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 속 90세를 넘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여기 100세가 지나서도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성악가가 있다. 1926년생인 홍운표 테너는 기네스북에도 ‘현존 최고령 테너’로 이름을 올렸다.
생일이 지나 지금은 정확히 101세인 그. 한 세기를 살아왔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만은 청춘 그대로다.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홍운표 테너를 보면, ‘정말 100세가 넘었다고?’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만큼 성량이 풍부하고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홍 테너는 “현존 최고령 테너라는 기록보다 중요한 건 지금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며 “지금, 오늘이 바로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덤덤히 말했다.
공연자에게 보내는 갈채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브라보(Bravo)’. 그동안 수많은 브라보 를 들었을 테지만, 홍 테너는 앞으로도 무대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어쩌면 그의 인생 최고의 ‘브라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100세가 된 후 더욱 바빠졌어요. 이번 주도 스케줄이 많았죠. 경성오페라단 창단 2주년 행사로 일산에 다녀오고, KBS 라디오에도 출연했습니다. ‘100세 테너’로 불리는 지금, 보람을 많이 느껴요.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나날이 즐겁습니다. 내게 남은 한 가지는 건강을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죠.”

일본도 놀란 소년
어릴 적부터 전축으로 음악 듣는 것도,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던 홍운표 테너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성악가의 꿈이 구체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음악 선생님이 일본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정말 드문 일이었죠.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요. 수업 시간에 ‘산타루치아’ 노래를 불렀는데,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너는 성악을 해야 한다’고 하셨죠.”
선생님의 한마디는 소년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음악학교(현재의 도쿄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타고난 재능은 일본에서도 금세 주목받았다. 특히 당시 일본을 대표하던 세계적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의 눈에 띄어 직접 지도를 받기도 했다.
“도쿄에 금세 소문이 났어요. 조선에서 체구는 조그마한데 소리가 우렁차고 예술성을 가진 소년이 왔다고 말이죠. 제가 레슨받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찾아와 구경하고, 노래를 들은 후에는 박수를 쳐줬어요. 그게 당시 일상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설움도 감당해야만 했다. 당시 일본 유학생 사회에서 조선 학생들의 성악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1등 상을 받을 수 없었다. 늘 2등에 머물러야 했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같은 출발선에 세우지 않았던 시대였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있었다. 미군의 공습이 이어지면서 학교 수업이 사실상 중단됐을 때도 그는 친구들과 음악 감상실에 모여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가장 친한 친구를 폭격으로 잃는 아픔도 겪었다. 전쟁과 차별 속에 상흔을 입었지만, 소년의 꿈은 꺾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
조선의 해방을 일본에서 맞은 홍운표 테너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귀국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조선에서는 촉망받는 젊은 성악가의 귀환을 반겼고, 그는 귀국 한 달 만에 독창회를 열었다. 이후 한국 오페라 초창기 무대에서 활약하며 성악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 젊은 성악가였던 홍운표 역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였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1.4후퇴를 지나온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격동의 시대에서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몰라요.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처절했던 기억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인민군 치하에서 몇 달을 보내야 했고, 시키는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말을 안 들으면 죽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나중에는 왜 그런 노래를 불렀느냐고 의심을 받기도 했죠. 그 시대의 성악가들이 많이 희생을 했어요.”
이후 그는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음악 분야를 담당했고,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와 대학 강사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또한 국제오페라협회를 창립했으며, 인천오페라단 초대 단장을 맡아 한국 오페라 발전에 힘을 보탰다. 1982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성악가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합동 공연을 펼치며 한국 성악계의 위상을 높였다.
홍운표 테너는 더 큰 명성을 얻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이어가자는 권유를 받았고, 이후에도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릴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명세를 좇기보다 음악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단지 좋아서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는 후대에 자신을 ‘100세 테너’보다 ‘성악가 홍운표’로 기억해주길 바랐다.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기록으로 남았다는 점이 의미 있는 거지요. 대한민국에 이런 성악계의 전승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에 이바지하고, 성악계 선배로서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목소리는 팔팔 청춘
101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의 외모와 일상은 정정하다. 주름이 많지 않은 피부와 꼿꼿한 자세, 또렷한 목소리는 나이를 잊게 만든다.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 다니며 일정을 소화하는 그는 “걷는 데는 자신 있다. 두 다리가 튼튼하다”고 말했다.
홍운표 테너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마음껏 발성 연습을 하라며 배려해준 이웃 주민들 덕분에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목소리를 깨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몇 년 전까지는 관악산을 오르내리며 발성 연습을 했다. 식사도 가리지 않는다. 햄버거를 좋아해 혼자 패스트푸드점을 찾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게 더 신기하다”고 말하며 웃는다.
“소리가 나오고 힘이 있어야만 무대 위에서 노래가 되는 게 아니겠어요? 발성을 안 하면 소리가 오므라들어요. 그래서 매일 목소리를 깨우고,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건강해야 하죠. 남들이 늘 ‘뭘 먹냐’, ‘무슨 운동을 하냐’고 물어봐요. 특별한 비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무대 위에서 그가 80년 가까이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젊은 시절과 같은 음역과 곡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그를 주변에서 만류할 정도다. 인터뷰 당시 동석한 소속사 대표는 “선생님께서 곡 수를 줄이거나 쉬운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 조금은 조절하면서 노래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운표 테너의 생각은 달랐다.
“외국 성악가들도 60~70대가 되면 음을 낮추고 어려운 곡을 피하려고 해요. 그런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평생 성악만 해온 사람으로서 변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요. 선배와 후배, 관객들에게 늘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100세 테너가 전하는 희망
홍운표 테너에게 음악은 삶 그 자체다. 그는 “음악은 나의 전부다. 음악이 없으면 나는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그의 100년 넘는 인생에서 노래는 늘 삶의 중심에 있었다.
“지금까지 슬럼프라고 할 만한 순간이 없었어요. 무대에 서는 모든 순간이 기쁨이었죠. 평생 음악밖에 모르고 살아왔으니 그저 계속하는 겁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는 지금처럼 무대에 설 거예요.”
그는 앞으로 몇 년을 더 노래할 수 있을지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때 자신에게 교육받던 젊은 제자들이 이제는 백발의 원로가 되어 찾아오는 모습은 그가 걸어온 세월의 길이를 실감하게 한다. 동시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100세 테너라는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 제 나이에 무대에서 노래 부른다는 게 쉽지 않죠. 저는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감동하고, 눈물 흘리고,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 세기에 걸쳐 한 길을 걸어온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한 사람의 삶이자 시대의 기록처럼 들린다. 홍운표 테너의 시선은 다음 무대를 향해 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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