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보듬마을, 함께 살아가는 돌봄의 미래

입력 2025-11-11 06:00

지속 가능한 케어 생태계를 향해

9월 21일 치매극복의 날을 맞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12월까지 치매 관련 기사를 연재합니다.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치매는 더 이상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과 이웃이 함께 보듬을 때, 치매 환자는 일상 속에서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치매 이해 교육, 가족 지원, 환경개선, 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는 ‘치매보듬마을’은 그 해답을 보여준다. 하지만 10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불균형, 전문 인력 부족, 재정 한계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공동체 돌봄’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 돌봄 생태계’로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치매 인구 100만 시대를 앞두고 한국 사회는 ‘돌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병원과 요양시설 중심의 치료·보호 시스템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치매는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치매보듬마을’이다. 2016년 경상북도에서 처음 시작된 이 사업은 ‘치매 환자도 우리 이웃이다,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신념으로 시작됐다. 10년 지난 지금, 전국 136개 마을로 확산된 이 모델은 한국형 치매 공동체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치매 환자는 ‘공동체 일원’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경북 치매보듬마을은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목표로 2016년부터 추진된 전국 최초의 마을 단위 치매 친화 모델이다. 2025년 현재 도내 24개 보듬마을이 운영 중이며, 농촌·도시형 등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경북 치매보듬마을의 핵심은 ‘지역 중심, 주민 주도’다. 마을 단위 공동체가 치매 환자를 낙인찍거나 부담의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일원’으로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안동시·문경시·예천군 등은 마을 내 협동조합·경로당·보건소·요양시설이 연계된 생활 단위 돌봄 체계를 구축해 치매 환자 1000여 명이 일상 속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다. ​

치매보듬마을 사업은 △주민 참여 △치매 이해 △가족 지원 △환경개선 △치매 예방 등을 목적으로 치매보듬리더와 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돼 교육, 봉사, 안전 환경 조성 등을 주도한다.

경상북도 조사에 따르면 마을 공동체 참여형 치매 관리 사업을 도입한 지역의 환자 사회참여율은 60% 이상이고, 가족 돌봄 부담은 30% 이상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봉사나 행사 중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치매와 공존하는 일상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치매보듬마을의 핵심은 치매 환자를 ‘돌봄의 대상’이 아닌 ‘마을 구성원’으로 재위치시키는 데 있다. 이 마을에서는 주민 교육을 통해 치매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고, 슈퍼마켓·약국·우체국 등 생활 인프라가 ‘기억 친화 시설’로 지정돼 안전망 역할을 한다. 이처럼 마을의 모든 시설과 주민이 치매 환자의 일상을 함께 지켜내는 구조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주는 단절감 대신 ‘내 집처럼 편안한 환경’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경북 치매보듬마을 주민 중 70% 이상이 치매 환자와 일상적 접촉을 유지하며, 응급 상황 대응 속도도 30% 빨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수치는 ‘마을 단위 사회 기반 케어’가 치매 환자의 삶의 질 제고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치매보듬마을은 단일 프로그램이 아니다. 각 지역 특성과 주민 역량에 따라 다채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영주시는 치매 환자와 주민이 함께 화단을 가꾸고, 이를 플리마켓으로 연결해 판매 수익은 마을 운영기금으로 썼다. 문경시는 독거 치매 어르신과 치매 극복 선도학교 학생이 화분을 함께 기르며 교감하는 ‘사회적 가족’ 모델을 실천하기도 했다. 포항시 북구는 치매 극복 선도단체와 함께 마을 대청소 및 안전 환경 정비를 진행했고, 예천군은 군청과 협력해 치매 예방 방송을 송출하며 ‘치매 친화 도시’ 이미지를 확산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 ‘관계 재구성’으로 이어졌다. 주민과 환자, 학생과 어르신, 공공기관과 지역 단체가 연결되면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돌봄 생태계를 형성했다.

특히 ‘사회적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는 치매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줄였다. 치매 환자가 이웃, 학생, 봉사자와 편지를 주고받거나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나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생겼다. 이는 고립과 우울을 막고, 인지기능 유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요양시설이나 실버 케어 주거지 중심의 돌봄과 달리, 치매보듬마을은 지역 전체를 ‘확장된 요양 공간’으로 바꾼 셈이다.


마음 돌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경상북도광역치매안심센터)

치매보듬마을은 한국형 공동체 돌봄 모델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여러 구조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첫째, 인력과 재정의 불균형이다. 현재 대부분의 운영이 치매안심센터 실무자와 자원봉사자에 의존하고 있다. 주민 주도형으로 전환됐지만, 행정적 지원이 줄어들면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고령화가 빠른 농촌 지역에서는 리더 세대마저 고령화돼 후속 세대의 참여가 부족하다.

둘째, 전문성의 공백이다. 치매보듬리더나 서포터스가 인간적 관계를 통해 정서적 지지 역할은 충분히 하지만, 인지 저하나 행동 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대응 등 전문 돌봄에는 한계가 있다. 의료·심리·법률 분야의 연계 지원이 더 체계화돼야 한다.

셋째, 도시 지역 확산의 어려움이다. 농촌은 이웃 관계망이 강해 돌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만, 도시형 마을에서는 개인주의와 이동성 탓에 주민 참여를 유도하기 어렵다. 경북 외 지역에서는 모델은 참고하지만 정착률이 낮다.

마지막으로 성과 측정의 한계도 지적된다. 치매 인식도와 태도 변화는 확인되지만, 실제 돌봄 부담 완화나 가족 스트레스 감소, 의료비 절감 등의 지표는 장기적 추적이 필요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역 중심의 케어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면 전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생활 코디네이터가 상근하는 ‘전문형 마을 매니지먼트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즉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통합 돌봄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과 스마트 기반의 돌봄 기기 도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공동체 돌봄에서 사회 돌봄으로

정부는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를 약 97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2030년에는 약 1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한 시설 중심 돌봄을 넘어 ‘삶터 기반 통합 케어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치매보듬마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참여 확장, 돌봄 전문화, 재원 자립, 환경의 전환으로 요약된다.

지금까지는 마을 단위 주민이 중심이 되어 치매 환자와 가족을 돌봤다면, 이제는 도시와 온라인까지 포괄하는 ‘시민 참여형 모델’로 확장해야 한다. 지역 병원·학교·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도시형 치매보듬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온라인 치매 교육과 후원 플랫폼을 통해 세대 간 연대와 관심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돌봄의 전문화와 통합화가 중요하다. 현재 치매보듬리더는 주민 봉사자 중심이지만, 이들을 ‘커뮤니티 케어 매니저’로 육성해야 한다. 일본의 케어 매니저처럼 병원, 주야간보호센터, 후견 서비스, 복지기관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중간 관리자로 성장시킨다면, 치매보듬마을의 서비스 질과 지속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모델이 ‘복합형 치매공동체’로 요양원, 실버타운, 공공임대주택, 커뮤니티 센터를 결합해 의료와 주거, 여가, 돌봄이 통합된 ‘개방형 요양 복합마을’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인요양시설과 실버타운을 한 단지 안에 배치하고, 인근 마을 주민이 프로그램과 돌봄 활동에 함께 참여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는 시설 중심 돌봄의 폐쇄성을 줄이고, 지역 공동체가 직접 돌봄 생태계에 참여하게 만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뿐 아니라 공공보조금과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닌 주민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농산물 판매 등 자생적 재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제로 영주시와 상주시에서는 복숭아청과 고구마 판매를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며 재정적 자립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제적 자립은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지역이 스스로 치매 친화적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울러 치매보듬마을의 철학은 ‘치매 친화적 도시환경’으로 확장해야 한다. 안내표지, 보행자 안전, 조명과 색채, 공공기관 내 기억 친화 공간 조성 등은 치매 환자뿐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다. 영국의 ‘치매 친화 도시(Dementia Friendly City)’처럼 한국 역시 도시계획 단계부터 이러한 개념을 반영해,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기억이 존중받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치매보듬마을의 미래는 단일 프로그램의 확장이 아니라, 다양한 주거·복지·의료 모델이 연결된 ‘통합 돌봄 생태계’로 진화하는 데 있다. 지역 커뮤니티, 요양시설, 실버 케어하우스, 공공임대형 복합단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비로소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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