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승(金漢承·52) 국민대학교 교수는 저서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의 여는 글에서 인간을 ‘평범하게 비범한’ 존재라 일컬었다. 이는 ‘평범하지만 비범하다’거나 ‘평범하고도 비범하다’는 말이 아니다. 풀어 설명하자면 개개인은 저마다 비범하지만, 한편으론 모두가 그러하기에 인간의 비범함은 곧 평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되는 존재라는 것. 그는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기 위한 토대로 ‘인류 원리’라는 다소 낯선 주제를 끌어왔다.
김한승 교수의 책을 읽은 이들의 감상평에는 공통된 선입견이 있었다. 대부분 제목만 보고 자존감에 대한 자기계발서나 심리치유서 정도로 여겼다는 것이다. 또 감성적인 위로를 건네리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논리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위안을 얻게 돼 흥미로웠단다. 물론 책에는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지만, 그 내용의 근간으로 삼은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는 천체물리학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이러한 반응을 낳았다.
“인류 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탄생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적당한 중력, 태양과의 적정 거리,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온도, 육지와 바다의 알맞은 비율 등 수많은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아주 희박한 확률 속에서 각자의 특정성을 갖고 우주에 태어난 겁니다. 그러니 인간은 모두 ‘비범한 존재’라 할 수 있죠. 다만, 이 기적 같은 일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일어났으니 ‘평범하다’고 보는 거고요. 이렇듯 인류 원리는 우리가 평범하게 비범하다는 점에 착안해 보다 근본적인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게 합니다.”
아무개를 아무나로 여기는 ‘갑질’
미국 소설가 마가렛 딜란드는 “‘아무개(somebody)’를 ‘아무나(anybody)’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nobody)’ 없다”고 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가령 ‘아무개를 사랑한다’와 ‘아무나 사랑한다’ 등으로 대입해보면 그 뉘앙스가 확연히 드러난다. 책 제목 역시 이러한 의미를 살려 주제를 드러냈다.
“아무개는 어떤 특성을 지녔지만 그것에 주목하지 않는 것이고, 아무나는 아예 그런 특성을 배제해버린 상태입니다. 때때로 타인을 아무개가 아닌 아무나로 여겼을 때, ‘갑질’ 같은 만행이 일어나곤 하죠. 우리는 상대를 아무개로 바라보는 동시에, 나 역시 그들에게 아무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근대철학에서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길 권하죠. 이는 달콤한 위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류 원리의 관점에서 ‘나는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즉 ‘아무개’라는 연대성을 통해 궁극적인 위안을 얻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인류 원리의 관점을 자칫 모든 존재를 획일화한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각자 다양한 특성을 가진 존재임이 같다는 것이지, 애초에 두 존재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류 원리는 평범함과 비범함, 특수성과 일반성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볼 기회를 마련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정확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는 건 단순히 주소처럼 공간적 좌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나는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시점에 살고 있는가?’,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과 나중에 태어날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나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할까?’ 등 삶과 죽음, 인류, 자아의 세계를 아우르는 훨씬 넓은 차원의 질문의 답을 요구하는 일이죠. 이때 자신의 위치를 짚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답을 찾으려면 공간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시간까지 그린 ‘4차원 지도’가 필요하지요. 물론 정확하고 자세한 4차원 지도를 인간은 손에 쥘 수 없겠고요.”
성공적 인생의 클라이맥스
앞서 언급한 4차원 지도에는 시간의 차원이 포함된다. 김 교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중장년일수록 ‘과거의 나’와의 연결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체된 도로를 지나는데 알고 보니 길 위에 떨어진 매트리스가 원인이었다고 가정해보죠. 누군가 매트리스를 치운다면 그의 선행에 감탄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지나칠 겁니다. 본인이 치른 비용은 이미 허비한 시간이고, 내가 매트리스를 치워 생겨날 이익은 뒤에 오는 사람들이 누리게 될 테니까요. 즉 매몰비용이라 간주한 거죠. 그러나 이는 현재 겪고 있는 일과 앞으로 겪게 될 일만을 염두에 둔 결과입니다. 비록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직접 매트리스를 치우고 스스로 보람을 느낀다면, 과거의 시간을 더 이상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짜증으로만 가득했을 그 시간을 훨씬 나은 경험으로 바꿔준 셈이죠.”
이처럼 대개 과거는 지난 일이고,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한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태도는 과거 자신의 노력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의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과거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일 때문에 후회하는 중장년이라면 이러한 태도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삶의 비극(?)일 수 있는데, 젊어서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많이 하지만 그에 대한 지혜가 부족하고, 나이 들어서는 혜안은 있지만 선택의 기회가 적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그때 이렇게 할걸’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곤 하죠. 하지만 매트리스 사례처럼 어떤 선택이 실패라고 판단할지라도,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노력을 얼마나 보람 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결과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는 반대로 과거의 성공 기억에만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성공 방식만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인데, 자칫 ‘꼰대’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노후에는 빛을 내야 할 과거, 잊어야 할 과거 등을 구별하면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잘 엮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음악회에서 교향곡을 듣는데 마지막에 이상한 소음이 발생했다면, 사람들은 이전의 좋은 경험은 다 잊고 결과적으로 망친 무대라고 판단합니다. 결국 클라이맥스 부분이 모든 것을 좌우해버리는 거죠. 그만큼 우리 인생 스토리도 뒷부분이 주는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장년은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죠. 실패, 후회,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일지라도, 현재의 노력을 통해 그 의미를 충분히 재조명할 수 있습니다.”
즐거운 노후를 위한 추천 도서 By 이근후
◇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
은하계 및 태양계의 모습과 별들의 삶과 죽음을 설명하며, 동시에 그러한 사실을 밝혀낸 과학자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과학서이지만, 철학적, 종교적, 인문학적 물음을 갖게 하며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까지 고찰하게 한다.
◇ 삼국지 (나관중 저)
수백 년 역사 동안 ‘삼국지’가 스테디셀러였던 이유는 단순히 흥미로운 스토리만이 아니다. 그 속에 얽힌 각양각색 인물의 특징과 그들 간의 갈등을 현실의 삶에 대입함으로써 다양한 문제와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한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저)
‘나이답게 사는 것’이 곧 ‘엄숙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님을 이야기하며, 재미를 찾아 살고자 했을 때 얻어지는 인생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 드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이들을 위한 53가지 나이 듦의 지혜를 담았다.
◇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이근후 저)
인생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 각 계절을 살고 있는 세대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갈등과 행복감을 편지에 담아 이야기한다. 인생의 단계마다 힘겹게 고통을 견디고 있을 이들을 위해 진심 어린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지난 4월 엄청난 산불로 피해가 컸던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이 서서히 회복돼가고 있다. 길 옆 소나무는 여전히 검게 그을은 모습이지만 땅엔 초록색 풀이 새롭게 자라고 있다.
다시 살아나고 있는 그 곳, 고성의 깊은 시골길에 멋진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이다.
강원도의 산 속에 나지막한 높이로, 그러나 5000평 규모의 넉넉한 면적에 앉아있다. 바우지움이란 이름은 바위의 강원도 방언인 ‘바우’와 ‘뮤지엄’의 합성어다. 치과의사 안정모씨와 그의 아내인 조각가 김명숙 관장이 설립했다. 산과 하늘이 미술관에 제대로 어울리는 배경 역할을 하고있다.
먼저 근현대 미술 조각관을 들어가 보자. 유리벽으로 밖이 훤히 보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볼 수 있다. 창 밖엔 '물의 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밖으로 나오면 '돌의 정원'이 보이고 그 매끄럽지 않은 돌담 앞에 야외 전시가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소나무 정원'의 나무 그늘에서 잠깐 쉴 수 있다.
'잔디 정원'의 거친 담벼락에 조화를 이룬 작품들, 이 담벼락에 설악산 울산바위의 높새바람과 동해의 해풍이 만나 자연과 건축과 조각이 함께 어우러지도록 김인철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 앞에 오롯하게 놓인 작품들,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 자리 잡은 작품들이 바람을 맞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있다.
실내와 야외의 작품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테라코타 정원'이 있다. 길 옆에 쪼그리고 앉은 소년의 모습이나 나무 아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요한 모습의 작품들이 정겹다. 담 아래엔 아직도 수국이 탐스럽고 옥수수밭 옆엔 해바라기가 8월의 하늘을 향해 있다.
나가는 길에 기획전시실과 아트숍이 있고 그 옆으로 카페 바우가 있다. 입장료에 커피 한잔이 포함되었기에 냉방이 잘 된 카페에 앉아 땀을 식히며 편안한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돌과 바람과 물이 조화로운 바우지움 조각미술관, 매일 달라지는 자연이 예술작품을 날마다 달리 보이게 하는 곳.
고성에 가면 설악과 동해의 바람이 넘나드는 바우지움 미술관이 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 온천 3길 37
*영업시간 화~일 10:00~18:00
45년 전 육군 소위로 임관했던 동기들이 성삼재에서 뭉쳤다. 대부분은 연고지가 서울이었지만 대구와 구미에서도 각각 한 명씩 합류했다. 총 13명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곧 성삼재를 들머리로 지리산 종주 등반이 시작됐다. 전날,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3시 15분경.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는 버스로 올라갔다. 성삼재에 올라서자 세찬 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한기가 몰려왔다. 그때 대구에서 온 동기가 따끈한 커피와 간식거리를 내놓았다. 칼바람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성삼재에서 만난 13인의 용사들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손꼽힌다. 새벽을 깨우는 새소리와 오락가락하는 구름이 동기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파른 돌계단과 우거진 숲을 헤치며 가다 보니 현역 시절 펼치던 특수작전이 떠올랐다. 장마가 시작되는 한여름에 무모하게 시작한 종주였지만, 모두의 간절한 바람 덕분인지 날씨는 최상이었다. 가끔 햇볕을 가려주는 구름까지 있어 걷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일행들은 얼마 안 있어 끝없는 오르막과 내리막길에 서서히 지쳐갔다.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3박 4일간 먹고 마실 것들로 꽉 채운 배낭 무게가 덜컥 겁이 났다.
다리에 힘이 빠져갈 무렵 13인의 용사들은 삼도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해발 1501m의 삼도봉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배낭을 풀고 서너 명씩 편성된 조별로 식사를 준비했다. 우리 조는 ‘핫쿡’이라는 비상식량을 준비해갔다. 군대에서나 먹어봄직한 일종의 전투식량인 셈인데, 발열체에 찬물을 부으면 100℃ 이상의 고온 증기가 발생하면서 물이 뜨거워지고, 가공된 봉지쌀에 이 물을 부으면 밥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용법을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찬물을 덜컥 쌀에 부어놓고 기다렸다. 한참이 돼도 소식이 없어 들여다보니 그 모양이었다. 마주 보고 웃을 수밖에. 어쨌거나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을 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토끼봉을 넘고 명선봉을 굽이굽이 돌아야만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어깨는 말 그대로 천근만근이었다. 직업군인 시절에 메고 달리던 배낭의 무게는 이제 버거웠다. 그 이유는 세월 탓이겠지만 마음은 이 여정을 반드시 완수해내리라는 굳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오후가 되니 점차 하늘이 맑아지고 멀리 보이던 봉우리들이 얼핏얼핏 시야로 들어왔다. 봉우리 사이로 펼쳐진 운해(雲海)는 장관이었다.
첫 번째 숙소, 연하천 대피소
천신만고 끝에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과 하중을 견디지 못한 발이 화끈거리고 무릎도 아팠지만 대피소에 도착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부지런히 쌀을 씻어 안치고 합동으로 반찬을 준비했다. 요즘은 참 편리한 세상. 인스턴트 북엇국은 뜨거운 물만 넣으면 맛있는 국으로 변했고 볶은 김치에 참치를 넣어 끓이니 칼칼한 김치찌개가 금세 탄생했다. 각자 가져온 반찬과 먹거리들은 칠첩반상 부럽지 않았다. 단백질 보충하자며 고기까지 굽자 일행들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연하천 대피소는 최근 리모델링을 해서 그런지 겉모양도 예뻤고 내부도 많이 개선됐다. 여장을 풀고 뻐근한 몸을 뉘었으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장마가 시작되려나?’ 내일 아침엔 비가 멎어주기를 기도하며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뚝 그쳤다. 지리산 새벽을 깨우는 새소리를 녹음한다고 일찍부터 일어나 설쳐댔다. 아침을 간단히 먹은 뒤 다시 배낭을 멨다. 그런데 무게가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먹은 만큼 발생한 쓰레기를 다시 배낭에 넣으니 부피도 거의 그대로다. 걱정했던 몸과 다리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련 속에서 맞이한 천왕봉 일출
너럭바위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르면 또 나타나는 봉우리를 돌아가는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어질어질했다. 옆 사람에게 누가 될까봐 말도 못하고 견디며 걸어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사무총장에게 소화제를 청해 복용했다. 그런데도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행렬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 흘러 잠시 앉아 쉬는데 동기가 소금을 건네며 먹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먹자마자 모든 것을 토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벽소령 대피소를 지나 세석산장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기운이 없어도 무엇 하나 넘길 수 없었다. 한 번 고장 난 속은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속에서 불이 난 듯 갈증이 일어나 찬물만 들이켰다. 먹은 물까지 다 토해내 기운이 다 떨어져 갈 무렵 드디어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동기들이 점심을 준비해서 먹을 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실내에 들어가 누웠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추웠다. ‘아! 지리산 종주는 여기서 끝인가보다’ 했다. “조금이라도 뭘 넘겨야 할 텐데” 하며 걱정하는 동기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꼭 종주하고 말겠다는 신념과 일행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수시로 충돌했다.
둘째 날, 배낭 속 물건을 나누어 지겠다는 동기들의 호의를 마다하고 배낭을 다시 멘 뒤 장터목으로 향했다. 장터목에 도착해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채 누워 있으니 일행이 북엇국이라도 먹으라며 권했다. 지리산 종주의 마지막 코스인 천왕봉을 올라야 하는 여정이 남아 있어 기운을 차리려면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다음 날 새벽 2시 30분. 여기저기서 부스럭대며 배낭 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어둠 속에서 배낭을 찾았다. 헤드랜턴을 준비해왔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배터리가 다 방전되어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할 수 없이 일행의 도움을 받았다. 새벽 산행인데도 가파른 돌계단을 연속으로 올라야 했다. 산을 오르기 전, 동기가 건네준 홍삼진액을 마시고 나니 그런대로 힘이 났다. 깎아지른 절벽을 한 시간 남짓 올랐을까? 드디어 통천문이 보였다. “아, 이제 천왕봉에 다 왔구나” 하고 안내 표지판을 보니 아직 400여 m가 남았다. 희끄무레하게 동이 터오는 산 아래 쪽으로 아련한 불빛이 보였다. 진주시였다. 오락가락하던 구름은 이제 산 중턱으로 밀려나 푹신한 솜이불을 깔았다. 쏟아지는 별빛이 가슴을 뻥 뚫어줬다.
멀리 운해 위로 펼쳐진 하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천왕봉으로 몰려오는 바람이 살을 에듯 파고들었다. 준비해간 패딩을 황급히 꺼내 입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동쪽 하늘 운해 위로 붉은 손톱 모양의 해가 살짝 걸쳐지자 모두가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솟아오르는 해의 모습은 정말 신비로웠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힘들었던 여정은 눈 녹듯 사라져버리고 감동만 밀려왔다.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자니 “45년 전 동기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힘든 상황 극복하고 여기 서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가족과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아준 나 자신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법계사 스님들
천왕봉 일출의 감동을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아파 진통제까지 복용하면서 올라간 동기는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서서히 원기를 회복해갔다. 로터리 대피소 쪽으로 내려오다 법계사 일주문과 마주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50m)에 위치한 법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인도에서 온 고승 연기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창건한 적멸보궁 도량이다. 법계사를 돌아보다 만난 스님 두 분은 뜰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겨울에나 신을 법한 털신을 신고 있다. “스님, 어찌하여 한여름에 털신을 신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여기서는 이 신발이 딱 맞습니다. 여름이어도 아침저녁 기온은 초겨울과 비슷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다 일주문 밑에서 일본인이 지리산과 법계사의 혈맥을 누르려 박아둔 쇠말뚝을 봤다. 이 깊은 곳까지 간교한 음모를 뻗쳤다니… 충격적이었다.
구례에서 출발한 지리산 종주는 천왕봉에서 정점을 찍고 경남 함안군 대산면 중산리에서 막을 내렸다. 3박 4일간의 짧지 않은 여정 속에서 35㎞의 산행을 완주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지치고 힘들 때 옆에서 지켜준 동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종주였으리라. 변함없는 배려와 우정이 고맙다. 육십 고개를 넘어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전한 지리산 종주 등반. 내 삶에서 잊히지 않을 이 길은 남아 있는 또 다른 인생 여정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피부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났다. 강한 자외선에 피부가 화상을 입는 것은 물론, 벌레와 곤충에 물려 알레르기나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상처를 통해 감염돼 자칫 온몸에 물집이 퍼지기도 하는 ‘농가진’도 여름철 유의해야 할 질환이다.
강한 햇빛, 일광화상과 다형광발진 주의해야
여름철 가장 대표적인 피부질환은 ‘일광화상’이다.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가 붉어지며 따갑거나 화끈거리는 증상을 나타내는데, 심하면 통증, 물집, 부종이 생기기도 한다. 강한 햇빛에 30분 이상만 노출되어도 일광화상을 입을 수 있는데, 4~8시간 후 노출 부위가 붉어지고 가려움을 느끼게 된다. 24시간 후 증상이 가장 심해지고, 3~5일이 지나야 호전된다. 또, 화상 부위에 색소침착이 발생해 수주 이상 지나야 서서히 옅어진다.
이러한 증상을 보이면 찬물로 샤워하거나 얼음찜질을 하는 것이 좋으며, 물집이 잡혔다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일광화상을 예방하려면 자외선 차단이 우선이다. 자외선이 강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야외 활동 시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쓰고,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발라준다.
또 다른 질환으로는 ‘다형광발진’이 있다. 노출 직후 발생해 바로 사라지는 햇빛 알레르기와는 달리 몇 시간 또는 며칠에 걸쳐 몸에 붉은 발진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구진과 수포, 습진 형태의 병변이 나타나 가려움증을 호소하게 된다. 건국대학교병원 피부과 안규중 교수는 “다형광발진은 2주 정도 증상이 지속되다 사라진다”며 “흉터가 남지는 않지만 매년 재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태양광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긴 소매, 긴 바지를 입고 자외선 차단제를 잘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곤충교상, 심하면 호흡곤란 일으켜
모기, 벼룩, 개미, 지네, 벌 등 곤충에 물렸을 때 보이는 피부 반응을 ‘곤충교상’이라 한다. 곤충의 타액 속에 포함된 독소나 곤충의 일부가 피부에 남아 생기는 이물 반응에 의해 질환이 나타난다. 피부가 붉게 변하거나 구진이 생기며, 중심부에 물린 듯한 반점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통증, 부종, 가려움증 등을 동반한다. 벌과 개미에게 물린 경우 알레르기 반응이 발생하기 쉬운데, 드물게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곤충에게 물리면 해당 부위를 깨끗이 씻고, 벌에 물렸을 때는 벌침을 신속히 제거한다. 이때 호흡곤란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면 즉시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방 피부염’은 독나방 유충인 송충과 접촉 후 피부에 붉은 발진과 두드러기 같은 구진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피부 자극뿐만 아니라 상처를 통해 독물이 들어와 피부에 염증을 유발하게 된다.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가려움과 통증이 지속되며, 독성이 강한 경우 발열, 오심, 구토 등을 호소할 수 있다. 접촉 부위를 긁거나 자극하지 말고 물로 잘 씻은 후 반창고 등을 이용해 송충의 체모를 떼어내는 것이 좋다.
농가진, 심하면 하루 만에 온몸에 퍼져
‘농가진’은 여름철 아이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환으로, 전염력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벌레에 물린 상처나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부위에 생긴 상처를 통해 감염되는데, 물집과 고름, 노란 딱지 등이 생긴다. 물집이 난 부위가 가렵고, 전염성이 강해 하루 만에 몸 전체로 퍼질 정도로 쉽게 전염되는 것이 특징이다. 심한 경우 고열, 설사를 동반하고, 드물게는 성인의 겨드랑이, 음부, 손 등에도 증상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물과 비누로 감염 부위를 깨끗하게 씻고 소독한 뒤, 딱지를 제거해 연고를 바르면 도움이 된다. 고열이 나거나 전신에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전문의와의 상담 후 7~10일가량 항생제를 복용한다. 안 교수는 “농가진을 예방하고 전염을 막으려면 손과 손톱을 청결하게 하고 피부를 긁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함께 사용하는 옷과 수건도 소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련은 물 위에 떠다니며 살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수련의 ‘수’는 ‘물 수(水)’ 자가 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꽃이 오므려진 모양을 의미하는 ‘수(睡)’ 자를 씁니다. 낮에만 꽃을 피우고 밤에는 지는 특성 때문이죠. 그래서 태양을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수련을 신을 상징하는 꽃이라 생각했습니다. 낮에 피는 푸른 수련과 밤에 피는 흰 수련은 신과 죽음, 내세를 표현하는 것이라 믿었죠. 실제로 이집트의 국화는 수련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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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한여름의 대표적인 꽃 중 하나로 꽃과 잎이물의 표면에 떠 있거나 수면 위로 약간 올라옵니다. 잎은 전체적으로 둥근 방패 모양을 하고 있지만 밑부분이 깊이 갈라진 특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흔히 혼동되는 연꽃과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흰색처럼 느껴지는 연한 핑크색 꽃이 돋보이도록 뒤에 잎을 배치했습니다. 단순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수련이지만 잎 뒷면 붉은색의 풍부한 색감으로 인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꽃은 곱고 부드러운 스트로크와 채도가 낮은 밝은 핑크의 표현을 위해 먼저 그레이 톤으로 살짝 채색한 후 밝은 라이트마젠타로 마무리합니다. 잎은 여러 가지 컬러를 사용해 초벌칠을 한 뒤 잎맥의 위치를 가볍게 잡습니다. 디테일과 양감은 서서히 톤을 높여 표현합니다.
이해련 작가 blog.naver.com/lhr1016 인스타그램@haeryun_lee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과 신구대학교식물원 보태니컬아트 전문가 과정의 겸임교수이며 한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협회(KSBA)와 보태니컬아트 아카데미 ‘련’의 대표다. 영국 보태니컬 아트 작가협회(Society of Botanical Artist)의 Annual Exhibition 2017에 참가하는 등 국내외 각종 전시에서 활동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치솟는 6월. 여름을 향해 치닫는 계절의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며 뒷산을 오릅니다. 연두색이던 숲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고, 길섶은 허리까지 차오른 풀들로 한 걸음 내딛기가 주저될 만큼 무성합니다. 몇 걸음 더 오르자 그만그만한 잡초들을 제치고, 어깨높이 이상으로 껑충 솟아난 꽃이 보입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매혹적인 꽃, 바로 털중나리입니다. 겨우 한 송이 핀 것도 있지만, 대개는 서너 송이가 달려 있습니다. 많게는 열 송이 가까이 달리기도 하는데, 1m 넘게 솟아오른 원줄기 끝에 한 송이, 그 아래 사이사이 좌우로 뻗은 작은 가지마다에도 한 송이씩 다닥다닥 핍니다.
털중나리가 꽃을 피웠다는 것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털중나리를 비롯해 하늘나리, 중나리, 참나리, 땅나리, 솔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날개하늘나리, 섬말나리, 누른하늘말나리 등 백합과의 나리꽃들이 곧 우리 땅에서 여름 내내 피고 지는 ‘여름꽃의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여 종 나리꽃들의 피고 짐이 털중나리로부터 비롯되기에, 털중나리의 개화는 곧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색은 여름꽃답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닮은 듯 한결같이 붉습니다. 하지만 얼핏 보면 붉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홍색(紅色) 일색은 아닙니다. 분홍색의 솔나리와 진한 홍색의 큰솔나리 사이에, 주홍색과 주황색 등 다른 색의 꽃을 피웁니다. 물론 솔나리의 경우 아예 꽃잎이 온통 하얀 흰솔나리, 검은빛이 도는 홍자색 검은솔나리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털중나리의 꽃은 노란빛이 감도는, 이른바 황적색(黃赤色)입니다. 간색(間色) 특유의 진한 색감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6개로 갈라져 완전히 뒤로 젖혀진 꽃잎, 그 안쪽으로 황적색 바탕에 새겨진 진한 자주색 반점과 6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모두 드러낸 모습은 집시 여인보다도, 삼바 여인보다도 뇌쇄적입니다.
10종이 넘는 나리꽃들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6개로 갈라진 꽃잎이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그 중간을 보면 중나리, 줄기 등 전초에 솜털 같은 털이 있으면 털중나리, 꽃잎이 하늘을 보되 잎이 빙 돌려나면 하늘말나리로 불리는 식입니다.
Where is it?
털중나리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조금만 품을 팔면 만날 수 있는 야생화란 점이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의 해발 1000m 미만 지역에서 자란다”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설명처럼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렇다고 도심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동네 뒷동산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 한복판에서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종로구 수성동 계곡에서도 만났다. 다만 각종 공해(公害)에서 벗어날수록 꽃이 더 싱싱하고 탐스러우며 꽃색도 맑고 깨끗하기에, 멋진 털중나리를 만나려면 조금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해발 1000m 미만에서 자란다”는 건 해발 1000m 즈음까지 자란다는 뜻이기도 한데, 높은 곳의 털중나리는 탁 트인 전망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 정상에서 일출과 함께 만나는 털중나리는 가히 환상적이다. 경기도 팔당 예봉산 자락과 김포 문수산도 털중나리와 주변 풍광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맹문재 시인이 한평생 민족의 통일을 노래한 故 김규동 시인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 댁에서 안방을 둘러보다가 저는 잠시 흠칫했습니다. 선생님의 침대 머리맡에 낡은 증명사진이 한 장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선생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한참 넋을 잃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든 살이 넘도록 어린 아들이 되어 밤마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한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7년 3월 초 즈음이지요. 어느 날 밤늦게까지 학교 연구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박스 하나가 택배로 도착해 있었습니다. 누가 보낸 것인가 하며 박스에 적힌 주소와 성함을 보니 바로 우리 문단의 원로이신 김규동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한 번도 선생님을 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아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박스 안에 김기림 시집 ‘바다와 나비’와 ‘태양의 풍속’을 비롯한 여러 권의 고서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도 한 통 눈에 띄어 저는 흥분한 채 읽어보았습니다.
맹 교수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좋은 시와 평론 올해는 더 많이 쓰십시오.
서가에 있던 冊 몇 권 보내드립니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태양의 풍속(문고본),
맹 교수가 갖고 계십사 하고 보냅니다.
태양의 풍속은 원래 호화 양장본이 있었지만 이북에 두고 나왔습니다.
문고본이나마 보존하시옵소서.
함께 구간들이지만 바쉬랄르 2권(일역본), 샤르트르(문학이란),
리쳐즈의 불확실의 명상을 보냅니다. 학문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리쳐즈는 기림 선생이 특히 강조해서 말씀하던 비평가(과학적인)였습니다.
옛날 冊 선물로 드려서 어떨까 싶군요. 건필하시옵소서.
며칠 뒤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선생님 댁을 찾았습니다. 아주 따스한 미소로 맞아주시고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조곤조곤하게 들려주셨습니다. 모두 귀한 말씀들이어서 저는 가슴속에 새겼습니다. 그렇게 스승으로 모신 뒤 저는 이 지면에 다 담을 수 없는 선생님과의 추억들을 갖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1925년 함경북도 종성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영어 및 수학 과목을 담당하는 김기림 시인을 만나 시인의 꿈을 키웠지요. 경성고보를 졸업한 뒤 연변의대에 진학했지만 문학을 향한 열망을 접을 수 없었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학부에 입학했지요.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문학을 강요함에 따라 문학의 자유를 위해 당시 남한에 거주하던 김기림 시인을 찾아 교복을 입은 채 월남했지요.
선생님께서는 1948년 ‘예술조선’ 신춘문예에 ‘강’ 등이 입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한국전쟁의 피란지인 부산에서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해 모더니즘 시 운동을 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군사독재 상황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리고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55년 시집 ‘나비와 광장’을 간행한 뒤 여러 권의 시집과 평론집을 내셨는데, 마지막 작품을 이 지상에 남기면서 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등불이 언제까지나 희미한 적 없어요
나도 당신과 같은 고통의 길 걸어왔지요
청춘은 알지 못할 위대한 길
두고두고 생명을 괴롭혀 왔습니다
생명은 너무 길었지요
시인이 왔습니다,
불운으로
그가 하늘과 구름 사이로 노래해 주었습니다
나는 시인을 따라 밤길을 걸었지요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하나의 길
그 고독이 나에겐 그리운 종소리였습니다
시인이여
안녕
-‘인사 – 맹문재 씨에게’ 전문
선생님, 오늘이 스승의 날이네요. ‘고바우’ 집에서 사모님과 함께 점심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시를 쓸게요.
함북 종성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는 나비는
지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로막힌 철조망에 좌절하지 않습니다
- 맹문재, ‘광장의 나비’ 중
맹문재 시인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가 있고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다.
‘남원’ 하면 춘향, ‘춘향’ 하면 광한루원만 생각났다. 남원에는 진정 광한루원 말곤 갈 데가 없을까 궁리하던 때에 마침 김병종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이 좋아 남원에 들락거렸더니 식상했던 광한루원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동네 빵집과 걷기 좋은 덕음산 솔바람길도 발견했다. 이 산책로가 미술관과 연결되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남원을 여행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종종 생각났다.
걷기 코스
남원역(남원시외버스터미널)▶차량 이동▶광한루원 북문▶남문▶요천 섶다리▶덕음산 솔바람길 입구▶전망대 레스토랑▶남원국립국악원▶그네매점(또는 약수터매점) 뒤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남원항공우주천문대▶춘향테마파크(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
상상 속 달나라를 구현한 광한루원
광한루원에는 남문(정문)과 서문, 북문이 있다. 오늘 걷는 코스는 북문으로 입장해 남문으로 나가는 것이 동선상 편하다. 북문 앞에는 고품격 한옥 호텔인 남원예촌과 규모 있는 한정식 전문점들이 자리했다. 이 일대는 남원 제일의 관광단지라서 거리가 깔끔하고 작은 쉼터도 조성돼 있다.
주중 낮 동안 일반인 관람이 허용되는 남원예촌을 잠시 둘러본 뒤 광한루원 북문으로 입장한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춘향사당이 코앞이다. 조선 중기 사람들은 달나라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산다고 생각했다. 이 상상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달나라 궁전이며, 광한루 앞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에 섬처럼 떠 있는 세 개의 섬은 지상낙원, 즉 영주산(한라산),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을 뜻한다. 중국 ‘사기’에 등장하는 전설 속 세 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본떠 일컬은 것이다. 나무다리로 연결된 세 섬을 차례로 들러본다. 팽나무가 우거진 영주산 영주각에 올랐다가 봉래산의 대숲을 지나고, 방장산 숲에 숨은 작은 방장정에선 잠시 쉬어간다.
방장정 옆으로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오작교가 보인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널 때 걸었던 오작교를 본떠 만들었다. 다리 길이가 57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연지교다. 조선 후기 소설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작교를 건너며 연못을 굽어보니 잉어 떼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노닌다. 광한루원은 원앙과 잉어에게도 지상낙원인 듯하다. 연못가 버드나무와 짝꿍처럼 잘 어울리는 수중 누각 완월정에 올랐다가 남문으로 나선다.
솔숲이 우거진 덕음산 솔바람길
광한루원 남문으로 나오면 바로 요천변이다. 요천 제방에 올라 벚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가로수가 우거져 그늘이 짙다. 덕음산 솔바람길로 가려면 승월교나 섶다리를 이용해 요천을 건너야 한다. 흔한 시멘트다리 대신 섶다리를 선택해 건넌다. 이 섶다리는 옛날부터 요천에 섶다리 두 개가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근래에 만든 쌍섶다리다. 섶다리를 건너면 춘향테마파크와 식당, 놀이공원, 국립국악원 등이 있는 춘향촌 입구가 보인다. 춘향촌 입구 왼쪽에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가 있다. 나무계단을 조금 오르면 솔숲길이 이어진다. 잔잔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었을까. 숲길이 전망대레스토랑 앞 전망대로 인도한다. 이곳에 서서 남원 시내를 굽어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같고, 도심 가운데로 요천이 흐른다. 남원의 젖줄 요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 남해까지 간다.
탁 트인 남원 풍광을 감상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국립민속국악원 방면으로 내려간다. 국립민속국악원은 판소리의 성지인 남원의 국악 수준을 잘 보여주는 공연장이다. 주말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전통 공연을 선보인다. 주말에 이 길을 걷는다면, 공연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국립민속국악원 뒤쪽으로 이동해 덕음산 솔바람길의 또 다른 입구를 찾는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김병종미술관까지 이어지는 데크 산책로로 연결된다. 길 곳곳에 전시돼 있는 시, 그림, 캘리그래피 작품을 감상하고, 솔숲 향기를 맡으며 느리게 걷는다. 데크에서 내려오면 바로 김병종미술관이 보인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미술관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남원의 뜨는 명소 김병종미술관과 화첩기행 북카페
2018년 3월 개관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남원 출신 한국화의 거장 김병종이 자신의 작품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이 기획됐다. 덕음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실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 숲이다. 김병종 화가의 작품은 1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김병종 화가의 초기작이자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바보예수’ 시리즈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동심이 느껴져 절로 미소 지어진다. 김병종 화가는 여행 에세이 ‘화첩기행’을 저술해 문학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줬다.
상설전시장 옆에는 화첩기행 북카페 ‘미안’도 자리해 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청년 카페지기가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을 담아 ‘미안’이라 이름 지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카페 한쪽 벽면에는 김병종 화가의 작품과 그가 기증한 미술, 인문학, 문학 관련 도서 등 약 20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나머지 벽면은 통창을 설치해 물이 가득한 정원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오랜만에 맘에 쏙 드는 미술관과 카페를 만나 걷는 즐거움이 커진다.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춘향테마파크 걸을까, 오감만족숲을 걸을까
미술관에서 걷기를 마치고 광한루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항공우주천문대를 거쳐 춘향테마파크 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으로 내려가도 좋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광한루원이 멀지 않다.
항공우주천문대는 미술관 뒤쪽으로 난 길 끝에 있다. 미술관에서 약 300m 거리다.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돔 형태의 지붕을 얹은 천문대를 만난다.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밤에는 달과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관측을 할 수 없으니 날씨를 봐가며 입장해야 한다.
천문대 뒤쪽, 솔바람길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춘향테마파크 뒷문이 나온다. 이 문은 춘향테마파크의 가장 위쪽 구역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된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공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세트장이 남아 있다. 뒷문 근처에는 월매집, 춘향과 이몽룡이 첫날밤을 보냈던 월매집 부용정, 춘향이 변 사또에게 고초를 당했던 관아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춘향테마파크에 입장하지 않고, 뒷문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감만족숲/광한루 방면 숲길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오감만족숲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오감만족숲은 2017년에 덕음산 기슭에 조성한 공원으로 걷기 좋도록 지그재그형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승월교로 바로 연결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전통시장의 정취가 물씬 남원공설시장
광한루 서문 앞에 있는 상설시장이다. 오일장날에는 아침부터 붐빈다. 남원에는 산과 강이 있어 농수산물이 풍부하다. 특산물을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원산 미꾸라지가 흔하다. 시골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오래된 뻥튀기 가게도 있다. 온갖 곡식은 물론 무까지 튀겨준다. 남원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즐겨 사 먹는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닭발 튀김. 뼈를 발라낸 닭발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남원시 의총로 51, 4와 9로 끝나는 날이 오일장.
맛의 고장 남원 맛집
남원에서는 남원산 미꾸라지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 추어탕이 유명하다. 광한루원 서문 쪽 요천변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새집’, ‘현식당’, ‘부산집’이 입소문 났다. 광한루원 북문 앞에 있는 남원 한정식 전문점 ‘종가’도 추천할 만하다. 보리굴비 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찜, 육회, 전복구이 등 맛깔난 전라도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돌솥비빔밥 전문점인 ‘반야식당’도 광한루 인근에서 오래 장사한 소문난 집이다. 최근 뜨고 있는 ‘집밥, 담다’는 ‘따뜻한 가정식 한 끼’를 표방하는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다. 정갈한 식단으로 호평받고 있다. 예약은 필수.
남원 사람은 다 안다는 명문제과
남원에서 오래 장사한 동네 빵집이다. 가게는 작고 허름하다. 다른 빵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빵을 개발해 인기를 얻었다. 남원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인데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한 뒤로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평일에도 줄을 서며, 오후 늦게 가면 인기 빵은 동나 살 수 없다. 3대 인기 빵은 생크림소보로, 꿀아몬드, 수제햄빵이다. 광한루원 북문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남원시 용성로 56.
걷기 Tip
❶ 5월 8일부터 12일까지 광한루원과 요천 일대에서 제89회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은 야간 조명을 밝히는 밤에 산책해도 좋다.
❷ 4월 24일부터 5월 19일까지 바래봉 철쭉제도 열린다.
5월이면 이름조차 신선이 놀던 섬이라는 선유도로 향한다. 5월의 선유도는 신록과 바다가 봄의 색으로 붓칠을 한듯 선명하게 싱그럽다. 맑은 날에는 바닷가에서 일몰과 일출의 감동을 맞이할 수 있고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섬들이 흐려졌다가 가까이 왔다가 하면서 선유도의 이름값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선유도는 나에게 선망의 섬이다. 3월이면 신시도 초입에 있는 대각산을 찾곤 하였다. 산을 찾은 이유는 산자락에 피어나는 산자고, 보춘화를 보기 위해서다. 들꽃 너머로 펼쳐지는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며 바다, 섬, 꽃이 어우러진 풍경에 황홀해 하였다.
오전에 산을 올랐어도 산을 내려가는 시간은 해가 진 후였다. 대각산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바다 위에 보석처럼 빛나던 섬들과 함께 남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기다림의 끝에 섬들 사이로 태양의 붉은 빛이 짙게 깔리다 빛이 사라진 뒤 어둑해져서야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신시도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그것이 2년 전이니 다리가 개통되기 전이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다리가 2017년 12월에 개통되어 많은 사람들이 선유도를 찾고 있다. 섬까지 다리가 연결되었다 하나 섬의 매력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걷기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섬 유람의 묘미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선유도는 5월 여행지로 제격이다. 자전거를 빌려 바닷바람을 느끼며 섬을 달려보아도 좋고 고군산군도 내를 도는 유람선을 타고 유람을 즐기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