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2

노인의학 권위자가 말하는 ‘잘 늙는 법’

입력 2026-06-12 06:00

“오래 사는 것보다 끝까지 내 삶을 사는 것”

윤종률 한림대학교병원 명예교수, 현 돌봄의원 재택의료센터 의사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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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환자도 ‘수치’를 믿고, 그 숫자로 상태를 판단하며, 숫자를 정상 범위 안에 넣는 것을 치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노인의학 권위자인 윤종률 한림대학교병원 명예교수는 그 ‘상식’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혈압 수치가 정상이라고 건강한 건 아닙니다. 노년기에는 검사 결과보다 걷는 속도, 계단 오르는 힘, 앉았다 일어나는 속도가 훨씬 중요합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출발해 미국 유학의 길에서 노인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한림대학교병원에서 은퇴한 후 돌봄의원 재택의료센터에서 근무하며 집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하고 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환자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병원보다 집에서 더 많은 것을 봅니다. 환자는 의사 앞에서 긴장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지만, 집에서는 이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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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의료 중심이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다. 숫자로만 보면 인구구조의 변화지만, 윤 교수는 이것이 “의료 중심축 자체가 바뀌는 신호”라고 설명한다.

“과거 의료는 폐렴·심근경색·외상처럼 급성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혈압·혈당 수치를 정상으로 만드는 게 목표였죠. 그런데 지금 병원에 오는 환자 상당수가 여러 만성질환을 동시에 가진 고령 환자입니다. 수치가 기준이 되던 시대의 의료는 이분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의학과를 선택했던 그가 노인의학으로 방향을 튼 것도 결국 환자 한 명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고지혈증을 앓던 할머니 환자가 제 인생을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약 용량을 올렸는데 젊은 환자에게는 생기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 거죠. 노인에게는 젊은 사람들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정말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는 그 충격을 계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노인의학을 공부했고, 귀국 후 대학병원 최초로 노인병 클리닉을 개설했다. 이때 그가 붙인 이름이 ‘약물 조절 클리닉’이었다. 왜 ‘노인병 클리닉’이 아니었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노인 환자 대부분이 너무 많은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혈압이 있으면 순환기내과,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 기억력이 떨어지면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과마다 처방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하루에 열 가지가 넘는 약을 삼키게 된다. 약이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약이 새로운 병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환자들이 하소연합니다. ‘한 군데서 다 봐주면 좋겠다’고요. 바로 노인의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사람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의학이거든요.”


검진 결과가 '정상'이어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혈압·혈당 모두 정상, CT도 깨끗한데 왜 몸은 예전 같지 않을까. 윤 교수는 그 이유를 노인의학의 핵심 개념인 ‘근감소증’에서 찾는다.

“40대 후반부터 근감소가 시작됩니다. 50대 초반까지는 매년 0.5%씩, 50대 중반부터는 매년 1%씩 근육이 빠져나가요. 문제는 이게 혈액검사나 CT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수치는 정상인데 몸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는 “건강검진 결과가 정상이라고 안심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수치 대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호는 일상 속에 숨어 있다. 계단 두세 층이 예전보다 버겁고, 걸을 때 발이 끌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 이는 근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핵심 경고다.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눈에 앞사람의 신발 바닥이 보여야 해요. 발이 제대로 들린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노인들은 발바닥이 보이지 않아요. 발을 끌며 걷는 겁니다. 그게 보행 속도 저하, 낙상 위험과 직결됩니다.”

그는 국가 건강검진에 보행 속도, 의자에서 일어서는 속도, 악력(손 쥐는 힘), 우울감, 기억력 변화, 사회 활동 범위 같은 항목이 포함돼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일본에서는 이미 15가지 항목의 노인 특화 검진을 우편 설문으로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운동 프로그램과 영양 교실, 사회참여 활동으로 연결해준다.

그가 노쇠의 가장 위험한 신호로 꼽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생활 반경’이다. 시장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나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집 안에만 머물게 되는 것, 그 변화가 노쇠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혈액검사 결과가 좋아도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위험한 신호입니다. 생활 반경이 줄어드는 것, 이게 노년기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변화예요.”


70대 건강은 40대에 결정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준비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노년 건강을 막연히 70대 이후의 문제로 미루지만, 윤 교수는 단호하게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40대”라고 말한다.

생리학적으로 신체 기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30세다. 30대까지는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40대부터 호르몬이 떨어지고 각종 기능이 조금씩 퇴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 증상이 없으니 대부분 모르고 지나간다.

“70대가 됐을 때 팔팔하게 여행 다니는 사람과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의 차이는 40대에 시작됩니다. 몸속에서 조용히 변화가 쌓이는 시기인 40대를 그냥 보내면 70대가 됐을 때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건강 노화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운동이 첫째, 영양이 둘째, 수면이 셋째.

“운동, 영양, 수면을 따로 떼어놓고 말하는 게 어색하긴 하죠. 셋 다 서로 연결돼 있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순서를 매긴다면 운동이 가장 앞입니다. 모든 연구를 통틀어 건강 노화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있는 건 운동이거든요.”

다만 40대 이후에는 운동 방식을 바뀌야 한다. 20~30대에는 달리기 같은 유산소운동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허벅지·엉덩이처럼 큰 근육을 키우는 하체 근력운동 비중을 높여야 한다. 50대부터는 여기에 균형 운동을 더해야 한다. 춤이나 태극권처럼 한 발로 서거나 중심을 잡는 동작이 낙상 예방에 특히 효과적이다.

영양에서는 흔한 ‘소식(小食)’ 신화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소식은 비만 예방이 필요한 20~30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40대 이후에는 오히려 잘 먹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단백질과 아침 식사를 절대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영양제에 대해서는 신중하다. 건강기능식품도 결국 약이어서, 다른 약과 충돌하거나 과다 복용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가 유일하게 특별히 강조하는 영양소는 비타민 D다.

“비타민 D는 근육과 뼈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비타민 D를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햇빛입니다. 집 안에만 있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소용없어요. 피부가 햇빛을 받아야 비로소 활성화됩니다. 결국 바깥에 나가서 움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건강해 보여도 방심은 금물

노년기에는 질병이 있어도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폐렴이 생겨도 기침이나 열이 없고, 협심증이 있어도 가슴 통증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노화 탓이겠지”하고 넘기다가 진단 시기를 놓치는 일이 빈번하다.

“깜박하고 잠깐 마비 증상 같은 게 생겼다가 금방 회복되는 경우, 이걸 일과성 뇌허혈이라고 합니다. 이게 뇌경색으로 발전하는 전조 증상인데, 금방 나으니까 병원에 오지 않는 분이 많아요. 방치하면 결국 뇌경색이 됩니다. 안타까운 경우가 정말 흔합니다.”

계단 오르기가 눈에 띄게 힘들어지거나, 손 쥐는 힘이 약해지거나, 식사량이 줄거나, 외출이 점점 귀찮아지는 것. 검사 수치로는 아무 이상이 없더라도 이런 변화는 몸이 보내는 중요한 경고다.

“기능의 저하를 나이 탓으로만 돌리지 마세요. ‘나이 드니 그렇지 뭐’라고 넘기지 말고, 뭔가 달라진 게 있다면 한 번쯤 전문가와 이야기해보십시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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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행복은 결국 관계에서 결정된다

윤 교수가 재택의료 현장에서 임종을 앞둔 노인들을 만나며 가장 자주 보는 어려움은 질병 자체가 아니다. 가족관계의 단절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힘드신 분은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진 분입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그게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을 단순한 감정 문제로 보지 않는다.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학적 위험 요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고립은 사망 위험을 32% 높이고, 치매 위험도 30%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공중보건의 책임자는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수준의 건강 위험 요인”이라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중장년 세대에게 ‘관계 자산(Relation Asset)’을 지금부터 쌓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아플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 등이 노년의 회복력을 만드는 핵심 자원이다.

관계 자산이 무너지고 있는 신호가 있다. 외출이나 전화 연락이 줄고, 혼자 밥 먹는 일이 잦아지고, ‘귀찮다’는 말을 자주 하고, 낮잠이 늘고, TV만 보게 되는 상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걷기 모임, 자원봉사, 지역 모임, 공동 식사, 복지관 활동 등 사회적 처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약 대신 관계를 처방하는 거죠. 이게 노년기에 가장 중요한 치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스민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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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립도생, 기본에 충실하면 길이 보인다

바쁜 의료 현장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를 붙잡아준 말이 있다. ‘논어’ 학이(學而) 편에 나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으로, 기본을 잘 세우면 길은 저절로 보인다는 뜻이다.

“막막할 때는 내가 원래 뭘 하려고 했던 건지, 목표가 뭔지로 돌아가면 조금씩 해결 방법이 보이더라고요. 제가 30~40대부터 좌우명처럼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입니다.”

가정의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 안에서 노인의학을 전공하기로 한 것도 모두 ‘의사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당시 두 분야 모두 비주류였지만,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사람들이 덜 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의사는 몸과 마음이 지치고 아픈 사람을 다독여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위암 환자’가 아니라 ‘지금 가족과 갈등이 있는 60세 누구 씨’로 보여야 제대로 보는 거라고요. 그게 전인 치료고, 노인의학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은퇴 후에도 그의 일상 루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상·수면 시간을 유지하고, 하루 30분 이상 근력운동을 거르지 않고, 매일 논문 하나씩 읽는 습관을 계속한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합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 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니, ‘이게 재미있구나,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구나’라는 감각으로 일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50~60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는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건강 노화를 위한 필수 실천이다.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활동하다 가는 것. 이른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정신으로 살라는 것이다. 당장 PT를 등록하기 전에 하루 10~20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나 선택해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면서 “치매와 중풍으로 드러누워서 5년, 10년 앓다 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건강한 노화를 준비해야 한다. 죽음의 순간에 ‘참 잘 살다 가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두 번째는 다양함이다. 일 중심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한 가지 일탈,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두라는 조언이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 재미있을 것 같은 것, 뭔가 나답지 않다 싶은 것. 그걸 조금씩 해보세요. 은퇴 후에 시간이 생겼을 때 ‘아, 내가 그거 해봤지. 이제 제대로 해봐야겠다’가 되려면 지금부터 씨앗을 뿌려두어야 합니다.”

노화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늙을 것인지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한다. 윤 교수가 수십 년의 임상경험에서 길어 올린 이 진실은 오늘 계단을 한 층 더 오르고, 단백질 반찬을 하나 더 챙기고,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더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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