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콘텐츠기업들이 몸값을 키우고 있다. 한류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시장이 확대되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찾는 수요가 늘자 해당 기업들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들은 제이콘텐트리와 스튜디오드래곤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 미디어콘텐츠기업이 넷플리스와 손을 잡으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다. 증권가에서도 이들 기업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 내년 유망주로 떠오른다.
◇제이콘텐트리, 내년 연매출 13% 성장 기대
제이콘텐트리는 올해 13편의 드라마를 제작했지만 내년 하반기 수목드라마 슬롯이 편성되면 연간 18편을 만들 게 된다. 유진투자증권이 분석한 리포트를 살펴보면 올해 13편의 드라마 제작에 따른 방송사업부문 매출은 2236억원이다. 구작 판매 매출 등을 감안하면 편당 약 150억원의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내년 5편의 드라마 추가 제작에 따른 매출액 증가분은 75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제이콘텐트리는 넷플릭스와 내년부터 3년간 20편 이상의 콘텐츠 공급계약을 체결해 방송부문의 이익관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제이콘텐트리는 내년 기준으로 전체 제작 드라마 중 30% 이상을 넷플릭스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3년의 계약기간 동안 일부 드라마 제작비를 일정 비율 보전받을 수 있어 이익 안정성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제이콘텐트리가 보유한 제작사가 총 4개로 늘었고, 제작사 2~3곳에 대해서도 지분 30~50%를 확보했기 때문에 내년부터 급증하는 제작물량을 충분히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5년간 연평균 매출 13%, 영업이익 26% 성장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은 제이콘텐트리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6만9000원을 제시했다. 또 유진투자증권은 투자의견 ‘매수’와 5만1000원의 목표주가를 내놨다. 제이콘텐트리의 지난 26일 주가는 종기기준 3만6600원이다.
◇스튜디오드래곤, 세계 최대 미디어시장 공략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 11월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동제작, 연 7편 이상 콘텐츠 공급계약 등의 내용이 담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계약이 스튜디오드래곤에게 유리한 조건이라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점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최소 3년간 대형 글로벌 콘텐츠 유통채널에 작품을 선보인다. 또 넷플릭스가 지원하는 비용으로 더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의 협력은 스튜디오드래곤의 내년 실적 개선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내년 미국법인을 설립하고 세계 최대 미디어시장을 공략한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드라마 ‘라이브’의 리메이크 작품에는 원작 제작자가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 현지에서 작가 섭외와 작품 기획을 진행 중이고 내년 3월 내 작품 채택여부도 결정될 전망이다.
한상웅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 리메이크 판권 판매가 아니라 국내 제작진이 참여하기 때문에 미국시장 내 제작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미국의 편당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국내 대비 월등히 크기 때문에 단순 외주제작을 통한 경상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스튜디오드래곤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와 9만1000원의 목표주가를 내놨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0만 원을 제시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지난 26일 주가는 종가기준 7만8400원이다.
Best in New Zealand
영화 속 자연 ‘커시드럴 코브’의 ‘코로만델 반도’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영화로 만들 때 촬영 장소 중 한 곳이 북섬의 ‘코로만델 반도(Coromandel Peninsula)’에 있는 ‘커시드럴 코브(Cathedral Cove)’다. ‘오클랜드’에서 출발하면 삼림공원과 바다를 끼고 가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면서 초록색 자연에 풍덩 빠지게 된다. 다만, 반도의 북쪽은 도로가 좁고 굴곡이 심해 캠퍼밴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 ‘커시드럴 코브’로 가는 여정은 푸른색 바다를 옆에 끼고 사암으로 형성된 절벽 위 숲길을 걷는 산책이다.
유리 호수 ‘타우포’와 북섬의 제왕 ‘통가리로 국립공원’
뉴질랜드에는 총 3800개의 호수가 있다. 이 중 가장 큰 호수는 북섬에서 제일 아름다운 ‘타우포(Taupo)’ 호수다.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언덕에 올라서면 파란 호수가 보인다.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동시에 여행자들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유리보다 맑은 호수 건너편으로는 설산이 점잖은 선비처럼 앉아 있다. 초록빛 언덕에는 키 작은 야생화들이 바다 같은 호수를 넘어온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호수를 옆에 끼고 1번 도로를 타고 가면 ‘통가리로 국립공원’을 만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마운트 둠으로 나오는 나우루호에(Ngauruhoe) 산과 북섬의 최고봉 루아페후(Ruapehu)와 통가리로(Tongariro) 산이 포함된 지역이다. 마오리족의 영산으로 아직도 5~6년에 한 번씩 폭발하는 활화산이다. 호수, 초원, 용암대 등 화산지역에 나타나는 자연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여행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고래와 물개의 서식지 ‘카이코우라’
뉴질랜드는 사람이 살기 전까지 토종 포유동물이 박쥐, 고래, 물개 세 종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중 고래와 물개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남섬의 ‘카이코우라(Kaikoura)’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동물의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마을 앞바다로 나가면 고래를 비롯해 돌고래와 바닷새를 볼 수 있다. 매년 1월은 물개 산란기여서 해변으로 어미 물개와 새끼들이 모여든다. 이 마을 인구는 약 2000명인 데 물개는 5만~6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빙하의 눈물 ‘데카포’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물이 흘러와 만들어진 옥색의 호수가 ‘데카포(Tekapo)’다. 호수 뒤편으로는 ‘마운트 쿡’과 ‘서던 알프스 산맥’의 흰 봉우리들이 보인다. 이 풍경에 취해 호숫가에 앉아 한참 동안 멍때리기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교회의 좁은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잠깐 동안 숨을 멈추게 한다. 호숫가 돌 사이 루핀의 보라색은 호수의 푸른빛과 어우러지면서 고고하고 이국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옆의 산꼭대기에 있는 ‘마운트 존 천문대’로 가는 길 곳곳에서는 루핀의 군락지가 색과 향기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아스트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파란 하늘과 호수와 흰 산봉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나온 시간의 상념들이 씻겨 내린다. 그래서 이곳을 ‘영혼의 세탁소’라 부르나보다.
별 헤는 밤, 대자연의 ‘마운트 쿡’
남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 ‘마운트 쿡(Mt. Cook)’이다. 본래 이름인 ‘아오라키(Aoraki)’는 마오리족 언어로 ‘구름을 뚫는 산’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마운트 쿡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울시 크기만 한 빙하호 푸카키(Pukaki) 호수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가는 길 곳곳에 전망대가 있다.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화이트 호스 힐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면 두 개의 빙하 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후커밸리 트랙(Hooker Valley Track)’이 반겨준다. 만년설에 덮인 산들과 빙하, 호수를 떠도는 유빙들을 볼 수 있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다.
이곳은 밤이 되면 수많은 별이 쏟아진다. 어린 왕자의 고향 별인 생텍쥐페리의 별, 별이 되어버린 시인 윤동주의 별, 창문을 통해 본 기억 속 고흐의 별, 순수한 감성을 지닌 양치기 목동의 별인 알퐁스 도데의 별들이 말을 건다.
태고의 신비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 밀퍼드 사운드
피오르드(Fiord) 지형을 대표하는 남섬의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빙하에 의해 수직으로 깎인, 1200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뉴질랜드 최대 국립공원이다. 빙하와 온대우림이 만나 비경이 탄생했다. 우림의 3분의 2는 ‘너도밤나무’와 ‘포도 카프 상록수’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테 아나우’에서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94번 도로 곳곳에서는 기가 막힐 만큼 웅장한 지형과 폭포 등 대자연을 만난다. 크루즈 관광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담는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단애와 폭포를 바라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한다. 뉴질랜드가 자랑하는 3대 걷기 명소인 ‘케플러 트랙’·‘루트번 트랙’·‘밀퍼드 사운드 트랙’은 모두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안에 있다.
‘아서스 패스’에서 찍는 로드 무비
남섬 서부에서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 처치(Christchurch)로 가는 73번 도로는 ‘아서스 패스 국립공원’을 통과한다. 캠퍼밴을 비롯한 자동차 여행을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가끔 지나가는 화물차에게 길을 양보하면서 천천히 이동한다. ‘아서스 패스(Arthur′s Pass)’에서 만나는 하나하나의 풍광을 음미하다 보면 뉴질랜드 여행의 백미를 맛보게 된다. 잭슨스(Jacksons)에서 다필드(Darfiels)까지의 거리는 140km. 길 위에서 나만의 로드 무비를 찍는다. 이곳에서 만나는 ‘오티라 밸리(Otira Valley)’의 멋진 풍경들과 폭포, 와이마카리리(Waimakariri) 강 주변의 황량함, ‘피어슨 호수(Lake Pearson)’, ‘케이브 스트림 시닉 리저브(Cave Stream Scenic Reserve)’, ‘캐슬 힐(Castle hill)’ 등이 내 로드 무비에 기록된다. 이 길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비용과 효율 등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의 가장 적합한 시기는 봄과 가을이다. 힐링과 자유로움,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을 해보자. 최고의 선택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알면 도움이 되는 정보
•뉴질랜드로 여행할 때 이용하는 항공편이 경유할 경우 가능한 한 상하이 푸둥 공항은 피하는 게 좋다. ‘수화물 자동 연결’이 되지 않아 짐을 찾은 후 다시 부쳐야 할 뿐만 아니라 입국, 출국 신고와 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농업 국가라서 입국할 때 식품에 대한 검사가 매우 엄격하다. 통관할 수 없는 식품류는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통과되는 식품들은 겉면에 라벨을 일일이 붙이고 리스트를 준비해 세관 검사를 받을 때 제출하면 좀 더 편리하다.
•여행 중 뉴질랜드 내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인터아일랜더(Interislander) 페리 크루즈선’을 이용할 때 ‘톱10 홀리데이 파크’ 회원은 15%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터아일랜더 크루즈선 홈페이지: www.interislander.co.nz
㈜INL 메일주소: inltours@campervan.co.kr
톱10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top10.co.nz
키위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www.kiwiholidayparks.com
톨로드 비용 납부 사이트: www.tollroad.govt.nz
최근 매스컴에 노출되지 않던 인사, 특히 고령 유명인의 이름이 인터넷에 회자되면 ‘혹시 돌아가셨나?’ 생각한다. 몇 년 사이에 생긴 달갑지 않은 버릇이다. 지난 일요일 밤, 그렇게 김금화 만신의 부고를 접했다. 23일 새벽에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많은 매체가 실시간으로 그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지만 그저 됐다 싶었다. 88년 파란만장한 삶의 종지부를 찍었으니 고인은 참으로 편하겠다. 만신의 지인에 따르면 22일 점심식사 뒤 호흡 곤란으로 119 구급대에 실려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콩팥 기능은 이미 망가진 후였고 혈액 투석으로 고비를 넘기는 듯했으나 다음날 새벽에 운명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인 김금화 만신.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큰 무당이라지만 신앙적 의미를 떠나 우리 무속을 문화예술의 경지로 이끈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굿판은 곧 무대였고, 세상과 소통하는 신명 나는 오페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수차례 외국 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미와 전통예술을 전파해온 '한류의 초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김금화 만신과 마지막 인터뷰를 한 기자가 바로 나인 듯싶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18년 2월호에 게재한 ‘만신 김금화와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란 제목의 기사가 최근 인터뷰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뜨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와의 인터뷰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연세가 많으시고 몸도 쇠약했다. 혹여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하면 도리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설 참이었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김금화 만신의 무릎은 말을 안 들었고, 입 속 상황도 좋지 않았다. 특히 얘기하거나 먹을 때 고생이 심했다. 오전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손님들을 만나 점을 쳤으니 힘들게 뻔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취재를 고사하면 물러나야지 싶었다. 다행히 인터뷰에 응했고 사진작가와 함께 자택으로 찾아가서 만났다.
“너무 시간을 뺏지 말아달라”는 김금화 만신의 말로 시작한 인터뷰. 지금까지 많은 기자를 만나와서일까? 취재 왔다는 말에 늘 했던 옛 얘기를 꺼냈다. 일반적으로 아는 김금화 만신의 이야기. 무병을 앓고 외할머니에게 신을 받고 큰무당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인생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선생님 그런 거 말고요. 다른 얘기 해주세요. 요즘 사는 얘기요.”
막상 요즘 얘기하라고 하니까 말문이 막혔나 보다. 그렇게 첫 만남은 20여분만에 끝이났다. 두 번째에 만나 어릴 적 꿈에 대한 이야기와 소소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과 함께 하는 만신 말고 여자로서 질문이 이어졌다. 당시 인터뷰의 의도 자체가 ‘신 말고 김금화’였으니 나름 신선했던 인터뷰가 됐다. 그가 나온 잡지가 발간 됐을 때 또다시 찾아가 만났다. 달콤한 케이크도 사 들고 말이다. 같이 밥도 먹고, 떡도 나눠 먹었다. 김금화 만신을 3번 이상을 만났으니 복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입이 참 아플 텐데 기운이 어디서 나는지 많은 조언을 해준 기억이 난다.
김금화 만신의 근황을 접한 것은 돌아가시기 딱 한 달 전인 1월 23일. 회사 이메일로 누군가 간곡하게 김금화 만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잊지 말고 연락을 해보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아 이메일을 받은 상황을 전할 겸 김금화 만신의 일을 돌보는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장은 “현재 선생님께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병원 입원을 두 번씩이나 한 상황에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나라도 가서 만나겠다고 했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조만간 슬픈 소식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부고를 접하고 침착할 수 있었던 건 그때 걸었던 전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무장 말에 의하면 곱고 예쁜 모습만 남기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나 또한 눈물 보다는 미소가 지어진다. 류머티즘으로 다 굽은 손가락이 펴지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내리던 무릎도 곧게 펴진 김금화 만신을 상상하니 말이다. 부디 꽃신 신고 사뿐사뿐 세상 소풍가시길 바란다.
국민배우 김수미(70)를 모르는 대중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이름이 예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킬 수(守), 아름다울 미(美). 사람의 도리를 지키고 늙을 때까지 아름답게 살자는 결심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란다(본명은 영옥). 그 이름에 반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노라 자부하는 김수미는 최근 ‘한국의 맛을 지키는[守味]’ 문화 전도사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전 세계에 한국 음식을 알리고 싶다”는 그녀의 원대한 포부는 40여 년 전 어머니를 향한 짙은 그리움에서 시작됐다.
‘2018 제8회 대한민국 한류대상’ 시상식. ‘수미네 반찬’(tvN)을 통해 우리네 어머니의 손맛을 전수 중인 김수미는 한식 문화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공을 인정받아 ‘특별 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방송을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수미네 반찬’은 근래 넘쳐나는 먹방, 쿡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모던한 아일랜드 주방이 아닌 툇마루와 가마솥이 돋보이는 세트장은 김수미가 어린 시절 살던 시골집을 재현한 것. 게다가 제자로 등장하는 베테랑 셰프들이 눈대중 손대중으로 요리하는 그녀의 레시피를 허둥지둥 따라하는 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주고, 그 근저에 깔린 ‘엄마의 마음’은 가슴 찡한 감동을 선사하며 남녀노소 불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예상 못했어요. ‘아, 진정성을 갖고 하는 건 역시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몇 스푼, 몇 그램 정확한 것보다도 집에서 하는 방식 그대로 보여주려 해요. 워낙 거침없이 해대니까 카메라가 앵글을 못 잡아 당황할 때가 많지.(웃음) 처음엔 장동민 씨가 ‘선생님 레시피가 있으시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너희 할머니, 어머니는 저울질해가며 음식하셨니? 요리자격증 있어서 자식들 밥해줬니?’라고 했죠. 그냥 엄마가 딸한테 음식 가르치듯 알려주고 싶었어요. 싱거우면 소금 넣고, 짜면 물 붓고 하면 되지. 경험이 쌓이면 손맛은 다 생기게 돼 있어요.”
‘깍두기에 쪽파를 많이 넣으면 김치가 금세 물러진다’, ‘아귀찜할 때 아귀는 사나흘 꾸덕꾸덕 말린 것을 써야 한다’ 등 김수미는 자신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수십 년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음식의 지혜라고 말했다. 또 글로 써서 남기는 레시피보다는 어머니들의 기(氣)와 영혼을 물려주고 싶은 게 그녀의 오랜 바람이자 목표다.
엄니, 왜 그 맛이 안 날까요?
베테랑 셰프들도 인정하는 김수미의 수준급 요리 실력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본 적은 한 번도 없단다. 그 옛날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그 맛에 가까워지려 하다 보니 솜씨가 좋아졌다고.
“열일곱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돌아가신 탓에 요리는 못 배웠죠. 아마 내가 마흔까지 살아계셨다면 음식 안 했을지 몰라요. 할 필요가 없었겠지. 근데 결혼하고 임신을 했는데 엄마가 해준 풀치조림이 생각나는 거야. 그거 한 입만 먹으면 입덧이 싹 가실 것 같은데, 다시는 먹을 수가 없잖아요. 그 뒤로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기억을 더듬어 음식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수백 번 만들었던 엄마의 풀치조림. 그때마다 그립고 그리운 우리 엄니….”
음식을 하면 할수록 손맛도 늘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지만,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아무리 해도 전에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으니 헛헛할 수밖에 없다고.
“요즘처럼 추울 때 엄마는 김치콩나물밥을 해주시곤 했죠. 가난한 살림에 푸성귀도 없으니 엄마 나름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한 끼였을 거예요. 지금은 그 소박한 김치콩나물밥에 소고기까지 넣어 먹는 호사를 누리는데도 엄마가 해주시던 것만 못하네요. 가마솥에 지은 김치콩나물밥에 엄니표 양념간장 쓱쓱 비벼 먹던 그 추운 겨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수미는 줄곧 자신의 음식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라 표현했다.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는 젊은이나 인스턴트로 아이들 끼니를 해결하는 주부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냉동, 반조리 식품 먹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어떤 음식으로 엄마를 추억할까 싶어요. 두부 한 모를 썰더라도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그 음식에 온기가 더해지고 영혼이 담기는 거거든요. 그렇게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온순해지고,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죠. 나이 먹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난 예전에 행복은 어디 다락이나 보자기에 싸서 놓은 줄로만 알았어요.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에 숟가락 푹 담그면서 밥 먹는 거.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 그게 바로 행복이지.”
“훌륭한 음식은 영혼을 감동시킨다”고 말하는 김수미에게 ‘소울푸드(soul food)’는 무엇인지 물었다. 단박에 ‘된장찌개’라고 대답한다. 구십까지 살아도 된장찌개와 총각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다는 그녀. 본인 입맛은 소탈하지만, 맛있는 반찬 소개하려 아낌없이 재료를 쓴 것이 뜻하지 않게 오해를 사기도 했다.
“방송 1회 때 고사리보리굴비조림을 했어요. 당시 재료비로 따지면 제주산 고사리라 5만 원은 넘게 줘야 사고, 보리굴비도 10만 원은 했을 거예요. 그걸 보고 한 시청자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김수미 씨는 돈 잘 버니까 비싼 재료도 막 쓰는 거 아니냐’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누가 집에서 한 끼 반찬에 15만 원씩 주고 먹겠나 싶은 거죠. 그 댓글이 참 귀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요즘엔 진미채, 감자볶음처럼 1만 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반찬으로 준비해요. 앞으로도 ‘수미네 반찬’에서는 비싼 재료 안 쓸 생각입니다.”
끝이 아닌 마지막 인사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가끔 도망가 버리고 싶다’, ‘미안하다 사랑해서’,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 ‘너를 보면 살고 싶다’. 제목만 봐도 글쓴이의 심정을 알 것 같은 이 책들의 저자는 바로 김수미. 국문학도를 꿈꿨지만 대학 진학을 못한 아쉬움을 독서와 글쓰기로 달래며 살았다. 에세이와 소설, 레시피북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그동안 내놓은 책만 10여 권. 그리고 최근 마지막 에세이 ‘안녕히 계세요’를 집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이라니. 그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칠십이 넘었는데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가 워낙 준비성이 철저하거든.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하자, 주변 분들에게 여유 있게 인사 남기고 가자는 마음으로 ‘안녕히 계세요’를 쓰기 시작했죠. 마지막 에세이라고 했지만, 책 내고 한 5년, 10년 더 살면 어때요. 그럼 더 좋은 거지. 걱정 마세요 여러분, 저 당장 안 죽어요!(웃음)”
이번 책에는 어린 시절부터 살면서 겪은 충격적인 사건들까지 모두 담아낼 계획이란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난 뒤의 삶은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이 가사가 참 좋아요. 내가 위대한 사람 같으면 괜찮은데, 나는 너무 하찮기 때문에 꼭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시골에서 올라와 이만큼 고생했는데, 그 흔적조차 안 남기면 내 한이 풀릴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자꾸 뭐든 흔적을 남기려 해요. 앞으로는 그 흔적 중 하나가 ‘수미네 반찬’이 되지 않을까요? 이 프로그램은 애당초 계약 조건을 ‘선생님(김수미)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렇게 해서 사인했어요. 내가 죽기 전까지 ‘수미네 반찬’은 계속할 거예요.”
의학의 신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식은 몸이요, 마음이다(食卽身心). 음식을 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하며 각종 질병에서 해방된다. 좋은 음식은 에너지원 제공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골고루, 충분히 함유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평소에 식습관을 제대로 들인 사람은 몸이 곧고 눈에선 광채가 나며 활력이 넘친다. 마음도 넉넉해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한 눈길을 주는 편안한 사람이 된다. 좋은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준다. 또한 에너지원과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 있어 매일 섭취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 활력이 충만하고 면역력이 높아져 대부분의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음식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자연의 미생물들을 이용해 만든 발효 음식이다. 특히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없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물성 재료를 오랫동안 자연 발효시켜 만든 장류나 김치를 비롯한 한국의 발효 음식은 건강의 대명사로 음식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이윤 추구를 위해 단기간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 영양소가 결여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fast food)를 멀리하고 슬로푸드(slow food)인 우리 고유의 전통발효 식품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각종 질환, 음식이 문제다
그런데 요즘 건강한 발효 한식의 계승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반대다. 활력이 없고 피곤에 지친 눈들이 많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 안타깝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 외면하며 사는 게 보통이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다. 돈만 좇고 사는 머니좀비(money zombi) 사회라 표현되기도 한다. 누구든 이런 환경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가공식품은 미네랄 같은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텅 빈 음식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레스토랑 때문에 아이들은 김치나 된장국을 외면하고 동그랑땡 같은 가공식품이 밥상 위에 올라와야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를 먹기 시작하면서 인체 면역 시스템이 고장 나 아토피 피부염이 만연했다. 아토피 피부염은 100명 중 한두 명이 걸리고 돌이 되면 저절로 낳아 태열이라 불렸는데 요즘은 30~50%의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그중 3분의 1은 평생 짊어지고 다닌다. 더구나 사철 미세먼지에 포위되면서 어른들까지 비염, 천식에 노출되고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했다.
최근엔 원룸에서 살면서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즉석조리 음식과 항생제 남용으로 장기가 염증질환에 노출돼 죽어가는 크론병도 이제는 희귀병이 아니라 흔한 병이 되었다. 이러한 질병은 면역력을 키워주는 파이토케미컬, 즉 식물성 미량 영양소들이 결여된 음식들 때문에 발생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사회는 잘못된 음식 섭취로 질병 공화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건강에 좋은 우리 음식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 좋은 걸까? 당연히 세포를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이다. 세포는 신진대사가 원활하고 면역력이 높아져야 활발해진다. 신진대사가 원활하려면 미네랄, 비타민, 효소, 식이섬유, 항산화제 등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런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이 바로 김치, 된장, 청국장 등 우리의 발효 음식이다. 영양이 풍부한 배추나 콩을 원료로 사용해 가공 과정에서도 미네랄, 식이섬유 등 영양가의 손실이 거의 없다.
또한 필수아미노산이나 각종 생리활성 펩타이드, 비타민 등이 미생물 작용으로 생성돼 영양가도 높다. 다양한 맛과 향기도 생성되어 풍미가 깊어지고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 물론 김치나 청국장처럼 처음엔 냄새가 고약한 음식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찾게 된다.
발효식품은 자연의 미생물들이 난소화성 물질들을 분해시켜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항산화제나 항암제 등 생리활성 물질들을 생성한다. 유익한 미생물들은 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각종 질병을 예방하게 해준다.
인체 내 미생물들은 제2의 장기라 불릴 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발효 식품들 중에서도 김치는 물론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류 위주의 우리나라 음식은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없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발효식품의 나라’로 불리었다. 발효 음식은 현대인들을 살찌게 만드는 초고열량·저영양 가공식품의 폐해로부터 건강을 지켜줄 미래의 음식이다.
이기영(李起榮) 교수
고려대 식품공학과 학·석사 졸업. 현재 호서대학교 자연과학대 보건생명과학부 식품공학과 교수.
상식을 깨고 편견을 뛰어넘는다. 말 참 쉽다. 상식을 깰 때는 식상함과 맞서야 한다. 편견을 넘어설 때는 ‘적당히 살라’는 기운 빠지는 사견에 귀를 막아야 한다. “할머니들이 가능하겠어?” 수군거리는 대중 앞에 마음 졸이며 섰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평생을 아줌마, 할머니 소리 듣던 사람들이 ‘신선하다’, ‘충격적이다’란 말을 들으며 사랑받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그룹도 많은데 평균 나이 69세, 데뷔 11년 차 진짜 왕언니들만 모인 시니어 걸그룹 ‘왕언니 클럽’을 만났다. 그들의 매력 넘치는 이야기를 살짝이 엿봤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문화원’ 지하 연습실. 매주 화요일, 금요일이 되면 ‘왕언니 클럽’은 시간 맞춰 모여 노래하고 춤추기를 반복한다. 전 단원, 전곡 완전정복이 목표다. 어느 때이고 공연 무대에 재깍재깍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창단 초석이 된 고참부터 5개월 신참까지 현재 16명이 활동 중이다. ‘왕언니 클럽’의 이정자(74) 회장에게 왕언니 클럽이 뭐하는 모임이냐 물으니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어르신들 계신 곳에 가면 옛날 노래로 즐겁게 해드려요. 그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요즘 걸그룹 노래도 하고요. ‘왕언니 클럽’ 활동을 하면서 진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노인복지관 위문공연 봉사는 물론이고 ‘왕언니 클럽’의 공연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옛 가요는 기본이고 인기 있는 걸그룹 노래와 춤, 팝송에도 도전한다. 단, 역동적인 걸그룹 춤은 관절 건강을 생각해 안무를 새롭게 짜는데 전 단원이 함께 의견을 모은다.
관객에 따라서 선곡이 달라지다 보니 개인 무대 의상만 10벌 이상은 된다. 다소 야한(?) 의상도 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창피했는데 무대에 오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현재까지 방송 출연만 100여 회, 공연은 연간 20회에서 30회를 소화하고 있다. 해외 공연도 전문 그룹 못지않다. 중국, 미국, 룩셈부르크, 태국 등지에서도 초청받아 무대에 올랐다.
환갑이 아니면 아직은 예비 단원
나이 지긋한 언니(?)들이 ‘왕언니 클럽’이란 이름으로 팀을 결성한 것은 2007년이다. 동대문문
화원 강임원 사무국장은 늘어나는 시니어 세대와 신나는 무엇인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왕언니 클럽’을 창단했다.
“고령화가 빨리 진행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니어들이 할 만한 것이 한국무용, 민요교실 정도밖에 없었어요. 그냥 재밌게 놀면서 할 거 뭐 없을까? 그래서 중창팀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는 것 말고 간단하게 안무도 가미하자고 했습니다.”
‘왕언니 클럽’을 모집하고 지금까지 정말 많은 여성 시니어가 문을 두드렸다. 걸그룹 못지않은 연습량을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일이 많았다고. 기본 4개월은 버텨야 이제 좀 ‘왕언니 클럽’에 적응할 수 있겠구나 체감을 한다고 했다. 연차가 높아져도 나이 60이 안 되면 무대에 서기도 어렵다. 나이가 많을수록 대우받는 걸그룹이라니. 하루라도 빨리 나이가 익기를 바라는 기이한 현상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로 2년 차인 배현자 씨의 나이는 55세. 젊다는 이유(?)로 무대에 오르는 선배들 돕기에 바쁘다.
“가끔씩 저를 무대에 올려주시기도 해요. 더러 앞에도 세워주시고요. 여기서는 60세는 돼야 해요. 아직 5년은 더 해야 무대에 설 수 있어요. 제가 배우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신나게
10여 년 이어온 그룹답게 선후배 사이 기강도 확실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제법 프로답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전문 공연자들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가정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 바깥 활동한다는 이유로 가사를 돌보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 회장은 말한다.
“무대에서 화려하게 춤추고 노래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이잖아요. ‘왕언니 클럽’을 잘해내기 위해서 밖에 나올 때는 더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놓고 나와요. 오래도록 활동하고 싶거든요.”
해외 공연에 청와대 초청, 시니어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전부 섭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언니 클럽’으로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큰 무대에 서보는 일이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두가 건강을 잘 유지하길 바란다고 이 회장은 덧붙였다.
“70대와 60대는 아주 천지 차이더라고요. 다들 오래오래 같이 무대에 서야죠. 함께 건강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이 먹는 게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왕언니 클럽을 통해 해봤다. 그들의 매력 발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경제 성장이 절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한 마리로 불렸다. 고도성장을 과시하듯 연이어 열린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전쟁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낸 듯 우리나라가 함박웃음 짓던 그때. 우리를 동경하던 대륙의 청년이 있었다. 한국의 발전상이 그저 궁금했을 뿐 저 먼 미래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눈 맑은 청년. 훗날 그는 한류 문화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한류를 파는 중국인, 중국 온라인 패션 기업 한두이서(韓都衣舍) 두정국(杜廷國) 부회장을 만났다.
한류 때문에 하루가 바쁜 사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빡빡합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직접 상담하다가 돌아갑니다.”
한국에 오면 주로 뭐하냐는 질문에 재미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 패션계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온라인 기업 한두이서그룹주식유한공사(이하 한두이서) 공동 창업자이자 부회장의 서울 일정이 야박할 정도로 쉴 틈이 없다. “그저 일만 하다 간다”는 넋두리가 여운처럼 슬며시 깔린다. 알고 보면 사정이 딱하지도 않다. 한국에 오기 위해 이용하는 중국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한 시간 거리. 중국 내 출장보다 가까워 당일 출입국이 가능할 정도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대한민국 서울은 나쁘지 않은 업무 장소다.
“한국 분들이랑 짧게 몇 마디 정도 대화하면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얘기가 깊어지면요? 그때는 중국놈으로 알아챕니다!(웃음)”
중국 사람을 낮춰 부르는 표현도 넉살 좋게 쓰는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 기업과 한두이서 사이 소통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며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 회사와의 만남은 물론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패션 업체와의 선약으로 한국 방문이 부쩍 잦아졌다.
시니어 패션도 한류다
한두이서(韓都衣舍)는 ‘한국 옷을 파는 집’이란 뜻이다. 2006년 온라인 전문회사로 창립해 2년 뒤인 2008년 본격적인 한류 패션 전문 쇼핑몰로 새 단장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업계 1위 자리를 꿰찰 만큼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지 스튜디오에서 한국인 모델을 기용해 촬영한 이미지로 한두이서 홈페이지(handu.com)를 채우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이 죄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친근함이 묻어난다. 한두이서가 특히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이유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전지현, 지창욱, 박신혜 등을 피팅 모델로 발탁했다는 점. 배우 전지현은 지금도 한두이서를 대표하는 모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출에서도 한두이서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룹 내 자체 브랜드 16개 중 하나인 ‘H스타일’은 이용 회원만 1700만 명, 연간 매출은 우리 돈으로 3500억 원이 넘는다.
한두이서 홈페이지에는 매일 한류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유아, 어린이, 시니어 브랜드에 이르는 제품들이 각각 100개 이상 업데이트된다. 특히 ‘H스타일’ 못지않게 시니어 패션 브랜드의 활약도 눈부시다.
“4, 5년 전에 꽃중년 여성을 겨냥한 한류 스타일의 브랜드 디큐나(Dequanna)를 런칭했습니다. 젊은 중국 여성 패션이 한국과 큰 차이가 안 나는 반면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중년 패션은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그것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탤런트 윤해영 씨가 ‘디큐나’ 홍보모델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큐나의 실제 구매자는 누구일까? 바로 H스타일에서 옷을 사 입는 시니어의 자녀들이다.
“스스로 옷을 사 입는 시니어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구매합니다. 우리 메인 브랜드인 ‘H스타일’ 회원만 1700만 명이고 한두이서몰 전체 회원이 4000만 명입니다. ‘H스타일’에 들어왔다가 ‘디큐나’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입는 옷에도 눈이 가는 것이죠.”
현재 중국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시니어 패션 브랜드 중에서 ‘디큐나’가 1위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말했다. 1위가 아니면 배우 윤해영을 어떻게 쓰겠냐며 시원하게 웃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류를 알아보다
두정국 부회장이 배우 윤해영을 설명하면서 MBC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나왔던 배우라고 소개해서 적잖이 놀랐다. 199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이지만 한류 드라마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 그렇다면 한류 전문가 느낌이 물씬 나는 두정국 부회장은 언제부터 한국을, 한류를 직감한 것일까?
“한국을 알게 된 건 한류 열풍이 불기 아주 오래전 전부터죠.”
이웃 나라 한국의 성장이 궁금했던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을 알고 싶은 마음에 1993년 산둥대학교 외국어학원 한국어학과에 진학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어학과가 신설됐으니 한국어를 배운 첫 번째 세대다. 한류 전문가로서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뭔가 멀리 봐서 전공을 결정한 거라기보다는 한국의 빠른 성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것이 운명이었던 것이죠. 마침 우리 회사 조영광(趙迎光) 회장님도 같은 학과, 같은 반 출신입니다. 유학덕(劉學德) 한국지사장은 기숙사 룸메이트였고요.”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됐다.
“1980~90년대, 중국에서는 홍콩류나 일본류가 있었습니다. 오래가지 못했어요. 인기가 좀 생기나 싶었는데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전공한 저와 회장님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는 다른 나라의 유행과 달리 침투력이 강했습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정부도 국가 정책으로 문화 관련 사업에 투자를 많이 했고요. 유행이 오래갈 것으로 판단했고 사업 콘텐츠로 삼기로 했습니다.”
한류 패션을 지탱하는 것은 한류 문화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목소리에 힘을 줘 강조하면서, 한류 패션은 한류 문화, 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시작해 패션으로 뻗어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스타에 대한 친근함도 중국 스타와 비교되는 점이었다고.
“중국 일반인에게 연예인이란 거리감이 있고 숭배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한류 문화로 알게 된 한국 연예인은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뭐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대상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노래도 잘하고, 잘 노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는 만큼 한류 패션도 생명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결국 우리의 판단이 맞았음이 증명되고 있잖아요. 2003년쯤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15년이 지났는데 한류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한류 스타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그 노력의 결과로 중국에서 제일가는 온라인 패션 브랜드로 한두이서는 성장했다. 현재는 한류 패션을 넘어서 뷰티와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투명 경영이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든다
두정국 부회장에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마음 관리에 꽤 엄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5년 전부터 철저하게 채식을 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든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행동하고 사고한다. 두정국 부회장은 본인의 생각이 회사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두이서의 비전은 사원들과 외부 파트너가 꿈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임원진과 함께 많은 토론을 거친 부분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꿈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 문화는 협동으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궁극적으로 직원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성장합니다. 직원들이 부자가 되면 회사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거잖아요. 직원이 다 실패하면 회사도 물론 무너지고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주 일가의 갑질과 관련한 이야기가 새어나와 두정국 부회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경쟁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부작용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오래 사업을 하고 싶다면 투명 경영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대내외적인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모두가 좀 솔직해야죠.”
한두이서는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지양한다. 대신 작은 조직체를 많이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일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실적이 좋은 팀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이때 원인을 파악해 팀원을 다른 조직으로 분산 배치하거나 개인 실력 차에 따라 조직에 기여하게 한다.
“이것도 자연의 법칙입니다. 순환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는 온라인 시장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두이서는 회사 내 조직이나 관련 외부 업체가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줍니다. 물류, IT, 생산, 홍보 등 다양한 시스템을 지원합니다. 사내 자체 브랜드이든 파트너 업체이든 모두 한두이서의 시스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회사 연혁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빠르게 업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온라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런 조직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온라인에서는 이런 식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발전 흐름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한두이서의 장기적인 목적 중 하나가 빅데이터 자료를 기반으로 한두이서 내부 조직을 포함해 함께 일하는 업체가 더욱 편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성장 중이거나 온라인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교육도 제공하고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빅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갖췄기 때문에 한두이서가 중국 내 규모가 가장 큰 온라인 브랜드 그룹이 됐다고 두정국 부회장은 설명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업체와 협약식이 있었다.
“우수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중국 진출을 돕는 것도 우리 일입니다. 오늘은 임블리(부건FNC)와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나라마다 온라인 시장의 규칙이 다릅니다. 무턱대고 진출하면 실패율이 높습니다. 임블리가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회사일지 몰라도 중국 시장에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예요.”
끝으로 한류를 파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한류의 수명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냐고 물었다. 뉴웨이브란 이름으로 왔다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타이완류, 일본류, 홍콩류는 늘 있었다.
“제가 50년은 더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한류의 유통기한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본류나 홍콩류보다는 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 문화 기반이 이미 잘 닦여 있으니까요. 한류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한류 패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할 것 같습니다.(웃음)”
여행, 사진, 시낭송… 프로급 취미로 쌓은 내공
배우 양미경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덕대학교로 갔다. 배우이자 교수인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몇 번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조정해가며 어렵게 만났다. 게다가 그녀는 인터뷰를 싫어해서 8년 만에 처음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이봉규로서는 행운을 잡은 것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8년 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는 시크릿(secret)이 있어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양미경은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사진 촬영은 미리 드라마 촬영 장소에서 따로 해두었지만 연예인들이 인터뷰할 때는 대체로 화장을 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기 마련인데 그녀는 마치 방금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온 사람 같았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짐작이 갔다. 바쁘기도 해서 그렇지만 양미경은 촬영 때만 화장을 하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화장을 안 하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녀는 “평상시 내가 소중하니까 피부도 아끼고 화장하는 시간도 아낀다”고 대답하면서 “사극을 하다 보면 가체(加髢)가 무겁고 장시간 정수리 부분을 눌러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할 때는 원형탈모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부연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지금도 TV조선의 주말 사극인 ‘대군-사랑을 그리다’를 한참 찍고 있기에 무거운 가체와 의상, 그리고 분장에 몸이 얼마나 피로할까? 특히 ‘대군’에서도 대비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장식이 더 많고 가체도 더 무거울 것으로 짐작된다.
‘대군’에서 양미경이 맡은 대비 심 씨는 왕자들의 모후로서 조용하고 덕이 있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궐내 각 처소에 정보원을 심어 치열한 내전 정치를 하는 전략가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
양미경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가 대비 역할에 딱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깊숙이 숨겨진 그녀의 눈빛에서 나오는 내공은 후덕함으로 포장된 정치 9단의 대비 심 씨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대군’은 5월 초에 끝날 예정인데 양미경의 종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
양미경은 1983년 KBS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했고 이후 2년간 단역에 출연하다가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 조연을 맡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단아한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사극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한류 열풍을 일으킨 ‘대장금’에선 장금의 스승인 한 상궁으로 열연해서 그해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이후 ‘왕과 나’, ‘해를 품은 달’ 등 사극에서 내공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시간의 숨결을 느낀다”면서 시적 표현을 하는 양미경의 단아한 모습이 야구모자와 트레이닝복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양미경은 그래서 사극이 좋고, 사극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현재는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작 출연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우와 교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럼 배우를 하죠!”라고 말하는 그녀. 양미경은 배우로서도 교수로서도 완벽한 프로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련한 연구에 열중한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예술의 성지를 찾는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고향에서 그의 대표작 ‘갈매기’를 공연할 때를 잊지 못한다. 체호프의 고향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인 문학으로 격상시킨 체호프가 살았기 때문에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체호프는 ‘멜리호보’에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양미경이 좋아하는 ‘갈매기’를 비롯해 ‘나의 인생’, ‘사할린 섬’, ‘6호실’, ‘사랑에 대하여’ 등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의 성지가 됐다. 예술가들의 얘기와 여행 얘기로 잔뜩 신이 난 양미경은 화제를 프랑스로 또 금방 옮긴다.
그녀는 화가 고흐를 특히 좋아해서 고흐 마을을 꼭 간다고 말하며 표정이 금방 상기된다. 파리에서 약간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Sur-Oise)는 고흐가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흐가 인생 말기에 살았던 자그마한 마을이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여관(Auberge-Ravoux)’도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고흐는 이곳 2층에서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파
그녀는 예술의 성지뿐만 아니라 자연이 아름다운 아프리카, 몽골, 인도 등도 여행한다. 배우와 교수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여행도 자주 한다. 얼마 전 입춘에 속초와 설악산을 다녀온 그녀는 눈 덮인 산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안 할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배우 안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어진 게 감사하긴 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지만 평생 배우로 살아왔기에 다소 민망한 듯 “남은 인생 배우활동을 충실하게 할 것이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봉규는 “교수보다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배우가 좋지만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것 같았다. 흑백 필름을 구입해 직접 인화를 할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 그녀가 배우로서 감성을 유지해나가는 배경에는 이 같은 취미생활이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하나의 프로급 취미생활 시낭송
이같은 연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급 취미생활은 또 있다. 바로 시낭송이다. 멋모르고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해서 즐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서예전에서 양미경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이해인 수녀의 시 ‘우정일기’와 ‘차를 마셔요, 우리’를 낭송했다. 2006년에는 시낭송을 포함한 음악앨범도 냈다.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그대에게 가는 길, 양미경입니다’에서 소개한 곡 중 신승훈이 노래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를 비롯해서, 자신이 특히 좋아했던 남자 가수들의 발라드 13곡과 직접 낭송한 3편의 시를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되었는데 초기에 수입 물량이 품절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녀는 이 같은 음반 작업을 국내외 팬서비스 차원에서 했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녀는 앨범 작업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작가와 프로듀서와 함께 좋은 음악을 선곡하면서 방송을 했지만, 무언가 한 가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랑하는 팬들과 조용히 지지해준 국내의 30대와 40대 팬들을 위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쁜 와중에도 팬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지극정성이다. 인터뷰 도중 교수 라운지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왔다. 단아하고 내공 깊은 양미경과 여행, 예술 등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중이라 그의 노래가 마치 우리를 위한 BGM(background music)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격조 있는 대화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열중하느라 저만큼 떨어진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더니. “나 여기 있어~” 한다. 양미경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대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이 튀어나온 듯했다. 이봉규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로 양미경과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전남 장흥은 남쪽 끝머리쯤에 위치해 있어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막상 떠나보니 일일생활권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지만 장흥은 당일로 다녀오기에는 너무나도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 땅에 남아있는 예술혼과 사람들의 진득한 인정이 더 머물고 싶게 하던 곳이었다.
가끔 막연히 생각만 하던 곳을 가게 되면 더 애착을 가지고 눈여겨보게 된다. 당연히 자기만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과 궁금한 것,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우연처럼 잘도 찾아낸다. 그렇게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갖고 길을 떠나게 된다. 장흥이 그랬다.
장흥 산하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인 옛이야기들이 잘 알려진 곳들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누구나 쉽게 여러 군데를 찾아서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엔 아직 덜 알려지고 조금은 독특한 이곳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묘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들어가 본 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원도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흥교도소가 용산면 어서리 마을 자울재 아래로 새롭게 건립되어 이전했다. 1975년부터 2015년까지 죄수들의 수감시설이었던 이전의 건물이 용도가 폐지된 것이다. 그래서 남겨진 텅 빈 교도소가 새롭게 재탄생되려는 계획 중에 있었다.
지금은 그곳이 국유재산으로 속해있는데 아직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곳에 전남소방본부 청사와 한약진흥재단 시설을 유치한다. 그리고 뉴콘텐츠 플랫폼 전시관, 세계 속 한류 문학관, 생활 속 갤러리 등의 복합 문화 예술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곧 개방되면 지역경제의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근래엔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최근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자주 볼 수 있다. 배우 지성이 열연했던 드라마 에 등장하던 교도소가 바로 이 곳이다. 재소자들이 살벌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머물던 방과 더 어두웠던 징벌방이 그대로 있다. 기술을 익히는 작업실과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운동장과 수용자들끼리 은밀한 거래를 하던 벤치와 계단에 앉아보기도 한다.
건물 높이 올라 감시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깥세상은 별 일 없다는 듯이 들판은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학교도 보인다. 교도소 담 밖으로는 유명한 장흥 미나리 논이 있다. 드라마 피고인에서 지성이 분노의 탈출을 하던 들판이다.
외에도 ,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 , 최근의 까지 영화와 드라마 배경의 촬영 명소로 부각되었다. 촬영 기간 동안에 죄수복을 입은 많은 연기자들이 장흥 시내를 활보하는 진기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긴장감이 동반되는 공간이 소위 깜드(깜방 드라마)로 먼저 이름을 알린 것이다.
이렇게 옛 장흥교도소가 문화와 예술로 탈바꿈하여 주민들은 물론이고 찾아오는 여행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 어두웠던 분위기였던 장흥교도소가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채워줄 멋진 공간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한국시니어스타협회(대표 겸 예술감독 장기봉)가 3월 21일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퀸스베리 미즈시니어 뷰티어워즈 대회’를 개최한다.
퀸즈베리 미즈시니어 뷰티어워즈 대회는 대한민국 50세 이상 여성이라면 무료로 참여 할 수 있다. 본선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며 상위 수상자에게는 상금이 수여된다.
장기봉 감독은 “지금까지 열려 온 시니어 미인대회는 출연비 요구, 시상 과정의 불공정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해 왔으나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공정하고 아름다운 대회를 만들어 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시니어스타협회는 시니어 모델과 시니어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 모인 곳이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 가까이 차지하면서도 끼인 세대, 주목받지 못하는 세대, 그러나 열정이 넘치고 낭만을 아는 한류의 원조 부모세대가 마음 속 깊숙이 지니고만 있었던 예능 본능을 일깨워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 보려고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