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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Life” 나를 위하여 산다는 의미는?
- 인생이막에서 자주 등장하는 핵심단어는 ‘자아실현’이 아닐까? 나를 위하여 산다는 의미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투데이 월간 자매지 “제2인생의 동반자 BRAVO my life”란 이름 속의 “my life’도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지 싶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주인공은 나지만, 대체로 전반생은 자신보다는 타인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물론 그 타인 속에는 가족이 크게 차지한다. 가족을 위하여 살아왔음이다. 인생일막의 삶이 대부분 그러했다. 그것이 곧 자기의 행복 기준점이었다. 정년을 맞거나 은퇴하게 되면 삶의 방향을 타인을 위한 삶에서 자신을 위한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한다. 생업으로 그동안 미뤄두었던 꿈이나 하고 싶은 일을 이루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자아실현이다. 매슬로의 다섯 가지 욕구 중에서 최상위에 자리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 공감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이다. 하위 욕구들이 충족되고 개인적으로 안정하게 되면 더 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취미나 특기를 개발하려 한다. 그것이 곧 자아실현인 셈이다. 인생이막의 첫 번째 희망으로 자아실현 욕구가 다가선다. 후반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면 대체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자아실현이다. 먼저 살다간 많은 분도 그런 측면에서 후회하곤 했다. 일본의 호스피스 한 분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죽음을 앞에 둔 환자 1,000명도 그랬다. 임종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했다. 눈에 크게 띄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던 일”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이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후반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지혜이지 싶다. 그래서 인생이막은 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린다. 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이런 분이 실제 있었다. 인생일막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주변의 박수를 받으며 정년 퇴직하였다.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뒷전에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려고 별도의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 집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숙식도 하며 혼자서 지냈다. 집에는 필요한 때에 간혹 들렸다. 서예도 배우고 색소폰도 불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이것저것 마음껏 하였다. 집안일은 아예 신경을 끊었다. 집에 있는 안사람이 강력하게 항의하여도 들은 체 만체했다.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났다. 두고 보자며 벼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 동안 가족을 위해서 헌신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라며 버티고 있다. 과연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일까? 나 자신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과연 나 혼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후반생에 있어서 “나”라는 의미 속에는 배우자가 포함되어 있다. 고리타분한 얘기가 될지 모르지만, 부부를 동심 일체라 한다. 나를 위한다는 의미에는 당연히 배우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른 생각이지 싶다. 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부부가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인다. 함께한다는 것은 마음을 같이 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전반생에 가족을 위하여 헌신해 왔지만, 따져 보면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사실 많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지금처럼 친구 만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텔레비전 보는 시간, 스마트폰 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인생이막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는 일의 중심에는 끝까지 함께해야 할 배우자가 있음을 지나쳐선 아니 될 듯 하다.
- 2016-07-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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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1942년生, 아 옛날이여!
- 어느 날, 남대문 시장 노점에서 메뚜기 설 볶아놓은 것을 한 대접 사왔다. 위생처리 겸 프라이팬에 다시 한 번 더 볶은 후 맛있게 집어먹고 있을 때, 퇴근하여 거실로 들어서던 며느리가 흠칫 놀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니… 어떻게 그것을, 잡수세요?” “먹어봐라, 고소하다! 아, 이제야 메뚜기 솟증[素症]을 풀었다!” 노릿노릿 잘 볶아진 메뚜기 두세 마리를 집어건네자 며느리는 뒷걸음질을 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웃었다. 물방개와 잠자리 여치를 잡아 구워먹은 옛이야기를 하면 꾸며낸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무논과 수초 많은 개울이나 못[池] 가장자리에서 우렁이와 개구리를 잡아먹었다면 그런 곳(무논 등)이 어디 있느냐며 과장하여 표현하는 줄 안다. 산속 계곡 물속에서 다슬기와 가재를 잡아먹었다면 그 정도는 믿어준다. 산행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참새 개구리 잠자리 물방개를 잡아 구워먹고 구운 물방개의 살찐 뱃대지가 입안에서 툭 터질 때의 쾌감이 좋았다고 하면 “아, 어머니 몬도가네!”라고 한다. 그렇다. 며느리는 나를 몬도가네 버금가는 못말리는 여사로 알고 있다. 김장배추도 푸른 잎이 많이 달린 뻣뻣하고 못생긴 야생 배추를 쭉쭉 찢어먹기 좋아하고, 썰어서 버리는 배추김치 대가리조차 와삭와삭 씹어먹는 나에게 더러는 연민의 눈초리도 보낸다. 뿐인가, 보리쌀을 두 번 삶은 순 꽁보리밥과 누런 다시멸치 몇 마리 넣은 멀건 된장국 만으로 식사하길 좋아하고, 찬밥 물에 말아 새우젓 한 가지로 혹은 된장에 박은 고추장아찌 두세 개로 한끼를 때우곤 “아 잘먹었다!” 만족한 낯빛의 나를 더러는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마솥 가득한 보리밥을 보며 가난에 절어서 먹을 음식 같지 않은 조야한 것들로 목숨을 연명해온 당신의 성장과정이, 또한 그때로부터 수십년을 더 살고도 그것을 잊지 못해 즐기는 당신의 지금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여 눈물을 머금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수십년을 지나고도 상기도 그때의 입맛이 뇌리와 심층 켜켜에 박혀, 그렇게 양육된 살과 뼈와 피가 영혼까지 흡수하여 향수(鄕愁)라는 미명으로 그립고 그리워 찾게 되는, 그 즈음의 먹거리며 하늘이며 바람이며 공기며 사람냄새 풍기던 촌스럽고 순박하던 인심이며, 그것은 진득한 사랑이며 아픔이었다. 1950~60년대는 모두가 가난할 때였지만 농촌은 더욱 가난했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삶 속에서도 여자들은 더욱 바닥 대접을 받았다. 우리 집만 해도 그랬다. 대가족으로 가마솥 가득 보리밥을 지으면 가운데 한움큼 얹은 쌀은 보리쌀과 섞어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 할머니 순서로 밥을 담고, 나머지는 전부 보리밥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 차지였다. 보리밥뿐만 아니라 나물밥 무밥 고구마밥 등으로 곡식을 아끼기도 했지만, 그나마 여자들에게는 별미이기도 했다. 당시의 김장밭 배추는 비료나 속성 영양분을 주지 않아 푸르고 질기고 가운데만 노란 속잎 이 조금 차 있었는데(지금은 푸른 잎이 거의 없지만) 노란 부위는 어른들 상에 썰어놓고 푸르고 억센 겉잎과 대가리는 여자들 차지였다. 갈치나 고등어를 굽거나 졸이면 살은 전부 어른 상이고 여자들은 대가리와 꼬리부분, 닭 백숙을 하면 껍질과 국물 정도 맛보는 형편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막내라 어른 상이 물려지면 남은 반찬을 제일 먼저 차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섭취했던 음식은 그야말로 현대에 와선 웰빙식이나 다름없다. 비료나 속성 영양제를 주어 성숙시킨 인공식품이 아니라 천연의 햇살과 바람과 흙이 키워낸 ‘자연식’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인성도 우직스러웠지만 대체적으로 순수하고 소박했으며 교활하거나 사기치는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서 젊은이들은 다이어트 식품 섭취와 자기관리에 혈안이 되어 영양실조로 비틀거리는 웃지못할 현상이 일어나고, 오히려 못살 때 먹던 ‘자연식’을 찾는다. 자연식을 찾아 귀촌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상인가. 금쪽이야 보물이야 품던 ‘아들’들이 TV에서 걸핏하면 고만한 여성에게서 뺨을 맞고, 하이힐에 무릎이 차이는 수난과, 설거지며 아기 키우기에 비지땀을 닦고 있음을 본다. 장모 눈치 아내 눈치 살피기로 눈동자는 연일 충혈되어 있고, 사나이다운 기개는 어디에도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과연 저 남자들이 이 나라를 지켜줄 수 있을까 심히 불안해진다. 남녀 성의 특징은 유전자부터 너무나 다르다. 특성이 그 성의 적성이라면 각각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거늘, 여자 남자 특성이 뒤죽박죽 혼성되어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다. 당시, 딸들이라고 남자들에게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다. 열 두세 살부터 열 대여섯 살까지 동네 여식들은 밤마다 수틀을 들고 어른 출타중인 동무집으로 몰려들었다. 시집갈 준비로 신부의 필수 혼수인 베갯잇을 수놓아 만들고 횃대보와 상(床)보도 십자수를 놓고, 버선을 수십짝 만드는 등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았다. 재잘재잘 수다도 떨었다. 그러면서 사흘이 멀다하고 공동야식도 했다. 모두가 각자 집에서 쌀 두세홉, 배추김치 한 쪽씩을 훔쳐와 모두어 밥을 지었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노란 속 김치를 쭉쭉 찢어 걸쳐서 한입 가득 우겨넣고 씹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오빠만 먹는 흰 쌀밥과 노란 속 배추김치를 그릇 수북히 담아 원을 풀었다.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햐얀 쌀밥은 입안에서 제대로 씹히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부드럽고 노란 배추속잎은 시퍼렇고 질긴 배추잎에 길든 이빨을 간지럽혔다. 어떤 동무는 자기 집 닭서리를 유도하여 닭백숙을 만들어 영양 결핍의 여식들 몸뚱이에 기름을 넣기도 했고, 더러는 집에서 담근 밀주를 퍼내와 마른 명태를 찢어 음주도 즐겼었다. 황혼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감히 집 곡식을 훔쳐와 이렇듯 야식을 즐길 수 있는 여자들은 그나마 딸자식들이었다. 며느리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행위들이었다. 딸자식은 부모에게 들켜도 나무람을 듣는 정도로 끝났지만 며느리들은 심하면 쫓겨나거나 좀 더 엄한 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 숙녀가 신사의 빰을치는 것이 예사로운 세상이 된 것 이상으로 늙은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공경심 따위는 진작에 없어져 기대도 않는다지만, 일 나가는 며느리가 살림 사는 시부모 부려대는 모습에는 한숨이 절로 터진다. 세상이 미친년 널뛰듯 뒤집어져 버린 것을 어찌하느냐고 많은 어른들이 포기하는 척 이해하는 척 말들도 하지만, 삿대질에 거친 말 거침없이 내뱉는 젊은이의 눈앞 폭력이 두렵다 해도, 또한 그 며느리에 의지하여 밥을 먹는 상황이라 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린 당신의 모습은 처량하다. 스스로 만들어낸 푸대접이며 상황설정이라는 생각이다. 황혼녘의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는 가장 소중한 재산은 오로지 ‘시간’뿐임을 누구나 다 알면서 그 시간을 온통 빼앗기고 사는,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착취 희생을 즐기며 자위하는 어른들도 많다니, 각각의 마음을 누가 어쩌겠는가. 누구나 인생은 한 번뿐이며,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유일한 내 재산인 ‘시간’은 천금 만금보다 더 윗자리의 소중한 것이거늘, 진정 나를 위해 그 시간을 보듬고 살고 있는지 열 번 스무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법이 통과되었다. 회복되지 못할 말기암 환자나 다른 위중한 병으로 회생불능의 상태임을 의사가 진단하면,더 이상 숨이 붙어 있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전 법은 회생불능의 환자라 해도 온갖 생명 연장 장치를 환자에게 설치하여 숨이 끊어지는 시간을 늦추거나 기적처럼 회복도 시키는 의료법을 의사들이 강행했지만(그러지 않았을 경우 의사는 살인죄로 제소될 수도 있으므로),이제는 환자가 입원 당시에 승낙을 하지 않아도 가족들로 인해 생명 연장 장치를 거두어 버리거나 아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이다. 물론 옛날에도, 현재도 우리 풍습에 ‘객사시키지 않는다’며 가망이 없다는 환자를 가족들이 퇴원시켜 집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있었다.그리고 실제 종합병원 등에서는 법이 통과되기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행하여지고 있었다.대개 가족들이 금전적인 이유로 혹은 환자의 원함으로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정식으로 합법화된 것이다. 살아나지 못할 환자인데 온몸에 주저리 주저리 생명줄을(인공호흡기등) 시설하여 고통을 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인 듯싶지만(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다),여기에는 의도적인 많은 위험한 요소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죽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죽을 시간의 장단(길고 짧음)이 있을 뿐 모두 죽지만, 상호간(가족관계등)의 이해관계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내 자산’은 ‘내 시간’ 이다 몸이 건강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방 죽을 병이면 생명 연장 시설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병원에 입원케 되면 백명의 환자 모두가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린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둠이 어른들이 갖춰야 할 순서이다. 본인의 의사가 없으면 가족들이 각각의 의견을 내놓는 살벌한 분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연명’ 시설을 말자 하고 둘째아들은 ‘시설을 하자’는 상반된 의견으로 내 목숨이 자식 손에 달려 있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그들에게 상처를 안겨주게도 된다. 정부도 그렇다. 이런 엄숙하고 중대한 법을 합법화시키려면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인생을 정리하면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호스피스 병동시설이 우선 만들어져 병행되어야 하고, 문제화될 수 있는 부분을 의혹이 없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되겠지만,어쨌거나 가장 먼저 법시행을 맞이하는 당사자는 바로 우리 어르신(노안)들이다. 오로지 유일하게 내 재산인 앞으로의 내 ‘시간’을,즐길 일이고 아낄 일이다.당당하게 변한 세상과 맞서면서 소리도 질러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하고 싶은 일을 세상 눈치 볼 것 없이 즐길 일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내 떠난 후의 남은 사람 걱정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이제는 오로지 나만 위해 살아야, 후회없이 쉽게 미소 머금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 2016-03-0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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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5 2막에서 이룬 꿈] 시니어들을 위해 중국어를 가르친다 - 유장근 (兪長根·62)
- 굴지의 대기업 부사장에서 퇴직자가 돼 회사에 나가지 않았던 2010년 1월 1일. 유장근씨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약 30년간 충성한 회사에서 버려졌다는 배신감과 경쟁에서 졌다는 패배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기에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막막함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던 하루였기 때문이다. 퇴직 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잔재가 있었다. 퇴직 초기 유씨는 중국어 공부와 운동까지 나름대로 철저한 미래 계획을 세워 그 잔재를 털어버리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그것이 계획대로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이내 나태함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자리에서 늦게 일어나도, 일을 하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게을러진 것이다. 나태함은 그렇게 유씨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도 무엇인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가 그때 제 모습이 안쓰러워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아요. 스페인 산티아고로 도보 여행을 가자고 말이죠. 약 한 달간 800㎞를 걷는 코스였죠. 저도 그 당시 나약해진 제 모습이 실망스러워 흔쾌히 수락했던 것 같아요.” 산티아고. 그곳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땅이었다. 걷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됐다. 항상 올바른 길, 순탄한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 아내와의 산티아고 여행은 인생 최고의 일탈이자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그저 흘러가는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살아갔다면, 여행 후 제 삶은 꿈이 있는 삶이 됐어요. 그전까지 사실상 꿈이 없었던 것이죠. 돈을 버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인 줄 알고 살아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멋있고, 새롭고, 재미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유씨는 인생 2막의 꿈을 ‘베푸는 것’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면서, 퇴직으로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이미 회복했다. 지역 복지관에서 신중년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 호스피스, 미술관 도슨트. 이제 그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인생 후반전에서 꿈을 이룬 결과물들이다. 물론, 무급이다. 꿈을 돈으로 환산하기엔 너무나 많았을 게다. Q & 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예전에는 직장 일에 몰두하다 보니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하나에 몰두하다보면 거기에 빠져 있게 되니까요. 그때는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죠.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퇴직을 하고 이런저런 일에 대해 고민할 때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도보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 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많은 훈련을 했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걷는다는 게 참 좋은 것이 온전히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불교에도 ‘행선(行禪)’이 있듯이, 걷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거죠.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지금과는 다르게 제가 젊었던 시절에는 대학만 졸업해도 기업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 기업들 중 한 군데에 취업해 순탄하게 사는 게 꿈이었죠. 어떻게 보면 심심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청춘’이에요. 중국어 강사, 호스피스, 미술관 도슨트까지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모두 하니 의미가 있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어요. 퇴직하고 정리를 못한 채 갈피를 못 잡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낸 책 (가톨릭출판사)가 제 삶을 바꿔줬어요. 제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쓰고 나니까 ‘되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과 잠재력이 확인되니까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당신의 꿈은 무슨 색? 제 꿈은 푸른색이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은 청춘이라는 의미에서요. 저는 항상 청춘을 염두에 두고 살아요. 예전에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주제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청춘. 내가 살고 있는 청춘과 젊은 너희들의 청춘을 비교해보라고 했습니다. 청춘의 매력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이죠.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했어요. 지금의 저처럼요.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외로울 틈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하는 일들이 즐겁고 재미있다보니 심심할 때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더 바빠요. 중국어는 퇴직하고 나서 배운 것인데 HSK 5급을 따고, 저와 비슷한 신중년들을 가르치니 보람은 말로 할 수가 없죠. 또 어떤 일에 몰두할 때만큼 행복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 2016-01-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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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과 고령자 면역의 중요성
- 대상포진이라는 병은 ‘통증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통증이 가장 무섭다. 피부에 생기는 물집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딱지가 생기면서 가라앉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통증은 한두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통각에서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를 지속적으로 망가뜨리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지속적으로 주기 때문이다. 초기에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수년까지도 이 통증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등의 2차적인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어디에 문제를 만드느냐에 따라 각막염, 녹내장으로 실명을 일으키거나 뇌졸중,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구안와사라고 알려진 안면신경마비도 연평균 4.2%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는데, 그 원인으로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의한 안면신경 손상을 지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10년에 45만여 명이던 환자가 2012년에는 57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다시 2년 후인 2014년에는 64만 명 수준까지 대폭 늘어났다. 4년 전인 2010년에 비하면 무려 42%나 증가한 것이다. 대상포진 환자 증가 추세 우리나라의 대상포진 환자는 왜 이렇게 급작스런 증가율을 보이는 것일까? 원래 대상포진이라는 병은 어릴 적 수두를 앓았던 사람에게서 발병하는 질환이다. 이 수두 바이러스가 수두가 완치된 이후에도 신경다발 속에 잠복해 있다가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증식하게 된다. 그 후에 신경을 타고 피부로 내려와서 염증과 발진, 물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소아기에 수두를 앓았던 사람만 이 병에 걸린다면, 유독 요즘에 그 발병률이 늘어나는 이유는 더더욱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성인을 대상으로 본다면, 대상포진 환자들이 유아였을 적의 특정한 몇 년 동안 수두가 크게 유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부터 국가 예방접종사업에 포함되어 의무적으로 수두 백신을 맞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대상포진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대상포진 환자의 약 60%는 연령층으로 볼 때 50대 이상이었다. 면역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마련인 65세 고령층을 놓고 비교해보면, 40세 이하의 청·장년층보다 무려 8~10배 발병위험이 높다. 또, 폭염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심해지는 7~9월에 노년층의 대상포진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대상포진은 면역력만 충분히 유지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병인데, 면역력이 약해지기 마련인 노년층에게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라는 것이다. 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은 노령인구에게 심각한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70대 영국인 호스피스의 사연은 그 심각성을 더 크게 보여준다.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고, 그들의 여명을 보살폈던 70대 노인이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은 후, 나이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 끔찍한 고통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미련을 접고 말았다. 그래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더라도 영국에선 안락사가 불법이어서, 자의에 의한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로 건너간 것이다. 결국 가족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생을 마칠 준비를 끝낸 후에 한 병원에서 약물투여로 숨을 거두었다. 대상포진은 백신예방이 최선 이 대상포진의 고위험군 환자층은 노년층만이 아니다.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이나 당뇨병,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자도 면역력이 약해지므로 고위험군에 속한다. 물론 노년층일수록 그 확률은 높아진다. 대상포진이 일단 발병한 후에는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 시점이다. 확산되기 이전에 신속한 치료를 해야 효과가 좋다. 물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근육통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대상포진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병을 키우기 마련이다. 결국 대상포진은 백신으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대상포진 백신은 공급의 한계로 인해 50대 이상의 고령층만 접종이 가능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백신 중에서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15만~18만 원 정도 하는 가격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소수만 백신을 맞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백신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60대 이상의 인구 3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를 보면 발생 위험이 55%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성별이나 인종, 만성질환 여부에 관계없이 고른 효과를 보였다. 또, 만약 발병하더라도 증상이 심하지 않고 잘 견딜 정도로 지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포진의 원인질환인 수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유아들이 수두 예방접종을 맞지만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백신의 예방효과가 100%라기보다는 가볍게 앓고 지나갈 정도로 막아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즉, 수두의 감염과 그로 인한 성인들의 대상포진 발생 자체를 완벽히 억제할 수는 없지만, 백신접종만 효과적으로 잘되면 삶을 고통스럽게 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의 중요성 노년층에게 또 필요한 접종으로는 인플루엔자 백신을 들 수 있다. 주로 겨울철에 유행하기 마련인 인플루엔자는 독감이라는 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만성질환자, 그리고 장기이식 등으로 인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발병될 경우 합병증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의 합병증이라면 가장 무서운 것이 역시 폐렴이다. 폐렴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2차적으로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균에 감염되어 세균성 폐렴으로 나타나기도 있다. 현재의 인플루엔자 백신은 보통 3~4가지의 예상 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을 섞어서 접종한다. 효력은 겨울철과 봄철을 지날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현재 밝혀진 인플루엔자의 종류도 이론적으로 144가지나 되며, 유전자 돌연변이 등으로 그 이상의 종류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한 대책은 되지 못하나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는 있다. 그 외에도 폐렴구균 백신 또한 같은 이유로 노년층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백신접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른바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은 아니더라도 그 집단 대부분의 구성원이 해당 질환에 면역을 형성하고 있다면 전염의 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에 유행병이 발생하기 어렵게 된다. 만약 이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유행병을 넘어 풍토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새롭게 이주해오는 주민이나 신생아는 계속 생기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집단면역은 가변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이후 영국에서는 웨이크필드 박사가 홍역백신으로 인해 자폐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접종거부 바람이 확산되는 바람에 3차례의 홍역 대유행이 영국을 휩쓸었고, 현재도 영국은 홍역 유행국으로 남아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백신접종 거부로 사망하는 사람이 150만 명 수준이다. 건강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철저한 백신접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혁재(崔爀在) 약사 경희의료원 약제본부 예제팀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 2016-01-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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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여군·60대 화훼전문가의 '늦깎이' 대학졸업
- 세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군에서 40년간 원예산업에 종사한 60대 화훼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에 뒤늦게 학업의길에 들어서 대학 졸업의 꿈을 이룬 이들이 있다. 교육부는 25일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2014 학점은행제·독학학위제 학위수여식’을 개최했다. 학점은행제는 대학과 사회 기관에서 학점을 취득해 전문대·대학 학력을 인정받는 제도이고, 독학학위제는 4단계 시험을 거쳐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이날 학위수여식의 주인공 6만1천715명이 이 두 제도를 통해 학사·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특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부를 계속한 학생 16명이 특별상을, 빼어난 성적을 받은 13명은 성적 우수상을 각각 받았다. 학점은행제 특별상 수상자 중에는 원예 농업에 40년 종사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동국대 전산원 경영학과에 입학해 학사 학위를 딴 김광일(69)씨가 포함됐다. 김씨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원예를 계속 연구하고 싶어 건국대 농축대학원 생명자원학과를 지원, 만학의 꿈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이승연(36.여)씨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면서도 학점은행제로 아동·가족학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도실(74)씨는 은퇴 후 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일을 도우면서 공부를 시작해사회복지 전문학사를 땄다. 이 과정에서 남씨는 레크리에이션 2급 지도사, 미술심리치료사 2급, 요양보호사, 호스피스, 아동미술지도사 2급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왕성한 학구열을 보이기도했다. 독학학위제 특별상 수상자로는 60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된 유천형(78) 씨가 있다. 독학학위제 최고령 합격자이기도 한 유씨는 1950년대 서울대 농대를 중퇴했다가뒤늦게 독학학위제 과정을 밟아 국어국문학 학사학위를 받게 됐다. 군 복무 중 실명해 학업을 중단했다가 복지관 관장으로서 경영철학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김진호(57)씨, 입양한 다섯 자녀에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김미현씨(39.여), 중도에 포기한 학업에 대한 아쉬움으로 독학에 뛰어든 해군 잠수함 승조원 권용오(30)씨 등도 이번에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학위 수여자를 포함해 48만1천400명이 학점은행제·독학학위제로 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점은행제 학위취득자 가운데 30∼40대가 66%, 전문대졸업자가 35%, 대졸자가 30.4%로, 학점은행제가 직장인과 기존 학위취득자의 경력개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2014-02-27 0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