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통합 시대, 디지털 돌봄의 핵심은 고령자 자립 지원”

입력 2026-03-19 07:00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 “기술 변화에 걸맞은 제도 변화 추진해야”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이준호 기자)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이준호 기자)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돌봄은 더 이상 복지정책의 한 분야로만 다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달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법’의 전면 시행을 앞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가 마주한 돌봄의 가장 큰 과제로 ‘자립’의 부재를 꼽았다. 서울대 치과대학 교수이자 AI 구강세정기 ‘코모랄’을 개발·제조한 에스엠디솔루션 대표인 그는 통합돌봄의 방향과 장기요양보험의 구조적 한계, 신기술 기반 돌봄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차례로 짚었다.

김 이사장은 돌봄의 본질을 “고령자가 가능한 한 오래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 중심에는 반드시 ‘자립’이 놓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용구와 재가서비스의 기본 취지는 시설 입소를 늦추고 집에서 더 오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핵심 개념이 제도 안에서 충분히 살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통합돌봄을 말하지만, 제도 안에서도 연계 불충분”

김 이사장은 최근 본격화한 통합돌봄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운영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름은 ‘통합’이지만 의료와 요양, 간호와 돌봄, 시설과 재가가 여전히 분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돌봄이 선언이나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누가 지원 대상이 되는지, 어떤 필요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선별할지, 제도 바깥의 취약한 고령자를 누가 발굴해 어떤 서비스로 연결할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은 “장기요양 수급자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아직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봄 인력 문제 역시 통합돌봄 논의에서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이라고 봤다.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돌볼 사람이 부족하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현장의 최전선에는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 같은 돌봄 인력이 있다”며 “이들을 어떻게 전문화하고, 지속 가능한 직업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통합돌봄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이준호 기자)
▲김현정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이준호 기자)

“복지용구의 핵심은 자립… 신기술도 그 기준으로 봐야”

김 이사장은 장기요양보험과 복지용구 제도 역시 자립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용구를 단순한 보조기기 공급 체계로 볼 것이 아니라, 고령자의 일상을 지탱하는 자립 지원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복지용구의 기본 컨셉은 자립”이라며 “가능한 한 재가에서 오래 생활하도록 돕고 시설 입소 시점을 늦추는 것이 핵심인데, 이 원칙이 지금 제도 안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문요양과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복지용구가 각각 흩어진 서비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립을 떠받치는 하나의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시각은 신기술 기반 복지용구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최근 현장에 도입되는 디지털 돌봄기기들이 기존 제도와 잘 맞물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제품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은 단순히 재료비와 노무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개발비와 인증비, 유지·관리 비용, 소모품 구조까지 함께 봐야 지속 가능한 보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그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체계가 없으면 공급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고 이용자도 안정적으로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에이지테크 발전과 맞물려 등장한 디지털 돌봄기기의 경우, 한 번 지급하고 끝나는 방식으로는 현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봤다. 디지털 돌봄기기는 배터리 교체와 통신 연결, 소모품 보충, 사용 상태 점검 같은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지만, 현행 체계는 이런 요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건 사람… 디지털 돌봄 관리 체계 세워야”

김 이사장은 디지털 돌봄의 확산이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다. 다만 기술 도입에 앞서 인적 기반과 직무 체계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을 운용하고 관리할 사람, 그 역할을 뒷받침할 제도적 틀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현장 정착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는 “어르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인력은 결국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라며 “이들에게 기존 돌봄 업무에 더해 모든 디지털 돌봄기기 관리까지 맡기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넷 연결 이상이나 배터리 문제, 기기 설정 오류, 사용 데이터 확인 같은 영역은 별도의 전문 인력이 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김 이사장은 “이들은 어르신을 직접 수발하는 역할이 아니라, 돌봄 현장에서 디지털 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디지털헬스학회도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관련 교육과 인력 양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디지털 돌봄 기술이 이미 현장에 들어오고 있는 만큼, 이를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연결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고 밝혔다.

그는 한국 사회가 고령자를 위한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돌봄이 절실해진 뒤에야 개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능 저하를 늦추고 자립을 오래 유지하도록 돕는 예방적 관점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지금은 늙고 병들고 기능이 많이 떨어진 뒤에야 제도가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돌봄의 핵심은 더 나빠진 다음에 돕는 것이 아니라, 덜 나빠지게 하고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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