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흰쌀밥을 먹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백미만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현미나 잡곡밥을 많이 먹고 있다. 약은 아플 때만 일시적으로 먹지만, 곡식은 매일 먹기 때문에 효능이 조금만 달라도 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땀이 자주 나고 기운이 없다면 찹쌀밥을 먹어야 한다. 더운 여름에 몸의 습기를 빼고 체중을 줄이려면 안남미를 먹어야 하고, 콩국물이나 미숫가루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각각의 효능을 지니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체질이나 병증에 적합한 음식을 늘 먹어 보양하는 것이 좋다.
먼저 쌀에 대해 알아보자. 쌀에는 안남미와 우리 쌀이 있다. 안남미로 밥을 지으면 푸석푸석하고 찰기가 없는데, 이런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도 영향을 받는다. 즉 살을 빼주고 날씬하게 해준다. 그래서 안남미는 열대지방이나 우리나라의 여름처럼 습열이 많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먹으면 좋다.
우리 쌀은 밥을 하면 찰기가 있고 찧으면 떡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몸도 찰지게 해준다. 즉 적당하게 살이 붙게 하고 추위를 이기도록 해준다. 추위를 더 강하게 이겨내려면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가을송편, 겨울새알 등 추운 계절에 먹는 음식이 떡이다. 여름에는 떡을 먹지 않는다. 찹쌀은 찰기가 더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기운을 보충해준다. 사상의학에서도 찹쌀은 소음인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허약해서 땀이 나거나 자주 설사하는 사람에게 좋다. 또 임신 중 산모가 허약해서 유산 위험이 있을 때도 찹쌀을 먹으면 좋다. 산후 젖 분비에도 좋다. 찹쌀은 살찐 사람이나 얼굴이 붉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고, 마르고 몸이 차며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쌀은 백미로 먹을 때와 현미로 먹을 때 차이가 있다. 백미와 현미는 도정을 어느 정도 했느냐의 차이다. 즉 속껍질을 남겼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속껍질은 위장관과 혈관, 피부를 청소해 깨끗하게 해준다. 일을 많이 하고 자주 굶주리던 시절에는 영양 공급이 가장 중요했기에 백미를 먹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몸은 많이 쓰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먹고 있다. 이럴 때 몸 내부 특히 위장관과 혈관이 더러워져 청소가 중요한데, 현미의 속껍질과 씨눈이 이 역할을 해준다. 아토피와 당뇨 등에 현미가 좋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물론 현미를 먹을 때는 환자의 체질과 위장 능력을 살펴봐야 한다. 소화가 안 되는데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좁쌀은 매우 작고 둥근 쌀이다. 허약하거나 허열이 있을 때,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허열을 내려준다. 몸이 약해지면서 진땀이나 구토, 설사가 잦은 사람에게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오곡 중 보리가 가장 따뜻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리밥을 먹으면 위장관이 잘 움직이면서 방귀가 나온다. 가스가 잘 차거나 대변이 무르거나 설사를 할 때, 그리고 소변이 시원치 않은 사람에게 좋다. 몸을 데워주므로 겨울철에 먹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껍질째 볶아서 먹는 보리차는 성질이 차다. 맥주가 차갑듯이 말이다.
귀리는 2002년 ‘타임’ 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다. 귀리는 고단백, 저당(低糖) 식품이라 당뇨병 환자에게 알맞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동맥경화, 고혈압에 좋으며 땀이 자주 나거나 변비가 심할 때 좋다. 또 산모의 젖 분비를 촉진하고, 소아 발육부진과 허약증에 좋다. 그러나 과하게 섭취하면 위경련과 더부룩함을 유발한다. 많이 먹으면 대변을 자주 보게 하고, 분만 촉진 효과가 있으므로 산모는 주의해야 한다.
요즘은 메밀을 섞어 먹기도 하는데, 메밀도 혈관과 위장관을 청소해준다. 열이 많고 잘 먹는 사람이 몸에 여드름이나 종기 같은 피부병이 생기거나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혈액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에 좋다. 겨울에 땀을 배출하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어 피가 탁해졌을 때는 메밀이 좋다. 단, 몸이 차갑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홍국(紅麴, red yeast rice)쌀은 일반 쌀을 쪄서 홍국균(紅麴菌)으로 발효시켜 만든 붉은 쌀이다. 북경오리의 겉이 빨간 것은 홍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홍국은 발효시킨 쌀이어서 소화가 잘되도록 도와주고 혈중 콜레스테롤도 낮춰주고 고지혈증에도 효과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어혈 제거에 좋은 홍국쌀을 활용해, 교통사고 등 상처를 입었을 때 회복을 돕는다. 혈압과 혈당, 갱년기 증후군과 골다공증에도 효과적이다.
율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몸의 습기와 부종을 없애준다. 그래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율무를 자주 먹는다. 다리가 붓거나, 남자의 경우 낭습이 차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붓거나, 몸이 무거운 사람, 몸이 부으면서 설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리가 부으면서 쥐가 잘 나는 경우에도 좋다.
강낭콩, 완두콩, 서리태, 팥 등은 모두 콩과인데,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부기를 빼주는 효능이 있다. 해독하는 힘도 강해 술독을 잘 풀어주고 종기나 염증을 해결해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이 있다.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야 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의 출중한 운동 역사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었던 ‘여권통문’이다. 늦었지만 이 순간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은 참 다행이다.
120년 전, 1898년 9월 1일,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여학교 설시 통문(女學校設始通文)’ 이른바 ‘여권통문(女權通文)’, 즉 여성권리를 명시한 문서를 발표했다. 당시 뜻을 같이한 여성들이 3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황성신문, 독립신문, 제국신문은 전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권리 선언으로 근대적 여권운동의 시작이며 세계여성의 날이 촉발된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보다 10년이나 앞선 역사적 사건이다. 필자는 2012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여권통문을 접한 그날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 후 훌륭하신 선각자 여성 선배님들께 감사와 존경심을 지니게 됐고 여성사에 대한 깊은 관심 아래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 있는 여성 박물관들이 부러웠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번듯한 여성사 박물관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부끄러웠다. 웅녀의 단군신화 이래 우리나라의 발전 역사는 5,000년 세월,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훌륭한 어머니들과 언니, 누이들인 대단한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국립여성사 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이 시대 남녀 모두의 역사적 사명이다.
‘여권통문(女權通文)’, 이 여성인권선언문은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정치참여권(참정권, 정치권), 노동권(경제활동 참여권, 직업권), 교육권 등 크게 3가지 권리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다. 특히 남녀평등권으로서 교육권을 강조한다. 남녀동등권의 관점에서 여성 억압과 성 역할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 교육을 통해 능력을 키워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에 참여하며, 부부 사이에도 여성이 남성에게 통제받지 않고 존중받을 것을 주장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권리선언이다. 세 가지 권리 중에서도 교육받을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다른 직업권, 정치권도 교육으로 많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종에게 관립여학교 설치를 상소도 하며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처음 주장은 북촌의 양반 부인들이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일반 서민층 부녀와 기생들도 참여했고, 남성들도 가담했다. 그 결실이 1899년 한국인 최초의 사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였다. 또한 여권통문 발표 이후 여자 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조직된 찬양회는 최초의 여성 단체로 기록된다. 여권통문은 한국이 근대화를 시작하며 역사상 최초로 여성들 스스로 권리를 주장했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여학교(순성여학교)를 설치한 그 실천력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교장은 여권통문 발표 시 김소사인 김양현당이다. 순성여학교는 초등 과정 학교로서 서울의 느릿골(지금의 연지동으로 추정)에서 30명 정원으로 개교했다. 그러나 1903년 김양현당이 사망한 후 재정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안타깝게도 소멸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여권통문 발표에서 시작된 여권운동의 맥은 면면히 이어지며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었다. 때로는 여성교육운동, 농촌운동, 항일투쟁,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해방 후 여성투표권, 평등교육권 등은 여성에게 거저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실천해온 여권운동 결과다. 1970년대만 해도 여성은 남자 형제의 대학 공부를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이나 직업전선에서 일해 학비를 보태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었다.
과연 120년 이후의 우리들, 2018년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은 현재 어떤 삶의 한가운데 있는 것일까? 여러 중요 척도 중 ‘여권통문’과 관련 있는 교육, 노동, 정치 참여 3가지만 살펴본다.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를 주로 참고하고 다른 필요한 통계자료도 인용한다.
첫째 교육 척도. 2005년 여학생의 대학교 진학률은 남학생의 대학교 진학률을 0.4%p 추월했다. 놀라운 약진이다. 2017년에는 여학생 대학교 진학률이 72.7%로 남학생(65.3%)보다 7.4%p 높다. 이런 현상이 14년간 계속되었으니 분명 33세 미만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고등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이전에는 남녀 모두 비슷한 대학교 진학률을 보였고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역전 상황이 14년을 지속했으므로 이제 우리 사회의 여성들의 고학력 현상은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현상이자 사실이 지금의 사회현상과 앞으로 전개될 사회 변화에 미칠 영향은 지대하다. 여성에 대한 고려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 현실을 모두 직시하시면 좋겠다. 그러나 현재, 직업전선에서의 여성들이 받는 대우는 민주주의 사회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둘째 경제 분야. 여성 고용률이 조금씩 증가하고 생애주기별, 즉 나이별 등 여러 이유가 있는 고용현장 상황임을 고려하더라도, 2017년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90.2%인데 실제 여성 고용률은 50.8%다. 남성 고용률 71.2%에 비하면 그 차이가 20.4%p나 된다. 여성 월평균 임금도 남성 임금의 67.2% 수준이다. 남녀 동일임금은 요원하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고용상황은 하위에서 맴돈다. 통계가 말해주듯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매우 냉담하다.
셋째, 정치 참여에 관한 부분이다. 점점 참정권을 행사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여성 투표율(76.4%)이 남성(74.8%)보다 높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남녀 투표율이 57.2%로 같았으나.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남자 55.7%에 비해 여성은 53.1%였고,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다시 여성 투표율(77.3%)이 남성(76.2%)보다 높았다. 2018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60.2%였다. 아직 성별 집계는 발표되지 않았다. 여성 선거참여율의 추이는 물론 우리 사회 여성의 동향을 잘 분석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파악할 수 있으며 미래 예측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성관리자 비율이 미미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선거 참여는 높으나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대의정치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회 및 지방의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 중 여성 비율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아직 30%에도 못 미치고 남녀 동수로 가는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17년 행정부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여성 법조인은 26.1%, 의료 분야의 여성 비율(의사 25.4%, 치과의사 27.0%, 한의사 21.0%, 약사 64.0%)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아직 먼 여정이지만 여성들은 분명 약진하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여성 권리 획득이 그냥 어느 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선각자들의 각성과 희생적 노력 덕분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여성인권선언인 ‘여권통문’ 등 120년 전의 역사적 사건들과 여성들의 선구자적 운동의 힘이다.
여권통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여성인권선언서다. ‘국립여성사박물관추진협의회’, (사)역사·여성·미래가 2012년 민간에서 발족한 이래로 여성사학회,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여권통문의 역사적 의미에 주목해 여권통문이 발표된 날을 기려왔고, 여성계를 넘어 국가 차원의 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어왔다. 올해 신용현 의원 대표발의로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기념하고 여권통문의 날부터 1주간을 ‘여성인권주간’으로 정해 기념함으로써 여권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려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 발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여권통문’을 선언한 지 120주년 되는 2018년, 놀랍게도 여러 분야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올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성평등, 양성평등의 획기적 전기가 되기 바란다.
베트남이나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얀마 등 여러 나라들이 세계여성의 날(3월 8일)과 각국 고유의 여성의 날을 모두 기념한다. 우리나라도 자랑스러운 우리 여성인권선언일을 기념하면 좋겠다. 9월 1일 국회에서 ‘여권통문’ 선언 12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여권통문에 대한 연구 세미나도 함께한다. 더욱이 여성교육 수혜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여류 미술작가 120인들이 여권통문 120주년을 기념하고, 대한민국에도 자랑스러운 ‘국립여성사박물관’이 건립되기를 촉구하는 전시회를 10월 내내 국회에서 연다. 우리 모두 축하하고 ‘여권통문’을 영원히 기렸으면 한다.
여름은 무더워 신체가 상하기 쉬운 계절이다. 누구나 기진맥진해하고 힘들어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몸이 허약하면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도 싫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힘들다. 고산이나 북쪽의 서늘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두 달 피서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신체 내부의 환경을 바꿔 열을 식혀야 한다. 여름 무더위는 한의학적으로 습열이라 하는데, 폐가 이 습열을 식혀준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면 폐가 손상되어 습열을 제거하지 못해 비위와 콩팥 기능까지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여름 병증이다.
이번 호에는 무더위를 이기는 맛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무더위를 이기는 맛은 약한 신맛과 약한 짠맛, 그리고 단맛이다. 이미 우리의 음식 문화에는 이런 맛이 여름 먹거리로 녹아들어와 있다.
첫째 약한 신맛은 약간 시큼한 맛이다. 황매실차, 오미자차를 먹어보면 새콤한 맛이 느껴지면서 침이 고인다. 그리고 전신의 피부가 닭살처럼 일어난다. 새콤한 맛은 피부의 땀구멍을 닫아주는 효과가 있다.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폐의 기운이 부족해 피부의 땀구멍이 열려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기운이 떨어지고 밥맛도 없어진다. 새콤한 맛은 땀구멍을 닫아 기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중국 명의인 손진인 선생이 “여름철에는 늘 오미자를 복용해 오장의 기운을 보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실차는 3년쯤 묵힌 황매실차가 좋다. 갓 담근 매실차는 강하게 시큼한 맛이라 체했을 때 소화제로는 좋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장수 음식으로 꼽히는 흑초도 좋다. 현미식초를 먹어보면 강하게 시큼한 맛이 느껴지다가 끝 맛이 쓴데, 이런 맛은 체한 것을 풀어주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흑초나 홍초는 약간 시큼하다가 끝 맛이 달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맛이라야 여름 보양 음료라 할 수 있다. 또 당연히 오래 묵힌 것일수록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미자가 들어간 생맥산(生脈散)을 여름 보양 음료로 추천한다. 맥문동 8g, 인삼 4g, 오미자 4g을 물에 달여 여름철에 늘 마시면 좋다고 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명한 보신탕도 약한 신맛이 나는 음식이라 구분할 수 있다. 보신탕에 넣는 부추도 약한 신맛을 낸다.
둘째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이란 처음에는 약간 짭짜름하다가 단맛이 나면서 입에 침이 고이는 맛을 말한다. 찌는 듯이 더운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은 소금을 늘 먹어서 기운이 땀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다. 약한 짠맛을 먹으면 진액을 끌어당겨 땀이 덜 나가게 한다. 몸의 열을 내려주는 효과도 있다. 음식점에 가면 보통 고춧가루나 식초가 놓여 있다. 그런데 여름에만 특별히 놓이는 양념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여름철에 콩국수를 주문하면 소금이 따라 나온다. 보신탕, 삼계탕을 주문해도 소금을 준다. 여름철 별미인 우무에도 소금이 들어간다. 뱀장어도 여름에는 소금을 곁들여 먹는 것이 좋다. 운동하고 나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시는 미네랄 음료도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은 흡수가 빠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열을 가라앉혀준다.
그런데 어떤 소금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정제염이나 갓 만든 천일염은 아니다. 이들 소금은 매우 짜면서 끝 맛이 쓰고 입이 말라 물이 당긴다.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이나 구운 소금, 죽염, 함초 소금은 약간 짜면서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여름에 기운이 없을 때는 생수 1ℓ에 죽염 4g 정도를 녹인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 좋다. 기운이 나고 땀도 덜 난다. 너무 싱겁게 먹으면 여름이 힘들고 기운이 없어진다.
셋째 단맛이다. 더운 여름에는 체력 소모가 많아,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단것을 많이 먹는다. ‘동의보감’에서도 “더위는 기를 손상시키니 진기를 보하는 것이 요체다”라고 했다. 더운 동남아와 중동 사람들은 단것을 엄청 많이 먹는다. 수박과 참외, 야자 등 여름철 과일과 열대 과일류는 대부분 달다. 이때의 단맛은 정제 설탕 맛과 다르다. 정제 설탕을 먹으면 달달하다가 입이 텁텁해지면서 물이 당긴다. 초콜릿을 먹어도 달다가 입맛이 쓰면서 물이 당긴다. 이런 맛은 여름 먹거리로 적합하지 않다. 야자즙, 망고 등 천연과일은 달달하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단맛이라야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참외나 수박처럼 차가운 과일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철 건강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더워서 겉으로는 땀이 나지만, 속은 반대로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땀을 과도하게 흘려 탈진하거나 더위를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워도 위장은 차갑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을 주의해야 한다. 여름철에 얼음물과 차가운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면 가을철에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배변 상황이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현대인은 에어컨 때문에 여름에 오히려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면서 발열, 오한, 복통, 구토, 설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중간중간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쓰면 효과가 있다.
여름은 콩팥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므로 과도한 성생활이나 음주를 주의해야 한다. 콩팥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더울 때 갑자기 찬물로 세수를 하면 눈에 혈액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력이 나빠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더운 곳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찬물로 양치하되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 인체 내부로 갑자기 찬물이 들어가면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몸이 불편한 나를 돕기 위해 우리 집에 오는 가사 도우미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그분을 ‘이모’라고 편히 부른다. 이모의 큰아들은 30대 후반 한의사라고 했다. 며느리는 아들과 동갑으로 아주대학 수간호사 출신이었다. 7년 전, 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경쟁 심한 서울을 떠나 청주에서 한의원을 열었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며느리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갔고 경력이 단절됐다. 두 딸 아이 낳아서 어느 정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나니 며느리는 취업이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청주에는 일할 만한 큰 병원이 없었다. 간호사 면허가 아까웠던 며느리는 병원 대신 양호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2년여 피나는 노력 끝에 이모의 며느리가 올 초 그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도 “소 한 마리라도 잡아야 한다!”며 축하하는 마음으로 환호성 쳤다. 교사 임명장을 받자마자 며느리는 출근할 때 쓰겠다며 빨간 폭스바겐 중고차부터 샀단다. 평소 가지고 싶었던 차라고 했다.
호사다마라고 며느리가 출근 첫날부터 아프다고 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단순한 병이 아니었다. 폐암이었다. 본인이 간호사고 남편은 한의사인데 어떻게 증상을 모를 수가 있을까?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아들 가족은 청주에 있는 한의원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 병원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모는 사정상 우리 집 일을 못 하겠다고 했다. 나 또한 이모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처지다. 남편 혼자 나를 돌보기도 힘들다. 나는 이모가 편한 시간 아무 때나 와달라고 떼를 썼다. 하는 수 없이 새벽이건 밤이건 시간 나는 대로 와서 날 도와주었다.
며칠 전, 이모의 며느리는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다. 발병한 지 3달 만이었다. 암이 증상 없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건강에 관한 한 전문가 부부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니 믿기 어려웠다. 증상을 발견하자마자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는 얘기 또한 들어보지 못했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젊어서 암세포가 빨리 퍼진 건가? 간호사 출신 양호 선생님, 두 딸아이 엄마의 죽음에 할 말을 잃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무것도 못 느꼈다니 말이다.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인생 아닌가 싶다.
라면에 넣는 스프는 모두 맵다. 매워야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침엔 오미자차를 마시고 땀이 많이 날 때도 설사를 할 때도 오미자차나 매실차를 마신다. 약한 신맛이 몸의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수렴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허열이 날 때는 약한 짠맛이 들어간 콩국이나 죽염수를 마시면 열이 내려 땀이 덜 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렇듯 맛은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한의학에서는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이나 후끈한 맛, 짠맛을 오미(5가지 맛)라 한다.
약초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맛을 머금고 있다. 야산 뽕나무의 오디는 새콤하고 단맛이 진하지만, 재배한 뽕나무의 오디는 맹맹하다. 야산에서 자란 작은 돌배는 시큼하지만, 재배로 키운 배는 그 맛이 싱겁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퉁퉁마디, 칠면초 등 염생식물은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염도를 높여 짠맛이 난다. 즉 약초의 오미는 자연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맛인데, 이것이 약효로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오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호에서는 오미 중 신맛에 대해 설명하겠다. 신맛에는 강한 신맛과 약한 신맛이 있다. 강한 신맛은 막힌 것을 뚫어주고 약한 신맛은 몸의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수렴한다. 강한 신맛은 끝 맛이 달지 않고 침도 은은하게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식초를 예로부터 고주(苦酒)라 불렀다. 강한 신맛은 목을 마르게 하고 물을 찾게 만든다. 염산이나 황산이 옷에 떨어지면 옷이 녹아버리듯, 음식이나 약초의 강한 신맛도 강산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녹여버리고 뚫어버리는 성질을 갖는다. 음식을 먹고 체하면 보통 매실 엑기스나 산사나무 열매, 식초 등 강한 신맛이 나는 것을 먹는다. 또 연탄가스 중독으로 심장과 정신을 연결하는 통로가 막혀 의식을 잃었을 때도 식초나 신 김칫국 등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다. 막힌 것을 뚫어 의식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육류나 자장면을 먹을 때 식초가 빠지지 않는 것은 신맛으로 소화를 도우려는 것이다. 몸에 멍울이 만져질 때도 식초를 먹어서 녹인다. 고깃집 메뉴를 봐도 늘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가 있다. 역시 고기를 소화시키는 강한 신맛의 효과 때문이다.
팥은 강한 신맛이 난다. 팥에 강한 신맛이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의학에서의 강한 신맛, 약한 신맛은 화학적인 pH와는 다른 개념이다. 강한 신맛은 pH가 낮고, 약한 신맛은 pH가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팥은 시큼한 맛이 강하지 않지만 강한 신맛에 해당한다. 현미식초는 강한 신맛인데, 100배 희석해도 강한 신맛이다. 현미식초를 희석하면 강한 신맛의 작용이 약해질 뿐, 절대 약한 신맛으로 변하지 않는다. 약한 신맛은 끝 맛이 달고 침이 은은하게 나와야 한다. 청매실은 강한 신맛이지만, 오래 묵힌 황매실은 약한 신맛이다. 먹어보면 끝 맛과 입에서 침이 나오는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하나의 약재가 강한 신맛과 약한 신맛의 작용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일반 식초는 강한 신맛이 대부분이지만, 약한 신맛이 나는 것도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침이 잘 나오지 않으면 강한 신맛이고, 침이 잘 나오면 약한 신맛이다. 팥은 강한 신맛이 난다. 그래서 붕어빵, 찹쌀떡, 호빵 등에 들어간 팥은 밀가루를 먹고 체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뼈와 이가 녹아버릴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보약을 먹을 때 식초를 먹지 말라 조언한다. 청매실, 산사나무 열매, 모과, 석류 등 강한 신맛이 나는 과일을 많이 먹으면 뼈와 이가 손상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식초, 탄산음료 등을 많이 마시면 뼈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은 대부분 발효시켜 먹는다. 풋과일(매실·살구·석류 등)이나 식초는 강한 신맛이 난다. 그러나 발효시키거나 오래 묵히면 강한 신맛의 부작용이 약해져 약한 신맛으로 변하기도 한다.
약한 신맛은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오미자, 산수유, 유자차, 괭이밥, 흑초를 먹으면 약간 시큼한 맛에 몸이 움츠러들면서 피부 구멍이 닫힌다. 전신 피부가 긴장하면서 힘이 들어가고 심하면 닭살이 돋기도 한다. 약한 신맛 때문이다. 약한 신맛은 기침, 땀, 설사, 단백뇨, 냉 등 몸의 진액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아준다. 기운이 떨어져 설사를 하거나 땀이 많이 나면 오미자차나 황매실차, 괭이밥 등을 먹어주면 좋다.
기침에 오미자와 배를 쓰는 것은 약한 신맛으로 기침이 나오는 것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춘곤증에 괭이밥, 돌나물 등 새콤한 봄나물을 먹는 것은 기운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여름에 더위를 먹어 땀을 너무 많이 흘릴 때는 약간 시큼한 과일(오미자, 복숭아, 포도, 묽은 매실)을 먹고 땀과 기운을 수렴한다. 남자에게 좋다고 알려진 산수유도 약간 시큼한 맛인데 정액이 새나가지 않도록 수렴한다. 전통 식초는 대부분 강한 신맛이지만, 발사믹식초나 흑초, 홍초는 끝 맛이 단 약한 신맛이다. 그래서 이런 식초가 장수에 좋다고 한다. 같은 식초라도 오래 묵히면 끝 맛이 달달해진다. ‘동의보감’에는 “약에 넣을 때는 2~3년 묵은 쌀 식초가 좋은데, 이는 곡기가 완전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의학에서는 허실 개념이 중요하다. 약한 신맛은 허약한 사람, 허약한 질병에 맞다. 기운이 너무 좋거나 몸 여기저기가 잘 뭉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더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기침에 좋다는 오미자도 감기 초기에는 좋지 않다. 기침으로 나가야 할 나쁜 것들마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기운이 너무 좋거나 잘 뭉치는 사람은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이 좋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나는 궁벽한 서해안의 한촌(閑村)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소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66)도 이곳을 다녀간 후 “그곳에 소나무가 많다”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적었다. 장터 옆 중학교까지는 시오리 길이라 왕복 30리 길을 매일 걸어 다녔다. 신작로 주변의 야트막한 산에도 소나무가 지천이었다. 운동장 서편에는 노송 한 그루가 푸른 잎과 검붉은 보굿(껍질)을 자랑하며 개교 68년이 지난 지금도 모교를 지키고 있다. 뒷동산도 솔밭이라 때론 그 그늘 아래 낮잠을 자며 쉬기도 했다.
송화가 만발하는 5월 무렵 꽃가루를 모아 다식을 만들어 입에 넣으면 달콤하고 매콤한 맛이 목에 오래 남았다. 새순으로 빚은 송순주(松筍酒)의 솔 향도 그만이다. 살아서 수백 년, 베어져서도 궁궐이나 한옥의 기둥과 서까래로 또 수백 년을 버텨내니 나무 ‘목(木)’에 어른 ‘공(公)’을 붙여 예찬할 만하다.
소나무 화가로 첫손을 꼽는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1945~) 화백은 이 땅의 굴곡진 역사를 헤쳐 온 예술인이다. 해방둥이로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3세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한국전쟁 직전 한의사였던 아버지마저 잃는다. 빨치산에게 ‘반동 지주’로 찍혀 칼에 맞아 즉사한 것이다. 당시 등에 업혀 있던 박 화백도 왼팔을 잘렸다. 그의 애절한 삶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 팔만으로만 살아온 신산한 일상에서도 “제사 때 둘러친 병풍의 그림과 글씨를 따라 그리는 것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예닐곱 살 때, 새들이 와서 부딪쳤다는 신라의 황룡사 벽 ‘노송도’를 그린 천재 화가 ‘솔거’ 이야기를 교사였던 형에게서 듣고 화가의 꿈을 다졌다. 신체의 불구를 야유하던 철없는 학우들 틈에서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었던 그는 더 이상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의 학력은 중학교까지가 전부였다. 20대 때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 화백과 서예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석도륜(昔度輪, 1923~)을 찾아가 잠시 지도를 받았고 독학의 고행은 계속되었다. 1970년대엔 국전 8회 입선,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대상 수상은 그의 작품이 종래의 화풍을 파격적으로 벗어난 독창성과 창의성을 인정받은 쾌거였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실경(實景)의 맥을 이으면서도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 같은 대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열과 성을 다해 그리고 또 그렸다. 1990년대에는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미국 뉴욕에서 1년여를 보냈다. 그때 “내 것을 모르고 남의 것, 서양이라는 뚱딴지부터 찾았구나” 하며 깨달았다. 귀국 즉시 경주 불국사를 찾아 그곳에서 1년 동안 사찰생활을 했다. 1995년에는 경주 삼릉(三陵) 지역으로 하향한다. 어쩌면 유년기에 가졌던 아련한 ‘솔거’의 꿈을 성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박 화백은 회화 435점, 서예 182점, 벼루·먹·붓 213점 등 도합 800여 점을 경주시에 기증, 2015년 8월 경주시 엑스포공원 내 아평지 인근 연못가에 우뚝한 ‘솔거미술관’을 개관했다. 문기(文氣) 어린 그의 작품 중에서도 용(龍)의 형상을 닮은 노송도(老松圖)는 가히 압권이다. 이 그림[사진1] ‘송풍라월도(松風蘿月圖)’는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과 나무에 감긴 담쟁이덩굴이 달빛 아래 흔들리는 아취(雅趣)를 갈필로 단숨에 붓 놀린 작품이다. 성긴 여백에 달빛 가득한 정경이 솔잎 사이로 고즈넉하다.
우리 부부가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홍소안(洪小岸, 1958~) 화가를 찾았을 때 그는 화실 바닥에 엎드려 붓질을 하고 있었다. 200호가 넘는 화폭 위로는 노송 두 그루가 용 비늘 같은 두꺼운 껍질과 부딪고 있었다. “제 고향 전남 곡성에 있는 소나무를 현장에서 일주일 스케치한 뒤 옮겨 그리고 있어요.” 화실 창 너머로 인왕산 등성이와 좁은 길 사이로 소나무가 나란히 보였다. 여기저기 벽에 걸린 크고 작은 그림도 모두 소나무뿐이었다. “1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해 인왕산을 매일 산책하며 소나무를 깊게 만났지요. 그 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큰 소나무들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고, 현장에서 며칠씩 머물며 그렸지요.” 그는 화폭의 질감을 돋보이게 하려고, 흰 광목에 흰 물감을 발라 말린 뒤 손으로 비벼 구긴 다음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뒤집어 색을 입히는 배체법(背彩法)을 활용했다.
홍소안이 개발하다시피 한 이런 화면의 구성은 소나무의 음영과 굽은 가지, 솔잎의 입체적인 표현에 아주 적합하다는 평을 받게 되면서 소나무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했다. 일찍이 한국화로 국전에서 입선과 특선의 결실을 거둔 것도 오로지 독학으로 이룬 성과였다. 화선지를 사용하며 익힌 선염(渲染)의 묘를 광목에 아크릴 물감으로 실현해보기를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뤄낸 1998년 ‘한국의 소나무 전(展)’은 그의 작품세계에 큰 획을 그어주는 전기가 되었다. 그를 수차례 만나 보니 실경(實景)의 “소나무를 통하여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며 자신이 속한 시공(時空)을 기록하고, 언제나 푸른빛을 잃지 않는 우직하고 고집스런 꼿꼿함은 그의 성정과 매우 닮아 있다”는 평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인왕산 소나무’[사진2]는 그의 화실에서 떼어온 작품이다. 인왕산 기슭에서 지금도 잘 자라고 있는 소나무 세 그루를 광목 위에 옮긴 그의 대표 작품이다.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고 화실을 찾아간 고마움에 다섯 달 분납하도록 편의’를 주어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 걸고 매일 바라보며 소나무의 정령(精靈)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 중에 으뜸인 소나무는 언제 보아도 범접하기 어려운 신령함이 있다. 그런 소나무를 즐겨 그리다 보면 곧 소나무의 고상한 기(氣)가 화폭에 젖어들어,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맑게 한다.
소금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많다. 콩팥과 고혈압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염식 식사를 하는 사람이 꽤 많다. 소금이 그렇게 나쁜 물질일까? ‘성경’에서는 빛과 소금이 돼라 했고, 로마시대에는 병사와 관료들에게 소금을 급료로 줬다. 목숨을 걸고 사막을 횡단했던 카라반들은 소금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이었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국가가 나서서 소금을 전매했다. 이처럼 소금은 예로부터 보석처럼 여겨져 왔다. 만약 소금이 인체에 그렇게 해로운 물질이라면 법으로 금지시켰어야 했다!
영국 엑시터대학교 연구팀은 저염식 식사가 심장병이나 조기사망 위험을 줄인다는 뚜렷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가 소금 섭취량을 줄일 경우 사망 가능성이 증가한 사례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밥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음식이지만 많이 먹으면 탄수화물 과다로 오히려 해롭다. 생명의 물도 많이 마시면 수독증에 걸릴 수 있다. 산소가 몸에 좋다고 하지만 고농도의 산소만 흡입하면 고산소증에 걸려 위험하다. 자연에는 악마와 천사가 따로 없다. 우리가 편견을 갖고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소금은 악마가 아니다. 신장투석을 할 정도의 환자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염분을 섭취해야 한다. 예방 차원에서 소금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무엇이든 적절해야 좋다.
미네랄은 인체활동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과거에는 채소나 고기 등 음식물을 통해 보충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인공재배가 많아지면서 미네랄 함량이 많이 떨어졌다. 이럴 때 미네랄 부족을 보충해주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 소금은 염화나트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99.9% 이상이 염화나트륨이지만, 자연에서 만들어진 천일염이나 식물소금 퉁퉁마디, 죽염은 염화나트륨 함량이 높지 않고 대신 칼슘, 마그네슘, 칼륨, 셀레늄, 게르마늄 등 미네랄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다.
콜레스테롤에 좋은 콜레스테롤(HDL)과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있듯이 소금도 그렇다. 한의학에서는 짠맛을 강한 짠맛과 약한 짠맛으로 구분한다. 정제염을 먹어보면 많이 짜다가 끝 맛이 아주 쓰다. 그래서 물이 당긴다. 그러나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혈압을 높이고 뒷목을 뻣뻣하게 하며 콩팥에 무리를 주는 나쁜 짠맛 때문이다. 나쁜 짠맛은 다양한 미네랄이 부족하다.
술을 마신 후 해장국으로 재첩국이나 조개탕을 자주 먹는다. 조개껍질에서 우러나온 약한 짠맛을 느끼는 순간 입에서 침이 돈다. 그리고 숙취로 인해 컬컬하던 목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퉁퉁마디나 칠면초의 짠맛도 약간 짭짜름하다가 끝 맛이 달아 입에 침이 고인다. 죽염과 잘 발효시켜 오래 묵힌 된장도 마찬가지다. 입이 침이 고이면 소화력이 좋아진다. 몸 여기저기 생긴 멍울과 종기를 풀어주고 대변을 잘 보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좋은 짠맛은 대소변을 잘 보게 하고 소화와 체액 순환을 도와준다. 다양한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갓 제조한 천일염을 먹으면 무척 짜고 물이 당긴다. 하지만 몇 년 묵힌 천일염은 짠맛이 약해진다. 소금을 묵혀 간수를 빼면 나쁜 짠맛이 좋은 짠맛으로 변한다.
죽염이 일반 소금과 다른 점은 제조법에 있다. 죽염은 인산 선생이 처음 만들었다. 서해안 천일염을 몇 년 묵혔다가 왕대나무 속에 넣고 황토로 입구를 막은 다음, 강철 쇠통에 넣고 송진을 포함한 소나무로 불을 때어 만든다. 높은 온도에서 여러 번 구울수록 좋다. 1회에서 8회까지는 소나무로만 불을 때므로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지만, 9회째는 송진을 추가해서 구우므로 온도가 매우 높아진다. 가장 좋은 죽염은 아홉 번 구운 것이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다. 죽염은 구울수록 짠맛이 약해지고 단맛이 강해진다. 즉 3회 구운 죽염보다 9회 구운 죽염이 덜 짜고 더 달아서 입에 침이 많이 고인다.
죽염을 입에 물고 있으면 침이 많이 나온다. 이 침은 구내염, 치은염, 풍치, 충치, 축농증, 인후염 등을 치료하며, 현대인에게 문제가 되는 공해 독을 해독한다. 또 가래를 제거해서 호흡을 편하게 해준다. 음식에 넣어 복용하면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소장궤양, 대장궤양 등 다양한 위장병을 치료한다. 증상만 멎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재생되도록 도와준다.
죽염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도 있다. 그래서 성인병(고혈압, 당뇨, 통풍 등) 환자, 육류를 많이 먹어서 피가 탁한 사람, 머리로 열이 치솟는 사람, 편도선·임파선·갑상선 등 목이 잘 붓는 사람에게 좋다. 특히 현대에는 과다 섭취로 인한 성인병이 많기 때문에, 죽염이나 염생식물 섭취가 더더욱 중요하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은 한의학적으로 피를 맑게 해준다는 의미다. 만성피로 역시 피가 맑지 못해 드러나는 증상이기에 죽염이 좋다.
죽염을 복용할 때는 몇 알갱이씩 입에 넣고 있다가 사탕처럼 녹여서 그 침을 삼키는 방법이 있고, 물에 타서 마시는 방법도 있다. 소금 대신 조미료로 사용해도 좋다. 물에 타서 마실 때는 생수 2L에 죽염 8g 정도를 녹여 한 모금씩 매일 1.5L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소변을 시원하게 보도록 해주며 허열을 가라앉히고 피로도 덜어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나이가 들면 소화기능이 떨어진다. 병을 오래 앓아도 그렇다. 소화가 안 되니 기운도 같이 떨어진다. 그래서 병원 앞에는 죽집이 많다. 어렸을 때 배탈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입맛이 없을 때 어머니가 죽을 해주시곤 했다.
밥은 입에서 식도를 거쳐 위, 십이지장, 소장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위의 기능이 안 좋을 때는 위장에서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배가 더부룩해지고 불편해진다. 위가 음식을 썩히고 분해시켜 내려 보내야 하는데 그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죽은 분해가 된 밥이다. 그래서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가도 위가 별로 할 일이 없다. 금방 십이지장으로 내려간다. 죽을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체하지도 않는다. 음식이 잘 내려가지 않을 때는 보리죽이 도움이 된다. 죽은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 그리고 죽을 먹으면 금방 허기가 진다. 그만큼 소화가 잘된다는 말이다.
죽은 한약 중 경옥고 같은 고약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런 고약은 뇌수와 안구, 오장의 정액을 보충해주는 효과가 있다. 죽이 뇌수를 채운다는 말은 장수에 좋다는 의미다. ‘동의보감’에는 “새벽에 일어나 죽을 먹으면 가슴이 뚫리고 위장을 보양하며, 진액이 생겨나고 하루 종일 기분이 상쾌하며, 보하는 힘이 적지 않다. 만생종(晩生種) 멥쌀을 진하게 푹 쑤어 먹는 것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연자육죽이나 잣죽, 우유죽 등이 뇌수를 보충해 장수를 돕는다. 노인이 밤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할 때는 저녁식사로 죽을 먹는 것이 좋다. 그러면 숙면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두개골 속 뇌가 밖으로 드러난 부분, 즉 눈을 뇌의 창문으로 본다. 뇌수를 충실하게 채워주면 눈도 충실해지기에, 눈에도 죽 같은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 좋다. 대표적인 것이 ‘동의보감’에 나오는 지황죽(地黃粥)인데, 생지황즙에 재워둔 멥쌀로 죽을 쑤어 먹는다. 또한 눈이 좋다는 말은 ‘총명(聰明)’이라는 단어와도 상통한다. 총명이라는 한자 자체가 눈과 귀가 밝다는 뜻이다.
개고기, 사슴고기 등 길짐승의 고기는 정액과 정력을 보충해주는데, 이때도 고기죽으로 쑤어 먹는 것이 좋다. 뼈째 달이는 도가니탕이나 곰탕도 일종의 죽이다.
곰탕은 길짐승의 뼈로 달이기에, 근골을 강하게 해서 팔다리가 저리고 시린 것을 없애주며, 출혈과 설사를 멎게 하고, 헌데를 아물게 한다. 큰 병을 앓고 난 뒤 또는 기력이 갑자기 쇠약해졌을 때 풀이나 죽만 먹으면 기력 회복이 느리고, 삼겹살 같은 고기를 먹으면 비위의 기운이 약해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소화가 잘되면서 기력도 보강할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도가니탕, 곰탕이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라 기운을 크게 보하면서도 죽처럼 부담이 없기 때문에 빠른 쾌유를 도와준다. 사골국에 포함된 콜라겐과 콘드로이친황산은 피부 탄력과 뼈의 성장, 골절 회복, 골다공증 방지 등에 도움이 돼 여성뿐 아니라 성장기 어린이, 노약자 모두에게 좋다. 그런데 곰탕은 일시적으로 먹어야지 매일 먹으면 안 된다. 곰탕이나 도가니탕을 매일 먹으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때문에 피가 더러워지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길 것이다. 약은 적절히 써야 약이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
죽은 물도 아니고 밥도 아닌 그 중간의 음식이기 때문에 묘한 효과가 있다. 바로 완충제 효과다. 변비나 설사를 할 때도 죽이 좋다. 변비가 있을 때는 끈적끈적한 죽이 진액을 공급해 대변을 잘 보도록 도와준다. ‘동의보감’에는 노인성 변비에 차즈기 씨앗과 대마 씨앗을 갈아서 만든 소마죽과 도인·잣·욱리인을 갈아서 만든 삼인죽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설사가 있을 때도 끈적끈적한 점성이 설사를 멎게 한다. 설사에는 팥죽과 찹쌀죽이 좋고, 이질에는 파죽과 부추죽, 염교죽이 좋다.
죽 맛은 담담해서 한의학의 오미 중 담미(淡味)에 해당한다. 담미는 체액 운행을 활성화시켜서 소변을 잘 보게 해준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증상도 멎게 하고 부기를 빼줘 몸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열이 너무 많이 나는 사람은 녹두죽이 좋다. 녹두는 매우 차가운 식품이기 때문이다. 피부가 건조하고 마른 사람에게는 마죽이 좋다. 산약의 끈적끈적함이 피부를 적셔준다. 반대로 몸에 습기가 너무 많은 사람에게는 팥죽, 율무죽이 좋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올겨울이 추웠던 만큼 새싹은 더 싱싱하게 올라온다. 봄이 되니 마을 여기저기서 쑥 뜯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린 시절 누나와 동생이랑 논두렁에서 쑥을 뜯어 끓여 먹던 쑥된장국 냄새가 아련하다. 쑥떡 생각도 난다. 쑥은 왠지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따뜻한 고향의 느낌을 주는 음식이자 약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식물이라 하면 무궁화, 진달래, 민들레, 쑥 등을 들 수 있다.
쑥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자라난 풀이다. 국화과 식물은 대부분 벌레를 이용해 수정을 하는 충매화인데, 쑥은 바람에 의해 수정이 되는 풍매화이기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이처럼 생명력이 강하기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닮아 있고, 또 그에 걸맞은 약효를 갖고 있다.
쑥은 ‘의초(醫草)’로 불릴 정도로 약효가 뛰어난 풀이다. 단군 신화에는 쑥과 마늘 이야기로 나오고, ‘맹자’에는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동양에서는 쑥을 먹기도 했고 쑥 달인 물에 몸을 씻기도 했으며 말려서 뜸을 뜨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쑥을 ‘Gypsy′s Tobacco’라 부르는데, 이는 이동이 많은 집시들이 건조된 쑥을 태워 악귀를 쫓고 역병을 치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쑥은 동서양 모두에서 의학적 기능을 해온 식물이다.
쑥은 단군 신화에 등장하면서 우리 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웅녀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로 21일을 버틴 끝에 사람으로 변해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 우리 민족의 피 속에 대대로 쑥 향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마늘은 강력한 천연 항생제이며 항암작용과 살균작용이 뛰어나다. 구운 마늘은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준다. 또 쑥을 태워 악기를 쫓을 수 있고, 묵혀서 뜸을 뜨면 각종 병을 치료하며, 갓 캐어 끓여 먹으면 여성의 자궁에 매우 좋다. 그래서 옛날에는 마늘과 쑥이 생명 보존에 매우 소중한 자원이었다.
쑥은 여성과 관련한 풀이다. 여성에게 있어 피의 저장 공간인 자궁과 아랫배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생리의 양이 적거나 너무 많은 경우, 아랫배가 차가워 생리통이 있는 경우, 생리주기가 불규칙한 경우에 좋다. 임신 초기에 태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해 피가 비치면서 불안한 경우에도 좋다. 냉이 많은 여성이나 설사를 자주 하는 여성에게도 도움이 된다. 쑥의 속명은 ‘아르테미시아(Artemisia)’인데 그리스 신화에서 탄생과 다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Artemis)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양에서도 쑥은 여성을 보호하는 식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쑥은 각종 출혈증에도 좋다. 코피를 흘리거나 피를 토할 때, 대변에 피가 섞여 있을 때, 하혈이 심할 때 좋다. 또 차가운 체질의 만성 위장병에도 좋다. 쑥 향기는 식욕을 돋워줄 뿐만 아니라 몸의 습기도 말려줘 습진, 치질 등의 증세를 호전시킨다. 또 쑥 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간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특히 좋다. 이때는 묵힌 쑥이 아니라 갓 캐낸 쑥을 사용해야 더 좋다. 이밖에 쑥 향기는 이목구비를 소통시켜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능도 있다. 또한 나쁜 기운이나 상한 음식 때문에 가슴이나 배가 갑자기 아플 때도 쑥국이 좋다.
탈항(脫肛)이나 치질, 변비 등 항문 질환에는 쑥을 태워서 훈증하거나 달인 물로 씻어주고 뜨거운 김을 쐬어주면 좋다. 한의학의 기본이 침과 뜸, 약인데, 뜸의 주재료가 묵힌 쑥이다. 오래 묵힌 쑥일수록 뜸 효과가 더 좋다. 뜸에는 살을 태우지 않는 간접구(間接灸)와 살을 태우는 직접구가 있다. 간접구(直接灸)는 위장을 운동시켜주고 상열하한(上熱下寒), 즉 머리가 뜨겁고 아랫배와 다리가 차가운 증상을 치료해준다. 간접구는 주로 위장과 배꼽, 단전 부위에 뜸을 뜬다. 직접구는 국소 부위로 피와 에너지를 끌어모으며 회복 작용을 돕는다. 쑥을 뜸으로 쓸 때는 3년 이상 묵힌 쑥을 쓰는 것이 좋은데, 직접구일수록 더욱 그렇다. 쑥뜸의 적용 범위는 매우 넓고 효과 또한 강력하다. 쑥은 진정 ‘의초’라 불릴 자격이 있다.
쑥은 강화도와 백령도 등 서해안의 쑥이 유명한데, 사자발쑥과 싸자리쑥이 있다. 강화도와 백령도는 서해 해풍이 바로 불어오는 곳이다. 소금기와 바람이 식물의 수분을 말려버려 일반 식물은 해풍이 강한 곳에서는 살기 힘들다. 따라서 이곳 식물들은 개질경이처럼 털이 많거나, 선인장처럼 잎이 육질로 변하거나, 퉁퉁마디처럼 스스로 소금기를 머금거나 하는 생존 전략을 선택한다. 원래 건조한 지역에서 살아서 잎 뒷면 털이 발달한 쑥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잎 뒷면 흰 털을 보다 강화해서 수분을 더 잘 갈무리하는 것이다. 해풍이 강한 곳일수록 흰 털이 더 발달해, 강화도에서도 해풍을 직접적으로 받는 화도면 내리의 사자발쑥과 싸자리쑥이 유명하다.
쑥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쑥으로 뜸을 뜨면 수분과 습을 조절해서 몸이 가벼워진다. 참쑥과 사자발쑥은 식용으로 많이 쓰고, 싸자리쑥은 뜸용으로 많이 쓴다. 올해도 앞마당에는 어김없이 쑥이 자라 올라오고 있다. 우리 민족과 역사를 같이 해온 쑥은 우리에게 쑥쑥 힘을 보태주고 있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이 있다.
설날을 맞아 기쁘고 고마운 뉴스가 있어서 같이 기뻐하고 싶어서 올려 본다.
우리 집 도우미 아줌마(이모)의 큰아들이 한의사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개업비가 많이 드는 서울을 떠나 지방 청주에서 한의원 개업을 했다. 개업할 때는 물론 은행의 대출을 받고 곧 갚을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시작했는데 병원 운영이란 것이 임대료니 뭐니 해서 생각같이 쉽지 않아서 대출 이자와 아이 둘의 양육비로 힘들어서 원금은 아직 갚지도 못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며느리는 아주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다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할 수 없이 다니던 직장인 병원을 고만두고 청주에 내려가서 6년 동안 아이 둘을 키우며 전업주부를 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간호사 면허가 아까워 2년 전부터 교사 임용고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임용 교사는 요새 하도 합격이 어려워서 ‘고등 고시’라고 부른다는 말이 있다. 생전 공부를 하지 않던 엄마가 시간만 나면 공부를 하니까 아이들이 “엄마는 학교도 안 다니는데 왜 그렇게 공부를하냐”고 불평하면서 옛날처럼 함께 놀아 달라고 떼를 쓰며 울기고 했단다. 애들을 재우고 일어나서 혼자 밤 중에 공부를 하며 혹시라도 또 실패하면 애들에게 창피해서 두 번 째 시험 볼 때는 외할머니 댁에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서울 같으면 노량진 학원이라도 다니겠지만 지방에서 혼자서 순전히 독학으로 재작년에 한번 실패하고 올해 재수 끝에 합격을 했는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며칠 전에 제일 먼저 청주시내 고등학교 양호 교사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더욱 기쁜 일은 병원 근무의 경력이 인정 되어서 높은 호봉을 받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취업 절벽에다가 취업청탁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단독으로 시험을 합격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듣던 중 기쁜 소식이다. 더구나 경력 단절 여성이 과거의 근무 경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쁜 소식을 들은 우리 남편은 올해의 큰 설날 선물이라며 소 한 마리를 잡아도 모자를 경사라고 더 난리이다. 남편은 어제 예쁜 꽃다발에 를 쓰고 금일봉도 함께 넣어 배달 시켰다.
남편이 이렇게 이모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남편도 나이가 들어가서 혼자 살림하기 힘든데, 이모의 남편이 전부터 우리 집에 오는 일을 그만두고 쉬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부인이 힘든 것을 걱정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로서는 참으로 난리가 날 일이다.
이모는 우리 집 오기 전까지 어느 시각 장애인의 도우미를 하였는데 그 때 그 시각 장애인으로부터 틈틈이 마사지를 배웠고 요즘 매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필자를 위해 이것을 안 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이 들 지경이다. 이것이 이모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집에 계속 와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