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윤나래의 세대읽기] 호두과자와 도토리묵이 새롭다고?

입력 2026-06-08 06:00

익숙한 먹거리를 젊은 감각으로 즐기는 법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호두과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즐기는 여행길 대표 간식이다. 도토리묵은 등산 뒤 막걸리와 함께 먹는 로컬음식이다. 익숙하지만 새롭지는 않은 음식. 맛은 알지만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는 먹거리. 그런데 최근 젊은 세대는 이 오래된 음식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림을 자처한다.

그 이유가 ‘전통의 맛’ 때문일까? 이들은 호두과자와 도토리묵을 먹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된 먹거리의 맛은 그대로 두되, 사는 방식과 먹는 장면, 공유하는 언어가 달라진 것이다.

▲버터쫀득 호도과자 출시 후 길게 늘어선 줄.(이미지=학화할머니호도과자 인스타그램.)
▲버터쫀득 호도과자 출시 후 길게 늘어선 줄.(이미지=학화할머니호도과자 인스타그램.)

오래된 간식, 신상 디저트가 되다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천안에서 1934년 문을 열고 오랫동안 호두과자를 만들어 왔다. 전통을 이어온 이곳은 익숙한 간식 호두과자에 말차, 앙버터, 딸기앙금, 슈톨렌, 쑥 인절미, 리코타 버터 쫀득 같은 요즘의 맛을 얹었다. 호두과자의 모양은 그대로인데, 맛은 색다르다. 젊은 소비자에게는 ‘할머니 간식’이 아니라 ‘이번에는 또 무슨 맛이 나왔을까’ 기다리는 신제품이 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래됨을 지우지 않았다는 데 있다. 표준어는 호두지만, 학화는 오래 써온 호도라는 이름을 지킨다. 다만 그 오랜 시간 위에 새로운 맛을 올린다. 젊은 세대가 반응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익숙한 것을 완전히 새것처럼 꾸미기보다, 낡은 이미지와 최신 유행이 교차하며 생기는 묘한 재미가 있다.

▲버터쫀득 호도과자 출시 소식에 달린 댓글.(이미지=학화할머니호도과자 인스타그램.)
▲버터쫀득 호도과자 출시 소식에 달린 댓글.(이미지=학화할머니호도과자 인스타그램.)

줄 서는 법도 달라졌다. 특히 버터 쫀득 출시 후 길게 늘어선 구매 줄이 화제가 됐다. 이에 학화는 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현장에 웨이팅 안내 기기인 ‘캐치테이블’을 도입했다.

요즘의 맛집 줄서기는 있으면 서고 없으면 바로 사는 과거의 단순한 줄서기와는 조금 다르다. SNS에서 신메뉴 출시 소식을 확인하고, 판매 시작 시간을 기억해두고, 택배 주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접속한다. 매장에서 사려면 문 여는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는 ‘오픈런’도 한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다. ‘몇 시에 열렸다’, ‘몇 분 만에 품절됐다’, ‘이번에는 성공했다’는 정보와 후기가 다시 사람들을 부른다. 젊은 세대에게 음식은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고 기다리고 인증하고 나누는 경험이다.

▲가업을 잇게 된 사연을 밝히는 도베르만.(이미지=계룡산 묵사랑 인스타그램)
▲가업을 잇게 된 사연을 밝히는 도베르만.(이미지=계룡산 묵사랑 인스타그램)

산골 도토리묵, 길거리로 나오다

‘계룡산 묵사랑’의 장남 도베르만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전통 먹거리를 소환한다. 등산길 식당이나 시골 밥상과 잘 어울리는 도토리묵은 대체로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정적인 음식이었다. 도베르만의 부모 역시 충남 계룡산 자락에서 직접 쑨 묵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아들은 이 묵을 서울의 거리로 들고 나왔다.

그가 말하는 ‘길묵’은 길에서 먹는 묵이다. 테이크아웃 컵에 묵밥을 담아 먹는 방식이다. 도토리묵을 커피나 컵빙수처럼 손에 들고 먹을 수 있게 만들자, 음식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묵은 더 이상 산 아래 식당에 앉아 먹는 음식만이 아니다. 도시의 골목, 팝업 행사장,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 안으로 들어온다.

도베르만이 젊은 층이 모이는 불교·웰니스 행사에 참여한 점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불교박람회 이후 젊은 세대에게 불교 문화가 굿즈, 향, 명상, 채식, 사찰 체험 같은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하고 웰니스를 추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사우나 문화가 파고든 것처럼, 도토리묵 역시 ‘절밥’이나 ‘등산 음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의 먹거리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토리묵 자체보다 도토리묵을 둘러싼 장면이다. 부모님의 묵을 서울에 알리겠다는 이야기, 망원동에서 묵 문화를 만들겠다는 선언, 길에서 묵 한 컵을 먹는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이 쌓이면서 묵은 새로운 취향을 대변한다.

▲부처님 미리오신날 팝업 행사에서 컵냉묵 완판 소식을 알리는 이미지.(이미지=계룡산 묵사랑 인스타그램)
▲부처님 미리오신날 팝업 행사에서 컵냉묵 완판 소식을 알리는 이미지.(이미지=계룡산 묵사랑 인스타그램)

전통음식을 즐기는 방식이 바뀌다

사실 젊은 세대가 전통을 갑자기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는 전통이 ‘요즘 방식으로 소비될 때’ 반응한다. 호두과자는 말차와 협업 상품을 만나 신상 디저트가 됐다. 도토리묵은 컵과 길묵을 만나 거리 음식이 됐다. 오래된 음식이 다시 인기를 얻는 과정에는 늘 작은 번역이 있다. 세대가 달라져도 먹거리는 이어지지만, 그것을 먹는 장면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시니어 세대에게 호두과자와 도토리묵은 추억의 맛일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 발견한 취향이자, 사진 찍고 공유하고 줄 서서 먹는 경험이다. 같은 음식을 두고 한쪽은 익숙함을, 다른 한쪽은 신선함을 느낀다. 세대 차이는 때로 이렇게 한입 거리 간식 위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젊은 세대가 옛것을 다시 좋아한다’고만 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인기에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힘보다, 오래된 것을 현재의 언어로 바꿔 말하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호두과자와 도토리묵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할 줄 알았기 때문에 다시 젊어졌다.

시니어를 위한 ‘요즘 먹거리’ 입문법

그렇다면 시니어 세대는 이런 먹거리를 어떻게 접하면 좋을까. 처음 시도할 때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어도 ‘방식’을 조금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음식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맛집 정보는 SNS 공지를 먼저 본다. 예전에는 유명한 가게에 직접 가서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브랜드 공식 계정에 신메뉴 출시일, 택배 판매 시간, 팝업 일정, 품절 안내가 먼저 올라온다. 자녀나 지인에게 ‘이 가게 인스타그램 한 번 찾아봐 달라’고 부탁해도 좋다. 마음에 드는 브랜드라면 계정을 팔로우해두고, 판매 공지를 캡처해두면 놓치지 않기 쉽다.

둘째, 줄은 ‘현장 줄’과 ‘온라인 줄’로 나뉜다. 매장 앞에 직접 서는 오픈런도 있지만, 택배 판매나 온라인 예약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접속하는 방식도 있다. 인기 제품은 판매 시작 직후 품절될 수 있으니, 구매하려는 제품과 수량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온라인 구매가 낯설다면 가족과 함께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성공하면 먹거리를 나누고, 실패해도 다음 판매일을 기다리는 재미가 생긴다.

셋째, 사진 한 장을 남겨본다. 젊은 세대가 먹거리를 즐기는 방식에는 기록이 빠지지 않는다. 음식 사진을 찍고, 어디서 샀는지, 어떤 맛이었는지 짧게 남긴다. 꼭 SNS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 가족 단체방에 보내거나, 친구에게 ‘요즘 이런 것도 있더라’고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통 먹거리는 그렇게 다시 대화의 소재가 된다.

넷째, 혼자보다 세대가 섞여 가면 더 재미있다. 부모 세대는 음식의 원래 맛을 알고 있고, 자녀 세대는 요즘 먹는 방식을 안다. 함께 줄을 서고, 신메뉴를 고르고, 컵묵을 들고 걸어보면 같은 음식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먹었다’는 말과 ‘요즘은 이렇게 먹는다’는 말이 만나는 순간, 전통 먹거리는 세대 사이의 작은 통역사가 된다.

결국 요즘의 전통 먹거리 유행은 맛의 복고가 아니라 장면의 갱신에 가깝다. 오래된 음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사는 방식과 먹는 장소, 말하는 언어가 달라졌다. 시니어 세대도 그 장면 안으로 한 발 들어가 볼 수 있다. 익숙한 맛을 낯선 방식으로 먹어보는 일, 그것이 오래된 먹거리를 젊게 즐기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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