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2

“공간정리 전문가 되는 길, 마음을 먼저 묻는 일이었어요”

입력 2026-07-21 07:00 수정 2026-07-21 11:21

20년간 학교 급식실 지킨 이승미 씨… 강서50플러스센터 교육으로 제2인생 도전

▲20년간 초등학교 조리사로 일하다 정년 후 강서50플러스센터를 통해 정리 전문가에 도전 중인 이승미 씨. (이준호 기자)
▲20년간 초등학교 조리사로 일하다 정년 후 강서50플러스센터를 통해 정리 전문가에 도전 중인 이승미 씨. (이준호 기자)

“집을 정리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집을 정리하는 일은 내 집을 치우는 것과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죠.”

서울시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진행한 ‘시니어 라이프 공간정리 전문가’ 교육과정 현장에서 참가자 이승미(67) 씨를 만났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정리·수납 서비스가 관심을 받고 있다. 고령 1인 가구가 늘고, 저장강박이나 신체기능 저하 등으로 주거공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안전과 위생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관련 수요도 커지고 있다. 오래된 경로당과 노인복지시설에서도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공간 정비 필요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가사·돌봄 플랫폼을 통한 전문인력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노년기의 생활 특성을 이해하는 공간정리 전문가를 찾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승미 씨는 최근 서울시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진행한 ‘시니어 라이프 공간정리 전문가’ 교육과정에 참여하며 정리의 새로운 의미를 배웠다. 물건을 가지런히 놓고 공간을 깔끔하게 만드는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의 생활 방식과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서울시 강서50플러스센터 ‘시니어라이프정리전문가’ 과정 수강생들이 현장실습에서 어르신 가정의 수납공간을 살펴보고 정리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유플랫폼 제공)
▲서울시 강서50플러스센터 ‘시니어라이프정리전문가’ 과정 수강생들이 현장실습에서 어르신 가정의 수납공간을 살펴보고 정리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유플랫폼 제공)

정년 후 허전한 마음 달래려 배울 거리 찾아

이 씨는 초등학교 조리사로 20년간 일했다. 자녀를 키우면서도 방학을 활용할 수 있는 학교 급식실을 선택해 정년까지 근무했다. 정년 뒤에는 약 5년 동안 손주들을 돌봤다. 가족을 돕는 보람은 있었지만 직장을 떠난 뒤의 허전함도 남았다. 그는 “정년을 기다릴 만큼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이제 쓸모가 없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자신의 시간이 생기자 배울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큰딸이 보내준 모집 공고를 보고 시니어 라이프 정리 전문가 과정에 지원했다. 평소 정리를 좋아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딸의 집을 정리해줄 때마다 “엄마는 전문가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교육을 받기 위해 도봉구에서 강서구까지 오가는 데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정리 자체가 재미있어서 멀다는 생각 없이 다녔다”고 했다.

이 교육은 일반적인 정리수납 기술에 노년기의 특성과 안전, 소통을 결합한 과정이다. 시니어 주거공간의 이해를 시작으로 냉장고와 주방, 현관, 욕실, 거실, 옷장, 침실 등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낙상 예방을 위한 동선 확보, 식재료 관리,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 노년기의 심리적 특성과 의사소통, 정리서비스의 윤리 등도 다룬다. 이론교육 이후에는 실제 가정과 기관을 찾아가는 현장실습이 이어진다.

▲이승미 씨.(이준호 기자)
▲이승미 씨.(이준호 기자)

“물건에 담긴 사연과 추억 고려해야”

이 씨가 교육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받아들인 부분도 정리와 사람의 마음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제가 편리한 방식으로 정리했어요. 하지만 전문가로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면 제 기준대로 할 수 없어요. 물건 하나를 옮길 때도 주인에게 물어봐야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에 맞춰야 해요. 정리 방법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버릴 물건을 결정하는 과정은 신중해야 했다. 정리하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도 소유자에게는 추억이나 사연이 담긴 물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집을 정리할 때조차 당연히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자녀가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고객이 버리기 어려워한다면 정리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며 “물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뜻에 맞춰 정리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의 현장실습은 이론교육보다 더 큰 배움이 됐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구조와 면적의 집을 방문해도 집 안의 모습은 모두 달랐다. 물건의 종류와 양뿐 아니라 거주자의 생활 습관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습생들은 집 안을 둘러본 뒤 거주자와 정리 방향을 협의하고 물건을 꺼내 분류했다. 신발과 가방, 침구, 의류, 주방용품을 정리하고 분리수거 공간과 이동 동선을 확보했다. 수납도구를 새로 설치하는 것보다 기존 물건을 활용하고, 정리된 상태를 거주자가 스스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프로그램을 교육 중인 공간정리 전문기업 유플랫폼의 유정민 대표. (이준호 기자)
▲프로그램을 교육 중인 공간정리 전문기업 유플랫폼의 유정민 대표. (이준호 기자)

“봉사로 경험 쌓아 다시 일하고 싶어”

이 씨는 처음에는 결정권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집안일에 익숙한 만큼 정리 방향이 눈에 보이면 곧바로 손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현장에서는 매번 거주자의 의견을 확인해야 했다.

“제 집이라면 제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고객의 집은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앞섰어요. 그런데 강사님들은 고객이 원하는 방향을 계속 확인하면서 맞춰주더라고요. 앞으로 제가 가장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흩어져 있던 물건이 정돈되고 공간이 다시 드러나는 과정 자체도 즐거웠지만, 달라진 집을 본 거주자의 반응은 더 큰 힘이 됐다. 그는 “정리가 끝난 뒤 고객이 무척 좋아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니 그때가 가장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당장 취업을 서두르기보다 봉사활동을 통해 다양한 집과 사람을 먼저 만나볼 생각이다. 정리할 공간마다 생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은 현장을 경험해야 전문가로서 판단력과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직업과 연결되면 좋지만 우선은 봉사부터 하고 싶어요. 현장에 나가면 집집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일할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요.”

강서50플러스센터는 교육 수료자들이 현장실습에서 배운 내용을 봉사와 일·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자 1·2인 가구가 늘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요양시설 입소를 준비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물리적인 공간 정리와 함께 노년기의 심리와 생활을 이해하는 공간정리 전문가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을 맡은 유플랫폼은 유정민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정리 전문기업으로, ‘샤이니오’라는 통합 플랫폼을 통해 정과 음식점, 창고, 사무실 등의 공간정리 컨설팅과 교육·코칭, 전문가 양성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과정은 한국공간정리큐레이터협회가 발행하는 ‘공간정리큐레이터 2급’ 자격증 취득과 연계된다. 유정민 대표는 “향후 유플랫폼이 시니어 주거공간이나 경로당 등의 정리 사업을 진행할 때 교육 수료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최신 뉴스

  • [현장에서] 영화의 감동을 무대로…‘죽은 시인의 사회’가 돌아왔다
    [현장에서] 영화의 감동을 무대로…‘죽은 시인의 사회’가 돌아왔다
  • 17년 이어진 기초연금 ‘노인 70%’ 기준 개편 ‘이목’
    17년 이어진 기초연금 ‘노인 70%’ 기준 개편 ‘이목’
  • ‘신발장 문 떼 출퇴근 조작한다고?’ 방문요양 부당청구 적발
    ‘신발장 문 떼 출퇴근 조작한다고?’ 방문요양 부당청구 적발
  • 내년 ‘기준 중위소득’ 산정방식 바뀐다, 기초연금 새 기준 될까
    내년 ‘기준 중위소득’ 산정방식 바뀐다, 기초연금 새 기준 될까
  • 나이·병력·소득에 막힌 보험…‘포용적 보험’으로 해결 될까?
    나이·병력·소득에 막힌 보험…‘포용적 보험’으로 해결 될까?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브라보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