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3

봉사로 노후의 역할 되찾은 이웃들

입력 2026-07-13 06:00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활동 평가회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1기 회원 단체사진.(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1기 회원 단체사진.(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더네이버스타운 1층 세미나실에 모인 이들이 종이에 한 줄씩 문장을 적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해서 100세까지 봉사합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이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듭시다.”

“여름처럼 활짝 웃는 인생 시작입니다, 오늘이.”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건넬 인사이자, 한 달 남짓한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음의 기록이었다.

▲회원들에게 건넬 소감과 격려 문구를 적고 있는 모습.(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회원들에게 건넬 소감과 격려 문구를 적고 있는 모습.(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6월 12일 경기도 시흥시 더네이버스타운에서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의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이하 나눔 아카데미)’ 1기 활동 평가회가 열렸다. 더네이버스타운은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이 경기도 시흥 배곧에 조성한 시니어 주거 공동체로, 입주민의 생활뿐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나눔 활동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나눔 아카데미는 봉사를 해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60세 이상 회원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1기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한 달을 꽉 채워 진행됐다. 오리엔테이션과 자원봉사 기본교육을 시작으로 어린이 축제 운영 보조, 아동복지시설 미화 봉사, 어르신 대상 식사 보조, 활동 평가회로 이어졌다. 단순히 봉사처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과 실습, 참여자 간 교류를 함께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이날 한 주 만에 다시 만난 회원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옆자리 회원의 장점을 발견하며 박수를 보냈다.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1기 김은미 회원의 수료증.(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좋은 이웃,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1기 김은미 회원의 수료증.(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행사는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수료증을 받고, 앞으로의 나눔 활동 계획을 이야기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5회기에 걸쳐 이뤄진 나눔 아카데미 1기는 짧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회원들에게 남긴 여운은 결코 짧지 않았다.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시니어들의 봉사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설문에 남겼다. 봉사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다음 봉사활동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지자가 됐다. 이에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은 하반기에 2기를 모집, 더네이버스타운 인근 수도권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확장할 계획이다.

▲박소정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쿨 사회복지학 부교수가 평가회 2부 발표를 하고 있다.(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박소정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쿨 사회복지학 부교수가 평가회 2부 발표를 하고 있다.(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나눔은 노후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첫 회기 강연과 평가회 2부 발표를 맡은 박소정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쿨 사회복지학 부교수는 자원봉사를 ‘착한 일’이라는 익숙한 말에서 떼어냈다. 그는 봉사를 여유 있는 사람이 시간 남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 노년기 삶을 떠받치는 사회적 인프라로 설명했다. 도로나 의료처럼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가 짚은 것은 은퇴 이후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직함이 사라지고, 매일 가야 할 일정이 사라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상실은 역할의 상실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위치가 사라질 때, 사람은 자기 삶의 쓰임을 잃기 쉽다. 박 교수는 봉사가 그 역할을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봉사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다. 도움받는 노인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시민으로 서는 일이다. 박 교수는 이를 ‘수혜자 모드’와 ‘기여자 모드’의 차이로 설명했다. “돌봐주세요”라고 말하는 노후와 “나도 도울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노후는 같은 나이에도 다른 정신상태를 만든다.

이날 회원들은 봉사를 하던 순간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다. “아직 할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다음에도 불러주면 가고 싶은 사람”. 작은 활동이 시니어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다시 빛나게 만든 것이다.

▲김인옥(68) 회원.(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김인옥(68) 회원.(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사례 1 봉사로 극복! ‘싫어하는 일, 안 해본 일’

김인옥(68) 회원은 나눔 아카데미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오래 돌보다 올해 1월 떠나보낸 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게 됐다. “손발을 쓸 수 있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몸으로 하는 봉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평소 가장 싫어하는 일이 청소라는 그는, 인천 중구 아동복지시설 디차힐에서 미화 봉사를 할 때 먼저 달려가 청소기를 잡았다.

“이번엔 내가 제일 하기 싫은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다 자신과의 싸움이더라고요.”

그에게 이번 활동은 ‘안 해본 일’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던 습관을 내려놓고, 활동기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것.

“길을 찾고, 갈아타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머리를 써야 하잖아요. 일부러 번거로운 선택을 해본 거죠. 생각보다 즐거웠고,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처럼 봉사는 그에게 대단한 결심보다 작은 실천을 계속 해보는 훈련에 가까웠다. 그 결과 이번 나눔 아카데미에 전 회기 참석해 그 성실함을 축하받았다.

새로운 관계도 생겼다. 함께 활동한 회원들과 짧은 시간에 가까워졌다. 같은 마음을 품고 모였다는 공통점이 낯섦을 줄였다.

“기부만 할 때는 이런 끈끈한 관계가 생기기 어려운데, 같이 움직이니까 금방 가까워지더라고요.”

그는 함께 봉사한 회원들에 대해 “이제 팀이 됐다”고 말했다. “살아온 경험이 곧 시니어의 일머리였다”고 회고한 그는 9월 몽골 봉사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 회원들에게 “같이 가자”고 독려했다. “우리 나이는 건강할 때 해봐야 해요.”라며 봉사를 ‘언젠가 할 일’로 미루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구연호(69)·김성애(69) 부부.(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구연호(69)·김성애(69) 부부.(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사례 2 선함을 배운 부부의 대를 이어가는 나눔

구연호(69)·김성애(69) 부부에게 나눔은 오랫동안 함께해 온생활의 방향이었다. 이들은 부모님의 조의금을 기부하는 등 굿네이버스 고액 후원 클럽인 ‘더네이버스클럽’ 회원으로 여러 후원과 나눔 활동에 관심을 이어왔다.

이번 아카데미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통장에서 후원금이 빠져나가는 일과 몸을 움직여 현장에 서는 일은 달랐다. 구 회원은 “직접 몸을 움직이는 봉사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봉사에서 본인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김성애 회원의 나눔 감각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됐다.

“아버지는 선한 일이 큰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그게 선한 일이라고요. 쓰레기 하나를 주워 버리면 다른 사람이 그걸 줍지 않아도 되니, 그게 선한 마음이라고요.”

이번 활동에서 그는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작은 힘 하나를 보탰을 뿐인데, 여러 사람의 손이 모이자 커 보였던 일을 순식간에 마무리했다.“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잘 부러지지 않잖아요. 작은 힘이 모여 더 큰 힘이 되는 게 자원봉사”라며 웃었다.

구연호 회원은 나눔을 다음 세대와의 연결로 확장했다. 그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를 산 어른들”이라고 표현했다. 전쟁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 쌓아온 판단과 경험의 자산을 뜻했다.

“다음 세대에게 멘토가 돼주고 싶다”는 그는 나눔을 받은 이가 선한 연결을 이어가도록 돕는 어른의 역할을 생각한다.

부부는 더네이버스타운을 둘러보며 봉사활동과 나눔을 일상에 놓고 사는 삶에도 관심을 보였다. 노후엔 관계가 좁아지기 쉽지만, 봉사는 오히려 새로운 접점을 만든다. 그 접점이 부부에게는 또 다른 활력이다.

▲김은미(65) 회원.(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김은미(65) 회원.(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사례 3 자원봉사 탐색 통해 만난 새로운 세상

또 다른 전 회기 참석자인 김은미(65) 회원은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 이번 아카데미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 다른 기관을 통해 개인 봉사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경력을 살려 지역 아동복지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해보려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다. 마음은 있었지만 이어가기 어려웠다.

“봉사하겠다고 갔는데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의지가 꺾입니다.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봉사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의 소개로 이번 아카데미에 참여했다. 이곳에서는 봉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이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프로그램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더라고요. 변수도 있었지만 할 일이 분명했고, 진행도 잘 돌아갔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는, 봉사를 막연한 선의가 아니라 준비와 연결이 필요한 일로 보게 됐다. 그에게 이번 경험은 단순한 봉사 체험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눔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답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는 더네이버스타운에도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지난해 현장 방문에 참여했고, 올해는 이곳에서 열린 AI 스마트폰 교육에도 참석했다. “당장 들어올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의 삶을 미리 그려보고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더네이버스타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시설보다 운영 주체를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공익성을 추구하는 단체에서 운영한다니 앞으로 이곳에서 이뤄질 활동이 기대됩니다.”

▲더네이버스타운을 둘러보는 회원들.(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더네이버스타운을 둘러보는 회원들.(이미지=박진주 프리랜서)

굿네이버스, 좋은 이웃은 만들어진다

더네이버스타운은 입주민만의 닫힌 공간보다 지역과 만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배움과 봉사, 이웃과의 교류가 이어지는 곳이길 꿈꾼다. 로비와 라운지에서 전시와 바자회, 책 기부 활동을 열고, 지역을 중심으로 나눔 활동을 연계하는 구상도 공유했다. 나눔 아카데미 평가회는 그 가능성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회원들은 안 가본 곳에 가보고, 안 해본 일에 손을 보태고, 몰랐던 옆 사람과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좋은 이웃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봉사가 시니어에게 좋은 4가지 이유.(그래픽 이은숙 기자)
▲봉사가 시니어에게 좋은 4가지 이유.(그래픽 이은숙 기자)

봉사가 시니어에게 좋은 4가지 이유

❶ 역할을 되찾게 한다

은퇴 후 가장 큰 상실은 직함이나 일정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역할의 상실이다. 봉사는 그 역할을 다시 만들어준다.

❷ 외로움과 우울을 덜어준다

핵심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이다. 친목 모임도 사람을 만나게 했지만, 다른 외로운 사람을 돕는 전화상담 봉사 그룹에서 외로움 감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❸ 몸을 움직일 이유를 만든다

카네기멜런대학교 연구에서는 연 200시간 이상 봉사한 51~91세 시니어의 고혈압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봉사는 운동 자체라기보다 정해진 약속과 이동, 책임을 통해 생활 리듬을 만든다.

❹ 관계망을 다시 만든다

은퇴 후 관계망은 저절로 넓어지지 않는다. 봉사는 같은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노년기에 새롭게 늘릴 수 있는 ‘약한 연결’을 만든다.

자료 박소정, ‘시니어 나눔 아카데미 기초 교육’ 발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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