별식으로 즐겨 먹는다.
페이조아다가 브라질의 국민적인 요리라면 '슈하스코'는 여행객들에게 단연 1위로 손꼽히는 요리다. 특히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박수를 치며 좋아할 요리일 것이다. 슈하스코는 왠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것 같다. 워낙 푸짐한 요리이기 때문이다. 1m가 넘는 쇠꼬챙이에 각종 육류(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오리고기, 칠면조 등)를 부위별로 골고루 꽂아 소금만을 뿌려 숯불에 구운 바비큐 요리로서 담백함과 고소함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또 곁들여져 나오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 새콤, 매콤, 달콤한 다양한 소스들이 이 요리의 맛을 더욱 업그레이드시켜준다. 각종 축제나 행사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슈하스코는 지금은 세계인들이 더욱 애식하는 요리가 되고 있다.
브라질에서 놀고먹고 즐기는 일은 거의 일상과도 같다. 그들은 자연이 준 풍요로움으로 언제나 해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더 재밌게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 같다. 그러니 음식 맛도 당연히 최고를 추구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질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입안에서도 축제를 벌이며 행복을 찾는 브라질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입맛까지도 즐거울 수 있으니 말이다.
# 브라질의 대표적인 추천 요리
① 페이조아다
재료: 간 돼지고기 100g, 양송이버섯 50g, 양파 1/2개, 각종육가공품(스팸·햄·소시지) 50g, 고춧가루, 갖은 양념
1. 간 돼지고기는 불고기 양념을 하여 살짝 볶아 놓는다.
2. 양송이는 납작납작하게 썰고, 양파는 길게 썬다.
3. 육가공품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4. 전골냄비에 준비한 재료를 보기 좋게 돌려 담고, 갖은 양념을 넣은 육수를 자작자작하게 부어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고춧가루를 더 넣고 간을 맞춘다.
②브라질식 대구 튀김
재료: 해덕 필레 992g(3oz) 껍질 있는 상태로 비늘을 벗기고 가시를 발라낸 것, 우유 142ml(1/4 파인트), 월계수 잎 2개, 감자 992g(3oz), 껍질 벗긴 것, 잎이 평평한 파슬리 1단(대형) 다진 것, 신선한 민트 1움큼 다진 것, 레몬 2개, 제스트, 달걀 2개, 붉은 칠레고추 1개 다진 것, 소금, 금방 빻은 검은 후추, 밀가루 113g(4oz), 튀김용 해바라기씨 오일, 완성 접시에 놓을 레몬
1. 오븐을 190℃로 예열한다.
2. 트레이에 해덕, 우유, 월계수 잎을 넣고 이 트레이를 포일로 싼 다음 15분간 굽는다.
3. 소금을 넣고 끓인 물에 감자를 넣고 익을 때까지 15분 정도 삶는다. 익은 감자의 물기를 뺀 후, 팬에 넣고 가열하여 물기를 바싹 말리고 으깬다.
4. 구운 생선은 조각내면서 대형 볼에 넣는다. 이때, 가시는 모두 발라낸다.
5. 으깬 감자를 여기에 넣고, 다진 파슬리와 민트, 레몬 제스트, 달걀, 칠레고추, 소금, 후추 등도 넣는다. 잘 섞고 맛을 보고, 필요하면 소금을 좀 더 넣는다.
6. 도마에 밀가루를 조금 뿌린다. 위에 섞어 놓은 것을 조금 떼어내 손에 밀가루를 조금 묻히고, 밀가루 위에서 밀면서 어뢰 모양(생선 모양) 프리터로 만든다. 대충 틀만 잡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좋다.
7. 바닥이 두꺼운 대형 소스 팬에 기름을 충분히 부어 1/3 이상을 채운다.
8. 기름에 꽂아 놓은 튀김 온도계가 182℃를 가리킬 때까지 중간불로 가열한다. (온도계가 없으면 빵조각을 떨어뜨려본다. 3분 안에 갈색으로 될 때가 적당하다.) 튀김이 갈색이 되고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5분 정도 푹 튀긴다.
9. 키친 타올로 기름을 빼고, 소금을 위에 뿌린 뒤, 큰 접시에 레몬 반쪽과 함께 대접한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정년퇴직 후에도 가장 오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선진국들은 정년퇴직 나이 이전에 조기 은퇴하는 경우가 많아 대조를 이뤘다.
이는 그만큼 한국이 노후 생활에 대한 경제적 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의 유효 은퇴연령은 평균 71.1세로 멕시코(72.3세)에 이어 2위였다. 여성은 평균 69.8세로 칠레(70.4세)에 이어 역시 2위를 차지했다.
유효 은퇴연령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져 더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로 실질적인 은퇴 시점을 뜻한다.
남성의 경우 멕시코와 한국만이 70세가 넘고 칠레 69.4세, 일본 69.1세, 포르투갈 68.4세, 아이슬란드 68.2세 순이었다. 룩셈부르크는 57.6세로 가장 낮고 벨기에 59.6세, 프랑스 59.7세로 3개국이 60세에 못미쳤다. OECD 평균은 64.2세였다.
여성은 칠레와 한국에 이어 멕시코(68.7세), 아이슬란드(67.2세), 일본(66.7세), 포르투갈(66.4세) 순이었다. 벨기에와 슬로바키아는 58.7세로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63.1세다.
한국 남성의 경우 유효 은퇴연령이 정년퇴직 등으로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공식 은퇴연령(60세)과는 11.1세 차이가 나 OECD 회원국 중 격차가 가장 컸다. 정년퇴직 후에도 일터에서 가장 많이 일한다는 뜻이다.
멕시코는 유효 은퇴연령이 72.3세로 최고지만 공식 은퇴연령이 65세로 7.3세 격차가 나 2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칠레 4.4세, 일본 4.1세, 포르투갈 3.4세, 터키 2.8세 순이다.
반면에 룩셈부르크는 유효 은퇴연령(57.6세)이 공식 은퇴연령(65세)보다 7.4세 낮았다. 연금을 받는 시기보다 7.4년 더 일찍 은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여성의 경우 유효 은퇴연령(69.8세)이 공식 은퇴연령(60세)보다 9.8세 많아 칠레(10.4세) 다음으로 격차가 컸다.
반면에 벨기에는 유효 은퇴연령이 58.7세, 공식 은퇴연령이 65세로 오히려 유효 은퇴연령이 6.3세 더 적었다.
유럽 선진국들은 남녀 구분없이 이런 경향을 나타냈다.
한국의 경우 퇴직금, 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없어 고령임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것과 달리 유럽 선진국들은 조기 은퇴해 여유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국내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60세 이상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2%로 10년 전인 2003년(48.6%)보다 3.6%포인트 상승했다. 여성은 같은 기간 27.8%에서 29.0%로 1.2%포인트 올랐다.
고령자 중 주식에 투자하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 100만명을 넘어섰다. 60세 이상 주식투자인구는 2004년 54만8천명에서 2012년 104만5천명으로 8년 사이에 거의 2배가 됐다.
우리나라 인구중 현재 결혼상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데 반해동거, 이혼, 사별한 사람의 비율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선진국들이 다양한 가구 구성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펴낸 ‘2014 한눈에 보는 사회’(Society at a glance 2014)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중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38.6%로 OECD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결혼상태인 사람의 비율은 55.8%로 OECD 평균 52.4%보다 높아 상위 아홉번째였다.
이 둘을 합친 비율은 94.4%로 34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100명 중 94명은 현재 결혼했거나 아니면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사별(3.5%), 이혼(1.3%), 별거(0.6%), 동거(0.2%) 등 다른 혼인 유형의 비율은 극히 작았다.
OECD 평균으로는 결혼 중(52.4%), 미혼(27.1%), 동거(7.9%), 사별(6.2%), 이혼(4.9%), 별거(1.5%) 등이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개별 국가별로 결혼자의 비율은 터키(66.3%), 일본(65.4%), 이탈리아(63.5%) 등이 높고 에스토니아(37.8%), 칠레(41.2%), 스웨덴(42.4%) 등이 낮았다.
미혼자 비율은 우리나라에 이어 칠레(38.0%), 아일랜드(33.4%) 등이 높았다.
동거자 비율은 나라별로 가장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아이슬란드(21.0%), 스웨덴(19.4%), 에스토니아(18.7%), 노르웨이(16.9%) 등의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에서 높게 나타난 반면, 터키(0.1%), 그리스(0.1%), 이스라엘(0.1%), 우리나라(0.2%), 일본(0.2%)에서는 극히 낮았다.
향긋함을 품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이 성큼 다가온 가운데,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공연장으로 향해 보자. 3월에는 고전 연극부터 창작 뮤지컬까지 다양한 작품이 활짝 기지개를 켜고 관객을 맞이한다.
서울 충무아트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직접 제작에 뛰어든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블록버스터급이다. 생명 창조를 고뇌하는 빅터의 광기와 고독을 유준상, 류정한, 이건명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펼쳐내는 가운데, 박은태, 한지상, 리사 등 실력파 배우들이 포진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즌제로 선보이는 뮤지컬 ‘셜록 홈즈2: 블러디 게임’은 대극장으로 옮겨 전 편의 인기행진을 이어간다. 이번 2편은 긴장감이 짙게 깔린 추리로 스릴러 장르를 완성했다. 현대문학의 거장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원작 속에서 한국전쟁 시절 비운의 삶을 살다간 두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묵직한 주제를 드러낸다. 온라인 인기 연애 상담 블로그 운영자인 최정의 실제 이야기로 꾸며낸 뮤지컬 ‘미친 연애’도 신선한 감각을 안겨준다.
한편 곱씹을수록 다채로운 맛을 내는 고전 연극의 라인업도 일품이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년을 맞이해 공연되는 국립극단의 ‘맥베스’는 권력과 욕망에 왕이 된 전쟁 영웅 멕베스의 불안한 심리에서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4년 만에 다시 올리는 극작가 피터 쉐퍼의 대표작 ‘에쿠우스’는 2012년 연극계 주요 신인상을 휩쓴 지현준이 주연으로 새롭게 무대에 선다. 칠레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원작을 각색한 ‘과부들’도 눈길을 끈다. 3시간의 상연 시간 동안 몽환적 연출이 돋보인다. 극작가 피터 한트케의 대표작 ‘관객모독’도 5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배우는 대사를 제멋대로 띄어 읽는 등 기존 언어의 문법을 깨부순다. 또한 욕설과 조롱을 퍼붓고 공연 마지막에는 객석에 물세례를 퍼붓는다.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는 전 세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모여든다. 인구 1만명에 불과한 한적한 시골마을인 다보스는 포럼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는 스위스가 얼마나 강소대국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구는 800만명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달러에 육박하고 각종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1위를 휩쓰는 나라.
높은 국가경쟁력과 함께 스위스는 복지국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특히 ‘은퇴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은퇴자가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위스는 어떻게 은퇴자에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하면서도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요르그 알 레딩 주한 스위스 대사에게 그 비결을 물어봤다.
◇다양한 재원의 스위스 연금제도
스위스의 국민에게 노년은 인생의 황금기로 불린다. 이처럼 노년층이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든든한 연금에 있다. 스위스는 ‘3층 연금제’를 통해 은퇴 후에도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3층 연금이란 공적연금, 기업(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말한다. 다양한 재원을 통해 퇴직 전 연봉의 60%이상을 보장받기 때문에 은퇴전과 비교해도 생활수준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3층 연금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노년에 일정 수준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먼저, 가입이 의무인 공적연금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같이 근로자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가 노년층을 부양하는 직불방식 연금이라는 점이다. 스위스 공적연금은 노령과 사망 위험에 대한 보장과 장애 위험에 대한 보장을 함께 해준다. 최저생계비는 공적연금으로 그럭저럭 커버가 된다는 의미다.
2층 보장인 기업연금 역시 근로자와 기업이 함께 부담하는 것은 같다. 스위스에서는 공적연금 뿐 아니라 기업연금의 가입도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공적연금의 재정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다. 3층 연금인 개인연금은 가입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래도 가입률은 90%에 달한다. 스위스 정부가 세금공제 등 세제혜택을 줘 적극적으로 개인연금 가입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공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보니 세대 간 갈등 문제도 크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낮은 공적연금 의존도에서도 어떻게 스위스 노인들의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풍요로운 노년의 비결은 ‘근면’과 ‘여성’
레딩 대사는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간단하게 “스위스 국민은 일하기를 좋아한다”고 짧게 답했다. ‘노년층에 대한 연금보장과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근로시간이 길기로 둘째가기 서러울 정도인 한국인 앞에서 무슨 근거로 당당하게 스위스 국민이 일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일까.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2012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은 1705시간에 그쳤다.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높은 국가는 멕시코(2317시간), 칠레(2102시간) 밖에 없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 국민 중 30%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70% 정도는 17살가량부터 일한다. 20살부터 연금에 가입해 65살까지 납부한다. 그래서 취업자의 노년층 부양율이 높다. 반면, 한국은 25살 취업해 55살에 은퇴한다. 연금을 내는 기간이 짧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국민들은 이른 나이에 취업전선에 나설 뿐 아니라 은퇴연령도 65세로 높은 편이다. 공식 은퇴연령은 여자가 64세, 남자가 65세다. 은퇴를 일찍 하면 연금이 줄기 때문에 대부분 정년 근처까지 일한다. 근로시간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짧지 않다. 지난 2002년에는 주당 근무시간을 42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자는 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고 2012년에는 최소 유급 휴가일수를 4주에서 6주로 늘리는 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의 근로시간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높다”며 “작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노동력에 의존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일정시간이상을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한국이 하루 14시간 일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한다면 스위스는 8시간씩 정년까지 일하는 셈이다. 일과 휴식의 균형이 맞는다”라고 전했다. 이어 “여성 노동인력이 많아서 연금 기여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스위스는 여성 고용률이 70%가 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50%대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매년 최하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스위스를 방문하면서 높은 여성 고용률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연금문제에서 ‘국가는 거들뿐’
스위스의 연금체계에서 국가는 보완자의 역할에 머문다. 철저한 페이고(pay-go) 원칙에 따라 최대한 공적연금의 비율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고 원칙이란 국가의 비용이 들어가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정부수입을 늘리는 등 재원 확보 방안을 함께 마련하도록 의무화한 것을 말한다.
연금 뿐 아니라 노인복지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안도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한다. 주(canton) 등 지자체가 노인복지에 1차적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정부는 안전망을 만드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단위로 4성급 호텔수준의 요양시설이 있어 노인들이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본인 주택에서 생활하는 노인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체크한다. 정부는 지자체를 재정적으로 보조한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 국민들은 국가가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위스는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어떤 법안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과 정당이 수용할 수 있고 사회적 합의가 조성됐는가가 중요하다. 연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쏠리는 정책이 나올 확률은 국민투표를 거치면서 줄어들게 된다. 물론 국민투표로 정책을 정하는 것이 다소 소모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레딩 대사는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할 때 연금정책도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며 “국민투표를 통해 연금정책 지원에 대한 국민의 승인을 받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가 점점 줄면서 더 적은 젊은이가 더 많은 노년층을 부양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스위스에도 노인복지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국의 노인복지 정책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재정상황, 인구구조나 개인의 책임감 등 각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하나의 방안으로 모든 국가에 적용할 수 없다”면서도 “스위스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유입돼 이들도 연금체계에 기여한다. 국가가 얼마나 개방적인지도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