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시대 아지트는 하드웨어 성격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적인 측면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지트란 원래 비합법적인 운동의 근거지로 사용되는 집합장소를 뜻하나 여기서는 영어로 숨겨진 나만의 장소 ( Hiding place, safe house)의 의미로 해석해주면 좋겠다. 내가 편안하게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책이나 신문을 읽을 수도 있는 아주 편안한 곳이다.
기업체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시니어로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나머지 삶을 보내는 아주 좋은 아지트가 나에게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평소 강조하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데 아주 좋은 장소로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며 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의 아지트는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CM국제계약연구소 블로그가 인기를 점차 누리면서 나는 이제 블로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가끔 블로그를 광고목적으로 임대하던지 아니면 사겠다는 제의도 받지만 나의 독자들이 편안하게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일체 사양하고 있다. 나의 아지트를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운용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송파의 사무실은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성격의 아지트이고 나의 블로그는 수많은 소프트웨어 중에 하나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정동의 송파 사무실은 CM 국제계약연구소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나는 해외로 사업을 진출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인들의 귀와 입이 되는 컨설팅을 하고 있다. 해외사업경험이 부족하거나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반 업무에 대한 컨설팅을 회사 실정에 맞게 나의 40여 년간의 직장생활 중에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근간으로 아주 저렴한 경비로 해주는 것이다.
아주 어려운 회사나 기업인을 위해서는 무료봉사도 한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서로 하는 계약업무나 합리적인 협상 등의 업무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인 업무에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컨설턴트의 도움이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일반화가 되어 있지 않은 이 분야는 국가적으로 우리나라를 중진국으로 진입시켜 경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국가에서도 최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대학원에서 국제계약학과를 신설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이 분야를 법무 분야처럼 일반화시켰다면 우리나라 해양플랜트 사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사전 예방을 하였거나 적어도 반감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문제도 생기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항상 “계약이 반이다.”라는 말을 고객들에게 자주 사용한다. 그 만큼 제반 사업의 시작은 계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사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수 조원 대의 적자를 보고 있는 해양플랜트 및 건설 분야의 사건도 잘못된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꿈, 모든 해외사업자들이 경제의 흐름을 읽고 합리적인 계약을 해서 적자를 보지 않고 항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의 저변을 확대하는 사업을 위해
나는 블로그 이름도 CM국제계약연구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 나는 아직도 청춘이고 그 꿈을 향해 오늘도
Active Senior로서 도전하고 있다.
글 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 전략명함 코디네이터
디지털 자원봉사란?
주변을 보면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 많다. 가까운 지인들만 봐도 복지관, 양로원 혹은 자원봉사 센터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자원봉사를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두 번 나가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뜻에서 시작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내가 원하는 활동이 아니라서라는 등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생기고 결국 그만두게 된다. 자원봉사는 거창하게 시작하면 지속하기가 어렵다. 작지만 가볍게 그리고 재능과 어울리는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자원봉사를 생각해 보자. 디지털 자원봉사는 해외에서 프로보노라는 전문가 봉사활동에서 나온 개념이다. 디지털 자원봉사를 하려는 정년을 앞둔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 준비시간을 준다. 그리고 기업생활의 경험이나 전문적인 능력을 비영리단체가 처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토록 한다. 직접 찾아가서 돕는 게 아닌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궁금한 점을 알려주거나 컴퓨터를 원격으로 제어하고 어려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디지털의 힘을 빌리면, 무쇠팔?
“디지털 자원봉사를 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디지털과 사람을 연결하면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여행을 오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 중 다쳤거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언어가 안 통하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이럴 때는 주위에 언어가 가능한 사람을 찾는 방법도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번역 봉사를 하는 사람과 연결해주는 방법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bbb코리아라는 NGO단체가 있다. 통역을 도와주는데 특이하게 휴대폰으로 통역을 도와준다. 길에서 만난 외국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bbb통역이란 어플로 해당 언어를 선택하면 통역을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와 연결이 된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총 19가지 언어가 있어서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당황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다. 비록 나에게는 없는 통역 능력이지만 연결해 주는 것만으로도 도울 수 있다는 게 디지털의 힘이다.
필요할 때 요청하는 봉사활동
bbb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는 우리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공부나 일을 하는 중에 스마트폰으로 도움 요청이 울리면 일을 잠시 그만두고 통역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렇듯 봉사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가도 스마트폰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짬을 내서 도와준다.
이와 비슷한 봉사가 있다.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활동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많지만 그중에서 유독 불편한 상황이 있다고 한다. 우유를 사왔는데 유통기한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거나, 약을 먹으려 하는데 약 봉투에 쓰여진 글자를 보고 싶을 때 난감하다고 한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be my eyes’라는 어플이다.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봉사자에게 연결되고 봉사자는 시각장애인과 연결된 스마트폰 화면을 동시에 보면서 말로 설명해 준다. 떨어진 물건을 찾아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외출할 때 색깔 옷을 골라주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입소문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을 내어서 하는 봉사가 아닌 짧지만 요청이 있을 때 도와주는 디지털 방식의 봉사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짧지만 누군가를 도와준 강력한 경험이 다른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나눔의 경험을 만들어 보자.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을 통해서 말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2008년 이 전 장관이 출간한 에서 그가 제시했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담긴 책이 바로 이다. 단순 명료한 책 제목만 보아도 이전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굵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책을 낸 것은 아니다. 은 그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자 사명감, 후세대를 위한 바람이 담긴 ‘인생작’과 같다. “이제 내 할 일을 다 했다”며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다.
“2005년에 세종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준비했던 책이 입니다. 번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역사, 정책, 문화적 상황에 따라 설명했어요. 그 책을 쓰면서 꼭 그에 대한 결론을 내는 책을 쓰고 죽겠다고 결심했었죠. 한 10년쯤 후에 쓸까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보다 훨씬 앞당겨 쓰게 됐어요.”
그가 예상보다 책을 일찍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다. 번영학은 신자유주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 논리와 ‘경제하려는 의지(will of economize)’를 바탕으로 한다. 리먼브라더스 사건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이 왜곡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를 무너뜨렸다. 갑작스러운 경제 상황의 변화로 그는 하루라도 일찍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인위적인 통화 공급으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무너져버렸죠. 여러 가지 발전 전략이나 가치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신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이 경쟁이거든요. 발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 수 있죠. 신자유주의의 경쟁체제를 가지고 개발도상국 시대의 발전의 의지를 접목하자.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조금 확대돼야 한다는 게 번영학의 기본이자 의 결론과 같아요.”
모두 다 한번 잘살아 보세~
번영(繁榮)이란 번성(繁盛)과 영화(榮華)를 이른다. 번성은 객관적으로 번창하고 풍성한 상황, 즉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한 경제적 풍요를 의미한다. 영화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화로움과 영예를 뜻하는데, 객관적인 경제적 의미보다는 사회적 의미의 주관적 상황과 개인의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번영이란 경제적으로 풍족한 조건과 더불어 개인의 영예, 행복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 거기에 현재의 번영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내가 현재 연간 소득이 1억원이라 하면, 10년 후에도 1억원이면 되겠어요? 현재보다 발전한 소득수준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이 많다고 행복한가? 그 돈이 영예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도둑이 훔친 돈으로 잘 먹고 잘산다고 하면 소득 수준에는 문제없겠지만 내 가족이나 이웃에는 떳떳하지 못하잖아요. 나를 번창하게 하는 그 돈이 영예로워야죠.”
그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것 또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래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 우리는 너무나도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는데, 그런 내가 삼시 세 끼 챙겨 먹으면 행복하지 않겠어요? 소위 절대빈곤 타파라 하는데, 그저 세 끼 먹는다고 만족할까요? 매일 채소만 먹는 것보단 고기반찬도 먹고 해야 좋을 거 아녜요. 그게 생활의 질이에요. 그러면 내가 좋은 반찬을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할까요? 이웃도 잘 먹고 잘살게끔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죠. 그래야 ‘저 사람 참 훌륭하다’는 인정도 받고 개인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용과 인정이 행복 조건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현재 삶의 행복 점수, 70점
행복 가치 추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그에게 자신은 얼마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70점 정도”라고 대답했다. 이 전 장관은 현실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30에 연연하기보다는 소소하게 채워진 70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을 쓰는 일도 행복하고, 손주를 보는 것도 즐겁죠. 다들 그런 재미로 사는 거 아니겠어요? 집 근처에 서재를 마련했으니 글을 쓰고 싶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것도 행복해요. 이번에 책을 내고 동료들이 의견을 내서, 실제 관련 일을 했던 이들 중심으로 한국번영학회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6월에 시작하는데, 내가 일을 벌였으니 학회장을 맡았죠. 근데 뭐 그게 일인가요. 이제 나이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일종의 놀이인 셈이죠. 아주 즐거워요.”
아쉬운 30점에 대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돈을 좀 더 잘 모아둘 걸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랬다면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봉사나 기부도 그렇고요. 그런데 내가 재벌이나 기업가도 아닌데 돈이 그렇게 많으면 되겠어요?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주관적인 평가거든요. 본인이 기준을 잘 설정해서 만족하고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얼마나 많겠어요. 아쉬운 점은 있지만 고맙게 생각해야죠. 나름의 기준은 있어 점수를 매길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 나이에 그것에 좌지우지되거나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현재의 삶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는 인터뷰 중 올해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렸다. 인터뷰 전 날이 바로 어버이날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잘해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챙겨드릴 부모님이 이제는 안 계시다는 것이 못내 허전하다고 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그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어머니는 100세를 사시고 금년 1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1990년대에 고향집을 떠나 서울로 오셨어요. 그때부터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는 여의도에 집을 마련하시고 생활을 하셨죠. 아마 두 분이 계속 시골에 사셨더라면 부모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적었을 것 같아요. 근처에 사시니 매일 보고 이야기도 하고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었죠.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진정한 은퇴 라이프의 시작
3년을 투자한 끝에 출간한 . 자기만족만을 위해 썼다면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며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 후손들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리라는 바람을 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로 대학교 4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때도 참 보람 있고 좋았어요. 하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무관부터 시작해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계획에 참여했다는 거예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가슴 뿌듯한 일이 더 많았죠. 다른 점에서 볼 때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은 안 되지만, 그만큼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서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요. 개인적으로 나를 위해 했던 일도 아니니 후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남겨야죠. 그들이 보고 ‘과거의 경제 계획은 이랬구나. 이러한 이론이 있고 상황은 어떠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자신은 잠시도 가만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 일을 할 때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했고,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겼으며, 요즘도 중국어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3년간은 해외 일정이나 모임 등을 자제하고 원고 작성에만 몰두했다.
“책 출간하느라 바빠서 운동도 잘 못 다니고 해외도 거의 못 나갔어요. 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흔히들 말하는 은퇴 라이프가 다소 건조하긴 했죠.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충만하게 하고 즐거움을 줬는지도 모르겠어요. 최근까지는 원고를 쓸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요. 정말 죽기 전에 꼭 하자 하는 것을 이뤘으니, 이제 죽기 전까지는 좋아하는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며 지내려고 해요.”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르신이 되라
그가 지금까지 낸 책은 모두 경제와 관련된 전문서적들이다. 그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남들이 선망할 만한 일을 많이 해왔는데도 자서전을 낼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노년기 삶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 그런 데에는 아내의 조언이 한몫했다.
“아내에게 매일 듣는 말이 ‘노인네가 되면 안 돼요. 어르신이 돼야 해요’입니다. 상당히 좋은 충고라고 생각해요. 노인네가 된다는 게 뭐겠어요. 목소리 높이고 잔소리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저 사람 참 잘 늙었구나’해야 어르신이 되는 거죠. 전에는 경제정책 운용과 관련해서 정부가 뭐를 한다 그러면 언론에 글도 쓰고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그런 것도 안 하고 있어요. 그렇게 떠들어봐야 늙은이 잔소리니까요.”
그는 최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관한 글을 읽고 본받아야겠다고 느낀 점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의 사위가 쓴 글이었는데, ‘장인어른은 가족 문제나 자식 일에 대해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자식이나 손주의 일에 가능한 한 나서지 않고 간섭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의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밥 먹고 생각하는 게 늘 나라 경제 운용에 대한 것이니까, 물론 얘기야 하고 싶죠. 내가 볼 때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나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현재의 장관이며 총리며 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처럼 바뀌겠어요? 아니거든요. 결국 잔소리거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에 담았어요. 거기에 그동안 살면서 쌓은 경험, 지식, 조언 등이 담겨 있으니 자서전과 다름없지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 토요일 오후.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서울 동작종합사회복지관을 방문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라 부르기엔 앳된 얼굴을 한 그들의 가운에서 ‘소금회’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20년 넘게 동작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다는 이들은 국가유공자 자녀 중심으로 꾸려진 ‘소금회 대학생 의료 봉사단’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한다는 소금회 학생들이 흘린 건강한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86년 결성한 소금회는 국가유공자 의대생 자녀들이 부모세대와 국가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의료 봉사단이다. 30년이 흐른 지금, 일반 의료계 전공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대학 연합 동아리로 발전했으며, 해외 의료 봉사도 나가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봉사단은 크게 진료반(의과대학 학생), 치과반(치과대학과·치위생학과 학생), 간호반(간호대학 학생), 약국반(약학대학 학생)으로 나뉜다. 의과대학은 서울대·연세대·한양대·중앙대·순천향대 학생들이고, 약학대학은 이화여대·숙명여대, 간호대학은 가톨릭대, 치과대학은 연세대, 치위생과는 영동대(永同大) 학생들이다. 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이기 때문에 평균 연령은 24세 정도로, 대부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2년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회 창단 초기에는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무의촌(無醫村)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했다. 동작종합사회복지관에선 20년 넘게 격주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의 말벗과 상담, 방문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소금회 회원들은 태풍 ‘매미’로 인해 전염병이 우려되었던 충북 영동군 상촌면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매년 여름이면 상촌면을 찾아 진료 봉사를 한다. 현충일에는 국립현충원 국립묘지를 찾은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과 응급 처치 등 의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희생을 통해 배운 베풂의 미덕
매년 그들이 하계 진료 봉사를 위해 떠나는 상촌면은 병·의원이 한 곳도 없는 의료 취약지이다. 소금회 회원들은 3박 4일 동안 여름날 한낮 태양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다. 지난해부터 소금회를 이끄는 이상원(李相沅·23·한양대학교 의학과 4학년) 회장은 “아직 학생들이기 때문에 병을 완벽히 치료하거나 아픈 것을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겠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작은 조언을 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정말 기쁩니다”라며 어린 학생들의 작은 손길이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에 일조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많은 소금회 회원이 3박 4일간의 봉사활동을 의미 있게 여긴다.
“우리가 이렇게 뜻깊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부모세대는 우리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난 이후 한국전쟁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며 지금의 이 나라를 만든 고마운 분들이죠. 그들은 자녀 세대가 잘 성장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 주셨잖아요. 건실하게 잘 자라고, 남을 위해 베푸는 자세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남을 위하는 봉사는 결국 나를 위하는 길
공부하고 학과 수업 따라가기 바쁜 의대생에게 주말과 여름방학은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달콤한 휴식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 활동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막상 결심을 했더라도 쉬는 날이 되면 침대를 벗어나기 어렵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기 힘든 것이 현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이 회장이다.
“봉사는 자신의 일부분을 포기하며 그만큼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 생각해요. 자기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는 힘들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죠. 부모님은 항상 남에게 베풀라고 가르치셨어요.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베푼다는 것이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베푼다는 것’이 참 막연했는데, 소금회를 통해 좋은 친구들과 체계적인 방법으로 여러 사람에게 베풀 수 있게 된 것 역시 감사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소금회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개 부럽다는 반응을 보여요.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봉사하는 단체와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만큼 의미를 갖고 열심히 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 회장은 봉사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바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으로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일단 결심을 했다면, 어떤 단체에서 들어가서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게 좋아요. 제가 아직 누군가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니지만, 또래의 친구들에게 한번 해보면 봉사의 참맛을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은 할 수 있어요. 물론 자신도 챙기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봉사란 그렇게 많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오랫동안
봉사 현장에 나간 소금회 회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고맙다”는 인사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이 한마디가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보람을 느끼게 한다.
“한 달로 치면 총 7~8시간,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 큰 고마움 선사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짧은 시간이더라도, 내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이 뿌듯해요.”
지난 30년 동안 묵묵히 어려운 이웃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소금회. 국가유공자 자녀를 중심으로 생겨난 봉사단체인 만큼 매년 현충일에는 국립현충원에서 뜻깊은 봉사를 한다.
“올해 현충일에는 혈압, 혈당을 측정하고 간단한 건강 상담을 할 예정이에요. 보훈처 직원과 미리 만나 봉사할 내용을 보고하고, 현충원 내에 부스를 지정받아요. 소금회 회원들은 6월 6일 오전에 장비를 설치하고, 현충원 행사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의료 봉사 활동을 시작합니다.”
또 다른 활동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이 회장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그동안 걸어온 소금회 활동의 명맥을 유지하고, 회원들의 변함없는 마음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선배들이 활동해온 것 외에 추가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저 우리가 보는 어르신들, 주민들이 앞으로도 건강하기만을 바랍니다. 또 함께 하고 있는 회원들, 그리고 미래의 회원이 될 학생들도 소금회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부모세대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보람과 경험을 계속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 가더라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계곡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은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 같은 계곡 정신을 그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했다. 진정한 승자는 세월이 지나봐야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필자가 마음속 깊숙이 간직하면서 괴롭고 힘들 때 되뇌이는 생활신조다.
필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미 암소 1마리를 키우면서 새끼를 낳으면 가축시장에 팔아서 생활비와 교육비를 충당하고, 논과 밭을 소작해 먹을 것은 해결하며, 산 비탈길에서 잡목을 베서 집까지 지게지고 와서 말린 후 땔감으로 사용하는 그런 집이었다. 필자 집에선 여름철 더위는 볏짚으로 만든 멍석을 마당에 깔아 놓아 이기고, 모기와 벌레는 잡풀로 연기를 만들어서 퇴치했다. 또 부러진 소나무 옹이를 태워서 저녁 밤을 밝혔다.
이렇듯 옹색했으나 낭만도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저녁 밤하늘의 반짝이는 유난히도 많고 별들을 누나와 동생들이랑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면서 별의 개수를 셌다.
부모님은 무척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귀뚜라미와 여치, 소쩍새와 부엉이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으면 당시에는 시계도 없는데도 달그림자가 기울어진 정도와 대기 온도 차이로 시간을 말씀하시곤 했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식 때나 어린이날, 각종 행사 때는 부유한 집안의 친구 부모들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돈 들여 파마까지 하고 온다. 특히 생전 처음 보고, 먹어보는 음식과 다과를 가지고 온다. 이런 음식을 필자는 내내 계속 얻어먹기만 했다. 필자는 이들의 이런 생활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목표로 삼았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할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부자 친구와 부모들에 감사한다.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으나 돌이켜보면 너무 짧은 추억의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흘러간 세월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시내 아이들은 학원 다니고 공부하는 동안 소 풀 먹이고, 소 풀 베면서 잠깐의 틈바구니 시간을 활용해 공부했다. 그래서 항상 손에 책을 들고 다녔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먹고 살기 힘든 집안에서 대학은 꿈도 꿀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 동화에 나오는 ‘상상의 우주선’이었다.
초등학교를 6살에 조기 입학해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는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는 최소 연령에 미달해 응시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직업 전선에도 뛰어들 수 있는 실력도 없어 공학도가 되기로 했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기술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대학 전기과에 입학했다. 남들은 대학의 낭만을 즐기고 여행가는 사이 자격증 취득 공부와 취업준비에 매달린 결과 졸업반 여름에는 최연소 기사자격증 3개를 취득하고 국가공무원 및 한전 입사 시험까지 동시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필자는 두 가지 직장 가운데 국가공무원을 선택했다. 공무원으로서 첫 발령지는 연고도 없는 서울이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던가. 기대에 부풀어 첫 월급을 받았는데 숙박비와 식비도 충당도 못 하는 수준이었다. 공무원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계속 통장 잔액가 마이너스 되는데 이걸 누구에게 손 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고민만 쌓이는 사이 한국전력공사 신입사원 연수원 입교통지서가 날아왔고 미련 없이 공무원은 사직서를 내고 한전에 입사했다. 한전은 월급이 공무원의 3배가 넘었다. 그 당시엔 후회 없이 잘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전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화력발전소에 처음 부임해 교대근무 37개월 후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으로 보직을 변경됐다. 그런데 우선 용어와 도면, 시방서, 서류가 모두 영어로 돼 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 건설 기술이 없어 외국인들이 같이 투입됐는데 이들과도 영어로 소통해야 했다. 영어와 사투하느라 힘들었으나 그래도 신기술 분야여서 정말 흥미로웠다. 하루 종일 보고, 배우고, 현장 쫓아다니고, 온통 정신없이 업무에 몰두하다 보면 하루해가 언제 가고 오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는 외국인은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5시 퇴근하게 돼 있었지만 한전 직원은 오전 8시 출근에 오후 퇴근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한마디로 일에 미친 미치광이처럼 업무에 몰두했다.
필자의 원자력 건설 처음 10년은 외국인들에게 배우는 시기였고, 그다음 10년은 국산원자력발전소 1호의 건설에 참여하는 성장기의 단계였으며, 이어 10년은 선행호기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고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립기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기술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바지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이런 공로로 국가품질명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품질상은 말보르상이지만 국내에서는 품질경영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품질상은 국가품질명장이다. 제안 실적, 설비개선 건수 및 개선 실적, 꾸준한 품질 개선 활동 실적, 자격증 취득 건수, 품질교육 실적, 사회봉사활동 시간, 현장 경력, 품질경진대회 포상실적 등으로 1차 서류심사를 한 뒤 2차 필기시험, 3차 현장실사, 4차 면접시험을 거쳐서 최종합격자를 가린다. 선출된 품질명장은 매년 10월 정부주관 품질명장 및 뺏지 시상식이 부부 동반으로 거창하게 치러지고 있다. 국가품질명장이 되면 사내에서는 사장상 공로 1등급과 해외교육, 사내외 품질개선활동 심사위원, 품질교육 등 다양하게 후진을 양성하도록 기회가 주어진다.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Care)는 시대적 소명이다. 선진국일수록 보건환경 개선으로 고령화는 필연이며 반면 출산율은 점점 줄어들어든다. 당연히 전체 인구는 고령화와 저 출산이 서로 상쇄되어 별로 줄지 않지만 사회인구는 점점 고령화가 되어간다. 고령화 사회의 노노케어는 젊은이들에게 생산과 후세 교육에 전념토록 할 수 있는 여력을 주고 활동적인 시니어에게 새로운 일자리 창출된다. 필자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노노케어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로 이론적인 재무장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노인운동지도사. 수지침사, 맛사지사 등 다수의 민간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지금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전문 자원봉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
치매는 고령화 사회에서 환자도 그렇지만 가족도 제일 겁먹는 질환이다. 중풍은 의식이 있는 본인이 괴로운 병이라고 하면 치매는 가족이 고달픈 병이다. 가죽 끈 같은 끈끈한 가족의 유대감이 없으면 한식구라는 관계가 어느 날부터 해체되고 심지어 치매 환자를 죽이기까지 한다. 치매는 병인데도 일반인이 치매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에 제발 정신 차리라고 환자를 때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80대의 치매할아버지가 철로를 걷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치매할아버지의 법률상 보호자인 할머니에게 열차 지연에 대한 벌금을 부과 하였다. 할머니도 고령인 데다 할아버지의 매 순간을 감시할 수 없었다고 항변하였지만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 의외인 것은 아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하며 그 이유로 같이 살지 않는 다는 점을 들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봉사자의 한사람으로 치매는 외로워서 생기는 병이라고 감히 말한다. 치매는 영어로 Dementia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인지증(認知症)이라고 하지만 한자로는 치매(癡呆)라고 쓴다. 치매 글자는 癡(어리석을 치) 呆 (어리석을 매 )자로 무릎을 탁 칠만큼 치매환자의 상태를 글자의 의미에 잘 담고 있다. 癡 는 병질부 즉 암(癌),병(病)과 같은 병질부를 쓰고 있으며 안에는 의심할 의(疑 )자가 들어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소통이 없으면 남을 의심 하게 된다. 소통이 없는 치매환자는 의심이 많다. 자기 물건을 자기가 숨겨놓고 숨긴 사실을 잊어버린 채 누가 훔쳐갔다고 남을 의심한다. 심지어는 요양보호로 방문한 요양보호사와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서로 소통이 원활한 사람은 의심이 있을 이유가 없고 이런 사람은 치매가 없다. 매(呆) 자를 자세히 보면 나무(木)위에 입(口)을 내미는 형상이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말할 상대를 찾으러 나무위에 올라가서 입을 내밀어 보겠나?
결국 대화 상대를 못 찾고 어리석을 매(呆)자가 되어 치매환자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바꾸어 말하면 혼자 외롭게 살면서 말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 치매에 잘 걸린다. 사람의 의사소통의 기본이 말인데 말할 상대가 없으면 외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치매 한자를 풀어 의미를 새겨보면서 치매는 외로워서 생기는 병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치매는 외롭게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친구하자고 찾아온다. 최근 치매는 노인성 질환이라는 통념과 달리 20∼30대 청년층 치매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생활과 운동부족, 음주 및 우울증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런 이유 말고도
사람사이의 대화소통에 주목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가족사회며 농경사회여서 가족, 이웃 간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 졌다. 나이 들어 노동에 종사 못하고 집에 혼자 남게 된 노인들이 치매에 많이 걸린다. 치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치매 환자분들을 만나보면 대개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현대의 치매 환자의 증가는 점차 대화가 없어지는 가정과 이웃, 현대 사회가 주범이라 생각한다. 1인 세대가 늘어가고 혼자 밥 먹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사람끼리 모여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카톡으로만 대화한다.
카톡으로 반갑게 대화하던 사람도 실제 만나면 시들해진다. 카페인 중독이라 하여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터넷은 중독에 가깝도록 이용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직접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키스하는 감질내는 형국이다.
보건 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치매로 인한 비용도 2008년 8,625억 원에서 2012년 1조9,234억 원으로 123%나 늘었다. 세부적으로는 의료비(4,826억원→1조1,891억원), 교통비(10억원→23억원), 간병비(3,146억원→6,217억원)와 같은 직접비용이 모두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돼 2020년에는 18조9000억 원, 2030년에는 38조9000억 원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의료과학의 발전으로 획기적인 치료약이 개발되겠지만 가족이 해체되고 이웃과 고립화되어 혼자 살아가는 외톨이들 에게는 치매는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은퇴하기 전에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낼 것인가 고민하기 전에 남들과 어울리는 소통력을 시니어들은 키워야 한다.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것보다 친구랑 함께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부부가 함께 행동을 하면 좋겠지만 3,4십년을 서로 다른 생활을 바쁘게 해오다가 어느 날 퇴직했다고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서 함께 지내려고 하면 평소 못 보던 단점을 자주 보게 된다. 퇴직 후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부부를 방송에서도 주제로 다룬다.
평소 이웃사촌이라는 동네친구를 사겨야 한다. 좋은 이웃친구란 나와 경제력이 비슷하고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다. 시니어들은 살아온 세월이 있어 나와 잘 맞을지 않을지는 금방 알아낸다. 성격상 잘 맞지 않는 부분을 고치려하거나 한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계속 친구로 지내려는 생각은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이 들면 성격은 고치기 어렵다. 빨리 헤어져야 한다. 지금 가입해 있는 스포츠나 취미 동호회가 있다면 목숨 줄처럼 꼭 붙들어야 한다. 나이 들어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려고 하면 잘 받아주지도 안을뿐더러 혹 받아준다고 해도 개밥에 도토리처럼 외톨이가 되기 쉽다. 그런 면에서 탁구나,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등 적성에 맞는 스포츠를 좀 젊었을 때 배워두면 좋습니다. 필자는 테니스를 30년이나 함께한 동호회가 있는데 주말이면 함께 늘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나이 들수록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 인문학은 사람과 소통하는 도구요 자산. 필자는 해마다 실시하는 동네 도서관의 독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5만 페이지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서 상도 받는다. 막연히 하는 것보다 무슨 일이든 목표를 세워서 하면 동기부여가 확실하여 달성하기가 쉽다. 읽은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남들과 대화를 할 때 녹아 나온다. 남들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울리며 소통하는 여유로움이 치매예방주사다.
최근 우리나라에 상영된 영화 ‘인턴’은 40여 년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중년을 넘어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한 70대 남자 벤(로버트 드니로 분)과 쇼핑몰을 창업하고 빠른 기간 내에 열정적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궤도에 올려놓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임에도 놀랍게도 최근 우리 사회의 세 가지 화두라 할 수 있는 일과 가정(육아)의 사이에 놓인 워킹맘의 고충, 일하고 싶어 하는 중ㆍ장년의 경제활동 문제. 그리고 이들 청년과 장년의 소통에 관한 내용을 잔잔하게 끌어내고 있다.
노년의 벤은 부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지만 혼자서도 완벽함에 가깝게 집을 꾸미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취미생활을 하고, 적당한 운동ㆍ봉사까지 하는 등 어찌 보면 굳이 일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부러운 시니어다. 그런데도 그가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며 설레는 모습으로 출근하는 것은 돈을 넘어서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느끼기 위함이다. 꼭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행복한 노년을 위해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것이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인턴 생활을 시작한 벤은 40년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살려서 회사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거나, 나이만큼 풍부한 경험을 살려 멋진 아이디어를 내지도 않는다.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며 때론 귀찮아하기까지 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성급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주 서서히 따뜻하게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동안의 사회경력에 비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사소한 일도 즐겁게 성심껏 해내면서 차츰 그들만의 젊은 세상에 든든한 동료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간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다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일을 포기하려는 줄스에게도 ‘인생이란’ 따위의 거창한 충고를 한다거나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최고야” “너는 잘해왔고 너만큼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은 없어”라고 자부심을 심어 줘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도와줬다.
여기서 한국 시니어들이 청년과의 소통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 청년들이 ‘꼰데’ 운운하며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행동이나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야’, ‘요즘 젊은 애들은’ 따위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시니어도 이 영화의 주인공 벤처럼 울고 있는 청년들에 어설프게 충고하기보다는 ‘손수건은 나를 위해 소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이다’라며 손수건을 건네주는 따뜻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요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 섬(Hilton Head Island)이 은퇴자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애호가라면 PGA투어 RBC 헤리티지대회가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하버타운 링크스코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힐튼 헤드 섬은 미국의 은퇴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기후는 한파에 시달리는 뉴욕, 보스턴 등 도회지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수온은 수상 스포츠에 최적이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니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즈넉한 대서양 해변과 하얀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된 마리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항구의 전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모래와 맑고 깨끗한 습지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울창한 떡갈나무 숲은 대자연이 주는 은퇴기념 선물이며, 넉넉한 남부 인심은 은퇴자들에게 기를 불러 넣어주는 활력소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짭짤한 갯바람을 맞으며 16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30여 개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의 허무감은 어느새 충만감으로 바뀐다.
카약, 승마, 테니스, 낚시 등 갖가지 스포츠와 취미활동은 힐튼 헤드 섬의 주요 일과다. 19㎞에 걸쳐 펼쳐진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관찰하며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을 위해 해변의 조명을 모두 끌 때면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저지대 늪지에서는 새우와 게를 쫓아다니는 푸른 왜가리와 큰 입을 딱 벌리고 햇볕을 쬐는 악어를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맨해튼(여의도의 30배)만한 넓이의 힐튼 헤드 섬에서는 4만여 주민이 오순도순 지내지만 해마다 250만 명의 외지인이 찾아와 한가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쇼핑 환경도 맨해튼 수준이다.
특가 상품에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할 독특한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200여 개의 아웃렛과 상점, 그리고 6곳의 마리나 빌리지 상가는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5시간, 사바나에서 45분(57㎞) 거리에 있는 힐튼 헤드 섬은 큰 다리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어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이나 사바나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동부 연안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힐튼 헤드 섬은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따뜻한 기후와 야자열매,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던 곳으로 1663년 영국의 윌리엄 힐튼 선장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힐튼 헤드’라고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73%가 은퇴자를 위한 주택단지
힐튼 헤드 섬의 73%는 10개의 대단위 리조트형 주택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단지 가운데 상당수는 매입 자격을 55세 이상의 신중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실내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테니스장, 연회장,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고 호수와 숲, 골프 코스와 마리나가 인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섬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평균 6차례 이상 방문하여 생활환경을 체험한 후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과 격이 없이 지내는 이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 썰물 때면 90m나 밀려나 숨겼던 민낯을 드러내는 갯벌을 산책하면서 돌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 섬의 지난해 주택매매 가격은 단독주택의 경우 52만달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는 20만달러 수준. 침실과 화장실이 각 2개인 아파트는 20만~40만달러, 단독주택은 25만~45만달러, 그리고 침실과 화장실이 각 3개인 주택은 40만~70만달러를 호가한다. 바다 경치가 아주 좋은 주택은 150만달러를 훌쩍 넘고 700만달러를 호가하는 그림 같은 주택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6개월 정도만 빌려 살아볼 수 있는 아파트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스튜디오형은 월 평균 600달러, 침실 1개짜리는 800달러, 침실 2개짜리는 900달러 수준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며칠만 빌릴 경우에도 임대료가 치솟는다. 침실 1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도 전망이 좋으면 1주에 1200~1800달러, 해변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면 1000~1200달러 정도다. 봄과 가을에는 20% 정도 할인되고 겨울에는 50%나 싸진다. 2억달러 넘게 투입해 새 단장을 한 리조트의 하루 방 값은 일반형 기준으로 130~340달러 수준이다.
주거비가 웬만한 휴양지나 은퇴자 생활지보다 비싸지만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총지출은 맨해튼의 50%, 워싱턴이나 보스턴의 75% 수준을 넘지 않는다. 재산세가 다른 지역의 25% 수준인 데다 소득세, 소비세 등 각종 세율이 낮고 85세 이상의 주민에게는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과 휘발유 값이 저렴한 것도 수월찮게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현역 시절 주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이용하다가 은퇴 후 눌러앉은 사람도 적지 않다. 세컨드 주택을 구입하면 세제 및 금융 혜택이 있는 데다 에어앤비를 비롯한 휴가용 주택 알선 사이트가 붐을 이루면서 목 좋은 곳의 별장은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이 테러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허리케인이다. 힐튼 헤드 섬 주민들은 1850년 이후 섬 주변 반경 80㎞ 이내로 81차례의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인지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과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취미활동 그리고 평생교육도
힐튼 헤드 섬에서는 축제와 이벤트가 풍성하다. 해마다 열리는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 해산물 축제, 고기잡이 경진대회, 카약과 보트 경주 등은 주민과 관광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멋을 살린 음악 카페, 길거리 밴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늘어선 메이 강변에 각종 포장마차와 공예품 전시판매점까지 어우러지면서 남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6㎞ 떨어진 블러프턴의 소도심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남북전쟁 때의 화재와 파괴를 견뎌낸 대농장주의 저택과 교회는 박물관과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와 옛 건물은 그림엽서로도 간직되고 있다.
은퇴자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요트, 카약, 낚시 등에 빠져 있는 ‘해양스포츠파’, 생태관찰 보존과 식물 재배에 몰입한 ‘에코파’, 골프, 사이클, 테니스와 달리기 등을 주로 하는 ‘육상스포츠파’, 공예품 만들기, 독서, 해변 일광욕, 흔들의자 등을 즐기는 ‘정중동파’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평생교육은 이곳 은퇴 생활자들의 공통된 일과다. 해안사구와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에서부터 노약자 서비스, 도서관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은 오셔평생교육원은 1600명의 은퇴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400여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회비 40달러에, 수업료는 과목당 15달러. 모두 다 합쳐 연간 95달러를 넘지 않게 책정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관심 분야를 배운다. 학습을 하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에 들어간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관련 전문매체의 힐튼 헤드 섬 예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최고의 은퇴 생활지’, ‘인생을 바꿀 건강한 봄철 휴가지’, ‘하계 모임을 위한 남부 최고의 장소’, ‘2016년 북미지역 최고의 골프 휴가지’, ‘캐롤라이나 남부 최고의 사이클 친화지역’, ‘미국 남부 5대 하계 가족휴가지’, ‘세계 50대 테니스 휴양지’, ‘미국 최고의 섬’,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은 섬’, ‘사우스캐롤라이나 최고의 해변’, ‘2015년 세계 최고의 여행목적지’ 등등. 이런 찬사 덕분에 이 지역 은퇴 생활자들의 만족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볼링그린공원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 동상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뉴욕시립대학교. 아침 10시 무렵이 되자 세련된 차림새의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들어간다. 주변에 밀집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직 인사들처럼 보이지만 평생교육원에 등교하는 학생이자 교수들이다. 배우, 심리학자, 엔지니어, 의사, 교수, 언론인, 관료, 금융전문가, 기업인, 음악가, 미술가 등 전문직업인으로 맹활약을 했던 은퇴자들이다. 틈틈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유로우면서도 열정적인 은퇴생활을 누리고 있는 신중년들이다.
스스로 가르치며 배우는 평생교육원 ‘퀘스트(Quest)’. 학교명처럼 진리 탐구를 갈망하는 신중년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배움터이자 아지트다. 취미활동과 문화 탐방 여행과 친밀한 교우관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커뮤니티 기능을 하고 있다. 안내서에 나열된 올해 봄 강좌가 얼른 봐도 30개를 넘었다. 고대 그리스, 마음과 뇌, 시 낭송, 클래식 록 앨범, 현대 오페라, 위대한 연극, 현대 단편소설 등 웬만한 대학 강좌보다 수준이 높지만 교수가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는 ‘교수’와 ‘학생’의 구분이 없고 모두 ‘회원’으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전문가 출신 회원들이 직접 강의를 하고 관심 있는 회원은 강의를 신청해 수강을 하는 자급자족 방식이다. 현역 때는 배우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득이 접어야 했던 학업과 취미와 봉사활동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2주에 한 번은 외부 특별 강사를 초빙하여 지적 탐구심을 더 높이곤 한다. 1년 3학기제로 운영되며 가끔 숙제는 있지만 시험이나 출석 점검은 없다. 한 과목만 수강하나 전 과목을 다 수강하나(물리적으로 불가능) 1년 회비는 500달러. 등록금은 물론 없다.
강좌 개설을 포함한 퀘스트 운영의 거의 모든 사항은 협의회와 분과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협의회는 회원들 중에서 선출된 임원 7명과 재정담당관 등 4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되고 2년 임기의 회원 대표가 회의를 주재한다. 산하 4개 위원회는 회원들로만 구성돼 강좌 개설, 교육자재 관리 및 섭외, 회원 관리, 각종 행사 기획 및 일정 조정 등을 나눠 담당하고 있다. 뉴욕시립대학은 장소와 행정적 도움만 줄 뿐이다.
오는 5월이면 개원 21돌을 맞는 퀘스트의 출범 내력을 알고 나면 이런 자율적인 운영 시스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성 있는 뉴욕의 은퇴자 교육기관이 은퇴자들의 생각과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입학 절차와 학사 관리를 매우 까다롭게 하면서 등록금까지 높이 책정하자 40명이 함께 탈퇴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이 1995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함께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백방으로 물색하던 차에 뉴욕시립대학과 뜻이 맞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배터리파크를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맨해튼 최고의 위치에 자리한 퀘스트는 자율적인 평생교육을 갈망했던 40명의 결단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다.
새로운 이념으로 퀘스트의 설립을 기초한 40명 가운데 로버트 하트만 회장을 비롯한 10명은 지금도 퀘스트의 열렬 회원이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창립 회원인 샌디와 앨 고든 부부는 매년 발간하는 종합 문예지 20주년 기념 특별판 기고문에서 “퀘스트와 함께한 지난 20년은 결코 지루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우리 은퇴자의 꿈은 따뜻한 햇볕을 쬐고 놀이와 내기나 하면서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모험적인 사람들과 함께 지식을 넓혀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롤 아브람스, 스텔라 체이스, 베버리 프란쿠스, 에버린과 러셀 굿 부부, 조 나탄 등 다른 창립 회원들도 퀘스트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대단하다.
멤버십 위원회의 에바 샤트킨 위원장은 퀘스트를 찾는 방문인을 일일이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다. 설립 때의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샤트킨 위원장은 한국인 학생을 수양딸로 맞이해 함께 살며 교육시켰을 정도로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수양딸은 훌륭히 성장해 지금은 뉴욕대학(NYU)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교직생활을 한 국제적인 영어 교육자인 샤트킨 위원장은 구순을 훨씬 넘겼는데도 거의 매일 배우고 봉사하고 있다. 구순을 넘긴 회원은 보통이고 백세를 넘긴 회원도 지하철로 등교하기도 해 배움이 회춘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무급으로 봉사하고 있는 마이클 웰르너 원장은 “퀘스트의 평생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은퇴(예정)자가 인터넷이나 전화로 방문신청을 하면 하루 일정으로 강의도 듣고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웰르너 원장은 자택을 방문한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시설과 운영방식을 친절하고 상세히 안내했다.
회원들이 가장 신나는 시간은 함께 창작활동을 할 때다. 한때 에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유명배우인 도미니크 치아네스와 로이 클레어리 회원이 지도하는 연극 시간이면 모두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배우로 변신한다. 해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면 온 가족과 친지들이 관객으로 참석하면서 흥겨운 잔치판이 벌어지고 회원은 현실에서도 주인공이 된다.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도나 루벤스 회원이 건강 악화로 정기 공연을 놓쳐 몹시 안타까워하자 집을 방문해 즉석 공연을 했던 일화는 어떤 연극보다 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날씨가 나쁘지 않은 금요일이면 이스트강변 89번가의 콩츠마켓(Conte’s Market)에서 퀘스트 회원들이 연주하는 포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문예지 발간은 소설가와 시인을 꿈꾸었던 회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퀘스트에서는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이 수시로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익스플로러클럽 등 주변에 즐비한 미술관과 박물관은 언제 들러도 즐겁고 배울 게 많은 현장학습장이다. 나이아가라폭포, 재즈와 ‘욕망의 이름이란 전차’와 프렌치 쿼터의 도시 뉴올리언스와 미국 전통의 여름철 문화교육타운인 이리호 남단의 쇼토쿼(Chautauqua)는 단골 수학여행지다.
여행전문가인 캐롤린 맥과이어 회원은 5월로 다가온 런던 수학여행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8월 수학여행지를 어디로 할지 고심하고 있다. 다채로운 여름축제가 벌어지는 캐나다와 기네스맥주를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를 놓고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물론 회원들이 좋다면 두 곳 모두 갈 수도 있다. 여름 내내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회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학창 시절처럼 수학여행을 고대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학여행에는 가족도 참가할 수 있어 더 신나고 추억거리도 넘친다.
뉴욕시립대학교와 교육이념에서부터 학사와 재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호흡이 척척 맞아 이제는 회원이 230명을 넘어섰다. 평생교육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요즘 퀘스트에는 성공비결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해외 귀빈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평생교육이 국가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면서 묘책과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저 어울려 배우고 교류하는 커뮤니티일 뿐인데 해외에서까지 관심이 쏟아지니 회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신이 난다.
지난해 9월에는 태국 총리 부인인 나라폰 찬오차 교수를 단장으로 한 태국 사절단이 방문했고 은퇴를 앞둔 캐나다의 리차드 솔터 변호사는 4년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평생교육에서도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놀면서 배우는 것(Play and Learn)’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만 적용되는 교육이념이 아니다. 배움의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고 호기심은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는 진리를 퀘스트에서 깨닫게 된다. “배움이 없는 자유는 언제나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언제나 헛되다(Liberty without learning is always in peril and learning without liberty is always in vain)”라는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남긴 교훈을 퀘스트가 실천에 옮기고 있다.
윤병국 경희사이버대학교 관광레저경영학과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여행’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봤다. 여행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살아가는 그의 직업을 생각해봤을 때 쉬지 않고 들어봤던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학생들이 ‘부모님이 여행 가고 싶어 하시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하고 물어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같이 갈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같이 가느냐가 중요하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어디인들 안 좋겠어요?”
짧고도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말의 강렬함은 그 당연함을 잊고 살아왔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여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일 날아드는 여행 상품이 그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정작 우리는 갈 장소의 신기함에만 목말라 있지 같이 갈 사람에 대한 마음과 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1년에 2회 이상 해외로 떠나는 시니어를 위한 여행의 실마리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실수, 여행 상품을 확실히 파악하여 방지하라
“젊은 친구의 얘기예요. 그는 아들이었어요. 효도한다고 부모님을 사이판 여행을 보냈죠. 그런데 이 관광 상품이 사이판 자유여행 상품이었어요. 비행기 표와 호텔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여행하는 본인들이 알아서 해양 스포츠라든가를 옵션으로 하는 거였죠. 젊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시니어들이 어떻게 제트스키를 타고 스쿠버를 타요.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 식사는 했는데 점심, 저녁은 굶어야 했대요. 돈이 있으니 시켜 먹으면 되는데 이분들이 시켜먹을 줄 몰랐기 때문이죠.”
이 문제의 시작은 아들이 그런 여행 상품인 줄 몰랐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알았다면, 자신이 여행을 선물로 주고 싶은 사람이 부모란 점을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모든 여행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고 2인에 맞는 패키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자식들은 나이가 칠십이 넘은 부모님을 유럽으로 보내요.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7박 8일짜리가 가장 기본적인 코스거든요. 그런데 이 네 나라를 7박 8일로 지내려면 우선 비행기를 열두시간 타고 날아가서 내리자마자 자야 하고, 각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투어를 해야 해서 매일 짐 싸서 이동해야 해요. 이건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유럽이라고 마냥 좋다고 생각해서 부모님을 그런 여행에 보내서 고생을 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윤 교수는 요즘은 쉽게 아무나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지만, 가야 할 여행에 대해 사전에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특히 중년들은 혼자 여행을 가기도 하죠.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너그러워질 것 같지만 타인에게는 아주 까칠해져요. 과거에 70세인 할아버지와 80세인 할아버지가 함께 패키지 여행을 갔어요. 그래서 여행사에서 두 분을 같은 방에 넣었어요. 그 안에서 싸움이 났는데, 나이 어린 것이 어른 공경 못한다는 시비 때문이었죠. 그러니 시니어들의 여행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좋습니다.”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
“나이 들어서의 여행은 목적이 뚜렷해야 해요. 어느 정도 품격이 있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 웬만한 여행은 다 다녀봤잖아요? 그러니 나이가 들면 목적이 분명해야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어요.”
윤 교수는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에서 체류한다. 그것은 방랑벽과는 정반대인, 뚜렷한 목적의식에서부터 나오는 행위다.
“미용사는 자신의 작품이 생각나면 직접 만들죠. 요리사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면 여행가인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여행지가 있으면 가서 영감을 받아야죠. 마찬가지로 시니어들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욕구 중 최고의 욕구는 자아실현 욕구라고 주장했다. 나이를 먹고 경험도 할 만큼 한 시니어는 이미 자아실현 욕구 단계에 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옳다. ‘내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안 해본 것은 무엇일까?’
“사진찍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프리카에 가서 지프를 타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불편하고 힘들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하는 시니어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위한 여행 상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윤 교수는 자아실현을 위한 다양한 여행들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가 볼륜투어리즘(voluntourism)이라고도 불리는 봉사여행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를 가면 ‘원 딸라’를 달라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에게 무작정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여, 캄보디아 학교를 도와준다든지 학생 자매 결연을 하여 계속 후원해주는 식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자원봉사하는 곳으로 가서 4박 5일 휴가를 간다고 하면 이틀은 관광을 하고 이틀은 봉사를 진행하는 방식도 있다. 그 외에 장애인이나 다문화, 결손가정에게 제공되는 소셜투어리즘(Socialtourism)도 있다.
윤 교수가 강조하는 또 한 가지는 뉴투어리즘(New Tourism)이다. 기존에 못했던 걸 한다는 관점의 여행으로 아직 구체적인 개념은 안 잡힌 상태다.
“90년대 이후 우리 국민 중에서 새로운 계층이 태어났어요. 바로 특별함을 추구하는 자유여행객들입니다. 그들은 여유가 있고 새로운 인생을 갖고 싶어 하죠. 또한 자기만의 여행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교육적이고 개성을 추구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아한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모험을 한다고 생각해야
윤 교수는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최고의 호텔에서 최고의 식사를 하는 게 우아한 여행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게 우아한 여행은 좀 더 기술적인 감각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
“출장을 끝내고 난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짬을 내서 그 지역을 잘 어필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거죠. 그 지역 외에는 없는 것을 찾는 모험과 같은 겁니다. 그건 사람일 수도 있고 지역 자체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관광지나 자연일 수 있죠. 그렇게 하면 항상 어디를 가면 새로운 게 있을 거 같고 새로운 사람이 있을 거 같으며 우연한 로맨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기대와 환상은 뺄래야 뺄 수 없다. 그러한 기대와 환상은 스스로의 노력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윤 교수는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해진 공식에 따라 그대로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상품을 강요하는 등의 패키지의 병폐가 많이 없어지긴 했죠. 그런데 이건 여행사가 너무 많아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구된 것입니다. 그래서 패키지 여행의 병폐는 소비자 자신의 문제이기도 해요. 가격 중심의 저가 여행을 선택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설정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 류의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여행을 스스로 하려고는 안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행지 보는 눈을 바꿀 진짜배기 여행가가 절실하다
윤 교수가 여행 업계를 바라볼 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여행작가들에 관한 문제다. TV에서 하는 여행 프로그램들을 보면 흔히 사진작가, 여행작가, 문화전문가들이 나와서 여행지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를 보면 그저 현상에 대한 단순한 내용만 나온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었다.
“그들은 으레 ‘좋다, 좋습니다, 이국적입니다’ 같은 말만 합니다. 아니, 시청자들이 그걸 듣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이미 본 내용인데. 여행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작가가 써준 거라 해도 자신의 지식을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아서 그래요. 그 지역을 알리고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못하는 거죠. 그나마 나영석 PD가 우리나라 여행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봐요. 이미 를 통해 나이 먹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못 한다는 인식을 바꿨잖아요? 젊은이들에게 아무것도 안 갖고 라오스로, 아이슬란드로 배낭여행을 떠나게 하고, 중년들은 남미로 보냈죠.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여행문화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난립해 있는 시니어 중심의 여행 동호회와 모임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물론 원래는 여행사에서 해야 하지만, 여행사는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일본 여행사에서는 ‘실버 구락부’를 만들어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놀다가 끼리끼리 여행을 하고 싶어지면 여행사에 의뢰하게끔 만들어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행 모임이 만들어짐으로써 여행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거죠.”
여행 소비자에게 조금씩 여행에 관한 모티브를 모아서 기회를 주고, 거기서부터 반응을 이끌어내어 진정한 여행을 추구하게끔 도와주는 것. 자연스럽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진정성(Authenticity)과 일탈(liminoid)이 담긴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다가왔다.
△ 윤병국 경희사이버대학교 관광레저경영학과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호텔관광대학원장·관광레저항공경영학과장.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학부, 대학원 석사·이학박사 (관광지리·관광개발 전공).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여행작가 양성과정 주임교수. CBS 노컷뉴스 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