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돕는 것은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취약계층, 사회적 패자들의 자활을 돕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디자인하는 이종수(63) 한국사회투자재단 이사장 겸 임팩트금융 추진위원회 단장, 남들이 ‘문제없다’를 외칠 때 그는 ‘문제 있다’를 외치며 우리 사회의 궁벽한 문제를 드러내고 찾아낸다. 그리고 해결을 도모한다. 철거민촌 소년이 글로벌 금융인을 거쳐 사회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진솔한 패자부활전 이야기를 들어봤다.
별명이 소셜 디자이너입니다. 왜 그런 별명이 붙었나요.
“패자부활전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격차와 갈등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디자인한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빈곤의 사전 예방, 차단을 위해서는 단순히 퍼주기 식의 복지 지원이 아니라 한 사회 생태계 구성이란 전향적-종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젠 고기 잡는 도구를 빌려주는 것까지 함께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장을 만들고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까지 해야 합니다. 취약 계층 자활도 단순한 지원을 넘어 융자의 시대를 지나 이젠 사회투자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게 제 일입니다. 빈곤도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해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착한 금융 2.0은 복지 측면에서 개인 대상 직접 자금 지원이었다. 3.0은 사업 지원, 사업 아이디어 사전 자문과 사후 사업 멘토링까지 종합관리 시스템으로 패키지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4.0은 투자 생태계 마련, 즉 사회투자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업과 프로젝트를 발굴해 투자하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개인도 종합검진을 미리 하면 중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 빈곤, 취약 계층 발생도 사후 대책을 넘어 문제 요인을 사전에 진단, 예방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취지다. 이 이사장은 사회투자금융 활동의 선구자로서 늘 앞장서 각 단계마다 진화를 주도해왔다.
사회투자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선데요. 사회와 투자라는 용어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만.
“사회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합니다. 그러나 그 예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문제는 너무 복잡해 주는 복지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사회 문제가 경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결 방식도 전통적인 복지에 금융경영 등과 같이 시장적인 방법을 융합해 해결해야 합니다. 사회투자는 재원의 선순환을 이루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주는 복지를 넘어 구조와 예방의 사회 인프라를 깔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회간접자본과 같습니다. 다리, 항만 부두 등을 건설하는 데는 당장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사회 발전의 근간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대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패자부활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이고 예방적인 차원에서 지속가능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사업에도 투자하는 등 다층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사회금융기관은 일반 은행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반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수익과 담보를 본다면 사회투자를 지원하는 사회 금융기관들은 그 기업과 프로젝트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과 기업의 철학을 본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재무적 수치나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즉 장애인, 노숙자, 저출산, 고령화, 청년 일자리, 주거 문제, 환경 문제, 자살률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 투융자를 결정합니다. 돈의 회수 가능성을 본다는 점은 같지요. 공익적 개념이더라도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진행하려면 재원의 선순환이 필수이니까요.”
은퇴자들과 매칭 포인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설립한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시니어브리지라는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퇴하였거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하고 논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벌써 400명 이상의 시니어들이 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전문성을 갖고 사회적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봉사가 가능합니다. 일정 교육을 받고 커뮤니티를 구성,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는 두 가지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돈을 벌어 재무적 성과를 내는 재무적 가치, 사회적 의미를 두고 봉사하는 사회적 가치. 이 중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가치에 점점 더 무게중심을 두게 되더군요.”
당면한 사회 문제 중 심각한 게 양극화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말합니다.
“부모의 가난이 새로운 연좌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요즘은 개천의 용을 보기가 힘듭니다. 개천에선 욕만 나오는 세태이지요. 싹수 있는 지렁이들의 신분상승 희망조차 개천 바닥 아래로 봉인돼버린 것입니다. 어느 나라이든 명문대 인재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존재해요. 영국의 이튼스쿨 출신,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 등. 우리 사회의 문제는 갈등과 적대감이지요. 리더들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 개선 등 따뜻한 개천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이사장은 “실업, 저출산, 주거난, 장애인 문제 등이 곪아 터지면 결국 빈곤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들이 벼랑에서 떨어져 사회적 비용이 더 크게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이라는 책에서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며 “경제적 능력주의 사고는 가난한 사람을 불운한 게 아니라 실패자로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체제에선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고, 자선-복지-재분배-동정의 필요성은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과연 빈곤을 그들만의 인과응보에 의한 책임으로 볼 것인가.
한 부모가 아이를 서울역으로 데려가 노숙자를 가리키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산교육(?)을 했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다뤄진 적도 있지요.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만은 없습니다. 현대사회는 복잡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상황이 개인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국민총생산이 성장하는 것만으로는 그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총생산이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소외되고 낙오되는 사람들을 보듬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입니다. 이를 위해선 공동체 정신, 커뮤니티 정신이 기본적으로 중요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온통 효율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가 실현돼야 합니다.”
개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사장님도 흙수저 출신의 개천룡이십니다. 어떻게 글로벌 금융인이 되셨는지요?
“사당동 달동네의 철거민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서강대 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민주화운동을 하다 민청학련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이게 빨간 줄이 돼 국내 일반 직장에 취업이 안 되는 겁니다. 신원조회를 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친구가 권해줘서 우연히 응시한 미국 은행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더군요.”
민청학련 경력(?)이 인생의 장애물이자, 도약대, 두 가지 역할을 했군요.
“20대 때 세상의 불공평,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질풍노도 같았어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제 가난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고, 화가 꾹꾹 쌓여 폭발 직전이었지요. 처음엔 독방에 수감됐는데 매일 고함을 치고 벽을 쳤어요. 3개월 후 잡범들과 합방을 하면서 비로소 제 마음속 억눌린 화가 풀리더군요.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가난이라고 불만을 가졌던 게 사치였던 겁니다. 비교도 안 되게 별별 힘든 사연이 다 있더군요. 그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생각을 했지요. 책으로 배운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그 결심으로 대학생활 내내 구로동 공단에서 야학을 열심히 했어요.”
그 후에도 초심을 잘 유지하셨나요. 젊은 시절의 결심은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요.
“하하. 웬걸요. 몇 번의 초심 재생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레드카펫 깔린 외국 직장에서 고연봉의 좋은 대우 받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7명이나 딸린 해외생활을 하면서 ‘그때 그 마음’이 바래버렸어요. 꿈은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힘들어요. 내 삶은 우연찮게 사건이 ‘사연’을 상기하게 만들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1996년 캄보디아에서 은행을 설립할 때인데요. 가난을 한탄할 틈마저 주지 않는 매정한 세상에 지친 서민들의 우울한 눈동자를 봤어요. 까맣게 잊고 있던, 감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예전 결심이 떠오른 겁니다. 내 삶을 돌아보게 됐고 사표를 냈지요.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하지만, 가슴에서 발까지의 결심이 더 힘들더군요. 이후 캄보디아 농촌 빈민을 위한 자활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농촌 빈민 직업 훈련 프로젝트 등 ‘가슴이 시키는 일’에 연달아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내전 등 내부 문제 때문에 아쉽게도 끝까지 추진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그에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때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영감을 받아 귀국해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 국내에선 개념조차 없는 때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한국형 사회연대은행을 기초부터 공부해가며 시작해 실행까지 도맡아서 했다.
세계 최대 보험중개사인 에이온코리아 사장으로 계시다 비정부 시민사회 단체인 사회연대은행 대표로 옮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10년간 양다리 기간이 있었습니다. 두 곳이 인근 건물이어서 상호 양해 하에 두 곳의 장(長) 역할을 왔다 갔다 병행했지요. 그러다 사회연대은행 운영이 어려워져 직원 급여도 못 주는 상황에 직면했어요. 3개월 월급 못 줄 땐 가시방석이었어요. 웬만한 직장에서 그랬다면 야단이 났을 텐데, 마이너스통장 쓰면서도 견디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 편하게 지내도 되나 갈등이 생기고, 인간적으로 모순 상황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에이온에 사표를 냈고 마음이 가는 바를 좇고 나니 편해지더군요. 온전한 헌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정한 이익과 불이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니 결정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버는 거야 옛날과 비교할 수 없게 줄었지만요. 막상 살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아요. 밥값 내던 시절은 잊고 빈대가 되고,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는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고….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조금 벌면 조금 쓰게 되는 게 사람 사는 이치더군요(웃음).”
사표를 쓴 당일에 스페인 산티아고로 직행, 혼자 도보순례를 하셨다면서요.
“모양만 좋은 ‘데코레이션 나’가 아닌 진짜 ‘내 안의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만나기 힘든 게 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요. 자신만이 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사람들 눈에 보이는 나는 내 참모습과 일치하는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시간이었어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지지 말자고 결심했지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는 매일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이사장님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패자부활전, 초심 회복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그런가요. 격렬한 희망과 내려놓기, 그것이 제 나름의 인생 지혜입니다. 격렬한 희망이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긍정적 기회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하나하나 보면 실패였지만 돌아보니 그게 저수지가 됐어요. 감옥에 들어간 일이나, 젊은 시절의 방황이나 해외 돌아다니면서 은행을 설립한 일이나…. 또 하나는 내려놓기입니다. 돈뿐 아니라 일에 대한 욕심도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따라오더군요.”
이 이사장은 인터뷰 중 일어나더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을 펼쳐 한 대목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이다. 과거를 지움으로써 현재를, 지금을 버림으로써 미래를 들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다른 것을 쥘 수 없는 것처럼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내려놓음은 익숙함에 찍는 단정한 마침표다. 나를 타성, 관성, 습성에 젖게 했던 세상의 기준과도 이별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집에서 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산다. 소셜 디자이너란 별칭처럼 ‘남이 디자인해준 집’에서 사는 것은 재미없기 때문이란다. 아버님(86)은 시력을 상실하시고, 어머님(85)은 치매이시지만 그는 이 역시도 문제로 보지 않는다. ‘노인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인 병환, 공양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 노인들이 어떻게 존엄한 삶을 살게 할 것인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단다. 타고난 소셜 디자이너 이종수 이사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간한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은 1년 동안 413잔의 커피를 마셨다.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4년에 비해 30% 이상 성장한 6조441억원 규모다. 이렇게 시장이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니어들도 커피를 기호식품이 아닌 사업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심 걱정도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카페가 즐비한데 인생 후반전의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커피는 신맛이 나면서 약간 과일 향도 느껴지네요. 먼저 마신 것과 완전히 달라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 현장. 한 참가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평가한다. 같은 원두로 내린 커피인데 로스팅(수확한 커피콩의 맛을 내기 위해 열을 가하는 과정)과 분쇄에 따라 달라진 맛을 보고 감탄한다. 이들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막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이다.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은 최초의 시니어 대상 커피교육 과정으로 꼽힌다. 2010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지금은 이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활동하는 카페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의 첨병 역할
이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니어 커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교육기관인 50플러스센터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관이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육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도 시니어 대상의 커피교실을 개최한 적이 있다.
시니어들의 이 뜨거운 커피 열기를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관계자들은 청년들의 관심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리스타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서울남부기술교육원 관계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니어 입장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카페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리가 나면 취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카페를 창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또 반드시 직업이 아니더라도 모임이 많은 노후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죠.”
시니어 대상 커피 교육이 활성화된 데에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커피를 유용한 노인 일자리 대책의 한 분야로 판단한 것도 영향을 줬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강한 근력을 요구하지도 않고,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많다. 실제로 부산시나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에는 시니어 바리스타를 고용한 ‘실버 카페’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공공기관에도 커피를 마시려는 수요가 존재하고 카페는 큰 예산 마련 없이도 어렵지 않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 지역 내 사회복지관 등 교육기관과 연계해 시니어 바리스타를 수급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건물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한 문화재 시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카페 창업 전망은 어떨까
시니어에게 카페 창업은 취미와 직업이 결합된 로망 중 하나로 꼽힌다. 매장이 클 필요도 없다. 가져가는 손님만 상대로 하면 그만이다. 꼭 대로변 임대료가 비싼 곳일 필요도 없다. 동네 단골이 생기면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해보인다. 최근엔 장비 값도 내려가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식당이나 술집에 비해 노동 강도도 낮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있는 카페를 유지해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유럽의 바리스타 교육관이자 시험 감독관인 신림 마티스커피 심병준 대표는 두 번 세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많은 시니어에게 카페 컨설팅 의뢰를 받는데 대부분 쉽게 생각하고 찾아와요. 커피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죠. 처음에 익히는 것이 힘들지, 알고 나면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매우 쉬워요.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고, 이미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내려간 상태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창업 자본을 까먹기에 딱 좋죠.”
커피가 시니어들에게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고객층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인형뽑기방이나 빨래방처럼 장비만 놓으면 그만인 분야와는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니어들도 커피를 많이 즐기지만, 카페의 실질적인 고객층은 20~30대예요. 그런데 이들 입장에서 접객인이 나이가 많으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바리스타를 고용할 때 청년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 시니어가 운영하는 카페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에요. 따라서 ‘내가 어른인데’ 하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시니어가 가진 강점을 개발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커피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카페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공부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커피시장이 시니어에게 틈새 없는 레드오션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커피시장이 만들어낸 일자리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퇴직 전 근무하던 분야가 무역과 관계되는 일이었다면 커피를 거래하는 일에 뛰어들어도 된다. 커피는 원유와 함께 선물시장에서 취급되는 주요 상품 중 하나다. 또 해외에서는 커피머신을 전문적으로 세척, 수리, 세팅하는 엔지니어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커피머신의 조정 값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예 커피콩을 직접 키워볼 수도 있다. 온난화하는 기후 탓에 국내에서도 커피콩 생육을 시도해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 어떻게 배워야 할까
커피를 배우는 과정은 워낙 다양해 꼭 집어 무엇이 옳다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커피시장을 이끌었던 유명 바리스타들의 학원식 교육과정도 있고, 대학 교육과정도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커피를 배울 수도 있다. 단국대학교에는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가 운영 중이다. 학교가 부담스럽다면 앞서 설명한 각 지역 50플러스센터나 기술교육원,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강의를 찾아 들어도 된다. 일부 문화센터도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커피 관련 자격증 중 국내 자격증은 모두 민간 자격증이기 때문에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취업을 하거나 카페를 창업하는 데 필수도 아닌 데다, 업계에서도 자격증에 따라 크게 대우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바리스타를 중심으로 바리스타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 추출 실력이나 자신만의 원두를 혼합한 블랜딩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계기로 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도 있고,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이런 대회는 시니어 바리스타 상대로도 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노인고용 주간을 맞아 ‘시니어 바리스타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커피를 어디서 배우느냐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계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쉽고, 커피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커피와 함께 고객을 유인할 상품이나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치열한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지난 9월 17일은 금융권에 종사한 적이 있는 시니어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견주었던 특별한 날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신용회복위원회가 주관하는 신용상담사 자격 취득 시험일이었다. 신용상담사는 그동안 국가공인이 아닌 민간 자격증이었는데 올해 정식으로 공인 자격증이 되었다. 이미 자격을 취득했던 사람들도 완화 시험을 통해 네 과목 중 두 과목을 다시 합격해야 정식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올 수험생들은 명실상부한 1회 수험생이다. 잘만하면 1회 합격자가 될 테니 기쁨도 두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들의 전언에 의하면 시험은 꽤 난이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분에 1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답안지 작성 시간을 감안하면 1분에 1문제 풀기에는 몹시 버거웠다고 한다. 읽다가 시간이 다 갔다고 푸념을 하는 수험생들도 있다. 상담사를 뽑는데 고시 수준으로 문제가 나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작년 합격률이 8%였다고 하니 문제의 수준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올해는 1회 시험이고 작년에 너무 합격률이 저조했으니 올해는 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 했던 많은 수험생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기를 감추지 못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는 금융권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권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더 일찍 은퇴하여 어렵게 사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러고 보니 소싯적 일반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이나 화려했던 금융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이나 은퇴하고 나면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이다. 갈 곳 없는 베이비부머들이 많아서인지 자격증의 쓸모는 차치하고 응시자는 넘쳐났다. 용산고에서 응시한 사람들만 해도 1100여명이나 되었다. 용산공고에서 완화시험을 보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1800여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자격을 취득해서 쓸모가 있다면야 수만 명이 응시해도 상관은 없지만 이처럼 별 용도가 보이지 않는 자격증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용산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본 한 시니어는 “현대중공업에 다니다 퇴직하여 지금은 경영지도사로서 소상공인의 경영컨설팅을 해주고 있다.”면서 “신용상담사 자격을 취득하면 경영 컨설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응시했다.”고 답했다. 그는 몇 가지 자격증이 더 있는데 아마 노후를 대비해서 적극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던 것 같다. 어쨋든 그에게는 자격을 취득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시니어가 아닌 젊은이들은 왜 신용삼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것일까. 한 젊은 응시생은 “혹시 취업을 하는데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 시험을 보았다.”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시한 줄은 몰랐다.”며 오히려 놀라는 눈치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자격증이 있다. 사실 변호사나 의사 자격증은 한번만 취득하면 평생을 잘 살 수 있다. 자연 노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예로부터 ‘사’자 들어가는 직업은 3가지 열쇠 정도는 받고 여자를 고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자격증 만능의 시대가 열렸다. 공인이든 아니든 따놓고 보자는 식이 되었다.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자격증만 따면 된다는 식이다. 가히 자격증 홍수시대이다. 젊은이들의 취업이 어려우니 자격증의 몸값은 더 올랐다. 하지만 막상 취득하고 나면 써먹을 수 없는 자격증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한다. 아픔이고 슬픔이다. 이처럼 수험장에만 가도 그 시대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신용상담사 자격 취득 수험장에 깃든 아픔은 수많은 금융권 은퇴자와 젊은 미취업자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숨이 잘 대변하고 있다.
신용상담사는 신용이 훼손된 사람 즉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들의 신용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생긴 자격증이다. 우리나라의 금융채무불이행자는 백만 명이 넘는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는 더욱 급속도로 그 수가 늘어난다. 외환위기 때는 300만명에 육박했다. 그 후 신용회복위원회가 설립되고 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법률이 제정되어 많은 금융채무불이행자의 경제회생을 도왔다. 앞으로도 그 임무는 막중할 것이다. 그러나 신용상담사를 필요로 하는 기관이나 단체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자격증의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많은 은퇴자와 젊은이들이 자격 취득을 위해 담은 며칠이라도 잠을 줄이고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겪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인사담당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이상철(57세)씨는 전 직장 동료들끼리 월 1회 정기적으로 모이는 OB(Old Boys) 모임에 가입했다. 그가 가입한 모임은 매월 특정한 주제에 대해 2시간 정도 강의를 들은 후 저녁을 먹으며 토론하는 학습모임이다. 이번 달 모임의 주제는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의 생애설계’였다. 이번 강의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균수명 76세 시대의 나이에 대한 개념과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나이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사는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의 일생을 하루에 비유해 설명했다.
새롭게 생겨난 시간 ‘서드에이지(Third Age)’
평균수명 76세 시대의 인생시계를 4등분하면 오전 6시에 해당하는 나이는 19세다. 오전 6시는 기상시간에 해당하며 19세의 나이는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나이를 의미한다. 그리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오후 6시가 되면 퇴근시간이다. 인생시계에서 오후 6시, 즉 퇴근시간은 퇴직시기를 의미한다. 조퇴하는 사람도 있고 야근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오후 6시는 공식적인 퇴근시간, 즉 퇴직시기다. 하지만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 시간의 상징은 변한다.
오전 6시 기상시간은 25세가 된다. 그리고 낮 12시는 50세에 해당하고 퇴근시간은 57세에서 75세로 바뀐다. 100세 시대의 인생시계에 의하면 이상철씨는 현재 퇴근시간이 아니라 점심시간 직후에 있다. 100세 시대의 장수 보너스로 인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시간이 바로 50세부터 75세까지의 시간이다.
노년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서드에이지(Third Age), 즉 ‘제3의 연령기’라고 부른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서드에이지를 ‘창조적 불확실성의 시기’라고 하면서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에 비유했다. 신대륙은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회가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부모님이나 선배들과는 다른 삶을 원했던 이상철씨는 서드에이지를 제2차 성장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역할에 충실한 삶에서 자아실현의 삶으로
퍼스트에이지(First Age)가 배움의 시기이고 세컨드에이지(Second Age)가 가족을 위해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시기라고 한다면 서드에이지(Third Age)는 자아실현을 위해 매진해야 하는 시기다.
이상철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세컨드에이지를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남은 인생은 좀 더 자기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삶을 살며 성장해온 시기를 ‘제1차 성장의 시기’라고 하면 자기 중심의 삶을 살면서 성장하는 삶은 ‘제2차 성장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중심의 삶을 살기로 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작업은 하고 싶은 일들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어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자료1] 같은 양식지를 이용해 하고 싶은 일들을 구분해 정리해보았다.
이상철씨는 이 양식지를 이용해 하고 싶은 일들을 정리하면서 자기 중심의 삶을 위해 ‘꼭 하고 싶은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좋지만 굳이 안 해도 상관없는 ‘하면 좋은 것’의 항목을 다음과 같이([자료2] 참조) 채웠다.
이상철씨는 직장에 있는 동안 인사업무를 하면서 조금씩 공부를 한 심리상담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본인과 상담을 한 후배나 동료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심리상담소를 열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심리상담사를 인생 2막의 직업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아직은 자녀들이 독립 전이고 국민연금수령 시점도 6년이나 남아 기본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결심을 굳히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대학에서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있는 친구를 찾아가 심리상담사의 길에 대해 자문했다.
제2차 성장을 위한 재무 포트폴리오 변경
이상철씨가 심리상담소를 개소하기 위한 자격과 경험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략 5년의 시간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포함한 교육비가 약 5000만원 정도 소요된다. 그리고 심리상담을 진행할 사무실이 필요하다. 당장 돈이 되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대신 새로운 직업을 위한 공부를 선택한 이상철씨는 가계의 재무구조와 소비구조를 바꿔야만 했다.
그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매각하고 좀 더 외곽의 아파트를 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매각한 잔액으로 오피스텔을 사서 임대를 하기로 했다. 오피스텔의 임대료 수입은 현재의 생활비를 보조하고 향후에는 심리상담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외 자녀독립 지원자금으로 준비해둔 자금의 일부는 본인의 교육비와 창업준비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자녀들에게 미리 뜻을 밝혔다. 그 대신 퇴직 후 건강을 위해 신경 쓰기로 한 운동 증 비용이 많이 드는 골프를 줄이고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또자동차를 통해 하는 여행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한 여행을 더 많이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의 50대 퇴직자들이 제1차 성장기의 열매를 어떻게 잘 관리할까를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이상철씨는 100세 인생이 선물한 보너스의 시간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다시 한 번 더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조영환 AJ가족 인재경영원장(62)은 ‘가정도 회사처럼, 가족은 고객처럼 경영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정은 기업의 축소판”이라며 “가족에도 회사 경영 마인드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0년부터 가정경영계획을 수립해, 27년여 실행해온 성공적 가장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인사조직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5년간 강연, 집필 등을 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현재는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으로 3막의 인생을 경영하고 있다.
보통 베이비부머 세대의 직장인은 입사~퇴직이라는 한 우물의 인생이 일반적 코스입니다. 조 원장께선 55세에 퇴직해 5년간 프리랜서, 3막 기업인으로 재기와 변신을 거듭하셨는데요. 먼저 퇴직 후 프리랜서로의 변신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퇴직 후 충격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피가 흐르고, 역마살 체질이 있어서 물 만난 고기 같다는 생각이 곧 들더군요. 특히 생활 리듬은 깨뜨리지 않으려고 유의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식사는 집사람과 같이하는 등으로요. 퇴직한 지 3개월 만에 책을 냈습니다. 5년 동안 책을 13권 썼으니 그야말로 왕성한 활동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때 저는 삼성출신 전직 임원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했지요. 태국에서 2종, 중국에서 2종이 번역됐고요. 김구라, 이경규 등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강의를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머리도 기르고, 넥타이도 매지 않고요. 모범 직장인의 전형인 삼성 스타일에서 벗어난 것이 자유로움을 줬습니다. 강연, 집필 외에 젊은이들을 위한 무료 취업 코칭 등의 재능기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커플이 생겨 주례도 서고…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 회장까지 맡아 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등 보람이 많았습니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으로 생활하시는 동안 특별히 명심하신 사항이 있었나요.
“회사 다닐 때, 하루 종일 밖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가족 간의 문제점, 약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 잔소리가 늘어났던 겁니다. 당연히 식구들이 점점 불편해했지요.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집사람에게 슬쩍 물어보더래요. ‘아빠, 언제까지 집에 계실 거냐’고. 그 말을 듣고 가까운 헬스클럽에 등록해 2시간 운동하고 점심과 저녁 약속 억지로라도 만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잔소리하고 싶은 것 있으면 꾹 참고요. 좋은 점, 칭찬거리만 보고 말하려 애썼지요.”
프리랜서 생활 5년 만에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가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이 되셨습니다.
“(웃음) 바쁜 중에도 모처럼 스케줄이 비는 날이 있잖아요. 어느 날 점심약속이 없어 오피스텔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데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일할 조직과 구성원이 그리웠어요. 마침 AJ가족의 문덕영 부회장이 제 책을 읽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와 응하게 됐지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 이후 새로운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공통의 당면과제입니다. 아직 조직에 있는 사람이든 프리랜서이든 준비해야 할 필수사항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전 조직에서의 좋은 평판이라고 봅니다. 평가가 실력에 관한 것이라면 평판은 인품을 포함하는 것이지요. 퇴직 후엔 평가보다 평판이 더 중요해요. 술버릇, 말과 행동, 주변과의 교류 등인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평판입니다. 누구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2막 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2막 인생에 빨리 적응한 것도 사람농사를 잘 지어놓은 덕분이었어요. 조직생활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한다면 가장 잘하는 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률이 높습니다. 어설프게 다른 사람의 권유로 원하지 않는 영역의 일이나 잘 모르는 일을 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화재 인사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사기획, 이론연구, 노사관리업무를 담당했지요. 또 삼성화재 사업부장(상무이사급)을 지내셨지요. 이론연구와 현장 근무의 양수겹장 경력을 갖고 계신데요. 인사조직관리의 요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인가요.
“인간 존중입니다. 저는 리더가 하는 일은 직원들의 일을 대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군불을 때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격체로 대해주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일선 직원들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고충을 처리해주고 산간벽지라도 경조사는 다 찾아다녔지요. 제 자동차 1년 주행거리가 6만5000km로 웬만한 택시 버금갈 정도였어요. 보험사 사업부장 때는 보험설계사 900명의 이름을 석 달 만에 다 외웠어요. 본인은 물론 배우자, 자녀 대소사까지 챙겼지요. 혼자 사는 사람은 반려동물 이름까지 외우고 예방접종 시기까지 먼저 알려주며 인사했습니다. 고성과자에겐 그 사람을 위한 맞춤형 시를 써서 액자에 담아 감사를 표했고요. 그러니 제가 보험 지식은 하나도 없어도 저절로 사기, 성과가 함께 올라가더군요.”
그는 ‘인간 존중’의 핵심은 효율보다 효과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계산으로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산에서는 남게 돼 있다는 것. ‘작은 진동이 큰 감동의 파동을 일으키게 돼 있다’는 게 그의 수십 년 경험의 철칙이다. 조 원장은 지금도 그때 알고 지내던 직원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 회원 100여 명의 ‘조사모(조영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라며 자랑했다. 퇴직 후 그가 고객 감동경영의 노하우를 묶어낸 처녀작의 제목은 다.
인간 감동경영도 배우면 가능합니까?
“저절로 할 줄 알면 성인이게요(웃음). 저는 신참 때도 꿈이 임원 승진보다 ‘상사한테는 신뢰, 부하한테는 존경을 받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힘들잖아요. 상사한테 인정받으려면 직원들에겐 몰인정한 사람이 돼야 하고, 직원들한테 존경받으려면 상사한테는 무능한 사람으로 무시받기 쉽고…. 그래서 위아래에서 모두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찾아봤어요. 롤모델로 삼으려고요. 책은 물론, 조직 내외의 인물들에서 찾아보고 적용하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그러면서 제 나름의 감동경영 방식을 개발하고 만들어나갔습니다.”
직원 감동경영과 가족경영은 자칫 시소게임이 되기 쉬운데요. 어느 하나에 치중하다 보면 한쪽은 소홀히 하게 됩니다. 가족은 어떻게 감동시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객감동 방식과 가족감동 방식은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가족을 너무 쉽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족도 고객처럼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전략과 기획 마인드를 가지고 감동시킬 방법을 연구하라고요. 가족감동도 공짜는 없어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꾸준히 기대 이상으로 해주고,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요. 가족경영도 프로젝트를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점검하고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 원장께서 실행하신 가정경영의 대표적 히트작은 무엇인지요.
“가족경영과 조직 인사관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1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회사 운영계획을 자세하게 수립하지요. 그러나 가정에선 그런 걸 잘 안 합니다. 저는 과장으로 지내던 시절인 1990년경부터 집사람, 두 아들 등 온 가족이 참여해 가정경영계획을 매년 세웠습니다. 먼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 예컨대 건강, 재산, 가정, 친족, 문화, 지식 등으로 범주를 정해 각각 실천사항 등을 토의해 결정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노트에 기록해놓고 같이 실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서명, 관리합니다. 다음 해 초에는 결산을 해 잘잘못을 따져서 차기 계획을 수립하고요. 가족 구성원이 참여하고 공감한 것이라 실천하기가 한결 쉽고 실행률도 높더군요. 아이들에게 계획적인 삶을 사는 습관을 키워주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출근 전 1분간 가족과의 포옹 습관도 스스로 자부하는 가정경영의 히트작으로 꼽았다. ‘포옹이 포용’을 낳더라는 이야기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거실에서 1주일 1회 온 가족 회식 프로젝트 등을 실행했단다. 덕분에 각각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은 지금도 아버지를 친구처럼 여긴다. 술친구는 물론이고 스크린 골프, 당구도 같이 치고 고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는 지피지기 1호다.
둘째 아드님이 내성적이라 친구를 못 사귀자 안방을 최고급 음향, 모니터를 갖춘 피시 장비를 설치해 오락실로 만드셨다고요. 그때 ‘예산 개념 없이 무조건 무한정 지원, 이 방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글귀를 방문에 써 붙이셨다면서요.
“교육은 비용이 아니고 투자입니다. ‘정보화 기기들과 빨리 친해지고, 트렌드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만들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란 취지’에서요. 만일 내가 이것을 말로 수십 번 했다면 아이가 따랐겠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환경 조성이에요. 왜 안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고요.”
그는 “가정에서 부모도 마찬가지고, 조직에서 상사도 마찬가지다. 왜 못하냐고 질책할 것이 아니라 잘하려면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게 어른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 사고나 행동 규범을 출발시키는 게 필요하지요. 내 사고방식이나 가치체계, 생존 방식을 고객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대의 언어와 습관, 취미 등을 눈여겨보고 다가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 후 가장 확실한 보험은 배우자와의 금실이라는 시쳇말도 있습니다. 부부경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가슴에 안아버리는 것입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풀리지 않아요. 다 들어주고, 생각이 정말 다르면 다음에 마음이 편안할 때 다시 의견을 조율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부부입니다. 나이 들어선 의식적 노력이 필요해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부부애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젊어서야 애정으로 살지만, 나이 들면 인간애로 사는 게 부부 아니겠습니까.”
조 원장은 고객 감동경영을 부인 감동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결혼 20주년엔 부인을 위한 글을 직접 써 감사패를 수여했고, 30주년엔 직접 끓인 소고기미역국을 비롯해 정성 어린 생일상을 진상했다. 동시에 30주년 숫자에 맞춰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30가지 이유’를 작성해 헌정했다. 처음엔 ‘쓸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아내의 장점들이 소록소록 떠오르더란다. 이런 패키지 상품을 선사하니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술술 잘 풀리더라고.
배우자 몰래 만들어놓은 비자금 내지 비상금이 간혹 문제가 되곤 하는데요. 조 원장께선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비자금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있지만 저는 찬성 입장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가정살림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든요.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요. 비자금은 숨겨둔 돈이라는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긴급할 때 활용할 수 있어 남자나 여자나 어느 정도의 비자금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경조사비 부담도 만만찮고, 긴급 용도로 써야 할 경우도 있는데 이 비용을 배우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그때그때 손을 벌리려면 궁색합니다. 구태여 비율로 이야기하자면 총소득의 20% 정도는 비자금으로 비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 들으니 조직관리의 노하우를 가정경영에도 잘 접목시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가장 행복하셨을 때는 언제인지요?
“후배들이 멘토라고 많이 찾아와줄 때입니다. 책을 출간한 뒤 여기저기서 후배와 친구들이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사진을 찍어 보낼 때도 그렇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면접토론 때 참고서적으로 제 책 을 제일 위에 꽂아놓았을 때도 행복하더군요. 다만 이순(耳順)이라는 육십을 지나니 잘났다고 뻐기거나 욕심내는 것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익어가는 징조인지, 기운 빠지는 징조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는 앞으로 인생 4막의 꿈은 집필하고 강의하고 코칭하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역사기행이나 문화기행 같은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나 후학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 사람부자가 되면 잘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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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현재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 삼성화재 인사팀에서 채용-인사기획-노사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삼성경제 연구소 인사조직실 컨설팅 등을 수행했으며 삼성화재 인사담당 임원으로 부임, 상무이사 승진 후 삼성화재 사업부장을 지냈다. 당시 ‘함께 근무하고 싶은 상사’로 뽑혔다. 저서로는 , , 등 다수가 있다.
6개월 뒤면 강찬기(59세, 남)씨는 정년퇴직을 한다. 회사의 배려 덕에 퇴직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강씨이지만 아직 풀지 못한 미해결 과제 때문에 고민 중이다. 그의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집안의 가계부다. 대부분의 남자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강씨 역시 생활비가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주 수입원이 중단된 이후의 생활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강씨는 은퇴생활을 위한 개인 용돈과 아내가 원하는 생활비 모두를 해결하려면 퇴직 후에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부부가 식사를 하던 중 그는 아내에게 생활비 내역에 대해 물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내 김숙경(56세)씨는 대략의 생활비 규모만 얘기해줄 뿐 구체적인 내역은 복잡하다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의외로 강경한 아내의 태도에 강씨는 당황스러웠다. 혼자 전전긍긍하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재무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부부의 필요 은퇴자금 계산
상담 의뢰는 강찬기씨가 했지만 상담이 시작될 때는 부부가 함께했다. 은퇴상담은 부부가 함께하면 더 도움이 된다는 상담사의 제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상담의 첫 주제는 ‘은퇴 후 부부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얼마나 될까?’였다. 아내 김숙경씨는 현재 가치로 매월 350만원이면 본인 용돈을 포함해 가정의 생활수준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씨는 본인이 원하는 은퇴생활을 하려면 매월 15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또 퇴직 후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사회활동을 충분히 하기를 원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강씨는 강씨대로 각자 원하는 은퇴생활비의 규모를 알고 놀라워했다. 일단 부부가 원하는 매월 500만원(현재가치)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은퇴자금 규모를 계산해보기로 했다. 생활비에는 매년 3%의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투자 성향이 보수적인 부부의 성향을 고려해 현재 자산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세후수익률 연 1.5%로 운영된다고 가정했다. 부부의 은퇴기간은 30년으로 예상했다.
부부가 원하는 은퇴생활을 하려면 약 22억4000만원이 있어야 한다는 결과에 강찬기씨 부부는 두 번째로 놀랐다.
은퇴를 대비해 준비된 자산
다행히 강찬기씨는 직장생활을 정년까지 한 덕분에 국민연금으로 매월 130만원 정도를 수령할 수 있다. 퇴직연금과 아내가 개인적으로 가입해둔 개인연금도 있어 매월 120만원의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매월 250만원 정도의 연금소득을 고려해 필요한 은퇴자금을 다시 계산해보니 14억 정도의 자산이 더 필요했다. 은퇴준비자산을 계산할 때,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만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현재 보유 중인 주택(10억)과 예금(2억)을 합해도 2억원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자녀의 결혼자금(자녀 1인당 1억씩 예상)도 고려해야 한다. 몇 번의 계산 시뮬레이션을 더 거쳐 필요 자금 규모를 확인한 부부는 예상 지출내역을 세부적으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부부가 지출내역을 정리할 때 참고한 양식은 [표2]와 같다.
전화위복이 된 재무상담
부부가 함께 지출내역을 정리하는 동안 강찬기씨는 아내의 알뜰함에 놀라면서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김숙경씨 역시 한 직장에서 충실히 근무하며 가족들을 위해 경제적 터전을 마련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부부는 상담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준비된 자산으로 은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월 400만원 정도의 생활비가 적당하다는 데 합의를 했다.
부부가 각각 50만원씩 양보해 아내는 자신의 용돈과 생활비를 포함해 300만원, 남편은 100만원의 용돈을 사용하기로 했다. 친척 경조사비나 외식비 등 가정의 공통 비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항목들을 부부가 동시에 지출로 잡아놔 예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부부는 지출내역들을 정리해보며 예산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리고 사소한 다툼의 원인이었던 경조사비나 외식비 그리고 문화비 등의 예산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지출 기준과 규모를 합의함으로써 향후 다툼의 소지를 예방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생활비 문제로 재무상담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고 전화회복의 기회도 되었다. 더불어 강찬기씨는 자신이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부부는 역할과 스타일은 달랐지만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배우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두 사람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부는 새로운 30년을 더 잘 이해하며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부부심리상담까지 받기로 했다.
총 10회로 구성된 부부상담의 예상비용은 150만원. 올해 계획 중이던 남편의 정년기념 여행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강찬기씨 부부는 정년퇴직 기념여행을 ‘내면 여행’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른 아침 갈매기 울음소리에 눈이 떠진다. 찬거리가 부족하다 싶으면 낚싯대를 들고 방파제로 나서면 그만이고, 수평선을 장식하는 저녁놀은 훌륭한 안줏거리가 된다.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만큼이나 누구나 꿈꾸는 노후생활 중 하나는 어촌에서의 삶이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이 간간이 보여주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어촌생활에 대한 동경을 더욱 증폭시킨다. 현실에서도 그럴까? 전문가들은 무작정 어촌으로 떠난다고 해서 즐거운 인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잘만 준비하면 평범한 귀농보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귀어·귀촌이다.
우리가 귀어·귀촌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귀어·귀촌에 대한 명확한 정의다. 귀어 혹은 귀어업은 어업활동을 하기 위해 타지에서 어촌에 거주하는 것을 의미하고, 귀촌 혹은 귀어촌은 어업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타지에서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촌에서 ‘어업활동’을 하는가가 핵심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관계부처에서 수산업·어촌 발전 기본법 등을 근거로 이주자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귀어·귀촌이 뜨는 이유
최근 사회적으로 귀어·귀촌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다. 먼저 활발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다. 고령화로 몸살을 앓는 어촌 지역에 젊은 도시민을 유치해 활력을 불어넣고, 이를 통해 채집이나 양식 중심의 어업에서 가공이나 관광 등 2·3차 산업과의 접목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창업자금을 1인당 최대 3억원, 주택마련 지원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연리 2%, 5년 거치 10년 분활상환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산업 경영인 육성사업 등을 통해 별도의 사업자금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취업시장으로 몰려나오고 있는 조선업 퇴직자의 구제 방안 중 하나로 귀어·귀촌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증가하고 있는 어가 소득도 귀어·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어가경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어가 평균소득은 가구당 4708만원으로 2015년(4389만원)에 비해 7% 증가했다. 이는 2013년 이후 4년 연속 증가한 수치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40대 이하 경영주 어가의 선전과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효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수산물 소비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수산물 식자재는 1인당 58kg 정도로 일본(45kg)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급에 비해 소비가 늘면서 단가와 수익도 자연스레 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무작정 바닷가 마을로 떠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귀어·귀촌은 정서나 생활방식, 소득 마련 등 모든 면에서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막막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귀어·귀촌을 희망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도움이 절실한 희망자들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 있다. 귀어귀촌종합센터다.
바다에서 무엇으로 먹고살까
귀어귀촌종합센터는 한국어촌어항협회가 설립하고 해양수산부가 지원하고 있는 기관으로, 귀어·귀촌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각종 지원제도 안내에서부터 업종 및 품목별 전문적인 기술상담, 창업계획서 작성 자문까지 돕는다.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담당하는 홍순택 전문위원은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한 사전준비라고 조언한다.
“보통 특정 지역에 연고가 있고, 집안에서 하던 어업 업종이 있으면 비교적 귀어·귀촌이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에게 맞는 정착 지역과 먹고살 업종부터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아요. 또 지원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정착에 성공합니다.”
일반적으로 귀어·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경쟁력 차이가 크다고 전문위원은 설명했다.
“새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보려는 20~30대와 은퇴 후 제2인생을 준비하려는 50~60대, 그리고 도시생활에서 도태돼 갈 곳을 찾는 40대로 나눌 수 있어요. 물론 정착을 가장 잘하는 부류는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준비가 잘된 20~30대예요. 반면에 도피처를 찾는 40대들은 쉽게 정착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이니까요.”
귀어·귀촌을 통해 할 수 있는 업종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배를 사서 고기를 잡는 어선어업이다. 귀어업의 약 65% 정도가 배를 탄다. 이 중 3톤 미만의 작은 배를 사서 연안에서 조업하는 형태가 70%가 넘는다. 정부지원자금만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고 일을 배우기도 쉽다. 실패했을 때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3~5시간, 조업 일수도 연간 동해안은 150일, 남·서해안은 200~250일 정도로 다른 직종에 비해 짧다. 금어기가 존재하고 기상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업종 중 하나는 양식어업이다. 사전 지식과 자금 확보가 필수이지만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김, 굴, 전복 등의 해수면 양식 외에 육지에서 할 수 있는 내수면 양식도 있다. 뱀장어나 미꾸라지, 아열대성 민물새우인 큰징거미새우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수산물 유통업, 가공업이나 소금산업 등도 선택되고, 최근에는 어촌관광이나 해양수산레저 사업을 포함한 어촌 비즈니스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고령 은퇴자의 경우 해안가에서 조개나 낙지 등의 수산물을 채취하는 ‘맨손 어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촌에 정착만 잘 하면 맨손 어업만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는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필수 요소
전문가들은 귀어·귀촌을 위한 정보와 기초준비 단계로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후, 각 기관에서 마련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볼 것을 권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해양수산인재개발원에서 진행하는 귀어가, 귀어촌 정착교육 과정과 귀어귀촌종합센터에서 개최하는 귀어귀촌아카데미와 코칭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또 어선어업, 양식업, 해양레저 등 업종에 따른 전문 교육기관도 있다.
귀어·귀촌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귀어촌 홈스테이 지원사업도 있다. 귀어·귀촌 희망자가 어촌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착 여부나 업종 선택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숙박비와 컨설팅 비용의 80%까지 지원한다.
귀어·귀촌 지역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각 지자체의 도시민유치희망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도시민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의 경우 어촌계 가입비 면제, 어업권 매입 안내, 주거용 사택 실비 제공, 일자리 알선 등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 여건상 이런 지원책들은 지속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귀어귀촌종합센터의 SNS를 팔로우해두면 편하다.
또 귀어·귀촌 경험자들은 원하는 지역에서 미리 살아보고 마을 주민들과 사전에 의사소통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지역에 따라 어촌계 가입이 까다롭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배타적, 폐쇄적 성향을 띠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연안어업이 가능한 어장이나 양식을 위한 해수면, 해산물 채취가 가능한 해안 등 대부분의 지역 해양자원은 어촌계의 공동소유로 관리된다. 이는 어업권이자 자산의 개념이므로 어촌계의 일원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 큰 비용이 들기도 한다. 한 지역 어촌계장은 “도시민들은 어촌을 생활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제로는 생활공간이자 생업의 현장입니다. 따라서 마을의 예법이나 상호간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주)라디안(대표이사 김범기)과 가천의료기기융합센터(센터장 김선태)가 공동 개발한 의료기기가 국내와 세계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천의료기기융합센터는 길병원, 가천대학교, 라디안 등 산, 학, 병원이 공동 연구 개발한 고속제세동기(Heart Guardian)로 올해 약 2000만불(한화 약 226억 6800만원)의 수출을 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자부의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개발된 이번 의료기기는 ‘이중 고압방전 래더회로를 이용한 안정 고속 자동심장충격기 개발’로, 가천대(임준식 교수)와 길병원 응급의학과(연구책임자 양혁준 교수)와의 산, 학, 병원 공동 연구된 제품이다.
가천대는 (주)라디안에 기술 이전을 통해 기존 타사 제품에 비해 안정적이고, 반응 속도가 빠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주)라디안은 R&D 역량과 투자를 집중해서 짧은 시간 내에 제품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수출의 포문을 열었다.
또한 길병원 의료진은 제품에 대한 임상적 조언, 평가 및 동물 실험을 통해 제품 평가 및 업그레이드에 힘써왔고, 제품을 직접 구매해 제품의 판로를 개척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대표적인 산, 학, 병원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주)라디안은 현재까지 이 제품으로 약 1000만불의 수주 실적을 올렸고 올해 내에 추가로 1000만불의 수주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천의료기기융합센터 김선태 센터장은 “현재 가천의료기기 융합센터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 및 임상 의사들의 컨설팅,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 등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며 “의료기기 기업과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라디안의 김범기 대표는 “정부의 지원과 함께 대학과 병원에서 지속적으로 기술력 지원과 임상테스를 통해서 세계적인 자동심장충격기 제품이 나올 수 있었으며, 기업의 다양한 판로개척으로 국내를 뛰어 넘어 세계 속의 한국을 표방할 수 있는 자동심장충격기다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주)라디안은 최근 진행된 ‘제33회 국제의료기기 & 병원설비 전시회’에 참가해 ‘저출력 자동심장충격기’를 새롭게 선보이며 바이어들의 시선을 끌며, 최종 조율 끝에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유럽지역과 태국, 몽골 등 동남아시아로 수출계약을 확대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라디안은 글로벌한 자동심장충격기 수출기업으로 성장하며 2017년 서울특별시와 SBA(서울산업진흥원)의 우수 중소기업 인증사업인 ‘2017 하이서울브랜드’의 우수 일자리 창출상 부문에 선정이 되며,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하이서울브랜드’로 선정이 됐다.
김범기 대표는 “수출확대와 함께 올해부터는 국내 자동심장충격기(AED) 보급은 2만~3만대에 불과하지만 2017년을 시작으로 라디안은 자동심장충격기(AED) 렌탈사업을 전개해 렌탈을 통한 헬스케어 서비스 조직을 구축해서 가정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심장충격기 렌탈 사업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범기 대표는 “2016년이 아시아로 수출을 시작한 원년이라면 2017년은 아시아 시장을 더욱 확대하고, 2017년을 유럽과 미주로 수출시장을 넓혀 나가는 전략으로 수출 원동력의 한해가 되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고 전했다.
최문희 FLP컨설팅 대표
김병호(59세)씨는 다음 달이 되면 정년퇴직이다. 30년 넘게 근무해온 직장을 떠나야 하는 김병호씨는 그야말로 시원섭섭한 마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몸에 배어버린 직장인의 삶을 접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두렵기도 하다. 김병호씨의 지난 60년의 삶은 퇴직 이후를 위해 준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잘살아왔다고 자부를 하는 김병호씨는 남은 시간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며 재무상담을 의뢰해왔다.
◇ 김병호씨 현재 상황
김병호씨의 가족으로는 전업주부인 배우자(56세)와 현재 직장인 큰아들(29세),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작은아들(26세)이 있다.
김병호씨의 현재 재무상황은 아래([표1], [표2])와 같으며 퇴직을 하면 약 2억2000만원의 퇴직금이 예상된다. 김병호씨 가정의 현재 생활비는 매월 30만원의 대출이자를 포함해 350만원 정도가 지출되고 있으며, 취업한 큰아들이 매월 50만원의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다. 대출을 전액 상환하고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면 가계생활비는 220만원 전후로 예상된다.
① 퇴직 후, 그리고 자녀 독립 후 예상현금흐름을 알고 싶다.
② 1억원인 부채를 어떤 방식으로 상환하는 것이 좋을지 알고 싶다.
③ 퇴직금의 전체 혹은 일부를 퇴직연금으로 수령하기를 원한다.
④ 자녀 1인당 1억원, 합계 2억원의 자녀독립 지원자금을 원한다.
⑤ 현재 가입 중인 보험상품의 적합성을 검토하고 싶다.
◇ 김병호씨 재무 진단 제안
부채상환 김병호씨는 부채 1억원을 현재의 여유자금으로 당장 상환할 수도 있고 퇴직금 중 일부로 상환할 수도 있다. 아니면 주택을 매각해 부채를 상환한 후 주택의 규모를 줄이거나 주택 비용이 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현재의 주택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여유자금이나 퇴직금의 일부를 자녀의 독립지원자금(자녀 1인당 1억, 합계 2억원)으로 준비해두고 싶다면 주택대출상환용 주택연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주택대출상환용 주택연금은 주택연금지급가능액의 70%의 범위 내에서 인출(1회에 한함)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주택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부채를 상환하고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다. 김병호씨가 주택대출상환용 주택연금을 60세 시점에 신청하면 대출상환 후 매월 46만원의 주택연금을 종신 지급받을 수 있다.
◇ 실업급여
정년퇴직은 실업급여 수급사유에 해당한다. 김병호씨는 10년 이상 고용보험가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1일당 5만원 한도로 하여 월 150만원을 퇴직 후 8개월(240일) 동안 총 1200만원의 실업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실업급여는 퇴직 후 12개월이 지나면 잔여기간에 관계없이 수급자격이 소멸되기 때문에 퇴직 후 지체없이 거주지 관할 고용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 국민연금
1957년 생인 김병호씨의 완전노령연금 수급가능연령은 만62세가 되는 시점부터다. 연금액은 현재가치로 매월 110만원 정도 예상된다. 현재 김병호씨는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어 사업소득이 발생하지만 재직자노령연금의 지급이 제한되는 기준(2017년 기준으로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의 합계금액이 필요경비 공제 후 월 217만6483원원)이하이기 때문에 62세가 되었을 때 국민연금을 전액 수령할 수 있다.
◇ 퇴직연금
김병호씨가 퇴직금 중 일부인 1억원을 IRP(개인퇴직계좌)에 납입해 30년간 수령한다고 가정할 때 예상되는 월 수령액은 30만원이다.
◇ 개인연금
김병호씨가 가입한 연금보험은 현재의 공시이율 조건일 때 지금부터 김병호씨가 생존하는 동안 매월 40만원의 연금이 지급되고 만약 김병호씨가 먼저 사망하면 부인이 생존하는 동안 매월 20만원이 지급되는 부부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연금상품이다.
◇ 보장성 보험
김병호씨의 경우에는 연금과 부동산 임대수익만으로도 현재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 다만 고액의 치료비가 요구되는 질병이나 장기간 간병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현재의 수입으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갈수록 치매 등 장기간병 상태의 환자가 증가하면서 장기간병보험의 보험료가 비싸지고 있는 추세다. 김병호씨 부부가 가입한 종신보험은 1급의 장해(치매로 인하여 항상 간호를 받아야 하는 경우 포함) 상태가 되었을 때 사망보험금(1억원)을 지급하는 보험상품이다. 그리고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고액의 치료비가 발생한 후 사망했을 때 사망보험금이 유가족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종신보험은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다.
암보험은 보장기간이 80세인 점이 좀 아쉽다. 부인이 가입하고 있는 실손보험의 특약에는 암이나 뇌졸중, 그리고 심근경색과 같은 주요 질병에 대한 진단비가 포함되어 있지만 김병호씨의 경우는 퇴직으로 인해 질병이나 상해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늦기 전에 월 보험료 10만원 수준에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실손담보를 포함한 건강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한다.
3년 전에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서울에 거주 중인 손병수(58세)씨가 재무상담을 의뢰해왔다. 손병수씨가 재무상담을 통해 도움 받고자 하는 내용은 매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현금흐름 확보 방안이다.
1. 현재 상황
손병수씨의 가족으로는 전업주부인 배우자(56세)와 출가한 딸(33세)과 작년에 취업을 하고 회사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아들(29세)이 있다. 퇴직 후 2년 동안 손병수씨는 재직 당시 거래처였던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며 매월 2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 하지만 1년 전 두 번째 퇴직을 한 이후 지금까지는 별다른 수입이 없다. 첫 번째 퇴직으로 인해 발생했던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수령해 딸 결혼자금과 아들 대학등록금으로 대부분 썼기 때문에 퇴직연금은 없는 상태다. 매월 200만원 전후로 소요되는 생활비는 1년 전부터는 실업급여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충당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아들 결혼자금으로 1억원 정도의 지원을 예상하고 있다.
2. 재무진단
3. 제안
손병수씨가 의뢰한 매월 200만원 전후의 생활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5층 연금체계를 활용해야 한다. 5층 연금체계는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 1958년생인 손병수씨의 완전노령연금 수급가능연령은 4년 뒤인 62세부터다. 연금액은 현재 가치로 매월 110만원 정도 예상된다. 손병수씨는 조기노령연금수급이 가능한 상태이지만 여유자금이 있기 때문에 완전노령연금에 비해 12%까지 연금수령액이 삭감되는 조기노령연금을 미리 받은 받을 필요는 없다.
퇴직연금 손병수씨는 퇴직연금이 없다.
개인연금 현재 가입 중인 개인연금도 없다. 정기예금 중 1억원을 배우자 명의로 하여 일시납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손병수씨의 부인은 본인 명의의 국민연금이 없다. 남편인 손병수씨가 사망한 후에는 유족연금 명목으로 손병수씨 명의로 받던 노령연금액의 60%를 수령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의료비가 생활비가 될 정도로 의료비 지출이 많아진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약 12년 정도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손범수씨가 부인을 피보험자로 한 연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일시납연금보험을 가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입 즉시 연금을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금지급 시기를 충분히 여유 있게 설정해두고 그 이전에 자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갈 수 있다. 현재 56세 여성이 1억원의 연금보험에 가입해 10년 뒤인 66세부터 연금을 개시한다면 매월 60만원 정도의 연금수령을 기대할 수 있다. 단 연금이 개시된 후 피보험자가 사망하게 되면 최초 가입금액에서 사망할 때까지 지급한 연금총액을 차감한 금액만 상속인에게 지급하는 조건이다.
주택연금 주택연금은 주택 소유자나 그 배우자가 만 60세 이상일 때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손병수씨는 만 58세이기 때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2017년 기준으로 7억원의 주택을 종신연금 수령조건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60세 기준으로 매월 146만원 정도의 금액이 지급된다.
손병수씨 부부는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한 2년 후까지 현재 거주 주택을 보증금 1억원에 매월 120만원의 월세를 받는 조건으로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세 보증금 1억원과 현금 1억원을 합해 집의 규모를 줄여 서울 외곽 지역에 2년간 전세를 임차해서 살기로 했다.
직업 중장년층이 퇴직 후에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다. 눈높이를 낮춰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명함이 나를 설명하던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손병수씨는 우선 자신의 경력을 살려 고용노동부에서 추진하는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에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서 매월 30만원 정도의 소득을 기대한다. 동시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요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남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4. 실행
퇴직한 지 3년이 지난 손병수씨는 최근에 와서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손병수씨는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는 정부지원사업 중심의 일자리와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매월 100만원의 근로소득을 목표로 일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이 나오는 시기에서 부인 명의의 개인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까지는 근로시간을 줄여 매월 50만원 정도의 수입을 목표로 일을 하기로 계획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