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금융기관에서 줄줄이 대규모 희망퇴직이 발생했다. 비대면 금융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영업점의 인원이 줄어든 탓이다.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근로 의욕이 상당히 높아서, 퇴직 이후에도 쉬지 않고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전문직 출신 은퇴자는 창업이나 창직에 관심이 많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신사업창업사관학교
적성을 고려한, 창업
박 씨는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선박 전문가였다. 선박 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임원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를 떠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사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실제로 적성검사를 하면 사업가 체질로 나왔다. 그래서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인 선박 기술 서비스와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다른 일도 생각했지만, 이제껏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시니어 창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창업 기업은 34만여 개로 2019년과 비교해 13.3% 늘어났다. 특히 연령별로 규모를 파악했을 때 60세 이상의 전체 창업은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올랐고, 기술창업은 28% 상승했다.
이들이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고, 창업의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경련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중장년 구직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은 6개월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00년행복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퇴직자 3명 중 1명은 자영업을 선택했다.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업의 장기화와 손쉬운 접근성이 창업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길도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양금희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창업 기업 생존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9.2%로 집계됐다. OECD 주요국 창업 기업 5년 생존율 41.7%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한편 코로나19도 창업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창업 문의는 많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창업을 미루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만약 창업을 준비한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창업을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창업자, 아이템, 상권, 창업자금이다. 어느 하나도 부족함 없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창업자의 역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아이템을 찾았다면 적합한 상권을 알아보고, 그 상권에 입점하기 위한 창업자금을 비축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을 살펴보고, 최근 부상 중인 유망 창업 아이템을 소개한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
#1 적성이 최우선
창업은 만만치 않다.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휩쓸려 창업을 시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좋다. 퇴직한 중장년 세대는 성격이나 장단점 같은 본인의 정확한 특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평소에 즐기는 취미나 흥미,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유망 아이템은 적합성을 고려
유망 아이템을 정하라고 하면 모두 장사가 잘되는 일을 선택한다. 물론 수익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창업자와의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직접 자료 조사도 하고, 발품을 팔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황윤정 한국열린사이버대학 디지털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시니어인 만큼 동년배의 니즈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3 상권의 분위기와 유동 인구
점포 창업에서 상권은 중요하다. A급 상권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무조건 A급 상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A급 상권의 점포는 임대비용도 비싸고 권리금도 장난이 아니다. 상권이 좋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상권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입지에 맞는 업종이 다 다르다. 황 교수는 “상권의 분위기가 업종과 어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4 비용과 매출
이제까지 조금 이상적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적인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 창업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창업자금은 총투자비용의 70%를 자기 자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본이란 그 돈이 없어도 당장 사는 데 문제없는 자산을 말한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면 선택한 업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업 규모를 줄이는 것이 낫다. 중장년 창업 컨설팅 관계자는 “예상 비용이나 예상 매출액을 꼼꼼히 따져보고, 관련 분야의 비용 지원 제도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21 뜨는 창업 아이템
맞춤형 향기 서비스 ▶ 최근 향초와 디퓨저 같은 향기 산업이 급성장 중이다. 영국 시장 분석 업체 ‘IAL컨설턴트’에 따르면 글로벌 향기 산업 규모는 2022년까지 약 40조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 및 스트레스 해소로 향기 제품이 많이 애용된다.
공유 주방 ▶ 공유 경제를 활용한 공유 주방 사업이 뜨고 있다. 점포 창업을 하는 대신 공유형 주방을 이용해 배달음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점포 창업보다 초기 비용이 저렴하다. 공유 주방은 4평 정도의 공간에 1000만 원 내외의 보증금과 월 160만 원 정도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배달을 이용하는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창문농장 ▶ 반려식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창문농장(Windowfarm)이 뜨고 있다. 창문농장은 아파트 거실이나 베란다 창문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수경 재배 시스템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친환경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홈가드닝과 플랜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 앞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대안, 창직
A씨는 호텔리어로 20년 동안 일하다 은퇴했다. 은퇴 후 여가를 즐기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아내의 잔소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비는 통장 잔고를 메워야만 했다. 얼떨결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취객의 난동과 폭언 및 욕설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이동 서비스에 영감을 받아 결혼식 당일 웨딩카로 신랑 신부를 이동시켜주는 웨딩쇼퍼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리어와 대리운전 경험을 발휘해서 창직을 시도한 것이다.
위는 대표적인 창직 사례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탓에 중장년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음식점, 숙박업, 카페 등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는 창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창직’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생계유지와 함께 일로써 보람을 얻기를 원하는 중장년층이 많아지면서 창직을 원하는 수요가 생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원하는 진로 유형을 파악했는데, 창직 추구형이 64.27%로 가장 높았다. 이 유형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지속해서 경제적 소득을 얻기를 희망했다. 주로 장기 근속한 도시의 화이트칼라 남성 노동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구직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창업과 자영업 지원 정책을 선호했다.
창직은 쉽게 말해서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다. 그 직무를 하기 위한 내용과 지식, 기술 등이 포함된다. 창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제품이나 기술이다. 반면에 창직은 직무를 분석하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창업과 창직을 자주 혼동하는데, 이는 창직을 통해 구현되는 방법이 대부분 창업이기 때문이다.
창직을 위해서는 참신성, 수익성, 실현 가능성,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일은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인 만큼 참신해야 하고, 새 직업의 직무 수행은 기존의 일과는 확실히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직업’이기에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 및 제도적 여건을 살펴야 한다. 창직 관련 전문가는 “창직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일이기에 업으로서 지속할 수 있고, 경제적 소득이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창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미래에 전망이 밝은 창직 업종을 소개한다.
예비 창직자가 알아두면 좋은 Tip
#1 다방면으로 탐색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웰빙에 대한 관심과 주 5일 근무 확산으로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나 파티 플래너가 생겨났다. 또한 빅데이터의 발달로 빅데이터 분석가도 유망한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 수요자의 욕구, 과학기술의 발전 등 다방면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2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해외 직업 중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직업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맥주 주조사나 VJ 같은 직업도 해외에 있던 직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경우다. 다만 각 나라의 문화, 제도, 시장에 따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직업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정해야 한다.
#3 융합을 고려하자
기존 학문, 직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치료사나 미술치료사가 있다. 기존 노동 시장에 전혀 없던 직무보다 기존 직업 간의 결합 또는 융합으로 발생한 직업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직업 간의 결합과 융합 가능성을 찾아보자. 특히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을 주의 깊게 보면 좋다.
#4 분화를 검토하자
새로운 수요에 따라 기존 직업에서 분화되거나 전문화하여 직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애견 옷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견 옷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이 직업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핵가족 및 독신 인구 증가로 애완동물 시장이 성장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에서 분화된 것이다. 기존의 직업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살피면서 분화할 수 있는 직업을 눈여겨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직
로봇 컨설턴트 ▶ 일반 기업의 로봇 사업 도입 및 전환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콘셉트 디자인, 타당성 연구, 품질 관리 등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고령화와 자동화 추세에 따라 생활 전반에 로봇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심 RPG개발자 ▶ 도시를 게임판 삼아 참여자가 직접 역할을 수행하면서 도시의 문화나 역사를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마당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임을 문화 체험, 도시 체험 등 다양한 영역에 접목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VR이나 AR 체험이 늘어나면서 유망한 직종으로 뜨고 있다.
스마트팜 전문가 ▶ 시설 원예 및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 등 ICT를 활용해 농가 시설을 현대화하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 및 수익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팜 설계, 구축, 운영 등에 관해 조언한다. 스마트팜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정한 8대 혁신성장 산업 중 하나다.
쟁쟁한 수천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디션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시니어 모델이 있다. 바로 시니어 모델 ‘윤영주’다. 우승한 것도 대단한데, 그녀의 나이는 올해 73세. 최연장자임에도 다른 시니어 모델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종갓집 며느리라는 사실. 종갓집과 모델, 한식과 양식만큼이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조합인데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직접 만나서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매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MBN 시니어 모델 오디션 예능 ‘오래 살고 볼일’은 방영 후 화제가 됐다. 오디션에 등장한 시니어 모델들이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았다. 탄탄한 몸매, 동안을 자랑하는 외모, 젊은이에 뒤지지 않는 패션 감각,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대단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시니어 멋쟁이들이 총집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쟁쟁한 선남선녀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시니어 모델 윤영주는 어떤 사람일까? 일단 그녀가 이 오디션에 참가한 계기를 물어봤다.
“사실 접수를 안 하려고 했어요. 이 프로그램 전에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생겼죠.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불러주는 곳도 많지 않았고, 어느 때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기도 했어요. 모델 하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해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마침 그때 이 오디션 공고가 올라왔는데, 접수하지 않으니까 주위에서 많이 권했어요. 다들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까짓것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접수했어요. 그때 안 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아요.(웃음)”
상금은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그녀는 오디션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아서 심사위원으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동안 외모와 남다른 패션 감각은 확실히 돋보였다. 특히 긴장하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표정이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어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땠을까?
“연장자라서 그런지 편했어요. 다들 열 살 이상 차이 나다 보니 동생들 같았어요. 대기 시간이 길어 얘기할 시간도 많았고요. 그래서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동생들과 수다 떨면서 재밌게 노는 기분으로 임했죠. 예전에 방송국에서 리포터 활동을 해서 카메라 앞에서의 촬영이 익숙했어요. 그 경험 덕분에 확실히 조금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도 있었다. 늘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와이어 액션을 소화하는 화보 미션에서 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없는 결말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 런웨이 미션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냈다.
“우승자를 호명할 때 순간 머리가 하얘졌는데, 기분은 정말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박윤섭 씨한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눈을 못 마주쳤어요. 속으로 그분이 1등이라고 늘 생각했거든요. 전에도 현장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모델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분이에요. 그러고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많지만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했던 걸 많은 분이 좋게 봐주신 것 같기도 하고요.”
어렵게 차지한 우승으로 받은 상금은 어디에 쓸 거냐고 묻자 “상금은 나를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일에 쓰고 싶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단 오디션 동안 제일 고생한 며느리랑 상금을 나누고, 나머지 내 몫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곡을 만들고 있는 음악 제작자 친구들을 지원하는 일에 쓰고 싶어요. 아들이 음악을 해서 그런지, 그 친구들이 자꾸 마음에 걸려요. 가난한 예술가의 아픔을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장점은 자연스러움
화려한 시니어 모델 삶의 이면에는 종갓집 며느리의 삶도 있었다. 그녀는 시니어 모델이 되기 전 종갓집 며느리로서 성실히 살았다. 일 년에 명절을 포함한 13번의 제사를 군말 없이 준비해야만 했다. 다른 요리는 못 해도 제사 음식은 눈 감고도 할 정도란다. 특히 생선 손질은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렇다면 종갓집 며느리가 어떻게 모델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제사 규모가 줄어들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특히 50대에 접어들면서 남들이 은퇴를 준비하듯이 노후를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문득 미학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 15년 동안 미학 공부를 하고 박사 논문까지 썼어요. 음악이나 미술, 철학과 관련된 칼럼도 틈틈이 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시력 보호 차원에서 책을 보지 말라는 거예요. 청천벽력이었죠. 좋아하던 책을 못 보니 참 무료했어요. 무엇보다 할머니가 아니라 여자 ‘윤영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시니어 모델을 알게 됐어요. 마침 며느리가 모델 출신이었고요.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모델 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어요. 그때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이 자리까지 이끌게 한 모델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미학이나 철학이 깊은 희열을 맛보게 한다면 모델은 짜릿한 희열이에요. 쇼를 한 번 하는 데 정말 많은 과정을 거쳐요. 메이크업하고 머리 만지는 데 최소한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걸리고, 리허설도 몇 번씩 하고, 전날 와서 옷도 미리 입어보죠. 근데 쇼는 15~30초면 딱 끝나요. 그 순간만큼은 무대가 다 내 것이에요. 그 찰나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요.”
무대에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모델로서 각자 내세울 수 있는 매력이나 장점도 필요하다. 그녀는 어떠한 장점이 있고,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주위에서 말하기를 자연스러움이 제 장점이라고 해요. 설명하기 어려운데 남들이 보기에 인위적이지 않은 나만의 멋이 있다고 해요. 예전에 방송국 리포터 할 때도 PD들이 연신 애 엄마 맞냐고 물어봤어요. 쇼나 무대 같은 생방송에 최적화된 체질인 것 같아요. 덧붙여서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어디서나 영감을 받으려고 노력해요. 미술, 영화, 음악, 전시 등 가리지 않고 좋은 걸 자주 보고 듣는 것이 모델로서 표현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바탕
티 없이 밝아 보이는 그녀에게도 아픈 사연이 있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남편은 선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친오빠랑 친한 친구였어요. 워낙 가족 같은 사이라서 남편이 좋다고 했을 때 친오빠가 사귀자고 하는 것처럼 너무 어색하고 이상해서 피해 다녔어요. 근데 못된 우리 오빠와는 다르게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결혼해서도 날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참 좋은 사람이에요. 돌이켜보면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만약 지금 같이 있었다면 제일 좋아했을 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꽉 막힌 구석도 있는 남자였지만, 아내를 위해서 때로는 화려하고 예쁜 옷을 사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로 주위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 있었다고. 요즘 말로 하면 사랑꾼이라고 할까?
그의 빈자리가 그립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소중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메이크업부터 의상, 촬영 스케줄 등을 관리하는 매니저이자 모델 스승인 며느리부터, 화양연화 미션 때 감정을 잡을 수 있도록 슬픈 노래를 정리해서 보내준 아들까지. 화려한 그녀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은 바탕이죠. 누구나 그렇지만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바탕과 같아요. 바탕이 없으면 나도 없어요. 특히 며느리와는 절친이에요. 저런 며느리가 없어요. 좋은 며느리를 얻은 건 내게 큰 행운이에요. 며느리와는 별의별 얘기를 다 해요. 가끔 아들 흉도 같이 봐요.(웃음)”
책임감 있는 모델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날개 중 하나가 가족이라면, 다른 날개는 바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다. 그녀는 늘 어제의 나와 다르게 살기를 원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나로 살지 않기를 원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나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책을 읽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보고,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했던 마음은 지적인 욕심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델도 마찬가지고요.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감회가 달라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해요.”
인상적이었던 댓글을 들려주며 앞으로 시니어 모델로서의 포부나 계획을 밝혔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댓글이 하나 있어요. ‘나이 든다는 게 두렵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댓글을 읽으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70대도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분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싶어요.”
방송국 리포터부터 시작해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하고, 정말 남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 외려 과감하게 모델에 도전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첫사랑과의 추억을 꼽을 때는 영락없는 소녀였고, 할머니가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할 때는 당당한 여인이었다.
첫사랑의 어머니가 딸처럼 귀하게 여기고, 며느리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남편이 그녀를 아껴주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인터뷰를 하면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화려함에 숨겨진 내면의 미를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남에게 양보할 줄 알고, 욕심 부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묵묵히 정진했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자세를 몸소 실천하고, 모델로서 가진 아름다움과 더불어 인간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이 일에 임하고 있었다.
흔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일컫는다. 그녀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꼽았지만, 사실 그녀의 진정한 화양연화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아닌 여자 윤영주로서 앞으로도 아름답고 당당하게 꽃길을 걷기를 바라며 마친다.
오늘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다. 새 학기 들뜬 맘으로 교정을 거닐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수줍게 피어나는 봄꽃이 그 시절 풋풋한 감성을 닮아서일까. 만물이 푸릇하게 싹을 틔우고, 매서운 찬바람이 기분 좋은 봄바람으로 변해갈 때면 아득한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이맘때쯤 들리기 시작하는 ‘벚꽃엔딩’은 옛 사랑의 기억을 더욱 부풀린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이유 없이 추억을 꺼내 보고 싶은 봄날,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첫사랑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건축학개론 (Architecture 101, 2012)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속설이 있다. 난생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상대와 한평생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월이 흘러 첫사랑과 재회해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영화 ‘건축학개론’은 ‘승민’(엄태웅·이제훈)의 첫사랑 ‘서연’(한가인·수지)이 15년 만에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얼떨결에 서연과 집을 짓게 된 승민은 그녀를 만난 뒤 잊고 지내던 기억이 떠오르고, 옛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전람회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가요와 삐삐, 복고풍 패션 등 다양한 장치로 그 시절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중장년층의 공감을 이끈다. 또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면서도 20대의 풋풋한 감정과 30대의 담백한 사랑을 매끄럽게 연결해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어폰을 나눠 끼고 CD플레이어를 통해 노래를 듣는 장면은 첫사랑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배우 조정석의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준 ‘납득이’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작품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2. 귀를 기울이면 (Whisper Of The Heart, 1995)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등이다. 그러나 세 영화가 탄생하기도 전, 1995년에 제작된 숨겨진 명작이 있다. 지브리 최초 청춘 로맨스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문학소녀 ‘시즈쿠’(혼나 요코)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마다 ‘세이지’(타카하시 잇세이)라는 이름이 적힌 것을 발견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소년에게 호기심을 가지며 생겨나는 일을 그린다. 그러다 우연히 골동품 가게에서 세이지를 만난 시즈쿠는 소년이 바이올린 장인을 꿈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세이지에 자극을 받아 자신만의 소설을 써보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영화는 기존 지브리 작품과 달리 판타지적인 설정도 없고 주인공이 비범한 일에 휘말리지도 않지만, 특유의 명랑하고 동화적인 연출로 두 청춘남녀의 성장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건축학개론’이 아련한 20대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귀를 기울이면’은 순수하고 발랄한 10대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어느 옛날,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3. 나의 소녀시대 (Our Times, 2015)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청설’, ‘말할 수 없는 비밀’ 등 수많은 청춘 로맨스 영화를 흥행시킨 대만은 첫사랑 영화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없던 첫사랑도 생길 것만 같은 대만의 청량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는 그 자체로 낭만적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소녀시대’는 첫사랑의 로망을 듬뿍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1994년, 유덕화의 광팬인 소녀 ‘린전신’(송운화)과 학교를 주름잡는 불량소년 ‘쉬타이위’(왕대륙)가 서로의 첫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속에는 첫사랑 영화의 클리셰라고 할 법한 모든 장치들이 들어있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서로의 진심 어린 모습에 낯선 감정을 느끼고, 꾸미는 것에 소질이 없던 여주인공은 꽃단장을 시작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위해 개과천선하려 노력한다. 다음 장면이 예상되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점차 그 유치한 매력에 푹 빠져 끝내 포털 사이트에 주인공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어 통·번역 분야로 진출하고자 했던 알렉스 강(57)은 우연한 기회에 ‘시니어 모델’을 접하고, 그 길로 뛰어든다. 이후 본격적인 시니어 모델 일을 시작한 그는 코로나19가 덮친 지난해 상반기에 시니어 모델 에이전시를 설립한다. 어학 박사에서 시니어 모델로, 시니어 모델에서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가 된 그를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으면서 모델 및 대표로서의 철학과 멋지게 나이 듦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한 잡지의 커버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남성 잡지 ‘맨즈헬스’의 커버에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중년의 남자를 보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한 덕분에 건강이나 몸에는 자신이 있던 그였다. 그때부터 꿈을 품었다.
“그 잡지를 본 뒤 그분처럼 잡지의 커버모델이 되는 꿈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맨즈헬스가 주최하는 피트니스대회에 무작정 신청서를 냈지요. 그게 모델 시작의 첫걸음이었어요.”
그는 그 대회에서 유일한 50대였고, 그나마 비슷한 또래의 사람은 40대 참가자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모두 20~30대들이었다.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멋을 어필했다. 그 결과 스포티즘 모델 분야에서 상위권에 드는 성과를 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지인이 시니어 모델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시니어 모델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시니어 모델이 된 것은 우연과 우연이 얽혀서 만든 필연이었다.
숨겨진 모델의 끼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오랫동안 공부하던 사람이라서, 모델 일이 순조롭고 쉽지는 않았을 터. 어학 공부는 혼자 묵직하게 정진하면 되는 작업이지만, 모델은 아무래도 남들 앞에 서고 주목을 받는 일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전혀 반대였다.
“막연한 불안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이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모델의 끼가 숨어 있었던 것 같아요. 어학과 비슷한 점도 있었고요. 어학은 언어의 표현을 다루잖아요. 모델도 비슷해요. 단지 수단이 언어에서 몸으로 바뀐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모델은 나의 몸으로 어떻게 멋을 표현할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모델로서 그가 가진 강점은 무엇일까?
“다른 모델들에 비해 키가 작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어요. 대신 워킹 실력이라든지, 무대를 장악하고 스스로 멋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아요. 단점을 상쇄할 만큼요. 무대에 서면 조금 긴장이 되지만, 그 무대에서 한바탕 논다는 생각으로 즐겨요. 이것이 모델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시니어 모델로서 특별한 몸 관리법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운동을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하고,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멋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건강과 더불어 체력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25년간 해왔더니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물론 대표가 되어 바빠진 이후로는 이전보다 운동 시간이 줄어서 아쉬움이 있죠. 예전에는 하루에 꼬박꼬박 2시간씩 일주일에 5일은 운동을 했는데, 요새는 4일 정도 하면 정말 많이 한 거예요.(웃음) 체력 관리는 물론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흰머리가 나면 염색을 하곤 했는데, 모델이 된 후에는 시니어 모델로서의 자연스러운 멋을 살리기 위해 그냥 놔둬요. 그게 인위적인 것보다 훨씬 나아요.”
모델에서 대표가 되기까지
그렇다면 모델을 하다가 왜 갑자기 모델 에이전시를 설립하게 된 걸까? 코로나19로 경기가 안 좋은 상황 속에서 어떤 의지가 그를 모델 에이전시 대표로 이끌었던 걸까?
“사실 에이전시 대표가 된다고 했을 때 가족부터 시작해서 지인들 모두가 말렸어요. 코로나 때문에 어떤 걸 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원래는 지난해 3월에 오픈하려고 했는데, 조금 미뤄서 6월에 오픈했어요. 한 번 마음먹은 건 꼭 이뤄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그 연장선에서 제대로 된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고민했어요. 절박함이 강력한 의지로 이어진 것 같아요.”
모델이 되는 것만큼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가 된다는 것도 상당한 노력과 정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코로나와 같은 악재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절박함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가 시니어 모델을 하면서 보니 모델 중에 자존감이 낮은 분이 참 많았어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살다가,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이제 자신의 인생을 찾으러 오신 분들이에요. 연극배우나 가수를 꿈꾸던 찬란한 시절을 가슴에 묻고 가정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하셨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탓에 자존감이 낮고, 남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모습을 봤어요. 불합리한 대우도 문제지만,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에이전시를 설립해보고 싶었어요.”
고심 끝에 에이전시의 이름을 ‘엘리트’라고 정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존감 높은 엘리트 모델을 만들고 싶은 그의 포부가 담겨 있다. 엘리트에 담긴 최상의 의미처럼 좋은 강사진을 모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편법을 쓰지 않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욕심 없는 마음
모델 에이전시에는 전속 모델도 있는 법. 전속 모델을 뽑을 때 기준은 무엇일까? 그의 기준은 두 가지, 바로 ‘개성’과 ‘심성’이다.
“브랜드 가치가 있는 분을 전속 모델로 모시려고 해요. 단순히 외적으로 잘생기고 이쁜 사람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이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분을 뽑아요. 예를 들어서 키가 작은 분이라도 충분히 시니어 모델이 될 수 있어요. 반대로 외적으로 아름답지만, 좋은 모델이 될 수 없는 분도 있고요. 최근에 뵌 분도 키는 작지만, 사진을 찍었을 때 자신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더군요. 그런 분이 모델로서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봐요. 다른 한 가지는 심성이에요. 모델 일은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좋은 심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힘들다고 봐요.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 표현력도 더 좋고요.”
최근에는 좋은 소식도 들려왔다. 엘리트 모델 에이전시의 전속 모델 윤영주 씨가 MBN 시니어 패션모델 예능 프로그램 ‘오래살고볼일’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녀를 어떻게 전속 모델로 캐스팅한 걸까? 사실 그녀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지인 소개로 슈퍼모델 출신 한 분을 알게 됐고, 그 사람을 원장으로 섭외했다. 알고 보니 윤영주 씨의 며느리였다. 그 인연이 전속 모델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계속된 우연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 셈이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희 에이전시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비결은 주위 분들 덕분이에요. 주변에서 제가 하는 일의 취지에 많이 공감해주셨어요. 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분들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건 그의 욕심 없는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평소에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해요. 소소한 욕심을 부리다가 큰 걸 놓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주 양보하고, 작은 것이라도 남들에게 베풀려고 해요.”
나만의 멋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회사 운영도 무탈하게 잘하고 있지만, 경영인으로서 고충은 없을까? 모델은 본인만 신경 쓰면 되지만, 대표는 모두를 아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므로 분명히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수강생이 코로나19 때문에 수업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죠. 모집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쉽기는 합니다.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대표로서 나름의 고충이죠. 또 사람을 많이 대하다 보니, 거기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있고요. 그래도 경영인으로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운동할 때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면 뿌듯한 것처럼 에이전시 대표로서 설정한 목표를 차례차례 이뤄나갈 때 참 보람 있어요.”
그가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모델 활동을 계속해서 하는 건 어떤 가치에서 비롯된 걸까? 그는 모델로서의 가치 중 하나로 ‘내면적 성장’을 꼽았다.
“외면적인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내면적으로 성장했을 때예요. 사소한 것에 얽매여 치졸하게 굴지 않고, 누가 보든 안 보든 나쁜 짓 안 하겠다는 마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이처럼 이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시니어 모델은 나만의 멋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모델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멋을 찾을 때 비로소 더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멋지게 늙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비결로 도전정신을 꼽았다. “도전하지 않을 때 비로소 늙는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게 무엇이든 얼른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설령 실패했더라도, 한 줌의 가능성은 있어요. 저 역시도 계속된 우연과 인연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전했다면 취미 삼아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는 것보다는 프로정신을 갖고 임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지거든요.”
어학 박사에서 시니어 모델, 모델에서 에이전시 대표까지 그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가 뜨거워서인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았다. 대표 입장에서 얘기를 할 때는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신기한 건 그의 말처럼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수강생과 강사들이 와서 연신 그와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거나 응원을 했다. 아카데미 내에 팬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타고난 인복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말처럼, 튼튼한 몸과 더불어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모델 활동과 대표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자만심은 없었다. 모델로서 외면보다는 내면에 더 집중한다는 알렉스 강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사람답게 사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유혹과 변수에 휘둘리기 쉽고,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나쁜 마음을 먹기가 참 쉬운 세상이다. 그렇기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늘 자신을 점검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려는 마음가짐. 진짜 멋지게 늙어가려면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가 평소의 소신대로 늘 자신의 멋을 잃지 않고, 멋지게 늙어가기를 응원한다.
활짝 열린 교문 앞 즐비하게 늘어선 꽃다발 행렬,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인사하는 학생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졸업식과 입학식 풍경이었다.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바야흐로 1년이다. 그동안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의 사회활동의 폭도 많이 좁아졌다. 학생들은 등교 대신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졌다. 이 같은 변화는 졸업과 입학 시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달 서울 원효초등학교와 우솔초등학교 등 일선 학교에서는 졸업생과 학부모가 온라인으로 참석할 수 있는 비대면 졸업식이 진행됐다. 졸업장만 받아 귀가하는 ‘드라이브스루 졸업식’, ‘워킹스루 졸업식’은 물론, 졸업장을 택배로 발송하는 방식 등 전통적인 졸업식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2월 졸업식 및 입학식 시즌이 ‘대목’이었던 관련 업계의 상황도 바뀌고 있다. 대표적인 졸업·입학 선물인 노트북은 흔히 1분기가 성수기다. 하지만 노트북 시장이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성장하고 있다. 광주신세계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대비 2020년 하반기의 노트북 판매량이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또한 올해 역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대학교 입학과 새 학기를 맞이해 옷 소비가 늘어나는 새내기들 사이에서는 패션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강의가 늘어나면서 화면에 보이는 상의에 초점을 맞추고 하의는 트레이닝복, 파자마 등 편하게 입는 ‘키보드 위 패션(Above Keyboard Dressing)’이 화제다. 여성 쇼핑 앱 지그재그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의 검색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상의’ 키워드 검색량이 전년 대비 54% 증가했고, ‘하의’ 키워드는 18% 증가했다.
대학가에서 온라인 강의가 일반화되고 화상 프로그램 사용이 늘어나면서 성형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수능 성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능 직후에 대학 새내기들의 성형 상담과 성형수술이 몰려있었던 반면 비대면 생활이 확산되면서 상담 및 수술 일정을 여유롭게 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새내기들이 관심을 갖는 부위도 다양해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번의 수술로 이미지 개선 효과가 큰 눈과 코에 대한 관심이 컸다면, 최근에는 눈, 코 외에도 얼굴형, 턱 등 다양한 부위에 대한 상담까지 늘고 있다. 기존에는 수술 후 부기 및 염증 관리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상담이나 실제 수술로까지 이어지기 힘들었다. 반면 최근에는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화면에 콤플렉스 부위가 더 크게 노출되고 집에서 편히 회복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바노바기 성형외과 반재상 대표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줄고 화상 프로그램 사용이 늘어나면서 대학 새내기 성형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쌍꺼풀 수술, 눈매 교정술, 콧대 수술, 콧볼 축소술 등 눈과 코를 개선하는 수술뿐 아니라 안면윤곽수술, 가슴성형 등 다양한 부위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하나카드는 다가오는 봄 시즌을 맞아 다양한 해외 직구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벤트는 해외여행 및 쇼핑 관련 특화 플랫폼인 ‘글로벌 머스트 해브’의 해외직구 라운지에서 진행된다. 설날과 졸업 입학,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등 가족과 연인에게 선물을 전할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월에는 국내 유일의 프리미엄 쇼핑 플랫폼인 ‘캐치 패션’과 캐시백 이벤트를 진행한다. 하나 Visa카드로 상품 결제 시 18% 캐치패션 캐시백을 받을 수 있고, 하나카드로 상품 결제 시 16% 캐치 패션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구찌,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유명 브랜드 상품을 최대 50%까지 저렴하게 구매 할 수 있다.
하나카드 해외직구 라운지에서 2월 내 합산 30만 원 이상 결제 손님 중 추첨을 통해 국내 최고급 호텔인 시그니엘 서울 숙박권(1박)을 5분께 증정한다. 합산 10만 원 이상 구매 손님 중 선착순 100분께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T) 1매가 제공된다.
이밖에도 하나카드 해외직구 라운지에서는 해외 직구 관련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해외 직구 보험 무료 서비스’를 운영 중에 있다. ‘해외 직구 보험 무료서비스’는 미배송·파손·반품 3가지 부분에 대해 1인 기준 구매 건당 최대 30만 원, 연간 3회 범위 안에서 무료로 보상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단순 변심에 의한 반품에 대해서도 보험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카드 글로벌마케팅섹션 조경록 과장은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비롯해 각종 기념일과 새 학기를 바삐 준비하는 요즘 사랑하는 가족, 연인에게 부담 없이 선물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올해도 하나카드 해외직구 라운지를 통해 손님에게 보탬이 되는 많은 이벤트를 기획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소마미술관엔 행정상 내부 관장이 있고, 외부 전문인 명예관장이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은 물론 미술품의 수집·연구·관리에 관한 실무를 전담하기에 ‘미술관의 꽃’으로 일컫는다. 화가·평론가와 함께 현장미술의 삼각 축을 이룬다.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 씨. 그는 소마미술관 근무 15년을 포함, 2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소마미술관에 대해, 그리고 미술 감상법에 대해 묻기 위해 마주앉았다.
“소마미술관은 88올림픽 문화제전을 계기로 출발한 역사성, 그리고 올림픽조각공원이라는 매우 강력한 하드를 가지고 있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구축한 소프트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강점을 살려 ‘다시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과 미술관이 직결되는 출입 통로가 이상적이다. 접근이 쉬워 관람객이 많을 것 같은데.
“대중에게 미술관 문턱은 아직도 낮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비해 관람 인원이 크게 늘지 않은 추세이니까.”
미술관 측이 문턱을 낮춰야 하지 않나? 재미가 있으면 찾아가게 마련이다.
“소마미술관은 물론 요즘의 미술관들은 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단순히 전람회만 여는 공간이 아니다. 멀티 컬처의 열린 장으로 바뀌었다. 각종 문화와 교육 관련 프로그램, 심포지엄, 작가와의 대화, 그리고 축제나 공연까지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관람객이 적은 건 왜지?
“이론 중심의 미술교육 제도가 문화의 성장 속도를 저해하는 걸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젖어들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그간의 전시회 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건?
“2015년에 가진 ‘프리다 칼로-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전이다. 어릴 때엔 교통사고로 몸이 다 부서지다시피 했고, 바람둥이 남편에게 평생을 시달렸으며, 멕시코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프리다의 드라마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아왔다. 한동안 ‘프리다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조각공원의 작품들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사견임을 전제하자. 잔바람에도 작품이 움직여 신선한 감흥을 주는 조지 리키의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이 좋더라. 대칭과 비대칭의 조합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문신의 ‘대한민국 올림픽-1988’과 이우환의 ‘관계항-예감 속에서’도 내겐 특별했다.”
미술작품 감상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미리 사전 정보를 알아두는 게 좋겠다. 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게 예술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도 있다. 전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방법도 고려하자. 무엇보다 쉽고 좋은 건 도슨트의 설명을 경청하는 일이다.”
은퇴 후 딱히 내밀 만한 명함도 없는 인생 후반전에서는 ‘외모’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 악수를 하고 또 명함을 건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명함은 보는 둥 마는 둥 명함 지갑에 쑤셔 넣기 일쑤다. 반면 눈으론 스캔부터 한다.
걸음걸이, 표정, 옷맵시, 액세서리 같은 정보들로 먼저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직 악수도 하기 전이고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보이는 그대로 ‘저장’ 버튼부터 누른다. 그의 옷차림과 패션센스 그리고 품어져 나오는 아우라 등이 먼저 기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보여주는 패션코드가 악수보다 먼저인 세상이다. 머지않아 명함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날이 올 것이다.
이미 명함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연락처 파일을 주고받거나 SNS 네트워킹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그럴수록 외모와 패션은 그 중요성이 더해갈 것이다. 요즘에는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으로 말이나 느낌을 간단하게 그러나 꽤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외모와 패션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이모티콘’이다.
사람의 외모를 구성하는 요소 중 으뜸은 아무래도 얼굴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몸매와 옷차림 그리고 구두와 핸드백, 안경, 팔찌 등 액세서리도 무시할 수 없는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성형과 미용, 화장기술까지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 얼굴 외의 구성 요소들이 결국은 승패(?)를 좌우한다.
“부모님 날 나으시고 원장님 날 빚으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잘 빚은 비슷비슷한 얼굴들은 넘쳐난다. 패션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얼굴이 완벽해도 패션이 꽝이면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오히려 옷 잘 입는 스타일 쩌는 얼굴꽝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비싼 옷 안 사도 내가 명품이 돼보자
꼭 명품을 입어야 옷맵시가 나고 외모가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니다. 옷맵시가 나면 싼 옷도 비싸 보인다. 유명 브랜드가 정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변신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우선 유명 브랜드에 목매기보단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으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요즘 유행하고 있는 루즈핏 오버핏은 예외다. 신체가 더 이상 자랄 것도 아닌데 왜 자기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단 입고 싶은 것부터 입어라.
남자들의 경우 바지를 제발 질질 끌리게 입지 마라. 과감하게 밑단을 자르자. 복숭아뼈는 감춰놓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소매도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길게 입지 말자. 양말도 무시하지 말자. 양말은 일반적으로 바지의 컬러와 매칭하는 게 좋다. 요즘 진짜 멋쟁이는 아주 튀는 컬러를 매칭하기도 한다. 사시사철 검은색 양말을 고집하는 당신은 매일이 장례식 참석 모드다. 회색이나 감색 양복에는 브라운 컬러의 구두가 제격이다. 검은색 구두는 장례식 참석할 때나 꺼내 신으면 된다. 안경도 이제는 액세서리다. 패션의 완성을 위한 소품으로 안경에 투자하라. 투자 대비 효과 만점이다. 가성비 ‘갑’이다.
아직은 중년 남자들이 어색해하는 팔찌도 시도해봄직하다. 필자의 팔뚝은 시계 대신 팔찌에 양보한 지 오래다. 팔찌로 남성미를 물씬 풍길 수도 있다. 남성들이여, 팔찌나 목걸이를 과감히 시도해보라. 건강 팔찌, 황금 목걸이 같은 건 말고. 겨울철엔 비니도 시도해보자. 당신의 패션 나이가 몰라보게 젊어질 것이다. 어쩌면 길 가다 뒤돌아보는 사람들도 생길지 모른다.
“나이 들수록 외모가 경쟁력이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나이가 들면 외모는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슬프다. 결국은 생물학적 늙음과 퇴보는 어쩔 수 없다. 세상 기준의 외모 경쟁력은 차츰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혹자는 진짜 뼈를 깎기까지 한다. 현대의료과학기술 발전의 쾌거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젊은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활력, 역동성 등은 아무리 좋은 현대의료과학기술로도 어림없다. 스스로 내면을 바꾸려는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외모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해야 한다. 결국은 애티튜드부터 바뀌어야 한다. 애티튜드의 변화가 수반되는 내적 충실함이 외모라는 스크린에 자연스레 투영되어 나타나야 비로소 진정한 경쟁력이 있는 외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 닉 우스터. 필자의 패션 스승(?)이다. 그를 주목했던 이유는 단순히 옷을 잘 입어서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못생겼고 키도 작았기 때문이다. 깊게 패인 주름, 170cm도 안 되는 키와 지나치게 큰 근육형 몸매는 패셔니스타가 되기엔 매우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의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흠모하면서부터 필자의 패션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패션관’이 달라졌다. 용기도 급상승했다. 주위 시선에서도 조금씩 자유스러워졌다. 주변의 반응도 덩달아 점점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조금씩 패션 아이콘이 되어가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주위의 시선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필자가 주재하던 중국 상하이 패션 업계에선 꽤 유명한 옷 잘 입는 ‘韩国大叔’(한국 아저씨)로 불렸다. 패션 감각만 젊어진 게 아니다. 라이프스타일도 함께 젊어졌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걷기를 생활화하기 위해 지하철 역 두세 정거장은 걸었다. 옷 입는 것도 점점 더 과감해졌다.
수많은 길고 펑퍼짐한 바지들은 테이퍼드핏으로 리폼했다. 필자의 발목은 더 자주 노출되었다. 양말들도 크레파스처럼 갖가지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필자의 패션은 차츰 회자되었다. 심지어 필자의 착장을 찍어 여기저기로 퍼 나르는 패션 블로거들까지 생겨났다. 또한 길거리 캐스팅도 되어 TV 광고를 찍는 기적까지 일어났다. 화보 모델로도 데뷔를 했다. 내 자신이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게 좋았다. 행복했다. 그리고 감히 다짐했다. 한국의 닉 우스터가 되겠다고.
당신도 할 수 있다. 이 땅의 모든 닉 우스터 워너비 그레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60년대 이후 시대별로 한국의 대표적인 미인으로 꼽히는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트로이카(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세 사람)’라 불렸고, 누군가는 ‘컴퓨터 미인’, ‘유행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대중 앞에 섰다.
요즘은 대표 미인이 없다. 미의 기준이 다양해지면서 개성이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피부가 좋으면 ‘피부 미인’으로 불리고, 건강해 보이면 ‘건강 미인’으로 불린다. 몸매가 아름다운 것은 물론 패션 스타일이 좋은 점도 인기에 크게 작용한다.
단적인 예로 쌍꺼풀이 짙고 큰 눈의 외모가 연예인의 필수 조건이자 미의 기준일 때도 있었으나 근래에는 홑꺼풀 연예인도 인기를 크게 얻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중적으로도 영향을 주고 있다. ‘무쌍’이라고도 불리는 외꺼풀의 경우 쌍꺼풀 테이프나 성형수술을 통해 쌍꺼풀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무쌍 메이크업’ 및 홑꺼풀 연예인의 인기에 힘입어 본연의 아름다움에 자신감을 갖는 경우도 많다.
시대에 따라 미적 기준이 달라지면서 바꾸고 싶은 부위도, 방식도 변화하는데 쉽게 바뀌지 않는 부위도 있다. 바로 콧볼이다. 콧대의 경우 버선코, 반버선코, 직반버선코 등 유행하는 라인이 있었고, 자연스러움과 화려함 등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높이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콧볼의 경우 너무 넓거나 콧방울이 두꺼울 경우 코가 과장돼 보이면서 둔한 인상을 주기 쉽다.
콧볼 너비는 얼굴 너비의 5분의 1 정도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보기가 좋다. 과거에는 콧볼이 넓은 코를 가리켜 ‘복코’라 부르며 복이 들어온다고 귀하게 여겼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좀 더 날렵한 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콧볼 너비와 콧방울이 두꺼운 경우 콧볼축소수술을 통해 좀 더 시원시원한 인상으로 거듭날 수 있다. 콧볼축소수술은 코끝의 피부 두께나 코끝 연골로 인해 뭉툭해 보이는 코 모양을 얼굴 비율에 맞춰 조율하는 방법이다.
바노바기 성형외과 이현택 대표원장은 “과거와 달리 사전적인 미의 기준이 흐려지고 다양한 개성과 기준이 등장했다”며 “콧볼의 경우 기준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만일 수술을 고려한다면 본인의 코 모양과 평소 원하는 이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임상 경험이 많은 전문의와 구체적으로 상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은 세 가지로 나뉜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가는 사람,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 있는 사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 어느 것이 더 맞고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걸 ‘용기’라 읽고 ‘모험’이라 쓴다. 이번 호에서는 전형적인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타투이스트 조명신(56)을 만났다.
의사와 타투이스트. 이 두 단어를 보고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수술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보였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한쪽은 엘리트에 가깝고, 다른 쪽은 고독한 예술가 같다. 바둑으로 치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백돌이고,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는 흑돌처럼 보인다. 물론 의미의 경중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미지의 대조는 확실하다.
이 거리감을 증명하듯 수술복을 입은 채 타투 시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두 번째는 궁금했다. 메스를 들던 의사가 왜 수술복을 입고 몸에 타투를 새기는 걸까? 의사로서 남극에도 다녀오고,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공부한 이유는 뭘까? 특이한 이력에 관한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위해서 그를 만나 지나온 시간 속 사연을 들어봤다.
성형외과 의사 시절 타투와 관련된 일을 하셨나요?
당시 의사로서 타투 제거 시술을 많이 했다. 진짜 다양한 타투를 많이 지웠다. ‘착하게 살자’, ‘영숙아! 사랑해’와 같이 다소 유치한 문장부터 화려한 꽃이나 화살표가 꽂힌 하트 등을 지웠다. 일종의 낙서라고 보면 된다. 10대 때는 이렇게 하고 다닐 수 있지만, 커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했던 타투를 지우는 분이 많았다.
타투이스트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병원에 장미가 그려진 타투를 지우러 온 분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려진 문양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장미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무척 들어서 시술한 분을 찾아갔다. 그분은 송탄 미군 부대 앞에서 ‘키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셔서,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분 덕분에 타투이스트로서 첫걸음을 잘 뗐다. 당시 타투는 법적으로 의료 행위였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없었다. 나는 성격상 남들이 다 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의사 교육 과정에 타투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타투 시술을 시작했고, 실력을 더 쌓기 위해 미국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메스를 들지 않는 의사, 아쉬움은 없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사가 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위에 있는 형과 누나들이 다 재수,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집에 부담이 컸다. 알다시피 등록금부터 생활비, 월세 등등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나? 우리 집 형편으론 그게 빠듯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의사를 선택했다. 학력고사 성적도 잘 나와서 의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다만 경제적 부담 없이 다니고 싶어서 여러 의대를 알아봤는데, 마침 한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매달 용돈을 지원했다. 그렇게 들어간 의대였지만, 내가 원래 가고 싶었던 길과 달라서 방황했다.
원래의 꿈은 고고학자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고고학자나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며 별을 관찰하거나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성격이지만, 그때는 잠시 보류했다. 의사가 된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이런 마음으로 잠시 그 꿈들을 내려놓았다.
매머드 연구가 그 연장선일까요?
연구까지는 아니고 매머드와 관련된 공부를 잠깐 했다. 끝내 못 이룬 고고학자의 꿈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지도 교수님이 사하 공화국으로 매머드 연구를 하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함께 다녀왔다. 사하 공화국에는 냉동 상태로 발견되는 매머드가 많아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곳이다. 의사로서 미생물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인류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흔쾌히 다녀왔다. 예전에는 남극에도 잠깐 있었다.
남극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셨나요?
월동의사로 다녀왔다. 알다시피 남극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없다. 의사라고 해서 남극 기지의 월동의사로 무조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특수성이 있어,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기회였다. 한 명을 뽑았는데 여덟 명이 지원했다. 정말 간절하게 가고 싶어서, 전략적 승부수를 띄웠다. 그때 관장 부서가 복지부였는데, 복지부 장관에게 내가 가야 하는 이유 7가지를 적어서 편지를 보냈다. 장관 대신 실무자가 편지를 읽고, 나의 적극성을 높이 샀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결국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보건의 시절 중 1년을 남극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의사로서 본분을 잊은 적 없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디에서든 환영받지 못했다. 밑에 있는 직원도 와서 만류하고, 동료 의사도 반대하고, 타투이스트도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 의사로부터 질타를 많이 받았다. “왜 그런 걸 하냐”는 식이었다. 홈페이지에는 “이게 그림이냐? 학원이라도 다녀라” 같은 댓글도 달렸다. 아무 맥락 없이 “밤길 조심하세요” 하며 험악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타투이스트는 직접 찾아와서 자중하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꾸준하게 활동하고 교류하면서 이제는 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주로 어떤 타투를 하시나요?
정해진 틀은 없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다만 의사이다 보니 메디컬 타투에 신경 쓰고 있다. 의료 문신 혹은 재건 문신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타투가 미(美)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타투는 복원에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백반증 환자의 경우 하얗게 된 부위를 타투를 이용해 보통의 살처럼 만들어준다. 의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타투를 하면서 내 신분을 한 번도 망각한 적은 없다.
타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요?
성형외과를 하면서 3만 건 정도의 쌍꺼풀 시술을 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투는 시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기억난다. 특히 한 부자(父子)의 사연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유대가 없던 부자였는데, 타투가 하나의 매개체가 됐다. 아버지는 타투를 한다는 아들을 한사코 말리셨는데, 직접 병원에 와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나중에는 등판에 타투를 새기고 가셨다. 마지막 시술을 받고 가시면서 고맙다고 했다. 타투 때문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들과 말문을 열게 됐다고 하시면서. 그 기억이 참 오랫동안 맴돌았다.
타투는 구속할 수 없는 자유
20년 동안 타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투는 늘 새롭다. 코와 쌍커풀은 정형화된 방법으로 시술한다. 하지만 타투 세계에서는 그런것이 없다.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법이나, 귀걸이를 고르는 취향도 다 다르지 않나? 타투도 마찬가지다. 같은 독수리 도안이라도 취향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서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그러면서 실력이 쌓였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새로움이 없었다면 지루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소양을 알려준 건 키미이지만, 실제로 나를 키운 건 고객이다.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그렇지 않나? 나도 똑같다. 타투도 같은 형식 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내용을 담는 일이다. 끊임없는 새로움이 내 원동력이다.
삶의 롤모델이 있나요?
앙드레 김 선생님과 반 고흐를 존경한다. 둘 다 전형성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해바라기이지만 고흐는 전부 다 다르게 표현했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앙드레 김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것도 모자라 패션에 자신만의 가치를 불어넣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큰 목표는 없다. 그냥 타투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 지금 하는 걸 잘하고 싶다. 2년째 소방관에게 무료로 타투를 시술해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찰관과 응급실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사소하지만 나의 무료 시술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9·11 테러와 관련이 있다. 테러가 발생할 당시 태평양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후에 미국 여행 중 만난 분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영어가 빼곡하게 타투로 새겨져 있었다. 알고 보니 9·11 테러로 희생당한 소방관들의 이름이었다. 미안과 존경의 표시로 말이다. 그분을 만난 이후 나도 나중에 소방관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결심을 이제야 실행하게 됐다.
타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구속할 수 없는 자유다. 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독수리를 새기고 싶으면 새기면 된다. 20대에 할지, 나이 들어서 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운 것이다.
바둑 용어 중에 미생(未生)이란 말이 있다. 몇 년 전 유행한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 미생은 가능성을 품은 순간을 뜻한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따라서 상대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경로가 달라진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헷갈린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를 때가 많다. 선택의 결과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조명신 원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그가 선망하던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공중보건의 시절 남극 월동 의사에 도전했다. 의사로서 안정적인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수술실에서 메스를 드는 대신 몸에 타투를 새겼다. 유년 시절 못다 이룬 꿈에 다가가기 위해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매머드를 탐구했다. 현재도 타투이스트로서 안주하지 않고, 메디컬 타투를 시술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바둑판 안에 갇힌 돌로 남기를 거부하고 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도전하고 있다.
그는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락한 안정이 아닌 구속할 수 없는 자유를 좇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이지만 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에서 ‘안정’ 대신 ‘모험’으로 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말년에 소박하게 타투와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는 조명신 원장의 또 다른 모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