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연구자 중 한 명인 테라사카 에리(寺坂絵里) 작가는 인구감소 문제를 “추상적 통계가 아니라 생활과 지역의 맥락 속에서 체감되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장의 변화가 인구감소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현장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보육 시설의 예를 들었다. “저출산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보육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육교사 부족이라는 구조 문제 때문입니다.” 또한 도호쿠 지역에서 주민들이 “마을을 다시 활기 있게 만들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 물류나 재배송 문제에서 드러나는 비효율 등이 모두 인구감소의 영향을 입증하고 있었다고 했다. “일상의 다양한 장면에서 인구감소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테라사카 작가는 최근 인구감소를 ‘위기’가 아닌 ‘전환의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아 ‘도해 입문 비즈니스 최신 인구감소사회가 잘 이해되는 책’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현장 연구를 통해 일본 지역사회가 직면한 상당수 문제가 결국 인구감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후 지역 종합계획과 마을 만들기 활동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 구조를 고민해 온 연구자다.
“출발점은 사회문제에 기여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인구감소를 자신의 핵심 연구 주제로 삼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호쿠와 이바라키에서 지역 활동에 참여했을 때 “인구가 줄어든다는 현상이 단순한 인구 지표가 아니라 지역의 생활, 일, 사람 간 연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는 점을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뉴스와 정책 자료를 통해 접하던 ‘일본의 인구위기’가 실제 주민들의 생활감각, 지역 인프라의 기능 저하, 일상의 불편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경험이 그에게 문제의식을 남겼다고.
지역 주민 반대해도 넘어야 할, ‘도시 통폐합’

테라사카 작가는 책에서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와 야마구치현 스오오시마초 등은 지역 재생의 상징처럼 소개된다. 그는 성공한 지역의 공통점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구조가 있는지, 둘째는 외부의 시각과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있는지입니다.” 지역 주민에게는 당연한 풍경이 외부인에게는 매력으로 비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만남’이 지역의 가능성을 다시 여는 힘이라는 설명이다.
도시 기능 유지와 관련해 일본 내부에서는 ‘통폐합’ 논의도 점점 현실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을 재산으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고, 토지·건물에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해 통폐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고 질문하자, 그는 일본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공감했다.
“일본에서도 주택은 ‘지켜야 할 자산’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합니다. 그 결과 빈집이 계속 늘어나는데도 매각이나 정리가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고도경제성장기에 깔아놓은 도로·상하수도·교량 같은 인프라가 노후화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당시에는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을 전제로 기반시설을 확장했지만, 지금은 이를 유지·관리할 인력과 재정이 모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시설을 줄이거나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설명해도 주민 입장에서는 ‘우리 동네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생기기 쉽습니다.”
테라사카 작가는 이런 상황을 “한국과 일본이 공유하는 구조적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자산으로서의 부동산 가치, 지역 커뮤니티의 정체성, 인프라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주민 정서가 한편에 있고, 재정과 인구라는 냉정한 현실이 다른 한편에 있는 구도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모든 것을 유지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의 철거와 기능 축소까지 포함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최근 일본에서 추진 중인 ‘컴팩트 시티’나 ‘입지적정화계획’에 대한 논의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도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도 생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시 구조를 다시 짜는 작업입니다.”
일본의 ‘컴팩트 시티’ 정책은 의료·상업·행정·교통 등 핵심 기능을 도심·거점에 모으는 방식이다. ‘입지적정화계획’은 어디를 주거유도구역으로, 어디를 도시기능유도구역으로 설정할지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정하는 계획이다. “결국 어느 지역은 살기 좋게 기능을 모으는 대신, 다른 지역은 장기적으로 주거·기능이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역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인구감소가 계속되는 이상, 한국이든 일본이든 언젠가 마주해야 할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력 부족의 새로운 해법, ‘프로보노’
노동력 부족 문제에서는 고령자·여성·외국인의 참여가 일정한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양한 인재가 노동력 인구 유지에 기여하고 있으며,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일본의 노동력 총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본이 노동 공급의 다변화를 통해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구조를 구축해 온 결과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지역 기업과 외부 인재의 공창(共創)을 예로 들었다. ‘도호쿠 프로보노 프로젝트’를 통해 재편된 이와테현의 가구 제조업체 사례였다. ‘프로보노(pro bono) 인재’는 본업에서 쌓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지역사회와 공익 활동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마케팅·디자인·IT 등 민간의 고급 역량이 소규모 기업이나 지자체에 투입되면서, 인구감소로 인한 인력·전문성 부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프로보노 참여가 지역 기업의 혁신과 판로 개척 등 구체적 성과로 이어진 사례가 늘고 있다.
“마루이 조형가구공업소는 1945년에 설립된, 이와테현 구노헤군에 위치한 종업원 12명의 소규모 제조업체입니다. 시장과 판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제품과 신브랜드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회사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콘셉트를 잡지 못해 대외적으로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때 ‘도호쿠 프로보노 프로젝트’ 매칭 행사에 참여하면서 5명의 프로보노 인재와 연결됐습니다.”
이 회사와 프로보노 인재는 두 달 동안 세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째는 사업 간 관계성을 정리하고 브랜드 콘셉트를 다시 설계하는 일, 둘째는 기존 제품의 신규 판로를 개척하는 일, 셋째는 내부 업무를 효율화하는 작업이었다. “프로보노 인재들이 실제 영업 활동에 나서고, 정리된 자료를 기반으로 바이어를 설득한 결과 새로운 상담과 거래가 성사됐습니다. 외부 인재의 지식과 경험이 추상적인 조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테라사카 작가는 이를 두고 “전직이나 부업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살려보고 싶거나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프로보노라는 형태로 기업과 연결되는 것은 인구감소사회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부족한 노동력과 전문성을 외부 네트워크와 접속시켜 지역기업이 생존을 넘어 재도약을 시도한 구조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지역창생(地方創生)’ 정책에 대해서는 “지방 이주나 지역 취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근본적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도시와 지방을 분리된 공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일본으로 보면서 사람·물자·기술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지역창생 2.0’도 이런 시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숙제는 수도권 집중”
한국 역시 출산율 하락과 지방소멸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필요성을 들었다. “한국은 인구의 절반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이것이 인구감소를 더욱 빠르게 합니다. 단순히 개인을 지방으로 이동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와 기업의 기능을 전략적으로 지방에 분산시키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도 수도 기능 분산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실현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일본이 한국에서 배울 점으로는 “국가 브랜드 전략과 콘텐츠 산업의 육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은 화장품, 음악, 엔터테인먼트 등을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밀어붙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해외에 살고 있으면 한국 문화와 콘텐츠의 영향력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인구감소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일본 시민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그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전제가 된 사회에서는 ‘어디에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냐 지방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 가족, 일의 형태를 스스로 설계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인구감소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각오와 희망”을 꼽았다. “과거에 정답이라고 여겨졌던 가치관에 묶이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유연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구감소사회에서는 각자의 선택이 곧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방식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연구 주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지속 가능한 지역 만들기”라고 답했다. 지역 활성화는 행정만의 몫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작은 행동의 축적이 지역의 미래를 지탱합니다. 앞으로는 특정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깊게 살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