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에도 섬이 있다. 난지도(蘭芝島)다. 당진군 석문반도와 서산시 대산반도 사이, 당진만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소난지도, 대난지도를 합쳐 부르고 그 주변에는 대조도, 소조도, 우무도, 비경도, 먹어섬, 풍도, 육도 등 7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생해서 붙여진 섬 이름. 과연 그 섬엔 무엇이 있을까? 도비도 선착장에서도 눈가늠이 되는 소난지도가 해맑게 웃으면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글·사진 이신화 의 저자 www.sinhwada.com
작지만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난지도, 의병들의 함성이 들리는 그곳, 언제 다시 가나?
오전 7시경. 도비도 선착장 주변엔 활기가 넘쳐난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낚시객들을 태우느라 바삐 움직이는 작은 배들 사이로 하루에 세 번 운항하는 철부선(쇠로 만든 짐배)을 타려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모여든다. 자전거를 타고 온 여학생이 눈에 띈다. 선장의 딸이라는 여학생은 대난지도 섬의 분교로 6년간 통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시50분, 배가 출항한다. 소난지도가 나의 첫 목적지다. 당진군내에서는 대난지도 다음으로 큰, 두 번째 섬으로 선착장에서는 10분 거리다. 눈 깜짝할 새 갑진마을에 도착한다. 낯선 곳에 대한 설렘이 앞선다. 이 섬에서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이 하선한 몇 사람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선착장 주변을 혼자 배회한다. 식당 두어 곳과 가게, 교회, 경로회관과 민가 몇 채가 있다.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두 명이 눈에 띈다. 말을 걸어볼 요량이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는 소난지도의 청아한 공기만큼이나 얼굴이 곱고 정정하다. 뭍에서 시집와 평생 이 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애써 캐물어야 아는 것은 아니리.
선착장 좌측으로 가본다. 길은 바다를 끝으로 끊어진 듯 보이지만 더 가보면 옛 학교터다. 1960년대에 삼봉초 소난지 분교장이었다. 점차로 사람 수가 줄어들면서 1992년 폐교됐다. 1500평 규모의 폐교엔 제법 넓은 운동장이 있고 새로 지은 듯한 마을 회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때 이 섬에도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슬슬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찻길이 끝나는 도독어미 바닷가에 발길을 멈춘다. 소난지도는 과거 조운경로에 들었을 때 조운선이 정박하던 곳이다.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경창(서울 마포)으로 수송하면서 잠시 쉬어 가던 곳이다. 조선 말에는 이 세곡선을 털기 위해 도둑들이 살기도 해서 붙여진 지명인 듯하다.
펜션동, 식당이 한 채 있고 낚싯배 한 척이 있다. 바다로 나가, 눈을 들어보니 지척으로 대난지도다. 400m 지점이니 수영을 잘한다면 도착할 수 있을까? 해변엔 인적이라고는 나 혼자다. 옅은 파도소리가 귓전으로 쓸려 간다. 배가 들어온 흔적인 선착장은 부서져 있다. 왼쪽은 바닷물이 차 더 이상 갈 수 없다. 야트막한 산길도 올라보고 해변도 배회한다. 새소리, 풀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사위는 고요하다. 문득 책을 펼쳐들고 싶다. 돗자리를 펴고 원 없이 못다 읽은 책을 읽고 싶다.
바닷길을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로 튀어나온 기암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과 조우한다. 바위 끝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다가 아주 작은 노래미 한 마리를 잡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초보 낚시객들에게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우측 둠배마을 펜션단지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의병총을 만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전국 의병들의 반발은 거셌다. 1907년, 당진지역 최구현의 의병부대, 경기남부지역에서 싸웠던 홍일초 부대, 서산의병 김태순 부대, 홍주의병 차상길 부대원들이 합류해 소난지도로 왔다. 소난지도를 택한 이유는 전라도 일대에서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들이 정박한다는 점이다. 세곡을 탈취해 군량미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육지와 떨어져 있으니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도 들 수 있다. 하지만 홍주경찰서에서 눈치를 채고 1908년 3월 15일 이곳을 기습 공격한다. 9시간의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실탄이 떨어진 150여 명 의병 전원은 이곳에서 몰살당했다. 아프다. 가슴이 저려온다. 절로 눈시울이 젖는다. 그것을 추모하기 위해 1974년 6월, 봉분을 봉축(封築)했고 1980년 6월 의병총비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1982년 8월 5일 의병총비를 제막한 것이다.
의병총 앞, 둠배마을은 펜션 단지다. 그 앞에 폐가 몇 채가 있다. ‘소난지도의 영웅들’이란 다큐드라마를 찍겠다고 만들어진 세트장이다. 하지만 제작사 관계자들은 산지 전용허가를 받지 않은 채 소나무 5000여 그루를 무단 벌채했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보전산지인 이곳에 남아 있는 폐가만큼이나 창피를 당했다.
어쨌든 이 작은 섬 안에는 제법 볼거리, 할 거리, 느낄 거리가 쏠쏠함에 재미가 많다. 겨우 5~6시간 남짓한 섬과의 만남이지만 오랫동안 알던 곳처럼 친근하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나 언제 또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고운 모래사장이 자랑거리인 대난지도 해수욕장
오후 1시 30분에 선착장에 도착한 배를 타고 대난지도로 향한다. 대난지도에 사람이 살아온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소난지도, 대조도와 함께 근접형 군도를 형성하고 있다. 대난지도는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국내 명품 섬 베스트 10’ 중 하나로 꼽혔다. 그 섬에 내가 있다.
선착장 바닷가에서는 독특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끈다. 엄지손가락이 올라간 듯한 작은 기암은 이 마을에서는 ‘선녀바위’라 불린다. 선착장에서 난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 약 3㎞ 정도의 거리라서 걷기에도 어렵지 않다. 민가와 횟집을 지나고 나니 대난지도에서는 가장 큰 마을인 양짓말을 만난다. 바다와 조금 떨어진 데다 산기슭에 민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바닷가 마을이라기보다는 산중 마을처럼 느껴진다.
마을을 비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가 있다. 체육시간인 듯 아이들은 땡볕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전교생인 듯, 나이차이가 많아 보인다. 학교 건물은 마치 전원주택 같은 모습이다.
슬쩍 교실을 엿본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현대적이다. 교실이라기보다는 개인 방처럼 아늑하다. 그곳에 최신 컴퓨터, 빔프로젝터, 스캐너, 프로젝션TV, 전자오르간 등 한눈에도 도심 시설보다 나아 보인다. 이 분교는 2000년엔 학생수가 2명으로 감소, 폐교 위기에 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분교로 발령받은 교사들이 육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전학시켜 오는 등 ‘학교 지키기’에 나서 폐교를 막았다. 요즘엔 ‘아름다운 학교’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아이들이 한두 명씩 늘고 있다. 최신식 시설들은 모두 대기업들로부터 기증받았단다.
분교를 비켜 고갯길을 넘어서니 드디어 난지도 해수욕장이다. 당진시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당진 3경으로 꼽힌다. 폭 500m, 길이 2.5㎞의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인상적이다. 100m 이상 완만하게 연결되는 모래가 깔려 있다. 물때에 따라 물고기도 잡고 조개도 잡는 곳. 특히 수심이 완만해 해양레포츠 장소로 인기라는데 마침 청소년 수련관에서 여중생들이 래프팅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이동 중이다. 한참이나 그들의 극기훈련을 지켜본다. 멋진 추억을 만들고 있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바다 주변으로 퍼져간다. 해수욕장 주변으로는 넓은 소나무 숲이 있다. 북서쪽에는 바다낚시터도 있다. 팔각정 망치봉(118m) 정상에 서면 해수욕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수련원 뒤쪽으로는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팻말이 마땅치 않지만 산을 좋아한다면 올라가 봐도 좋을 곳이다.
난 이제 섬 밖으로 나가려 한다. 육지 도비도에서 오후 5시 30분에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면서 선착장을 배회한다. 낚시객들도 보고, 배를 타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도 만난다. 아침에 탔던 그 배에 다시 오른다. 내 살갗은 하루 만에 벌겋게 익어 버렸다. 땡볕이 내리쬐는 섬의 하루, 난 소난지도, 대난지도를 훑듯이 스쳐왔다.
그곳을 평생 지키고 사는 할머니들도 여럿 만났고 그들의 섧디 서러운 인생사도 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소난지도가 좋아? 대난지도가 좋아?” 답은 하지 않으련다. 각자의 느낌이 다를 테니 말이다.
※추위 때문일까. 몸과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그렇다고 실내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마음을 따스한 온기로 채워줄 감성여행지를 찾아가자. 여유롭게 강변을 거닐며 겨울 낭만을 맘껏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두 강줄기를 품에 안은 ‘두물머리’
양평 두물머리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북한강과 태백산 금대봉 기슭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예서 몸을 섞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수 백 km에 이르는 멀고도 험한 길을 흘러온 두 강물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어우러져 한몸이 된다. 예로부터 따뜻하고 여유로운 성질을 가진 남한강은 ‘암물’이요, 차갑고 거친 북한강은 ‘숫물’이라 했다. 태생부터 다른 두 물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그 오묘한 조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나루터였다.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터 중 하나로 물길을 따라 한양을 오가던 이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표석만 쓸쓸하게 세워져 있다. 하지만 강변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그 명성은 여전한 모습이다. 그 시절 주막에 둘러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길손들이 그랬듯,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에는 우리네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듯하다.
두물머리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풍채의 느티나무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당당하게 서있는 이 나무는 두물머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도당할배’라 부른다. 원래 ‘도당할매’와 함께 있었지만,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할매나무는 수몰되고 할배나무 혼자 남게 되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위풍당당한 할배나무는 고요하고 아늑한 경치와 조화를 이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두물머리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빼어난 풍경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마치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 착각할 정도다.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 이건필의 ‘두강승유도’와 겸재 정선의 ‘독백탄’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 내려올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이러한 연유로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고, 사진작가나 동호회의 출사 장소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다온광장은 소원쉼터에서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다온광장에는 한강8경 중 제1경을 알리는 ‘두물경’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바닥에는 1750년대에 제작한 해동지도 광주부 지도와 정약용이 두물머리를 보며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두물경 뒤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 되어 한강을 이루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감동이 차오른다.
사실 두물머리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단지 고즈넉한 풍경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에 담아올 것이 참 많다.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두물머리는 언제 찾아가더라도 만족스러울 만한 곳이다. 낭만적인 감성을 살며시 건드려 놓는 옛 나루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근사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정원
이제 세미원으로 가자. 세미원은 늪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곳으로, 두물머리 산책길에 함께 둘러보면 좋다. 두물머리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길은 조금 특별하다. 배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재현한 것이다. 254m 구간에 52척의 목선으로 만든 이 다리는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 선생의 지혜를 기리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배다리를 설계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근처에 있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깃발이 나부끼는 배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관수세심 관화미심)’는 뜻이 담겨 있는 곳이다. 마음을 씻어내라는 의미를 담아 빨래판 모양으로 조성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일 년 내내 수련을 볼 수 있는 세계수련관, 화가 모네의 정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웠던 유상곡수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본떠 만든 세한정 등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세미원은 자연 속에 담긴 참뜻을 배울 수 있는 정원이다.
돌아서는 길,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음을 느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느긋하게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풍경 속에서 겨울의 낭만을 오롯이 느끼고 가는 듯하다. 커피향처럼 은은하게 스며든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여행가이드
- 두물머리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
△관람시간 제한 없음
△입장료 무료
△주차비 무료(공영주차장, 교각주차장) / 2,000원(사설주차장)
- 세미원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문의 031-775-1834 / www.semiwon.or.kr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00 / 11월~2월 09:00~17:00
△관람료 성인 4,000원 / 어린이, 청소년, 65세 이상 2,000원
△휴무 매주 월요일
경기도에서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두물머리.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든든한 쉼터로 400년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단종이다. 비운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붙는 어린 임금. 그의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영월을 찾았다. 열일곱 살 소년의 곡절이 녹아든 그곳에서 그의 애달픈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글ㆍ사진 김대성 여행 작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막상 청령포를 마주하고 서니 어쩐지 강을 건너기가 망설여진다. 서강 물줄기가 휘감아 돌아 삼면을 둘러싸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마치 섬과도 같은 곳, 청령포.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유배생활을 했다. 558년 전 이 강을 건너야 했던 어린 임금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쩌면 그 역시 배에 오르기 전 이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영영 영월 땅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체념하면서 말이다. 한 나라의 왕이 어찌 이리 참담한 생애를 살아야 했나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배에 오르니 채 2분도 안 돼서 청령포에 닿는다. 자갈밭을 지나 울창한 송림 사이로 들어서면 단종어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복원한 어소에는 밀랍인형으로 단종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고, 마당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영조의 친필 비석이 세워져 그의 한을 위로하고 있다. 담장 밖 소나무 한 그루는 마치 왕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 신하처럼 단종의 거처를 향해 굽어 있어 눈길을 끈다.
나이 어린 임금의 유배생활은 하루하루가 원망이자 그리움이요, 두려움이자 눈물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 세종의 인자한 얼굴이 떠올랐을 테고, 왕위에 오른 지 2년 4개월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 문종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낳고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를 향한 그리움이 마음에 사무쳤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숙부인 세조의 서슬 퍼런 기운을 어린 그가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조용히 숨죽여 눈물로 달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 숲에는 특별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로 ‘관음송’이다. 수령 600년의 이 노송은 단종의 애달픈 유배생활을 보고, 그 절규와 울음소리를 들었다 하여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 두 갈래로 갈라진 이 나무에 소년 왕이 걸터앉아 시름을 달랬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관음송을 지나면 산책로는 자연스레 절벽 위 능선 길로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그리 높지는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절경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 소박한 망향탑이 있다.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하나 둘 돌을 주워 쌓아올렸다는 돌무더기가 왠지 애처로워 보인다. 다시 산책로를 따라가면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던 노산대다. 노산대에 올라서니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이렇듯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렸을 단종 생각에 돌아서는 발걸음이 괜스레 무겁게 느껴진다.
◇청령포를 떠나 동을지산에 묻히다
하늘도 단종의 슬픔을 알았을까. 그해 여름 참 많은 비가 내렸다.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길 지경에 이르자 단종의 거처를 동헌의 객사 관풍헌으로 옮겼다고 한다. 청령포에 유배 온 지 두 달여 만의 일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된 것. 이 일로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으로 강봉되고, 결국 사사되었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 제6대 왕에 오른 단종. 돌봐 줄 사람 하나 없는 어린 임금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3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1457년 10월 24일 그렇게 떠나갔다. 그해 그의 나이 17세였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조는 “단종을 죽여 강물에 버리고 그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라”고 했다. 단종의 주검이 청령포 앞 강물에 버려졌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영월 호장 엄흥도가 나섰다. 그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을 달게 받겠다”면서 아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해 영월 ‘동을지산’에 묻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단종은 승하한 뒤에야 비로소 편안한 자리를 찾은 듯하다. 영월 장릉이 조선왕릉 가운데 3대 명당으로 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241년 만에 복위되다
어린 임금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 장릉을 빼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장릉은 청령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단종은 사후 241년 만에 왕으로 복위되었고, 노산묘도 장릉이라는 능호를 받아 왕릉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췄다. 특히 장릉에는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과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장판옥이 함께 자리한다. 또한, 그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제단인 배식단사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단종역사관에는 단종의 생애와 유배생활 그리고 죽음과 복위되기까지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뒤 능선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능침이 나타난다. 여타 왕릉에 비해 단출한 느낌이다. 담장을 둘렀으나 병풍석과 난간석은 세우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가냘픈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빼앗는다. 단종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부인 정순왕후의 능인 남양주 사릉에서 옮겨 심은 정령송(精靈松)이다.
이쯤에서 정순왕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었을 때, 정순왕후도 서인으로 강등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다. 남편과 청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한 그녀는 동대문 밖에 초막을 짓고 평생 영월 땅을 바라보며 그 한을 달랬다고 한다. 그렇게 64년을 홀로 지내다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단종과 함께 복위되었고, 남편만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사릉(思陵)이라는 능호가 붙여졌다.
조선 왕릉의 왕과 왕비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단종과 정순왕후. 이렇듯 그들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슬픈 역사로 남았다. 단종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어린 임금의 그리움이 마치 내 것인 양 가슴에 맺힌다. 내일 날이 밝으면 사릉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순 현가법, 가중평균자본비용, 복리계산과 실효금리…’.
칼바람이 부는 어느 이른 아침. 서울의 한 강의장에서 복잡한수식과 수치가 빼곡히 적힌 빔 프로젝트 화면(파워포인트)이 연신 돌아간다. 이는 대학교 경영학과 재무관리 전공강의가 아니라 IGM 세계경영연구원 창조클럽 조찬강의였다. ‘열공모드’에 돌입한 이들 가운데서도 맨 앞 헤드테이블에서 유독눈빛을 빛내며 필기 삼매경에 빠진 신중년이 눈에 띈다. 그가 바로 정해돈(丁海敦·64) 전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이자 성아테크 대표였다.
머리 맑은 아침 공부하기에 딱
정 대표는 자신이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이 강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봉급이 깎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나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다니곤 했다. 공부하는 습관도 훗날 더 풍요롭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대학(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을 졸업하고 다수의 대학원 과정을 밟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서울대 경영대학원(국가정책과정)을 비롯해 서울대 환경대학원(고위정책과정),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 한국체육대(최고경영자과정) 등을 수료했다.
이런 그의 공부에대한 열정은 조찬회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조찬회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창조클럽 조찬모임은 물론 로타리 클럽에서도 조찬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게다가 짬나는 시간에는 세계경영연구원 야간강의도 챙겨서 듣기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가 이렇듯 배움의 의지를불태우는 이유가 뭘까. 그는 꿈 실현과 업그레이드하는 삶에 답이 있다고 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봉급이 많은 회사를 다니다가도 ‘꿈을 이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직장을 옮기곤 했어요. 월급이 절반 이상 깎이더라도 말이지요. 고생이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몇 년사이에 봉급이 세배 이상 오르더라고요. 삶이 업그레이드된 셈이지요. 이런 미래지향적인 삶을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길이 있을까요.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지요.”
그는 특히 아침이 공부하기에 그만이라고 강조한다.
“아침에는 머리가 맑아요. 강의 내용이 귀에 쏙쏙 어오지요. 게다가 오후에 공부하려면 시간을 빼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고요.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지요. 성아테크 창업하고 나서 30여년 동안 오전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출근하는 습관이 들어 조찬 강의가 더 익숙하고 편해요.”
“혼자 공부하기 미안”…전 직원 인터넷 강의 개설
그는 창조클럽 조찬 강의에 혼자만 다니지 않는다. 회사임원 4명도 함께 창조클럽 조찬에 등록해 참여하도록 했다. 본인이 회사를 이끌고 대표하는 CEO이긴 하나 혼자만 공부하러 다니는 것이 왠 마음에 걸렸다고. 더 나아가 전 직원에게 GM 인터넷 강의도 개설해놨다. 100여 명이 넘는 전 직원들이 창조클럽 조찬 모든 강의를 인터넷으로 챙겨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강의를 보고, 안 보고 판단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어요. 공부라는 것이 생산제품을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거든요. 지식은 머릿속에도, 마음속에도 쌓이는 것이지요. 좋은 강의가 있을 때는 회의 시작 직전에 동영상으로 같이 보기도 해요. 특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보니 갈등 관리나 조직 관계와 관련된 강의가 주류이지요.”
직원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에도 적극적이다. 야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줄여주기도 하고, 일부 등록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 시절에는 협회에 장학금 제도를 운영해 회원사 직원들에게 직접 학자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인문학 강좌에 푹 빠져…고정관념 깬 사업 아이디어 번뜩번뜩
그는 공대 출신이지만 요즘 오히려 인문학 강의에 푹 빠져 있다. 그는 답이 하나뿐인 공학 마인드와 달리 인문학은 뚜렷한 정답을 내놓지 않아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장선에서 고정관념을 깰 수 있고, 생각을 바꿀 수 있어서 좋다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어떤 결정을 해도 망할 염려가 없어요.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업인은 다릅니다. 언제나 양날의 칼 위에 서 있지요. 순간 잘못 판단하면 기업은 바로 문을 닫아야 해요. 인문학은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알려줘요. 그렇게 되면 일방적인 지시에서 벗어나 ‘토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논제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다보면 어느새 답이 도출되더라고요. 이럴 때 아이디어도 순간순간 튀어 나오지요. 바닥에서부터 열정이 올라와야 조직의 힘이 세지는 법입니다. 위에서 아무리 지시해봐야 소용없어요. 인문학은 그런 점 에서 큰 힘이 됩니다.”
인문학은 이미 그의 사업에 접목돼 있다.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 인문학적 마인드를 크게 적용하고 있다.
“요새는 사업계획을 잘게 쪼개고 있어요. 한 덩어리로 생각하면 실행이 어렵기 때문에 하나씩 끄집어내서 조금씩 잘라서 하나씩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게 하나씩 실행하게 되면 완성도가 높아지고 사업 성공확률도 덩달아 올라가지요. 여러강의를 들으면서 지혜나 영감이 번뜩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사업 아이템에 녹여서 활용합니다.”
지식·정보 전도사 역할도
그는 지식·정보 나눔에도 인색함이 없다. ‘지식·정보 전도사’라 칭해도 될 만큼 지식 전파에 적극 나선다. 수년 전부터 회사 여직원을 붙들고 터득한스마트폰이 그의 지식 전달도구다. 네이버 밴드 게시판에 최신 뉴스 분석 정보나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글귀 등을 수시로 퍼 나른다. 창조클럽 조찬동호회 밴드는 물론 각 대학원 최고 경영자 원우회와 성아테크 임직원 밴드, 가족 밴드까지 만들어서지식과 정보를 나눠준다. 물론 지인들 단체 카톡방에도 그의 지식과 정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한 기업을 이끄는 CEO로서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지식 관련 일에는 게으른 법이 없다.
IGM창조클럽은 CEO뿐만 아니라 직원전체가 다니는 세계 최초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표방한다. 실제 기업 임원진이나 팀장급 직원들도 함께 조찬 강의에 등록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창조클럽에 가입한 S기업 등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전 직원이 창조클럽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교체수강제도다. 창조클럽은 조찬이나 저녁, 원하는 요일, 시간, 장소에 본인의 일정에 맞게 참석이 가능하다. 이는 바쁜 경영자들의 생활을 고려한 제도다. 또 다른 특징은 CEO나 임원이 들은 강의를 직원 등 전 조직원들이 온라인으로 동일하게 수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원과 부하 직원 전체가 지식과 경영 화두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강의가 끝난 후 토론으로 구성된 창조 프로세스를 통해 각 부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창조적인 실천 아이디어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창조 프로세스는 미국의 아이디오(IDEO)라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가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그 효능을 스탠퍼드 대학이 입증한 프로세스라는 것이 IGM측의 설명이다.
전성철 IGM 회장은 “많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그 프로세스를 채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 탓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 각 기업에 창조 프로세스를 설치해 주는 IGM창조클럽을 만들게 됐다”며 “결국 창조프로세스를 구축해 끊임없이 창조를 이끌어내는 기업이 이 시대의 위대한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70~80년대 나눴던 연애방식을 추억 따라 가보자.
데이트장소, 사랑의 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등에서 묻어난 추억속의 아련한 커뮤니케이션이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
#1986 종로에서...
1986년 봄. 종로 3가 탑골 공원. 한여름 뙤약볕에서 한 남자가 5시간째 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 시간은 12시. 여자는 몇 시간째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점심도 거른 채 탑골 공원 주위를 서성일 뿐이다. 지금이었다면 답답한 마음에 연신 휴대폰만 들었다 놨다 했겠지만, 그 시절 그 둘은 휴대폰이 없었다.
‘5분만 더 기다려 볼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마음이 변했나?’.
만감이 교차한다.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5시간이 훌쩍 넘었다. 여자를 만날 생각에 폭발할 것처럼 뛰던 남자의 심장박동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안정세로 돌아섰다. 발밑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도 어느새 동쪽을 향해 있다. 그만하면 많이 기다렸다는 태양의 신호일 것이다. 남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남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돌린다.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나 한 곳을 응시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가 온 것이다. 장장 다섯 시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 그 남자 소병국(50)씨와 그 여자 이재정(50)씨의 연애시절이다.
그녀는 늦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날 이씨는 약속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급한 일이 생겼다. 고모 댁에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늦게 된 것이다. 그때가 오후 3시였다. 이씨는 남자친구인 소씨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락은 되지 않고 약속 장소에도 갈 수 없으니 이씨도 답답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김씨는 찝찝했다. 당연히 돌아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찝찝함이 그녀의 발길을 종로로 향하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갈 때마다 한 남자의 형상이 점점 커진다. 놀라움에 이씨의 동공이 커진다. 소씨다. 기다리지 않고 간 줄 알았던 그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씨의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몰아쳐 온다. 정식 교제를 시작한 연애 초기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5시간. 지금이라면 휴대폰으로 한 통화면 없었을 기다림이다. 하지만 그 당시 휴대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 상대방의 집에 전화를 하거나, 전화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거나 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하염없는 기다림 뿐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낭만이었다. 전자기기 하나에 설레는 감정이 한순간 사그라들지 않으니까. 그때는 기다림이란 곧 설렘이었으니 이 또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었다. 기다림은 휴대폰이 없는 그 시대의 청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시대 남자들에게는 여자에게 진심을 표현할 무기이자 방식이었다. 소씨가 이씨를 기다린 시간은 5시간이었지만, 이씨가 소씨의 진심을 확인한 시간은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 그땐 그랬다.
사실 이들의 첫 만남은 병원이었다.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21층. 그 때 이씨는 소씨의 친구가 환자로 있는 병실을 담당하는 간호사였다. 절친한 친구라 하루가 멀다 하고 병문안을 갔던 소씨는 자연스럽게 간호사인 이씨와 접촉하는 횟수도 잦아졌다.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녀의 청순한 외모에 끌렸다. 그 다음은 뽀얗고 고운 피부, 그 다음은 수줍은 미소가 소씨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그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용기를 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데이트 신청 방식은 말로 하기. 요즘 젊은이들과 같이 ‘저기요. 휴대폰 번호 좀 주실래요?’와 같은 무드 없는 방식이 아니다. 박력 있으면서도 떨리는 감정이 가감없이 전해진다.
“병원 앞 다방에서 O시에 기다리겠습니다.”
병원 앞 다방, 포장마차, 볼링장 등 두 사람의 만남이 늘어날수록 둘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86년 봄 병원에서 시작한 이들의 인연은 현재 예쁜 두 딸을 키우는 부부로 이어지게 됐다.
소병국씨와 이재정씨의 80년대 연애시절 이야기. 아니 모든 80년대 청춘들의 연애 이야기가 그럴 것이다. 그들의 연애의 중심엔 기다림이라는 설렘이 있었다. 휴대폰, 컴퓨터, 전자기기 등은 이들의 떨리는 감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기다리지 못하고 부재 중 통화가 수십 통이 된 이 시대. 80년대 연애시절 기다림이 더욱 멋있는 이유다.
’액티브(Active) 5060’. 사회 활동과 소비 활동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행동하는 5060세대를 이르는 말로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5060세대와 그 이상을 겨냥해 서비스와 상품을 쏟아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니어 산업. 그 중심에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있다. 이들은 자산과 소득이 높고, 능동적으로 소비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활동적이면서 건강한 소비그룹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들을 겨냥 하는 것에 군침을 흘릴 만하다.
2006년과 2011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가계자산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의 순자산이 2006년 평균 2억6381만원에서 2011년 3억1116만원으로 18%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베이비부머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시니어 산업의 전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산업의 전망도 밝다.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국가 중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83.8세로 6위(2009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시니어 산업의 수요자가 많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도 시니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한양사이버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김신영 교수가 발표한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 2010년부터 시니어산업이 성장하는 시기로 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소득이 은퇴 이후 활발한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도 희소식이다. 선진국의 경우, 시니어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니어산업의 규모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2011년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 실버세대보다 높은 경제력을 지닌 베이비부머가 65세에 진입하면 국내 시니어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향후 10년간 연평균 14.2%씩 시니어산업이 성장할 것이며, 2020년에는 2010년(약 33조원)의 3.8배인 약 125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치로 본 시니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국내 기업들의 시니어 층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둘씩 이 산업에 발을 들이미는 이유다.
◇ 시니어 산업의 깃발을 선점하려는 기업들
국내 최대 인구집단. ‘베이비부머’는 동시에 가장 큰 소비력을 가진 집단으로 통한다. 잠재적인 거대시장의 기회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여러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는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열었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시니어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시니어들의 불편사항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상품에 반영·생산한다.
GS샵의 시니어 전문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도 지난 해 4월 문을 열었다. ‘오아후’는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의 상담,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GS샵은 ‘오아후’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경제력을 지닌 50대 젊은 시니어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내의 전문 기업 쌍방울도 시니어 시장에 발을 들였다. 쌍방울의 시니어 기능성 속옷 브랜드 ‘올쏘(ALSSO)’는 18일 대구 대백프라자를 시작으로 30여개 품목이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
기능성 속옷 올쏘는 요실금이 있는 시니어를 위해 강력한 흡수성과 빠른 건조 능력을 갖췄다.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으로 옷맵시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공략할 계획이다.
쌍방울은 최근 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이 향후 시니어 기능 제품의 수요로 이어 질 것으로 판단했다. 시니어 속옷에 힘을 쏟아 올해 전체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내 시니어 산업의 한계,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니어 산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한 깃발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시니어를 겨냥한 산업이 건강 보조 용·식품, 생활 보조 용품 등 시니어 용품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일본과 미국의 성공사례는 국내 시니어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 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량, 사용 시간 등을 IT기술로 체크해 자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준다. 나눔 지원 비즈니스도 있다. 일종의 재능 기부 형태다. ‘경영지원 NPO클럽’에서는 평균연령 70.5세의 은퇴한 대기업 간부 160명을 구성해 중소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 하고 있다. 시니어 세대의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은퇴 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수개월을 예약·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헌츠먼 월드 시니어 게임즈’(Huntsman Wolrd Senior Games)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목적 분명 여가 상품을 개발했다. 테니스, 골프 등을 올림픽처럼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약 4천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이러한 해외 성공 사례는 국내 시니어 산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니어 산업을 창조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시니어 산업, 시니어 커뮤니티와의 연계 필수
시니어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사업적으로 뚜렷하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 LG 경제연구소 고은지 연구위원은 자료를 통해 시니어 산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고령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이해 부족이다. 고 위원은 다수의 기업이 고령화를 통한 사업 기회를 당장의 화제가 아닌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시니어 시장의 수요나 구매력에 대한 분석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시니어 소비자의 양면성이다. 시니어 중 어떤 사람도 ‘올드(Old)’라고 표기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육체적인 노화로 발생하는 독특한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셋째, 잘못된 의사소통이다. 고 위원은 시니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 방법이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방법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위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 커뮤니티와 연구기관, 관련 협회단체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시니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티 활동이 많은 시니어 소비자들을 겨냥해 기업들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소비자 저변을 넓히는 활동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산업의 리딩 컴퍼니(Leading Company)] 시니어가 곧 미래다 - 유한킴벌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지만.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닻을 올린 기업이 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 킴벌리이다.
유한 킴벌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물은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통해 실현됐다. 골든프렌즈가 기존의 시니어 브랜드와 차별화 된 것은 시니어를 능동적인(Active) 주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영한 것이 골든 프렌즈의 대표상품 ‘디펜드 스타일 요실금 팬티’다. 요실금 팬티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불편사항을 받아들여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난 요실금 팬티를 고안했다.
오프라인 매장도 2012년 10월부터 2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종로와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내부의 골든프렌즈 매장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기능성 신발, 가스차단기, 요실금 팬티 등 시니어들의 활동적인 생활을 도와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유한킴벌리는 고령화 문제 해결과 시니어사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니어 기금’을 조성하고, 소기업 육성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와 시니어 비즈니스를 창조한다는 계획이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는 인터뷰에서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된다. 결국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은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분양시장의 열기가 점차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6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전월세 과세) 이후 기존 주택시장 꺾임 현상이 신규 분양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주택자 투자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다 전세 가격이 안정되는 등 주택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주택 실수요도 함께 감소하고 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분양물량을 쏟아내면서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공급과잉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주택시장의 선행지표라 불리는 경매시장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 주택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는 지난 4월 전국 평균 청약경쟁률(1~3순위)을 조사한 결과 6.16대 1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비해 5월(22일)에는 2.93대 1로 반토막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는 실수요자들이 갈수록 보수적으로 접근하는데다 오는 6월 지방선거와 월드컵이란 큰 행사를 앞두고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렇듯 분양시장에도 잘 되는 곳만 잘 되는 양극화 모습이 뚜렷하다. 입지가 좋거나 분양가 싼 단지는 높은 경쟁률 속에 마감행진을 이어가는 반면, 상대적으로 비인기 지역은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
반도건설이 평택시 소사벌지구에서 지난 23일에 견본주택을 오픈한 ‘소사벌지구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는 3일간 1만6000여명이 방문객이 몰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소사벌지구는 비전동 생활권으로 다양한 편의시설 이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서울 강남 수서를 18분 대에 잇는 KTX 지제역(2015년 개통예정)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먼저 소사벌지구에 분양한 '소사벌지구 우미린 센트럴파크'는 1~3순위에서 평균 2.01대 1로 전 타입 순위 내 마감과 함께 1주일 만에 90% 이상의 계약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하지만 평택시에서는 용이동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미분양이 많아 김포시 등과 함께 미분양 무덤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아울러 지난 4월 한국토지신탁이 분양한 평택 청북면 한양수자인(718가구)은 미달사태를 보였으며 현재 분양률이 30%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고덕산업단지 삼성전자 입주와 수서발 KTX 개통 등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되는 평택 소사벌지구와 다른 지역 간의 온도차가 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기 상한가인 위례와 동탄2신도시도 같은 지구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6월 분양 예정인 ‘위례신도시 신안인스빌 리베라’가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신안의 박지훈 홍보팀장은 “위례 신안인스빌 리베라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엠코타운 센트로엘’과 맞붙어 있으나 지하철역과 수변공원이 더 가까워 입지가 더 뛰어나다”면서 “위례신도시 내에서도 황금부지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하루 전화문의가 평균 40~50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위례신도시에 분양된 ‘엠코타운 센트로엘’이 계약 나흘만에 100% 분양이 완료됐다. 하지만 위례신도시에서는 위례 센트럴 푸르지오, 위례 사랑으로 부영 등은 여전히 잔여 물량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독산동 ‘롯데캐슬 골드파크 2차’는 3순위에 1.61대 1로 순위 내 마감을 했다. 하지만 목동 생활권에서 10여년 만에 나온 새 아파트로 기대를 모은 ‘목동 힐스테이트’는 상당수의 주택형이 3순위에서 미달됐다.
달아오르던 부동산 경매 시장도 이달 들어 열기가 한풀 꺾였다.
법원경매정보회사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올해 1월 82.6%에서 2월과 3월에 각각 83.9%, 4월에는 86.2%까지 올랐으나 이달에 85.6%를 기록하며 처음 떨어졌다.
물건당 평균 응찰자 수도 이달 6.8명으로 지난달(7.6명)에 비해 0.8명 감소했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취득세 영구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정부의 거래활성화 대책으로 연초 상승세를 타던 부동산시장이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이후 관망세로 돌아섰다"며 "위축된 매수심리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분양시장의 봄바람이 거세다. 분양 단지 곳곳에서 높은 경쟁률 속에 청약 마감을 이어가고, 전매가 가능한 지역은 분양권 거래도 활발하다. 새 아파트들이 기존 아파트보다 가격 경쟁력 있게 나오면서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이 분양시장으로 쏠리면서다.
특히 6월까지는 입지가 뛰어난 신규 분양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예정에 따라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수요자들이 바빠질 전망이다.
예비 청약자들이나 미분양에 관심 있는 수요자들이라면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지역 중심으로 노려보는 것이 좋다. 프리미엄이 붙은 지역은 개발 호재가 많아 발전 가능성이 높아 수요가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리미엄이 붙은 지역은 위례신도시 비롯해, 동탄2신도시 강남권, 지방에서는 대구와 대전 등이 있다.
위례신도시에서는 좋은 입지로 평가 받는 ‘래미안 위례신도시(A2-5)’는 테라스하우스는 2억원 가량, 지난해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린 위례신도시 '송파 푸르지오'는 최초 분양가격에 5000만원 정도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동탄2신도시에서는 우남퍼스트빌은 로열층 기준으로 4000만원 정도, 오는 6월 입주예정인 서울 강남구 자곡동 강남보금자리지구 ‘래미안강남힐즈’는 8000만원 이상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이 38.48대 1을 기록한 대구 ‘침산화성파크드림’은 3000여만원 정도, 지난해 3월에 입주를 시작한 대전 ‘노은 한화 꿈에그린’ 중대형의 경우 2000만~3000만원 정도 프리미엄이 붙었다.
프리미엄이 붙은 단지에서 건설사들의 분양행보도 눈길을 끌고 있다.
신안은 위례신도시 A3-6b블록 ‘위례신도시 신안인스빌리베라’ 696가구(전용 98~101㎡)를 6월에 분양할 계획이다. 이 단지는 편의시설, 교통, 녹지 등을 두루 갖췄다. 위례신도시 중심상업지구인 트랜짓몰과 산책 등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휴먼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교통여건에서는 위례신사선의 중앙역이 인접해 있고, 서울외곽순환도로로의 진입이 용이하다.
SH공사는 강남 세곡2지구 4단지 ‘세곡2지구 강남 한양수자인’의 미계약분에 대해 선착순 분양 중이다. 선착순 분양 물량 중 세곡2지구 3단지는 한달만에 완판됐다. 세곡2지구 4단지에서 나오는 물량은 전용면적 114㎡형이다. 분양가는 3.3㎡당 1600만원대로 인근 강남구 아파트 전셋값 수준이다. 114㎡형 7억3000만~7억6000만원이다.
강남구 도곡동 동신3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도곡 한라비발디’은 이번 달에 나온다. 지상 20층 1개 동 규모, 전용면적 기준으로 84㎡ 94가구와 125㎡ 16가구로 구성된다. 총 110가구 중 일반분양은 16가구로 84㎡ 12가구와 125㎡ 4가구다.
동탄2신도시에서는 하반기에 물량이 집중돼 있다. 대우건설은 동탄2신도시A1블록에 ‘동탄2신도시푸르지오’ 837가구를 10월 경에 분양할 계획이다.
지방에서는 한화건설이 '대전 노은 한화 꿈에그린'를 분양 중이다. 지하 1층, 지상 35층 17개 동 규모로 전용 84~125㎡ 총 1885가구 규모다. 롯데마트, 노은도서관 등 생활편의시설이 풍부하고 대전지하철 1호선 반석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화성산업은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테크노폴리스 A8블록에 화성파크드림 639가구를 6월 중에 분양한다. 올해 개통예정인 테크노폴리스 진입도로 앞자리에 위치해 대구도심 진출입 근접성이 뛰어나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고령자 친화기업 개념을 도입했다. 우리에겐 낯설기만 한 이 단어는 ‘고령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적합한 직종에서 참여자의 70% 이상을 고령자로 구성하는 기업’을 말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고령자 친화기업 개념을 받아들여, 지난 2011년부터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고령자 친화 기업을 선정해 이들 기업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해주고 있다.
'고령자 친화 기업'이 되려면 신청-지원이 필요하다. 신청 자격은 공고일 기준 이전 설립된 민간법인으로 60세 이상 고령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적합한 직종에서 참여자의 70% 이상을 고령자로 구성하는 기업을 신규 설립 가능한 법인이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또는 다른 기관을 통해 지원 신청액의 70% 이상 대응투자를 약정한 법인이어야 한다. 여기서 대응투자란 참여 법인이 고령자 친화 기업 설립·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현금 투자에 한하며, 지자체가 참여하는 사업의 경우 무상제공되는 부동산(토지·건물)의 공식 감정가액을 환산하여 인정하는 걸 말한다.
고령화 친화기업 선정 사업은 20개 사업 내외로 설정되어 있으며 각 개소당 최대 3억 원 내외의 금액이 지원된다. 구체적인 지원 사항은 예산․경영․판매․교육의 네 가지 분야에서 이뤄진다.
고령자 친화기업들의 총 매출액은 약 91억 6천만 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고령화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간시장 내 적극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동 참여 비중을 올리기 위해 고령자 친화기업 공모사업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경제적 시장 논리로는 풀기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지원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하여 그 방향성 자체가 정확하게 노인 복지의 경제적 해결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관건은 사업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느냐의 여부다. 2011년에 9개소, 2012년에 15개소, 2013년에 20개소가 선정된 고령자 친화기업은 2013년 12월 말 기준 총 44개 기업이 설립된 상태다. 이들 기업의 고령자 채용 현황은 60세 이상 총 1,118명이며 1인당 월 평균 급여수준은 약 73만 원선이라고 한다. 2012년 평균 72만 원에 비하면 1만 원이 상승한 수치다.
기업들의 매출액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경제구조의 건강성을 뒷받침해주는 건 회사가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액은 2013년 12월 말 기준으로 91억6천만 원이 달성된 것으로 나왔다. 3개년 동안의 누적액은 약 172억 원 수준. 매출액의 기조를 보면 2011년 10억9천만 원에서 2012년 69억8천만 원으로 크게 점프했으며, 2013년의 91억 6천만 원으로 약 30% 가량 상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고령자 친화기업의 미래를 위한 발판 마련 필요
기업은 일반적으로 고령 노동자를 비용으로 여긴다. 그러한 일반적 상황에 비해 고령자친화기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정부 지원으로서 운용되고 있다는 건 노인 산업에 관한 실질적이고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선거 때가 되면서 노인표를 잡기 위해 정치인들의 공약에서는 유독 고령자친화기업에 대한 이슈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고령자 친화기업이 충성도가 높은 고령층의 표를 얻기 위한 한때의 공약으로만 소비되는 걸 막으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다듬어진 고령자 친화기업 정책과 그를 둘러싼 환경 구축에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고령자 친화기업 대표 ㈜행락이 준비하는 새로운 기업 그리기]
고령자 친화기업의 성장세는 지표로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고령화 친화기업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려면 캐릭터, 즉 대표적인 이미지가 필요한 법이다. (주)행락은 2013년에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선정되어 현재 고령자 친화기업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올리며 롤모델 역할을 하고 있는 회사다. 행락의 주 분야는 벽면녹화 사업. 과연 어떻게 행락이 고령화 친화기업의 대표로서 시니어들에게 활기찬 삶과 성취감을 제시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해 본다.
고령화 친화기업으로 선정된 회사들의 리스트를 보면 실로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이 보인다. 문화재발굴원 인력 파견, 전통부각 생산, 베이비시터, 양봉, 삼성전자 세탁공장 운영까지, 언뜻 독특하면서도 고령층에 알맞은 업종으로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 (주)행락은 벽면녹화 사업이라는, 고령화 친화기업 리스트 안에서도 행복을 만드는 뜨락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행락은 모 기업인 Eco-wall의 새로운 개념인 Vertical Green Wall과 녹색공간을 만드는 일을 통해 시니어들의 일자리 창출, 자연환경과 건강이 있는 공간,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기업이다.
전 직원이 60세 이상, 성실하게 성장중
벽면녹화 사업은 건축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자리가 잡힌 영역이다. 벽면녹화는 그 이름 그대로 콘크리트, 금속, 목재, 타일 등의 마감 재료로 덮여있는 구조물에 다양한 식물을 심는 작업이다. 인공적인 구조물에 자연적인 요소를 설치함으로써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벽면녹화 작업은 아파트, 오피스, 학교, 병원, 매장 등의 벽을 페인트나 벽지로 마감하지 않고 살아있는 식물로 장식하는 것이다. 벽에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한 뒤 여기에 각종 화초를 심어 벽 전체를 뒤덮는다. 마치 숲에서 산림욕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내에서 벽면녹화 관련 법규 및 제도가 제정되고 서울시에서도 녹지 보전 및 녹화 추진에 관한 조례가 통과된 것이 ‘행락’이 기업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토대가 됐다. 또한 시공과 동시에 유지와 관리에 대한 연간 계약, 파생 부산물을 다양한 제품 생산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가 있어서 사업적인 장기성을 보장해주는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벽면녹화 사업은 시공, 유지/관리, 파생상품 제작에 있어서 간단한 교육과정 진행을 통해 충분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 고령자 참여에 제한과 진입장벽이 없다는 강점이 있다. 환경적인 토대가 마련된 데 이어 고용에 있어서도 벽면녹화 사업의 고령자 친화적 장점이 돋보이는 이유다.
건축설비 경력 덕에 이 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한 시니어는 “일이 정말 재밌고, 몰랐던 다른 세상을 봤다며 내 손을 거쳐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아 무척 흐뭇하다”고 했다.
벽면녹화 사업에서 고령층 고용의 강점을 인지한 송파시니어클럽은 사업단 형태의 벽면녹화 시공 및 유지 보수, 파생제품 제작과 제반 기술 및 고령자 적합성 여부 등 사업 전반에 관한 사전 검증을 완료했다. 그리고 건축 내외장재 전문업체인 에코월에서 자금 지원과 기술을 제공 받고 송파구로부터는 장소와 기업 컨설팅을 받아 ‘행복을 만드는 뜨락’이라는 의의미의 (주)행락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행락에서의 노인인력 활용 분야는 식물재배, 시공작업, 유지관리, 제조, 마케팅, 관리의 6개 부문이며 2013년 기준 47명이 근무 중이다. 평균 나이 65세 이상의 연령대이며 매출은 2013년에 13억 4천만 원을 달성했다. 김정권 대표는 올해는 네이처 리퍼블릭 신규 매장을 비롯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파고들어 매출 5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2014년은 68명, 2015년 80명으로 확장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1인 평균 근무기간은 1년 이상이며 월평균 보수는 105만 원 수준.
김정권 대표는 “10분 정도 모집하는데 한 200명 이상 어르신들이 오시더라고요. 이 분들은 스펙도 높으신 편인데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 회사의 보물 같은 분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어르신들 대부분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기초노령연금이니, 기초연금 같은 것 보다 이런 일자리가 훨씬 좋다고 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벽면 녹화작업 일자리처럼 어르신들에게 적합한 직종을 개발해 놓고 사업을 추진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행락은 비즈니스 모델이 어느 정도 구성을 갖춤에 따라 이에 기반하여 다양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교육사업이 있다.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을 통해 취업을 조건으로 교육자 전원에게 교육비 100만 원을 지원하고 취업 후 4개월 동안은 급여의 50%를 지원하는 형태로 교육사업을 진행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한양대학교의 플랫폼을 활용하여 전국 대학에 평생교육원 강좌를 개설하여 이수 후 창업이나 우수자에 한하여 행락에 취업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
그리고 행락의 프로그램을 통한 제품 제작 사업이 있다. 수반 및 생활 소품을 제작 판매하는 것으로, 행락의 DIY 제품 교육이 이를 준비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렌탈 사업은 완고한 설치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 벽면녹화 사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분야로 기획되고 있다. 스탠드형으로 만들어져 설치와 이동이 자유로운 벽면녹화 장치가 이 사업의 핵심 제품이다.
식물관리 사업은 보다 전문화된 기술과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식물관리 분야의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벽면녹화 사업 자체의 퀄리티를 상승시킬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그리는 행락의 미래
시공사업은 기존의 벽면녹화 사업보다 큰 규모로, 녹지 자체의 컨설팅 개념을 갖고 있다. 녹화를 통해 지역 자체를 환경과 감성의 장소로 만든다는 컨셉으로, 녹지에 대한 필요성이 있는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발상이다. 또한 사업 규모가 거대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의한 고용창출효과도 기대된다. 이는 공공장소를 넘어서 병원, 은행, 관공서에서의 벽면녹화 사업 확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행락에서 계획하는 사업 중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또하나의 사업은 조합형 공방이다.
김정권 대표는 “커피나 간단한 음료, 식사를 통한 카페 형식의 공간을 활용하여 운영한다는 계획으로 엄선된 커피 재료를 통하여 싸고 맛있는 커피나 차를 제공하며 시니어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한다는 컨셉”이라 말했다. 또한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게 건물 외벽을 녹색의 식재를 통하여 관심을 유도하여 젊은 층도 어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한다는 목적이 있다.
김 대표는 “넓게는 지역의 지자체와 연계하여 지역 내의 문화인 또는 예술인을 통한 나눔의 콘서트를 기획, 행락 장소를 통한 지속적인 콘서트를 기획함으로써 함께 만들고 나누는 행복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제시해 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성격 또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수 있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