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업무에서 건강 상담까지… 진화하는 금융권 시니어 서비스

기사입력 2025-06-05 08:33 기사수정 2025-06-05 08:33

[먼슬리 이슈] 비금융 서비스 포괄하는 종합 라이프 케어 서비스 제공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70대 이지환(가명) 씨는 최근 동네 은행 지점을 찾았다가 뜻밖의 ‘라이프스타일 종합 상담’을 받았다. 재산 증여와 연금상품 상담은 물론이고, 근처 병원과 연계된 건강검진 프로그램까지 안내받은 것이다. 그는 “은행이 이제 단순히 저축하고 대출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설계해주는 조력자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지환 씨의 이야기는 지금 금융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시니어 세대는 더 이상 조용한 소비자가 아니다. 이들의 자산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소비 성향은 이전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구체적이다. 금융권이 시니어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관리해야 할 고객’이 아닌, ‛함께 설계하고 제안할 대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만 60세 이상 고령층의 1인당 순자산 규모는 5억 1922만 원으로 전년(4억 8630만 원) 대비 6.76% 늘었다.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50대(5억 1131억 원)를 넘어서며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활동이 왕성한 30~39세(2억 5402만 원) 순자산 규모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30세 미만(1억 386만 원) 순자산 규모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크다.

자산 규모가 늘어나면서 금융사로 향하는 고령층의 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이용자 중 50대 이상 비중은 43.5%다. 이는 2020년 말 38.1%보다 5.4%포인트(p) 늘어난 규모다. 반면 20·30대 고객 비중은 2020년 말 34.9%에서 31.4%로 3.5%p 줄었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시니어층을 잡기 위해 단순 금융상품만이 아닌 은퇴 설계와 상속, 증여, 건강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 라이프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더넥스트를 통해 하나은행은 은퇴설계, 상속 및 증여 등 시니어 고객의 주요 금융 니즈는 물론, 건강관리·여가생활 등 비금융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종합 라이프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시니어층 공략을 위해 올해 초 시니어 사업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국민은행 WM추진부와 KB라이프생명, KB손해보험, KB국민카드 등 계열사가 참여하고 있다. 시니어 관련 비즈니스를 전반적으로 손질하고 강화하는 게 목표로, 연금 관리에 한정되어 있던 사업을 요양, 상속 등으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신한은행도 시니어 TF를 꾸렸다. 이미 시니어 고객들을 위해 운영 중이던 ‛신한 50+ 걸어요’ 서비스의 사용자환경(UI)·사용자경험(UX)을 개선하는 등 성과가 나오고 있다. 또 현재 전국 5곳에서 운영 중인 연금라운지를 확대하고 시니어들이 편리하게 디지털 금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센터도 강화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을 자회사로 편입 완료하면 이들과 연계해 요양업, 실버타운 구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지난해 우리WON뱅킹에 선보인 ‘시니어w클래스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시니어W클래스는 시니어 고객을 위한 우리WON뱅킹 전용 강좌로, 기존 재테크 중심에서 건강·여행·반려동물 등 생활 콘텐츠로 확대될 예정이다.

보험사들은 ‛시니어 케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실버타운과 요양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등 단순 보험상품 판매를 넘어 돌봄 서비스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생명보험사들 중 시니어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KB라이프다. KB라이프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는 올해 은평, 광교, 강동 지역에 요양시설을 개소한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이미 노인주거복지시설(실버타운) 평창카운티와 노인의료복지시설(요양원) 서초 빌리지·위례 빌리지를 운영하고 있다. 위례(병설)·강동 데이케이센터에서 주간보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신한라이프도 시니어 사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자회사 신한라이프케어는 올해 하반기 경기도 하남 미사에 첫 요양시설을 개소할 예정이다. 지난해 분당 데이케어센터에 이은 두 번째 시니어 시설이다. 2027년에는 서울 은평구에 신경건축학을 적용한 시니어 주거복합시설을 선보일 계획이며, 2028년까지 매년 하나 이상의 시설을 추가로 운영해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어도비 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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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라이프케어는 국내 14개 기업과 함께 시니어 비즈니스 포럼을 출범시키며 협업을 통한 다양한 시니어 전용 서비스 및 상품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시니어 사업 전담 TF를 ‛시니어비즈팀’으로 승격하고 연내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하나생명도 요양사업을 담당할 자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KDB생명은 지난해 12월 요양 서비스 산업을 부수 업무로 신고해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보험사들이 실버타운과 요양시설을 직접 운영하는 것은, 실버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고령층을 위한 생활 전반의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 고객을 확보하고 시니어 케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이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최근 보험사의 자회사 부수 업무 범위를 확대해 요양시설 운영뿐 아니라 건강관리 서비스와 연계한 시니어 푸드 제조·유통업까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실버주택의 위탁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 설립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토지 용도 제한 등으로 인해 요양 이외 업무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경우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유연한 방침도 마련했다. 보험사들이 본격적으로 시니어 케어 사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보험사들의 시니어 사업 강화 전략은 상품 라인업에서도 드러난다. 고령층을 위한 맞춤형 보장이 주목받는 가운데 단순 진단비를 넘어 돌봄 서비스와 장기 요양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특약이 출시되고 있다. 특히 치매와 요양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신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경도인지장애 단계부터 보장하는 상품도 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경도인지장애나 최경증 치매 발생 시 ‘돌봄로봇’을 제공하는 현물특약이 특징인 ‘삼성 치매보험’을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요양보험 신상품인 ‘삼성 함께가는 요양보험’도 선보였다. 이 상품은 장기요양지원특약을 통해 요양 장소나 기간에 제한 없이 보장받을 수 있다.



한화생명은 상급 종합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 병원 유형에 따라 간병인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The H 간병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치매 검사부터 진단, 입원, 치료, 간병까지 치매 치료 여정을 종합적으로 보장하는 ‘교보치매·간병안심보험(무배당)’을 팔고 있다. 평생 단계별 맞춤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강점이다.

손해보험사들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화재는 장기요양등급 판정 이후 시설급여나 재가급여를 이용할 경우 매월 가입 금액을 지급하는 ‘함께가는 요양건강보험’을 선보였다. 원인과 무관하게 요양이 필요한 상황을 폭넓게 보장한다.

흥국화재는 올해 업계 최초로 최경증 치매 치료비까지 보장하는 ‘흥Good 가족사랑 간편치매간병보험’을 출시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한화손해보험은 초기 치매부터 장기요양까지 단계별 보장을 강화한 ‘한화 치매 간병보험(무배당)’을 내놨다. 특히 장기요양급여 이용 시마다 보험금을 지급하는 ‘장기요양급여금Ⅱ 담보’를 신설해, 재가·시설 요양에 대한 실질적인 보장을 제공한다.

시니어의 삶을 단지 ‘은퇴 이후의 시간’으로 축소할 수 없다. 축적된 경험과 자산을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나가는 주체적인 인생 2막의 무대다. 금융사들은 이 여정을 함께 걷는 따뜻한 동반자이자, 든든한 삶의 설계자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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