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디지털 약자 위해 키오스크부터 표준화 시작
- “주문하시려면 터치해주세요.” ‘터치? 왜 메뉴가 없어?’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렀더니 그림과 글자가 나왔다. “매장에서 식사... 테이크 아웃...” 포장해서 가려고 했는데, 포장 버튼이 안 보인다. 하나는 매장에서 먹는 것이고 하나는 쇼핑봉투 그림이 있으니까 이게 포장인가? 답답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확대하듯 늘려보려고 모니터에 손을 댄 순간 화면이 전환됐다. 더 작은 그림이 여러 개 등장했다. 글씨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왜 화면이 전환됐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문을 해보기로 한다. 불고기를 찾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갑자기 메뉴가 사라지고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화면이 뜬다. ‘오늘 안에 주문이 되는 걸까,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직원은 없는지 둘러본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가 흔히 겪는 일이다. 이제는 디지털에 익숙해졌다는 중장년도 메뉴를 찾을 때 종종 애를 먹는다. 음식점, 쇼핑몰, 주민센터, 심지어 약국까지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키오스크(kiosk)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정보 단말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키오스크의 도입은 더욱 빨라졌지만, 이용자들의 불편함은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디지털 약자인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키오스크는 큰 산이다. 키오스크 문턱을 낮추기 위해 키오스크 및 가전제품의 접근성 표준화에 나선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의 이성일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 이용 중 불편 또는 피해를 경험한 적 있다’는 질문에 46.6%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주문 화면의 작은 글씨가 불편하다는 답이 많았다. 2022년 2월 키오스크 KS표준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이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업종이나 브랜드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소비자원이 공공·민간분야 키오스크 중 20대를 조사한 결과 70%가 KS 표준에서 규정한 글씨 크기보다 작았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는 접근성에 관한 공식 인증기관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인증을 해주는데, 현재는 웹 접근성 품질 인증에 관한 제도뿐이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전기·전자 제품과 가전제품, 키오스크를 포함한 지능 정보화 제품의 접근성을 평가한다. 고령자, 장애인 등 디지털 취약 계층이 제품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제품 개발을 돕고, 접근성 평가 기준과 표준화 방안 등을 연구한다. 접근성 공식 인증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전 정보화지능원)에 접근성 표준을 제시하고 기준을 함께 만들고 있다. 연구원은 10여 명의 국내 표준화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 2022년 8월 발기했다. 이성일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 이사장은 “제대로 된 접근성 시험평가 방법을 만들어 보고 싶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시스템경영공학부 교수이자 국가기술표준원의 전문위원으로 ATM 표준부터 애플리케이션 설계 표준까지 국내 표준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왔다. 함께 모인 이들은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의 표준화와 접근성을 만들어온 전문가들이다. 그동안 키오스크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표준화 기준을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었다. 표준 자체가 국가 표준이 되려면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이 키오스크 표준화를 따를 만한 지침이나 법적 의무도 없었다. 정보화기본법에는 장애인과 고령자가 지능정보 제품에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하 장차법)에서도 서비스와 제품 접근성을 갖추도록 하는 지침이 실려 있다. 최근에는 장차법에서 시행령을 통해 키오스크 접근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다만 시행은 2025년부터다. 이에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위한 움직임이 먼저 시작됐다. 이성일 이사장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가 필요하다는데 깊이 공감했다. “키오스크 어려워하시는 분들 많죠. 사실 고령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요즘은 공항에서도 모바일 체크인이라고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골프장도 키오스크로 계산해요. 중장년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주민 센터 수영 강습 등록도 키오스크로 바뀌었더라고요. 주민 센터 같은 경우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많은데, 등록할 때마다 자녀들을 데려오신다고 해요. 키오스크나 가전제품은 복잡해서 인터페이스도, 사용자 조작 방식도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동안 학교, 기업, 정부와 함께 프로젝트를 통해 평가 방법론 등을 만들어 시범 평가를 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을 만들게 되었어요.”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 발효 시기에 맞춰 시험 평가 방법론 등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웹와치와 함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키오스크 평가기관으로 선정됐다. “사실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디자이너들도 내가 접근성이 높은 제품을 잘 만든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소송할 때 판사의 판단 근거로써 필요하기도 하고요. 이런 수요들을 반영해 접근성 인증 시험 평가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지침에 띠라 키오스크가 잘 만들어졌는지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UX, UI를 테스트합니다. 평가를 종합해 과학기술정통부에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에서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받은 기업은 조달청 키오스크 납품 우선 선정 대상이 된다. 연구원은 키오스크 접근성 설계 표준에 맞게 키오스크가 잘 만들어졌는지를 본다. 또 실제 디지털 취약계층을 섭외해 조작을 테스트한다. 어느 지점에서 머뭇거리는지, 조작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기록한다. 평가가 끝나면 결과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전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선구매 대상 추천 여부를 결정하면, 최종 승인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한다.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키오스크 접근성 평가를 받으려는 기업들이 많지는 않다. 연구원 평가를 받으면 정부에서 인증을 주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들기 때문. 이에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민간 인증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생각보다 가전제품에서 접근성 인증 수요가 많습니다. 미국에는 ADA라는 접근성에 관한 표준법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수출 자체가 안 됩니다. 강제성이 있고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법이에요. 이와 관련한 소송도 많습니다. 유럽에도 접근성 표준에 관한 법이 있어요. 그래서 수출을 해왔던 기업들은 접근성 인증을 받고 싶어 합니다. 저희도 2000년대 초반 정보화 지침, 접근성 지침 등을 내놓았는데, 역시 비용 문제 등이 있어서 국내에서는 강제화하지 않는 쪽으로 추진되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국내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의뢰를 받아 가전제품의 접근성을 개선하는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전제품 접근성 인증 모델과 프로세스 평가를 위한 규격 표준을 실험하고 있다. 접근성 평가와 인증을 위한 표준화 작업은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일 이사장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함께 현금자동인출기(ATM)의 접근성을 개선해 전국 은행으로 보급한 주인공이다. 고령자가 사용하기 쉽게 화면 아이콘 크기를 키우고, 시청각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점자 자판, 이어폰 슬롯 등을 적용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시도가 각 분야에서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장차법에서 키오스크, 애플리케이션 등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걸 시행령으로 이번에 넣었죠. 애플리케이션은 의식주 관련해 기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많아요. 최근에는 요양이나 장례 서비스와 같이 고령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이용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으니 제품이나 환경 자체가 그에 맞춰 변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UX, UI 접근성 평가의 길을 연 한국접근성평가연구원이다. 이성일 이사장은 점차 디지털 약자의 디지털 접근성이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 “접근성 인증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모델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체계화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심사평가 검증 기준을 제대로 갖춘 결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2023-05-04 13:18
-
- “일하는 노년 만들자” 美 최장수 재취업 프로그램 SCSEP의 비결
- 미국은 한국보다 2년 앞선 2015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타 선진국과 비교하면 30~40년 가량 뒤늦게 도달한 셈이다. 고령사회 후발주자인 만큼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해나가는 가운데 오랜 기간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제도가 있다. 지역사회 기여형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 일명 SCSEP(Senior Community Service Employment Program)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SCSEP은 1965년 미국 노인법(Older Americans Act, OAA)에 따라 시행됐다. 미국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연방 인력개발 프로그램으로, 현재 미국의 거의 모든 카운티에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상자는 미국 55세 이상 저소득 실업자로, 가족 소득이 연방 빈곤 수준의 125%를 넘지 않아야 한다. SCSEP는 중장년이 일자리를 찾고 실업 이후에도 삶의 질을 유지하게끔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 병원, 탁아소 및 노인 센터를 포함한 비영리 및 공공시설에서 다양한 지역 사회 봉사 활동과 업무 경험을 제공해 구직 활동에 대한 준비와 더불어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고취시킨다. 아울러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주당 평균 20시간 일을 하면서 그에 따른 임금을 받게 된다. 프로그램 운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미시시피주를 기준으로 살펴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시시피주 주관 SCSEP 서비스 프로그램 1) 개인 맞춤 계획 수립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중장년의 미래 설계를 위한 계획 수립을 돕는다. 노동시간, 임금, 직업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 참가자 설문을 통해 개인 맞춤형 목표를 설계한다. 프로그램 운영위원회가 참가자 모니터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관리하며 개인 맞춤형 시간표를 제공하여 역량개발을 돕는다. 개인별 맞춤 계획 후에는 파트너 기관 소개, 지역행사 및 취업박람회 참여, 소셜미디어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2)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역량 함양 개인의 역량 향상과 현장 경험을 위해 지역사회 봉사 기회를 제공한다. 지역사회 봉사과제는 상대적으로 저숙련 작업이기 때문에 서류 정리, 데이터 입력, 접수, 전화 응대 등의 업무수행이 일반적이다. 직업 경험이 없는 참가자에게는 청소 업무, 고객 서비스 업무 기회를 제공한다. 컴퓨터 활용 능력 향상을 위해 교사 보좌관, 도서관 보조원 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3) 튜터링 서비스 제공 프로그램 내에서 튜터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의 공공서비스를 이용한다. 기본 기술교육을 비롯해 자가 진도 검정고시·ESL 교육, 동반 돌봄교육, 컴퓨터 활용교육, 지게차 작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공인 산업별 교육이 있다. 과정상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해당 분야 경험들로 구성된 멘토 튜터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SCSEP는 참가자에게 최소 6개의 프로젝트에서 하나 이상의 구직 관련 워크숍을 제공한다. 워크숍은 인터뷰 기술, 임금·급여 협상, 적절한 복장, 자기 홍보, 이력서 개발, 면접 기술 연마 등을 포함한다. 4) 일자리 연계 및 사후 관리 프로그램과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 혹은 단체와 연계하여 참가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참가자는 연계된 기업 혹은 단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프로그램 운영진은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프로그램 졸업자가 지속적으로 고용됐는지 확인한다. 취업 후에도 현장이 요구하는 부족한 개인 역량을 향상하도록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발췌 서울시50플러스재단 ‘50+정책동향리포트’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이하은 미국통신원은 ‘50+정책동향리포트’를 통해 “SCSEP 프로그램은 적극적이고 세심한 취업역량강화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노동부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SCSEP 프로그램을 계속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취업 장벽에 직면한 중장년들이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아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으로 프로그램을 정의한다. 취업뿐 아니라 더 넓은 관점에서 신체적, 정신적, 재정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 개선 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중장년 정책에 계속적인 참고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실제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관할 부서인 미국 노동부 측은 2018년 SCSEP 성과 자료를 통해 “SCSEP는 중장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포함해 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설계됐다. 실제 참가자 고객 만족도 설문조사 데이터에서 SCSEP 프로그램이 참가자의 신체적, 정서적, 재정적 삶의 질을 효과적으로 개선했으며, 일정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 프로그램에 만족한다는 의견이 일관적으로 나왔다”고 발표한 바 있다. SCSEP의 지원을 돕는 미국은퇴자협회재단(AARP Foundation)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재단이 공개한 인터뷰에 따르면, 60세에 노숙자가 되어 희망을 잃고 지냈던 한 참여자는 SCSEP 프로그램이 인생의 큰 기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침체로 직장을 잃고, 가족까지 잃었다. 한없이 추락하던 그때 우연히 SCSEP 전단지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지역 사회 서비스를 통해 직업 기술을 습득했고, 그에 따른 생활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코로나19로 난항을 겪었을 때에도 SCSEP의 지원으로 포기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60세가 넘더라도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다시 얻었다”며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중장년들이 SCSEP를 통해 일자리에 희망을 얻길 바랐다.
- 2023-05-03 09:38
-
- 日 은퇴자들, 노후주거 대안으로 빈집 구독 ‘호퍼’ 주목
- 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 빈집 해결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주거구독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는 다거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이동을 반기는 분위기다. 70대의 노만 겐조(乃万 兼三) 씨는 은퇴 후 가족의 사업을 도우며 수도권에서 주로 거주하지만,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50대의 세시타 유키에 씨는 리노베이션 전문 건축가로 25년간 일하다가 2021년부터 전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다거점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장인’이라고 불리는 고령자들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지역에서 일할 수 있다. 다거점 생활 선호하는 ‘호퍼’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주(定住)보다 다거점(多據點) 생활(여러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옮겨 다니는 것)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을 찾기 위해 미리 살아보고 싶은 고령자, 일을 유지하되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관심이 높다. 주거구독 서비스 어드레스(ADDress)의 ‘ADDress 다거점 생활 이용 실태 리포트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다거점 생활을 하는 사람은 프리랜서(30.7%)보다 회사원(40.4%)이 더 많았다. 다거점 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워케이션’(일+휴식)이 32.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주요 생활 거점’(24.2%)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체류지에서 일은 하지 않고 액티비티, 휴가, 관광을 위해’라는 응답은 20.2%였으며, ‘원격근무’라는 응답도 19.7% 수준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40.4%는 ‘머지않아 이주할 곳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드레스는 이들을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라고 부른다. 하나의 주거지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드레스는 “다거점 지역을 이동하는 교통비가 1만 엔 안팎”이라면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호핑하는 것’(옮겨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식비와 교통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연령대는 60대로 지역을 더 활발하게 둘러보는 경향이 있었다. 집도 ‘구독’하는 시대 최근에는 주거를 ‘구독’한다는 개념도 생겼다. 정액제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난 것. 주거구독 서비스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어드레스는 자연과 역사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들을 리모델링했다. 20여 곳의 지자체가 함께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내면 어드레스에 등록된 전국의 주택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이 단순히 집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각 주택에 ‘야모리’(家守)라고 불리는 생활 교류 서포트 스태프를 두고 있다. 어드레스 이용자들은 야모리 덕분에 지역을 좀 더 알게 되고 지역 커뮤니티에도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야모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는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이면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참여해 2만~5만 엔(약 20만~50만 원)의 용돈도 벌고, 빈집을 임대한 집주인에게는 월 약 4만 엔의 임대수익이 보장된다. 지역도 살리고 빈집 문제도 해결하면서 이용자들은 여러 지역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거구독 서비스다. 크로스 하우스(XROSS HOUSE)는 도쿄도 내에서만 특화된 주거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아파트, 개인실, 세미 프라이빗, 다인실 등 네 종류의 주거 형태를 제공한다. 비어 있는 집들을 모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 요금이 같은 집이라면 무료로 이동하며 살아볼 수 있다. 하프(HafH)는 빈집을 활용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집을 구독할 수 있어 인기다. 제2의 주거 ‘코리빙’(Coliving), 여행하고 일하는 ‘트래블링’(Traveling), 만남과 배움 ‘코워킹’(Coworking) 등 세 종류의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들도 주거구독 서비스를 반기고 있다. 빈집 이주자를 위해 ‘빈집 뱅크’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주거구독 서비스 업체들과 협업해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17년에는 주택안전망법을 개정했다. 지자체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관계인구가 되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관계인구는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를 말한다. 어드레스 설문조사에서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사원 중 40%는 부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어드레스는 “향후 기업들이 근로자의 다양한 근무 방식을 인정한다면,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지역 고용 창출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2023-04-24 08:49
-
- 음식과 역사 한번에 즐기는 안성 ‘시간여행’
-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편이 못 되다 보니 가능하면 이럴 땐 피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 혹은 동행 한 명쯤과 다니기 좋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은 어수선함이나 소음으로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좋다. 혼자서 자기 속도대로 구경하고 한참씩 멈춰 있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말이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생각의 방향으로 돌아보고 나서 만나면 된다. 이번에 가본 안성의 한국조리박물관도 그렇게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조리박물관의 메인 전시관과 요리아트스쿨 교육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너른 공원과 잘 정돈된 조경, 예쁜 카페와 식당까지 고루 잘 조성된 테마파크형 박물관이다. 서양요리 100년의 역사를 갖춘 한국조리박물관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전시관은 국내 서양요리 역사, 조리인, 메뉴 레시피, 식문화 조리단체, 조리기구와 도구, 소스와 향신료, 커피·바리스타·와인·베이커리 등 8개 테마로 구성되었다. 공간 구획에 따라 준비된 각종 자료들이 생생한 역사를 전달한다. 찬찬히 돌아보며 만난 도구 하나하나, 맛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나 작은 소스 하나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뜻깊은 관람이다. 이를 이루고자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이며 나아간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총 부지 1만 평 정도의 테마파크형 박물관으로, 자연 속에서 관람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번엔 조용히 혼자 전시장을 돌아보려던 생각을 바꿨다.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려는데 안내석에 계시던 분이 말을 건넨다. “해설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사실 해설을 들으며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며 그냥 들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대로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해설사로 교육받으신 분답게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친절한 안내와 꼼꼼한 설명으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안내를 하시는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연륜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성시청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현재 이곳 한국조리박물관에서 파견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문화해설사는 20명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이어서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합니다. 이곳의 문화해설은 팀마다 다르지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경우에 따라 세 시간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관람객들도 즐겁고, 잘 따르도록 리드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 즐거움이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합니다.” 맡은 일에 자부심이 넘치신다.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귀에 잘 들어오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주어진 일이 즐겁다고 연신 말한다. 유용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전해진다. “내가 7학년입니다, 하하하. 건강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하는 일이 대가 여부를 떠나서 보람이 큽니다. 문화 관련 일을 접하는 것도, 또 전시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다워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람찬 나날 속에 보내는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사는 시니어에겐 안정된 노후나 취미 생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후의 경제활동이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필요하다.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처럼 일이란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진취적인 삶이 행복을 유지해준다. 마침 한국조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최수근 관장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경희대 교수를 은퇴한 최 관장은 여러 호텔 근무 경력도 지닌 식품학 박사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분이다. 특히 ‘소스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요리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 르코르동블루로 유학을 갔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개인박물관이었어요.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셰프의 기념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방 관련 사업을 하는 이향천 대표를 만난 겁니다.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한국 최초의 조리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요리 분야 원로들이 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고 저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지금도 콘텐츠 발굴이나 행사 진행을 하고, 자문을 얻으며 공부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언제든 이곳에 찾아오시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넓은 공원의 자연과 전시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조리박물관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성의껏 이야기해주셨다. 일정 때문에 급히 이동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다해 조리박물관의 의미를 전해주시는 마음이 와 닿았다. 한국조리박물관에 가면 근현대 요리와 조리의 방대한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된다. 조리계 원로들과 한국 조리명장들이 분야별 자문위원단으로 동참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요리학교, 셰프들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며 진행해온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주방 제조업계의 이향천 대표와 한국 조리업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려는 최수근 관장의 열정이 힘을 합친 결과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의 밥상’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요리사가 들려주는 대통령의 밥상 이야기와 청와대 요리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의 식기가 역사 순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빈 만찬에 일본 도자회사의 그릇을 사용해왔다. 이를 본 육영수 여사가 한국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고, 그 뒤로 국빈들에게 당당히 우리 그릇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가히 요리와 먹방의 시대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맛의 역사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 알차다. 조리인들의 철학과 발자취를 돌아보며 흥미로운 요리 세계로 빠져볼 만하다. 안성 일죽면에 가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맛의 원천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서일농원 한국조리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서일농원이 있다. 볕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장독대에서 우리의 장맛이 익어가는 옛 정서를 만끽해볼 만하다. 연못가를 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차분히 사색에 빠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문이 비로소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죽주산성 죽산면 쪽으로 조금만 더 달려보자. 시원하게 죽주산성에 올라 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 2023-04-21 08:25
-
- 변화하는 은퇴 후 주거 공간... 기업들이 꼽은 트렌드는?
- 코로나19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욕구가 세분화됨에 따라 기업들이 생활 및 휴식 외에 복합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주거 상품을 속속 공개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미래 트렌드와 주거의식 변화에 따른 주거복지 대응전략’에서 주거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한 결과, 현재 국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거 기능은 ‘주거·업무 등 복합적 기능의 공간’(60.8%)으로 나타났다. 대상자들은 이다음으로 ‘교육·문화·교육 등 서비스의 소비 공간’(36.6%)을 꼽았다. 미래에도 역시 ‘주거·업무 등 복합적 기능의 공간’(55.8%)을 중요한 기능으로 선택했으며,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친환경적 공간’(41.0%)이 뒤를 이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요구와 사회적 흐름을 반영해 주거상품 ‘더플러스하우스’를 공개했다. ‘더플러스하우스’는 가변형 주거 형태를 통해 가족 구성원 각자가 원하는 목적의 공간으로 변형할 수 있게 한 다목적 세대 분리형 평면이다. 더플러스하우스 평면을 적용하면 별도 세대를 복층형으로 구성할 수 있다. 주세대와 플러스세대는 다른 층에서 각 세대로 진입할 수 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필요시에만 내부에서 계단을 연결해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는 ‘수익형’, △출가 자녀 세대와 함께 사는 ‘자녀 분리형’, △한 세대가 복층을 모두 사용하는 ‘멀티형’ 구성을 각 거주민 니즈에 따라 제공한다. LG전자는 일하면서 휴가를 즐기는 워케이션, 5일은 도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5도 2촌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고객이 늘어남에 따라 ‘스마트코티지’를 선보였다. 스마트코티지는 LG전자의 에너지 및 냉난방공조 기술, 가전을 적용한 세컨드 하우스 형태의 소형 모듈러 주택이다. 구조물을 사전 제작해 현장에 설치하는 프리패브(Prefab)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시제품은 복층 원룸 구조로 31.4㎡ 크기다. 거실과 주방이 한 공간에 있고, 화장실과 파우더룸을 별도로 갖췄다. 2층은 침실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면서 반려동물 특화를 앞세운 주거 공간도 늘고 있다. 다양한 펫 전용 시설 및 특화 설계를 갖춘 ‘펫앤스테이’가 대표적이다. 한화건설이 공급한 아파트 한화 포레나 수원 장안에는 반려동물 놀이터인 ‘포레나 펫 파크’와 특화 설계 ‘펫 프렌즈 인테리어’가 적용됐다. 서울 마곡지구 마이스 복합단지 일대에 자리할 ‘VL르웨스트’는 반려동물 가구를 위한 '반려동물 동반 입주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반려동물의 건강 케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다양한 강좌 클래스 등 반려동물과 함께 일상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 2023-04-20 09:16
-
- 헬스케어 플랫폼 ‘굿닥’, 국민 상비앱 꿈꿔
-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야 할 때, 우리는 지인의 정보에 기댄다. 이런 의료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합리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헬스 케어 플랫폼이 있다. 국민 ‘상비 앱’을 꿈꾸는 굿닥(goodoc)이다. 굿닥의 주 서비스는 비대면 진료, 병원·약국 검색, 전국 병원 예약이다. 굿닥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다운로드 이용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임팩트피플스 조사에 따르면 4060 응답자는 활발하게 이용하는 비대면 진료 앱 1위로 굿닥(35.1%)을 꼽았다. 의사와 환자 연결하는 국민 ‘상비 앱’ 굿닥은 정보 누적을 통해 의사와 환자를 더 많이 연결하고자 한다. 5500여 개 병원이 굿닥이 자체 개발한 태블릿을 사용하고 있다. 이 태블릿을 통해 매달 120만~150만 명의 이용자가 병원 접수를 하고, 굿닥에 리뷰를 남긴다. 더 많은 병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 태블릿을 사용하는 병원을 2만 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굿닥은 비급여 진료 정보쪾예약을 제공하는 ‘클리닉 마켓’과 헬스케어 상품을 판매하는 ‘굿닥스토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앱 사용이 많은 3040세대가 자녀나 부모님의 건강까지 돌본다는 점에 착안해 ‘가족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플랫폼의 순기능을 활용해 질 좋은 의료 정보를 제공하려는 고민에서 시작한 굿닥은 이제 언제든 의료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들이 찾는 국민 ‘상비 앱’을 꿈꾼다. 사람들이 자주 앱을 사용하고 싶도록 만들고자 정보 입력 방법을 최대한 단순하게 개발하고 있다. 임진석 굿닥 대표는 앞으로 앱이나 TV 같은 매개체 없이 인터페이스만 남는 형태가 되리라 전망한다. 태블릿이 하는 기능을 로봇이 대체하는 세상이 올 테니 말이다. 비급여 비대칭 정보 해소해야 임 대표는 특히 비급여 분야 정보의 비대칭 해소를 강조한다. 흔히 비급여 하면 성형 관련 분야만 떠올리지만 치과의 임플란트 치료, 정형외과 도수 치료, 소아과의 언어·성장 클리닉, 매년 받는 건강검진도 모두 비급여 분야다. 임 대표는 특히 어르신이 많은 지역에서 비급여 분야의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정보가 제공된다면 지역에 사는 분들도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굿닥은 한발 한발 의료 접근성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 ‘건강AI챗봇’ 서비스도 시작했다.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할지 막막한 이용자에게 AI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질문에 따라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나 병원 예약을 연결하는 점은 굿닥만의 특징이다. 임 대표는 이용자가 AI에게 어떤 질문을 하든 결국 의사와 상담해야 하기 때문에 진단까지 AI가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환자와 의사의 연결점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필요한 질문을 터치하는 방식이나 키워드 조합 및 자동완성 기능 등을 활용해 AI가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TV로도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 새로 출시하는 신제품에 굿닥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임진석 대표는 “나이 들수록 큰 화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TV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의료 접근성도 더 높아질 것”이라며 “의료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 이뤄질 수 있고,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플랫폼에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의 문제점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이 불편해 거동이 어렵거나, 의료 시설과 거리가 멀어 병원을 찾기 힘든 고령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임진석 굿닥 대표 인터뷰 건강관리의 일상화 “염증이 암 되지 않도록” “2012년 처음 굿닥을 시작한 이후, 많은 분들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졌는데요. 배달도 택시도 기차도 모두 모바일화되었는데, 병원은 여전히 오프라인으로 방문해야만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병원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느린 편입니다. 의료는 연령대가 높은 분들의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에, 어떻게 단순화해서 더 쉽게 연결할지 고민하면서 UX라이팅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요즘 택시 타면 기사님들이 스마트폰에 목적지를 말해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음성 인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바이오 인증, 음성 인식 등 입력이 생략된 방식이 더 보편화될 겁니다. 앞으로는 굿닥을 통해 상담·진료·예약에 이르는 시간을 줄이고, 복약에 관한 예후 관리, 질병을 막는 예방 관리(PHR)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생애 전반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으로 건강관리의 일상화까지 연결하고 싶어요. 굿닥의 모토는 ‘염증이 암이 되지 않도록 하자’입니다.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더 젊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아플 때만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는 국민 상비 앱으로 함께하고자 합니다.”
- 2023-04-20 09:15
-
- “아들 납치됐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급증… 관련법 제정 시급
- “아들이 납치되었어요. 빨리 돈을 찾아야 해요.” 지난 2월 대전시에서 한 70대 여성은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우체국에서 현금 2400만 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우체국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제지한 덕분에 여성은 금융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고령자들은 정보기기 사용 미숙, 낮은 정보 접근성 등으로 인해 금융 사기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높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고령자 보호에 미흡한 실정이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60세 이상 고령층 대상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은 감소 추세에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2018년 70251건에서 2021년 12107건으로, 피해 금액은 2018년 4440억 원에서 2021년 612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고령층 대상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의 비중은 늘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고령층 피해 비중은 2018년 16.2%에서 2022년 상반기 56.8%로 3.5배 증가했다. 피해 금액 중 고령층 피해 비중도 2018년 22.2%에서 2022년 상반기 48.8%로 2배 이상 뛰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고령층에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 나타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문자메시지, 카톡 등으로 가족·지인을 사칭하며 개인정보 및 금전 이체 등을 요구하는 △메신저피싱, 검찰·경찰 등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 저리 대출 대환 등으로 자금 이체를 유도하는 △대출 빙자 유형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 이용 증가로 메신저피싱 금융 사기가 급증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 중 메신저피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5.1%에서 2020년 15.9%, 2021년 58.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로 가족, 지인을 사칭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파손, 신용카드 분실 등 불가피한 상황을 알리며 악성 링크에 연결을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법안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고령자 금융 피해는 가해자와 가해 경로에 따라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 △금융 착취, △금융 사기로 구분된다. 먼저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는 금융기관이 금융 상품을 부적합하게 판매한 경우를 말하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금융 착취는 상황에 따라 적용 법이 달라진다. ‘금융기관에 의한 금융 거래상 금융 착취’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다. 금융기관과의 금융 거래가 아닌 ‘친족・부양자 등에 의한 금융 착취’는 ‘노인복지법’이 적용된다. 노인 학대 방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해당 법에서는 ‘경제적 착취’를 노인 학대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는 잘 모르는 타인이나 전문적인 사기 집단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보이스피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사기에는 ‘전기통신·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된다. 즉 우리나라에는 고령자 금융 피해 유형 별 관련 법이 있을 뿐 고령자 금융 피해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법이나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법이고, 노인복지법은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찍이 고령자 금융 사기 관심 가진 해외 사례 이처럼 고령자 금융 피해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0년 정부는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근본적 종합적 대책을 마련했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 마련 △고령층 전용 대면 거래 상품 출시 △고령자 전용 비교 공시 시스템 구축 △고령층 금융 착취 의심 거래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을 약속했는데, 큰 진전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과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을 제정한다고 예고했다. 해당 방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기관이 고령자 착취 의심 사건 발견 시 금융감독원・경찰 등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실효성 확보를 위해 금융기관 직원의 면책 조항을 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방지, 차별 금지 등에 관한 사항을 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금융기관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이 금융 착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민사상・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 직원의 업무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법에 의무화하기보다는 각 금융권별 상황에 맞게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현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일찍이 고령층의 금융 사기에 관심을 갖고 정책 마련 등 대응에 나섰다. 덕분에 고령층 금융 사기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주요국의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 방지 노력’ 보고서를 통해 해외 주요국들의 정책을 담았다. 먼저, 미국은 지난 2018년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착취가 의심될 때, 금융기관 및 직원 등이 고령자 동의 없이 금융 당국에 의심 사례를 보고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노인금융피해방지법’을 제정할 때 해당 법을 참고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신종 금융사기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재무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장과 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 그룹을 구성하고, 고령층 보호 정책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소비자안전법’을 일부 개정해 고령자를 배려가 필요한 소비자로 규정하고, 필요한 대응을 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고령층의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금융기관, 지자체가 연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수사기 예방 정책을 강화했다. 정부의 규제 노력으로 2021년 피해 규모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고령자 등 학대로부터 취약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한 성인 보호 정책이 시작됐으며, 2014년 ‘돌봄법’(Care Act)을 제정해 관련 법 및 규정을 일원화했다. 더불어 금융회사에 의한 고령층의 금융 착취 및 금융 사기 피해 근절을 위해 당국이 불법적, 사기적 영업 행위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 2023-04-19 08:11
-
- 노년의 삶에 영향 주는 AI, 의사와 사회복지사를 대체할까?
-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건강관리 및 위험 예측, 대화를 통한 심리적 안정감 제공 등 인공지능은 노인의 신체적·정서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공지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생각이나 학습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을 말한다. 영어로는 ‘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하며, 줄여서 AI라고 부른다. 2020년 한국신용정보원의 ‘AI 기술·시장 동향 : 핵심 기술, 시장 규모, 사업 리스크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연평균 38.4% 성장해 1840억 달러(약 204조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25년 10조 5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정부는 올해 ‘인공지능 10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그중 주요 목표는 초고령사회 대비 ‘전 국민 AI 일상화’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보살피고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상용 인공지능 제품·서비스를 국민 생활 곳곳에 확산하는 프로젝트다.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 소상공인 인공지능 로봇 전화상담실 도입, 공공병원 의료 인공지능 적용 등이 주요 과제다. 의료 AI : 의사도 대체할까? 지난해 11월,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은 AI 시장 규모가 2027년에는 4070억 달러(약 563조 9000억 원)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업종별로는 의료 및 생명과학 부문이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우리나라의 의료 AI 기술 수준도 빠른 성장을 이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2년 보건의료산업 기술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한국이 보유한 의료 AI 기술은 가장 우수한 미국의 74∼8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기술을 따라잡는 데 2년에서 3.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긍정적인 부분은 한국이 AI를 활용한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 발전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김현철 진흥원 연구개발혁신본부장은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를 학습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 AI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쓰일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은 2월 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방암 검출 AI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부는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공의료기관에 ‘닥터앤서’(Dr.Answer) 도입을 확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한 닥터앤서는 데이터·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의사의 진료·진단을 지원하는 AI 의료 소프트웨어다. 심뇌혈관, 대장암, 유방암 등 주요 8대 질환의 예측과 진단을 지원한다. 닥터앤서의 도입 확대와 함께 챗GPT의 활용으로 의료 AI가 단순히 진단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의사를 대체하는 ‘AI 의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최근 챗GPT는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의 생화학, 진단추론, 생명윤리 3개 과목에서 52.4∼75.0%의 정답률을 보여 합격권에 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챗GPT 진단 결과의 정확도와 전문성이 떨어져 의사를 대체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라은 가톨릭대 의료정보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11월 ‘의료 인공지능의 시대, 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토론회에서 “인공지능이 효과가 좋은 약물로 처방을 내릴지라도 환자가 그 약물을 사용하고 고통을 느꼈을 경우 인공지능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궁극적으로 인류를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는 선동적인 역할은 인간 의사의 책무다”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세계 최초의 간호 로봇 ‘그레이스’가 세상 밖에 나왔다. 개발사 핸슨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핸슨은 “그레이스와 같은 로봇은 의료 종사자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AI와 로봇 기술은 의료 종사자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그레이스는 사람의 얼굴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환자의 체온과 맥박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센서 등을 탑재했다. 노인 돌봄을 전문으로 하는 로봇으로 환자의 말동무 기능도 갖췄다. 한국어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봄 AI : 사회복지사도 대체할까? 정부의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과제 중 하나는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이다. 현재 지원되는 돌봄로봇은 AI 스피커 유형이다. 2016년 SK텔레콤이 국내 최초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NUGU)를 출시한 이후, ICT 기업들은 AI 스피커를 잇따라 내놓았다. SK텔레콤은 최근 노인 돌봄체계 지원 전문기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누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AI 기반 음성 안내 플랫폼 ‘누구 비즈콜’을 활용한다.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대상자들의 안전 및 안부 확인, 생활지원사들의 업무 효율을 향상하는 시범 서비스를 2만 명을 대상으로 제공한다.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중장년 1인 가구를 위한 AI 안부 전화 서비스다. 현재 전국 40여 개 지자체와 협력해 서울, 경기, 인천, 부산, 광주 등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클로바 케어콜은 돌봄 대상자에게 주 1~2회 전화를 걸어 식사, 수면, 외출, 복약 등의 안부를 확인하고, 통화가 되지 않거나 이상자로 분류되면 담당 공무원이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클로바 케어콜의 차별화된 특징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함께 위로·공감·지지·격려의 기술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인간과 정서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AI를 지향한다.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올해부터 클로바 케어콜은 ‘기상 재난’ 주제의 목적성 대화도 가능해졌다. KT의 AI 스피커 이름은 ‘기가지니’다. 평상시 하루 세 번 안부 확인과 안내방송 및 복약 알림의 양방향 소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급 상황 발생 시 이용자가 “지니야, 살려줘”라고 말하면, AI 스피커-KT텔레캅-119 안전신고센터가 365일 24시간 연동돼 응급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KT는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AI 케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시행 후 2년이 넘은 가운데 이정화 전남대학교 생활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은 기가지니 1, 2년 차 이용자 212명을 대상으로 한 ‘AI 스피커 기반 케어 서비스’ 연구 보고서를 지난 2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건강 수준 개선 및 유지 80.0%, 상태 불안감 감소 효과 72.6%, 고독감 감소 65.9%, 우울감 감소 63.5% 등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에 대해 묻자 이정화 교수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저소득층의 고연령층이었다.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은 복용 시간 알림이었다.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은 덕분에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I 스피커가 고독사 예방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심했던 이용자들의 우울감, 고독감도 감소했고, 친구가 생긴 것 같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광주 서구는 AI 스피커와 함께 ‘AI 복지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AI 복지사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사의 행정업무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AI 복지사 개발에 예산 26억 4000만 원을 배정했다. 이후 각 지자체에서 AI 복지사 서비스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사회복지 관련 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AI 복지사가 늘어나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화 교수는 기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AI 복지사라고 하면 꼭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국은 기계다.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를 통해 볼 때 AI 복지사가 노인 돌봄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보통 돌봄 매니저는 한 사람당 노인 16명을 담당한다. AI 스피커가 도입된 후에는 돌봄 매니저 한 명이 노인 100명을 담당했다. 효율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매일 안부 연락은 AI 스피커가 하기 때문에 응급 상황 등 문제가 생겼을 때만 돌봄 매니저가 집을 방문해 조치를 취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가 돌봄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더불어 “AI가 정서적인 부분도 케어하는 등 진화하고 있어 복지사의 역할을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I 관리와 추가적인 서비스 제공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사회복지 역할을 할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 2023-04-10 08:25
-
- “꽃놀이보다 즐거운 문화 나들이” 4월 문화소식
- ●Exhibition ◇나탈리 카르푸셴코 : 모든 아름다움의 발견 일정 5월 7일까지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나탈리 카르푸셴코(Natalie Karpushenko)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환경운동가다. 해양과 고래 보호에 관한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카르푸셴코는 자연, 사람, 동물 등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르푸셴코가 세계 각지의 섬과 바다를 누비며 기록한 사진 200여 점을 만날 수 있으며, 6개의 존으로 구성됐다. ‘Intro’ 존에서는 아티스트와 사진전 전반을 소개한다. ‘Ocean Breath’는 작가의 대표 프로젝트명이며, 해당 섹션에서는 대자연과 환경에 대한 직관적인 메시지가 투영된 작품을 볼 수 있다. ‘Angel’ 존에는 ‘물’에 대한 원초적인 형상을 주제로 한 작품, ‘Rising Woman’ 존에는 자연과 여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사진이 전시돼 있다. ‘Wild Breath’ 존에 전시된 작품에는 야생 동물과 인간의 교감 순간이 포착돼 있다. ‘Natalie’는 작업 활동 비하인드와 인간 ‘나탈리 카르푸셴코’를 조명한 섹션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김윤신 : 더하고 나누며, 하나 일정 5월 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을 조명하는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이다.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주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반영한 김윤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김윤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해나갔다. 그는 자신의 조각 작품에 대해 나무에 정신을 더하고(합), 공간을 나누어가며(분), 온전한 하나(예술작품)가 되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번 전시는 김윤신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철학에 집중해 석판화, 석조각, 목조각, 한국에서의 신작 등 4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Stage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18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이영미, 장은아, 서경수, 장지후 등 뮤지컬 ‘데스노트’는 지난해 5년 만에 새로운 시즌으로 개막했다. 이전과 달라진 참신한 연출과 무대 미술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인기에 힘입어 8개월 만에 앙코르 공연된다. 홍광호, 김준수 등 티켓 파워를 입증한 주연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한다.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름을 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줍게 된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의 양보할 수 없는 두뇌 싸움을 긴장감 넘치게 그렸다. ◇폭풍의 언덕 일정 4월 23일 ~ 6월 18일 장소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성종완 출연 김수로, 강성진, 이정화, 문경초, 김아론, 강혜인 등 영국 여류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1847년 발표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이번 공연은 2021년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초연 당시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남자 ‘히스클리프’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가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연기력과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호평을 받았다. 주인공 히스클리프 역에는 문경초, 김아론이 캐스팅됐다. 초연에서 히스클리프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줬던 김아론은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문경초는 뮤지컬 ‘히드클리프’에서 히드클리프를 연기한 바 있어 기대를 모은다. ◇친정엄마 일정 3월 28일 ~ 6월 4일 장소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정경순, 김서라, 별(김고은), 현쥬니, 신서옥, 김형준, 김도현, 이시강 등 누적 관객 40만 명을 동원한 뮤지컬 ‘친정엄마’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힐링극이다. 1950년대 열여덟 말괄량이 봉란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경험하고, 딸 미영을 낳아 엄마가 된다. 어느덧 성장한 미영이 결혼하자, 봉란은 무식한 자신 때문에 미영이 시댁 눈치를 볼까 봐 전전긍긍한다. 미영은 봉란의 마음을 엄마가 되고서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로 4년 만에 돌아온 ‘친정엄마’는 이야기와 무대가 업그레이드됐다. 초연부터 출연 중인 김수미를 비롯해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대거 출격해 이목이 집중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3-04-07 08:47
-
- 120세 시대, 소비력 크고 활동적인 새로운 중년 ‘후기청년’ 등장
-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23-04-03 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