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기념] 젊어진 중년들, 후기청년을 말하다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
수명 120세 시대가 예측되는 가운데 60세는 중년과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으로 본다면 4050세대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다. 중년도 청년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세대를 말할 맞춤한 표현과 분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지령 100호를 맞아 이들 세대를 '후기청년'으로 정의하고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후기청년이란 시기상으로는 청년기의 후반을 뜻하는 동시에 '완성되고', '완숙한'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한 본 조사는 2023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전국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해당 결과를 통해 후기청년 세대의 삶과 인식을 재조명해본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처럼, 4050세대의 과반수는 신체적 노화와 별개로 스스로를 젊게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전문가들은 '신체적 노화'는 일어났지만, '심리적 노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체감하는 노화는 어떤 양상을 띠는지 알아보자.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점점 교육에 사용하는 기간,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는 연령, 첫 결혼 연령, 자가 취득 연령 등이 모두 뒤로 밀리고 있다. 기대수명이 꾸준히 증가했고, 건강수명도 늘어나면서 개개인의 생애주기 자체가 길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4050세대는 신체적으로도 청년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까? 조사 참여자의 과반수(65%)는 자신이 체감하는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적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응답자(95%)가 노화로 인한 체력 및 기능 저하를 경험한다고 답했다. 즉 자신이 느끼는 나이는 외적인 부분보다 내적인 것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 교수는 “지각된 나이는 심리적 웰빙, 자존감, 스트레스 및 사회적 지원 같은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풀이했다.
조사 결과에서 특이한 점은 연령대가 적을수록 신체적 노화를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40~44세의 58.7%가 체력 및 기능 저하를 많이 체감한다고 응답했고, 55~59세는 39.2%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정 교수는 “젊은 중년층(40~44세)은 나이 든 중년층(55~59세)에 비해 시기적으로 업무 스트레스,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감 등을 더 강하게 느낀다. 이로 인한 피로도가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또 나이가 들수록 대처 능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 관리 전략이 개발돼 피로를 더 잘 다스리게 된다”며 설문 결과의 요인을 유추했다.
[100호 기념] 젊어진 중년들, 후기청년을 말하다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
수명 120세 시대가 예측되는 가운데 60세는 중년과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으로 본다면 4050세대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다. 중년도 청년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세대를 말할 맞춤한 표현과 분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지령 100호를 맞아 이들 세대를 '후기청년'으로 정의하고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후기청년이란 시기상으로는 청년기의 후반을 뜻하는 동시에 '완성되고', '완숙한'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한 본 조사는 2023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전국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해당 결과를 통해 후기청년 세대의 삶과 인식을 재조명해본다.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는 자신들을 향한 용어로 ‘중장년’을 가장 많이 접했다(33.8%). 다음으로는 X세대(30.2%), 낀 세대(18.6%), 신중년(12.2%)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에게 해당 용어가 4050세대에 적합한지 되묻자, 절반이 그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51.8%).
정책이나 사회적으로 쓰이는 세대 구분 기준을 보면 대체로 청년은 만 35세 미만, 노년은 만 65세 이상이다. 이에 반해 조사 참여자 2명 중 1명(47.8%)은 40세 이상도 청년으로 볼 수 있다고 응답했고, 시니어(중장년)는 60세 이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81.4%). 또 자신이 속한 세대를 묻는 질문에 40~45세 그룹 5명 중 1명(22.2%)은 스스로를 '청년세대'라고 응답했다. 전 연령대에서는 3명 중 1명(33.2)꼴로 '중년이 막 시작하는 첫 머리' 위치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
김찬호 사회학 박사(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이번 설문 결과에 대해서도 “사회적 개념으로 노인의 기준이 65세라 하더라도, 대중은 이미 60대를 과거의 노인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 40대를 떠올려보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가장의 모습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취업이나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경제적 자립도 늦어지고, 같은 40대라 해도 청년기와 같은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 한편으론 기성세대가 과거 40대부터 현재까지 사회적 지위 등을 장기 집권하면서 새로운 40대의 진입을 막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정책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청년기 입지에 놓이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넥타이를 매어주던 때(중략)/인생은 그렇게 흘러/황혼에 기우는데/다시 못 올 그 먼 길을/어찌 혼자 가려 하오/여기 날 홀로 두고/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故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김광석은 통기타 하나로 시대의 아픔과 대중의 삶을 전달한 음유시인입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1995년에 가수 김목경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른 것으로, 김목경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런던에 살 때 건너편 집 부부의 모습을 보고 노래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1980년대 런던에 사는 60대 부부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요즘 60대를 인생의 황혼기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학의 발달 등으로 사람의 신체·건강 나이는 젊어졌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나이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했습니다. 10명 중 9명 이상이 “나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나이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나이보다 더 어리게, 더 늙지 않게, 아이들처럼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는 ‘어른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1년 기준 우리 국민 평균수명은 83.6세입니다. 1950년대 초반 48세(유엔통계)였으니 70년 사이 1.7배나 늘어난 셈입니다. 평균수명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67년 평균수명은 90.1세입니다. 유전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는 “인류의 평균수명이 113세에 이를 것”이라고 했고, 진화 인류학자인 카델 래스트는 “평균수명 12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을 보면 소년을 19세 미만(소년법 2조), 청년을 19세 이상에서 34세 이하(청년기본법 3조1항), 노인을 65세 이상(노인복지법 2조5항)으로 각각 규정합니다. 중년은 35세 이상에서 65세 미만입니다. 정신·신체 나이는 늘어만 가는데, 법은 과거에 머물면서 고용·사회 안전망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바꿔야 합니다. 청·장·노년의 기준을 바꾸고 정년을 늘려야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의 저자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청년은 10~39세, 중년은 40~69세, 노년은 70세 이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 교수는 “그래야 젊은 베이비부머가 한국 사회의 빚이 아닌 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리 있는 주장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인구절벽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건강한 생산연령인구 300여만 명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세대 역할의 변화도 불가피합니다. 인간의 긴 수명으로 인해 ‘나이가 곧 계급’이라는 인식은 재고돼야 합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멘토가 될 수 있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50+세대 일자리가 늘어도 일터는 정상 작동할 것입니다. 부모 자식, 선·후배 간 관계도 보다 수평적으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지령(誌齡) 100호를 맞아 그런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함께 전국의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을 중장년(33.8%)보다는 X세대, 낀 세대 등(62%)으로 보는 응답자가 더 많았습니다. ‘실제 나이보다 젊게 느낀다’는 응답이 65%였고, 10년 이상 젊게 느낀다는 응답자도 14.4%나 됐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4050세대를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로 ‘후기청년’을 제시하는데, 68.4%가 자신을 후기청년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젊어진 중년, 그래서 스스로를 청년으로 칭하는 이들의 미래가 녹록지는 않습니다. 100세 시대, 120세 시대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절반 이상이 ‘걱정된다’, ‘겁난다’, ‘절망적’이라고 답했습니다.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65세 이상이 되어도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73%에 달했지만 정작 ‘계획대로 노후 일자리 준비를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은 13%에 그쳤습니다.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고 정년을 연장하는 사회적 논의가 활발합니다. 정년연장•폐지에 대해선 2030세대도 80%가 동의합니다. 연금 개혁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마련 중입니다. 20년 가까이 된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의 개정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줄어든 아이 울음소리와 늙어가는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생애주기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설문조사에서 후기청년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들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청년 세대(후기청년을 포함한)야말로 출산과 육아, 고령화 부담을 직접 책임지는 세대입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청년 세대가 단단해지려면 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규준과 역할은 물론 교육과 보육, 주거 등 정책을 재정립해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을 수 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합니다. 시기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Exhibition
◇WATSON, THE MAESTRO
일정 3월 3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알버트 왓슨은 패션 포트레이트 사진계의 거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인의 사진작가’에 선정됐다. 왓슨은 스티브 잡스, 알프레드 히치콕, 데이비드 보위 등 동시대 아이콘과 작업했다. 1977년부터 2019년까지 100회 이상 패션잡지 ‘보그’ 표지 촬영을 담당했다. ‘킬 빌’, ‘게이샤의 추억’ 등 영화 포스터도 촬영했다. 이번 전시는 왓슨의 1960년대 초기작부터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는 2022년 최신작까지 아우른다. 유명 인사의 인물 사진, 풍경과 정물이 있는 개인 작업, 실험적인 사진까지 주요 작품 125점을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왓슨이 촬영한 다양한 매거진의 전설적인 커버 이미지와 테스트 샷으로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 밀착 인화지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과 영상까지 함께 전시된다. 왓슨은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었지만 카메라의 눈을 빌려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낸다.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사진을 접한 지 60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사진에 열정을 품고 있다”면서 “팔십을 넘어선 지금도 나는 카메라 중독자다”라고 말했다.
◇박기웅 : 48 VILLAINS
일정 4월 11일까지 장소 서울스카이
‘빌런’(Villain)은 ‘악당’을 뜻한다. ‘48 VILLAINS’는 ‘악역 전문배우’로 이름을 알린 박기웅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명한 전시다. 박기웅은 연기자의 삶을 통해 얻은 감정선을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 속 빌런 48인을 그렸다. 화려한 색감은 배제하고 흑백 모노톤으로만 집약한 페인팅 작업이 독특하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관람객이 작품에 투영된 감정선에 더 깊이 따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 대표작은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그린 ‘히스 레저 애즈 조커’와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를 표현한 ‘말콤 맥도웰 애즈 알렉스 디라지’ 등이다.
●Stage
◇레드북
일정 3월 14일 ~ 5월 28일
장소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박소영
출연 옥주현, 박진주, 민경아, 송원근, 신성민, 김성규 등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레드북’이 2년 만에 다시 개막한다. 이번 시즌은 역대급 배우 라인업으로 기대감이 높다. ‘레드북’은 19세기 런던,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숙녀보다는 그저 ‘나’로 살고 싶은 여자 ‘안나’와 오직 ‘신사’로 사는 법밖에 모르는 남자 ‘브라운’이 서로를 통해 이해와 존중의 가치를 배우는 과정을 담았다.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에 비난과 편견을 극복하고 작가로 성장해가는 안나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유쾌하게 펼쳐진다.
◇오페라의 유령
일정 3월 30일 ~ 6월 18일
장소 부산 드림씨어터
연출 라이너 프리드
출연 조승우, 김주택, 전동석, 손지수, 송은혜, 송원근, 황건하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3년 만에 한국어 공연으로 돌아온다. 더욱이 조승우, 김주택, 전동석 등 최정상 캐스트로 기대를 모은다. ‘오페라의 유령’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오페라의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가면 속 감춰진 러브 스토리를 그린다.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3월 30일 막을 올리며, 7월에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파우스트
일정 3월 31일 ~ 4월 29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양정웅
출연 유인촌, 박해수, 박은석, 원진아
독일 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쓴 역작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다. 연극에서는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이 악마와 위험한 계약을 맺으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원한 진리와 욕망 사이에 고민하는 인간 ‘파우스트’와 순간의 쾌락을 주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대립이 지상과 천상을 넘나들며 그려진다. 유인촌은 파우스트, 박해수는 악마 메피스토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박은석은 ‘젊은 파우스트’ 역을 맡았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원진아는 젊은 파우스트와 사랑에 빠지는 ‘그레첸’을 연기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생뚱스레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음식점이라거나,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뜻밖의 공간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CICA(시카)미술관은 의외의 장소성으로 오히려 도드라진다. 거대한 산업단지 안에 외톨박이 이방인처럼 고독하게 박혀 있으니까. 김포시 양촌읍 학운산업단지 한구석에 있다. 하필 왜 여기에 미술관을? 이런 궁금증, 쉽게 터져 나올 입지다. 그러나 실은 어엿하다. 황무지에 솟은 꽃나무 한 그루에 견주면 과할까? 풍습과 관행을 흔들어 깨우는 게 예술이다. 장소 불문, 제 갈 길 야무지게 가면 된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겉으로 소탈하지만 안으로 짱짱하다. 건성으로 풀이거니 해도, 알고 보면 꽃이다.
CICA미술관에서 맨 처음 만나는 건물 외벽엔 철판을 잘라 만든 조각 작품이 부착돼 있다. 산발한 머리칼이 불꽃처럼 너울거리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그대로 조형한 철 조각이다. 미술관 설립자이자 조각가인 김종호의 작품이다.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 도발적인 주제와 발칙한 기법으로 미술의 새 물꼬를 텄다.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동향과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집중적으로 펼친다. 지향이 그렇다.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조각한 작품을 초입에 배치한 이유를 알 만하다.
김종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건 30여 년 전이다. 조각 작업의 특성상 너른 공간이 필요해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김포에 작업실을 마련했던 거다. 당시 이 지역의 풍광은 산업단지로 바뀐 지금과 사뭇 달랐다. 논밭이 지천이었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펼쳐져 감흥을 자아냈다. 화가의 작업실로 적격인 장소였다. 지평선 너머로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벗 삼아 작업에 매달렸을 테다. 이후 작업실을 개방하는 한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다, 2015년에 미술관 등록을 하면서 CICA미술관을 출항시켰다.
건물을 볼까. 5개 동이 있다. 이채롭게도 모든 건축물이 나지막한 음성을 내는 버릇이 있는 사람처럼 소박하고 수굿하다. 티 내거나 뽐낸 기색이 없다. 치레와 꾸밈을 능사로 하는 여느 미술관 건축과 다른 형상이다. 전시실들이 있는 주 건물은 특히 눈길을 끈다. 김종호의 작업실을 증축한 건물인데 적당히 낡아 오히려 정겹다. 연푸른색을 입혔으나 시간의 횡포로 퇴색한 외벽이 야기하는 서정이라니. 처음엔 말짱했으리라. 말쑥했으리라. 그러나 비와 햇볕, 바람이 세월에 묻어 흐름에 따라 빈티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저 낡아가는 빛깔과 내향적인 질감은 시간의 지문이다.
이 건물은 김종호가 디자인해 지었다. 손수 연장을 들고 짓거나 고치거나 다듬었다. 그러니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통째 그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철 조각을 하는 작가라서 건축 오브제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솜씨는 이미 몸에 푹 익어 거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을 모으거나 일을 즐기며 천천히 건물을 증축했다. 덕분에 어쩌면 건축적 악곡의 주조음에 해당할 수굿함과 낡음의 미학을 잘 빚어냈다. 수굿함이란 모난 세상과 격하게 접촉할망정 안으로 문을 열어 선선히 수용하는 긍정의 기운이다. 낡음이란 흉한 추락이 아니다. 밀고 당겨온 세월과의 갈등과 투쟁과 서사를 웅변하는 아름다운 훈장이다. 설핏 보자면 허름한 건물이지만 사실은 뜯어보고 눈여겨볼 게 많다. 허심과 무심으로 사람을 데려간다.
전시실 구조에 서린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
이 미술관은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은 뮤지엄은 아니다. 내로라하는 공립미술관이나 일부 대형 사립미술관의 당찬 행진에 비하면 그저 소탈한 행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시회를 우후죽순 격으로 빈번하게 펼친다. 홈페이지를 보니 2022년에 연 전시회가 자그마치 120여 개에 이르는 게 아닌가? 2023년 1월 현재에도 4개의 전시회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그림을 보러 갔으나 전시회 내용이 빈약해 허탈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사립미술관이 흔하다. 전시회 하나 기획해서 막을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의 기동성과 기획력은 민첩하고 강렬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언제든 작품과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을 추구하고 있다. 전시 작가들의 작품은 실험적이고 감각적이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 선정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전도 매우 활발하다. 사실 우리 미술관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CICA미술관은 잦은 전시회로 외연을 확장해왔다. 한편 공모전을 통한 전시 작가 선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미술관이 지닌 대찬 자존감의 근거다. 인맥이나 섭외의 기술을 가동해 전람회를 가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적성과 철학에 맞지 않아서. 그런데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이 미술관은 초기부터 국내 작가보다 해외 작가 전시회에 치중했다. 지구 위에 범람하는 현대미술의 현상과 사조를 관객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회화, 영상, 사진, 설치작업, 디지털아트는 물론, 첨단과학과 접목된 인터랙티브 아트까지 선보였다. 매년 국제행사도 세 차례 펼친다. 뉴욕과 워싱턴DC, 그리고 CICA미술관에서. ‘CICA 뉴미디어아트 국제 컨퍼런스’라는 타이틀을 걸고 국내외 작가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이 행사에선 미술전도 동시에 열린다. 한글과 영문으로 된 현대미술 관련 도서도 줄기차게 출간한다. 한마디로 콘텐츠의 작렬? 크지 않은 미술관의 작은 밥상 다리가 휘어지게 성찬을 차려내는 형국이다. 이 풍성하고 왕성한 활동력으로 해외에 이름을 알린 셈이다. 현재 이 미술관이 작동하는 네트워크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5000여 명이 들어와 있다. 이래저래 심상찮다. 한 발짝 앞서간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4개의 전시실에서 4개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Portrait 2023’전은 초상(肖像)을 테마로 삼은 전시회다. 매년 동일한 테마로 펼쳐지는 기획전의 2023년분 행사다. ‘Youth #9’전은 17세부터 27세까지 국내외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로, 이 역시 매년 거듭된다. 미술관의 촉수가 신진 작가 발굴에도 뻗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이라 하면 화이트 큐브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 전시 공간의 구색은 썩 다르다. 외관이 낡음과 수굿함으로 정취를 자아낸다면, 내부의 분위기는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가 물씬해 흥미롭다. 구조물들의 모습은 투박해서 오히려 편안하다. 천장과 벽과 자투리 틈새에 설치한 채광창에선 위트가 느껴지며, 전시실 상부를 강인한 한 획처럼 가로지른 철골은 자칫 허술해 보일 수 있는 구조물들에게 힘과 생동감을 공급한다. 모든 것은 김종호가 수공업 공정으로 만들었다. 세련미를 추구하는 추세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뭐랄까,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했다. 제 장단대로 한바탕 놀았다. 그러니 보는 이도 흥이 날 수밖에.
김명숙 CICA미술관 관장
“왜들 유명 작가만을 좋아하지?”
CICA미술관의 규모는 크지 않고 건축물들은 낡아 보인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해외 작가들을 끌어들인 전시회를 수시로 펼쳐 현대미술의 세계적 동향을 알게 한다. 유명한 작가보다 젊은 작가 위주의 전시회를 추구하는 것도 이 미술관의 지향이자 개성이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비교 사례가 드물 정도로 많은 전시회를 펼쳤다. 이를 두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다수의 전시회보다 소수의 비중 높은 작가의 전시회를 하는 게 미술관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과연 비중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비중을 누가 어떻게 측량하나? 그건 우리의 철학과 맞지 않는 얘기였다.”
이미 역량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를 지속해왔다는 얘기로 들린다.
“모든 전시회를 100% 공모전을 통해 선정한 작가들로 치렀다. 능력이 충분한 작가들의 전시회를 도모해왔다.”
CICA미술관 보유 네트워크에 5000여 명의 해외 작가가 속해 있다지? 이 방대한 인적 구축이 어떻게 가능했나?
“미술관의 아트디렉터 김리진이 개척한 인적 자산이다. 그는 미국에서 뉴미디어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 조소 작가로도 활동했다. 유능하고 진취적인 인재로 우리 미술관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전담해왔다. 관장인 나는 사실 공식 잡부에 불과하다.(웃음)”
김리진 아트디렉터는 김명숙 관장의 딸. 그리고 김명숙 관장은 CICA미술관 설립자 김종호 조각가의 부인으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미술에 인생을 실은 가족 3인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어느 보고서를 보면,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이 작품 한 점을 감상하는 데 쓰는 시간이 평균 17초에 불과하더라. 한국의 경우는 어떻다고 보나?
“아마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쓰윽 스쳐가듯 대충 본다. 흔히 미술작품을 어려워한다. 그럴 거 없다. 너무 이해하려 애쓸 일이 아니다. 가령 옷을 살 때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색감을 골라 사듯이, 본인 취향에 맞는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목이 생긴 뒤엔 인문학이나 미술사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미술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미술품 투자가 대중화되고 있다. 미술 향유 풍토의 확산과 유관하다고 보나?
“미술을 즐기기 위한 투자라면 무방하겠지만 완전한 투자 목적은 곤란한 거 아닐까. 투자를 하더라도 우선 안목부터 길러야 한다. 남들이 유명 작가라 하는 걸 그냥 따라가는 행태는 안타깝다.”
과학과 융합된 작품까지 등장하는 게 현대미술이다. 여간한 안목이 아니고선 즐기기가 사실 쉽지 않다.
“미술에서 굳이 아름다움만을 찾을 일이 아니다.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충격, 공포, 지루함까지를 새로운 감정 경험으로 수용하다 보면 즐길 수 있다. 영상작품 같은 건 좀 오래 봐야 감흥이 올 테고. 흔히 후기인상파의 그림을 애호하지만, 난 현대미술에서 훨씬 더한 재미를 느낀다. 거기엔 뭔가 한 방이 있다. 자극 요소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경기도 안산이냐, 서울 마포냐, 단원 김홍도의 고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고증이 없어 미지수다. 그런데 단원이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단서가 있다. 안산은 18세기 조선 예원(藝苑)의 총수였던 표암 강세황이 30여 년을 머문 고장이다. 표암의 시문집 ‘표암유고’에 단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가령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일찍이 맺어진 표암과 단원의 사제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단원을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 일컬은 이도 표암이었다. 정황이 이러니 안산 사람들은 뿌듯하다. 안산의 풍토와 풍정이 표암의 가르침과 함께 단원을 거목으로 길러냈다고 보기에. 안산시가 김홍도미술관을 만든 연유가 완연하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 외곽 노적봉 기슭에 있다. 야산 치맛자락을 거머쥔 형국이다. 노적봉 산책과 미술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입지다. 건물은 모두 네 동. 현대미술전이 펼쳐지는 1•2관, 단원콘텐츠관인 3관,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상상미술공장으로 구성했다. 너른 뜰엔 조각 작품도 많다. 전체적으로 독특할 것 없는 구색이지만 미술 작품으로 얼마든지 활갯짓할 수 있는 공간이라 훤칠하다. 뒷산의 수목들은 제법 울창해 조연으로 손색없다. 산기(山氣)를 싣고 스쳐가는 청명한 바람과, 연달아 착륙하는 햇살의 대열도 도회를 벗어난 관람객에겐 반가운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단원콘텐츠관으로 들어간다. 이렇다 할 꾸밈과 치레 없이 간결한 전시관이다. 김홍도미술관의 핵심 공간이다. 단원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기획한 콘텐츠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년 김홍도, 노적봉에서 세상을 담다’전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안산에 있었던 단원이라는 이름의 숲과 서호(西湖) 바다를 모티브로 한 전람회로, 단원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산의 옛 풍경을 상상해보게 하는 전시회다. 어물 장수나 고기잡이 풍속을 그린 단원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단원이 교유한 표암, 심사정, 최북의 작품도 있다. 단원의 예술 정신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낸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도 등장해 볼거리를 확대했다. 안산의 고지도를 전시한 건 관객을 과거의 안산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일 테다.
흥미롭기론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다. 아집도? 아집은 아회(雅會)와 같은 말로 묵객들이 모여 시와 술을 나누며 노니는 야유회다. 그걸 그린 게 아집도다. 즉 ‘균와’라는 산골짝에 화가 여럿이 모여 소풍을 즐기는 광경을 그린 게 ‘균와아집도’다. 때는 1763년 4월. 봇물처럼 터진 춘색이 영롱해 어지러웠으리라. 봄꽃 필 때 묵객은 유난한 ‘심쿵’으로 설렌다. 산야에서 작당해 꽃과 더불어 한잔 아니 마실 수 없다. 모인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그림 상단 오른편에 쓰인 발문에 다 나온다. 보자.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이다. 그 곁엔 어린 김덕형이 있다. 담뱃대를 물고 앉은 이는 현재 심사정이다. 차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이는 호생관 최북이며, 퉁소를 부는 사람은 단원 김홍도다.’
등장인물 모두 안산과 연이 깊었더란다. 다들 일세를 풍미한 거장이다. ‘균와아집도’는 조선 후기 묵객들의 놀이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원이 퉁소를 불고, 강세황이 거문고를 탔으니 고급스러운 피크닉이다.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그린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이채로워 우뚝하다. 학자이자 서화가인 허필이 쓴 발문의 귀띔에 따르면 그림의 전체 구도를 잡은 건 표암이다. 능란한 필치로 휘늘어진 솔과 옹골찬 바위를 그려 담황색을 입힌 건 심사정과 최북이다. 당시 19세였던 단원은 가는 붓을 날렵한 속필로 휘저어 인물들을 묘사했다. 10대 청년이던 단원이 대가들과 어울려 붓을 적셨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단원의 예술적 기량이 일찍부터 수승한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전시장에 나온 작품 전부가 영인본이라는 점이다. 애초 단원의 진본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으나 빗나갔다. 단원의 현존하는 그림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파악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 작품을 빼더라도 300점이 넘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이 다수를 소장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신선의 무리를 그린 ‘군선도 병풍’(群仙圖 屛風, 국보 제139호)을 소장했다. 안산시도 7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김홍도미술관이 2년마다 펼치는 진본 기획전을 통해 공개된다. 2021년엔 ‘표암과 단원’전을 열어 진본들을 전시했다. 진본 가운데 ‘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풍속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려
단원 김홍도는 조선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들날린 화가다. 그의 돛을 밀어준 건 표암이었다. 인생의 눈을 트이게 하고 예술의 길을 열어준 이가 표암이었다. 단원을 궁중 화가로 천거한 이도 표암인데 단원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표암이 괜한 선심을 베풀었으랴. 그는 일찌감치 단원의 됨됨이와 천재성을 발견했다. 단원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용을 보았다. 표암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써 단원을 극찬했다.
‘단원의 화풍은 새로워 개벽을 이룰 정도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저마다 부르짖었다. 그림을 구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단원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모자라 단원에 대해 아는 게 드물다. 그럼에도 김홍도미술관을 관람하며 그의 아우라가 허공에 감도는 것 같은 환(幻)을 느낀다. 전시작이 많지 않아 단원이 항해한 예술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을 맛보긴 어렵다. 다만 단원의 옷깃에 살랑대는 실바람 한 오라기를 움켜쥔 느낌이다. 생각나는 건 언젠가 화첩에서 본 단원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불러일으킨 쓸쓸한 정취다.
주상관매라, 배 위에서 매화를 보다! 단원은 매화 마니아였다. 매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매화를 가슴에 담았으니 생애엔 매향이 난분분? 단원은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주상관매도’의 매화는 어이 아득한 허공에 떠 우련한가. 백일몽처럼,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렸다. 천길 벼랑에 걸린 매화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엔 강물이 있지만, 뿌연 안개처럼 경계 없이 흐릿하게 그려 천하가 아득하다. 강기슭에 멈춘 조각배에 비스듬히 앉아 매화를 지켜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엔 우수가 실려 있다. 초연하다기보다 쓸쓸한 기색이 여실하다. 노경이란 외로워 매화마저 무상감을 돋운다는 걸까? 이 그림은 단원의 노년기 작품이다. 이상을 좇는 열정보다 허무의 성분이 커진 시절에 그렸다.
말년의 단원은 곤궁했다. 정조가 붕어하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 가세가 기울어 고달프게 살았다. 단원의 종신(終身)은 미스터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전해오는 게 없다. 작품이야 불멸! 그가 그림 안에 가둔 자연과 인간사의 총량은 장강(長江)과 맞먹는다.
대중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 둘은 사제지간이었다. 마티스는 일찍이 피카소의 천재성을 읽어 지지와 조언을 했고, 피카소는 마티스를 평생 따랐다.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 이 조선의 커플 역시 사제지간으로, 예술적 동지로, 지음(知音)으로 평생 교유했다.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의 얘기는 이렇다.
“복 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 하는데, 단원이 표암 강세황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까. 작품 하나를 완성하면 단원은 흔히 표암에게 먼저 보여줬고, 표암은 강평을 해주었다.”
단원이 표암으로부터 화풍의 영향도 받았나?
“단원이 그 누군가에게 화풍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흔적은 없는 걸로 알려졌다. 표암은 정신적 스승으로서 단원을 북돋았던 셈이다. 단원은 천재였다. 게다가 못 말릴 노력파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거다.”
단원은 풍속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사회의식도 호감을 산다.
“안산시가 소장한 단원의 진본 7점 중 하나인 ‘공원춘효도’에도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제도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풍자한 그림이니까. 단원의 풍속화는 30대 초반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 그러나 단원의 작품 스펙트럼은 훨씬 드넓다.”
표암과 더불어 정조 임금 역시 막강한 스폰서 역할을 함으로써 단원의 순항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단원이 표암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됐다고 보더라. 그런데 단원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본 정조가 대단한 후원을 했다.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단원이 주장하도록 하라’고 할 정도였다. 궁중 화가로서 단원은 일종의 공공그림을 그렸으나 퇴근 뒤엔 자기 그림을 그렸다. 단원의 집 문간엔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었다고 한다.”
단원의 성향을 알 만한 일화가 있다면?
“풍류에도 일가견 있는 단원이었다. 특히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언젠가 한번은 단원의 그림을 원하는 이가 찾아와 작품값으로 3000전을 내놓고 갔다. 단원은 그중 2000전으로 매화를 사고, 800전으로는 술을 사 친구들과 매화를 즐기며 대작했다. ‘매화음’(梅花飮)이라는 이름의 술자리였다. 결국 남은 돈은 200전뿐이었는데, 이걸로 쌀과 장작을 사 집에 들였으나 하루 땟거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 계급) 출신인 단원의 신분 상승 욕구도 정진의 발판이었던 것 같은데.
“선비가 되고 싶은 마음, 선비정신의 정상에 선 삶을 갈망하며 끝없이 노력했다. 말년에 그린 ‘포의풍류도’에 이와 같은 지향이 드러난다. 문방사우와 악기 등 갖가지 기물과 선비의 모습 등을 그린 작품이다.”
‘포의풍류도’에는 이런 화제를 붙였다.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 살지만,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시가나 읊조리며 살고자 한다.’ 단원의 유토피아가 구현된 그림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말년은 고단했다.
“정조가 별세하면서 단원의 고난이 시작됐다. 아들의 월사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니까. 그러나 선비다운 태도는 끝까지 지니고 살았다. 이게 단원의 빛나는 정신이지 않을까?”
●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Exhibition
◇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대동여지도, 용비어천가, 청진동 출토 항아리 등 한양을 대표하는 보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은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한 특별 전시다. 보물 15건, 유형문화재 25건을 포함한 유물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조선시대 한양 사대부와 기술관, 장인들이 생산한 소장품을 지도·서화·고문서·전적·공예 5가지 분야로 나눠 소개했다.
먼저 지도 부문에는 보물로 지정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필사본인 ‘동여도’가 함께 전시돼 있다. 두 작품이 동시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를 펼쳐 연결하면 가로 4m, 세로 7m에 이른다.
서화 부문에서는 궁중 화원이 그린 흥선대원군의 초상화와 문서를 담당하는 관직인 사자관 한호의 글씨가 담긴 ‘석봉한호해서첩’을 볼 수 있다. 사대부가 한양의 명소를 그린 산수화, 풍속과 놀이를 볼 수 있는 풍속화, 국가의 행사나 사적 모임을 그린 기록화 등도 소개됐다.
고문서 부문에서는 한성부가 발급한 토지 매매 문서인 한성부 입안이 공개됐다. 전적 부문에서는 조선시대 세종 때 목판본으로 제작된 ‘용비어천가’를 비롯해 경자자로 인쇄된 조선 최초의 ‘자치통감강목’, 초주갑인자로 인쇄된 ‘자치통감’ 등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공예 부문에는 청진동 출토 백자 항아리와 대장경궤 등의 목가구가 전시돼 있다.
◇장-미셸 오토니엘 : 정원과 정원
일정 8월 7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정원
장-미셸 오토니엘은 ‘유리구슬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미술가다. 오토니엘의 이번 개인전 ‘정원과 정원’은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파리 프티 팔레에서 개최한 전시보다 규모가 크다.
오토니엘은 이번 전시에서 유리와 스테인리스 스틸, 금박 등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했으며 풍부한 의미를 담아냈다. 또한 작가는 미술관 밖의 공간에서 대중의 삶과 자연, 역사와 건축의 만남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에 ‘정원과 정원’ 전시 역시 다양한 공간에서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야외조각공원, 그리고 덕수궁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Book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김석중·김영사)
저자 김석중은 우리나라 1호 유품정리사로 통한다. 일본에서 우연한 기회로 유품 정리 일을 배워온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품정리사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덧 15년째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책을 통해 경험과 소회를 풀어냈다.
그는 고독사나 자살 현장처럼 물건을 보는 게 힘들다거나, 고인을 떠나보낸 상실감에 마음 아파서 유품 정리를 하지 못하는 유족들을 대신해 고인의 흔적을 정리한다. 최근에는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생전 유품 정리 점검 문의, 사후 유품 정리 예약도 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유품을 정리할 때 ‘주인과 함께 천국으로 이사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예의를 다해 물건을 소중히 다룬다고 한다. 감정이 개입하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감정 조절이 어려운 순간도 많다. 아들을 위해 짜다 만 어머니의 스웨터, 한 청년이 남긴 여행용 캐리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하늘나라로 간 아기의 유모차까지. 그는 일을 하다 말고 주저앉아 펑펑 울 때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저자는 가족 간에 분쟁이 생기거나 고인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등, 준비되지 못한 죽음의 현장도 마주했다. 이에 그는 죽음을 생각해보고, 가족들과 죽음 이후에 대해 얘기해볼 것을 당부한다.
◇절대지식 치매 백과사전(홍경환·스마트비즈니스)
10년 동안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간호해온 저자는 치매 가족들과 교류하면서 ‘눈높이 치매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치매 환자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가족들이 치매에 대한 상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1일 1페이지 법의 역사(이염, 권필·시대의창)
‘법의 역사’에 관한 207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국사와 세계사,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사건과 법적 주목 지점을 대중적으로 풀어냈다. ‘민주주의를 위한 피, 땀, 눈물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는 법을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마리야 이바시키나·책읽는곰)
책에 소개된 17개국의 71개 단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나타낸다. 영어 ‘히라이스’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네덜란드어 ‘헤젤리흐’는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고양감을 의미한다.
●Stage
◇햄릿
일정 7월 13일 ~ 8월 13일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출 손진책
출연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권성덕, 박건형, 강필석, 박지연 등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이 한층 젊어져 돌아온다. 연극계의 대배우들과 젊고 유망한 배우들이 함께하며 축제와도 같은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이번 ‘햄릿’에는 한국 연극계의 원로 9명(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 권성덕)이 출연한다. 이들은 2016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 공연 ‘햄릿’ 무대에 오른 주역들이다.
선배 라인의 배우들은 이전 공연과 달리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 클로디어스부터 유령, 무덤파기, 배우 1~4 등 작품 곳곳에서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한다. 햄릿,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 등은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김명기, 이호철 등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다. 선후배가 화합하며 만들 무대가 기대를 모은다.
‘햄릿’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 이해랑 선생의 연출로 대구에서 초연된 이래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이다.
◇킹키부츠
일정 7월 20일 ~ 10월 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제리 미첼
출연 이석훈, 김성규, 신재범, 최재림, 강홍석, 서경수, 김지우, 김환희, 나하나, 고창석 등
‘올여름, 더 뜨겁게 킹키하라!’ ‘드랙퀸’(여장남자 가수)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인기를 끌었던 화려한 뮤지컬 ‘킹키부츠’가 돌아온다.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처한 수제화 공장이 남자가 신는 80cm 길이의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국내 무대에 상륙한 후 2016년, 2018년, 2020년 무대에 오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 시즌으로 이석훈, 김성규, 최재림, 강홍석 등 기존 배우들이 다시 돌아와 기대를 더한다.
◇쓰릴 미
일정 7월 12일 ~ 10월 9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이대웅
출연 이주순, 최재웅, 박상혁, 황휘, 윤재호, 김진욱
류정한, 김무열, 지창욱, 강하늘 등 많은 배우들이 거쳐간 뮤지컬 ‘쓰릴 미’가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쓰릴 미’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전대미문의 유괴 살인 사건을 다뤘다. 심리 게임을 방불케 하는 인물 간의 감정 묘사와 한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아온 ‘쓰릴 미’는 소극장 뮤지컬의 신화로 불린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2007년 초연 극장이었던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을 올린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Exhibition
◇민속이란 삶이다
일정 7월 5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의 가치와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는 특별전 ‘민속이란 삶이다’를 7월 5일까지 연다. 전시는 민속과 관련된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 600여 점을 통해 민속이 근현대에 어떻게 학문으로 자리 잡고 영역을 확장해나갔는지 돌아본다.
전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아키비스트(기록물 관리 전문가)이자 민속학자 송석하(1904~1948)가 정리한 일제강점기 민속 현지조사 원본 사진카드 486장이 공개됐다. 약 90년 전 북청사자놀음과 봉산탈춤 등을 조사하고 카드별로 명칭과 지역, 날짜를 기록했다. 전시실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추억의 물건들도 민속의 이름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1970~80년대 혹은 1980~90년대 삶의 모습이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그 시기의 민속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됐다. 필름카메라,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 286 컴퓨터, 3.5인치 디스켓 등이다. 온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민속 물품도 전시되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통해 한국을 모자의 나라로 각인시킨 갓, 미국 아마존에서 대박 신화를 쓴 영주 호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달고나 등을 만날 수 있다.
◇조미수교와 태극기
일정 7월 7일까지 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조미수교와 태극기’ 특별전을 통해 1882년 작성된 최초의 태극기 도안을 공개했다. 최초의 태극기 도안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 슈펠트 문서에서 찾은 것으로, ‘슈펠트 태극기’로 불린다. 원본은 도서관에 있고, 이 교수가 촬영한 사진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1882년과 1899년에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책 ‘해양국가의 깃발’과 그 안에 실린 태극기 도안도 공개됐다. 특히 1882년 최초의 태극기 도안과 그해 나온 ‘해양국가의 깃발’ 속 태극기가 매우 흡사해 화제를 모았다.
●Book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이어령·열림원)
지난 2월 별세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가장 사적인 고백이 담긴 산문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가 새롭게 출간됐다. 2010년 초판 출간 이후 12년 만이다. 개정판에는 개신교 신앙 고백에 관한 인터뷰를 담은 ‘나는 피조물이었다’가 빠졌다. 1~4부 모두 이어령의 산문으로만 채워졌다. ‘나는 피조물이었다’는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에 담겨 출간될 예정이다.
책에는 이어령 문학의 ‘우물물’이 되어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메멘토 모리’의 배경이 되는 여섯 살 소년 이어령의 고향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부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서 이어령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2부 ‘이마를 짚는 손’, 3부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에서는 이어령의 사색적이고 섬세한 필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4부 ‘나의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이어령의 문학이 어떠한 과정으로 완성돼왔는지 엿볼 수 있다. 이어령은 어머니부터 외갓집, 고향, 그리고 문학론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감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묵은 글들” 속 또렷하게 남아 있는 향수를 전한다. 특히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며 공감을 이끈다.
◇생존자들(캐서린 길디너·라이프앤페이지)
임상심리학자인 저자가 25년간 심리치료를 하며 만난 내담자들 가운데 특별한 네 사람을 소개한다. 어린 시절의 비극적인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저자는 대화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치유받는데, 그 과정이 감동을 준다.
◇민낯들(오찬호·북트리거)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열두 가지 사건을 담은 책이다. 故 변희수 하사, 故 설리(본명 최진리) 등의 문제적 죽음을 응시하고, 코로나19 팬데믹과 n번방 사건, 세월호 참사, 낙태죄 폐지 등을 되짚으며 한국 사회의 민낯을 폭로한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존 캠프너·열린책들)
자존심 센 영국인이 독일을 극찬하는 책이다. 저자는 뼈아픈 과거에서 배운 교훈, 품위 있는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 문화를 존중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려는 리더십 등 전후 75년간 현대 독일의 놀라운 변화를 분석한다.
●Stage
◇웃는 남자
일정 6월 10일 ~ 8월 22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프랭크 와일드혼
출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 민영기, 양준모, 신영숙, 김소향, 이수빈, 김승대, 최성원 등
뮤지컬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두 번째 창작 뮤지컬로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8년 월드프리미어와 2020년 재연에 이르기까지,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웃는 남자’는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인물인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지울 수 없는 웃는 얼굴을 가진 채 유랑극단에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관능적인 젊은 청년 그윈플렌 역에는 배우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이 출연한다. 박효신은 2018년 이후 4년 만의 귀환이다. 박은태는 뉴 캐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박강현은 2018년 초연, 2020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까지 함께하게 됐다. 또한 우르수스 역에는 민영기와 양준모, 조시아나 역에는 신영숙과 김소향이 각각 캐스팅돼 기대감을 더한다.
◇번지점프를 하다
일정 6월 22일 ~ 8월 21일
장소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심설인
출연 이창용, 조성윤, 레오, 최연우, 이정화, 고은영, 정재환, 렌 등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병헌·이은주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2012년 초연돼 2018년까지 세 시즌을 거쳤다. 아름다운 스토리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극은 국어 교사 서인우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간다. 국문과 대학생 인우는 당돌한 미대생 태희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지만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태희를 간직하고 살던 인우 앞에 그녀와 같은 버릇, 같은 행동을 하는 남학생 현빈이 나타나면서 인우는 혼란에 빠진다.
◇마타하리
일정 5월 28일 ~ 8월 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권은아
출연 옥주현, 솔라,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 최민철, 김바울 등
뮤지컬 ‘마타하리’가 5년 만에 돌아온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본명 마그레타 G. 젤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6년 초연과 2017년 재연에 참여한 옥주현이 마타하리 역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이와 함께 마마무 솔라가 뮤지컬 무대에 새로운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또한 마타하리의 유일한 사랑인 아르망 역은 김성식, 이홍기, 이창섭, 윤소호가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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