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50년째 장사를 이어온 노포와 1970년대 인테리어로 새로 문을 연 식당. 전자는 전통이라 말하고, 후자가 ‘레트로’라 하겠다. 이러한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은 중장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녀와 함께 데이트 즐기기 좋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
◇ 익선동 한옥섬을 한눈에 ‘낙원장’
옹기종기 기와지붕 아래 레트로풍 맛집과 아틀리에가 즐비한 익선동 거리. 부티크호텔 ‘낙원장’에서는 골목을 가득 메운 한옥 150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지어졌던 ‘그린필드’라는 낡은 여관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매입,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클래식한 건물 외관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레트로 플레이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객실은 일반뷰와 한옥뷰, 프리미엄 한옥뷰 총 3단계로 나뉜다. 그중 LP플레이어가 있는 한옥뷰 룸을 선택하면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선동 풍경과 함께 LP음악까지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5 숙박비 평일(일~목) 7만~9만 원, 주말(금~토) 9만~11만 원
◇ 아날로그 선율에 빠지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PLASTIC)’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음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음악체험형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소재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 왼편으로는 턴테이블이 놓인 긴 탁자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선정한 200장의 LP명반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는 클래식, 재즈&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LP음반 9000여 장과 다양한 음향장비를 전시, 판매한다. 2층은 1만6000장에 달하는 CD와 더불어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이용시간 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현대카드 미소지자도 입장 가능)
◇ 한국·태국의 퓨전 레트로 맛집 ‘동남아’
태국요리전문점 ‘동남아’의 입구.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낡은 검푸른색 철문을 활짝 열면 레드벨벳 커튼과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맞이한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 오묘한 식당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태국 연회장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표현했단다. 메인 홀 외에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었는데, 룸마다 강렬한 색감의 독특한 벽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중탕 욕조(?)를 연상케 하는 앞마당의 테이블은 겨울철 식사를 즐기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기 메뉴인 꽃게와 커리로 맛을 낸 ‘뿌빳 퐁 커리’와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등 현지 셰프가 요리한 다양한 오리지널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3-6 이용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주말 제외)
◇ 도도한 모던걸의 화려한 외출 ‘경성의복’
익선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듯, 이곳에서는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레트로 감성을 한껏 즐기는 것이 트렌드. ‘경성의복’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복고 의상과 셀프 촬영을 위한 포토존이 구비돼 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모던걸이 되어 거리를 누벼보는 것 어떨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56 2층 이용시간 매일 10:00~20:00
가격 의상대여(의상·장신구·모자·기타소품) 3시간 3만 원/6시간 4만 원/하루 4만5000원/1박2일 5만 원
◇ 딸과 데이트하는 날엔 ‘경양식 1920’
1980년대 전후, 가족외식 하면 떠오르는 경양식집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경양식 1920’. 레트로 거리로 유명해진 인선동 골목에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함께 올 수 있는 외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꾸미고 추억의 메뉴들을 불러왔다. 24시간 숙성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실제 방문한 고객들을 살펴봐도 젊은 연인부터 엄마와 딸,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사이드 메뉴로는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맛보던 수프와 멕시칸 사라다(샐러드)를 선보인다. 특별한 날에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17-30 이용시간 평일 12:00~22:00, 주말 11:0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주말 제외)
◇ 뒹굴뒹굴 잠시 쉬어가는 ‘만홧가게’
과거 만화잡지 ‘챔프(CHAMP)’를 비롯해 ‘우주소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과 그래픽노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런치스페셜(라면·즉석밥·계란·김치/단무지+만화 1시간, 6000원)로 이용해보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영업시간 11:00~23:00 가격 1인 기준 10분당 500원, 좌석(주말 및 공휴일) 2000원
동년기자가 직접 다녀온 레트로 핫 플레이스
◇ 최원국 동년기자/ 돌고 도는 레트로 액티비티 ‘자이언트 롤러장’
부천의 레트로 명소 ‘자이언트 롤러장’.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인파가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부천의 ‘자이언트 롤러장’이 유명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복고풍에 맞춰 추억의 이름을 다시 불러왔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30년 전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찾는 듯하다. 롤러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DJ가 있어 음악에 맞춰 롤러를 타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곳곳에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을 이용하면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의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니어라면 친구 또는 아이들과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장말로 376 지하 1층 1일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유아~고등학생 9000원 영업시간 평일 12:00~22:00(무제한 이용), 주말 10:00~22:00(3시간 이용)
◇ 윤영애 동년기자/ 시간이 머무는 곳, 우유 카페 ‘희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하얀 3층집, 카페 희다. 낮은 계단을 테라스 삼아 나무 소반에 왕골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젠가 분명 와본 듯 너무나 친숙한 느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냄새도 나는 듯하다. 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밥상 테이블, 양은 개다리소반, 자개문양 화장대와 거울, 낡은 찬장과 괘종시계까지. 곳곳을 돌아보며 낡은 물건들에게 속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 있다가 여기로 왔니?’ 메뉴를 보니 우유가 주다. 기본 우유에 커피, 홍차, 말차, 페퍼민트, 미숫가루까지 6가지다. 사이드 메뉴로 옥춘당 때때사탕과 큼직한 레몬 마들렌도 있다.
프런트의 젊은이에게 주문을 하고 대표님이 누구시냐 물으니 본인이란다. 긴 생머리가 멋진 나두리 대표 역시 작년 7월 오픈 이래 가장 연로한 리포터가 왔다며 빙긋 웃는다. 주고객은 복고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고, 우연히 동반한 부모님이 친구들과 다시 와서 단골이 된단다. 대부분의 물건은 나 대표 할머니가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고객의 평이 가장 맘에 든단다.
느슨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콘셉트였다는 나 대표의 의도는 조용한 음악과 소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갓 씌운 백열등, 도자기, 왕골바구니, 낡은 찬장 속 오래된 커피 잔과 유리컵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어 정겹다.
‘희다’는 기쁘다[喜]와 많다[多], 즉 기쁨이 넘치는 곳 혹은 우유의 하얀 빛깔을 뜻한다. 오래됨과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카페 한편에 ‘검다’라는 글자가 쓰인 화분을 가리키니, 개업 후 “희다인지, 검다인지 카페는 잘돼가냐?” 했다던 아버님의 조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창밖 현관 옆에는 ‘웃다’라는 이름의 화분도 있다. 잠시 후 혼자 들어온 고객은 동네 주민이라며 아이를 기다리다 들렀는데 편안하고 조용하다면서 레트로풍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흡족해한다.
바람 불고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논현동 도심 한복판에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하다. 500㎖의 대용량 미숫가루우유는 인심만큼 넉넉하다. 남겨온 때때사탕을 구순 노모에게 드리니 어디서 이런 사탕을 사왔냐며 좋아라 하신다. 시간이 멈춘 나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녀온 것처럼 왠지 마음이 따시다.
위치 서울시 서초구 주흥15길 16-4층 영업시간 매일 11:00~21:00
2018년 1월 1일. 짝지의 60세 생일이다. 이제는 헤아리기도 버거운 시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어쩌다 보니 같이한 세월도 34년이다. ‘인생 금방’이라는 선배들의 푸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시절 데이트는 대부분 ‘두 발로 뚜벅뚜벅’이었다. 좋아서 걷고, 작업하려고 걷고, 돈이 없어서 걷고, 사색하느라 걷고. 애꿎은 다리만 중노동하듯 시달렸다. 남자 친구가 학교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 집까지 데려다 주다가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남산, 능동 어린이대공원, 경복궁, 덕수궁, 동숭동, 인사동, 명동, 북한산, 수락산, 소요산 등등 참 많이도 걸었다. 그중 최고는 조국순례대행진! 8월 1일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대학생들이 한곳에 집결해 광복절 기념식을 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학교당 4인 1조로 참여하는 이 걷기순례에서 많은 추억과 인연이 만들어졌다.
필자 팀은 김천에서 출발해 청주까지 꼬박 14박 15일을 걸었다.
8월 한여름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걷던 수많은 청춘의 진한 땀 냄새가 가득했다. 필자 인생에서 더 이상 가보지 못한 길들이다. 50대에 시작한 등산에는 그 시절에 대한 로망이 묻어 있음을 본다. 특히 지리산 종주 산행은 그때의 용기를 떠올리게 하는 자조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국순례대행진 때 추억을 만들어준 몇몇 인연이 58년 개띠였다. 아삼삼한 기억을 돌려보면 온통 개판이다. 참가자들의 학번이 대부분 77, 78이었으니 말이다. 두 발 데이트에 딱 어울리는 것은 영화와 연극 관람이다. 국도극장, 대한극장, 명보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동숭동 소극장, 덕수궁 옆 창고극장, 명동 소극장, 장충동 국립극장. 그 이름만으로도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DJ의 에코 멘트와 리퀘스트가 있던 음악다방. 어둠침침했던 레스토랑! 서양 필이 나던 커피 맛! 공강시간이면 내 아지트처럼 달려갔던 구석진 그곳! 학교 주변 호프집과 시장통 선술집 기억은 거의 없다. 그 주님(?)과 친하지 못한 관계로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다.
그 시절 인기 있는 장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동네마다 들어서 있던 작은 서점과 만화방이다. 서점도 데이트 장소로 인기였다. 필자의 취미이자 특기인 독서는 만화책 읽기와 연애시집 사기에서 시작됐다. 가끔씩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되는, 자식 나이보다 더 오래된 누런 책을 아이에게 권해본다.
레코드판도 서점에서 구입했던 것 같다. 용돈 아껴 한 장씩 사 모았던 LP판. 이제는 골동품이 되었다. 서점 한쪽에 LP판을 매입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추억을 팔 수는 없다! 하고 간직하고 있지만 보관이 어려워 애물단지다. 최근 턴테이블을 찾아 모양을 갖춰봤다. 어느 날 한 번은 꼭 틀어볼 셈이다. 옷과 가방을 구입할 때는 명동이나 이대 앞, 동대문시장이 최고였다. 전자제품은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로 갔다. 그러고 보니 당시 핫 아이템이었던 소니 워크맨을 사러 신촌 미제시장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들어갔던 당구장은 남자들과 담배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금녀의 공간이라기에 분위기가 어떨지 조금 궁금했는데 딱히 충격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었다. 40대 초반에 배운 포켓볼. 담배 냄새 없는 집 근처 당구장을 찾아 열공했던 시절도 있다. 주인장은 온종일 당구장에서 큐대를 들고 낑낑대는 필자를 보고 “아줌마! 밥하러 안 가세요?” 했다. 그러면 “밥 미리 해놓고 왔어요~” 했다.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 시절은 포크송이 대세였다. 송승환과 왕영은이 사회를 보던 1980년대 인기 음악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이어진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의 등장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통기타 메고 가요제 참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도 길거리에서 밴드 보컬 제안을 받은 쑥스러운 기억이 있다. 교내 축제 공연이 있던 날, 술자리에서 급조된 짝지네 팀 밴드는 딕패밀리의 곡 중에서 신중하게 ‘나는 못난이’를 간택(?)해 참가했다. 공연하는데 전기가 나가 비록 앰프와 마이크는 꺼졌지만 젊은 혈기는 청춘의 생목으로 끝까지 완창하는 투지를 발휘했다. 과 동기의 의리로 베이스 담당 짝지에게 꽃다발 들고 응원을 갔건만 노래 제목처럼 되어버린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재미나다. 결과와 무관하게 지난 시간들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
이제 그 청년은 한쪽 어깨에 통기타를 메고 ‘동해 하조대해수욕장’이라는 간판을 배경으로 빛바랜 사진 속에 서 있다. 나팔바지에 청재킷을 걸치고 긴 머리를 쓸어 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고혈압을 조심하는 육순의 장년이 되어 있다.
필자는 견공(犬公) 세 분과 산다. 12세 레드 닥스훈트와 2세 믹스 유기견, 그리고 58개띠 짝지 그분이다. 34년을 동고동락한 그분과의 세월보다 선한 눈빛과 따스한 체온, 변함없는 신뢰의 견공 두 마리에게 더 맘이 간다.
‘호모 사피엔스 짝지 vs 거의 호모 멍멍이우스’
필자와 동종이신 그분은 두 마리 견공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대놓고 내비친다. 무엇을 해도 ‘개판’이 된다며 툴툴대는 58개띠 짝지님의 씩씩 건재함에 감사를 보낸다.
“저기요~ 앞으로 남은 시간 사이좋게 지내봅시다!”
가을은 유독 ‘고독’의 정취가 느껴지는 계절이다. 왕왕거리던 여름을 지나, 낙엽 같은 트렌치코트를 휘감고 조용히 무드를 즐기고만 싶다. 이때 한껏 분위기를 내려면 와인 한 잔 정도는 즐겨야 하지 않겠나. 여기에 고급스러운 재료로 풍미를 살린 생면 파스타는 또 어떤가? 분위기, 와인, 맛, 이 세 가지를 만족스럽게 채워줄 맛집 ‘와인 북 카페’를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와인 그리고 책이 어우러진 풍경
‘와인 북 카페(wine book cafe)’는 와인과 북(책)이 들어간 레스토랑의 이름처럼, 740여 종의 와인과 300여 권의 와인 서적을 갖추고 있다. 2007년 문을 연 이래로 그동안 수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올해
7월에는 보유 중인 우수한 와인 리스트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와인 전문 매거진 가 주최한 레스토랑 어워즈에서 ‘Two Glass’를 획득하며 ‘BEST OF AWARD OF EXCELLENCE’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국내에서는 7곳뿐이라고). ‘와인 좀 안다’고 자부하는 이라면, 꼭 한번 들러 이곳의 내공을 체감해보길 바란다.
와인과 함께 익어가는 빈티지 인테리어
가게를 둘러보면 오래된 레코드판, 축음기, 진공관TV, 턴테이블 등 빈티지한 소품들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중앙에 매달린 양면시계는 실제 파리 전철역에 걸려 있던 시계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와인처럼, 구석구석 빛바랜 물건들이 이곳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또 책장에 무심하게 꽂혀 있는 책들은 여느 레스토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한 편안함을 준다. 침침한 조명, 어두운 나무 테이블과 바닥 그 안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투명한 와인 잔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과 음식,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더없이 좋은 분위기다. 음식만 즐기러 갔더라도 어쩐지 와인 한잔 따르고 싶어지는 묵직한 정취가 느껴진다. 혹시 와인에 대해 잘 모르거나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곳 소믈리에의 조언을 받아보자. 평소 취향이나 입맛, 곁들이는 메뉴 등을 고려해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줄 것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생면 파스타 요리
이곳의 이름을 다시 정한다면 ‘와인 북 그리고 파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급 생면 파스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재료나 소스 등도 특별하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건면이 아닌 생면을 사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파스타 면은 매장에서 직접 반죽해 만들고 있다. 전진하 셰프는 “생면 파스타 반죽은 밀가루와 달걀노른자로 만든다. 그 외에 물, 달걀흰자 심지어 소금도 넣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파스타는 일반 건면 파스타와 식감이 다르고, 또 다른 생면 파스타에 비해 단단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잘 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 셰프는 레드와인과 어울리는 메뉴로 이탈리아산 제철 생송로버섯이 가득한 피에몬테식 타야린 생파스타를, 화이트와인과 어울리는 메뉴로 마스카르포네 감자퓌레로 속을 채워 바질페스토에 버무린 라비올리를 추천했다. 사실 단골들은 메뉴북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계절마다 제철 재료에 따라 메뉴가 리뉴얼되기도 하고, 또 그날그날에 따라 와인과 메뉴를 제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특별히 꽂히는 게 없는 날엔 이곳 셰프와 소믈리에의 안목을 믿고 과감히 테이블을 맡겨보는 것도 괜찮겠다.
주소 강남구 논현로 149길 5 배전빌딩 1층(학동역 7번 출구와 압구정역 4번 출구 사이, 을지병원 사거리 SK주유소 옆) 운영 시간 오후 5시 30분~새벽 1시 30분(일요일 휴무) 예약 문의 02-549-0490
8월 12일 ‘물맑은양평체육관’에서 열린 2017 장애인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다. 타임 테이블을 보니 필자가 출전할 비에니즈 왈츠 종목은 오후 1시였다. 그렇다면 아침에 느긋하게 출발해도 될 일이었다. 전날 내려가야 하는 먼 지방대회와는 달리 서울 근교 지방대회는 그래서 좋은 것이다.
이번 대회는 9월16일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두 번 지방대회를 거쳐야 하는 자격 조건 때문에 출전한 것이다. 마침 서울 근교에서 벌어지는 경기라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가끔 양평을 지나면서 ‘물맑은양평체육관’을 보고 추억이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집에서부터 지인이 차로 태워준다 하여 오전 9시에 출발했다. 전철로 1시간 반이니 자동차로는 한 시간 쯤 걸려 10시쯤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하남 인터체인지에서 진입로를 놓쳐 한 바퀴 돌고 나니 20여분이 훌쩍 지났다.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양평 방향으로 가는데 하남 시에서 휴가 차량들이 꽉 막혀 꿈쩍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비게이션이 도착시간을 11시 반 정도로 알려주고 있어 위안이 되었다. 경기 시간까지 여전히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로가 팔당대교를 건넌 이후에도 계속 막혀 자칫 경기 시간 전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샛길로 빠져 차라리 전철을 탈까 생각도 해봤으나 그것도 실행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하염없이 밀리는 도로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실하게 먹은 아침 식사에 배도 고프고 해서 길가에서 파는 술 빵, 옥수수로 배를 채웠다.
그러나 다행히 자동차는 11시 45분쯤에 체육관에 도착했다. 경기는 한창 진행 중이었고 시각장애인 파트너가 와 있었다. 곧바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파트너에게 비에니즈 왈츠 추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 번도 홀드해서 같이 춰보지 못했다. 그러나 연습 때 다른 파트너와 같이 추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파트너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하여 교정할 수 있었다. 먼저 그대로 춰 봤는데 역시 무릎이 부딪히고 파트너의 스텝이 꼬이고 있었다. 앞꿈치로만 추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것은 비에니즈 왈츠의 박자를 123 223 방식으로 정박자를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경기에서는 1~23, 2~23 방식으로 싱코페이션으로 해야 춤이 뜨지 않고 안정적으로 출수 있는 것이다. 왼쪽으로 도는 리비스 턴이 잘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4번으로 최소화 했다. 다만 스텝이 꼬여 넘어지는 불상사를 막으려면 박자를 놓치더라도 그 부분에서는 침착하게 스텝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초보자들이 흔히 범하는 히프가 뒤로 빠지는 것은 벨트라인을 서로 붙여주라고 했다. 어깨 내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자세에 대해서도 코치했다. 그렇게 말로 하는 레슨이 끝났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파트너는 그대로 잘 따라 줬다. 가장 걱정했던 스텝 꼬임으로 플로어에서 넘어지는 불상사는 면했다. 파트너도 연습만 조금 더 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평소 연습 한번 같이 안하고 말로만 레슨 코치를 하고 시합에 임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파트너가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어 떨지 않고 제대로 춤을 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경기 시간 1분 30초를 위해서 모두 땀을 흘렸다. 그리고 차 밀리는 양평까지 가서 대회를 치렀다. 무난히 경기를 소화해서 만족스러웠다. 파트너가 “선생님만 믿고 따라 가겠다”고 한 것이 앞으로 연습에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레코드판에는 욕심이 많았으나 오디오 기기에는 욕심을 부릴 형편이 못 되어 결혼 후 얼마간은 야외휴대용 전축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당시 국산 중에서는 가장 낫다는 ‘별표 전축’을 구입했다. 이것을 들여놓은 날은 마치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필자가 이 별표 전축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뉴욕대학교 폴리테크닉대(Polytechnic Institute of New York)의 방문교수로서 1985년에 미국으로 건너갈 때였다. 이때쯤은 전축도 상당히 낡았고 또 아들 넷을 동반하자니 짐이 많아 도저히 이것까지 가져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뉴저지에 얻은 셋집에서 모처럼 음악이 없는 삶을 살던 어느 날, 뉴욕의 5번가를 따라 한인상점들이 많은 지역을 걷고 있는데 ‘Fisher Audio Sale!’이라는 광고가 필자의 눈을 때렸다. 당시까지 필자는 외제 오디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지만 지도교수이셨던 C교수께서 항상 자랑하시던 것이 바로 ‘Fisher 오디오’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점포에 들어가 보니 물론 교수님 댁 것과 같은 고급 모델은 아니었지만 성능이나 모양도 그럴듯하고 가격도 큰 무리 없이 살 수 있는 정도여서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했다. 이 오디오는 귀국 후에도 친구들이 ‘서린 카페’라고 부르던 필자의 서린아파트 거실을 차지하고 가족들은 물론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많은 음악을 선사하였다.
1990년 초, D건설에 근무하던 친구 K군이 동대문운동장 옆 민자 지하주차장 건설 현상공모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다행히 이 작품이 당선되자 그 친구는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가 제대로 된 오디오 하나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며 돈 대신 오디오를 한 세트 기증하고 싶다고 제안하였다. 당시 필자는 전설적인 DJ 최동욱씨와 몇 번 방송을 같이 한 적이 있어서 상의해보니 영국의 B사 제품을 추천하며 용산 전자상가에 있던 ‘태양오디오’라는 B사 대리점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B사 오디오보다 기기별로 특성이 있는 컴포넌트들을 모아서 꾸며보라고 권하였다. 그래서 프리앰프 분리형 Audio Innovation 진공관앰프, Thorens 턴테이블, Sony CD플레이어, Teac 카세트데크, Elac 스피커 등 최고급은 아니지만 매우 실용적인 컴포넌트로 구성된 본격적인 오디오 시스템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Fisher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 오디오로 인하여 ‘서린 카페’의 격은 한층 더 높아졌으며 친구들도 더 자주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용인으로 이사 온 후인 2000년대 중반까지도 가끔씩은 친구들을 불러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곤 하였다. 최근에는 이 오디오를 쓰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 대신 수년 전에 구입한 Teac 소형 올인원 오디오로 종종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이 오디오는 LP나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을 CD에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옛날에 좋아하던 LP음악을 차에서 들을 수 있도록 CD에 녹음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필자와 매우 가까운 친구인 (재)월드뮤직센터의 강선대 이사장은 필자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음악 수집광으로, LP나 CD만 해도 필자의 10배 정도인 수 만장을 가지고 있다. 또 음악을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 관련 책자, 외국의 각종 민속악기 등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그는 특히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에 많은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잡지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필자는 명지대 교양학부에 ‘세계의 민속음악’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그를 겸임교수로 초빙하도록 하였다. 이 강좌는 수년간 인기리에 운영되었다. 우리들은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전 세계 음악자료의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아카이브와 국내외 음악 관련 학술 연구 지원 및 세계음악의 대중적 보급을 위한 세계음악문화연구소 등의 설립을 추진해 나가는 한편,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나눔과 소통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법인을 설립할 필요가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9년 7월, 강 이사장을 중심으로 필자와 몇몇 사람이 모여 월드뮤직센터 설립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약수동에 사무실을 얻어 소장품을 옮겨온 후 정리를 시작하였고, 2011년에는 국내외 월드뮤직 전문가 및 활동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후 2012년 11월에는 (재)월드뮤직센터를 정식으로 설립하였고 세계 음악학회와 공동으로 “다문화 사회와 음악: 글로벌 현황과 우리의 실천적 과제”라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2013년에는 아카이브 구축을 시작하였고, 북촌우리음악축제를 후원하기도 했다.
2014년 3월에는 국민대 김희선 교수를 소장으로 세계음악문화연구소를 설립했고, 4월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여러 단체의 후원을 받아 Asia Society와 공동으로 ‘뉴욕 한국음악 페스티벌:산조와 판소리’(New York Korean Music Festival: Sanjo and Pansori)를 주최하였다.
또 9월부터 11월까지는 매주 월요일 오후 3시부터 90분간씩 국민대학교 명원민속관(한규설 대감댁)에서 강 이사장, 음악평론가 황우창, 세계음악학회장 박미경 등의 강의로 월드뮤직 가깝게 듣기 시민강좌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비엔날레로 개최되는 아시아 월드뮤직 어워드를 제정하여 제 1회 수상자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그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을 선정하고 10월 27일 13시 30분에 예술의전당 푸치니 홀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그 다음 날은 관계자들과 더불어 그들의 공연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음악 듣기 딱 좋은 계절이다. 떨어지는 낙엽과 옷깃을 여미게 하는 바람은 감수성을 자극한다.
괜스레 천천히 걷게 되고,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한참 주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익숙한 한 곡조를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친숙한 노랫가락은 애쓰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것 같은데, 정작 노래 한 곡 듣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요즘 음악 듣는 법은 복잡하다. 음악을 파일로 휴대폰에 넣으면 들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데, 이젠 그 방법도 아니란다.
그 흔했던 레코드점은 2015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LP가 테이프가 되고, CD에서 MP3로 듣는 미디어가 변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만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녹음하거나 재생하는 기술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당황스럽다. 언제부터인가 레코드점은 귀한 장소가 되더니, 서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애써 그곳을 찾아간다 하더라도 어쩐 일인지 신곡 CD 찾기가 쉽지 않다. 가수들이 이제 온라인에서 음원 판매에만 힘쓸 뿐 CD와 같은 미디어의 대량 제작은 꺼리기 때문이다. 지금 CD는 소수 열성 팬들의 차지다.
50대 동안(童顔) 가수로 불리는 이승환씨는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이제 음악은 소유하는 것에서 소비하는 것으로 변모했다”고 정의 내렸다. 한 장 한 장 앨범을 사 모으고, 앨범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던 것은 안타깝게도 이젠 옛날 추억이 되어 버렸다는 선언이다. 미래 기술에 매달리는 기술자도, 판매에 목맨 장사치의 이야기가 아닌, 한때 LP 레코드와 CD로 수익을 얻던 현직 가수의 이런 이야기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요즘 음악 시장 ‘소비’의 축은 스트리밍이라는 기술이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보는 유사 기술은 ‘TV 다시보기’ 기술이다. 이는 마치 커다란 도서관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TV나 스마트폰으로 꺼내보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LP나 CD와 같은 별도의 미디어를 소유할 필요 없이, 돈을 지불한 회사에서 통신망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재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전용 앱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재생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PC를 오디오와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
소유에서 소비로
중년들은 이런 음악의 ‘무소유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시대적 변화에 대해 前 편집장이자,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 중인 오승영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음악을 파일로 재생하는 방식은 관련업계에 종사하거나 스스로 관심을 갖고 다루어 온 경우가 아니라면 많이 낯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현상이 음악재생산업의 큰 축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관심을 갖고 크고 작은 재생 기기와 시스템을 접하려는 활동은 중요합니다. 현상 자체를 무시하면 스스로가 주류에서 멀어진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LP가 그랬듯이 CD재생 시스템도 주류의 자리를 넘겨줄 뿐, 별도의 노선을 통해 생존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병행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인켈과 태광, 삼성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다 이제는 오디오 팟캐스트를 운영 중인 윤종민 소장은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시니어들에게 음악을 듣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제품들의 인터페이스, 즉 조작방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젊은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제조사들이 먼저 이러한 장벽을 제거한다면, 보다 쉽게 시니어들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반에서 음원으로
하지만 윤 소장도 시니어들의 변화와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적응을 촉구한다.
“평생 갖고 있는 음반만 고집하겠다면 기존 시스템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미디어로의 전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갖고 있는 음반을 디지털화한다면 좀 더 편안한 음악감상과 소유 두 가지 모두를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도서관’을 나만의 도서관으로 만들어 집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이야기다. 요즘 유행하는 NAS(개인용 파일서버)가 이런 식이다. 일반인이 NAS를 구축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일단 구축해 놓으면 인터넷이 연결된 곳 어디서든 꺼내 들을 수 있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디지털로의 ‘복각’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영구적인 보존이다.
가 실시한 오디오점 만족도 조사에서 수년간 1위를 지켜냈던 금강전자 고태환 대표는 보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잘 보존된 앨범 한 장은 미술품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화재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음악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는 중요합니다. 다만 진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변환되는 소리를 오롯이 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장비가 필요합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렇다면 앞으로의 음악감상은 어떤 모습일까? 오승영 평론가는 앞으로의 음악감상에 대해 이런 예상을 밝힌다.
“음악감상이라는 고유의 취미성은 대중화와 고급화가 동시에 진행될 거라 봅니다. 소프트웨어와 그 서비스 시스템, 재생 하드웨어 등이 결합된 음악 재생품질의 향상은 음악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기기들과 폭넓은 사용환경에서 청취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나 지하철에서도 고음질을 손실 없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네트워크와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강화해야 하겠지만, 오디오 마니아에 대해 스노비즘(속물근성)을 들이대던 대중적 시선도 스트리밍의 음질적 차이에 대한 자각을 통해 경계심이 완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원 전용 재생기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거실의 오디오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주자는 아스텔앤컨이다. 아스텔앤컨은 한때 MP3로 명성을 높였던 아이리버의 고급제품 라인이다. 이들은 고음질 음원재생기기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얻은 상태로, 최근에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하이파이(고음질 오디오) 오디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아이리버 제품기획담당 안지현 과장은 음악감상의 미래를 이렇게 예상한다.
“네트워크 기반의 음악감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향후에는 이보다 더 발전해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IOT(사물인터넷)와 연계되어 지금보다 더 편리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음악 패턴을 특정 알고리즘으로 파악해서 그날의 날씨 등과 연계한 음악을 조명이 켜지면서 들려주는 방법 등 실생활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다시 음악감상실로
그래도 음악듣기가 어렵다면 기존의 방식을 따르면 된다.
물론 집에 뱅앤올룹슨이나 매킨토시와 같은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그대로 감상하면 되지만, 여의치 않다면 음악감상실이 대안이다. 음악감상실은 최근 들어 되레 늘어나는 추세다. 음악감상실은 양평이나 파주, 성북동 등 중년들이 자주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데, 오디오 마니아들이 본격적으로 전업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리버도 이태원에 그룹 청취실과 루프탑 라운지 등을 갖춘 4층 규모의 음악감상 공간 스트라디움을 최근 오픈했는데, 유명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의 해설을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민 DJ로 사랑받았던 황인용씨가 개설한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는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유명하다.
“젊은 분들도 오시긴 하지만 아무래도 중년층이 많이 찾는 편입니다. 좋은 음질로 클래식을 감상하고자 하는 분들이 찾아 주십니다” 라고 관계자는 이야기한다. 역시 중년은 음악감상실에 익숙한 세대인 것이다.
요즘의 대중가요는 4분을 넘기는 게 거의 없다.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세대에게는 4분도 길다며 3분 10초 내외로 상품을 내놓는다. 작품이 아니다. 그러고는 음원의 순위를 고가에 거래하는 일들이 폭로되기도 한다.
커다란 스피커 앞에 자세를 고쳐 앉고, 음반 속지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던 세대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지금의 기술적 진보가, 아버지 사랑방의 독수리표 전축보다 나은 소리를 들려준다는 보장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음악듣기는 달라졌고, 그 변화는 진보에 대한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세상에서 더 나아진 음악감상을, 변화된 환경을 조금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LP 레코드를 디지털로 복각하는 방법
LP 레코드를 복각하는 것은 용도에 따라 그 방법이 다양하다. 전문적인 음질을 보장받고자 한다면 큰 비용의 지출을 각오해야 하지만, 기록을 위해 남기는 용도라면 낮은 가격으로도 가능하다.
1. 디지털 변환장치를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하는 방법
LP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주는 ADC를 구매해서, 기존 오디오의 LP나 프리엠프에 연결하는 방법이다. ADC는 Analog-Digital Convert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주는 장치다. 고가의 턴테이블과 고성능의 ADC가 만나면 CD에 버금가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며, 대부분의 경우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2. 복각 전문 업체에 맡기는 방법
LP 복각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여러 업체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적인 기념 앨범이나 복각하고자 하는 앨범이 몇 장 되지 않을 때 추천한다. 시중에 4~5개 업체가 활동 중이며, 앨범 한 장 복각 가격은 5만원 내외.
3. USB 턴테이블을 구매해 활용하는 방법
직접 USB를 꼽아 MP3와 같은 컴퓨터용 파일을 만들어 주는 장치들이 시중에 많이 등장했다. 다만 대부분의 장비들이 전문적인 오디오 장비가 아니라, 아이디어 상품 수준이어서 음질이나 만듦새가 조악한 경우가 많다. 저가의 바늘(카트리지)은 LP 레코드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대신 기존 오디오와의 연결 없이 자체적으로 복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4. PC 사운드카드를 사용하는 방법
PC의 사운드카드를 활용한 방식. 사운드카드의 입력단자에 LP의 신호를 입력해 PC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MP3 파일 등을 제작할 수 있다. 수년 전 디지털 오디오의 저렴한 대안으로 선호되었으나, 최근에는 효용이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국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현황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은 통신사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각 통신사의 멤버십 서비스는 데이터 요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 이밖에도 애플과 삼성이 자사 기기에 갖춘 어플을 통해 음악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국내 포털에서 애플 뮤직으로 검색하면 등장하는 사이트는 아이폰 제조사 애플과는 무관하다.
1. 멜론 www.melon.com, SK텔레콤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2. 벅스 www.bugs.co.kr, SK텔레콤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3. 지니 www.genie.co.kr, KT올레 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4. 엠넷 www.mnet.com, LGU+사용자는 스트리밍 무제한.
5. 네이버뮤직 music.naver.com, PC 사용자에게 유리.
6. 그루버스 www.soribada.com, 고음질 MQS 스트리밍 서비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별들이 넘치는 계곡으로 가요. 올 여름 바캉스에서 가족과 아내와 남편. 또는 애인과 달콤한 사랑을 속삭일 LP곡을 뽑아봤다. 우리 5060이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긴 머리 휘날리며 온 세상을 누비던 시절 들었던 추억의 곡들이다. 올 여름 바캉스에는 근사한 턴테이블 하나 들고 가는 것은 어떨까?
◇ 키보이스, 골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이 바로 이 ‘해변으로 가요’일 것이다. 한국의 비틀즈라는 별칭으로 국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키보이스. 그들의 앨범 골드(Gold)는 여름을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캉스에서 들을만한 LP를 추천해달라고하자 박 대표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앨범이다. ‘해변으로 가요’외에도 ‘바닷가의 추억’, ‘정든 배’ 등 주옥같은 곡이 있으니 가히 여름을 위한 LP라 할만하다.
◇ 한상일, 애창곡집
한상일의 애창곡집 중 ‘애모의 노래’는 노랫말이 몹시 구슬프다. 그러나 멜로디가 꽤나 감성을 자극하고 서정적이다. 박 대표는 바캉스에서 느지막한 저녁.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들을 수 있는 노래로 한상일의 ‘애모의 노래’를 추천했다. ‘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 노랫말처럼 되지 말고, 바캉스에서 옆에 있는 짝과 앞날의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 윤형주, 골든 포크 앨범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휘파람 소리와 통기타 소리가 신나게 어우러져 어깨가 들썩거린다. ‘쎄시봉’ 윤형주의 ‘즐거운 하이킹’이다. 통기타를 배운 사람이라면 가족들과 모닥불 피워놓고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물론 기타가 없어도 걱정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스크래치 음성이 들리는 LP가 있으니까. 통기타 대신 가족을 위해 또는 동행자를 위해 이 LP를 준비했다면 그날 만큼은 당신이 쎄시봉의 주인공이다.
◇ 은희, 골든 디럭스 20
분위기 잡기 좋은 노래다. 10대 20대의 자식들과 함께라면 우리 때는 이런 노래가 있었다고 자랑 할 수도 있다. 은희의 ‘물새우는 해변’이다. 드넓은 밤바다가 외로워 보인다면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지도 모른다. 바캉스의 여름밤이 즐거워야만 하랴. 슬픔의 눈물을 훔치며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여러 여름 밤 중 하나이니. 사무치는 외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 곡에 빠져 보길 추천한다.
◇ 4월과 5월, 베스트
7월과 8월 듣기 좋은 노래로 박 대표가 추천한 곡이다. 4월과 5월의 ‘바다의 여인’이다. 새로운 인연을 만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던 젊은 날의 바캉스. 그러나 그 기대는 한 줌의 모래알과 같았던 적이 많지 않은가. 그 설렘과 허무함이 이 곡에 담겨있다. 추억할 수 있다면 이 곡만 한 것도 없다. 노랫말 그대로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바닷가에서 추억을 맺은 사람’들도 이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 비치보이스 (The Beach Boys), 베스트 오브 더 비치 보이스(Best Of The Beach Boys)
자식들과 함께 들어라. 신나게 발을 땅에 비벼라. 몸을 흔들어라. ‘신난다’라는 표현은 약하다. 가족 사이에 웃음이 만개할 것이다.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의 ‘서핑 유에스에이(Surfing USA)’다. ‘외국곡 추천해도 돼죠?’. 박 대표가 물었다. ‘예’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천했다. 이 곡을 듣자마자 여름곡이라는 확신이 생길 것이다. 다리도 저절로 움직일 것이고, 나도 모르게 ‘트위스트 킹’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 앞이라고 부끄러워 하지말라. 그들도 똑같을테니. 소통? 이 노래하나면 끝이다. 몸으로 말하면 된다.
◇박임선 대표 소개
동굴에 35년 동안 살고 있다. LP의 동굴이다. 황학동에 위치한 ‘장안레코드’의 대표인 박임선(55)씨는 LP와 음반의 산 증인이다. ‘지지직’ 소리가 나는 LP를 CD보다 더 좋아한다. 그야말로 음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윤시내의 '열애'가 흘러 나왔다. 그냥 묵묵히 아무 표정없이 두 눈을 감고 있는 사람. 그런데 그 사이로 다른 얼굴들이 들어온다. 눈을 감고 추억에 젖은 사람, 윤시내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 조명이라고 해봐야 노란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마치 예전의 디스코텍을 연상케 한다. 현란하지 않지만, 튀지 않는 소박한 분위기는 잠깐 잡념을 떨쳐 버리고 나만의 세계에 젖어들기 충분하기도 했다. 나즈막한 DJ의 중후한 목소리. 자세히 들어보면 꽤 세련된 모습이다.
소박하지만 뭔가 진중한 이 분위기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미동이 나타난다. 음악가락에 몸을 맡기는 사람, 눈을 살포시 감는 사람. 처음찾은 이곳은 어색하기만 했는데, 이미 먼저 자리를 찾은 사람들은 이미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 자그마한 공간은 훈훈한 추억의 온기로 가득 했다. '추억 더하기’에 다들 몰입해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양은 도시락을 먹는 사람, 차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그리고 친구들과 옛 이야기에 웃음 짓는 사람으로 15개의 테이블은 만원이었다.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추억더하기’는 지난 해 5월 문을 열었다. 양은 도시락 3000원, 잔치국수 3000원, 커피 2000원.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제공하는 ‘추억더하기’는 신중년들의 쉼터이자 놀이터 그리고 일터가 됐다. 추억더하기가 문을 연 취지를 설명하는 김대영 실장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추억더하기는 장사 목적이 아닙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와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되는 거예요. 추억더하기는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거리에 내몰린 어르신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맞잡은 두손, 노년 데이트의 장
추억더하기에는 삼삼오오모여 이야기꽃을 피운 할머니들, 젊은 시절 못 다한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유 할아버지(84)와 김 할머니(78)는 두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기자는 그 맞잡은 손이 너무나 아름다워 귀여운 손자 웃음을 지었다. 한 달에 두세번 이곳을 찾는다는 노년커플에게 왜 계속 오게 되냐고 묻자, 가게에 대한 호평 일색이다.
“여기가 좋은 이유? 너무 많지. 성실한 대접도 좋고, 가격도 싸고, 음식도 깔끔하고 우리같은 노인네가 갈데가 어디 있어 이만하면 아주 좋지. 아 참. DJ 저 양반 목소리가 구수해서 자꾸 찾게 돼.”
이 노년 커플이 처음 발을 들인 것은 근처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에서 영화데이트를 즐긴 이후 였다. 실버영확관의 팸플릿 광고를 통해 알게 돼 이곳을 찾은 이후, 이 커플은 추억더하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 할머니는 젊은 시절 유 할아버지가 장교였던 탓에 이제야 제대로 된 데이트를 이곳에서 한다며 웃음 지었다. 육군 대령으로 전역해 재한 군인회 회장까지 한 유 할아버지는 “추억은 아름답잖아”라며 추억더하기에 있는 의미를 전했다. 김 할머니는 젊은 시절 군인인 남편 탓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자가 넌지시 “할아버지가 야속하셨죠”라고 농담을 던지자, 귓속말로 “(데이트 할 때 마다 사람)수가 너무 많았어”라고 말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 노년 커플은 인사동과 종각 그리고 사적지를 많이 찾는다고 했다. 인생 이막의 데이트를 꽃피우는 것이다. 유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인사동을 많이 찾았는데, 지금은 인사동 거리 변천사를 보기 위해 찾아와. 어떻게 변했을까. 종각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어떨까 이런 것을 보려고 말이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변해버린 종로의 모습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종로는 말이야. 보신각도 있고, 인사동도 있고 해서 우리나라 전통이 많이 살아 있는 곳이야. 근데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어. 외국인들이 저렇게 많이 찾는데도 종각에서는 전통 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신세대 음식점으로만 만들어져 있어서 뭔가 많이 아쉽네.”
오후 4시 DJ가 DJ 박스에서 나오자 젊은이랑 함께해서 좋았다는 얘기를 남기고 노년커플은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 추억을 틀어드립니다. 장민욱 DJ
“나도 신성일처럼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 말이에요. DJ의 첫째 조건은 못 생겨야 돼. 난 잘 생긴 DJ들 미워. 그래서 배철수 씨가 좋아. 여러분 남자의 시기 질투가 더 무서운 겁니다. 아시죠?”
중후하면서 유머 넘치는 DJ의 멘트에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능글능글한 진행으로 노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DJ 박스의 주인은 37년차 베테랑 DJ 장민욱(58)씨다. 다른 곳에서 DJ를 하다 4년전부터 낙원동에서 DJ를 한다는 그는 신중년들에게 추억여행을 선사한다. 손님들이 보내는 각가지 사연을 소개하고, 신청곡을 틀어주면서 말이다.
베테랑 DJ답게 웬만한 LP판은 모두 소장하고 있다. 장 DJ의 자리 뒤쪽에 위치한 2700여개의 LP판이 그의 DJ 인생을 대변해준다. 폴 모리아악단의 ‘이사도라’, 노사연의 ‘님 그림자’, 윤시내의 ‘열애’. 신중년들의 신청곡이 쏟아진다. 장 DJ는 수많은 LP판 숲에서 신청곡을 금새 찾아 뽑아낸다. 그야말로 프로 중의 프로였다.
어느덧, 기자와 마주 했던 시간이 가고 오후 4시가 되자 그는 LP판이 가득한 DJ 박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턴테이블에 판을 건다. 이어서 마이크를 당기며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낮은 톤으로 마치 속삭이듯, 그 옛날 그 다방에서 그랬듯.
"오늘 하루 어떠셨습니까? 요즘 모두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지금 좋은 분들과 함께 하고 계신가요? 여러분 어깨에 걸린 묵직한 삶의 무게, 그 시절 그 음악으로 덜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신청곡과 함께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번 신청곡은 노사연의 ‘님 그림자’, 이어지는 곡 윤시내의 ‘열애’ 입니다."
# 우리는 70대 직장인
추억더하기를 들어가려는 찰나. 얼굴의 미소를 한껏 머금은 ‘만학도’ 교복 할아버지가 기자를 맞이했다. 교복을 입은 어르신의 가슴에는 ‘청춘복’이라는 명찰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는 70년대 교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두 분이다. 한 명의 홀 서빙, 한 분은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다.
매니저를 맡고 있는 정광석(73)씨는 이곳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일한 원년멤버다. 추억더하기에는 정 씨와 같이 70세가 넘은 노년들 16명이 일하고 있다. A조와 B조로 나눠 격일로 근무하기 때문에 체력적 부담도 덜하다. 원래는 서빙을 맡고 있는 여성 할머니들도 교복을 입고 근무를 했지만 음식이 튀거나, 치울 때 더러워져 남성 할아버지들만 교복을 입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표정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은 여느 젊은이들 못지않다. 일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곳 '추억더하기'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낸다.
“나이 칠십 먹은 노인네를 어디서 써주겠어.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친구들도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일도 어렵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다니까”
추억더하기가 지난 해 5월 문을 연 이후 종업원이 바뀌거나, 중도에 그만 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이러한 종업원들의 성실함과 직업의식이 더해져 추억더하기를 더욱 빛내고 있다.
추억더하기는 옛 기억을 추억하는 노년들이 발길이 늘자 안산에 2호점을 낼 예정이다. 어르신들의 쉼터와 놀이터 그리고 일터로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어르신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추억더하기는 대한민국 성장의 땀방울이었던 신중년들을 모시고 대접하는 따뜻한 가게로 낙원동을 빛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