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서 한 TV 프로그램에서 전쟁을 다룬 두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그중 하나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스윙키즈’라는 영화다. 포로수용소 얘기라면 아버지에게 열 번도 더 들은 얘기이지만 영화는 어떻게 다뤘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에는 대규모 포로수용소가 건설되었다. 유엔이 관리하던 이 수용소에는 많을 때는 17만 명이 넘는 포로들이 있었다. 당시 거제도 주민이 10만 명이었다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북한군, 중공군이었는데, 북한으로의 송환을 주장하는 친공 포로들과 남한 정착을 바라는 반공 포로로 나뉘어 서로를 포섭하거나 공격했다.
‘스윙키즈’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수용소에 새로 부임한 미군 소장은 수용소 이미지를 개선해 실적을 쌓으려는 생각으로 전쟁 포로들로 댄스팀을 결성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탭댄서였던 흑인 하사 잭슨은, 수용소 내 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로 5인조 댄스팀 ‘스윙키즈’를 결성한다. 반공과 친공 대립으로 서로 찌르고 불지르는 폭력이 난무했지만, 댄스팀은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춤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언젠가 함께 미국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영화는 언어와 인종, 성별과 이념이 다른 다섯 명의 댄서들이 탭댄스를 배우고, 춤추는 장면을 공들여 보여준다. ‘sing sing sing’이라는 곡의 신나는 멜로디에 맞춰 춤추는 배우들의 연기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였다. 그러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스윙키즈의 무대가 포로수용소였다는 걸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이념의 갈등과 대결로 수용소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결국 크리스마스 공연장은 피바다가 되고 꿈을 향한 ‘스윙키즈’의 날갯짓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에 영감을 준 건 종군기자 베르너 비숍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사진 속 포로들은 커다란 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있었다. 미군은 반공 포로들이 춤을 추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연출해 친공 포로들을 전향시킬 선전도구로 사용했다. 반공 포로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증명하기 위해 시키는 대로 했지만, 한편으론 반공 포로임이 알려지면 목숨이 위태로워져 봉투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숨긴 채 춤을 추었다.
베르너 비숍이 그때의 진실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아버지는 조금도 바래지 않은 기억으로 수용소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자식들에게 전해줬다. 북한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전쟁 포로로 잡혀 거제도에 수용되었는데 누가 이쪽인지, 저쪽인지, 첩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공포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갔다고 한다. 친공 포로들의 폭동을 진압한 미군은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를 갈라놓았고, 아버지는 당시 포로들을 분류하는 일에 투입됐다. 커다란 강당 한쪽엔 친공 포로, 다른 한쪽엔 반공 포로의 줄이 만들어졌다. 겨우 알파벳 정도 읽었던 아버지는 한글을 모르는 미군을 위해 포로들 이름을 알파벳으로 써주었다. 그때 아버지는 멀리서 강당으로 걸어 들어오던 고향 친구와 사범학교 선생님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이데올로기 따윈 관심도 없었고, 푸시킨이나 투르게네프를 좋아했던 문학청년이었던 아버지는 떠밀리듯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이 생사를 갈랐다. 전쟁은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비극적이었고 독했다.
아버지가 이 영화를 봤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를 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언성을 높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여전히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잔인한 일들을 줄줄이 꺼내놓았을 테고, 나는 언제 이야기가 끝나나 지루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70년. 이제 아버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포로수용소도 대부분 철거되었다. 아버지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다 떠나버리면 혹독했던 역사가 잊힐까 걱정했다. 죽는 날까지 통일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았던 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고향집 때문이었을 거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날이 성큼 다가왔다가 저만치 달아나버렸을 때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울었다. 나는 그걸 안다.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중앙에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말의 참뜻을 안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평화는 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