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따라 호스피스·연명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치매, 심부전증, 신부전증 등 대상 질환을 늘리고 호스피스 전문 기관도 2028년까지 2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지난 2일 밝힌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년)’은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비전으로 삼고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의 △이용자 선택권 보장 확대 △제도 이행의 기반 강화 △제도 인식 개선 및 확산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에 대해 완치적 목적의 치료가 아닌 생애 말기 삶의 질에 목적을 둔 총체적 치료와 돌봄을 의미한다.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은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말한다.
노인 인구 증가 추세 및 생애 말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호스피스 서비스 확대 및 연명의료결정제도 확산에 대한 국민의 요구 역시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른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은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 및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제도적 확립을 위해 5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우선 호스피스 서비스 수요 등을 반영해 대상 질환의 단계적 확대를 추진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13개) 및 학계 의견 등을 고려해 현행 5개 대상 질환(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만성 호흡부전)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치매, 심부전증, 신부전증 등을 추가할 전망이다.
또한 연명의료결정 대상을 합리화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관리를 강화한다. 우선, 의료진과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소통을 조기에 시작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를 확대한다. 지금은 질환의 말기 진단을 받은 이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으나, 말기 이전에도 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다.
연명의료중단 이행 시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 현행 연명의료 중단의 이행은 임종기로 국한되어 있어,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제한점이 되고 있다.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고 결정할 수 있는 가족이 없는 경우,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불가했으나,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예정이다. 아울러,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미설치 기관도 연명의료 정보 조회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연명의료 중단 등 제도 이행의 연속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호스피스·연명의료 인프라도 대폭 늘린다. 지난해 기준 188개소인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2028년까지 360개소로 확대한다. 입원형 기관은 15개소를 증가한 109개소, 자문형 기관은 116개소를 늘어난 154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가정형 기관의 경우 5년 내 두 배 늘려 80개소를 확충한다. 연명의료 중단 가능 의료기관에 설치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지난해 430개소에서 5년 뒤 650개소로 확대한다. 종합병원은 전체의 75%, 요양병원은 전체의 20%까지 위원회 설치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서비스 질을 향상하기 위해 현재 제도 중심의 호스피스 전문기관 평가 지표를 의료진·환자·보호자 만족도 등 이용자 중심의 질 평가 지표를 포함해 개선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인력 기준을 기존 ‘병상수’에서 ‘환자수’ 기준으로 변경할 계획이다.
호스피스·연명의료중단 제도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 노인뿐만 아니라 학생, 청년, 중장년을 대상으로 연령별 교육 과정을 개설해 '어떻게 삶을 마감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제도를 이용하는 환자의 가족을 돌볼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존엄하고 편안하게 생애를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라며,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종합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가 암 환우를 돌보는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 교육생을 모집한다.
이번 교육은 3월 12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오후 3시 30분까지 6시간씩, 총 10주간 60시간 이론교육과 심화교육(14시간), 임상교육(30시간)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진행되며, 매 강의마다 호스피스 현장전문가들이 강연자로 나선다. 전 교육 과정 이수 후에는 임상에서 죽음 앞에 고통받는 환우들과 가족들에게 전인적 돌봄을 제공하는 호스피스전문 봉사자로 활약할 수 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는 설립 후 25년간 제56회까지 총 2334명의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를 배출했다. 현재 약 200여 명은 지역사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호스피스 현장에서 신체적 돌봄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심리적, 영적 돌봄으로 봉사하고 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 김환근 회장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워봉사자는 단순히 신체 보조를 하는 것을 넘어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을 영적으로 지지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며 “이번 자원봉사자 교육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인적 케어를 제공할 수 있는 호스피스전문 자원봉사자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호스피스회 자원봉사자 교육(제58기)은 3월 5일까지 신청가능하며, 만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편 하나호스피스재단 수원기독의원은 2015년, 2017년 보건복지부 선정 최우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 2018년 가정형 호스피스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됐다. 2023년에도 보건복지부 평가 최우수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등급을 받았다.
36세의 젊은 엄마가 하늘로 떠났다. 5살, 7살 두 딸 아이를 남겨두고. 9년 전 위를 송두리째 떼어내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지내던 중 암이 재발됐고, 항암치료에 전념했지만 암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의 항암치료는 무의미하다는 말기 판정과 함께 우리 병원 호스피스로 의뢰됐다. 젊은 엄마는 남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길 원했기에 상담 후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야속하게도 암은 계속 진행돼 몸은 하루하루 더욱 앙상하게 말라 갔고, 장폐색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엔 물만 마셔도 구토가 계속되자 가정호스피스팀은 소위 콧줄이라 부르는 배액관을 넣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콧줄을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던 그는 콧줄을 거부하고 화장실에 숨어 몰래 구토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면서 그 뒷모습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119를 불러 응급실로 왔다. 응급실에서 만난 내게 자신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했으니 더 이상 고통 없이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반복되는 구토로 탈진해 있는 그에게 나는 미뤄왔던 콧줄을 바로 삽입했다. 그리고 배액장치를 통해 역류하는 소장액이 계속 바로바로 빠져나오자 비로소 그녀는 구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배액이 원활해지니 이제 조금씩 물과 음료도 마실 수 있게 됐다. 수액을 통해 탈수가 교정되고, 마약진통제를 통해 통증이 가라앉자 잠도 푹 잘 수 있게 됐고 조금씩 기력도 돌아왔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두 아이들 생각에 그는 몸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수차례와 수술과 항암치료를 견뎌냈고, 그로 인해 몸은 너무나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특히 배 안은 유착이 너무 심각해 심한 통증과 구토가 반복됐다. 콧줄과 배액장치에도 구토가 발생할 때가 있었고, 그런 불편감으로 입원 후에도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콧줄의 위치를 섬세하게 조정해 배액장치가 아닌 주사기를 통해 소장액을 뽑아냈는데, 배액에 성공할 때면 그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이제 살 것 같아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자 그는 표정이 밝아졌고 여유가 생긴 만큼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레 내게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다며 나를 바라보던 그의 차분하면서도 굳건한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절대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콧줄을 단 모습마저도 스스로 용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집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배액장치로도 해결되지 않는 구역질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그날부터 주사기를 통해 수동으로 소장액을 배액하는 법을 그녀를 간병하는 친정엄마에게 꼼꼼히 전수했다. 반복하는 연습과 교육으로 이제 구역질이 밀려올 때면 친정엄마 역시 능숙하게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다.
약속된 퇴원 전날 밤 나는 그의 침대 곁으로 찾아가 설레임과 두려움에 잠들지 못하고 있는 그와 친정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주간 참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요. 입원하기 전까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사실 집보다 병원이 훨씬 편하실 텐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시니 그 결정 속에 각오만큼이나 큰 두려움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엄마는 화장실에서 숨어서 구토를 하고, 신음소리를 삼키며 고통을 참던 딸의 모습을 봐왔기에 다시 그 지옥같은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퇴원을 반대했지만 결국 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나는 딸과 엄마의 손을 포개어 손에 쥐고 말을 이어갔다.
“삶은 여행이라잖아요. 이제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여행에는 늘 변수가 생기고,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든 것이 불편하겠지만 목적이 있으니 사람들은 고생을 감수하고 떠나는 거겠죠. 집에 가시게 되면 꼭 그 목적을 이루세요.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그는 퇴원을 하고 3주 정도를 집에서 보냈다. 중간에 오한과 고열이 발생해 응급실로 실려온 적이 있었지만, 응급처치만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 ‘해야 할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입원하지 않고 가정호스피스를 통해 해열제와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다행히 발열은 안정됐다. 그리고 내가 가정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던 어느 날 그는 아파트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거실 창가의 침대에 누워 나를 반겼다. 평소 차분한 그였지만 이날은 왠지 유난히 들떠 보였다. 친정엄마에게 선생님 좋아하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내려서 드리라고 계속 채근을 했고, 커피를 내가 다 마시자마자 수정과도 준비했다며 다시 엄마를 재촉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내 말에, 처음에는 콧줄을 달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다시 돌아온 엄마를 아이들은 반겼고, 심지어 이제는 절대 떠나지 말라며 아이들이 팔목에 수갑 같은 팔찌를 채워놓았다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미소로 화답하며 그 ‘해야 할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찬찬히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내게 말했다.
“주문한 피아노 내일 집에 들어와요.”
퇴원 후 그는 바람에 날려갈 듯한 그 앙상한 몸으로 매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동화책을 읽어주고, 작은 전자 피아노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엄마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꼭 한 번 건반 피아노의 맑은 소리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게 현실이 될 것이기에 그는 들떠서 환히 웃고 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의 얼굴이었다. 그 환한 웃음을 남겨두고 일주일 뒤 새벽 그는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기에 나는 다음날 우리 호스피스 팀원들과 조문을 갔다. 그의 친정엄마는 우리 가정호스피스 간호사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그 옆에서 고인의 남편도, 여동생도, 그리고 시부모님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다 함께 그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나누다 보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얼굴에 어느새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하고 새롭게 도전했던 시간들은 돌아보니 분명 해피엔딩이었다. 슬픔이 비극과 상처로 남지 않고 웃음과 위로로 추억되는 이 순간이 호스피스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선물이고 보람이다. 장례식장을 떠나며 남편과 악수하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 곁을 지켰던 엄마의 용기를 아이들이 커가면서 분명 깨닫게 될 거예요. 그 용기는 고스란히 남아 평생 아이들의 삶을 지탱해 줄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죽기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죽기에 좋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죽음’에 대해 정의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나라들이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할 이들을 위해 해외의 웰다잉 문화를 소개한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죽음의 질 지수’를 발표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나타내는 지수다. 죽음을 앞두고 갈 수 있는 병원 수, 치료 수준, 임종 관련 국가 지원, 의료진 수 등 20가지 지표로 측정했다. 80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 18위였다. 1위는 영국이다.
누구나 ‘좋은 죽음’ 맞이하도록
영국도 과거에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피하는 문화가 있었다. 영국 보건부는 ‘생애 말기 돌봄 전략’을 제시하며 죽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꿨다. 이때 영국 정부는 ‘좋은 죽음’을 정의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가족·친구와 함께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고통 없이 죽는 것’이 그들이 정의한 좋은 죽음이다.
영국은 생애 말기 치료법과 호스피스 제도를 발전시켰다. 생애 말기 치료법은 완화치료라고도 하는데,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여주는 치료법이다. 말기 암 환자뿐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라면 누구든 완화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족들의 고통까지 돌보는 호스피스를 강조한다. 호스피스는 죽음이 가까운 환자들이 입원해 고통을 덜어주는 치료를 하는 특수 병원이다. 또한 교과 과정에 ‘상실 체험과 비탄’이라는 과목을 개설한 중·고등학교도 늘고 있다. 비탄 교육이란 소중한 사람(가족)의 죽음, 학교 교사나 친구의 죽음, 유명인의 죽음, 재난을 통한 죽음 등을 경험할 때 필요한 정서적 도움이나 돌봄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죽음, 준비하세요”
미국, 독일, 일본에서는 ‘죽음 준비교육’을 제도화했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죽음에 대한 이해,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노화 과정, 죽음 준비 과정, 임종 시의 상태, 유가족을 위한 교육 등 네 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다. 학교별로 죽음 준비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100여 개에 이르고, 학교 외에 병원·기관 등에서도 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행복한 죽음 운동’을 시작으로 죽음 만찬, 죽음 살롱, 죽음 카페 등이 빠르게 늘었다.
독일은 중세시대부터 다른 나라와는 달리 종교의 영역에서 죽음 준비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초·중·고등학교 종교 수업의 선택 과목 중 하나로 죽음 준비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이유다. 중학교에서는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 ‘임종-죽음-부활’이라는 교과서로 죽음을 다룬다. 고등학교에서는 더 깊이 있는 죽음 준비 탐색을 위한 5단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종활’(終活)이라는 죽음 준비 활동이 활발한 일본 역시 죽음 준비교육을 한다. 일본 조치(上智)대학의 알폰스 데켄 교수가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은 말 그대로 자신이 죽을 때까지 매일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1977년부터 ‘죽음의 철학’을 강의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2002년 일본 정부는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삶과 죽음 교육 과정을 개발했고, 2004년부터 교육 과정에 포함됐다. 또한 20여 개 대학에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과목이 개설돼 있다.
김조환 웰다잉문화연구소 소장은 “외국에서는 웰다잉 이전에 ‘죽음 준비교육’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됐다”면서 “죽음 준비란 계절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나이 들어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삶과 죽음에 관해 철학적으로 사색하며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어르신 대상으로 삶을 수용하는 방향의 교육이 주로 이뤄지고 있어 아쉽지만, 앞으로는 외국처럼 전 생애에 걸쳐 죽음 준비교육을 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6월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에서 발의돼 2023년 11월 현재 계류 중이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이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많은 논란을 일으킨 연명의료결정법이 의료 현장에 적용된지 5년이 지난 점을 고려했을 때 해외 여러 나라에 비해 빠른 변화라 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이 실제로 적용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알아봤다.
‘죽을 권리’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연 인간은 죽음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걸까? 현대사회로 올수록 의학이 발달하고 기대수명이 더욱 길어지면서 죽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하면서 해당 주제를 중심으로 논쟁이 더욱 거세졌다.
잘 살고 잘 죽기
우리나라는 2018년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을 하며 ‘생명만’ 연장하기보다 기준과 절차에 따라 본인의 선택으로 생을 자연스레 마칠 수 있도록 한다. 안 의원은 기존의 연명의료결정법을 일부 개정하는 차원에서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를 허용하자는 법안을 내세웠다. 불치병이나 암 등으로 회복이 힘든 말기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에 이르는 식이다. 현재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등에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한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로,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스위스는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돼 있으나 질병 상태, 고통의 정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 등을 평가해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의 의사조력자살도 허용한다.
웰다잉(Well-dying)을 직역하면 ‘좋은 죽음’이다. 저마다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좋은 죽음에 정답은 없지만, 대체로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죽음’을 의미한다. 국내에선 자기결정권의 일환으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다만 이에 따른 실천은 미미한 편이다. 문제는 개인이 실천했음에도 웰다잉 실현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무엇이 그들의 존엄한 마무리를 가로막는 것일까?
웰다잉 수요 변화를 충족할 사전적 정책 대응 마련해야
2025년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후기고령자(75세 이후)로 대거 편입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후기고령자는 치매, 중증 질환 등으로 인해 자기결정권 행사에 제약이 있는 노인이 많다. 이에 대비한 생애 말기 지원 정책의 확대가 요구되는 가운데, 웰다잉 지원 정책의 필요성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정부는 2020년 12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내 세부 항목에 ‘존엄한 삶의 마무리 지원’을 포함했다. 당시 ‘생애 말기·죽음 관련 자기결정권이 구현되는 사회문화적 기반 조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해당 정책의 내실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선 2018년에는 연명의료결정법, 2019년에는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을 발표해 시행 중이다. 그밖에 존엄사법, 성년후견지원제도, 장사제도, 유족연금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생애 말기 케어, 고독사·죽음준비 평생교육과 상담, 유류품 지원 서비스 등 다양한 관련 법과 지원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해외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 웰다잉 정책의 역사는 짧지만, 최근의 시도 덕분에 죽음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꽤 높아진 편이다. 그러나 앞으로 늘어날 웰다잉 정책 수요를 충족하는 제도적·물리적 여건이 현실적으로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존엄한 삶 마무리 지원 정책 모니터링 및 과제’(이하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서는 “현시점 이후부터는 웰다잉 정책 수요의 급증이 예상된다”며 “수요 변화를 충족할 수 있는 사전적 정책 대응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혼란 또는 논란이 대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이슈 1] 고령화·1인 가구 증가, 웰다잉 품앗이해야 할 판
웰다잉의 직접적 정책 대상자는 사망자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사망자 수는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인 2025년 이후 급증해 그 흐름이 2060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65세 이상 노년층 중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로 사회에서 웰다잉을 지원해줄 청장년층의 부담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장차 1인 가구 장례 품앗이 등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저소득 독거노인의 죽음이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독거노인의 경우 무연고 사망자가 많은데, 사실 90% 이상은 연고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다. 생전에 돈이 없어서 소외됐던 이들이, 결국 또 돈이 없어 장례도 못 치르는 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민간에서 해결하긴 어렵다. 결국 정부에서 고민하고 나서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허울만 있는 웰다잉 정책은 ‘공염불’
웰다잉 정책 수급 불균형의 대표적 사례로 ‘화장(火葬)장 부족’을 꼽을 수 있다. 통상적인 화장로 1기당 1일 적정 가동 횟수(3.5회) 및 가동 일수(300일)를 고려할 때 해마다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감당하기엔 버거운 실정이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당시 일시적 수요 증가에 따른 화장장 부족으로 인해 4~5일 장으로 장례를 치른 상황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고령화에 따라 연간 1만 명 이상 사망자 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감안할 때 화장로는 매년 약 10기 이상씩 확충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확충된 화장로는 7.8기에 불과하다. 더구나 화장장은 님비현상이 적용되는 대표적 시설로, 증설에만 약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존엄한 죽음을 뒷받침할 시설과 제도 확충이 시급하다. 웰다잉 수요를 고려할 때 화장장, 영안실, 호스피스 병동 등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라며 “법적인 부분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유언장을 썼더라도 법적 효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니 죽음 이후 남은 가족끼리 갈등을 겪거나 소송까지 하게 된다. 독거노인의 경우 사망 후 시신 인수나 장례 등을 제3자가 진행하기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스스로 정해놓은 죽음의 방식이 있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어려워, 결국 웰다잉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적으로 웰다잉을 언급하지만, 실질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나 다름없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인데도 정책적 논의에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잊힌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슈 2] 벼락치기 연명의료중단, 진정한 웰다잉일까?
현행법상 연명의료중단의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혹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가족 2인의 진술을 통한 환자 의사 추정 혹은 가족 전원 합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올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연명의료결정제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7월 말 기준 연명의료중단 이행 건수는 29만 7313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중단이 이행된 건수는 39.2%였다. 즉 가족의 진술 또는 합의를 통한 연명의료중단이 과반수인 셈이다.
같은 자료에서 주목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연명의료중단을 위한 서식 작성과 이행이 같은 날 이뤄진 건수가 전체의 80%가 넘는다는 것. 이에 서영석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시행되고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펴보면 나의 선택보다 가족의 선택으로 더 많이 이뤄지고, 준비하기보다 벼락치기가 더 많은 현실”이라며 “많은 국민이 제도에 참여하며 관심을 보이는 만큼 전체적으로 제도를 돌아보고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반드시 지켜낼 수 있도록 개선 및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습적 문제, 가족 눈치 보지 말아야
근래 웰다잉 관련 선행 연구들에서 언급됐던 좋은 죽음에 대한 공통된 개념 중 하나는 ‘자녀(혈연)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다. 웰다잉은 개인의 처지와 시대적 상황, 문화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전통적 가족주의 문화가 반영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은 가족에게 심리적 부담은 물론 돌봄이나 장례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떠나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웰다잉의 일부이겠으나, 심할 경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죽음 교육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경 사회복지사는 “웰다잉 실천을 어려워하거나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로 ‘지나친 가족 중심 문화’를 들 수 있다”며 “가령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핵심인데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보호자(가족) 쪽으로 결정권이 넘어가는 편이다. 환자의 치료 경과나 예후에 대해서도 당사자보다는 보호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뤄진다.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몰라 시의적절하게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제도나 인식이 무르익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가 미리 연명의료중단 의사를 밝혔더라도 의료진으로선 추후 분쟁을 대비해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은 가족의 부양이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다는 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하기보다는 오롯이 ‘자기결정권’으로 주체적인 고민을 해보시길 바란다”며 “그 이후 가족들을 위해 할 일은 자신의 결정을 알려두는 것이다. 그래야만 갑자기 이별이 찾아오더라도 가족들이 우왕좌왕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고인의 생전 뜻대로 마지막을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슈 3] 노인 중심 웰다잉 교육, 중장년도 외면 말길
웰다잉 분야 전문가들은 ‘죽음 교육’에 대한 수요 증가 및 활성화는 뚜렷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후기고령자 중심으로 정책 집행(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른 생애 말기 준비·설계 교육 등)이 이뤄져 다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장소의 특성상 중장년은 교육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뿐더러, 평생교육과의 연계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서도 “부모의 장례를 준비하는 40~60대를 핵심 정책 대상층으로 선정해놓고 있음에도 (이에 따른 교육 등이) 소극적이라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유경 사회복지사는 “중장년은 죽음을 먼 이야기로 여겨,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도 막상 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노년기에 죽음을 생각하면 주로 삶에 대한 회고지만, 중장년기에는 회고와 더불어 다가올 노년기를 계획해볼 수 있다. 즉 중간점검 기회인 셈이다. 다가오는 연말에는 나의 죽음을 떠올려보고, ‘웰다잉’을 내년 버킷리스트로 삼아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유경 사회복지사(죽음 준비교육 전문강사)
참고 존엄한 삶 마무리 지원 정책 모니터링 및 과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82세 할머니는 남편 사별 후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제안에도 혼자가 편하다며 20여 년을 따로 지내셨다. 남편은 3층 주택을 남겼는데, 1층과 2층은 세를 주고 할머니는 3층에서 살았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꽃을 키우는 것이었다. 1층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들이 심어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꽃화분들이 1층 대문 앞과 3층 현관까지 이르는 계단에 비단길처럼 쭉 이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일과는 화단과 화분을 가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낡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어느 날 음식이 삼켜지지 않고 자꾸 구토를 해 병원을 찾아간 그는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나이도 있고, 암도 넓게 퍼져있어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그의 소원은 화분을 가꾸는 일상을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먹지 못해 살이 빠지고 기력이 없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웠다. 암 진단 후 근처 사는 50대 후반 큰딸이 3층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종일 딸에게 짜증을 냈다.
할머닌 왜 인생 말년에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죽진 않겠다고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한 그는 그의 집을 찾아간 내게 끝없이 하소연을 했다. 세상도 하늘도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큰딸의 무력감도 컸다. 삶을 비관하며 누워 신음하고 짜증만 내는 어머니 옆에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어떤 음식도 삼킬 수 없는 어머니를 두고 차마 밥을 넘기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컸다.
딸은 간절하게 무엇이든 어머니에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든 마지막 효도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닌 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저 종일 침대에 누워 끙끙거릴 뿐이었다. 우리 가정 호스피스 팀이 그 댁을 방문한 날 딸은 우리와 대화하던 중 그동안의 속상함과 서러움에 복받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나는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 할머니에게 소원이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두 가지를 말했다. 얼음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삼켜보는 것과 1층부터 3층까지 가지런히 놓인 자식 같은 화분들을 다시 가꾸는 것이었다.
자녀들은 멋진 경관이 펼쳐진 곳으로 추억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꾼 화분들보다 더 어여쁜 것들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분가한 자녀들이 가정을 이뤄 각자의 바쁜 삶을 사는 동안 할머니를 위로하고 삶의 의미가 되어 준 것은 화단과 화분들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화분들은 그의 시간들이었고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모든 제안과 도움을 거절당해 서운할 대로 서운한 딸에게 좀 힘들겠지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 화분들과 꽃들이 바로 어머니의 분신이자 정체성이니 어머니를 대신해서 화분들을 열심히 가꾸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1, 2층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매일 화분들을 3층으로 옮겨 어머니가 현관에 의자를 두고 감상하도록 해드리자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영양수액을 달고 의자에 앉아 현관에서 매일 자신이 하나하나 가꿔왔던 화분들을 다시 바라볼 수 가 있었다. 그러다가 배에 복수가 차고 기력이 더 떨어지던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에서도 병동 옥상에 있는 정원을 무척 좋아하셨다. 매일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올라가 벤치에 누워 꽃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간병을 위해 함께 병원에 들어온 딸에게 사방이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이 천국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딸은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두 주가 흘러 할머니는 이제 정원마저 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해지고 종일 깨지 않고 잠만 주무셨다. 나는 지난 토요일 아침 회진을 돌며 작은 목소리로 따님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할머니를 보며 손을 잡아 드렸는데, 할머니께서는 언제부터 깨어 계셨던 걸까. 눈을 감은 채로 내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시더니 내 손에 입을 맞추셨다. 한동안 그렇게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셨다. 그 광경을 본 딸이 깜짝 놀라 “엄마!”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주변에 다른 환자 보호자들도 할머니의 침대 곁으로 몰려와 내 손에 입 맞추는 할머니를 보며 함께 전율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오늘 새벽에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유족들은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정하였기에 나는 오후에 호스피스 팀원들과 함께 조문을 갈 수 있었다. 따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엄마한테 뽀뽀 받은 선생님이셔.”
예약된 시간에 병원을 갔는데 한참 흘러서야 진료를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통증에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아도,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처지일 때도 있다.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기에, 당연한 듯 참게 된다. 그러나 이 당연한 기다림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칼럼 한 편을 보내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연함이 강자의 일방적인 생각이거나, 약자가 수긍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공감이 아닌 폭력이 된다. 우리는 종종 상대와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당연함도 착각일 수 있다. 특히 병원에서 의사들은 환자와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배가 망가져 침몰하면 환자는 물속에 잠기더라도, 병원과 의사는 안전하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이 정한 원칙을 진심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치유라는 약속을 믿기 위해 그저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정신과 교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10년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간병 보호자로 살았다. 그 경험을 담은 책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그는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이란 공간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존재이고, 당연하게 요구되는 그 기다림은 자신들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한 말기 암 환자의 웃음
60대 중반 여성 말기 위암 환자가 있다. 완치라는 희망으로 병원이 요구하는 그 모든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50대를 병원에서 보냈다. 10여 년 동안 셀 수 없는 검사를 했고, 위를 모두 잘라냈고, 힘든 항암 주사도 견뎠다. 하지만 병은 멈추지 않고 몸의 다른 장기로 번져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던 당연함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됐다. 기적과 같은 가능성을 얘기하며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는 의사의 제안을 처음으로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치료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환자의 당연한 도리를 거부한 순간, 담당의사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 했고 동시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은 병원에서 사라졌다. 병원이란 곳은 고통의 크기보다 치료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그 당연함을 말기 환자가 되어서야 새롭게 알게 됐다.
호스피스를 권유받았지만 병원에 이골이 난 그는 그냥 집에서 지냈고, 이내 복수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복수 천자라는 것이 간단한 시술인 줄 알았지만 과정은 항암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미리 혈액검사를 하고, 오래 기다려 짧은 외래진료 후에 주치의의 복수 천자 처방이 떨어지면, 다시 영상의학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초음파 검사로 주삿바늘로 찌를 부위에 표식을 받고, 주사실로 가서 누워있으면 한참 뒤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와서 배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지 8시간 만에 첫 복수 한 방울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와 탈진으로 이틀을 드러누운 후에야 그와 남편은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호스피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넘은 세월을 함께 했던 병원과 작별했다. 그가 호스피스 신청을 위해 우리 병원에 들고 온 진료의뢰서에는 위암과 다발성 전이 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병원 공포증’이라는 소견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만큼 병원이라면 그는 진저리를 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그가 호스피스를 찾은 진짜 이유는 어디선가 호스피스에 가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복수 천자를 위한 것 외엔 입원치료는 물론 그 어떤 주삿바늘이 몸에 닿는 것도 거부했기에 호스피스팀이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로 연결됐다.
나는 가정형 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배를 휴대용 초음파로 간단히 살핀 후 바로 복수 천자를 시작했다. 1시간 동안 무려 4ℓ 정도 되는 복수가 빠져나오자 그는 ‘허파에 바람 든 사람’마냥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웃음소리를 냈다. 병원에서 반나절을 허비해야 받을 수 있는 이 간단한 시술을 내 집 내 침대에서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복수 증가 속도가 빨라 최소 주 2회 복수 천자를 해야 하는데, 인력은 부족하고 방문할 환자는 많고, 그의 집은 너무 멀어 규칙적으로 주 2회 방문이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그의 거동이 자유롭고, 남편은 은퇴 후 여유가 많으니 주 2회 내 진료실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 나는 그에게 그동안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 약속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가장 한가한 시간에 맞춰 그는 내 진료실로 방문했고, 나는 즉시 비어있는 옆 진료실에서 복수 천자를 시행했다. 모든 것들은 사전에 준비해뒀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복수 천자가 이뤄졌다. 1시간 안에 4~5ℓ의 복수가 빠져나가면 그는 날 듯한 가벼운 몸이 되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체중이 38㎏ 남짓인 그에게 4~5㎏의 복수를 배에 담고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는지 그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꼬박꼬박 방문했다.
원칙의 당연함이 아닌 ‘배려’가 필요한 때
그렇게 석 달이 흘러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고,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그는 조금씩 수척해져 갔다. 그만큼 월요일과 목요일의 만남도 익숙해졌고, 병원 공포증이 있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이 두 번의 외출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는 복수 천자를 시행하기 전 늘 습관처럼 애원하듯 뱃속에 있는 복수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최대한 뽑아달라고 했다. 마치 복수를 증오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수척함이 맘에 걸려 병원에 온 김에 영양제 주사나 알부민 주사라도 맞고 가라고 부탁해도 그는 말없이 씨익 웃으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나는 또 어김없이 주사라도 맞고 가라는 부탁을 거절당한 후, 왜 그렇게 약이나 주사는 거부하고 복수에 대해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이제 몇 개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처음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불러주진 않고, 갑자기 배가 산처럼 커지더라고요. 이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해요. 선생님, 조금 더 지나면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럽고 힘든 때가 오겠죠? 사실 요즘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어야 할 텐데, 과연 이게 언제 끝나는 걸까요? 그걸 빠짐없이 다 겪어야 하느님이 불러줄까요? 그냥 어디가 더 망가지더라도 상관없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또 한 달이 흘렀다. 난 가끔 복수배액관을 심는 시술이나, 알부민 주사를 슬며시 권유했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늘 똑같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복수를 뽑아달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봄의 문턱에서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그는 매우 힘들어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알 수 없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모든 뼈마디와 뼛속까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전에 받아놓은 마약진통제가 있지만 그전부터 자신은 그 약이 전혀 듣질 않기에 애초에 진통제를 챙겨 먹을 생각은 포기하고 그냥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그의 태도에 속상해 오래 살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아픈 걸 참지 말라며 타박했다. 그리고선 다른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제발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그는 광대가 더 도드라진 수척해진 얼굴에 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 아프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견딜 수 없게 아픈 게 반갑기도 했어요.”
난 아픈 게 반갑다는 그의 궤변에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더 나빠진 거잖아요.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워졌어요. 이제야 하늘이 나를 불러주는 것 같아요.”
나는 차마 그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그가 매일 겪었을 고통과 죽음을 향해가는 고독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기에 그는 더 나빠진 몸이 오히려 반갑다고 하는 걸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만나러 1주일에 두 번 병원에 오는 게 제 유일한 외출이고 즐거움이에요. 세상에는 저한테 친절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 병원에 올 때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쉽고 편하게 이뤄지니 너무 신기해서 지난 10년 동안 쌓였던 화가 다 풀리는 것 같아요. 몸은 아파도 잠도 잘 자고 마음은 너무 편해요.”
10년 동안 참았다는 말이 서글펐다. 우린 그동안 병원의 규칙과 절차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믿었기에 환자들도 기꺼이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공감대 위에 의료진과 환자는 수평적인 눈맞춤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매우 달랐다. 우리는 직업이었지만, 환자는 자기 삶 전체를 짊어지고 우리가 당연하다 그어 놓은 그 선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또 참으면서 말이다. 더 이상 목숨에 연연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할 수 있게 된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외치는 당연함의 본질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한 가지 깨달음은, 세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당연함이 존재하지만 그 당연함을 넘어서는 친절을 우리는 배려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원칙의 당연함보다 배려의 당연함이 지금까지 세상의 질서를 지켜 온 진짜 버팀목은 아니었을까?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09년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그가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제를 사회, 역사, 철학, 의학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펴냈다. 현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막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다. 2월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160만 명을 달성했다. 실제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된 건수는 26만 건을 넘어섰다. 이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진 것을 의미하는 데, 안락사와 존엄사를 합법화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 국민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지난 2018년 2월 4일 시행됐다.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 있다고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의사가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이행하는 경우, 환자 본인의 의사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확인한다. 그러나 환자가 의식불명이거나 충분한 의사 표현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에게 일치하는 진술을 받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논의해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등록자 수가 160만 명을 넘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작성 가능하며,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작성하면 된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유보 또는 중단에 관한 의사를 남겨 놓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 의사가 작성한다. 말기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인지 여부는 해당 환자를 직접 진료한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이 동일하게 판단한다.
국민 10명 중 8명, 연명의료 원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과 연명의료결정제도 참여 의료기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예정이다.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국민 모두가 생애 마무리에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정착되고 나아가 확산되도록 더욱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향 정책관은 “최근 행복한 노년기와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만큼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더욱 알려 많은 국민이 제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명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더라도 생명 연장만을 위한 연명의료를 받을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81.7%가 ‘받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 중 45%는 ‘절대 받지 않겠다’, 36.7%는 ‘받지 않을 것 같다’고 나타났다.
노인 세대의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반대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85.6%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매우 반대하는 강력한 의견이 46.0%에 달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노인은 4.7%에 불과했다.
조력 존엄사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는 모두 불법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 중 스스로의 의사로 조력 존엄사를 희망하는 경우, 결정 기구를 거쳐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력 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존엄사는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별된다. 안락사는 의사가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연명치료 중단 등을 포괄한다.
조력 존엄사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찬성 쪽이다. 개정안 발의 후 한국리서치가 국내 성인 1000명에게 조력 존엄사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8%였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의 찬성 비율이 86%로 가장 높았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25%),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등이 꼽혔다. 조력 존엄사 입법화 반대 이유로는 ‘생명존중’이라는 응답이 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악용과 남용의 위험’(27%), ‘자기 결정권 침해’(15%) 등이 뒤따랐다.
의료계에서는 조력 존엄사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며 거센 비판을 가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는 법안이 발의 되자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의 확충,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의 뒷받침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웰다잉이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소규모 안락사’라고 부른다.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다만 부정적인 우려를 낳지 않도록 사회적인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