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스페인 여행 중 누에보 다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깊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구도시가 갈라져, 마치 두 개의 섬처럼 고립돼 있었다. 오랜 시간 버스로 달리는 내내 속으로 불평했다. 얼마나 대단한 다리이길래 이토록 먼 길을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막상 다리 앞에 서니 그 불평이 부끄러워졌다. 협곡 위에 놓인 다리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옛 귀족의 저택을 개조한 카페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그런데 정작 가슴에 남은 것은 풍경보다 그 다리가 놓이기까지의 사연이었다. 지도 위에서 보면 손가락 하나 폭도 안 될 그 짧은 거리를, 사람들은 무려 42년의 공사로 연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생각이 스쳤다. 우리 삶에도 그런 협곡이 있지 않은가.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와 오래된 벗 사이에 놓인 수많은 협곡. 다리 하나 놓는 데 42년이 걸렸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진 균열을 잇는 데는 대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한 걸까. 어쩌면 우리는 다리 놓을 생각조차 못 한 채, 협곡 이쪽에서 평생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등(葛藤)이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칡과 등나무가 나온다.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니 당연히 얽힐 수밖에.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결이 다른 이들이 만나 부딪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다름’을 ‘틀림’으로, 가려야 할 시시비비로 바꾸어 보는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더 단단히 엉킨다.
얽힌 갈등 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정작 병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미움과 증오는 독처럼 조용히 마음속에 퍼진다. 그림책 ‘용서의 정원’(로런 톰프슨)에는 이 진실을 잊지 못할 장면으로 그려낸 이야기가 있다. 오래도록 서로 미워하던 두 마을이 있었다. 이웃 마을 소년 카론이 던진 돌에 맞아 다친 소녀 사마는 격분해 돌을 집어 든다. 그러나 복수하려던 그 순간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얼어붙는다. 그토록 미워하던 상대처럼 자기 얼굴도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손에 쥔 돌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한다. “우리, 돌 대신 용서의 정원을 함께 만들어봐요.” 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다. 오랜 내전으로 피로 얼룩졌던 레바논 베이루트에 실제로 조성된 ‘용서의 정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증오가 가장 깊었던 자리에서, 사람들은 도리어 용서를 택한 것이다.

여기서 마음에 새겨야 할 진실이 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정작 그 일을 까맣게 잊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 마음에 가시 하나를 박아놓고 떠났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게 세월을 보내고 나만 홀로 그 가시를 품은 채 수십 년을 앓는다. 밤마다 가시가 도지는 줄도 모르고, 상대가 언젠가 뽑아주기를 기다리며 늙어간다. 그러나 평안하게 살 길은 상대의 사과를 기다리지 않는 것, 그가 사과하든 하지 않든 내가 스스로 그 가시를 뽑아내는 것뿐이다. 용서란 상대를 봐주는 시혜가 아니라, 나를 그 가시로부터 풀어내는 자기 해방이다. “나를 위해 너를 용서한다”는 말은 결코 이기적인 말이 아니라, 삶이 가르쳐준 지혜의 말이다.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아이라 바이오크)이라는 책의 질문처럼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대개 재산도 명예도 아닌 끝내 전하지 못한 네 마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잘 가요”였다고 한다. 평생 가슴에 품고도 내일로 미루다가 결국 건네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말. 삶의 마지막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순간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그런 이름이 있다. 용서는 했지만 화해까지 이르진 못한 관계. 용서와 화해는 분명 다른 층위의 일이다. 용서는 혼자서도 완성할 수 있지만, 화해는 서로가 마음의 문을 함께 열어야 하기에 훨씬 더디고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는 이유로 계속 미룰 수는 없다. 화해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용서만으로 우리는 미움이라는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
이해인 수녀는 시 ‘용서의 기쁨’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이라 노래했다. ‘용서의 꽃’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젠 당신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참 이기적이지요?” 그런 이기심이라면 우리 모두 얼마든지 품어도 좋을 것이다.
스페인의 두 도시는 40년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다리로 이어졌다. 지금 사람들은 그 다리를 건너, 예전에는 서로 다른 세상이었던 마을을 자유롭게 오간다. 우리 마음속 협곡에도 그런 다리를 놓을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지상에서 맺은 매듭은 지상에서 풀고 가야 한다.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오늘 먼저 손을 내밀어 짧은 문자 한 통이라도 건네보자.
“미안했다”, “고마웠다”, “보고 싶다”, 이 몇 마디가 얼어붙은 관계를 서서히 녹인다. “내가 만든 매듭은 내가 다 풀고 간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마무리일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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