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에는 남한강이 흐른다. 여주를 아우르는 강물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곁에 오래된 이야기가 있고,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여유롭다. 다가갈수록 고요한 풍경 속에서 역사의 향기가 풍겨온다. 차분히 숨을 돌리고 나면 설렘과 기대가 더해진다. 가을이 왔다. 눈부신 계절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한 여주의 어느 멋진 날이다.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의 품격
해마다 가을이면 맞이하는 한글날은 우리의 글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함이다. 한글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창의적으로 만들어 세상에 반포했다. 여주에는 세종대왕을 모신 왕릉이 있고, 소나무 숲길은 사철 아름답다.
여주 대표 명소로 영릉을 꼽는다.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해서 모신 왕릉이다. 또 하나의 영릉(寧陵)이 있다.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이다.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잇는 왕의 숲길을 따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품격 있는 자연의 품에 깊숙이 안기는 느낌이다. 운치 있는 장송 군락의 산책길은 콘크리트 도시와는 쾌적함이 완연히 다르다. 노송과 참나무숲 울창한 왕의 숲길을 지나 효종의 영릉에서는 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복원할 때 재실의 원목을 그대로 썼고, 재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재실에서 300년 동안 자란 천연기념물 회양목과 잘 늙은 고사목도 감탄을 부른다.
왕의 넉넉한 품으로 내어준 공간, 작은 책방
오래된 숲과 세종대왕의 한글 사랑이 숨 쉬는 터에서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영릉 재실을 원위치에 복원하면서 남겨진 옛 재실에 한옥 책방이 생겨났다. 이른바 국민책방이다. 흔히들 책이 있는 방을 책방이라 하지만, 세종대왕 시절에는 출판과 인쇄를 담당하던 관청 이름이 책방(冊房)이었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옛 재실이 ‘작은 책방’이라는 도서 공간과 휴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한옥의 정취 속에서 차분히 사색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볕 좋은 가을날이다.
‘작은 책방’은 안채와 행랑채에 3개의 열람실로 구성되었다. 비치된 책꽂이의 책들이 빽빽하지 않고 여유롭게 느슨하다. 여백의 미가 주는 편안함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몇 개의 좌식과 입식 테이블에 앉으면 재실 마당이 보이고, 반대편 창으로는 온통 숲이다. 어쩌다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소리와 관리인이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는 살아보지 못했던 아득한 옛 일상 속으로 이끈다. 특별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열람해서 읽는 책 내용은 와닿는 느낌도 다르다. 오래 머물고 싶다. 영릉에 왔다면 빠뜨릴 수 없는 공간이다.
파사성, 이포보와 담낭리섬
서울을 기준으로 여주를 향해 출발한다면 여주의 파사성을 먼저 만나게 된다. 파사성이 여주 여행의 시작이 되는 이유다. 해발 230m의 파사산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파사성은 고대 산성이다. 신라 파사왕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세기에 걸쳐 축조되었다고 전해온다. 당시 남한강 상류와 하류로 진입하는 외적을 감시하는 최적의 입지 조건인 파사성은 지리적·전략적 요충지로서 성곽 역사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알려졌다.
이포보 앞 주차장에서 시작해 30분 남짓 걸으면 오를 수 있는 파사성은 짧은 산행이지만 만만치 않다. 옛 숲길은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돌길을 걸어 오르려면 트레킹화는 필수다. 숨차게 오르면 빽빽한 숲 사이로 점차 하늘이 보이고 성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동안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다가 여주시의 본격적인 남문지 성벽 보수 정비공사를 거쳐 올여름 본모습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파사성에서 바라보는 숲과 강과 들의 풍광이 빼어나다.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 선생은 여주의 산과 강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강 굽이굽이 산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절반은 단청 같고 절반은 시와 같구나’ 여강은 여주 구간을 흐르는 남한강을 말한다.
파사성에서 내려와 이포보로 이어지는 육교를 건넌다. 이포보는 남한강에서 가장 유명한 나루인 이포(梨浦)란 지명에서 따왔다. 4대 강 사업으로 생긴 16개 보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포보 전망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의 멋을 촬영하기 위한 사진가들이 종종 보인다. 무엇보다 남한강 자전거길 이포보 구간은 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길이다. 보 부근으로 초지와 습지가 광활하다. 씽씽 달리는 라이더들의 행렬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곧바로 맛집으로 유명한 천서리막국수촌과 인근의 담낭리섬으로 이어진다. 담낭리섬 남한강 둔치의 너른 들판엔 황화코스모스가 피어나 가을 정취가 물씬하다.
여강을 굽어보다, 강변의 절집 신륵사
여주라 하면 대체로 신륵사를 먼저 떠올린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원효대사가 어느 날 여강나루를 지날 무렵 어디선가 흰옷 입은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자리라 일러주고 사라졌다는 꿈 이야기가 신륵사 창건 전설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여주의 신륵사는 강변에 위치한 유일한 절집이다. 그동안 신륵사 강가의 오롯한 정자 하나가 여주를 알리는 큰 역할을 해왔다. 여강의 물길을 끼고 지금도 여전하다. 10m 높이의 다층 전탑 아래 여강을 굽어보고 있는 강월헌은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남한강과 동화되어버렸다. 간간이 조선시대 운송수단이던 황포돛배가 남한강 물길을 가르고 지나간다. 흐르는 저 강물 따라 우리네 사는 일도 그렇게 동화되고 흘러가는 중이 아닐지. ‘봉미산신륵사’라는 현판의 일주문을 지나 평지를 걸으면 금방 닿는 한적한 절집에도 어느덧 가을이 스몄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구룡루(九龍樓) 뒤편의 큰 법당 극락보전, 그 앞의 다층 석탑과 좌우로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뒤편에 지공, 나옹, 무학의 영정을 모시는 조사당 옆의 계단을 한번 올라서 보자. 서북쪽 언덕 위로 나옹선사의 승탑 주변을 예스러운 노송이 호위하듯 당당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로 시작하는 선시(禪詩)의 고려 말 나옹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고즈넉한 산사의 평온함을 누리려는 이들이 이곳까지 들른다. 수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도 물들기 시작했다.
도자기와 여주 쌀밥
신륵사 주변으로 조성된 신륵사국민관광지 안에 들면 여주도자세상을 만날 수 있다. 천년을 이어온 여주 도자기의 명맥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공간이다. 이번 가을에도 2024 경기도자비엔날레가 열렸고, 도자문화센터나 각 갤러리에선 다양한 도자 제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행사 기간에는 도자 제품 구입과 도자기 체험 등의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주변에 여주박물관, 여주쌀밥집, 고구마, 땅콩 등의 품질 좋은 여주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로컬푸드 직매장 올더여주, 여주 오일장인 한글시장도 그냥 지나치면 아쉽다.
강바람 따라 걷다 보면 감성 충만, 강천섬
어느 계절이든 하루쯤 시간이 생겼을 때 강천섬을 떠올릴 만하다. 강천섬은 여주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섬이다. 그 섬에 가면 줄지어 선 포플러의 행렬이 아련하게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한다. 가을볕 따라 따사로운 그림자를 만드는 나무숲이 여유로운 쉼을 준다. 강바람 맞으며 강천섬으로 걸어가다 보면 문득 지금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무기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깊고 넓은 바위늪구비길을 걸으며 한없이 고요한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강천섬은 한때는 강물이 불어날 때만 섬이 되던 곳이었다. 4대 강 사업 이후 이제는 이처럼 매력적인 섬을 즐긴다. 원래부터 자라던 수목은 고사목이 되어 독특함으로 가득 찬 고사목 군락지가 되었고, 멸종위기 동식물의 서식처는 자연 친화적 생태여행을 누리게 한다. 푸르름으로 싱그럽던 초록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깊어지는 가을 감성이 넘쳐흐른다. 광활한 잔디밭을 둘러싼 호젓한 나무들은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준다.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 자연의 소리만으로도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확실한 일상의 쉼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