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빠져나가 드러난 질펀한 갯벌 위로 바닷새가 날갯짓을 한다. 세상이 고요하다. 아득한 수평선 저편으로 세상의 소음이 스며든다. 대부도, 무수한 발자국이 찍힌 모래밭 노란 파라솔 아래에서 마음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말을 썰물에 실어 보낸다. 한 해의 끄트머리, 겨울 바닷가에서 나를 만난다.
대부도(大阜島)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되어 육지가 된 섬이다. 멀리서 보면 섬이 아니라 큰 언덕처럼 보인다고 하여 대부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제는 섬 아닌 섬인 셈이다. 대부도로 향하는 길에는 작은 섬과 섬들이 이어진다. 내키는 곳에서 멈추거나 머무르기도 하며 수도권 사람들이 즐기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상 조선시대에 남양군에 속했다가 그 후 부천군에 이어 인천시 옹진군 부속 섬이었는데, 육교 연결 이후 1990년대에 안산시 대부동으로 편입되었다.
겨울 바다, 방아머리해변
시화방조제 도로를 달려가면 방아머리해변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여름이 떠난 자리에 다시 찾아든 겨울 바다. 마침 썰물 때를 맞아 저 멀리 물러난 바다는 꼼지락거리는 생태를 드러낸다. 진득한 너른 갯벌 위로 갈매기들은 두려움 없이 사람들과 함께 유유자적한 모습이다. 공중을 날아도 사람들과 아주 근접하게 비행한다. 방아머리해변에서는 바닷새의 자유로운 야생 날갯짓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방풍림 구역은 여름이면 시원한 휴식처가 되고, 가을이면 맥문동이 피어난다. 지나다 만나는 선셋존은 연말의 해넘이 감상 포인트이기도 하다. 대부도관광안내소 방향으로 대부해솔길 출발점이다. 대부해솔길은 대부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도보 여행 코스로, 91km이며 10개 코스가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을 잊은 채 해솔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으며 바다를 만난다.
천천히 방아머리선착장 여객터미널 쪽으로 가본다. 배를 타고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디딜방아 머리를 닮았다는 방아머리선착장이다. 선착장 주변에 자리한 수산물직판장과 매점, 해산물 식당은 바다를 앞에 두고 먹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여기선 배를 타지 않아도 선착장 특유의 분위기에 절로 기분 전환이 된다. 해변 저편으로 수평선을 따라 시화방조제와 느릿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멀리서도 보인다.
바다향기수목원, 유리섬박물관, 종이미술관
차분히 계절의 정취를 누리기엔 수목원만 한 게 없다. 바다향기수목원은 식물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산림 휴양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주차비와 입장료도 무료다. 30만 평이 넘는 수목원 안에는 중부해안과 서해안, 도서 식물을 중심으로 1000여 종과 30만 본이 넘는 식물이 서식한다.
바다향기수목원에선 다른 수목원에서 보기 어려운 바닷가 갯벌이나 모래땅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이름 그대로 바다 향기가 느껴지는 염생식물원과 모래언덕원을 걷다 보면 독특한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와집 형태의 섬집정원, 경기둘레길 49코스인 상상전망대에서는 서해 누에섬과 제부도가 내려다보인다. 암석원과 허브원, 계류원, 장미원과 다양한 나무들로 조성된 주재원을 지날 때는 제법 차가워진 날씨지만 피톤치드가 느껴지는 듯하다.
연꽃 주제의 생태 연못인 심청연못에는 아직 연잎이 남아 있다. 벤치에 앉아 수목원의 정취를 고즈넉이 누리는 여행자들을 본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만 벗어나면 계절별로 이처럼 여유 있는 삶을 맛본다. 수목원 대부분의 길이 평탄해서 휠체어나 유모차 이동이 가능하고, 누구나 한가로이 산책하기에 무난하다.
수목원 주변으로 유리섬박물관과 종이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유리 생산지 무라노를 떠올리며 한국의 무라노라 불리기도 한다.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유리 조형물들이 전시된 전시장과 유리공예 시연도 진행된다. 미리 신청하면 유리공예 체험도 가능하다. 실내 전시뿐 아니라 널찍한 야외 정원에 전시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한나절 머물기 좋다. 유리섬박물관과 바로 인접한 종이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종이 조형 미술관이다. 종이의 따뜻한 질감을 통해 다양하게 표현되는 예술을 보여준다. 종이로 표현한 지승공예, 추상적인 작품, 의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나 로봇, 동화 속 주인공, 닥종이 인형 등을 볼 수 있고 체험도 진행한다.
보석처럼 빛나는 소금꽃, 맛의 원천 동주염전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옛 모습과 옛 방식으로 소금꽃을 피우는 대부도 동주염전. 안산이 꼽는 9경 중 하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듯하지만 바닷물을 옹기판 염전으로 옮겨 하늘이 내려주는 뜨거운 햇볕과 바람과 소금밭 일꾼들의 땀방울로 소금을 만들어낸다. 대부도가 염전을 품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알고 보면 섬 속에 아기자기한 명소가 숨어 있다. 1950년대부터 재래 방식으로 만들어낸 품질 좋은 천일염 생산지다. 동주염전의 소금은 염도가 낮고 무기질 함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10만 평 넘는 소금밭에는 소금 농사의 끝물인지라 빈 소금 수레가 군데군데 서 있다. 듬성듬성 붉은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들이 피어났다. 옛 모습 그대로인 낡은 소금 창고에는 보석처럼 새하얀 결정체의 천일염이 가득하고, 빈 소금밭에는 푸른 하늘 반영이 가득 채워져 있다.
태곳적 흔적 고스란히, 대부광산 퇴적암층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중생대 초식 공룡 화석이 발견된 대부광산 퇴적암층이 단원구 선감동에 있다. 중생대 이후 백악기까지 대략 7000만 년 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부광산이다. 입구에 1990년대 채석장으로 운영되었던 건물이 있다는데, 이곳에서 채석하던 중 중생대 화석이 발견되어 채석 활동이 중단되었다. 최초 발견 공룡 발자국 화석은 안산어촌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퇴적암층 조망을 위한 포인트가 두 군데 있다. 수풀 사이로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마주 보며 전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잔디광장이 좀 더 수월한 코스다. 쉼터가 있는 넓은 광장에서는 주말에 버스킹이 펼쳐지기도 한다. 잔디광장에서 정상을 향해 걸으면 짧지만 산허리를 휘돌아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는 제법 숨찬 숲길이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누에섬과 탄도항, 전곡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광산 퇴적암층의 짙은 청록빛깔 신비로운 호수와 켜켜이 쌓인 층리가 선명히 보인다. 여기서 공룡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놀았을 걸 상상해보면 전율이 느껴진다.
탄도항의 노을 속으로
저녁 무렵 탄도항은 대부도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항구 선착장에 드나드는 배는 향긋한 갯내음을 가득 실었다. 섬을 비추는 햇살이 그저 평화롭다. 햇살의 농도가 짙어지기 전에 항구 바로 앞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은 점차 사라져가는 오래전 어민들의 삶과 문화를 보존하고,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차츰 탄도항이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사이로 누에섬 등대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탄도 바닷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풍력발전기 너머로 금빛과 불그스레함이 어우러진다. 노을빛과 기울기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세상은 가라앉듯 차분하다. 가슴 벅찬 설렘으로 새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