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사람들과 주치의의 동행 “따뜻한 돌봄 만들고파”

기사입력 2024-11-18 08:02 기사수정 2024-11-18 08:02

시민 건강 지키는 조합 ‘시민의원’... “돌봄센터 설립 추진 중”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사진=송민우 실장)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사진=송민우 실장)

“‘아휴, 이제 그만 오세요!’라고 말씀드릴 정도예요”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정겹다. 그러니까 조규석 원장의 말을 풀어보자면, 주민들이 수시로 병원에 찾아와 건강을 상담하고 언제든 전화를 걸어 궁금한 걸 묻기에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주치의가 있는 곳’이라는 부천시민의원의 슬로건처럼 조규석 원장은 부천시 원미동 주치의로서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은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외과 교수로 근무했다. 2014년 협동조합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가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같은 해 부천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건강은 유전적인 원인보다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에서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자신의 건강을 각자 챙기는 게 현실이죠. 그래서 현재의 의료 모순을 조금 극복해보고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습니다. 의사와 주민이 힘을 합쳐 건강을 지키는 마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후 조합원들을 대표해 2017년 부천시민의원 개원을 주도했다. 외과 교수로만 근무했기에 내과 진료를 더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병원을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맡겼지만, 운영이 쉽지 않았다. 한 달에 1000만 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면서 3억 원의 빚을 지고 병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조규석 원장은 병원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 2021년 대학병원을 나와 부천시민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천 시민의원은 병원이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다들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사진=송민우 실장)
▲부천 시민의원은 병원이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다들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사진=송민우 실장)


주치의가 전하는 맞춤형 처방

부천시민의원은 일반 병원과는 다르다. 환자 대기실 한쪽 벽에 협동조합에서 만든 환자권리장전이 붙어 있다. 진료 후 처방도 색다르다. 조 원장은 환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려 노력한다. 소화가 잘 안 된다며 찾아온 환자에게 약 처방만 하는 게 아니라, 무엇 때문에 소화불량이 생겼을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갱년기 여성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소화불량을 호소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조합원인 심리상담가에게 저렴한 금액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식이다. 허리가 아파서 오는 환자가 있는데, 운동을 안 하는 게 원인이라고 파악되면 조합에서 운영하는 체력 근력반을 추천한다. 환자의 건강을 지키도록 솔루션을 주는 셈이다. 조규석 원장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조합원들의 힘이 모여 가능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부천시민의원뿐 아니라 건강카페 꿈땀, 장애인활동지원센터 동백, 부천시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 노인일자리 사업단, 공감돌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카페 꿈땀은 ‘꿈을 위해 땀을 흘리자’는 의미로 이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조합원이 모여 만든 소모임도 15개에 이른다. 조규석 원장은 주치의로서 마을 주민들을 돌보고, 조합원들은 운동교실이나 소모임 활동 등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보통의 병원이라면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진료 시간을 길게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부천시민의원은 조합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운영하는 병원이기에, 그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뭔가 다른 처방을 하더라’는 입소문이 나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게 됐다. 영리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비보험 진료도 되도록 하지 않고, 환자가 과도한 검사를 원하면 꼭 필요한 검사만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사진=송민우 실장)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사진=송민우 실장)


나를 위한 단 한명의 의사

“주치의는 환자가 아플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의사를 말해요. 환자의 가정환경이나 과거력 등을 다 알고 있어야 하죠. 우리나라는 주민들이 아픈 곳에 따라 정형외과로 갔다가 이비인후과로 갔다가 하는 식으로 병원을 옮기면서 진료를 봐요. 그런데 나만의 주치의가 있으면 의사 한 사람에게 대부분의 질병을 진료받을 수 있어요. 이를테면 방문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결국 제가 주치의가 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는 솔선수범해 주치의가 되기를 자처한다. 조규석 원장은 ‘과’를 나누지 않고 다방면으로 진료하는 개원의는 전국에 30% 정도라며 앞으로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주치의라는 개념은 아직 생소하다. 사실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한 명의 의사를 신뢰하고 평생 내 건강을 맡긴다는 건 환자 입장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조 원장은 “주치의 개념이 제도로 자리 잡으려면 국민 인식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규석 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비롯해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사회 의료 활동을 해왔다. 협동조합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는 병상 부족 사태를 보며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알렸다.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는 시민단체들을 모아 공공병원 설립 시민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은 이미 사그라든 뒤였다. 결국 석 달 동안 부천시민 8300명의 서명을 받아 직접 조례를 발의했지만, 발의안은 여전히 보류 중이다. 왜 이런 의료 관련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묻자 “성격인가 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의료 체계의 모순은 국민이 주체적으로 바꿔야 개선된다 믿는다.

“사회의 모순이나 약자가 힘들어하는 것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니까,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겨나는 거죠. 그러다 뜻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법이 통과되지 않아서 결국 폐기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어요. 국민에게 좋은 정책을 정치인이 실행하게 하려면 국민이 모여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건강 관련 이슈에 대해 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거예요. 그게 협동조합이죠.”

조규석 원장은 더 나아가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건강과 돌봄센터’ 병원을 세우고자 계획하고 있다. 2030년 설립이 목표다. 목표 금액은 10억 원인데, 현재 3억 5000만 원 정도 모였다. 모금을 위해 ‘조합원이 건물주’라고 적힌 티셔츠를 만들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조합원 수는 2300명 정도다. 병원을 세우려면 약 3만 명의 조합원이 모여야 한다.

▲(왼쪽) 부천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규석 원장을 필두로 2030년을 목표로 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른쪽 위) 병원 설립과 관련해 모금 활동을 하면서 '조합원이 건물주'라는 티셔츠를 만들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부천 시민의원에는 협동조합이 만든 환자권리장전이 붙어있다.(사진=송민우 실장)
▲(왼쪽) 부천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규석 원장을 필두로 2030년을 목표로 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른쪽 위) 병원 설립과 관련해 모금 활동을 하면서 '조합원이 건물주'라는 티셔츠를 만들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부천 시민의원에는 협동조합이 만든 환자권리장전이 붙어있다.(사진=송민우 실장)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동행

조합을 만들고 병원을 설립하고 조례를 발의하는 활동은 결국 또 다른 공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진료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합원들과 공부하고 활동하며 보낸다. 게다가 원내 진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매주 화·수요일 오후에는 방문 진료를 하고, 목요일 오후는 시청 사례회의에 참석한다. 금요일 오후에는 스마트 경로당 강의가 있다.

방문 진료는 보건복지부 주관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에 지원해 시작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자택을 방문해 필요한 진료를 한다. 현재 방문하는 가구는 150가구 정도로 세 명의 의사가 함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부천시에서 이 사업에 참여한 병원은 부천시민의원이 유일했는데, 올해 중동한의원이 두 번째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로 선정됐다. 공단에서 지급하는 1회 수가는 30만 원인데, 사실상 병원에서 환자를 받는 것에 비해 적은 비용이어서 지원자가 많지 않다고 한다.

“돌봄통합지원법이 통과되었고, 2026년 3월 정식으로 시행될 거예요. 재택 의료는 앞으로 정착될 겁니다. 거동할 수 없어 누워만 있는 환자는 욕창이 생길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해요. 콧줄이나 소변줄도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하고요. 그런데 3년이고 6년이고 교체하지 않는 분들이 있어요. 방치되는 거죠. 방문 진료는 꼭 필요한 제도예요.”

사례회의는 지역의 의료 취약계층을 발굴하는 회의다. 각 동의 복지 담당자, 건강보험공단 직원, 시 담당자, 의료인 등 20여 명이 한 달에 두 번 모여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를 논의한다. 이를테면 청소를 해줘야 한다거나 말벗이 필요하다거나 방문 진료를 해야 한다는 등의 방법을 찾고 돕는 일이다.

스마트 경로당 강의는 실시간 온라인 강의로 50개 경로당에서 시청한다. 무릎 관절염, 허리 통증, 불면증, 치매 등 건강 관련 정보를 전달한다. 강의를 듣던 어르신이 질문하면 답변해주면서 어르신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조규석 원장은 경기복지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지역 내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었다. 부천시 네 군데 지역 어르신 20명을 선정하고, 조합원이나 지역 주민 중 건강 리더를 뽑았다. 이 리더들이 건강 관련 교육을 받은 뒤 매주 어르신들의 운동을 돕거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3개월 뒤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측정해보니 통증이 줄어들고 건강이 무척 나아졌음이 확인됐다. 국가의 통합돌봄 시범사업이 시작됐을 때 부천시장과 함께 보건복지부에 이 사례를 토대로 사업 제안을 했고, 건강 리더를 중심으로 지역 어르신 건강을 돌보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는 일이 많아 도무지 쉬는 시간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조규석 원장은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고 했다.

“올해가 협동조합 설립 10주년이에요. 기념 트레킹 대회를 열었는데요. 부천 둘레길 30km를 완주하는 코스와 15km 하프 코스가 있거든요. 30km를 걸으려면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걸어야 합니다. 저도 완주했는데,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 저에게는 협동조합 일을 하는 게 곧 휴식이에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즐겁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그는 순천향대학교 병원에서 교수로 일했을 때보다 5배는 더 고생스러운 것 같다며, 이곳에서 하는 일들이 더 힘들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전했다.

“우리 조합원들이 저를 무척 안쓰럽게 생각해요. 사서 고생한다고요. 그런데 몸은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훨씬 행복합니다. 그러니 우리 조합원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정말 잘살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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