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로 잘 알려진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1966년생 말띠인 그는 올해 환갑, 60세를 맞았다. 프로파일러를 비롯해 경찰, 교수, 정치인, 방송인, 작가까지. 그의 삶에는 수많은 직함이 따라붙었다. 그는 “본질은 늘 같았다. 다만 도전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말처럼 쉼 없이 달려온 인생, 올해 그의 행보가 유독 궁금하다.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기분이죠.”
타인의 심리를 읽고 범죄자의 내면을 분석해온 프로파일러. 그러나 ‘60세’라는 숫자 앞에서 그 역시 쉽게 심경을 정의 내리지 못한다.
여전히 ‘동심’이 마음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60세는 아직 실감 나지 않는 나이다. 다만 마음만큼은 새롭게 다잡았다.
“내가 환갑이라니, 지금까지 삶을 잘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이제는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장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범죄 현장과 함께해 왔다. 1989년 경찰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형사로 임용돼 현장 수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근무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을 직접 마주하며 국내 수사 기법의 한계를 절감했다. 결국 그는 1993년 영국으로 향했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경찰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범죄학자로서 체계적인 수사 기법 확립에 힘썼다. 국내 1호 경찰학 박사로서 또 다른 1세대 프로파일러 권일용과 함께 프로파일링 기법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당시만 해도 과학수사요원을 ‘감식반’, ‘감식요원’이라 부르던 시절이었다. ‘프로파일러’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했고, 현장에서의 위상 역시 낮았다.
“화성에서 근무할 당시 이춘재 9차 사건 현장 보존 역할을 맡았어요. 그 이전에 8번이나 사건이 발생했던 거죠. 희생자분들의 아픔과 비극을 가까이서 보면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춘재 검거까지 결국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유영철,・정남규 등 연쇄살인마도 조기에 잡지 못했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찰은 숱한 비판을 받으며 발전해왔고, 프로파일링 분석 역시 중요해진 시대가 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해 왔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릅니다.”
다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표창원 소장은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수사 전반에 좀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 지속적인 연수와 인재 양성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아쉬움은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걸음이 되는 것 같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국내 프로파일러 인식 개선 배경에는 그의 남다른 실력이 있었다.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그의 분석은 범죄 현장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1인치’를 포착하는 데 있다. 특히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에서 그의 프로파일링은 수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표창원 소장은 자신의 분석 능력을 특별한 재능이 아닌 훈련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구두 수선을 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볼게요. 처음에는 실수도 하지만, 끈기 있게 하나하나 배우고 알아가다 보면 장인이 되는 거죠. 구두만 보고도 걸음걸이를 알 수 있을 만큼요. 그 분야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거죠. 대중이 저를 높이 평가해주신다면, 아무래도 경찰관 경력도 있고 많은 시간을 이 분야에 쏟아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일하게 외국에서 프로파일링을 배워와 국내 정서에 맞게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죠.”
현재 그는 수사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후배 양성과 방송·정책 자문 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로파일러로서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았다. 굳건히 지켜온 신념과 원칙을 묻자, 돌아오는 답은 강렬했다. “타협하지 않는다.”
“프로파일러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기술이나 지식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타협의 유혹이 찾아올 때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가 아님에도 특정 용의자 쪽으로 수사가 쏠릴 때, 그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죠. 시간이 더 걸리고, 윗선이나 언론의 눈치를 보게 돼요. 그럴수록 타협의 유혹이 커집니다. 타협하는 순간 인간관계는 좋아질 수 있지만 원칙은 무너집니다. 그럼 프로파일러로서의 의미와 존재감은 사라지고, 도구로 전락하는 거죠.”

AI 시대의 프로파일러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범죄 현장의 변화를 묻자, 표창원 소장은 “세월이 변한 만큼 사건의 얼굴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과거의 범죄가 물리적 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오늘날 범죄는 디지털과 AI 기술을 등에 업고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딥페이크·딥보이스 활용 또는 연애 감정을 이용한 로맨스 스캠 사기 범죄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개인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범죄는 더 교묘해졌고, 피해 규모 역시 커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그는 시니어 세대를 꼽는다.
“요즘은 실제인지, 만들어낸 영상인지 구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조차 직접 만들어보고 실험해보면 놀랄 정도예요. 특히 로맨스 스캠이 건드리는 외로움은 사람이 견디기 힘든 감정입니다. 그 틈을 파고들어 신뢰를 쌓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요. 이에 따라 개개인은 ‘이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막아야 하고, 기업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언젠가는 모든 직업이 대체될 것”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렇다면 프로파일러는 어떨까. 표창원 소장은 이 질문에 단호하면서도 신중한 답을 내놓았다.
“언젠가는 대체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이미 AI의 지배를 받고 있을 겁니다.”
현재 AI는 수사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방대한 사건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유사 사건을 찾아내는 데 인간보다 효율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프로파일러의 역할을 AI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AI의 특징은 객관화·수치화·디지털화입니다. 하지만 범죄는 통계로만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아직은 인간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AI는 ‘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 복잡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그 판단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AI에게 질문할 수도, 반론을 제기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건 판단이 아니라 지배입니다.”
표창원 소장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는 동시에,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범죄 추리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펴냈다. 프로파일러의 역할을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더욱이 그가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화 콘텐츠가 가진 힘은 메시지를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전달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건 삶과 세상, 그리고 정의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요즘 ‘정의는 죽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면 더더욱 그렇죠. 정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올해 표창원 소장은 두 번째 소설 ‘쓰레기 섬(가제)’ 출간과 함께, 2014년 설립한 범죄과학연구소의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그의 행보를 관통하는 태도는 단 한 가지다. 후회 없는 삶이다.
“후회라는 단어에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 생각이 크게 의미 없다고 봐요.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나쁘고, 반성하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죠. 하지만 ‘무엇을 가장 후회하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프로파일러로서 원칙을 타협하지 않았던 태도, AI 시대에도 인간의 판단을 끝까지 지키려는 신념, 삶 앞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자세. 이 모든 것이 이어져 지금의 표창원을 만들었다. 앞만 보고 우직하게 달리는 경주마처럼, 그는 2026년을 향해 첫 보폭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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