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신기루 아닌, 삶의 파트너” 노후 행복 높이는 에이징테크

기사입력 2025-05-15 08:15 기사수정 2025-05-15 08:15

정서 교감형 AI와 건강관리 기술 주목… 함께 생활하는 디지털 파트너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2025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에이징테크(Aging-tech)’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주목받는 기술이다. 특히 의료비 지출 증가,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등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삶의 동반자로의 성장, 에이징테크

에이징테크(Aging-tech)는 고령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모든 기술을 말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공학, 웨어러블 센서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고령자의 건강관리, 정서 지원, 일상 보조, 사회적 고립 해소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이 가속화되면서 에이징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 기술로 변하고 있다. 가족 돌봄의 한계, 간병 인력 부족, 의료·복지 등의 비용 증가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기술 발달에 대해 조성배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에이징테크는 이제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고령자의 ‘삶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면서 “특히 자립성과 존엄을 중시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사용자 중심의 기술에 대한 기대와 수요가 동시에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령화 및 장수 산업 특화 리서치 전문 기관인 영국의 Aging Analytics Agency는 ‘AgeTech in the UK 2022’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에이징테크 시장 규모는 2019년 이후 23% 이상 성장하며 2025년에는 3조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진입 빨랐으나 걸음마 단계

한국은 비교적 빠르게 에이징테크 분야에 뛰어들었고, 최근 몇 년간 CES 같은 국제무대에서 국내 기업들의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세라젬의 ‘홈 메디케어 베드’, ㈜딥메디의 비접촉 혈압 측정 소프트웨어, ㈜제이씨에프테크놀러지의 생체신호 모니터링 레이더 등이 대표 사례다. 그뿐 아니라 대표 돌봄 로봇 ‘효돌’은 말벗이 되어주는 AI 기반 반려 로봇으로, 치매 예방, 정서적 안정 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음성 응답을 넘어서 고령자의 감정을 인식하고 대화를 이어가며, 일정한 시간에 약 복용이나 식사, 운동 등을 권유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전국 지자체와 요양시설에서 점차 도입이 늘어나고 있으며, 에이징테크가 ‘기술을 통한 따뜻한 돌봄’이라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대학과 연구 기관뿐 아니라, 병원과 협업해 실제로 노인의 삶을 바꾸는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자와 의료진의 의견을 반영해 직접 제품을 설계하고, 다양한 임상을 통해 효과를 검증한다.

조성배 교수는 라이프로그 기반 AI를 활용한 정서 케어 시스템인 AI ‘순이’를 벤처기업 디엔엑스와 함께 개발했고, 현재 지자체·병원과 함께한 실증을 거쳐 현장에 적용 중이다. 휴로틱스 공동 창업자인 이기욱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고령자의 보행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 웨어러블 로봇 ‘H-Medi’를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은 기존 외골격형 로봇이 주도하던 시장에 사용자의 움직임을 중심에 둔 기술을 제안한다. 로봇이 환자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 ‘필요한 만큼만 보조하는’ 방식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보고서를 통해 “고령자 AI 기술은 이제 돌봄 로봇에서 스마트 헬스케어, 감정 교감형 인터페이스로 확장 중”이라고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산업화 수준은 아직 초기 단계다. 민간의 기술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과 시장의 수용성은 뒤처져 있다. 에이징테크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기 위해선 기술 이상으로 ‘사용자 수용성’과 ‘제도 인프라’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는 이렇게 발전 중

미국, 일본, 유럽 등 고령사회 선진국은 이미 다양한 형태의 에이징테크를 실생활에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주도로 복지 로봇을 개발해 병원·요양시설에 보급하고 있으며, 미국은 민간 주도로 정서 교감형 AI와 건강관리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스마트홈 기반의 독립생활 지원 시스템과 감정 인식 AI 개발을 추진 중이다.

주목할 점은 ‘기술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있다. 예컨대 이스라엘의 동반 로봇 ‘엘리큐’는 대화와 말벗 기능을 중심으로 고령자의 정서에 다가서며 거부감을 낮췄다. 영국의 ‘세라케어(Cera Care)’는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 가족과 연결되는 시스템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술을 생활 속에 녹여냈다. 이는 기술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자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용자 설계’와 ‘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조성배 교수는 “해외 시니어들이 우리나라보다 큰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며 “복잡한 기술 설명보다 일상적 언어와 감성적 접근, 병원과 복지기관을 통한 신뢰 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다. 이기욱 교수 역시 “기술이 먼저 다가가고, 감정을 공감하며, 사용자가 통제권을 느낄 때 수용도는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기술의 그림자, 에이징테크의 한계

에이징테크가 고령자의 삶을 바꿀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나 모든 기술이 일상생활에서 바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성배 교수는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고령자들이 AI나 로봇에 대해 불신을 갖거나, 어렵고 낯설게 느낀다는 이야기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에게는 복잡한 조작 방식 자체가 장벽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보유하고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기계가 말을 걸어도 처음에는 당황하거나 오히려 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기욱 중앙대 교수는 “기술은 고령자를 ‘환자’가 아니라 ‘사용자’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기술이 아직도 병원 중심, 제조사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고령자의 신체적 특성이나 정서적 반응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도 문제다. 일부 로봇이나 웨어러블 기기는 수백만 원대를 넘기며, 일부 병원이나 요양기관에서만 접할 수 있다. 기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이다.

결국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쓰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성배 교수는 “AI는 먼저 다가가야 하고,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의 중심은 ‘작동’이 아니라 ‘교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에이징테크는 가능성만큼 과제도 많다. 그러나 고령자의 삶에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이 기술은 분명 더 많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도구 아닌 디지털 파트너로 진화

전 세계적으로 에이징테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AI·머신러닝·로봇공학 기술은 단순한 보조 기능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일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의사결정까지 지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베이비부머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에이징테크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조성배 교수는 “AI는 개인의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분석해 ‘오늘 무엇을 해야 좋을지’까지 조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있어야 하며, 기술이 개입하는 방식과 범위는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술이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기 위해선 기능보다 신뢰와 윤리, 사용자 경험(UX), 사회적 제도가 더 중요하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사용자에게 낯설고 어렵다면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터치보다 말이 편하고, 복잡한 설정보다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또한 감정적 라포가 형성된 AI는 때로는 지나친 감정이입이나 의존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잘못 설계되면 심리적 조정까지 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AI가 자살을 유도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사용자의 환경과 의도에 따라 그 위험성도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기욱 교수는 고령자를 ‘수혜자’가 아닌 ‘사용자’로 인식하는 전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 역시 사용자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AI, 웨어러블 로봇 등이 고령사회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삶의 방식을 바꾸고, 일·소통·노후의 개념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에이징테크는 단순 보조에서 벗어나, 자립과 참여를 돕는 기술로 발전해나갈 거라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기술은 고령자의 눈높이에서 설계돼야 하고, 조작은 단순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보험과 공공 지원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며, 기술 활용을 돕는 디지털 교육도 확대돼야 한다. 고령자가 기술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제는 사람도 기술을 신뢰하고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에이징테크는 더 이상 미래의 선택이 아니라 현재의 고령사회를 지탱하는 실질적 인프라다.



도움말 조성배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카이스트(KAIST)에서 전산학과 공학박사를 취득, 1995년부터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24년 실용 인공지능 연구 학술논문 1500여 건이 피인용 총수 2만 건을 돌파해 컴퓨터공학 분야 연구 포털 '가이드 투 리서치'에서 선정한 세계 최고 수준의 AI 분야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기욱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기계항공공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하버드대학교 바이오디자인랩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후 2018년부터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 ㈜휴로틱스를 창업해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증강하고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2024년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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