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매년 수십만 개의 노인일자리를 공급하며, 그 수치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수행기관인 시니어클럽을 중심으로 공공형, 시장형, 사회서비스형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곤 완화’와 ‘사회 참여’라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이상적인 정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분명히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노인일자리는 단순한 소득 보전 이상으로, 고령자에게 사회적 역할감을 부여하고, 일상을 유지하며, 고립을 방지하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장치라는 점이다. 생활비의 일부라도 스스로 감당한다는 자존감, 규칙적인 외출과 지역 주민과의 교류, ‘쓸모 있는 존재’로의 정체성 회복. 이러한 효과는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일자리는 남고, 일할 사람이 없는 모순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들려온다. 일자리는 남고, 일할 노인이 부족하다. 일부 시니어클럽에서는 “일자리가 넘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단지 노인이 줄어서가 아니라, 제공되는 일자리가 과잉공급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일자리는 월 급여 30만 원 내외의 단순·반복적인 공공형 업무다. 공원 청소, 주차계도 같은 일들이다. 편의점이나 카페, 빵집과 같은 시장형 일자리도 있지만, 같은 예산 투입으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는 공공형 일자리 만한 것이 없다. 때문에 정부는 숫자 중심의 기계적인 공급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오래 걷거나,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신체적으로 부적합한 노인들까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시니어클럽 입장에선 사업 참여자 인원이 줄면, 내년 사업 예산 배정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으니 숫자를 채울 수밖에 없다.
일자리 숫자를 늘려야 하는 정부, 예산을 유지, 확대해야 하는 시니어클럽, 몸이 불편해도 수익이 욕심나는 고령층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노인일자리 사업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실버 포퓰리즘, 숫자만 채우는 정책
이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실버 포퓰리즘(Silver Populism)’이라는 정치적 함정이 있다. 고령층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과 정치적 영향력을 의식해, 실질적 고용정책보다 쉽게 늘릴 수 있는 공공일자리만 확대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성과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점점 떨어지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김문수 두 후보 모두 공공형 노인일자리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재명 후보는 통학지킴이·귀가도우미 등 공공참여형 일자리 확충과 정년 연장을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는 단순노무를 넘는 경험 기반 일자리와 디지털 역량 강화, 연금 감액 폐지를 제안했다.
두 공약 모두 노인의 경제적 역할 회복과 사회 참여 활성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아직은 사회 구조 자체의 전환이라기보다는 ‘계속되는 양적 공급’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사회참여를 위한 정책이라면, 일자리의 품질부터 따져야
노인일자리의 핵심은 단지 소득이 아니다. 그것은 생활 인구로서의 역할 회복, 사회적 고립의 예방, 노후의 존재 의미 회복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로는 이러한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어렵다. 단기 성과를 위한 일자리 확대는 가능하지만, 고령자가 자율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설계하지 않는 한, 그것은 정해진 길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셈이다.
고령자 고용은 복지의 연장이 아니라 노동시장과 연결된 정책 과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자리를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일할 수 있게, 일하고 싶게 만드는 생태계의 조성이다.
정치는 표를 남기려 하지만, 사회는 구조를 남겨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령자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고령자와 함께 만드는 ‘역할’과 ‘시장’이다. 그 일을 누가 하든, 숫자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숫자는 당장 보이지만, 방향이 있어야 미래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